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위해 사는 것은 쉽다. 오히려 나를 위해 사는 게 더 힘들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나를 위해 살지 않으면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이제라도 시작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美베이비부머들의 ‘나를 사랑하는 길’을 들여다봤다.
정리 남진우 뉴욕주재기자
◇ 작가, 캐런 마이잔 밀러 : 정원 가꾸기는 나의 천직
20년 전 나는 25분 단위로 수당이 책정되던 직업을 포기했다. 그때 40세였으나 완전 기진맥진했다. 동료들이 왜 그리 급하게 현실에서 벗어나려 하냐고 물었을 때 나는 모험적인 인생 2막으로 과감히 뛰어들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새 남편과 함께 서부로 와서 유서는 깊지만 버려진 헐값의 집을 사는 데 저축한 돈을 몽땅 털어넣었다. L.A. 교외에 있는, 80년 전에 조성돼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반 에이커(약 2023㎡) 규모의 일본식 정원이 있는 집이었다. 악취가 나는 연못과 무성한 잡초와 산더미 같은 낙엽이 가득한 정원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상적인 곳이라는 확신이 섰다.
남편은 좋아하는 우주공학 관련 일을 계속할 수 있었지만 이사로 내 진로는 막혀버렸다. 1년간 이력서를 보내고 인터뷰를 하면서 허송세월했다. 학교로 돌아가야 하나? 교사나 간호사 자격증을 따야 하나? 시간을 현명하게 쓰고 싶었지만 언제 새로운 생활이 시작될지 고민이었다.
공백이 길어지면서 대답은 분명해졌다. 바로 여기가 시작이란 것을. 수년간 땀내 나는 밀짚모자를 쓰고 낡은 바지를 입고 무릎 굽혀 작업을 하면서 그 생활을 좋아하게 된 것을 깨달았다. 아무런 경험이 없었지만 남는 시간에 머리를 비우고 해왔던 정원 가꾸기가 천직이었던 것이다. 정원 가꾸기로 하루가 가고 수년을 보내면서 이보다 값진 것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은 땅 지킴이로 인생 2막의 꽃을 피우고 있다. 정원의 시간에 맞춰 살아가다 보니 잡초가 연못과 오솔길로 나를 인도하고 가을에는 낙엽이 나를 호출한다. 노력해도 금전적인 보상은 없지만 정원은 가장 이상적인 일자리다. 고요하고 끈기 있고 믿음직하며 창조적인 일자리다. 내가 실수를 해도 그들 스스로 바로잡는다.
부족한 내가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아무도 내 자리를 탐내지 않는다. 남편 혼자 버는 돈으로 살지만 적은 돈으로도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많은 것을 탐하지 않으며 만족스럽고 행복한 결혼생활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정원에서 자라나는 것은 풀만이 아니다. 42세에 첫아기를 낳고 50세에 작가가 되었으며 선종 불교의 수련을 쌓아 그 결실도 얻었다. 계절의 느린 반복 속에 야망과 후회에서 벗어나 시간에 쫓기지 않는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됐다. 환갑을 자축하면서 세상을 다시 볼 수 있게 해준 정원에 감사하며 항상 정원에서 살아갈 작정이다.
◇ 배우, 린다 카터 : 스컬, 잔잔한 강물 위에서의 명상
스컬(좌우의 노를 한 사람이 젓는 가벼운 보트)은 배우기는 쉽지만 마스터하기는 매우 어렵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스포츠를 배우는 것 자체가 즐겁다. 워싱턴 DC의 포토맥 강은 공연 연습을 하는 데 이상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나는 공연을 위한 신곡을 준비할 때면 스컬을 하면서 가사와 리듬을 내 몸속으로 완전 체화시킨다.
처음에 친구가 스컬을 권유했을 때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포토맥 강을 따라 사이클링을 하다가 조정을 하는 모습에 끌려 요트클럽을 찾게 됐고 바로 좋아하게 됐다.
워싱턴 DC에 사는 사람이면 포토맥 강이 바로 옆에 있어서 쉽게 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신체단련에도 좋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강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을 것이다. 보트가 좁고 길어 균형 잡기가 힘들며 뒤집어지면 올라오기 어려운 것이 최악이다.
어느 날은 스컬을 하다가 자살한 여자 시체를 발견하는 사건도 있었다. 그때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가족들은 행방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별로 무섭지 않았고 장례식에 참석해 조사(弔辭)도 낭독했다.
스컬을 시작한 2008년부터는 공연을 위한 신곡 연습을 보트를 타면서 했다. 아이팟만 있으면 연습을 할 수 있다. 바람이 없는 잔잔한 강물 위로 노를 저을 때는 물과 혼연일체가 되고 명상에 빠지기도 한다.
◇ 여행작가, 키티 빈 얀세이 : 멕시코 산 미구엘에서의 일주일
나는 데킬라 술잔을 들고 예술가들의 멕시코 메카에서 오랜 친구들과 건배를 하고 있다. 나의 동반자 배리와 친구 론니, 제인과 함께 이국적인 꽃들이 활짝 핀 파티오와 벽난로가 있는 세 개의 마스터 스위트룸을 갖춘 기막힌 빌라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산 미구엘의 임대 방식이 다 그렇듯, 일주간 반나절씩 일하는 가사도우미도 있다. 구릉진 자갈 깔린 길로 10분 정도를 걸어 다채로운 색상의 집을 지나면 고딕양식의 파로키아 성당과 광장이 있는 도심에 도착한다.
현지 주민과 관광객들은 잘 정리된 월계수 아래 벤치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커피를 마시거나 무료로 와이파이를 이용한다. 낮에는 어린 학생들이 광장을 돌며 서로를 쫓아가기도 하고 저녁에는 연인들을 유혹하는 마리아치 세레나데가 흘러나온다. 나는 제인과 함께 노천시장에서 요가 수업과 쇼핑을 즐기고 부티크, 공방, 갤러리 등을 돌아본다. 식당에서는 채식주의자용 요리와 스시 그리고 군침 돌게 하는 멕시코 요리가 나온다.
예정된 일주일이 끝날 무렵 론니는 임대 아파트를 찾아 나섰고 나는 배리를 이끌고 부동산소개소로 갔다. 애틀랜타에서 만났던 한 여인이 산 미구엘은 마술의 소용돌이라고 묘사했는데 나는 왜 이제야 알았을까?
◇ 가수, 달린 러브 : 삶의 전부가 된 킥복싱
딸 로즈가 대단한 킥복싱 수업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미친 짓이라 생각했다. 킥복싱 동작을 배운 딸이 나와 몇몇 부인들에게 킥복싱을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그 후 6년이 지나 76세가 된 나에게 킥복싱은 삶의 전부가 됐다. 운동과 노래는 젊은 시절 가장 중요한 일상이었다. 나는 항상 무언가 활기찬 것을 원했고 아버지가 목사로 있었던 샌안토니오의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했다.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우리 합창단이 할리우드 볼에서 냇 킹 콜과 공연을 한 것은 위대한 순간이었다.
L.A.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야구와 배구를 했다. 1958년에는 블로섬스 걸그룹에 합류했고 몇 년 후 필 스펙터와 계약을 하면서 ‘He’s a Rebel’로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마침내 싱글로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도 제인 폰다의 비디오를 보면서 운동을 계속했지만 너무 많은 당분을 먹어 체중이 자꾸 불었다. 먹으면 운동을 해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 상황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킥복싱이 너무 힘들었지만 팔, 다리, 허리 등에 너무 좋았다. 남편이 딸의 교실에 데려다줬고 수업이 끝난 후 차를 탈 때는 눈썹 이외의 모든 곳이 쑤셨다. 그러나 점차 익숙해졌고 내 목표는 전보다 더 잘하는 것이었다. 지금 딸 교실의 수강생은 30명으로 늘었고 그중 내가 가장 나이가 많다. 그래서 수강생들은 “저 늙은이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라고 말하곤 한다.
일주일에 5일, 오전 5시에서 한 시간 동안 킥복싱을 하지만 수업은 하루하루가 다르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다리 근육운동을 할 때는 서로 도와준다. 이제는 하나의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서로 기합을 넣으면서 동료애를 느낀다. 몸매를 유지하는 것은 모든 면에서 도움이 된다. 특히 공연을 할 때 그렇다.
이제 나는 더 많은 에너지로 충만해졌고 15파운드나 빠졌다. 하지만 때로는 승용차에서 넘어지고 정크푸드를 먹기도 한다. 이럴 때 꿈을 되새긴다. 물과 비타민을 섭취하고 운동을 하러 간다. 우리 몸은 인생이다. 몸을 돌봐야 마음이 몸과 함께 작동한다. 무대에서 노래할 때처럼. 나는 내 느낌을 청중들도 느낄 수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한자리에서 노래하기보다는 청중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노래를 한다.
영화가 중년 독신 남녀를 그려내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추릴 수 있다. 지나치게 낭만적이거나 또는 지나치게 뒤틀려 있거나.
김유준 영화 전문 프리랜서
나 같은 할리우드 영화들은 중년 독신들의 있을 법하지 않은 사랑을 있을 법하게 그려낸 대표적인 영화들. 현실에서는 남성이 멜 깁슨이나 조지 클루니처럼 ‘멋지고 튼튼하게’ 늙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중년 독신 여성이 헬렌 헌트나 미셸 파이퍼처럼 아름답고 매력적이기도 불가능에 가깝다.
앞서 언급한 두 영화는 그 힘든 것들을 가볍게 해낸다. 중년들의 세상에서는 ‘노티’가 으레 공기처럼 떠다니지만 그들에게서는 그 비슷한 것조차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의 외로운 신세를 한탄할 때마저 위트 있고 경쾌하다. 그런 그들은 영화 내내 활기찬 모습으로 중년의 사랑을 흥미롭고 유머러스하게 이끌어나간다.
미국의 낸시 마이어스는 이 카테고리(중년 독신들의 사랑)를 대표할 만한 감독. 2000년의 에서 시작해 2003년의 과 2009년의 를 거쳐 최근의 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중년들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그득 차 있다. 때로는 설정들이 터무니없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사랑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매혹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반면 스티브 매퀸 감독이 거머쥔 (2011)의 카메라는 혹독하다. 영화 속에서 브랜든(마이클 패스벤더)은 겉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는 전문직 중년 독신 남성.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그의 마음은 결핍으로 구멍이 뻥뻥 뚫려 있다. 낸시 마이어스는 영화 에서 “내 삶에 뚫린 구멍을 메우고 싶다”는 주인공 벤(로버트 드니로)에게 인터넷 쇼핑몰 회사 인턴으로 지원하게 만들지만, 스티브 매퀸 감독은 그와 같은 낭만적 상상 따위는 애초부터 관심에 없다.
브랜든이 빈 곳을 채우려 집착하는 것은 동물적 성이다. 광적인 포르노 영상 수집에 음란채팅에 성 매매에 이르기까지… 섹스를 갈구하는 그의 발걸음, 섹스와 마주하는 그의 몸부림은 쾌락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자기학대에 가깝다.
브랜든의 여동생 씨씨(캐리 멀리건) 또한 다르지 않다. 다만, 스스로는 결코 채우지 못하는 마음속 어딘가를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기댄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씨씨는 그러면서 말한다.
“우리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야.”
영상을 지켜보는 우리 또한 그녀가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님을 안다.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점도 안다. 그럼에도 영화는 그녀의 삶을 녹록하게 풀어줄 생각이 없다. 스티븐 매퀸의 차가운 영상을 좇다 보면 브랜든과 씨씨가 평생 구원받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릴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그리고 남매의 삶이 곧 우리 것처럼 느껴져 흠칫 뒤를 돌아다보게 된다. 영국 국영방송 BBC가 선정한 21세기 위대한 영화 100편 중 한 편.
노파심에서 덧붙이면 감독 스티브 매퀸은 올드 팬들이 로 기억하는 그 불세출의 명배우가 아니다(이미 세상을 떴으니 그럴 리 없다). 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품에 안은, 최근 미국 영화계가 가장 주목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한 가지만 더. 독일 출신으로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는 시리즈에서 매그니토 역을 연기한 바로 그 배우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브랜든을 연기해 베스니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최근(9월 29일)에 개봉된 프랑스 영화 은 좀 독특하다. ‘지나치게 낭만적이거나 지나치게 뒤틀려 있다’는 두 가지 시선의 가운데쯤 위치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중년 독신을 다룬 영화들 가운데 가장 추천하고 싶은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철학 교사 나탈리(이자벨 위페르)가 맞닥뜨리는 불행은 우리 또한 종종 겪는 그런 종류.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고, 어머니를 여의며, 아이들과의 사이가 점점 더 멀어진다. 경력 쪽에서도 마찬가지. 예전 같으면 가볍게 해치웠을 일들이 점점 더 힘겨워지다가, 끝내 오랫동안 자부심을 갖고 집필해온 철학 총서를 유행에 맞게 바꾸는 작업에서도 밀리고 만다.
나탈리가 우리와 다른 점이라면 그녀가 이 별별 종류의 불행을 거의 동시에 맞닥뜨린다는 점. 가장 충격적인 것은 바람이 들통난 뒤의 남편 태도. “그냥 좀 모른 척하면 안 돼?” 숫제 적반하장 수준이다. 이제 나탈리의 신세는 늙고 뚱뚱해서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는 어머니의 고양이 ‘판도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경탄할 만한 것은 그런 불행을 받아들이는 나탈리의 자세. 그녀는 통곡하지 않는다. 몸부림치지도 않는다. 억울할 법도 하건만, 억울해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모든 것들을 껴안는다.
우리가 불행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그녀는 변화라고 여긴다. 남편과 함께 들었던 브람스와 슈만이 지겨워지고, 어린 제자의 차에서 들려오는 포크송이 좋게 느껴지는 것. 중년의 시점에서 찾아온 불행들이 그런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그것이 그녀의 인식이다. 그러면서 말한다.
“변화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미아 한센 러브 감독의 영상은 달빛처럼 잔잔하게 흘러가면서도 단단한 통찰력을 더불어 지니고 있다. 주연을 맡은 이자벨 위페르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프랑스에서는 ‘국민 여배우’로 통하는 베테랑 여배우. 이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좋은 연기를 펼쳐 보인다. 프랑스 영화의 깊이를 기억하는 팬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다.
우리나라 영화 가운데에서는 2014년 발표된 를 꼽을 만하다. 나이든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유독 야멸찬 것이 우리 영화(또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 특징 중 하나이지만, 강제규 감독의 이 영화만은 경우가 다르다. 성칠(박근형)이 금님(윤여정)에게 반지를 끼워주며 “약속… 우리 둘 중에 누가 먼저 죽든, 울지 맙시다. 어차피 잠깐 떨어져 있는 거니까” 할 때는 가슴이 뭉클해져온다. 물론 그조차 미국 영화 이 원작이라는 점이 함정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우디 앨런의 영화는 철저히 우디의, 우디에 의한, 우디를 위한 영화다. 홍상수가 늘 비슷비슷한 자기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고 그런 줄 알면서도 팬들이 그의 새 영화를 기다리듯 우디 앨런도 그렇다. ‘관객주의(위주)’가 아닌 ‘감독주의(위주)’ 영화인데도 팬들은 늘 그의 영화를 기다린다.
이번에 개봉한 는 우디 앨런의 47번째 영화이고, 14번째로 칸 영화제에 초청된 영화다. 정말 꾸준한 창작욕이고 꾸준한 수준작이다. 전반기 작품이 삶에 대한 야유와 조롱과 도전이었다면, 후반기 작품들에서는 인생에 대한 깊은 관조가 느껴진다. 영화를 보며 박인환의 시 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영화는 193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평소 할리우드를 동경하던 뉴욕 청년 바비(제시 아이젠버그)는 영화사 거물인 삼촌 필(스티브 카렐)을 찾아 LA로 온다. 필은 바비에게 할리우드 관광 가이드로 자신의 비서인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소개해주고 바비는 그녀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한다.
둘은 할리우드를 누비고 다니며 1930년대를 풍미하던 유명 배우들과 그들의 저택들을 구경한다. 이 장면들에서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전작인 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전작이 ‘시간 이동’이라면 이 작품은 ‘공간 이동’이다. 지나간 시절과 인물들을 만나는 게 우디의 새로운 취미가 된 셈이다. 회고 취미가 생긴다는 건 늙는다는 증거다.
보니에게 금지된 사랑의 상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영화의 호흡은 빨라진다. 더구나 그 상대가 바로 삼촌 필이라니. 보니는 필을 선택하고 바비는 할리우드 이면의 추악함에 대한 환멸과 이별의 충격으로 뉴욕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형의 도움으로 나이트클럽 매니저가 되고 새로운 상류사회를 맛본다.
특유의 사교성으로 큰 성공을 거둔 바비는 비로소 그들만의 리그인 상류사회 ‘카페 소사이어티’의 일원이 된다. 그곳에서 우연히 보니와 같은 이름의 모델 베로니카(블레이크 라이블리)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도 낳는다.
사실 이런 스토리는 흔한 삼각관계의 구조를 보인다. 별로 새롭지 않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매력은 스토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영화 곳곳에서 쏟아지는 우디 특유의 유머와 인생의 페이소스들이 영화 감상에 깨알 같은 재미를 준다. 영화는 과거와 달리 관계의 끈적임이 줄어들고 뽀송하며 따뜻하다. 사랑도 쿨하고 심지어 갱스터 형의 살인도 쿨하다.
대사에도 달관의 자세가 묻어난다. “꿈은 꿈일 뿐.”이라는 대사는 젊은이가 할 대사는 아니다. “인생도 자신의 인생이 있다.”든가, “음미하지 않는 삶은 의미가 없지만, 음미해버린 삶은 매력이 없다.”는 말들에는 젊은 감독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깊이가 배어 있다.
남편과 뉴욕에 온 보니가 바비와 재회하는 장면도 구질구질하지 않다. 남편을 따돌리고 바비와 센트럴파크를 비롯한 도심을 누비며 지난날을 회상하는 데이트도 상큼하다. ‘막장’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아쉬울 정도다.
흔히 불륜은 언젠가 대가를 치른다는 통념을 깨고 필과 보니의 관계도 좋다. 우디 자신의 상황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81세인 우디 자신도 이젠 삶의 끈적임이 버거워졌다는 방증이다. 유대인인 자신의 정체성도 코믹하게 유머로 녹여낼 정도로 그의 삶이 가벼워졌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음악이다.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재즈 음악은 우리를 자연스럽게 1930년대로 초대하며 영화 속에 빠져들게 한다. 무성영화 시대의 감독들이 존경스러울 정도다. 특히 같은 곡은 전형적인 뉴요커인 우디의 취향을 잘 살려내고 있다.
제시 아이젠버그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케미도 안정감을 준다. 특히 크리스틴은 이미 뱀파이어 류 영화를 뛰어넘어 여인의 향기를 풍긴다. 두 주인공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새해맞이 행사를 하며 동시에 아련한 눈빛을 보이는 엔딩신은 어쩌면 우디가 자신의 지난날을 응시하며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을 보이는 눈빛은 아니었을까? ‘선택에는 배제가 따르는 법!’
글 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 knbae24@hanmail.net
1987년 부산에서 쌍둥이로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각각 미국과 프랑스로 입양된 사만다 푸티먼과 아나이스 보르디에가 4년 전 SNS를 통해 극적으로 재회한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를 보면서, 그리고 “저 역시 입양아로서 살아온 삶에 대해 긍정적이었고, 아나이스 역시 입양의 어두운 면이나 슬픈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저희는 대부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사만다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의 입양 현실에 시선이 향한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입양 현황 통계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국내 법원에서 국내외 입양을 허가받은 아이는 1057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국내 입양은 683명으로 2014년의 637명보다 약간 늘어났지만, 국외 입양은 374명으로 2014년의 535명에 비해 줄었다. 국외 입양아 현황을 보면 미국이 전체의 74.3%로 가장 많고 이어 스웨덴(9.6%), 캐나다(5.9%), 노르웨이(2.7%) 순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1년 4206명이던 입양 아동은 2003년 3851명, 2006년 3231명을 거쳐 2013년 2652명으로 크게 줄었다. 그리고 2014년 1172명, 2015년 1057명으로 감소하는 등 입양이 활발하지 못한 상황이다.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역시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아이들을 입양해 행복한 가정을 꾸려 입양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며 국내 입양을 활성화하는 데 일조하는 연예인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차인표-신애라 부부, 중견 연기자 송옥숙, 탤런트 이아현, 개그맨 엄용수, 연극배우 윤석화, 가수 조영남, 개그우먼 이옥주 등이 자녀를 입양해 키우는 대표적인 연예인들이다.
여러 아이를 입양해 건강하고 행복하게 키우고 있는 브래드 피트-안젤리나 졸리 부부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일반인의 입양에 대한 인식 전환에 크게 기여한 것처럼 입양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엄존하는 한국에서도 차인표-신애라, 이아현 같은 대중의 시선을 받는 연예인 스타들이 입양 문화 활성화에 일조하고 있다.
자녀를 가슴으로 낳아 키우는 연예인들은 입양은 특별하거나 칭찬받을 일이 아니며 입양으로 인해 오히려 자신과 다른 가족이 더 행복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정민이(큰아들)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부모로 선택하게 했듯 둘째 예은이, 셋째 예진이는 우리가 입양한 것이 아니라 정민이와 다른 방법으로 이 아이들이 우리를 부모로 선택했습니다. 입양은 가정이 절실하게 필요한 아이에게 울타리를 쳐주는 것이며 새 가족과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새 가족이 생기면서 아이가 사랑을 알게 되고 다른 가족들도 입양한 아이로 인해 많은 것을 깨닫습니다. 입양한 예은, 예진으로 인해 가족들이 더 행복해졌어요.” 두 아이를 입양한 차인표-신애라 부부의 말이다.
“결혼 전 입양을 해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슴으로 낳은 아이도 배 아파 낳은 아이와 똑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둘째를 입양하고 키우면서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셋째도 입양을 하게 됐지요.”신애라의 말이다. 신애라의 적극적인 입양 의사에 남편 차인표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입양단체 관계자들은 스타 부부 차인표-신애라의 두 아이 입양은 많은 사람들에게 입양에 대해 관심을 끌게 하고 국내 입양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한다.
“입양했다고 하면 왜 칭찬받는지 솔직히 저는 반감이 듭니다. 내 딸들은 나를 있게 해준, 살게 해준 사람들입니다. 딸들이 아니었으면 너무 힘들어서 내가 지금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2007년 첫째 딸 유주(9)를, 2010년 둘째 딸 유라(6)를 입양한 탤런트 이아현이다. 이아현은 입양은 특별한 일이거나 찬사를 받을 일이 전혀 아니라고 했다.
혈연에 대한 집착, 법과 제도 문제 등 한국에서 입양이 활성화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자녀들을 입양한 연예인들은 강연과 홍보대사, 그리고 방송 등을 통해 입양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입양한 아이를 잘 키워 결혼까지 시킨 코미디언 엄용수는 방송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녀 셋 중 둘이 ‘가슴으로 낳은 애들’이다. 피 한 방울 섞이고 안 섞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랑으로 가족을 이루면 되는 것이다”라며 입양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설파한다.
입양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연극인 윤석화는 방송 등 대중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유교적인 사상이 많고, 국내 입양에 대한 편견이 아직도 많은 것 같아요. 외국의 사례나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면, 정말 아이들이, 생명이 크는 것은 사랑이 가장 우선이고, 오히려 DNA(혈연)보다 더 중요한 게 사랑이고,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아직도 많은 아이가 해외로 입양 가고 국내 입양이 잘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깝죠”라며 국내 입양이 활성화했으면 하는 바람을 강력하게 피력한다.
입양 문화가 이전보다 개선됐다고 하지만 장애아나 혼혈아 입양을 꺼리는 인식은 여전하다. 2015년 한 해 장애나 건강에 이상이 있는 아동 중 국내 입양은 24명이었지만, 해외 입양은 99명이나 됐다. 정부가 해외 입양을 통제하지 않았던 시기인 2002년에는 해외로 입양 간 장애아가 827명에 달했고 국내 가정에 입양된 장애아는 16명에 불과했다.
필리핀계 혼혈아를 2007년 입양해 가정을 이룬 중견 연기자 송옥숙은 “입양한 아이가 혼혈이냐 아니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고 혼혈아에 대한 사회의 시선에 개의치 않았다.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는 것만이 중요했다”고 말하며 장애아나 혼혈아에 대한 입양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입양아 가정에서 고민이 많은 입양 공개 여부에 대해서도 연예인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자녀를 입양한 연예인들 대부분은 외국처럼 입양 공개에 대해 찬성하고 있다. 가수 조영남은 “아이를 입양한 것은 세상의 빚을 갚는 심정이었어요. 아이를 공개 입양한 것은 입양 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보려고 한 거예요. 결과적으로 입양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아이를 밝게 키운 것 같아요”라고 했다. 차인표-신애라 부부는 “저희가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기 때문에 비밀 입양이라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비밀 입양은 아이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부모야 본인이 선택한 거지만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들은 비밀 입양을 할 경우 숨겨야만 하는 음지가 생기는 것이지요”라며 입양 공개 찬성 이유를 밝혔다.
개그맨 엄용수는 여섯 살 때 입양해 2007년 결혼해 가정을 꾸린 딸 엄현아(35)씨가 아이를 낳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입양은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다시 한 번 깨달았다며 더 많은 사람이 입양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입양은 버려진 아이를 데려다 키우는 게 아니라 소중하게 태어난 생명을 하나의 인격체로 키워내는 것이다. 모든 아이들은 따뜻한 가정 안에서 사랑을 받으며 성장할 권리가 있고, 어린아이들을 사회적 인재로 키워내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입양은 내 삶에 가장 잘한 일이다.” 2003년 공개 입양으로 아들 매튜를 가족으로 맞은 영화배우 故 김진아가 생전에 나와 인터뷰하면서 한 말이다.
1978년 10대 국회의원 선거에 낯익은 얼굴이 당선됐다. 바로 인기 드라마 등으로 스타덤에 오른 탤런트 홍성우였다. 당시 37세의 나이에 연예인 최초로 서울 도봉구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된 홍성우는 11, 12대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같은 지역에서 3선 기록을 세웠다. 이후 배우 최무룡, 신영균, 탤런트 코미디언 이주일, 가수 최희준, 연기자 이대엽 이낙훈 이순재 최불암 강부자 신성일 정한용 최종원 등이 지역구 혹은 비례대표(전국구)로 국회의원이 돼 활동했다. 연기자 이덕화 문성근, 코미디언 김형곤 등은 총선에 나섰으나 낙선했다.
1978년 첫 연예인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한 이후 38년이 흐른 2016년 4월 13일. 3선에 도전한 연기자 출신 정치인 김을동은 스타 아들 송일국 등의 열렬한 선거운동에도 불구하고 서울 송파구병에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패배, 낙선함으로써 20대 국회에선 연예인 출신 국회의원을 볼 수 없게 됐다.
이번 총선에선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 유권자의 관심을 쉽게 유발할 수 있는 연예인 중 가족, 후보와의 개인적인 인연, 지향하는 정치색 등으로 선거 운동원 행태로 선거에 참여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서울 중구성동을 새누리당 후보로 나선 남편 지상욱의 당선을 위해 분주하게 선거운동을 한 심은하를 비롯해 남진 이영애 김수미 이은미 윤형주 안내상 우현 전원주 태진아 설운도 엄용수 윤용현 선우용녀 정찬우 박상원 길용우 독고영재 양원경 등이 총선에 나선 후보들의 선거 운동을 도왔다. 우리 사회에선 한동안 연예인과 정치는 양립할 수 없거나 연예인은 권력층의 정치 선전이나 집권 여당의 선거운동에 단순히 동원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유명성과 인기, 영향력을 바탕으로 대중의 가치관과 세계관, 라이프스타일, 소비생활 등 다양한 측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연예인과 스타들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여러 가지 이유로 연예인의 정치 참여는 제한적이었다. 물론 최근 들어 연예인들이 정치 활동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국회와 장관 등 정부 고위직 진출, 선거운동, 정당 활동에 나서는 연예인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연예인의 정치 활동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인 인식이 엄존하고 정치 활동에 대한 유·무형의 제약이 뒤따른다는 생각을 하는 연예인들이 적지 않아 미국처럼 연예인의 활발한 정치 활동은 전개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처럼 영화배우 출신 대통령도 나오고 이라크 공격 명령을 내린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악마 같은 존재”라고 맹비난을 한 숀 펜처럼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연예인들은 대통령 선거 때면 가치관과 지향하는 정치색에 따라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표명과 선거운동, 선거모금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오는 11월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나설 힐러리 클린턴에 대해 조지 클루니, 메릴 스트립, 맷 데이먼, 리오나도 디카프리오 등 할리우드 스타와 스티비 원더. 레이디 가가 등 스타 가수들이 선거 운동에 나섰다. 또한, 공화당 후보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레슬링 선수 출신 연기자 헐크 호건, 배우 게리 부시 등이 지지 의사를 밝혔다.
한국에서 연예인의 정치 활동이 긍정적으로 활성화하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동안 연예인의 선거운동과 정치 참여, 정계 진출 등이 연예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권력층의 강권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최근 들어서는 연예인을 대선 등 정치적 이벤트의 일회용 도구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권하에서 정치깡패로 악명을 날린 임화수는 정권의 비호 아래 반공 예술인단을 이끌며 김희갑을 비롯한 최고 인기 연예인들을 선거 및 정치 행사에 강제적으로 동원해 정권과 집권여당을 선전하고 표심을 얻는 도구로 철저히 활용했다. 이러한 행태는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이어지다 최근에 들어서야 사라졌다. 이 때문에 연예인의 정치 참여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인 인식이 커졌다.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은 “내가 한동안 음악 활동을 못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 찬가 만드는 것을 거부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 중견 연기자도 “1970~1980년대만 해도 집권세력 정치행사에 참여 제안을 받고 불참을 하면 연기 활동에 큰 불이익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정치 행사나 선거운동에 나서는 연예인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신중현의 주장과 중견 연기자의 증언은 일부 연예인들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순탄한 연예 활동을 위해 권력층과 집권여당의 정치 행사에 동원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한동안 정치 참여를 하는 연예인에 대해 ‘정치적 무뇌아’ 혹은 ‘집권세력의 추종세력’이라는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이 생겼다.
또한, 연예인 출신 국회의원이나 지자체 단체장, 장관 등의 성과와 활동이 기대 이하 평가를 받은 것도 연예인의 정치 참여 활성화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했다.
신성일은 국회의원 재직 때 광고업자 2명으로부터 1억87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5년 유죄를 선고받고 복역했고 3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성남시장을 역임했던 이대엽도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는 등 연예인 출신 정치인의 비리는 연예인의 정치 참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화하는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국회의원은 정책 발굴과 입법 활동에 성과를 내야 함에도 연예인 출신 국회의원들은 그러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정당의 홍보 행사에만 얼굴을 드러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처럼 연예인 출신 정치인들이 기대 이하의 활동을 한 데에는 연예인 자신의 능력과 실력, 자질 부족도 한 원인이었지만 정치권에서의 부당한 편견도 한몫했다. 고 이주일 씨는 생전 인터뷰에서 “국민의 투표를 통해 당당하게 국회의원이 돼 의정 활동을 열심히 하는데도 동료 의원들이 코미디나 연예 활동의 연장 선상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고 비판했다. 이순재 역시 “연예인 출신 국회의원들을 입법 활동보다는 정당의 홍보 행사에 활용하려는 경우가 많아 의정 활동에 많은 제약이 있었다”고 말했다.
선거 등 정치적인 이벤트에만 얼굴마담으로 활용하기 위해 유명한 연예인과 스타를 영입했다가 용도폐기하는 정치계의 병폐와 대중적 인기만을 생각하고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려는 노력과 실력이 부족했던 연예인의 정계 진출이 맞물려 연예인의 정치 활동에 대한 불신을 조장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연예인의 정치 참여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크게 개선되고 정치 참여를 하는 연예인의 자세도 적극적으로 변했다. 또한, 연예인의 정치 참여로 인한 연예 활동 제약 행태 등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로 인해 정당 당원 활동에서부터 지지연설, 정치광고 출연, 포럼 참가, 시위 참여 등 연예인의 정치적 참여가 활발해지고 정치 활동 폭도 확대됐다. 젊은 연예인 중 상당수가 당당하게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소신에 따라 특정 정당 당원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끊임없이 정책이나 이슈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또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득표나 이미지 개선용으로 정치 입문을 강권하는 정치권에 대해 소신 있게 거부하는 연예인도 늘어나고 있다. 사랑 나눔 등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고 인기가 많은 차인표는 “대선 때는 특정 정당으로부터 선거운동에 참여해줄 것을, 총선 때는 후보로 나서줄 것을 제안받는다. 정치 참여에 대한 뜻이 없고 연기자로서 활동에 전념하고 싶어 정치 입문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앞으로도 정치적 제안을 거절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대중적 영향력을 가진 연예인이 성공적인 정치 참여를 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정치 참여로 인한 연예 활동 제한 등 문제 있는 행태는 근절되고 연예인의 정치 활동에 대한 편견이나 묻지마식 비난은 지양돼야 한다. 연예인들은 실력과 자질, 소신 없이 정계에 입문하는 것은 기대 이하의 정치 활동으로 연결돼 연예인의 정치 참여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악화만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권은 유명 스타를 영입해 선거에 투입해도 국민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견해까지 무시해가며 연예인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 상영된 영화 ‘인턴’은 40여 년 사회생활에서 은퇴하고 중년을 넘어 노년을 살아가고 있는 한 70대 남자 벤(로버트 드니로 분)과 쇼핑몰을 창업하고 빠른 기간 내에 열정적으로 회사를 성장시켜 궤도에 올려놓은 여성 CEO 줄스(앤 해서웨이 분)가 서로 소통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임에도 놀랍게도 최근 우리 사회의 세 가지 화두라 할 수 있는 일과 가정(육아)의 사이에 놓인 워킹맘의 고충, 일하고 싶어 하는 중ㆍ장년의 경제활동 문제. 그리고 이들 청년과 장년의 소통에 관한 내용을 잔잔하게 끌어내고 있다.
노년의 벤은 부인과 사별해 혼자 살고 있지만 혼자서도 완벽함에 가깝게 집을 꾸미고, 해외여행을 다니며 취미생활을 하고, 적당한 운동ㆍ봉사까지 하는 등 어찌 보면 굳이 일이 필요 없을 것 같은 부러운 시니어다. 그런데도 그가 주변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뒤로하고 인턴으로 일을 시작하며 설레는 모습으로 출근하는 것은 돈을 넘어서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임을 느끼기 위함이다. 꼭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행복한 노년을 위해 그 어떤 것보다 필요한 것이 ‘일’이라는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70세가 넘은 나이에 인턴 생활을 시작한 벤은 40년 사회생활의 노하우를 살려서 회사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거나, 나이만큼 풍부한 경험을 살려 멋진 아이디어를 내지도 않는다. 자신을 부담스러워 하며 때론 귀찮아하기까지 하며 바쁘게 돌아가는 사무실에서 성급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노력하지도 않는다. 다만 아주 서서히 따뜻하게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그동안의 사회경력에 비하면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사소한 일도 즐겁게 성심껏 해내면서 차츰 그들만의 젊은 세상에 든든한 동료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간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민하다 그동안 그토록 사랑했던 일을 포기하려는 줄스에게도 ‘인생이란’ 따위의 거창한 충고를 한다거나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너는 최고야” “너는 잘해왔고 너만큼 그 일을 가장 잘할 사람은 없어”라고 자부심을 심어 줘 스스로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도와줬다.
여기서 한국 시니어들이 청년과의 소통에서 흔히 범하는 오류, 청년들이 ‘꼰데’ 운운하며 냉소적인 자세를 취하게 하는 행동이나 ‘내가 네 나이 때는 말이야’, ‘요즘 젊은 애들은’ 따위의 말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시니어도 이 영화의 주인공 벤처럼 울고 있는 청년들에 어설프게 충고하기보다는 ‘손수건은 나를 위해 소지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빌려주기 위한 것이다’라며 손수건을 건네주는 따뜻한 시선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문자와 동영상의 시대를 거쳐 가상현실(假想現實 · Virtual Reality, 이하 VR)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VR은 강력한 차세대 플랫폼이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지난 2월 22일부터 25일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최대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 한 말이다. 삼성, LG, 소니, 애플, 구글, 페이스북, HTC 등 국내외 수많은 기업들은 2016 MWC에서 VR 전쟁에 출사표를 던지며 개발한 VR 기기를 경쟁적으로 선보였다.
“VR은 스마트폰을 대체할 수 있는 정도의 성장성을 지녔다. 기기뿐만 아니라 콘텐츠 개발에도 집중해 시장을 선점하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최근 열린 임원회의에서 경영진에게 던진 메시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 1월 발표한 보고서 ‘2016 콘텐츠산업 전망-10대 트렌드’에서 올해 콘텐츠 산업 10대 트렌드 중 하나로 현실처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VR 콘텐츠의 본격화를 꼽았다.
‘VR 시장은 이제 황금알’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VR(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시장 선점을 위해 삼성전자, LG 등 국내 기업들이 발 벗고 나섰다. 그뿐만 아니라 애플, HTC, 소니, 페이스북, 구글 등 글로벌 전자 및 IT 업체들도 속속 VR 시장에 신제품을 출시하며 소비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 국내외 기업들의 VR 제품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미디어와 대중문화에서부터 교육, 스포츠, 의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다양한 시·공간 자유롭게 체험
미국의 전산학자 재론 래니어가 1989년 처음 쓰기 시작한 VR은 이용자에게 원격현전(遠隔現前, telepresence)을 경험하게 해 주는 시뮬레이션 환경 즉 사용자가 컴퓨터 등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공간에서 실제 현실인 것처럼 상호작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집 안 거실에서 VR 기기를 쓰고 강원 평창 스키장에서 스키 타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이다.
박대수 KT 경제경영연구 소장은 ‘ 2016 한국을 바꾸는 10가지 ICT 트렌드’에서 “VR 기술을 통해 다양한 시·공간을 자유롭게 체험할 수도 있다. 고생대로 이동하여 공룡을 마주하거나 심해에서 기이한 생물들과의 대면도 가능하다. VR은 체험 가능한 세계의 폭을 확장하는 미디어 화수분과 같다”고 분석했다.
1940년대 미국의 항공 산업에서 개발한 조종사 훈련을 위한 비행 시뮬레이터가 VR의 효시다. 이후 1950년대 할리우드 공상과학 영화 등이 VR 기술 개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VR은 몰입감과 현전감(presence) 등을 높이는 기기들의 개발 부진과 고가 장비, 그리고 콘텐츠 부족으로 대중화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VR은 삼성전자, 애플 등 국내외 기업들이 머리에 쓰고 가상현실을 경험하는 디스플레이 기기인 HMD(Head Mounted Display)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한 혁신적인 제품을 본격 출시하고 360도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 등 주변 기기와 VR 영상 플랫폼이 양산되면서 VR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영화, 게임 등 일부 분야에 관련된 VR 콘텐츠만 제작됐으나 이제는 의료, 학습, 건축설계, 관광,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VR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면서 VR 시장은 급성장하고, VR 영향력은 확대되고 있다.
영화·방송 등 대세가 된 VR
영국 투자은행 디지털 캐피털은 VR 기기 시장 규모가 2016년 40억 달러(4조8680억원)에서 2020년 1500억 달러(182조5500억원)로 4년 사이에 37배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대만 시장 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전 세계 VR 시장(하드웨어+소프트웨어) 규모는 2016년 67억 달러(8조원)를 기록한 뒤 2020년에는 10배 이상 성장한 700억 달러(86조원)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급성장하는 VR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기업들의 전쟁은 상상을 초월한다. 삼성전자는 VR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페이스북과 제휴를 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페이스북은 지난 2014년 VR 업체인 오큘러스를 20억 달러에 인수했고 삼성전자 역시 오큘러스와 제휴했다. 구글은 수만 원대 저가 HMD 기능을 구현한 ‘카드보드’를 발매하며 VR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대만 HTC, 중국 LeTV 등 중화권 기업들도 저가의 HMD제품인 ‘폭풍마경’ 등을 내놓고 VR 시장에 가세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실 강선도 부장은 “삼성전자는 오큘러스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소비자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양질의 VR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도록 협력을 지속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PC, 카메라 업체뿐만 아니라 IT 기업까지 수많은 국내외 기업들이 VR 시장에 뛰어들면서 VR기기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로 인해 다양한 VR 콘텐츠도 속속 제작돼 이용자들에게 이전과 전혀 다른 가상현실의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실용적인 VR 기기와 콘텐츠가 속속 양산됨에 따라 의료, 쇼핑, 교육, 건설, 스포츠, 항공, 공연, 미디어, 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큰 변화가 생겼다. 특히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와 방송, 미디어에서의 VR의 영향과 변화는 실로 엄청나다.
지난해 1월 열린 미국 선댄스영화제의 뉴프론티어 부문 상영작 14편 중 10개 작품이 VR에 기반을 둔 영화였고 VR 기술을 활용한 영화만 31개가 출품됐다. 또한, 모바일 앱으로 구현하는 VR 콘텐츠도 수십 개가 선보였다. 미국 할리우드에서도 VR 영화 제작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VR 콘텐츠 업체인 버추얼 리얼리티 컴퍼니, VR 영화사 스토리 스튜디오 등이 VR 영화 제작에 나섰다.
이제 영화계에서는 VR 작품이 특별하고 신기한 볼거리가 아닌 하나의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으면서 다양한 VR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신문과 방송 등도 VR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2015년 11월 정기 구독자에게 VR로 뉴스를 볼 수 있는 구글 카드보드를 배송했다. 또한, 신문기사가 묘사하고 있는 현장을 독자가 간접 경험할 수 있도록 VR 앱인 ‘NYT VR’을 개발했다. 뉴욕타임스가 처음 올린 VR 뉴스 콘텐츠는 내전으로 고향을 잃은 사람들을 다룬 ‘난민(The Displaced)’이다.
뉴욕타임스뿐만 아니라 미국 통신사 AP와 미국 경제신문 월스트리트 저널 등도 VR 콘텐츠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VR 콘텐츠 업체인 엠블러매틱 그룹은 지난 2014년 ‘프로젝트 시리아’라는 VR 뉴스 콘텐츠를 공개해 이용자들에게 시리아 내전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성공 여부는 질 좋은 콘텐츠에 달려
언론사의 VR 저널리즘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독자들은 뉴스를 단순히 보는 것에서 벗어나 뉴스의 현장에 있는 것처럼 경험하는 방식으로 뉴스 소비패턴이 전환하고 있다.
방송사에서는 VR 방송 개발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VR의 가장 큰 특성인 몰입감과 현장감을 방송에서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일부 방송사에서 VR 방송을 실험하고 있다. 미국의 VR 업체인 Next VR은 미식축구 경기와 대선후보 토론회 등을 VR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국내 방송사들도 스포츠 경기 등 일부 프로그램을 VR 방송으로 제작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구체적인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VR 본격화로 가장 큰 변화가 일고 있는 분야가 바로 게임을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분야다. 미국의 VR 업체 보이드는 올 상반기까지 VR을 활용해 다양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VR 테마파크 ‘보이드 센터’를 건립한다. 이곳에서는 HMD 등 VR 장비 세트를 착용하면 시선의 변화, 동작, 터치가 VR 콘텐츠에 반영돼 몰입감과 생동감을 느끼면서 게임을 할 수 있다. 호주에서도 지난해 ‘제로 레이턴시’라는 VR 테마파크가 개장됐다. 이곳에서는 이용자가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전개하는 게임 방식인 프리롬(Freeroam)장비를 활용해 생동감 있는 VR 게임을 즐긴다.
물론 VR을 일반인 누구나 이용하기 위해서는 선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일부 사람들이 VR 기기를 이용하면서 느끼는 어지러움과 구토 증세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뿐만 아니라 여전히 착용하기 힘든 장비의 크기와 용량, 몰입감과 현장감의 부족, 기기의 비싼 가격 등도 개선해야 한다. VR 성공 여부는 콘텐츠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양한 분야의 질 좋은 콘텐츠 제작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VR 시대가 성공적으로 만개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동안 영화, 게임 등 일부 분야에 관련된 VR 콘텐츠만 제작됐으나 이제는 의료, 학습, 건축설계, 관광,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VR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면서 VR 시장은 급성장하고, VR 영향력은 확대되고 있다.
1. 30~50대 중·장년층 아버지들이 자녀들과 함께 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드론(무인 항공기) 제품 코너에선 눈을 떼지 못하고 제품을 보며 좋아 어쩔 줄 몰라 한다. 사람보다 더 큰 피규어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촬영한다. 조립한 레고를 전시하느라 구슬땀을 흘린다. 드론을 좋아하고 피규어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레고를 조립하는 사람은 어린 자녀가 아니라 바로 30~50대 중·장년들이다. 1월 7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6 키덜트&하비 엑스포’의 풍경이다.
2. 이마트는 지난해 6월 킨텍스 이마트타운에 피규어 전문관을 비롯해 드론과 각종 첨단 장난감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드론존, 스마트 토이존을 마련했다. 어린이 손님보다 20~50대 어른 손님이 압도적으로 많다. 롯데마트가 지난해 9월 서울 구로점과 잠실점, 그리고 판교점 등 세 곳의 키덜트 전문점을 열었는데 각종 피규어 제품과 드론, 무선 조종 자동차를 구매하는 손님의 90퍼센트가 20대 이상 성인들이다.
3. 지난해 7월 종이접기 전문가 김영만이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한 이후 서점가에는 때 아닌 종이접기 책 열풍이 불었다. 그 열풍을 일으킨 주역은 유치원생이나 초등생이 아닌 30~40대였다. 그뿐만 아니라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색칠놀이’컬러링북 신드롬이 일었다. 정교한 그림을 따라 원하는 색을 칠하는 컬러링북은 2015년 한 해 전년보다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 대형서점마다 2~4배 판매가 증가했다.
이 세 개의 풍경을 관통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키덜트 문화(Kidult Culture)다. 키덜트 문화의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덩달아 키덜트 문화 상품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키덜트 시장은 2015년 현재 5000억~7000억원 규모로 매년 20퍼센트 이상 성장해 2~3년 내 1조 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는 한슬기 NH투자증권 연구원의 설명은 키덜트 문화 열기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키덜트 문화란 무엇일까. 키덜트(Kidult)는 어린이를 뜻하는 키드(Kid)와 어른을 의미하는 어덜트(Adult)의 합성어다. 키덜트는 성인처럼 꾸미는 10대, 혹은 어른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어린이의 감성을 추구하거나 어린 시절 누렸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는 어른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서는 후자의 의미로 키덜트가 주로 사용된다.
키덜트 문화는 바로 성인들이 귀엽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고 아이처럼 유치한 것을 거부감 없이 즐기는 문화를 통칭한다. 한때 키덜트 문화는 철없고 독립성과 책임감이 결여된 정신적 퇴행을 하는 일부 어른들이 즐기는 미성숙한 문화라는 부정적인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소비층이 급증하면서 긍정적이고 다양한 모습의 키덜트 문화가 등장하고 주류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키덜트 문화는 광범하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출판, 만화, 게임, 캐릭터 용품, 완구, 무선 조종 자동차와 드론 등 키덜트 문화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고 다양하다. 키덜트 문화의 막을 연 것은 1980~1990년대 미국 월트 디즈니를 비롯한 할리우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1990년대 어린이 관객만으로 수익을 맞출 수 없었던 월트 디즈니가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한편 등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나 판타지물을 제작함으로써 키덜트 문화의 촉발제 역할을 했다. 인기 만화나 애니메이션, 영화의 캐릭터물과 피규어가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들의 인기를 끌면서 하나의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용품 수집 마니아인 탤런트 심형탁은 “집에 도라에몽 캐릭터 인형부터 침대, 베개까지 다 있다. 한 때는 도라에몽 피규어 등 관련 상품을 사는 데 1000만원이 든 적이 있다. 사람들은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이해를 못한다. 그런데 나는 도라에몽 관련 물품을 구입하면 기분이 날아갈 듯 좋다. 도라에몽 상품은 나의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준다”고 말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캐릭터 산업백서’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키덜트 캐릭터 시장규모는 50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무선 조종 자동차와 드론 성인 동호회는 수천 개에 달하는 것에서 키덜트 문화의 위세를 확인할 수 있다. 무선 조종 자동차와 드론 동호회를 동시에 하는 조흥호씨(53)는 “불과 5년 전만 해도 무인 조종 자동차를 갖고 놀면 철이 없다고 비웃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사람이 크게 줄었다. 무인 조종 자동차나 드론 동호회는 한 달에 10여 개 넘게 생겨나고 있다. 무선 조종 자동차와 드론 대회가 속속 개최되고 있다”고 말했다.
송지혜씨의 컬러링북 과 시리즈가 2015년 한 해 10만 부가 팔리는 등 출판에서도 키덜트 문화의 부상은 확연하다. 컬러링북을 비롯한 키덜트 문화와 관련된 만화, 종이접기 책, 캘리그래피북 등 키덜트 관련 도서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송지혜 씨는 “제 컬러링북이 어린이들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어머니나 아버지들이 무척 좋아해서 깜짝 놀랐어요. 알고 보니 최근 일고 있는 컬러링북 신드롬은 20대 이상 성인들이 주도한 거였어요”라고 설명한다.
키덜트 문화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완구점 역시 요즘 손님의 20~30퍼센트는 성인들이라는 것이 상인들의 설명이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완구점을 운영하는 강창호씨(40)는 “요즘에는 바비 인형이나 건담 시리즈 캐릭터를 구입하는 20~50대 성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고 전했다.
키덜트 문화를 더욱 확산시키는 곳은 바로 백화점, 할인마트, 편의점 등 유통업계와 화장품 및 의류 업계다. 현대백화점은 판교점에 레플리카 등 키덜트 매장을 운영하고 롯데마트는 구로점을 비롯한 세 곳에 키덜트 전문관을 마련해 ‘어벤져스 마리아 힐 피규어 한정판’ 등 80여 종류의 키덜트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밖에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할인 매장과 서울 용산 아이파크백화점과 신세계 백화점 등 적지 않은 백화점들도 키덜트를 겨냥한 상품코너를 따로 마련해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유니클로를 비롯한 의류업체와 LG생활건강 등 화장품 업체들도 키덜트를 겨냥해 캐릭터 업체와 제휴한 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키덜트 문화가 이처럼 열기를 더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생존경쟁이 치열해지고 구조조정이 횡행하는 팍팍한 현실에서 유년 때 편하게 즐겼던 문화나 상품을 소비하면서 스트레스를 날리려는 성인들이 많아진 것을 키덜트 문화의 주원인으로 꼽는다. 오리콤 브랜드 전략연구소는 보고서 ‘키덜트 문화’를 통해 “성인들이 동심이 깃든 상품을 소비하면서 각박한 생활에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한편 정서를 안정시키고 재미와 유쾌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키덜트 문화가 부상했다”고 분석했다.
또한 ‘영포티(Young Forty)’, ‘신중년(Young Old)’, ‘100세 시대’등의 용어에서 알 수 있듯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물리적 나이에 비해 정신적 성장이 느려진 것도 키덜트 문화의 부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분석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물론 키덜트 문화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일부 전문가들은 키덜트 문화는 정신적 퇴행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문화이고 책임감 없는 철없는 어른들을 합리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런데도 이제 키덜트 문화는 성인들에게 다양한 감성과 경험을 제공하며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 문화로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 또한, 키덜트 문화는 유통, 캐릭터산업, 의류, 화장품 등 산업 전반에 보다 많은 수요를 창출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걸크러시(Girl’s Crush)’. 여자가 여자에게 반하거나 동경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신조어다. ‘여자의 적(敵)은 여자’라는 옛 말이 무색하게 요즘의 젊은 여성들이 같은 여자를 동경한다. 특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중년 여성부호들에게서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찾는 젊은 여성들이 많이 늘었다. 전보다 많은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와중에, 권위적이고 남성적인 조직문화에 좌절하지 않고 성공을 이뤄내는 이들의 모습에 반하는 것이다.
김유준 프리랜서 기자 dongbackproject@gmail.com
장르 영화에는 관습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영화 유형에서 보편화된 극적 요소나 제재 또는 양식화된 표현방법’으로, 영어로는 컨벤션(convention)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서부영화에는 정의감 넘치는 주인공이 황야에서 말을 달려 추격을 펼치고 마지막에 결투를 벌여 악당을 물리치고는 고독한 모습으로 떠나는 모습이 종종 그려진다. 주인공이 못나게도 악당 짓을 하거나 “그리하여 스티브는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하고 끝나는 서부영화를 보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말, 질주, 추격, 결투, 고독한 주인공 등은 서부 영화의 대표적인 관습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이 멋지다는 이유로 벤 존슨이라는 마부가 서부 영화에 기용되어 일약 영화계의 스타가 된 것은 그 덕분이다. 영원한 청춘스타라는 제임스 딘이 남긴 세 작품은 모두 현대극이지만, 그 작품들은 서부 영화의 전통에 따라 젊은 주인공을 고독하고 투쟁적으로 그림으로써 영화의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의 이른바 ‘치킨 런’ 장면이 오래도록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청바지를 입었거나 카우보이모자를 쓴 제임스 딘의 스냅 사진이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여성, 과연 걸림돌이었나?
역설적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에 등 뒤에서 총 쏘는 것은 예사에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일 보는 상대에게 총격을 가하는 등의 비열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관습을 뒤집어 서부극을 사실적으로 승화했다’는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석권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관습은 액션이나 스릴러 같은 장르 영화에도 뚜렷이 존재한다. 여성이나 어린아이가 맡는 역할은 대표적인 예. 그들은 불꽃 튀기는 영화에서 자랑스러운 배역들을 맡지 못해왔다. 그들은 언제나 남성 주인공들의 질주를 가로막는다. 주인공이 파죽지세로 적들을 물리치려는 순간,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성은 약속이나 했다는 듯 적에게 인질로 잡힌다.
악당은 여성의 목을 팔로 휘어 감고 여성의 정수리에 총을 겨누고 있다. 그 광경을 남성 주인공은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어떤가?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지 않은가?
카우보이 영화의 전통을 고스란히 현대에 이어받아 전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한 액션 영화 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형사 존 매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의 부인인 홀리(보니 베델리아)는 마지막 장면에서 한스 그루버(앨런 릭맨)에게 인질로 잡힌다. 매클레인은 등 뒤에 숨겨둔 권총으로 악당을 처치하고 총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입김으로 훅 분다. 전형적인 서부 영화의 컨벤션이다.
구태여 옛날 작품들을 예로 들 것도 없다. 의 이정범 감독이 장동건을 주연으로 내세운 신작 에서도 이런 장면은 여지없이 등장한다.
지금껏 장르 영화에서 여성은 ‘걸림돌’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그 정도에 머물렀음을 우회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 여성, 스토리라인 끌어가고 있다
이제 영화 교과서의 이런 예들은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최근 영화들에서는 더 이상 여성이 나약하게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영화에서 여성들은 스토리라인을 적극적으로 끌어나가고 있다.
액션 영화 장르의 대표주자 격인 시리즈부터 변화가 뚜렷이 감지된다. 최근작 에서 여주인공 일사(레베카 퍼거슨)는 기존의 여성 배역과 다르다. 누구 못지않은 역량의 소유자로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남자 주인공 에단 헌트(톰 크루즈)를 들었다 놨다 한다. 2000년도에 오우삼 감독이 연출했던 작품과 비교하면 차이는 확연하다. 2편의 니아(탠디 뉴턴)가 헌트에 종속돼 있는 캐릭터라면 일사는 단연 독립적인 존재. 나아가 헌트의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내기도 한다.
조지 밀러 감독의 에서는 숫제 캐릭터의 비중이 뒤바뀌었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근작 에 이르러 타이틀롤인 맥스(톰 하디)보다 여성 캐릭터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가 더 두드러진다.
외국 영화만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영화는 오히려 한발 더 앞서 나간다. 일찍이 박찬욱 감독은 라는 완전무결한 ‘여성 주인공의 영화’를 발표한 바 있다. 박찬욱 감독은 제작 발표회에서 “우리나라에서 감독은 두 가지로 나뉜다”며 그 두 종류가 “배우 이영애와 작업해본 감독과 그렇지 못한 감독”이라고 말했다. 그가 얼마나 여성 배우와 캐릭터에 공을 들이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신작인 또한 제목에서 눈치 챌 수 있듯 여성 중심의 영화가 분명하다. 정확한 구성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귀족 여성과 소매치기 여성이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고 알려졌다.
그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또 한 명의 거장 봉준호 감독은 라는 걸출한 영화에서 강인한(또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어머니 상을 표현했다. 신작 에서는 10대 소녀인 여성 주인공이 그 역할을 떠맡는다.
신작을 발표할 때마다 1000만 관객을 불러들이는 최동훈 감독 역시 여성을 보는 시각이 전향적이다. 그의 초기 대표작인 이나 에서부터 여성들이 맡은 배역이 범상치 않았지만, 대단한 흥행을 기록한 에 이르러서는 안옥윤(전지현)이 맡은 비중이 다른 어떤 영화보다 크다. 어떤 평론가는 “전지현에 의한, 전지현을 위한, 전지현의 영화”라고까지 말했을 정도.
할리우드에서 돌아온 김지운 감독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의 제목은 . 송강호와 공유라는 두 배우가 주연을 맡아 항일무장투쟁 운동을 펼치는데, ‘밀정’이라는 제목 캐릭터가 다름 아닌 여성이라는 후문이다.
여성이 당당히 주역
이런 현상은 영화뿐 아니라 대중문화의 다양한 장르에서 폭 넓게 드러나고 있다. 같은 뮤지컬, 등의 TV 드라마, 같은 게임에서 강인한 여성이 주역을 맡고 있다. 무엇보다 상업성에 민감한 대중예술 제작자들이 여성을 주인공을 내세우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그러한 여성 캐릭터가 지금의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에는 남성 대중이 혀를 끌끌 찼을 여성 캐릭터들을 요즘 사람들은 바람직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알파걸’이니 ‘걸크러시’니 하는 낯선 용어들이 언론과 인터넷을 중심으로 심심찮게 돌아다니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게 된 이유에 관해서는 비교적 분석이 완료된 느낌이다. 서울대 배은경 교수(여성학 협동과정)는 대학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20세기 중반 이후 전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적 변화가 이런 현상을 낳았다. 경제적 능력을 통해서만 안정적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지위가 높은 전문직· 고연봉 여성들이 칭송받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이와 같은 사회적 현상이 대중문화에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경제 불황과 연관 지어 설명하는 분석도 많다. 이런 시기라면 남성들이 사회에서 경제력을 잃어가는 대신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런 현상이 ‘과거에 비하면 바람직한 편이지만 여성의 활약만 강조되었을 뿐 불평등한 사회 구조는 여전하며 이에 대한 비판도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에는 이런 지적에 대한 반성까지 대중문화에 투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성난 엄마’의 출현이다. 여성 중에서도 어머니들이 나서서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발표된 같은 영화들은 모두 어머니가 가족을 잃고 복수에 나선다. 영화뿐만 아니다. 지난해 방영된 서울방송의 을 비롯해 올해 문화방송이 공개한 과 서울방송 등은 아예 제목에서부터 어머니가 주인공임을 드러내고 있다. 더불어 그들은 하나같이 여성이나 어린이 같은 약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 권력층의 부패 커넥션 등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
의 주인공 조강자(김희선)는 자녀와 관련된 사회문제에 분노하고, 그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우리 시대의 ‘앵그리 맘’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은 아예 어머니로서의 주인공보다는 여형사로서의 캐릭터에 더 집중한다. 강력계 형사인 주인공 최영진(김희애)은 누가 봐도 ‘나쁜 아빠’인 강태유(손병호)가 상징하는 남성 중심적 권력의 부조리와 강력히 맞붙어 싸운다. 단지 여성의 몫이 늘어난 정도가 아니라 과거의 투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게 된 것이다. 남성들과 경쟁해 성공한 여성들의 모습은 같은 여성들에게 당연히 쾌감을 준다. ‘롤모델’이 된 여성 리더들은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여권(女權) 문제를 공식석상에서 거론하면서 여성들의 대변인이 돼주기도 한다.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게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여성의 몫이 늘어나기 시작한 20세기 중반부터 그런 양상은 꾸준히 있어왔다. 그러나 최근의 현상들은 지난날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폭발적이며 더불어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과거의 힘센 여성들이 단지 자신들을 핍박하는 남성에게 대항했다면, 요즘 여성들은 사회라는 시스템 자체에 저항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여성들의 활약은 수준과 차원을 드높이고 있다. 지금의 여성들은 더 이상 무기력하지 않다.
# 알파걸 Alpha Girl 공부, 운동, 대인관계 등 모든 분야에서 또래 남학생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성과를 보이는 엘리트 계층의 여성을 일컫는다. 그리스 알파벳의 첫 자모인 알파(α)에서 유래됐다. ‘첫째가는 여성’이라는 의미에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아동 심리학자인 댄 킨들런 교수가 북미지역에 거주하는 113명의 소녀를 인터뷰하고 남녀학생 900여 명에게 편지로 설문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만든 개념으로 2006년 그의 저서 <알파걸, 새로운 여성의 탄생>을 통해 사회에 널리 알려졌다.
# 걸 크러시 Girl Crush 어떤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느끼는, 일반적으론 섹슈얼한 감정이 동반되지 않은 강렬한 호감 혹은 감탄을 뜻한다. 남성들이 스포츠 스타들에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된 의 여성 래퍼들이 여성 팬들에게 강력하게 지지받은 것은 대표적인 걸 크러시 현상으로 꼽힌다.
우리나라 액션 스타의 계보는 곧 홍콩 스타의 계보다. 액션 영화가 ‘다치마와리’ ‘으악새’ 등으로 폄하되던 한국 영화계에서 토종 액션이 만들어지기는 쉽지 않았다. 홍콩 영화계는 달랐다. 그곳 영화인들은 중국 무술을 떠받들었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으려 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이어진 그들의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노력은 자국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글 김유준
◇ 호금전과 장철, 그리고 왕우
1960년대, 아시아 화교 문화권에서 무협극이 빠르게 인기를 얻어가고 그에 발맞춰 쇼브러더스를 비롯한 홍콩의 영화 스튜디오들이 새로운 무협 영상을 만들려던 시기. 그때 홍콩 영화계에 두 명의 거장이 있었다. 호금전과 장철. 두 감독은 홍콩을 무협 액션의 본거지로 만드는 데 거대한 몫을 담당했다.
호금전은 무술에는 문외한이었다. 칼춤과 경공이 난무하는 스토리를 다루면서 그가 관심을 둔 것은 경극과 무용에 바탕을 둔 아름다운 움직임과 꽉 짜인 미장센이었다. “무협 세계는 대부분 상상임에도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것이 이상하다. 내 관심은 액션과 풍경의 관계에 있다.”
이안 감독의 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를 비롯해 같은 호금전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상 그 자체였다. 결투 장면을 액션인 듯 아닌 듯 그려내는 연출 스타일 아래에서 스타가 탄생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그의 영화에서 정패패 같은 여성 배우가 더 돋보인 것은 그런 연출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다.
장철 감독은 정반대였다. 세련된 화법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의 영화에서는 몸과 몸이 맞부딪치는 격렬한 움직임이 속출했고, 카메라는 그에 유치하다 싶을 만큼 급격히 줌인했다. 그런 영상 속에서 무술에 능한 배우가 주목 끌 것은 당연한 일. 장철은 그렇게 왕우(王羽)를 스타로 만들었다.
1967년 으로 합을 맞춰본 장철과 왕우 콤비는 이듬해 를 발표해 홍콩 영화 역사상 최초로 100만 홍콩달러 이상 벌어들이는 대성공을 거뒀다. 이 흥행을 바탕으로 등으로 외팔이 무사(독비도: 獨臂刀) 시리즈가 이어졌고 그 인기는 바다를 넘어 우리나라와 일본에도 전해졌다. 호금전과 달리 작품을 빨리, 많이 만드는 장철의 연출 스타일에 힘입어 왕우 외에 강대위(깡따위 또는 장다웨이), 적룡 등도 스타덤에 올랐다.
피바람이 몰아치는 장철식 영상이 대세가 되면서 홍콩 무협 액션의 기조까지 뒤바뀌었다. 허황된 칼춤은 시나브로 자취를 감췄고 스크린에서는 팔과 다리가 부러질 듯 맞부딪쳤다. ‘챙챙’ 하는 금속성 음향이 베개를 몽둥이로 두드리는 듯한 효과음으로 대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의 시대배경이 점점 더 현대에 가까워지는 경향도 짙어졌다. 이런 현상은 이소룡이라는 불세출의 스타가 출현함으로써 절정을 맞았다.
◇ 작은 용의 등장과 죽음
이소룡은 실제로 무술의 달인이었다. 영춘권의 일대종사로 영화화되기도 한 엽문, 태권도 고수인 이준구 사범 등은 이소룡의 무술 스승. 이소룡은 그밖에 유도, 가라테, 권투 등 세상의 모든 무술에 관심이 많았다. 아역배우로 활동한 홍콩에서의 유년기 이후 미국에서 청년기를 보낼 즈음에는 무술 연마에만 힘을 쏟아 나중에 절권도라는 무술을 창안하기도 했다. 실력에 비해 영화계에서의 활약은 미미했다. 1966년 미국 무술가의 도움으로 TV시리즈 에 조연으로 출연했지만 반향은 크지 않았다.
이소룡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한 것은 다시 홍콩으로 돌아오고부터. 1971년 액션 영화의 거장 나유(로웨이) 감독의 에서 주연을 맡아 놀라운 히트를 기록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어 가 홍콩과 아시아뿐 아니라 미국에서까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아시아를 뛰어넘는 세계적 스타 ‘브루스 리’가 탄생한 것이다.
이소룡의 트레이드마크는 일그러진 표정과 단순하면서도 폭발적인 움직임. 무도가들은 그 기괴한 기합 소리와 표정을 연기가 아닌 ‘발경(發勁)’의 결과로 이해한다. 무술에서 발경이란 ‘짧은 시간 안에 격렬하게 타격함으로써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 그런 필살기를 펼치는 순간이라면 소리를 지르고 인상이 일그러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이소룡의 시대는 화려했으나 길지 않았다. 느닷없이 나타나 3년 동안 온 세상을 흥분시켰다가 1973년 7월, 마지막 주연작 를 채 완성하지 못하고 서른셋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그야말로 혜성처럼 나타나 유성처럼 사라진 것이다.
이후 홍콩 영화계에는 액션 배우의 예명에 용(龍) 자를 붙이는 유행이 생겨나 순식간에 별의별 용들이 군웅할거하며 이소룡의 빈자리를 메우겠다고 나섰다. 성룡 역시 그 가운데 하나였다.
◇ 성룡 액션의 시작
이소룡이 사라지며 액션 영화는 주춤했다. 이소룡의 엄청난 주먹질과 발차기에 맛들인 관객들은 후계자를 자처하는 잡룡(?)들의 몸부림에 좀처럼 열광하지 못했다. 1976년부터 등 소림사 관련 영화들이 히트했고 그와 함께 황가달, 류가휘 같은 스타가 탄생했지만 이소룡이 남겨준 흥분을 잠재울 만큼은 아니었다.짧은 순간의 격렬한 움직임만으로는 도저히 이소룡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일까. 이후 홍콩 영화계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움직임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어느 제작자의 감정싸움이었다.
오사원은 뛰어난 프로듀서였지만 쇼브러더스 영화사의 상층부와 다툼이 잦았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프로덕션을 세우리라 결심한 것이 1970년대 후반. 오사원은 평소 눈여겨봤던 무술감독 원화평을 연출자로 키우려 했다(원화평은 나중에 에서 무술감독을 맡았다).
두 사람이 첫 영화의 주연으로 낙점한 배우는 성룡. 성룡은 존재감 없는 외모(쌍꺼풀 수술로 그나마 또렷해졌다)로 한국과 홍콩을 오가며 그저 그런 영화에 출연하던 2류급 배우. 그러나 재빠른 몸동작만큼은 최고였다.
1978년, 초일류 제작자와 초일류 무술감독과 초일류 스턴트 배우라는 삼각 조합은 라는 독특한 영화를 세상에 선보였다. 의 액션은 춤도 아니고 무술도 아니었다. 흡사 우스꽝스러운 광대짓 같았다. 그러나 성룡의 앳된 외모와 걸출한 움직임에 힘입어 장난 같은 동작은 도리어 관객들에게 통쾌한 웃음을 안겨줬다. 이어 성룡은 까지 히트시키며 승승장구한다(우리나라에서는 이 먼저 개봉했다). 이른바 코믹 액션의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 거듭된 성공에도 성룡은 도취되지 않았다. 오히려 시대배경을 현대로 바꾸고 영화의 성격마저 액션 중심에서 코미디 중심으로 뒤바꿔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첫 번째 시도는 홍금보 감독의 (1983년). 성룡은 조연도 마다하지 않으며 절친한 동료의 영화적 실험에 동참했고, 흥행 성공으로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이어 성룡은 감독, 각본, 주연까지 맡은 를 세계적으로 히트시켰다. …. 성룡의 성공가도는 끝이 없었고 급기야 할리우드로 진출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 영웅, 본색을 드러내다
성룡의 액션은 거의 독과점 상태였다. 구르고 때리고 피하는 액션으로는 어느 누구도 그 아성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장철의 조감독 출신인 오우삼은 ‘주먹 아닌 총’으로 블루오션 개척에 나섰다. 은 그 찬란한 결과물이었다.
현대판 협객전이라 할 만한 이 작품은 홍콩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히트했다. 상영 시간이 끝났음에도 관객들의 성화에 못 이겨 밤새도록 영사기를 돌렸다는 일화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이후 액션 영화의 양상은 크게 바뀌었다. 협객들은 칼집 대신 홀스터를 찼고, 도복 대신 레인코트를 입었다. 기합과 초식은 자취를 감췄고 방아쇠를 당기는 무심한 표정만이 스크린을 아로새겼다. 권총을 속사포처럼 내갈긴 후 담배를 피워 무는 모습이 가장 멋졌던 배우 주윤발은 그런 영화의 홍수 속에서 독보적으로 빛났다. 장국영, 유덕화, 장학우, 이수현 등이 그 뒤를 따랐고, 적룡을 비롯한 옛 스타들이 다시금 인기를 얻었다.
성룡 액션을 넘어서려는 움직임은 이른바 ‘홍콩 누아르’만이 아니었다. 서극은 일찍이 에서 특수 촬영 기법으로 고대 무협의 세계를 재현하려 했지만 흥행에 실패했다가 1987년 무술감독 출신인 정소동에게 연출을 맡긴 에 이르러 기어이 성공했다. ‘SFX 무협영화’로 불린 이런 흐름 또한 아류작들을 양산하며 오랫동안 유행을 이끌었다.
중국 본토의 무술대회 선수권자인 이연걸을 내세워 정통 권법 영화를 부흥시키려는 움직임도 주목할 만했다. 이연걸은 1979년까지 중국 무술대회를 5연패한 달인. 시리즈로 얼굴을 알린 뒤 서극 감독에게 발탁돼 시리즈를 히트시키며 일약 초일류 액션 스타로 발돋움했다.
액션의 숱한 유행은 21세기가 시작되며 잦아들고 있다. 성룡도, 주윤발도, 이연걸도 예전 같지 않다. 더불어 세계 무술 영화의 거점이던 홍콩 영화계는 힘을 잃었다.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다음 날 곧바로 ‘표절작’이 뿌려진다는 후안무치한 골육상쟁의 분위기 속에서 하루하루 스러져갔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액션 스타의 계보 역시 지금에 이르러 더 이상 쓰이지 않고 있다.
전 세계 영화계에 개인기 대신 규모로 몰아붙이는 대형 액션만 횡행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이제 육체의 움직임에 관심이 없는지도 모른다. 액션의 일대 위기다. 에서 에단 헌트는 이렇게 말한다.
“절박한 순간이라면 필사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지금 액션 영화계는 절박하다. 광야를 내달리는 초인적 영화인의 ‘필사적 조치’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육체가 곧 연기인 진정한 의미의 액션 스타는 공룡처럼 멸종할지도 모른다.
◇ 우리나라의 액션 스타
으악새 영화. 한때 우리 관객들은 우리나라 액션 영화를 그렇게 불렀다. 허공을 내지른 주먹에 악당들이 “으악” 하고 제풀에 몸을 날리며 쓰러진다고 해서 붙은, 실로 치욕적인 별명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액션 스타가 탄생하기는 쉽지 않았다. 장동휘, 박노식, 이대근 등이 이른바 ‘다치마와리 영화(몸싸움 영화)’에서 주연을 맡기는 했으나 영화계의 본류는 아니었다.
정창화 감독 같은 액션 전문 연출자, 황정리처럼 액션만 고집한 배우는 척박한 우리나라 영화계 대신 홍콩에서의 활약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정창화 감독은 등을 히트시키며 일급 감독 반열에 올랐고, 황정리는 성룡의 등에서 악역으로 활약했다.
한용철은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활약한 거의 유일무이한 액션 스타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재미교포 출신(미국식 이름은 ‘챠리 셀’)으로, 무술의 달인은 아니었으나 발차기가 멋지다는 이유만으로 1973년 새로운 액션 스타를 찾고 있던 이두용 감독에게 발탁됐다. 결과는 대성공. 다리를 쭉 뻗어 순식간에 상대 뺨을 연타하는 광경이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며 인기를 끌었고, 그와 함께 을 비롯해 2년 동안 여섯 편의 액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하지만 지나친 다작 탓인지 인기는 곧 가라앉고 말았다. 챠리 셀 외에 바비 킴이라는 또 한 명의 재미교포 배우가 반짝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비행기 안에서 소동을 피운 가수와는 다른 사람이다). 연예계 슈퍼스타 겸 액션 영화 애호가 겸 무술인이던 전영록이 이두용 감독과 함께 ‘돌아이’ 시리즈를 선보이며 잠시 인기를 끌기도 했다.
>>글 김유준
1966년생. 20여 년 동안 영화전문지 , 남성교양지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도서출판 현재)등을 번역했다. 현재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