‘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37년의 삶 동안 극한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며 끝내 자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879점의 그림을 남겼다. 그런 고흐의 영원한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는 궁핍하지만 숭고한 예술혼을 지닌 형에게 금전적,정신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고흐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 동생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수만 668통에 이른다. 그중 고흐의 예술적 고뇌와 작품의 비화를 엿볼 수 있는 편지 40여 통이 담긴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책방에서 만나봤다.
참고 도서 ‘반 고흐, 영혼의 편지’(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기고 엮음, 예담)
◇ 마스터피스에 얽힌 비화
고갱이 사랑했던 고흐의 ‘해바라기’
한 집에서 작업하던 고갱과 심하게 다툰 후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고 만다. 고갱은 집에 두고 온 자신의 습작 대신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 중 하나를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고흐는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기 습작을 주며 내 해바라기 그림을 요구하는 건 정말 우습다. 그는 내 해바라기 그림을 두 점이나 가지고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라고 해라”라고 쓴다. 이미 해바라기 그림 두 점이 있고, 심한 다툼 후에도 또 한 점을 달라고 한 것을 보면 고흐의 해바라기를 향한 고갱의 사랑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조카 ‘빈센트’를 위한 ‘꽃 피는 아몬드 나무’
테오는 고흐를 향한 존경의 뜻을 담아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빈센트 윌렘 반 고흐’라 짓는다. 이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 고흐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 “조카가 내 이름을 땄다고 하니 그 아이를 위해 침실에 걸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라며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 꽃이 만발한 커다란 나뭇가지 그림”이라고 묘사했다. 이 그림이 바로 고흐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꽃 피는 아몬드 나무’(1890)다.
◇ 고흐의 추천 도서
빈곤한 생활에도 독서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고흐는 “빵을 먹어야 살 수 있듯 책에 대해 열정을 갖고 끊임없이 정신을 고양하고 탐구할 필요를 느낀다”고 말했다. 당시 진지하게 독서에 몰두하며 성경을 비롯해 셰익스피어, 빅토르 위고, 디킨스 등의 작품에 심취해 있었다. 그는 1887년 여동생 윌에게 쓰는 편지에 에밀 졸라의 ‘삶의 환희’, ‘목로주점’, 볼테르의 ‘캉디드’, 모파상의 ‘좋은 친구’ 등에 대해 “그들은 우리가 공감하는 삶을 묘사하고 있어 진실을 듣고자 하는 사람의 욕구를 만족시킨다”라며 권유하기도 했다.
◇ 현대에 만나는 고흐의 삶
영화 ‘러빙 빈센트’는 전 세계 107명의 유화 작가들이 참여해 10여 년에 걸쳐 고흐의 작품 130여 점을 재현한 최초의 유화 애니메이션이다. 고흐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모티브로 시얼샤 로넌, 크리스 오다우드, 에이단 터너 등 할리우드 배우들이 고흐의 초상화 속 인물을 연기해 화제를 모았다. ‘우체부 조셉 룰랭의 초상’의 조셉 룰랭, ‘아르망 룰랭의 초상’의 아르망, ‘닥터 가셰의 초상’의 가셰 등을 생동감 넘치는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
‘그대, 나의 뮤즈 – 반 고흐 to 마티스’ 전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3월 11일까지 열린다. 반 고흐를 비롯한 르누아르, 카유보트, 클림트, 마티스 5인의 거장이 자신들의 뮤즈를 만났던 순간을 표현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이번 전시에서는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릴 당시 영감 받은 남프랑스의 노란 태양과 따뜻하게 쏟아지던 햇살을 간접 경험하고 ‘별이 빛나는 밤’, ‘자화상’ 등을 미디어아트로 감상할 수 있다.
어느새 봄의 기운이 느껴진다. 아파트 뒤편 개울에 꽁꽁 얼었던 얼음과 눈도 녹아서 조금 깊은 여울에는 콸콸 소리를 내며 물결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며 되풀이되는 자연의 변화가 신비스러워 베란다에 서서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날씨도 풀렸고 오랜만에 삼총사 친구가 만나 영화 한 편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한동안 비싼 값 주고 영화를 보다가 시니어 할인을 받게 되어 신났었다.
그런데 지난번 영화표를 살 때만 해도 4000원이었는데 지난 2월부터 가격이 올라 오늘 5000원이라고 한다.
친구가 미리 검색해 온 대로 외국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를 티켓팅 했다.
이 작품은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다 13개 부문 후보에 지명되었고 작품상, 감독상, 음악상, 미술상을 받은 영화다.
재미있는 점은 영화 속 TV에 나오는 배우가 필자 나이 정도는 돼야 알 수 있을 만한 옛날 스타인데 아역 배우로 이름을 날렸던 셜리 템플과 제임스 캐그니, 베티 데이비스의 모습이 보였다.
이 영화가 인기 있던 이유로는 옛 유명배우들과 옛 음악이 흘러 미국인의 향수를 자극해 추억을 되살아나게 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판타지의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작품으로 성인 동화라는 느낌을 주는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명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내용은 좀 기괴하고 잔혹하다. 1960년대 우주개발 경쟁이 한창이었던 미국과 러시아의 냉전과 극심한 인종차별이 있던 시대에 미국 항공우주센터 비밀 실험실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언어장애가 있는 엘라이자가 주인공이다.
그의 곁에는 수다스럽지만 믿음직한 동료 젤다와 서로를 보살펴주는 가난한 이웃집 화가 자일스가 있다.
어느 날 실험실 청소를 하던 중 온몸에 비늘이 덮인 괴생명체가 수조에 묶여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보통사람이라면 무서워하고 피하겠지만, 늘 혼자였던 엘라이자는 신비스러운 그의 모습에 점점 다가가 마음을 연다.
실은 너무나 외로웠던 엘라이자가 자신보다 더 외롭고 고통을 당하는 대상을 보고 위로해 줄 수 있음에 기뻤던 것 같다.
이 괴생명체는 물고기지만 사람의 형태를 지니고 있어 우주선에 태울 수 있는지의 실험을 하려고 아마존에서 잡아 왔다.
실험실의 보안책임자는 이 생명체를 묶어놓고 강압적으로 대하며 해부와 실험을 통해 직위가 올라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몰래 실험실에 숨어든 엘라이자는 그와 교감을 나누고 의사소통을 한다. 실험실의 박사는 둘의 행동에서 괴생명체가 지적 능력이 있다는 걸 알고 해부를 반대하지만, 어느 날 실험할 날이 정해지니 엘라이자와 친구들, 박사는 힘을 합쳐 그를 탈출시켜 집 목욕탕에 숨겨준다.
그러면서 더욱 가까워진 그들은 애틋한 사랑을 나눈다.
염분을 맞추기 위해 소금을 뿌리고 돌보지만 괴생명체는 비늘이 벗겨지는 등 상태가 나빠져 비가 오는 날 바다에 놓아주기로 한다.
신기하게도 그가 가난한 화가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대머리였던 그의 머리카락이 자라게 되고 상처도 그가 만지면 사라지는 등의 신기한 현상이 일어난다.
비가 오는 날 강 수위가 높아져서 그를 보내기 위해 부두에 갔는데 나쁜 보안책임자가 따라와 총을 쏘아 괴생명체와 엘라이자를 쓰러뜨린다.
그러나 잠시 후 괴생명체는 총 맞은 상처가 없어지며 일어나 쓰러진 엘라이자를 안고 바다에 뛰어든다.
물속에서 그의 입맞춤에 엘라이자는 숨을 쉬게 되며 아름다운 바닷속 영상으로 이야기가 끝나니 전체적으로 동화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신기한 능력으로 그들의 사랑을 키워 행복하게 살았을까? 보는 사람의 몫을 정해 준 영화이다. 외로운 엘라이자와 외로운 생명체가 그냥 행복하게 잘 살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어른 동화 한 편을 보았다.
바야흐로 ‘ME TOO’ 열풍이 세상을 휩쓸고 있다. ‘ME TOO’로 명명된 이 현상은 여성들이 오래전 남성들로부터 당한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이어가며 고백하거나 고발하는 행동을 일컫는데 미국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스타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이 우에르타라는 여배우를 7년 전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되자 잇달아 다른 유명 여배우들도 그에게 성추행당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촉발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이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고 메마른 벌판의 들불처럼 번져나가 그동안 잘 나가던 유명 인사들이 잇달아 ‘미투’의 희생양(?)이 되기 시작했다. 영화감독 제임스 토백을 비롯하여 미 정계의 거물들도 이 고백의 광풍에 속절없이 나가떨어졌다. 이 바람은 어느새 우리나라에도 상륙해 얼마 전 최영미 시인이 발표한 시 한 편으로 문단뿐 아니라 온 나라가 충격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매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며 국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한 유명 원로시인이 하루아침에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명예가 한순간에 날아가는 이 바람의 위력은 태풍에 비할 바 아니다. 본인이야 제가 한 짓으로 당하는 것이겠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입장에서도 정체 모를 이 바람의 힘 앞에 모골이 송연하도록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종종 유명 연예인들이 부도덕한 행위로 질타를 받는 일은 보았어도 국가의 원로 대접을 받던 시인의 몰락은 비현실적이고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인지 문단의 몇몇 분들은 원로시인을 옹호까지는 아니어도 보호하고자 나섰다. 과거에는 큰 문제가 아니었는데 갑자기 난데없는 한밤중 홍두깨로 얻어맞으니 어이없기도 하고 납득하기도 어려운 그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듯하다.
그렇다면 홍상수의 영화 제목처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이유가 무엇일까? 그때는 수치를 당해도 말하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발설하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일까? 본 모습이 감추어진 한 시대의 우상들이 잇달아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도둑처럼 찾아온’ 시대의 변화가 느껴진다. 우리 머릿속에 잠재해 있던 ‘미워도 다시 한번’ 식의 인식 족쇄가 어느덧 사라진 것이다.
공고하던 가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가 사라지니 여성들의 자아의식이 돌아왔다. 경제가 성장하고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니 이젠 남성들에게 기죽을 일이 없다. 이미 그런 시대가 도래한지 10년이 넘었으니 오히려 ‘미투’가 늦었는지 모른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화제가 된 영화 ‘B급 며느리’가 시사하는 바 크다. 여성들 의식 변화의 바람은 곧 고부간에도 닥쳐올 듯하다.
모든 관계가 재설정되는 새 시대로 진입하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분명한 것은 타자의 감정을 무시하고 불편하게 개입하는 인간관계는 점차 사라지리라는 점이다. 문득 이런 현상들을 통해 인류문명이 고도화할수록 인간들은 외로워지리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남성들은 불현듯 다가온 위기의식에 옷깃을 단단히 여밀 것이며 두려울 것이 없는 여성들은 더욱 자립심을 키워갈 것이다.
일전에 프랑스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가 지나친 ‘미투’ 현상을 비판하면서 “남성들에게 여성을 유혹할 자유를 허하라”고 외친 것은 어쩌면 낭만적이었던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쓸쓸한 마지막 인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인물도, ‘힙’이 터지는 젊은 패셔니스타도 브로치에 자신을 투영한다. 백 마디 말보다 강력하고, 어떤 액세서리보다 의미 있는 브로치에 열광하는 사람들이다.
주얼리의 힘은 이야기에서 나온다. 남편이 처음으로 사줬던 목걸이, 아들이 선물한 귀고리, 시어머님이 물려주신 브로치 등등 이야기가 담긴 주얼리는 패션의 영역을 넘어 주술과 같은 의미로 우리와 함께하게 된다. 그중 목걸이와 반지처럼 옷 속에 감춰지는 은밀한 주얼리와 달리 대놓고 자신의 존재감을 풍기는 브로치가 다시 트렌드의 쳇바퀴를 돌아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어느 때보다 젊어진 모습으로 말이다.
브로치가 말하는 것들
패션 디자이너 서정기는 한 인터뷰에서 브로치에 대해 정의하길, “브로치는 옷 위에서 ‘나를 봐주세요!’,‘나는 이런 취향을 가졌어요!’라고 외치죠. 고상하게도, 천박하게도, 화려하게도, 얌전하게도, 크게도, 작게도, 엄청 비싸게도, 싸게도 자기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 브로치 입니다. 브로치는 개성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죠”라고 했다. 브로치는 자신이 어떤 취향의 사람인지를 드러내기도 하고, 때때로 말보다 더 강하게 의미를 전달하기도 한다. 최근 제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까만 드레스 위로 ‘Time’s Up’이란 브로치를 단 여배우들이 등장했다.
이 브로치는 직장 내 성폭력과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 할리우드 스타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타임스 업(Time’s Up)’ 캠페인을 의미한다. 또 여성 정치인이 입은 옷은 정치적 성명 발표와 같다는 말처럼 종종 정치인들은 브로치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암시적으로 전달한다. 미국의 전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퇴임 후 ‘내 브로치를 읽어보세요’라는 이름으로 전시회까지 열 정도로 브로치 정치의 대가였다. 그녀를 비롯해 IMF 총재인 크리스틴 라가르드, 힐러리 클린턴 등 브로치를 패션 그 이상의 의미로 이용하는 이들은 수도 없이 많다.
스타일의 방점, 브로치
최근 하이 주얼리 브랜드 반클리프앤아펠은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보그의 전설적인 에디터이자, 수많은 패션 디자이너들의 뮤즈인 카린 로이펠드와 함께 브로치 스타일링법을 소개하는 ‘브로치 더 서브젝트(Brooch The Subject)’를 기획한 것. 몇 개의 하우투(How to) 영상과 사진으로 이뤄진 이 기획은 브로치에 대한 생각의 틀을 넓혀준다. 브로치의 자리를 으레 가슴쪽이나 스카프 위라고만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카린 로이펠드는 클래식한 반클리프앤아펠의 브로치를 평범한 블라우스의 깃(칼라의 뾰족한 부분)이나 스커트 벨트 라인, 원피스의 어깨 부분에 살포시 얹었다. 아무것도 아닌 옷을 일순 특별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신의 한 수다.
화장대 구석에 방치해둔 오래된 브로치를 다시 꺼내 들게 만드는 매력적인 스타일링법은 무엇을 입느냐보다, 어떻게 입느냐가 더 중요한 요즘 시대에 딱 알맞다. 특히 옷장을 열면 한숨만 나오는 이들에게 옷에 대한 스타일링의 영역을 우주만큼 확장해준다.
브로치를 고리타분한 액세서리의 자리에서 ‘힙’, ‘핫’ 같은 요즘식 형용사를 붙이게 만드는 것은 비단 이 프로젝트뿐만이 아니다. 영국의 고전으로 불리는 버버리 프로섬 역시 이번 시즌에 얼굴만 한 사이즈의 브로치를 선보였다. 어떤 주얼리보다 화려한 버버리 프로섬의 ‘왕’ 브로치는 스트리트 감성이 풍만한 젊은 세대들을 동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액세서리 리스트에 브로치 영역을 추가하게 만들었다. 이토록 젊어진 브로치는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의 패션을 신선하게 만들어준다.
다가올 설, 철 지난 한복이 촌스럽게 느껴진다면 브로치의 힘을 빌려보자. 하나도 좋지만 여러 개의 브로치를 레이어드하면 또 다른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이때 유색과 무색의 조합을 적절히 이용하면 촌스럽던 한복도 한결 세련돼 보일 것이다. 또한 브로치를 옷이 아니라 진주목걸이 위에 연결해 펜던트로도 활용해보자. 심플한 니트에 브로치를 더한 진주목걸이는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이다.
다가올 봄, 좀처럼 생기가 돌지 않는 패션을 위해 브로치 처방을 내려보면 어떨까. 그것도 당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브로치라면 금상첨화겠다.
"키스할 때는 코를 어디에 둬야 하죠? 코를 어디에 둘까 늘 생각했어요."
여 주인공 마리아는 사랑하는 연인 로버트에게 이렇게 묻는다.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였다. 이 한마디로 잉그리드 버그만은 단번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었다. 또 이 장면은 최고의 키스신이 되었다. 마초이면서 멋진 남자 헤밍웨이가 한 일이었다. 그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스페인 내전을 다루고 있다.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에 직접 뛰어들어 겪은 일들을 글로 썼다. 전쟁 중 아름답고 청순한 그녀는 파시스트에게 험한 일을 당했다. 그러나 그녀의 맑고 아름다운 영혼은 망가지지 않았다.
'기가 막혀! 정말 이렇게 사랑스러워도 되는 거야?'
필자는 그녀에게 폭 빠져버렸다. 여자인 필자도 이럴진대 남자들은 어떠할까? 주인공 역을 맡은 잉그리드는 그 시절 가장 인기 있었던 미녀 스타들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스웨덴이 낳은 세계적인 스타로 1960~1970년대에 온 지구촌 남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았다. 아니 그녀는 단지 대스타라고 하기에는 표현이 많이 부족했다. 175cm의 키에 너무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그녀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최고의 여신이었다. ‘가스등’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는 등 승승장구하며 대스타로 입지를 다져가던 중 세인이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이 터진다. 치과 의사인 남편을 버리고 이탈리아의 명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동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불후의 명작인 그의 작품 '무방비 도시'를 본 그녀는 즉시 비행기를 타고 이탈리아로 날아갔다 한다. '세상에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녀의 가슴속에 그런 용광로가 숨어 있었다니!' 두 사람은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바로 영화배우 이사벨라 로셀리니다.
이사벨라 로셀리니는 '백야', '블루 벨벳' 등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배우이며 특히 오랜 세월 랑콤 화장품 대표 모델로 활동했다. 그녀는 여신인 어머니와 지적이고 잘생긴 아버지의 우월한 유전자를 골고루 받고 태어났다. 그녀는 잉그리드가 우리에게 남겨준 선물이다. 잉그리드의 모습을 계속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녀를 보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많은 영화를 통해 청순하면서도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준 정숙하고 아름다운 잉그리드의 불륜 소식에 세상 사람들은 경악했고 극도의 배신감으로 그녀를 비난했다. 그 일로 인해 그녀는 7년간을 할리우드에 입성할 수 없었다. 로베르토와의 사랑도 8년 만에 금이 가 두 사람은 결국 헤어졌다.
지금도 필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직 하나뿐인 영원한 내 사랑 피터!"라며 치과의사 남편 피터에게 영원한 사랑을 고백하던 잉그리드가 로베르토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녀의 딸은 훗날 묻는다. “그렇게 성실하고 좋은 남자인 아빠와 엄마는 왜 헤어졌을까?”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모습 뒤에 숨겨져 있던 그녀의 뜨거운 열정이 그녀를 대스타로 만든 것일까? 그녀는 끝까지 당당했다. "나는 배우다. 내 연기를 비평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내 사생활은 비난하지 말라“고.
로베르토 로셀리니와의 스캔들만 알았을 때는 그녀의 열정에 열광했었는데 최근에 남편 피터가 아주 성실하고 좋은 사람인 것을 알게 된 뒤로는 그녀에게 실망했다. 로셀리니 말고도 다른 두 명의 남자를 더 만나 사랑하게 된 그녀를 두고 필자의 딸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 그건 열정이 아니라 난잡한 거거든!"
딸의 평가에 선뜻 그녀를 두둔하지 못했다. 필자의 젊은 날을 지배하고 매혹시켰던 그녀, 잉그리드 버그만을 이해하는 한계였다.
SBS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2’에 출연해 사랑스럽고 쾌활한 모습을 보이는 배우 추자현의 남편, 중국 배우 우효광은 ‘우블리’로 불리며 시청자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장훈 감독의 영화 ‘택시운전사’에 독일 배우 토마스 크레취만이 송강호와 함께 주연으로 나서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등 외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KBS2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미국 배우 데이비드 맥기니스가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해 시청자에게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국내에서 최고 인기를 누릴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 외국에서 K-Pop 열풍을 고조시키고 있는 아이돌 그룹 엑소의 레이는 중국 멤버이고, 트와이스의 9명 멤버 중 대만 멤버 쯔위와 일본 멤버 모모, 사나, 미나 등 4명이 외국인 멤버다.
최근 한국 방송 프로그램과 영화에 출연하는 외국인 배우가 급증하고 한국 무대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가수가 늘고 있다. 방송·영화의 외국인 연예인과 외국인 출연은 대중문화의 트렌드로 부상했고 외국인 멤버가 포함된 아이돌 그룹 활동은 대중음악계의 대세가 됐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 공연 무대의 일회성 출연에서 벗어나 아이돌 그룹의 지속적 활동과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의 장기간 출연을 위해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연예인도 늘고 있다. 또한, 외국인을 전면에 내세우는 프로그램도 급증하고 샘 해밍턴, 후지타 사유리, 샘 오취리 등 방송 출연을 통해 유명인 대열에 합류하는 외국인도 등장하고 있다.
1970~1980년대에도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외국인과 외국인 배우, 가수의 모습을 간간이 볼 수 있었다. 추석 등 명절에 ‘외국인 노래자랑’ 같은 특집 프로그램이나 내한한 외국인 스타의 예능 프로그램 단발성 특별 출연을 통해서다.
1990년대 들어 국제결혼과 직장 근무 등으로 한국에 이주한 외국인 중 일부가 KBS1 ‘아침마당’ 등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과 한국 문화·생활에 대한 소감을 들려줬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한 독일 출신 귀화 한국인 이참, 미국 출신 로버트 할리, 프랑스 출신 이다 도시 등은 눈길을 끌어 예능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드라마에도 얼굴을 내밀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한류가 본격화하고 국내 거주 외국인이 급증하기 시작한 2000년대부터는 국내 방송과 대중문화계에 진출한 외국인 연예인과 외국인이 증가했다. 중국, 독일, 미국 등 외국 미혼 여성이 출연해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KBS2 토크쇼 ‘미녀들의 수다’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방송돼 큰 인기를 끈 것을 계기로 외국인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이 붐을 이뤘다. 또한 KBS2 ‘개그콘서트’의 샘 해밍턴을 비롯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외국인도 많아졌다.
요즘 시청자와 만나는 SBS ‘내 방 안내서’, JTBC ‘비정상회담’, MBC 에브리원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KBS1 ‘이웃집 찰스’, JTBC ‘나의 외사친’, tvN의 ‘서울메이트’처럼 외국인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이 눈길을 끌고 있으며 ‘동상이몽2’의 중국 배우 우효광, KBS1 ‘이웃집 찰스’의 일본인 사유리,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호주 출신 샘 해밍턴 등 외국인 출연자가 인기를 얻고 있다.
요즘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외국인 배우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봉준호 감독 ‘옥자’의 할리우드 스타 틸다 스윈튼, 홍상수 감독 ‘다른 나라에서’의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 나홍진 감독 ‘곡성’의 일본 연기자 쿠니무라 준, 김태용 감독 ‘만추’의 중국 스타 탕웨이, 허진호 감독 ‘위험한 관계’의 중국 배우 장백지, 장훈 감독 ‘택시운전사’의 독일 배우 토마스 크레취만,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미국 배우 데이비드 맥기니스처럼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주연과 조연으로 출연하는 외국인 연기자가 많아졌다.
또한 일본 배우 ‘엽기적인 그녀2’의 후지이 미나, MBC ‘구가의 서’, SBS ‘추적자’의 오타니 료헤이처럼 아예 활동무대를 한국으로 옮겨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지속해서 출연하는 외국인 연예인도 적지 않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가수 역시 급증하고 있다.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은 아이돌 그룹 멤버 중 10% 정도가 외국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K-Pop 한류를 일으키고 있는 걸 그룹 트와이스의 9명 멤버 중 대만인 멤버 쯔위와 일본인 멤버 모모, 사나, 미나 등 4명이 외국인 멤버다. 또한 2PM의 태국인 멤버 닉쿤, 에프엑스의 중국인 멤버 빅토리아, 미국인 멤버 엠버, 엑소의 중국인 멤버 레이, 우주소녀의 중국인 멤버 성소·선의·미기, 블랙핑크의 태국인 멤버 리사와 뉴질랜드인 멤버 로제, 갓세븐의 홍콩인 잭슨, 태국인 뱀뱀, 미국인 마크 등 수많은 외국인이 아이돌 그룹 멤버로 활동하며 스타로 부상했다.
방송, 영화, 음악 등 한국 대중문화계에 진출한 외국인 연예인이 늘어나고 외국인을 출연시키는 프로그램이 증가하는 이유는 뭘까.
한류로 인해 한국 대중문화 위상이 높아지고 한국 연예계에 진출해 쌓은 경력과 인지도를 바탕으로 자국에서 연예인으로 활동하려는 외국인이 늘었기 때문이다. 아이돌 그룹 멤버를 비롯한 연예인이 되기 위해 한국을 찾아 연예기획사의 오디션이나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외국인 수는 엄청나다.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의 국내외 오디션에는 수천 명의 외국인이 참여한다.
외국인을 기용해 한류를 확산하려는 연예기획사, 드라마 제작사 등 대중문화 콘텐츠 관련 업체의 의도도 외국인과 외국인 연예인 출연 프로그램, 영화, 드라마, 음반의 증가를 가져왔다. 모모 등 일본 멤버가 3명이나 있는 트와이스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태국인 닉쿤이 멤버로 있는 2PM은 태국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는 등 외국인 멤버가 있는 아이돌 그룹이나 외국인이 출연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한류 확산에 긍정적인 영향을 드러내면서 외국인의 한국 연예계 진출이 붐을 이루고 있다.
국내 거주 외국인 급증도 외국인 방송 출연과 외국인 참여 프로그램 증가의 한 원인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현재 국내 거주 외국인이 171만 명에 달한다. 2006년 53만 명이었던 외국인 인구가 10년 사이 3배 이상 증가할 정도로 국내 거주 외국인이 늘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방송 등 대중문화에서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전개되고 있다.
외국인 연예인의 국내 방송과 대중문화계 진출 붐은 대중문화의 지평을 확대하고 한류 진작(振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문화 차이, 한국어 부족으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 등으로 문제도 종종 발생한다. 엑소를 탈퇴한 중국인 멤버 크리스·루한·타오처럼 소속 계약이나 수입 배분, 대우 등으로 연예기획사를 대상으로 한 외국인 멤버의 법적 소송이나 갈등이 늘어나면서 한국에서 외국인 연예인 활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많아지고 있다.
해외여행에 익숙지 않은 초보 배낭 여행객들에게 홍콩은 매우 적격한 나라다. 중국 광둥성 남쪽 해안지대에 있는 홍콩은 1997년 영국령에서 반환되어 국적은 중국이지만 특별행정구다. 다른 자본주의 체제가 적용되는 ‘딴 나라’다.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라는 오래된 유행가를 흥얼거리면서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병 고쳐 달라 기원하면 낫게 해줄까? 웡타이신 사원
홍콩의 주룽반도(九龍半島)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도교 사원이 웡타이신(黃大仙)이다. 원래는 중국 광저우(廣州)의 황사에 있었는데 1912년 현재의 장소로 이전해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은 1956년부터다. ‘웡타이신’은 우리말로 황대선이라는 인물을 뜻한다. 그는 원래 저장성의 한 지방에서 살던 양치기 소년. 15세 때, 정제된 황화수은을 질병 치료 약으로 만들어 인술에 많은 공적을 쌓았다. 그래서 이 사원은 병 치료에 도움을 주는 신앙처로 알려지게 된다. 모습은 여느 사원과 비슷하다. 각자의 소원과 병 치료를 기원하는 제수를 놓고 향초를 피우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사원 안은 눈이 매울 정도로 향내가 진동한다. 특히 사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나무 산통을 이용해 행운의 점(산통점)을 친다. 일을 그르칠 때 쓰는 ‘산통 깨다’라는 표현은 바로 이 ‘산통점’과 관련해서 생겨났다. ‘산통(算筒)’에 대나무를 잘게 잘라 100개 정도를 넣고 산통의 막대가 나올 때까지 흔들고 막대가 나오면, 막대와 같은 번호의 종이와 바꾼다. 점쟁이는 그 내용을 설명해준다. 하지만 점괘가 나와도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니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또 이 사원에 들러 꼭 찾아야 할 곳은 뒤쪽의 정원. 황대선이라는 이름이 선명한 정원은 연못과 함께 꾸며져 있어 주변 고층 아파트의 삭막함을 무색케 할 정도로 아름답고 정적이다.
홍콩 영화 속 주인공처럼 침사추이 거리 헤매보기
주룽 지구의 침사추이(尖沙咀)는 홍콩 최대 번화가다. 고층빌딩 숲, 옛 향기가 가득 배인 칙칙하고 좁은 골목들. 오래된 재래시장과 파도처럼 일렁대는 사람들의 왁자한 소리의 물결.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영화 같은 매력이 폴폴 넘쳐나는 곳. 홍콩 누아르 영화 속에서 이미 친근해진 풍경이 반갑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 영화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할리우드 스타의 거리를 모티브로 만든 ‘스타의 거리’다. 2003년에 시작해 1년 뒤인 2004년부터 공개되었다. 너비 4~5m, 길이 440m로, 9개의 붉은 기둥에 홍콩 영화 100년사가 기록되어 있다. 또 영화를 찍고 있는 감독의 조형물, 이소령 동상 등이 눈요기를 시켜주고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길바닥에 새겨진 영화인 명판들. 이연걸, 홍금보, 임청하, 양조위, 오우삼, 서극, 매염방 등 국제적으로 친숙한 홍콩 스타들의 손도장과 사인들이 거리를 장식했다. 이름만 새겨진 배우는 스타 거리가 조성되기 이전에 죽은 사람들이다. 이곳이 유난히 좋은 이유는 주변 바다 풍치가 덧대어져 있기 때문이다. 유람선과 고깃배가 떠다니고 바다 너머로 홍콩섬 금융가의 건물들이 뾰족하게 올라가 있는 주변 풍광이 매력적이다. 이외에도 미술관, 우주박물관, 시계탑, 문화센터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특히 주룽반도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시계탑(높이 44m)은 1910~1978년 중국과 유럽을 오가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출발역이었던 주룽역 앞에 서 있던 것. 조화롭지 않은 듯 조화를 이루고 있는 침사추이가 매력적이다.
홍콩의 부자 동네, 리펄스 베이
침사추이에서 리펄스 베이(Repulse Bay)로 가려면 일단 홍콩섬으로 들어가야 한다. 페리호와 해저터널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홍콩섬은 홍콩 개항 이후, 상업 및 정치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홍콩섬에서 가장 높은 산, 빅토리아 피크(554m) 고갯길을 넘어서면 차창 밖 모습이 조금씩 달라진다. 빽빽한 건물 대신 초록색 산과 바다가 어우러지고, 띄엄띄엄 고층 아파트가 그림처럼 들어앉아 있다.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건축 형태가 자연과 잘 어울리고 있다. 이곳이 바로 리펄스 베이다. 성룡 등 홍콩의 유명 인사들이 주로 사는 부촌이다. 길 끝나는 바닷가 끝에 틴하우(天后) 사원이 있다. 사원 앞에 틴하우 여신이 해탈의 미소를 건네고 있다. 산정이 아니라 바다와 눈높이가 같다. 1865년에 세워진 도교 사원은 독특한 중국 건축 양식을 전하는 지붕의 곡선이나 조각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사원엔 바다의 수호신인 ‘쿤암(Kwun Yum)’과 틴하우를 모시고 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틴하우 여신은 뱃사람들이 복을 빌면 소원을 들어주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을 구해준다고 믿었다. 또 건너가면 젊어진다는 장수교와 손으로 문지르면 재물복을 준다는 정재신(正財神) 석상, 만지면 3일 안에 인연을 만들어준다는 인연신이 있다. 특히 인연신 앞에서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떨어질 줄 모른다.
유럽 거리 걷는 건가? 스탠리 마켓과 머레이 하우스
리펄스 베이 해변을 벗어나 찾아갈 곳은 스탠리 마켓(Stanley Market)이다. 스탠리 메인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150여 개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장 거리다. 마치 서울의 이태원동과 같은 분위기다. 마켓 거리는 고급 제품을 파는 곳이 아니다. 반면 스탠리 베이 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확연히 모습을 달리한다. 아기자기한 유럽식 바와 식당, 숍들이 해변을 따라 이어진다. 세계 음식점들이 즐비하고 외국인도 많이 눈에 띄어 이국적인 풍치가 연출된다. 아기자기한 바와 레스토랑에서는 커피 한 잔, 파스타, 피자 한 조각으로 여행객들을 유혹한다. ‘만(灣)’ 형태의 넓지 않은 바다를 따라가면 머레이 하우스(Murray House)를 만난다. 옛 센트럴에 위치한 1844년대 식민지시대 건축물을 1991년 그대로 옮겨다 놓았다. 40만 개의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을 분해해서 옮긴 후 재조립했다고 한다. 아직도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건물은 딱히 멋은 없지만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식민지시대 건물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현재는 레스토랑과 홍콩해양박물관으로 이용된다. 머레이 하우스 앞 바닷가 쪽의 정자와 옹기종기 매여 있는 조각배의 풍치에 반한 여행객은 그 순간 긴장을 스리슬쩍 내려놓는다.
홍콩 야경 보고 레이저 쇼 보니 기분 최고, 맥주 한잔 어때?
홍콩 여행에서 야경을 빼놓을 수 없다. 야경을 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가 여러 곳 있다. 그중 홍콩섬의 빅토리아 피크는 야경 보는 인기 뷰포인트. 홍콩의 가장 높은 전망대로 서울의 남산타워, 63빌딩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산정에서 바라보는 야경도 훌륭하지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서야 완벽하게 멋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이곳의 명물로 꼽히는 것은 피크 트램. 1888년부터 긴 세월 동안 가파른(373m) 산등성이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어느 순간 건물이 거꾸로 서 있는 듯 몽롱해진다. 특히 피크 타워 바로 옆, 사자 정자는 환상적인 야경을 볼 수 있는 명소다. 또 승강기를 타고 타워 꼭대기 층인 스카이 테라스로 올라가면 더 넓게 조망할 수 있다.
야경을 보는 데에도 피크 타임이 있다. 오후 8시부터 약 20분간 심포니 오브 라이트(Symphony of Lights) 레이저 쇼가 펼쳐진다. 좀 더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영화 거리와 이어지는 시계탑 근처, 연인의 거리에 마련된 2층 뷰포인트가 명당자리. 바다 건너 홍콩섬의 금융가 건물에서 뿜어대는 광선에 취하는 홍콩의 밤이다. 이런 날, 침사추이 밤거리로 들어가 몽콕 야시장에서 야식을 사먹는 재미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Travel Data
교통편 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 캐세이패시픽, 타이항공 등에서 매일 인천~홍콩 간 직항편을 운행한다. 2014년부터 제주항공, 진에어와 같은 저가 항공사도 직항편을 운항 중이다. 3시간 30분~3시간 50분 소요.
현지 교통 정보 홍콩 공항에 도착하면 공항고속전철을 타고 20~30분 만에 중심가인 주룽반도와 홍콩섬에 갈 수 있다. 시내를 여행할 때는 배(스타 페리)와 2층 버스, 전차(트램)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된다. 옥토퍼스 카드라고 불리는 교통카드를 이용하면 지하철, 배, 전차, 버스 등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화폐 단위 홍콩 달러(HKD)를 이용해야 한다. 마카오에서는 홍콩 달러를 사용할 수 있으나 거스름돈은 현지 화폐인 파타카(Pataca)로 받을 수 있다. 화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음식과 숙박 정보 홍콩 음식은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완탕이 유명하고 시장통에만 가도 먹을 게 지천이다. 유명 호텔 숙박은 몇십만원대이지만 5만~8만원 선에 이용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주룽반도 쪽이 가격이 저렴하다. 특히 1928년 문을 연 페닌술라 호텔(香港半島酒店)은 세계 10대 호텔 중 하나로 꼽힌다. 또 40여 년의 전통을 지닌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mandarin oriental Hong Kong)은 미슐랭 스타(Michelin Star)를 받은 호텔로 10개의 레스토랑, 스파 및 피트니스 센터를 갖추고 있다. 가격은 70만~80만원대다.
물가 정보 홍콩은 면세가 되는 품목들이 대부분이다. 의류, 가방, 시계 등은 한국보다 다소 저렴하다. 그러나 주류, 담배 등의 품목 몇 가지는 한국보다 가격이 더 높고 세금을 부과한다. 전체를 합치면 홍콩 물가는 서울과 비슷하다.
날씨와 옷차림 정보 홍콩의 12월은 평균 최저기온이 15.9℃, 평균 최고기온이 20.2℃로 우리나라 가을과 비슷하다. 일교차가 작아 낮이나 밤이나 서늘하고 쾌적하다. 가을 옷 위주로 챙기고 머플러 등을 준비하면 된다.
시니어 한 달 여행 포인트 홍콩과 마카오(澳門)는 빼놓을 수 없는 밀접한 여행지다. 홍콩 항에서 뱃길로 40여 분(약 60㎞) 달려가면 마카오다. 또 홍콩과 인접한 도시가 심천이다. 홍콩의 지하철(MTR)이 주룽의 홍함에서 중국 국경인 광둥까지 국철(KCR)로 연장되지만 통과하려면 비자가 필수다. 심천은 경제특구 지역으로 새로 생긴 신흥도시. 건물들도 깨끗하고 홍콩보다 물가도 싸다. 매우 좁은 도시여서 여유롭게 여행을 즐기면 된다.
영화산업의 메카,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곳. 재봉틀 하나로 ‘할리우드’를 정복한 한국 아줌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바네사 리(48·한국명 이미경). 그녀의 할리우드 정복기는 어떤 영화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공식 타이틀은 ‘패브리케이터(Fabricator)’. 특수효과 및 미술, 의상, 분장 등을 총칭하는 ‘FX’ 분야에 속해 있는 전문직이다. 그녀가 하는 일은 디자이너의 상상 속에 있던 배우의 의상을 현실에서 재현해내는 일이다. , , , 등 슈퍼히어로의 멋진 의상이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할리우드 최고 몸값의 패브리케이터 바네사 리를 LA 아트 디스트릭에 있는 그녀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할리우드 No. 1 패브리케이터
“패브리케이터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생소할 거예요. 번역을 하면 특수의상 제작자 정도가 제일 맞겠네요. 의상뿐 아니라 원하는 모양의 몸집을 만들기도 하는데 팻 슈트(Fat Suit)라고 불러요. 뚱뚱한 몸이나 괴물, 외계인을 만들 때 사용합니다. 개봉을 앞둔 영화 에서 배우 게리 올드만이 윈스턴 처칠 역을 맡았는데 배우의 몸보다 두 배 가까이나 큰 슈트를 제작해야 했어요. 폼 라텍스와 마이크로비즈라는 소재로 처음 시도했는데 정말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어요. 게리 선생님도 마치 최고의 예술품 같다며 인정해주셨죠.”
바네사 리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탑’ 패브리케이터다. 이는 지난 13년 동안 쌓아온 그녀의 필모그래피만 봐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작업한 영화만 100여 편, 제목만 들어도 반가운 , , , , , , , , , , 등이 그녀의 손길을 탔다.
할리우드의 FX 분야는 철저한 ‘그들만의 세상’이다. 제작사에서 FX 부분을 총괄할 숍(Shop)이나 아티스트에게 작업을 의뢰하면, 다시 그들이 의상, 분장, 헤어, 미술팀을 꾸리는데 보통 인력을 공개 채용하는 법이 없다.
같이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나 누군가의 추천을 통해 인맥으로만 구성된다는 것이다. 언뜻 공정하지 않고 불합리하게 보이지만 한 번은 모를까 실력이 없으면 그다음엔 이 바닥에 발도 붙이지 못한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이다.
“철저하게 실력으로만 살아남을 수 있는 진정한 프로의 세계죠. 나는 이 바닥의 이런 속성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요. 생각해보세요. 서른이 훌쩍 넘은 동양 여자가, 영어도 잘 못하고, 더군다나 핸디캡까지 있는 내가 무엇으로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었겠어요? 일 잘하는 거 빼고 미인도 아니고 날씬하지도 않아요(웃음).”
상처받은 명랑소녀
그녀는 두 살 무렵, 백신 접종 부작용으로 소아마비를 앓았다. 두 다리가 굳어진 어린 딸을 등에 업고 어머니는 매일같이 침을 맞히러 다녔고 찜질을 해주었다. 어머니의 정성으로 3년 만에 오른쪽 다리는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끝내 왼쪽 다리에는 장애가 남게 됐다.
하지만 이씨는 명랑소녀였다. 무역업을 하던 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고 쾌활한 성격에 친구도 많았다. 학창 시절 내내 오락부장을 도맡아 할 정도였다. 그러나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
“우리 가족은 정말 빈털터리가 됐어요. 아빠 치료비로 다 쓰고 쌀을 살 돈조차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 집이 망하니까 친구들이 다 떠나버리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마음을 다 주지 말아야 하는구나. 현실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거죠.”
미대에 진학하는 것이 꿈이었지만 형편상 포기해야 했다. 대신 택한 것이 메이크업 학원. 그림에 소질이 있었고 영화를 좋아한 이씨는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의 한국 사회는 장애를 가진 그녀에게 냉혹하기 그지없었다.
“학원을 수료하고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메이크업을 해주는 직원으로 취직이 됐어요. 일을 잘하고있는데 일주일 만에 사무실에서 호출이 오더군요. 다리가 왜 그러냐고 묻기에 소아마비를 앓아서 그렇다고 하니까 봉투 하나 내밀면서 다시 연락하겠다고 하더라고요. 한마디로 짤린 거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요. 이후 계속 같은 일이 반복됐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권리
딸이 상처받는 것을 보다 못한 어머니는 과감히 미국 이민을 선택했다. 1993년, 이씨는 그렇게 눈물을 머금고 한국을 떠나왔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그녀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생계 때문에 공인회계사 사무실에 취직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뭔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신문을 뒤적이다가 패턴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기술을 가르쳐주고 취직도 시켜준다고 하길래 그 길로 등록을 했죠. 낮에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밤에는 패턴을 배웠어요.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더라고요.”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신명나게 하는지, 이씨는 그때 깨달았다고 한다. 실력도 남달라 패턴을 배운 지 6개월 만에 취직이 됐다. 이후 7년간 그녀는 자바(LA 의류산업 중심지)에서 일하면서 고액 연봉을 받는, 소위 잘나가는 패턴사로 자리 잡게 된다.
“자바에서 일하는 동안 남편을 만나 결혼도 하고, 딸아이도 낳고 점점 생활이 안정되어갔어요. 그런데 어느 해 딸이 아파서 잠시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그때 조그만 신문광고를 보게 됐어요. 할리우드의 한 숍에서 특수의상 패턴사를 구한다는 광고였는데 그게 제 마음을 흔들어놓은 거예요.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어요.”
이씨는 다시 자바로 돌아가지 않았고, 시급 12달러를 받으며 밑바닥 영화 일을 시작하게 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이씨의 선택을 두고 주위에서는 걱정과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때 힘을 준 사람이 바로 남편이었다. 남편은 자신이 투잡, 쓰리잡이라도 뛸 테니 원하는 것을 하라며 용기를 줬다.
“살다 보면 운명적인 선택의 순간이 오는 거 같아요. 나중에 알았는데 할리우드 쪽에서 신문에 구인광고를 내는 일은 전무후무한 일이었어요. 그런데 광고가 나왔고 내가 그걸 본 거예요. 나는 그때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물론 한동안은 돈이없어 정말 고생을 했죠. 딸아이에게 정부에서 나오는 공짜 분유를 먹여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우리 가족은 행복했어요. 남편과 함께 지금도 이야기해요. ‘우리 그때 진짜 재미있고 행복했지’라고요.”
슈퍼맨을 만드는 여자
지나고 보니 한국에서의 상처도 자바에서의 7년도, 버릴 것 없는 시간들이었다. 강인한 정신력과 빈틈없는 실력으로 무장된 바네사 리는 할리우드에서 깐깐하기로 이름난 넘버원 아티스트들의 애정을 한 몸에 받기에 충분했다.
특수분장계의 대부 릭베이커, FX 디자이너 패트릭 타투포우로스, 특수효과의 거장 스티브왕, 완벽주의 의상감독 콜린 앳우드…. 할리우드를 쥐락펴락하는 이들은 모두 바네사 리의 스승이자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동료이며 친구다.
창의력은 기본, 사고의 유연성과 순발력은 패브리케이터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는다. 보이는 모든 것이 의상 재료가 될수 있고 부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물을 볼 때 허투루 넘기는 것이 없다.
특수한 원단은 통달하고 있어야 하고, 각종 신소재에 대한 세미나가 있으면 찾아다니며 공부해야 한다. 슈퍼히어로의 전투 의상을 하도 많이 만들어 전쟁이나 무기에 대해 박사가 됐다. 우주선과 우주복에 대해 연구하다 보니 나사(NASA)에서도 일할 수 있을 정도로 해박해졌다. 실제로 에서 그녀가 만든 우주복을 보고 나사에서 연락이 온 적이 있다고.
의상을 맡았을 때, 팔꿈치 장식을 위해 해체한 스키 부츠가 스무 개가 넘고, 샤키 오닐이 입을 라이트 의상에 사용할 특수 라이트테이프를 찾기 위해 전 세계 전기 회사의 신제품들을 뒤졌다. 늘 화학약품을 다루다 보니 스태프와 배우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그 방면으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이 일은 정말 좋아서 미치지 않고는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스포트라이트는 없어요. 그렇게 치열하게 일하고 고작 엔딩크레디트에 수백 명의 스태프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릴 뿐이죠. 아카데미상을 받을 수도 있냐고 묻는데 ‘패브리케이터’ 카테고리는 없어요. 특수효과 부문에 속해 있으니까요. 돈이요? 물론 적지 않게 받죠. 메이저 제작사가 아니면 의뢰를 못하니까요. 하지만 그것도 천문학적인 돈이 오가는 할리우드 제작 환경 안에서 보면 그렇게 대우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에요. 돈을 벌려면 배우가 되는 게 낫죠(웃음).”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비하인드스토리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숨은 즐거움 중 하나이지만 그야말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그들의 사생활 보장은 스태프들의 프로페셔널 정신이기도하다.
유명 배우들과 찍은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하는 사람도 많은데 이럴 때는 좀 난감하다고. 이씨는 여간해서는 배우들과 함께 사진을 찍지 않기 때문이다. 함께 작업하는 ‘동료’로서 동등한 관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폼’ 빠지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다. 그래도 좋은 이야기야 어떻겠냐며 하나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친절한 바네사 리.
“게리 올드만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네요. 개인적으로는 게리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내가 만든 팻 슈트(Fat Suit)에 완전히 감동을 받아 먼저 같이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배우와 찍은 유일한 사진이에요(웃음). 딸아이가 연기자가 되고 싶어 한다고 하자 조언을 해주고 싶으니 꼭 촬영장에 데려오라고 할 정도로 자상한 분이에요. 또 배우 매튜 매커트니에게 직접 소개를 해주어서 그가 주연을 맡는 영화 에 참여하게 됐어요.”
숙취 때문에 컨디션이 엉망인 상태에서도 남다른 미모를 뽐내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막내 스태프에게도 깍듯이 인사를 건네던 안소니 홉킨스는 영화 에서 만났는데 무거운 슈트를 입고도 불평 한 번 하지 않던 영국 신사였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그녀가 애써 만든 전자회로 슈트가 아쉽게도 통편집되어 세상에 공개되지 못하자 직접 텐트로 찾아와 아쉬움을 표했다고.
보디슈트를 만들려면 배우들의 정확한 수치가 필요하다면서 나머지는 상상에 맡기겠다는 유쾌한 그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조니 뎁의 보디슈트를 언젠가는 꼭 만들고 말겠다는 사심(?)도 드러낸다.
꿈의 공장 ‘슈퍼슈트팩토리’
올해는 바네사 리에게 조금 특별한 해였다. 할리우드에서 일한 지 13년 만에 드디어 자신의 스튜디오를 갖게 된 것이다. 이름하여 ‘슈퍼슈트팩토리(Super Suit Factory)’. 이제 회사의 대표로서 제작사와 FX 숍을 상대하게 되었다. 영화사와 직접 계약을 하기도 한다. 개인으로 활동할 때보다 입지가 훨씬 굳어진 셈이다. 물론 몸값도 뛰었다.
또 하나 강동원 주연의 한국 영화 을 맡게 된 것도 그렇다. 한국 영화가 특수의상에 큰돈을 투자하기란 쉽지 않은데 특별히 은 주인공의 전투복을 위해 할리우드 최고 제작자를 찾았고 이씨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은 아마도 나에게 특별한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워낙 좋아하던 애니메이션이라 잘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 최초의 한국 영화라는 점도 큰 의미가 있어요. 한국은 나에게 아픈 기억도 주었지만 솔직히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잘할 수 있었던 부분이 있거든요. 한국인의 근성과 기술은 미국인들이 못 따라와요. 언젠가 나의 경력과 노하우가 한국 영화계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의 팬들에게도 깜짝 선물이 될 만큼, 최선을 다했으니 기대해도 좋습니다.”
한국 배우와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이 늘어나는 만큼, 그녀의 역할도 주목된다. 실제로 이씨는 10년지기이기도 한 할리우드 특수분장 및 헤어 전문가 다이아나 최씨와 함께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언제 그 그림이 완성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원하고 있다는 거지요. 지금은 다이아나도 저도 너무 일이 많아서 스튜디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때가 되면 가능하지 않겠어요? 오늘을 후회 없이 살다 보면 어느덧 내가 바라던 내 일이 되어 있더라고요. 너무 영화 같은 소리만 한다고요? 글쎄요… 뭐 여긴 할리우드니까요!(웃음)”
지난 달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재미있고 유쾌한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주제는 성 평등이었다. 깊이 들어가면 그리 유쾌할 수만은 없는 남녀의 차별 문제도 제기되었다. 그래도 시종일관 분위기가 밝았던 건 사회를 본 최광기 여사 덕인 것 같다. 본인의 이름으로도 큰 웃음을 주었고 태어났을 당시 자매들의 출생신고가 아무렇게나 되었는데 딱 하나 아들을 낳자 그날로 출생신고를 하셨던 아버지를 예로 들며 태어나자마자 차별을 받았다고 고백해 청중을 웃겼다.
딸만 셋이었는데도 지극한 사랑을 주셨던 아버지 덕에 필자는 남녀차별을 전혀 모르고 자랐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과거에는 아들과 딸의 차별이 아주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밝게 꾸며진 콘서트홀은 왠지 즐거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미국인이지만 이미 대한 미국인이라 불리는 '타일러'가 패널로 나와 특히 기대가 되었다. '타일러'는 요즘 모 방송의 '비정상회담' 원년 멤버로 나오고 '문제적 남자'라는 프로그램에서 대단한 뇌섹남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친정엄마와 필자는 타일러의 열성팬이다.
최광기 씨의 사회로 여성가족부 정현백 장관과 방송인 타일러, 개그맨 황영진, 좋은 연애연구소 김지윤 소장이 무대에 자리를 잡았다. 먼저 어린 시절의 고정관념이 남녀의 성차별에 큰 영향을 준다는 얘기로 시작했다. 남녀의 역할은 따로 있다는 식으로, 남자아이에게 “남자가 울면 어떡하니?”라고 하고 여자아이에게는 “여자가 칠칠치 못하게”라는 표현을 무의식으로 써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무심결에 한 말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각인되어 결국 성차별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겼다는 설명이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약간의 걱정이 생겼다. 며칠 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세 살짜리 손자가 여섯 살짜리 손녀에게 용감한 포즈를 취하며 "누나는 내가 보호해줄 거야!"라고 했다. 아기가 한 그 말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마구 칭찬해주며 "그래, 누나는 여자니까 남자가 보호해줘야 해" 했는데 성 평등에 어긋나는 표현이었을까 우려가 됐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고정관념이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 평등으로 완성되는 나라다운 나라'의 주제로 진행된 토크쇼는 대한민국 남녀가 바라는 성 평등은 어떤 모습일지, 왜 지금 성 평등을 주장하는지에 대해 담론했다.
20~30세대 2000명에게 다시 태어나 성별을 바꾸고 싶은지 묻는 설문조사에서 남자는 37%, 여자는 무려 49.5%가 그렇다고 했다. 여자가 느끼는 성차별이 더 크다는 의미다. 정현백 장관은 50년 이상 지속되어온 호주제에서의 폐해와 똑똑한 여 제자가 취업할 때 받았던 불이익을 예로 들어 말해줬다. 그러나 새 정부도 여성 장관 기용 30% 공약을 지키는 등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의 바람을 잘 받아들이고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남녀의 역할을 정하지 않고 잘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된다는 해결책도 나왔다. 형광등은 꼭 남자가 갈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키가 좀 더 큰 사람이 하면 된다는 의견에 모두 찬성했다. 김지윤 소장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역할을 정해야지 성에 따라서 할 일이 정해져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도 먼저 귀가한 사람이 식사 준비를 하면 되고 덜 피곤한 사람이 청소를 해야 한다는 의견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
세계적으로도 성 평등 운동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UN이 추진하는 연대운동인 ‘He for She’는 성 평등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글로벌 캠페인이다. '화이트 리본'은 사라 제시카 파커와 카메론 디아즈 등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이 참여해 화제가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45명의 남성이 성 평등을 실천하는 '성 평등 보이즈'라는 모임이 있다.
두 시간의 토크쇼가 마무리되면서 패널들에게 던져진 마지막 질문은 '내가 꿈꾸는 성 평등 대한민국은?'이었다. 정현백 장관은 '소통하고 이해하는 성숙한 민주 사회'라고 했고 김지윤 소장은 '누구나 원한다면 안전하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나라'라 했다. 필자가 좋아하는 대한미국인 타일러는 '아직 멀었다'라고 따끔하게 현실을 꼬집었다.
두렵지 않은 암이 없겠지만, 그중 대장암은 중년 남성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암 중 하나다. 지난해 국립암센터 연구팀은 대장암, 위암, 폐암, 간암순으로 발병 순위가 결정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1위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던 위암을 대장암이 역전한 것이다. 올해 통계청이 내놓은 암으로 인한 사망률 조사에서도 대장암은 위암을 넘어섰다. 발병률도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높다. 중년 남성에게 대장암은 왜 위험한지, 또 어떤 대처가 필요한지 강동경희대병원 소화기외과 최성일(崔成一· 47) 교수를 통해 알아봤다.
“만약 배 안에서 자신이 걸려야 하는 암을 하나 골라야 한다면 어떤 암을 고르시겠어요. 저는 주저하지 않고 대장암을 고를 겁니다.”
최성일 교수가 재미있는 질문으로 운을 뗀다. 병에 대해 잘 모르는 입장에선 고르기는커녕 상상도 하기 싫은데 최 교수는 자신 있게 대장암을 선택했다. 아무리 수술을 잘하는 전문의라도 자신을 직접 수술할 수는 없다.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대장암은 간암 췌장암, 위암, 담낭암 등 다른 암에 비해 비교적 착한 편이에요. 못된 암들과는 좀 달라요. 암으로 발전하는 속도도 느리고, 다른 장기에 전이되는 속도도 늦어요. 잘 대비하면 예방도 가능하고요. 그러니 암 중에는 양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통계자료를 보면 대장암이 가장 무서운 암 같은데 의외의 설명이다.
술자리가 대장암을 부른다
대장암의 발병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흡연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서구식으로 변한 식습관이다. 과거 한국인들은 식이섬유가 풍부한 채소를 많이 먹었다. 육류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았다. 그러나 경제발전과 서구식 음식문화가 유입되면서 육류의 비중이 급격하게 높아졌다. 최 교수는 이러한 변화에 원인이 있다고 설명한다.
“최근 육류 소비도 늘었고 고지방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어요. 이러한 음식의 대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독성 물질이 대장암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서구화된 식습관이 문제가 되는 것은 변이 대장에 머무는 시간과 관계가 있어요. 사람의 변에는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문제는 식이섬유가 많은 식생활로 배변이 자주 이뤄지던 과거와 달리 육식 중심의 식사가 이뤄지면서 변이 몸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것이에요. 대장의 점막이 발암 물질과 접촉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발병도 잦아진 거죠.”
최 교수는 여성에 비해 남성의 대장암 발병이 높은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올 초 국립암센터가 발간한 자료 을 살펴보면 남자의 대장암 발생률이 10만 명당 63.8명으로 여성(42.5명)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다른 암종과 비교해도 가장 차이가 많이 났다.
“남성은 술자리가 잦은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요. 회사 일을 하다 보면 회식이나 술자리가 많죠. 사실 술은 대장암과 직접적인 큰 관계는 없어요. 같이 먹는 음식들이 육류 중심의 탄 음식이라 문제가 돼요.”
대장암의 원인은 용종
대장암 발병의 중심에는 용종이 있다. 식생활이나 흡연 등이 간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면 직접적인 원인은 용종이다. 최 교수는 용종으로 대장암 발병 가능성도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용종은 대장에서 흔히 발견되는 작은 혹이에요. 용종 중에서 선종으로 분류되는 것이 암으로 발전합니다. 작은 선종이 1cm 정도까지 자라는 데는 약 3년이 걸려요. 2cm가 되는 데는 3~4년이 걸리고요. 암으로 발전할 때까지 대략 5년 이상 걸리는 셈이죠. 재미있는 건 용종 하나에서 대장암 발병 확률을 대략 1%로 봐요. 2개가 생겼다면 2%. 내시경을 통해 용종을 떼어냈다면 다시 0%가 되고요. 물론 크기나 모양도 중요하죠.”
대장암 발병에 용종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가족성용종증(家族性茸腫症)이란 병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결장에 무수히 많은 용종이 돋아나는 이 희귀병은 수많은 용종으로 인해 대장암 발병률 100%로 판단한다. 유방암 발병 가능성이 높은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어 가슴의 예방적 절제를 선택한 할리우드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사례처럼, 이 병이 발병할 것으로 판단되는 환자 역시 20대 성인이 되면 결장을 모두 제거한다. 예방적 절제를 하는 셈이다.
최 교수가 선택할 만한 암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기적으로 대장내시경을 통해 용종 발생 여부를 확인하면 큰 문제없이 대장암 발병을 막을 수 있다. 또 자라는 속도도 느려 대장내시경 검사 간격 동안 손을 못 쓸 정도로 자랄 위험도 거의 없다. 암으로 진행된다 해도 수술, 항암 치료로 치료가 잘 되는 암종이다. 전이암도 적극적 치료로 완치되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 대장암 환자를 쉽게 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만큼 생존율이 높기 때문이에요. 위험한 암은 사망률이 높아 환자를 만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죠. 다만 문제는 대장내시경 검사를 차일피일 미루거나 첫 검사 결과가 좋다고 안심하면서 10년, 15년 동안 다시 검사를 받지 않는 분들입니다.”
실제로 암종별 국가암검진수검률 자료를 살펴보면 다른 암 검진을 받은 국민은 40% 전후를 기록했지만, 대장암 검진 수검률은 26% 전후밖에 안 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장내시경 검진이 번거로운 것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다. 금식은 물론이고 장을 깨끗하게 비워내기 위해 약을 먹고 밤새 화장실을 들락날락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장내시경의 문제 중 하나는 육안으로 이뤄지다 보니 검사하는 의사의 숙련도나 용종의 위치에 따라 간혹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보안 카메라에도 사각지대가 있는 것처럼 장의 주름 사이에 용종이 숨어 있으면 찾기 어렵다. 최소 5년마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하는 이유다.
자각증상 느끼면 이미 늦어
혹시 자가진단을 통해 암 발병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최 교수는 “자가진단이 가능할 정도가 되면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고 경고한다.
“ㄷ자를 엎어놓은 것처럼 생긴 결장 중에서 환자의 오른쪽에 위치한 상행결장은 항문에서 거리가 멀어 출혈이 생겨도 변에서 확인이 어렵습니다. 대신 변 색깔이 검게 변하죠. 심한 경우 배를 만지면 덩어리 같은 것이 만져지기도 합니다. 반대편의 하행결장은 상대적으로 좁고 항문과 가깝기 때문에 암 발병으로 인해 혈변이 생기거나 변이 가늘어집니다. 심한 경우 장이 막히기도 하죠. 이에 반해 중간 부분인 횡행결장에는 암이 발병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치료는 당연히 암을 잘라내는 절제술이 첫 번째로 선택된다. 암의 위치나 크기에 따라 결장을 절제하는데 결장뿐 아니라 주변 림프절도 완벽히 제거해야만 재발률을 낮출 수 있다. 결장을 절제하면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환자가 많지만 최 교수는 “수술한 사실도 까먹을 정도”로 큰 후유증은 없다고 말한다. 다만 대장을 통한 수분 흡수가 이뤄지지 않아 변이 묽어진다.
그러나 결장이 아닌 직장에 암이 발생하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특히 그 위치가 항문과 가까운 자리라면 더 심각해진다. 항문을 제거하고 복부에 인공항문을 달아야 하기 때문에 삶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의료진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가능하면 항문을 살리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 결과 최근에는 항문까지 잃는 환자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고 최 교수는 설명한다.
수술 후에는 항암 치료가 진행된다. 결장에 생긴 대장암은 방사선 치료를 하지 않고 항암제를 통한 항암화학요법으로 시행한다. 직장에는 방사선 치료를 하기도 한다. 항암제를 통한 화학적 치료에 대해 두려워하는 환자가 많은데, 최 교수는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고민이 탈모입니다. 항암제를 쓰면 머리 빠질까봐 걱정을 많이 합니다. 심지어 치료를 거부하는 분도 있어요. 그러나 대장암 치료와 재발 방지에 쓰이는 항암제는 탈모가 발생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아요. 항암 치료는 수술 후에도 몸 안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수술 후 보조적 항암치료는 환자의 재발률을 낮추는 효과가 있어요. 완치가 어려운 환자라도 항암 치료는 계속 받는 것이 좋습니다. 암의 진행을 늦추기도 하고, 의료진과의 계속 만날 수 있어 장 막힘이나 천공 등 중대한 합병증 발생을 초기에 알 수 있어요. 환자가 불편하게 느끼는 부분도 바로바로 해결할 수 있고요.”
최 교수는 마지막으로 민간요법이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맹신해 치료를 더 어렵게 만드는 일이 없기를 당부했다. “암 질환에 대한 오해로 치료를 거부하고 근거 없는 시술을 하는 환자도 있어요. 그러다 치료시기를 영영 놓칠 수도 있습니다. 암 수술을 했다고 갑작스럽게 육식을 끊을 필요는 없어요. 육식에도 필요한 영양소가 있으니까요. 또 운동이나 건강한 식단만큼 중요한 것은 정기적인 대장내시경 검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