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한 비주얼 + 따뜻한 마인드’ 매력 아재의 절대공식
요즘은 아재개그, 아재스타일이라는 말이 대유행이다. 어쩌다 ‘아재’ 소리를 들으면 매력 없는 구닥다리 감성의 소유자로 전락한 것만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든다. 나이가 들어 아저씨가 된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아재의 함정. 무엇이 그들을 아재로 만드는 것일까?
◇ 아재의 척도
아재의 척도는 나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패션, 헤어 등 외적 요소와 매너, 인격, 말투 등 내적 요소가 어우러져 아재와 오빠를 가른다. 2030세대 직장인 여성 50명을 대상으로 남성 직장 상사(50대 이상 부장·임원급)의 매력에 대해 물었다.
◇ 외적 매력 점검
아재를 판가름하는 가장 큰 요소로는 ‘패션’이 꼽혔다.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외적 매력뿐만 아니라 매너와 인격, 유머 등 내적인 부분들도 비중 있게 언급됐다. 위의 결과를 바탕으로 좀 더 심층적인 질문을 던져봤다.
2030女가 추천하는 오빠美 흐르는 상사 패션
➊ 셔니코! 셔츠+니트+코트로 심플하고 깔끔하게
➋ 카디건과 슬랙스, 테슬로퍼로 편안한 스타일링
➌ 헐렁하지 않은 슈트 차림에 고급스러운 시계 포인트
◇ 내적 매력 호불호
눈살을 찌푸리는 상사의 매너는 ‘자유분방한 생리현상’이었다. 식사 중 트림을 하거나 사무실에서 방귀를 뀌는 등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것에 불편함을 보였다. 반면,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먼저 음식을 덜어주거나 늦은 시간 귀가할 때 차비를 챙겨주고 안부를 묻는 등 세심한 모습에 호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고압적이고 고리타분한 대화 방식 탓에 소통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의견이 많았다. 야한 농담을 서슴지 않고 하거나 남녀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상사의 언행에도 불쾌함을 드러냈다. 반면, 나이가 어려도 존댓말을 써주고 존중해주는 상사에게는 자연스레 존경심이 생겨 훈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답했다.
◇ 연예인 이미지로 본 내적ㆍ외적 이상형
최근 ‘쉰건모’라는 별명으로 재기발랄한 아재의 면모를 보여준 가수 김건모가 내적 매력 면에서 높은 호응을 얻었다. 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여준 배우 한석규를 비롯한, 안성기, 조성하 등 온화한 이미지의 신중년을 선호하는 모습이다. 남다른 패션 센스와 매너를 겸비한 배우 김용건이 이상형 상사 1위에 올랐다. 배우 이순재, 박근형 등 편안하고 자상한 이미지의 상사를 선호하는 경향이다.
어느 60대 여성들의 대화
어느 화창한 주말 오후! 어린이 놀이터를 빙 둘러싸고 있는 벤치에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이 앉아 있다.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할머니의 존재를 잊은 듯 신나게 노느라 여념이 없었고, 할머니 두 분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잠시 손주들의 존재를 잊은 듯했다. 우연히 그 옆에서 할머니들과 아이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정쩡하게 서 있던 필자는 어느 순간 벤치 쪽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시선을 고정했다. 남 이야기를 엿들은 것 같아 조금 민망하지만 직업병 탓으로 돌리며 그 내용을 여기에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할머니 한 분이 많은 돈은 아니지만 곗돈을 탄 모양이었다. 그 곗돈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서로 의견을 나누는 중이었다.
“요즘은 은행에 넣어둬도 이자가 얼마 붙지 않아 재미도 없는데, 곗돈을 어디에 쓸 거유?”
“연금에 가입해 매달 연금으로 받으려고 해요.”
“연금으로 받으면 몇 푼 되지도 않을 텐데, 차라리 여행을 다녀오거나 며느리에게 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얼마 되지 않는 돈이라도 매달 받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데…. 그리고 이제 우리 노후는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시대잖우.”
이 말을 들은 여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과 감정의 줄타기 게임
위의 대화는 오늘날 60대의 고민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돈이 좀 생기면 고민도 생긴다. 자식을 위해 써야 할지, 아니면 이기적으로 보이더라도 자신을 위해 써야 할지, 자신을 위해 쓴다면 어떻게 쓰는 게 과연 좋을지 판단이 잘 안 선다. 노후를 위해 연금에 가입하는 게 좋을까? 이성은 연금에 가입하라고 권하는데, 감정은 자식을 위해 쓰라고 부추긴다. 이성과 감정의 줄타기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감정의 힘에 굴복하고 만다. 하지만 위의 사례에 나오는 여성처럼 꿋꿋하게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도 있다. 그 결과는 어떨까? 감정적으로 내린 판단보다는 이성적 판단이 지혜로운 판단이었음을 곧 알게 된다.
2001년, 미국의 저명한 두 교수가 2001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 중 2150년까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을 두고 내기를 걸었다. 미국 앨라배마 버밍햄대학교 오스태드 교수는 메트포르민과 라파마이신 등이 인간의 수명을 상당히 늘려줄 것이라며 생존 쪽에 내기를 걸었고, 시카고대학교의 올생스키 교수는 유전적 프로그램이 걸림돌로 작용해 아무리 오래 살아도 115세밖에 못 살 거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2001년에 각각 150달러씩 내어 300달러를 펀드에 투자했다. 이 펀드는 2016년까지 연평균 9.5%의 높은 수익률을 보여 300달러가 1275달러로 늘어났다. 2016년 이들은 각각 300달러씩 또 내어 600달러를 이 펀드에 추가로 넣었다. 이 펀드가 2150년까지 연평균 9.5%의 수익률을 실현하면 2150년에는 약 2억 달러가 된다. 이 돈은 내기에서 이긴 사람의 유족이 다 가져가기로 했다. 지금의 60대가 150세까지 생존할 가능성은 없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수명이 더 길어질지도 모른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연금을 선택한 이성의 판단은 옳은 것이다.
60대 연금술의 핵심과 전략
60대 연금술의 핵심은 어떤 연금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진다는 점에 있다. 가진 돈을 모두 연금으로 전환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바로 여기에 60대 연금술의 전략이 있다. 모든 자산을 연금화한 뒤 매달 받는 연금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발생하면 대응할 수 없다. 연금은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계속 나오겠지만, 당장의 큰 지출을 감당할 수 없어 빚을 얻게 된다면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는 쪼들린 생활을 해야 함을 물론 최악의 경우에는 하류노인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후지타 다카노리의 저서 는 연금으로 일상적인 생활은 그럭저럭 유지하더라도 여윳돈이 없는 상황에서 질병 등 추가로 돈 들어갈 일이 생기면 곧바로 하류노인으로 전락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현금이 흘러넘치는데도 경제 주체들이 돈을 움켜쥐고 풀지 않아 경기가 나아지지 않고 마치 경제가 함정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상태를 ‘유동성 함정’이라 한다. 은퇴자의 경우도 연금이 쉼 없이 나오는데도 일시적 지출에 대응하지 못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이를 ‘은퇴자의 유동성 함정’이라고 하자. 은퇴자는 이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결국 60대 연금술의 핵심은 연금화와 유동성의 적절한 조화라 할 수 있다.
정상연금이냐? 연기연금이냐?
60대가 연금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국민연금의 수령시기를 법에서 정한 시점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뒤로 미룰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있다. 2017년에 만 60세가 되는 1957년생은 만 62세가 되어야 국민연금을 신청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국민연금은 정상 수령 연령부터 받는 것이 기본이지만 최대 5년간 앞당겨 받을 수도, 늦춰 받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앞당겨 받는 것을 조기연금, 늦춰 받는 것을 연기연금이라고 한다. 조기연금을 신청하면 정상연금보다 일찍 수령하므로 1년당 6%씩 수령액이 낮아지며, 연기연금을 신청하면 1년당 7.2%씩 수령액이 늘어난다.
1957년생이 62세에 연금을 신청할 경우 연간 1200만원(월 100만원)을 받는다고 해보자. 이 사람이 연금 수령을 5년 늦게 신청할 경우와 5년 빨리 신청할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5년 늦게 신청할 경우에는 1년당 7.2%씩 급여액이 올라가므로 첫해 연금액은 36% 증가한다. 반면에 5년 빨리 신청할 경우에는 1년당 6%씩 급여액이 삭감되므로 첫해 연금액이 정상연금액보다 30% 줄어들게 된다. 첫해 받게 되는 월 연금액은 조기연금 70만원, 정상연금 100만원, 연기연금 136만원이다. 이렇게 보면 언뜻 연기연금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연기연금에 비해 조기연금은 10년 먼저, 정상연금은 5년 먼저 받기 때문이다.
어떤 수령 방법이 가장 유리한지는 누적연금액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에서 보는 바와 같이 누적연금액 곡선의 기울기가 가장 가파른 것은 연기연금이고, 그다음이 정상연금이다. 이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정상연금의 누적연금액이 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을 초과하지만, 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에게는 추월당함을 의미한다. 정상연금 월 100만원과 이 연금액이 매년 물가상승률(2% 가정)만큼 증가한다고 했을 때 76세가 되면 정상연금의 누적연금액이 조기연금의 누적연금액보다 많아지고, 80세가 되면 10년 늦게 시작한 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이 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을 추월하며, 84세가 되면 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이 정상연금의 누적연금마저 넘어서게 된다( 참조). 이는 84세 말까지 생존해 있을 경우 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이 가장 많음을 뜻한다.
2015년 완전생명표에 따르면, 62세 여성의 기대여명이 25.1세이므로 여성은 평균적으로 연기연금을 신청하는 것이 가장 많은 연금을 받는 방법이며, 남성의 기대여명은 20.6세이므로 연기연금을 우선으로 생각하되 상황에 따라 정상연금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많은 연금을 받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상황이란 가족력이나 본인의 건강상태 등을 말한다. 이 상황을 감안해 기대여명보다 오래 살 가능성이 낮으면 정상적으로 62세에 연금을 신청해야 가장 많은 연금액을 받는다.
‘은퇴자의 유동성 함정’ 피하기
이제 60대 연금술의 전략이라 할 수 있는 ‘은퇴자의 유동성 함정’ 피하기에 대해 살펴보자. 미래에셋은퇴연구소에 따르면, 사망할 때까지 연금이 나오는 종신연금의 적정비율은 은퇴 자산의 규모, 국민연금 수령액, 주택연금 가입금액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은퇴파산 확률이 가장 낮은 종신연금의 비중은 24~42%라고 한다. 종신연금의 비율이 24% 이하로 떨어지면 장수리스크와 변동성리스크 때문에, 42%를 넘게 되면 구매력리스크와 이벤트리스크 때문에 은퇴파산 가능성이 높아진다( 참조). 모든 자산을 종신연금으로 전환해버리면 은퇴파산 확률이 90%로 올라가는데, 이는 일반 국민들이 이용하는 사적연금의 경우 연금액이 일정 금액으로 고정되어 있어 인플레이션에 취약하고, 이 상황에서 질병이나 사고 등 큰 금액의 지출이 생기는 일이 발생하면 대응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을 포함해 종신연금의 비중을 3분의 1 정도로 유지하고, 나머지 자산은 인플레이션 헤지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운용할 필요가 있다. 은퇴 후 인플레이션 헤지를 위해서는 투자형 상품을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저축 투자형 소비’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 이는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가 은퇴 자산을 운용하는 새로운 패턴을 말한다. 과거의 은퇴자들이 저축한 돈에서 매달 생활비를 빼 쓰는 방식을 취했다면, 단카이 세대는 저축한 돈의 일부를 투자로 운용하는 것이다. 단카이 세대는 투자를 위험한 행위로만 생각하지 않고, 돈에게 일을 시켜 새로운 돈을 벌어들이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요즘 일본의 50~60대 남성들의 일상 대화 속에 건강 이야기 못지않게 ‘돈이 되는 금융상품’이 회자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새로운 어른 문화 연구소’의 소장인 사카모토 세쓰오는 저서 에서 아베노믹스가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은 일부 기관 투자가나 해외 펀드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많은 개인 투자가들이 참가했기에 가능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개인 투자가의 중심적 존재가 바로 단카이 세대였다”고 말한다.
투자를 통해 돈이 제대로 일을 수행하면 괜찮은데, 반드시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는 게 투자의 세계다. 이런 경우에 대비하고 아울러 유동성을 확보하기에 좋은 것이 주택연금이다. 주택연금은 만 60세 이상(주택 소유자 또는 배우자)의 고령자가 소유 주택을 담보로 맡기고 평생 혹은 일정 기간 동안 매월 연금 방식으로 노후생활 자금을 지급받는 국가 보증의 금융상품(역모기지론)을 말한다. 주택연금을 받으려면 우선 주택금융공사로부터 보증서를 발급받고, 이를 제휴 금융기관에 내면 그 금융기관에서 주택연금을 지급해준다.
주택연금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연금지급방식이다. 주택연금의 지급방식은 월 지급금을 종신토록 지급받는 종신방식과 고객이 선택한 일정 기간 동안만 월 지급금을 지급받는 확정기간방식으로 나뉜다. 종신방식은 다시 인출한도 설정 없이 월 지급금을 종신토록 지급받는 종신지급방식과 수시인출한도(대출한도의 50% 이내) 설정 후 나머지 부분을 월 지급금으로 종신토록 지급받는 종신혼합방식으로 구분된다. 수시인출한도를 잘 활용하면 ‘은퇴자의 유동성 함정’을 피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주택연금을 신청할 때 무조건 종신지급방식을 고집할 게 아니라 국민연금 수령액,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 수령액을 먼저 계산한 뒤 부족한 월 생활비만큼을 종신연금으로 수령하고 나머지는 수시인출한도를 설정해 유동성을 확보해둘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면 종신토록 안정적으로 생활비를 조달받으면서 갑자기 도래할 수 있는 예상외 지출 건에도 대응할 수 있어 은퇴파산에 빠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손성동(孫盛東)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
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역임. 현재는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로 있으면서 1인기업가를 꿈꾸고 있다. 공식블로그 ‘꿈꾸는 은퇴와 연금’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 동아대와 동서대에 출강하고 있다.
감나무에 남겨진 까치밥을 그리면서 한해를 마무리하는 세밑이다. 세상에 존재하기 어려운 공짜ㆍ정답ㆍ비밀의 함정에 빠져 올해를 보냈다. 새해에는 모두에게 희망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바랐다.
세상에 공짜 있는가
사람은 ‘주고받는 경제활동’을 하면서 살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거래에는 대가가 따른다. 검찰조사에 이어 국회청문회, 특검에 이르기까지 ‘공짜’논란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다. 받아먹은 사람이야 그전부터 공짜라고 우겼으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주는 측에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기부하였다.”고 국민 앞에서 주장하고 있다.
세밑의 정겨운 풍경이 ‘자선’행사다. 냄비 속에 일을 남기지 않고 기부하고, 동사무소에 얼굴도 보이지 않고 어렵게 모은 돈뭉치를 놓고 가는 훈훈한 이야기도 세상에 많다. 하지만 독대를 하고 특정인이 주도하는 재단에 수십ㆍ 수백억을 몰아주면서 순수한 기부를 주장하는 것은 처벌을 피하려는 변명에 불과하다. 자기 부모님에게 용돈 드리면서도 몇 번씩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이 세상의 현실이다.
남에게 받는 ‘공짜’가 결국에 ‘독’으로 돌아온다. “칼자루 잡은 갑인 줄 알았으나 상황이 달라지자 자신이 칼날 위에 선 을로 전락하여 찰거머리 같은 상대에게 시달림을 받았다. 이렇게 터지고 오히려 가슴이 후련하다.”는 법정에서의 고백이 언론을 장식하였다. 상대는 공짜의 대가를 몇 배 더 챙겼다는 이야기다.
정답을 말하지 못한 이유
사회에서 은퇴한 시니어는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이 항상 정답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생활이 나름 성공한 자신의 삶의 결과라고 생각할수록 더 완고해진다. 시니어가 친구들 심지어 자식들과도 의견충돌이 많아진 이유다. “나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자기주장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기 일쑤다.
세상은 날마다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다. 어제의 정답도 오늘 여러 모습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한 마디로 정답은 완벽할 수 없다.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자기만의 ‘정답’을 고수하지 않아야 한다. 가족과 소통하고 친구와 의견을 나누면서 살아야 즐겁다. "정답을 바라지마라."는 말이 정답인 세상이다.
비밀의 함정
두 사람만의 비밀도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고 한다. 오랜 습관에 젖어 종이 몇 장 없애고 PC기록만 지우면 '비밀'이 다 지워지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자ㆍ통신기술이 발달하여 통화ㆍ영상ㆍ사진은 사실상 영원히 기록이 남고 아무리 지워도 복원할 수 있는 세상이다. 골목에 설치한 CCTV는 사실상 모든 행동을 잡아내고 있다. 영원토록 잘못을 숨겨둘 곳은 없다. 바르게 사는 것만이 모두에게 최선이다.
영화가 중년 독신 남녀를 그려내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추릴 수 있다. 지나치게 낭만적이거나 또는 지나치게 뒤틀려 있거나.
김유준 영화 전문 프리랜서
나 같은 할리우드 영화들은 중년 독신들의 있을 법하지 않은 사랑을 있을 법하게 그려낸 대표적인 영화들. 현실에서는 남성이 멜 깁슨이나 조지 클루니처럼 ‘멋지고 튼튼하게’ 늙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중년 독신 여성이 헬렌 헌트나 미셸 파이퍼처럼 아름답고 매력적이기도 불가능에 가깝다.
앞서 언급한 두 영화는 그 힘든 것들을 가볍게 해낸다. 중년들의 세상에서는 ‘노티’가 으레 공기처럼 떠다니지만 그들에게서는 그 비슷한 것조차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의 외로운 신세를 한탄할 때마저 위트 있고 경쾌하다. 그런 그들은 영화 내내 활기찬 모습으로 중년의 사랑을 흥미롭고 유머러스하게 이끌어나간다.
미국의 낸시 마이어스는 이 카테고리(중년 독신들의 사랑)를 대표할 만한 감독. 2000년의 에서 시작해 2003년의 과 2009년의 를 거쳐 최근의 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중년들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그득 차 있다. 때로는 설정들이 터무니없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사랑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매혹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반면 스티브 매퀸 감독이 거머쥔 (2011)의 카메라는 혹독하다. 영화 속에서 브랜든(마이클 패스벤더)은 겉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는 전문직 중년 독신 남성.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그의 마음은 결핍으로 구멍이 뻥뻥 뚫려 있다. 낸시 마이어스는 영화 에서 “내 삶에 뚫린 구멍을 메우고 싶다”는 주인공 벤(로버트 드니로)에게 인터넷 쇼핑몰 회사 인턴으로 지원하게 만들지만, 스티브 매퀸 감독은 그와 같은 낭만적 상상 따위는 애초부터 관심에 없다.
브랜든이 빈 곳을 채우려 집착하는 것은 동물적 성이다. 광적인 포르노 영상 수집에 음란채팅에 성 매매에 이르기까지… 섹스를 갈구하는 그의 발걸음, 섹스와 마주하는 그의 몸부림은 쾌락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자기학대에 가깝다.
브랜든의 여동생 씨씨(캐리 멀리건) 또한 다르지 않다. 다만, 스스로는 결코 채우지 못하는 마음속 어딘가를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기댄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씨씨는 그러면서 말한다.
“우리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야.”
영상을 지켜보는 우리 또한 그녀가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님을 안다.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점도 안다. 그럼에도 영화는 그녀의 삶을 녹록하게 풀어줄 생각이 없다. 스티븐 매퀸의 차가운 영상을 좇다 보면 브랜든과 씨씨가 평생 구원받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릴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그리고 남매의 삶이 곧 우리 것처럼 느껴져 흠칫 뒤를 돌아다보게 된다. 영국 국영방송 BBC가 선정한 21세기 위대한 영화 100편 중 한 편.
노파심에서 덧붙이면 감독 스티브 매퀸은 올드 팬들이 로 기억하는 그 불세출의 명배우가 아니다(이미 세상을 떴으니 그럴 리 없다). 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품에 안은, 최근 미국 영화계가 가장 주목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한 가지만 더. 독일 출신으로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는 시리즈에서 매그니토 역을 연기한 바로 그 배우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브랜든을 연기해 베스니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최근(9월 29일)에 개봉된 프랑스 영화 은 좀 독특하다. ‘지나치게 낭만적이거나 지나치게 뒤틀려 있다’는 두 가지 시선의 가운데쯤 위치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중년 독신을 다룬 영화들 가운데 가장 추천하고 싶은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철학 교사 나탈리(이자벨 위페르)가 맞닥뜨리는 불행은 우리 또한 종종 겪는 그런 종류.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고, 어머니를 여의며, 아이들과의 사이가 점점 더 멀어진다. 경력 쪽에서도 마찬가지. 예전 같으면 가볍게 해치웠을 일들이 점점 더 힘겨워지다가, 끝내 오랫동안 자부심을 갖고 집필해온 철학 총서를 유행에 맞게 바꾸는 작업에서도 밀리고 만다.
나탈리가 우리와 다른 점이라면 그녀가 이 별별 종류의 불행을 거의 동시에 맞닥뜨린다는 점. 가장 충격적인 것은 바람이 들통난 뒤의 남편 태도. “그냥 좀 모른 척하면 안 돼?” 숫제 적반하장 수준이다. 이제 나탈리의 신세는 늙고 뚱뚱해서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는 어머니의 고양이 ‘판도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경탄할 만한 것은 그런 불행을 받아들이는 나탈리의 자세. 그녀는 통곡하지 않는다. 몸부림치지도 않는다. 억울할 법도 하건만, 억울해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모든 것들을 껴안는다.
우리가 불행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그녀는 변화라고 여긴다. 남편과 함께 들었던 브람스와 슈만이 지겨워지고, 어린 제자의 차에서 들려오는 포크송이 좋게 느껴지는 것. 중년의 시점에서 찾아온 불행들이 그런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그것이 그녀의 인식이다. 그러면서 말한다.
“변화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미아 한센 러브 감독의 영상은 달빛처럼 잔잔하게 흘러가면서도 단단한 통찰력을 더불어 지니고 있다. 주연을 맡은 이자벨 위페르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프랑스에서는 ‘국민 여배우’로 통하는 베테랑 여배우. 이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좋은 연기를 펼쳐 보인다. 프랑스 영화의 깊이를 기억하는 팬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다.
우리나라 영화 가운데에서는 2014년 발표된 를 꼽을 만하다. 나이든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유독 야멸찬 것이 우리 영화(또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 특징 중 하나이지만, 강제규 감독의 이 영화만은 경우가 다르다. 성칠(박근형)이 금님(윤여정)에게 반지를 끼워주며 “약속… 우리 둘 중에 누가 먼저 죽든, 울지 맙시다. 어차피 잠깐 떨어져 있는 거니까” 할 때는 가슴이 뭉클해져온다. 물론 그조차 미국 영화 이 원작이라는 점이 함정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기대와 우려를 안고 김영란법이 시행되었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확 바뀌었다” 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문가들은 “진통 끝에 새문화가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많은 시민은 연줄문화에서 개인문화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실개천까지 뒤져서 송사리를 잡아서야 되겠는가?
세상에 공짜 없다
수사대상 공직자가 있는가 하면, 제자에게 음료수 하나 받아든 교수도 신고 되었다. 골프장 예약이 무더기 취소되고, 식사 뒤 밥값을 각자 지불하려고 줄을 서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접대문화를 이끌었던 기업들은 바짝 몸을 웅크린 채 지갑을 닫았다. 예식장·장례식장을 꽉 채웠던 꽃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김영란법이 몰고 온 폭풍과 같은 변화다. 그러나 실개천까지 품어대는 이런 것들은 눈에 보이는 겉모양이다. 법에서는 원칙적으로 금품수수를 금지한다. 이 법을 제안하였던 김영란 교수도 공직자의 ‘청탁거절법’이라고 설명하였다.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3·5·10제 접대한도를 따질 때가 아니다. 아무리 각박한 세상인심이라고 하더라도 과거에도 이런 것으로 문제되거나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강물을 더럽히다가 줄줄이 엮이는 큰 물고기에게는 관심조차 없는 새 발의 피일뿐이다.
국가개혁을 위하여 ‘세상에 공짜 없다’는 큰 그림을 그리는 의식개조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세상에 ‘순수한 공짜‘가 있다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거래에는 항상 계산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무시하다가 공짜함정에 빠져든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각자내기가 살길이다
각자내기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이미 생활화 되었다. 젊은이들도 각자계산을 당연시하고 실천한다. 은퇴자들은 ‘만원의 행복’을 즐기고 있다. 국정감사장 국회의원들이 식사 뒤 밥값을 각자 지불했다는 소식이 왜 뉴스거리가 되어야 하는가? 시·도지사도 조찬 회동에서 예외 없이 각자내기는 당연하지 않는가?
기자들에게 더는 점심이 제공되지 않는다고 한다. 교육계 풍경도 달라졌다. 음료수를 비롯해 교사에게 건네려고 가지고 온 선물을 잠시 넣어뒀다가 다시 가져가라는 취지의 물품보관함이 학교에 설치됐다. 담임교사에게 커피나 빵을 대접하는 것도 불법인 바에야 차라리 문제의 소지를 없애자는 취지다.
큰 물줄기를 바로 잡아야
사회 전체의 권위주의적 조직문화가 청산돼야 김영란법이 정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법도 권위주의적 조직문화의 늪에 빠지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갑옷부터 벗어야 한다. 누구도 영원한 갑일 수는 없다. 언젠가는 갑과 을의 위치가 뒤바뀌는 것이 세상사다. 을이라는 반대 입장을 생각하고 실천하면 이 법은 성공하리라 믿는다.
과거 우리나라의 ‘정 문화’에서 선물은 미풍양속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끈끈한 관계 유지 등을 위해 과도하게 주고받고, 접대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런 문화는 필연적으로 부정부패를 낳거나 준법 시스템의 정상적 작동을 가로막곤 했다. 우리사회의 유별난 학연·지연·혈연 등 연줄문화가 빚은 부정청탁 만연도 문제였다. 부정부패 없는 맑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자는 합의 속에 태어난 것이 이 법이다. 세상을 확 바꿀 이 법의 시행초기부터 물줄기를 바로 잡아야 한다.
수술실에서 나온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몽롱하게 피어나기 시작하는 의식을 느끼며 무거운 눈을 겨우 추켜 올렸다. 뿌옇게 보여오는 세상이 살아 있음을 확인해주었다. 몇 번을 깜빡거리다 다시 눈을 감으려 하자 누군가 볼 따귀를 마구 때렸다. 어렴풋이 정신 차리라는 소리로 들려왔다. 깊게 눈을 감았다가 힘을 내서 희미한 세상을 올려다보았다. 15시간 만에 깨어난 것이었다.
운명적 만남
첫 번째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자기 얼굴보다 커다란 군인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까맣게 타올라 알 수 없는 모습이 필자의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다시 눈을 감았다. 정신을 가다듬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 공군 훈련소에 있어야 할 사람이 눈앞에 와 있는 것이다. 웬일인가 싶어 순간에 만감이 교차했다. 갑자기 죄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무서워졌다. 옛말에 고무신 거꾸로 신으면 죄받는다는 말이 번개처럼 스쳐갔다. 그때, "이 사람하고 결혼을 해야만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족쇄가 되었다. 다른 어떤 생각도 그 사람과 헤어지면 마치 벼락이라도 맞을 것만 같았다.
필자는 입학하게 된 대학교가 영 마땅치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마지막 날에 늦게나마 막 떠나려는 전철에 올라탔다. 그 안에서 한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고, 그 남자는 같은 학교 3학년 선배였다. 그렇게 만난 사람과 캠퍼스 커플이 되었고, 필자가 3학년이 될 즘에야 그 사람은 공군 장교를 선택했다. 군 입대를 하면서 마음에 갈등이 생겼다. 살아온 환경과 성격이 너무나 달라 결혼까지는 자신이 없었다. 긴 세월에 걸쳐 제대할 때까지 그 사람만을 기다리기가 힘들 것 같아, 필자의 의사를 전달했다. 그 사람은 결국 군 입대 원서를 찢어버렸다.
방황의 순간
입대하는 날 새벽 아침에 그 사람 친구들은 스카치테이프를 구해서 너덜너덜 해진 입대 원서를 붙여 주었고, 필자가 비굴한 용서를 빌면서 그는 군 입대를 할 수가 있었다. 6개월 장교 훈련 기간이 있었다. 대학 입학 후 미팅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경험이 없던 필자에게 그 사이로 다른 남자와 만남의 기회가 주어졌다. 드디어 처음으로 그룹 미팅을 하게 되었고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남학생들의 소지품으로 뽑기를 하고 일대일로 멋진 한 남자를 만났다. 신비로움과 함께 흥미진진한 대화를 하던 중에 살금살금 배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만남을 방해하는 배를 움켜쥐고 참으려면 더 아파졌다. 모처럼의 기회를 잃고 싶지 않아 억지로라도 웃어가며 꾹 참았다. 식은땀이 줄줄 흘렀고, 끝내는 파트너와 함께 응급실로 실려갔다. 급성 맹장이 터져 복막염으로 대 수술을 하게 된 것이다.
대학 졸업을 하고 그 해 5월 다소곳이 필자는 그 사람 공군 중위와 결혼을 했다. 결혼이 뭔지도 모르고 의무감 만으로 한 것 같기도 했다. 아옹다옹 4년이라는 세월의 교제기간이 있기는 했지만, 성격적 엇갈림은 이미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따로 없었다. 그 갈등이나 다툼은 잠시도 멈추지를 않았고 그 사람이나 필자나 똑같이 개성이 강해 늘 요란한 평행선이었다. 한 사람은 무조건 고기를 좋아했고 한 사람은 채식을 즐겨 했다. 필자는 칼국수를 선택하면 그 사람은 설렁탕을 먹자며 칼국수는 입에도 대지를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필자는 정리 정돈을 잘하고 아기자기한 편이었으나 그 사람은 정리된 것들을 홀 가닥 뒤집어 놓는다. 한번 외출하고 돌아와 보면 도둑이 들어왔다 간 것처럼 온 집안이 난리가 나있다. 놀란 가슴에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 또한 얄팍한 거짓말을 해서 꼭 필자에게 들키곤 한다. 아무것도 아닌 듯했지만 늘 사소한 것들로 싸움은 끝이 없었다. 그때마다 체념도 하고 포기도 하고 가끔씩은 여행을 하면서 아이들만 의지하며 그렇게 지냈다. 그리고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는 다시 배움의 만학 도가 되어 학교생활에 몰두하면서 그 고통의 힘겨운 시간들을 버틸 수가 있었다.
남편보다는 천륜
서로가 관심을 갖지 않기로 하고 새로운 것들에 최선을 다하며 갈등의 아픔을 치유해 나갔지만, 남편은 점점 더 함정의 수렁으로 빠져들며 필자를 힘들게만 했다. 저질러진 뒤처리는 모두 필자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아 돌아왔다. 남이 아닌 남편을 외면할 수가 없다면 차라리 자신을 위하여 품어야만 했다. 아이들이 성장을 하고 필자의 품에서 떠나면서 말했다.
엄마 아빠는 우리가 없으면 맨날 싸워서 어떻게 사느냐고 걱정을 했다. 물론 염려가 되는 부분이기도 했지만 결과는 정 반대였다. 나이 먹고 몸은 점점 고장이 나고 자식들은 곁에 없었지만, 결국 남는 것은 두 부부뿐이었다. 세월 속에 힘들고 병들어 의지할 곳 없을 때, 끝내는 두 사람 밖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슬픈 어느 날에 드디어 뼈 속 깊이 체험하게 되었다.
부부 싸움도 젊고 힘이 남아 돌아가니 싸우는 것이었다. 무조건 자기만이 옳다고 주장하니 개성 강한 두 사람은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삶에 지혜가 생겨나고 뭔가 터득해가는 나이가 되어보니 곁에 있어서 참고 살아와준 남편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필자가 숙연해지면서 철이 들고 있었다. 상대를 인정하며 모든 것은 자신으로부터 크라고 마음먹으며 내려놓으니 평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왜 진작에 풋풋한 젊은 날에는 그런 것들을 인식하지 못 했을 까.
인생 반 고개를 훌쩍 넘어가려 하니 이제야 자신을 성찰하며 깨우치고 알 것만 같다. 그래서 옛말에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있는 것인가 보다. 결국 인생이란 참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얻어지는 것, 그것이 자연의 섭리와 순리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조물주는 극과 극의 사람이 만나 부딪치며 터득하고 참아가면서 그 속에서 인간이 되라고 인연을 맺어 준 것만 같다. 미운 정 고운 정 아쉬움 정까지 다 들어버린, 이제 남편보다는 아이들의 아빠이자 소중한 가족의 가장이 되었다.
이 세상 모든 부모가 미치도록 자신의 아이들을 사랑하듯, 누구보다 가장 가까운 동반자인 그 사람과도 영원히 함께하는 삶의 따뜻한 사랑을 나누어야만 할 것 같다. 가족이라는 위대한 천륜이 되어버린 그 사람을 어찌 남편이라는 말로만 외면한단 말 인가. 이 날까지 함께 함을 깊이 감사하며 곁에 있을 때 더욱 잘해야 하겠다.
어여쁜 자연과 이국적인 풍광으로 여행객의 마음을 흠뻑 사로잡는 땅이다. 그러나 제주를 동경하는 ‘이상’과 제주에 이주하는 ‘현실’은 다르다. 자신의 취향, 소통 문제, 경제적 득실 등 충분한 고려하지 않으면 제주이주는 온갖 고통만 양산할 수 있다.
사람들은 여행 중에 대개 “아! 아름답다. 또 와야지”라고 생각한다. 휴가철이나 휴일에 있는 틈 없는 틈 다 쪼개서 왔기 때문에 여행지에 대한 일종의 환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행복 충만했던 추억은 얼마 지나면 잊어버린다. 그리고 다음엔 새로운 곳을 찾아간다. 한 곳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서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필자도 이런 점에서 마찬기지여서 숙박업소를 예약하지 않고 여행을 즐긴다. 그래야 전혀 새로운 곳을 볼 수 있어서다. 특히 여행지에서 갈림길이 나오면 동쪽이든, 서쪽이든 차 덜 막히고 마음에 드는 곳으로 튼다. 복사기 같은 패키지여행은 절대 시도하지 않는다.
목적지가 없으니 급할 것도 없다. 발길 멈추는 곳이 쉼터요 숙소가 되었다. 길이 막힌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강가에서 텐트 치면 하루 숙박이 되고 버너에 불을 붙이면 식사 한 끼 해결은 문제가 없었다.
필자처럼 한곳 머무는 게 도무지 잼뱅이인 사람은 이런 점에서 제주이주를 생각하지 않는다.
제주는 최근에 관광과 투자가 활성화되고 있다. 숙박시설 단기 임대사업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산행, 사진, 낚시 동호인끼리 월 단위로 임차하여 교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제주에 꼭 이주하여야 할 이유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친구와의 소통도 문제가 된다. 친구와 정담을 나누는 것이 노년의 건강을 지키는 제일 좋은 방법의 하나다. 그런데 아무리 통신문화가 발달하였더라도 친구는 맨투맨으로 얼굴 조우하지 않으면 남이나 매한가지다. 그래서 필자는 친구들과 거의 매일 만난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친구 잃고 이주할 아무런 이유도 찾기 어렵다.
전원에서 살다가 수개월, 길게는 몇 년 사이에 도회지로 되돌아온 이웃을 종종 보았다. 이들은 한결같이 “어릴 적 추억 속의 전원과 현실이 100% 다르고, 친구가 그리워 견디기 어려웠다”고 역 귀향 사연을 말하였다.
제주이주를 장기투자 목적에서 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남은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은 시니어에는 남는 게 없는 ‘허망한 장사’’다. 제주 땅값이 얼마나 오를지 몰라도 투자 금액을 자기 남은 수명 안에 회수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가장 우려되는 건 제주 땅값이 폭락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사실 정보가 어두운 시니어는 이게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판단할 능력이 없다. 만회할 수 없는 함정에 빠져들지 않도록 냉정하여야 한다.
시니어에는 무엇보다 현금자산이 필요하다. 건강 문제 등으로 한 번에 엄청난 몫돈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로 이주하면 투자금, 이자, 관리비, 제세공과금 등 ‘소유비용'이 엄청날 것이다. 이 돈 들이지 말고 살면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는 제주이주보다 편리한 ‘제주 이용’이 그 대안이다. 제주가 마음에 들면 때때로 여행하면 된다.
중년이 좋아하는 아이돌. 잘못 생각하면 짧은 치마로 무장한 여자 아이돌을 쫓아다니는 삼촌 팬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중년의 음악애호가, 특히 색소폰 마니아들 사이에서 아이돌을 꼽자면 단연 강기만(姜其滿·40)씨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강기만씨는 알려진 명성에 비해 늦깎이 데뷔를 한 음악가다. 애초 직업은 군인이었다.
“원래는 군에 있었죠. 2013년 대위로 제대를 했습니다. 색소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부대 근처에 학원이 있어서였어요. 늦게 데뷔를 했지만, 나름의 장점이 있습니다. 인격적으로 완성이 된 이후 음악에 접근했기 때문에 어릴 때 기술적으로 접근하는 친구들에 비해 해석력에 차이가 있죠.”
만학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2010년 1집 를 발표했다. 그리고 4집까지 연이어 앨범을 세상에 내놨다. 학습서 을 비롯해 책도 4권이나 집필했다. 호주 현지에서 한국인이 설립한 호주기독교대학(Australia Christian College)에서 실용음악과 학과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딴 색소폰도 출시됐다.
연주가로서의 활동만큼이나 강기만씨가 잘 알려진 것은 그의 SNS 동호회 ‘색소폰 랜드’를 통해서이다. 네이버 밴드에서 규모가 큰 색소폰 모임 중 하나로 전국에서 회원만 4600명에 달한다. 별도의 여행이나 골프 동호회는 물론 지역별, 종교별 모임까지 있을 정도다. 6월25일에는 전국모임이 속리산에서 개최될 예정인데, 참석 예정인원만 250명 정도 된단다.
“회원들의 색소폰에 대한 사랑은 대단합니다. 대부분 50대 이상의 시니어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들어와 보시면 아시겠지만, 매일같이 회원들의 연주영상이나 게시물이 엄청나게 올라옵니다. 다들 전국에서 열정적으로 연습하고 있죠.”
그의 추산으로 전국의 색소폰 동호인 숫자는 30만~40만명. 악기가 팔린 것만 100만대 정도 된다고 어림잡아 계산한다. 동호인들을 위한 각종 경연대회도 각 지역에서 활발하게 개최되고 있는데, 평균적으로 100팀 정도가 출전한다고 한다. 강기만씨는 이런 대회의 단골 심사위원이다.
그의 특별한 활동 이력 중에는 라디오 DJ가 있다. CTS 기독교 방송 라디오에서 매주 월요일 1시에 를 진행한다. 색소폰이 주제가 되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것은 처음일 것이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그가 이런 활동에 매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색소폰 연주가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쌓는 일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음지에서 연주를 하다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팬들의 사랑을 통해 제가 연주 이외의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만큼, 후배들도 그 길을 갈 수 있게 열어주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후배들의 비중이 큰 것도 그 때문입니다.”
시니어들에게 색소폰이 사랑받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해 강기만씨는 재미있는 답을 내놓는다.
“아마 외로움이 아닐까 싶어요. 중년 이후에 찾아오는 외로움을 음악으로 해소하려는 시니어들이 많은 것 같아요. 또 색소폰 자체와 연주하는 모습에서 풍기는 멋진 모습이 주목받게 해 주니까요. 색소폰이 갖는 특유의 음색도 시니어들에게 어필하는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음악을 시작하려는 시니어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그는 색소폰을 시작하려면 먼저 좋은 스승을 찾아, 충분한 연습을 하는 것이 정도(正道)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남의 연주를 많이 듣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악기에 대한 얘기도 꺼내놓았다.
“색소폰을 시작하는 시니어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이 두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 비싼 악기로 부족한 음악적 소양을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있죠. 하지만 비싼 장비를 갖는다고 실력이 나아지진 않습니다. 연습만이 살 길이죠. 두 번째 함정은 반주기에 너무 의존한다는 것이에요. 적당한 레슨 없이 반주기만 틀어놓고 연습하는 것은 음악을 예술이 아닌 게임으로 변색시키는 것이죠. 타이밍에 맞춰 음계를 내놓는 것이 아니라 리듬에 운율과 감정을 실을 수 있어야 진정한 연주가 됩니다. 연륜과 열정이 묻어나올 수 있는 연주를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친구들과 오르는 경기 동두천 마차산은 온통 연두색 파스텔화다. 정상에서 태풍급 폭우를 맞으면서도 누구 하나 힘들어하지 않았다. 나무 향기 가득하고 쏟아지는 빗줄기가 미세먼지까지 말끔히 씻어낸 쾌적한 ‘전원’이기 때문이다.
시니어는 은퇴 후 편리한 도시를 떠나 전원생활을 꿈꾸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전원에서 살다가 짧게는 수 개월, 길게는 몇 년 사이에 도회지로 되돌아온 이웃을 종종 보았다. “어릴 적 추억 속의 전원과 현실의 그것은 전혀 다르고 고독감, 교통 여건과 편의·의료 시설 부족이 큰 문제”라고 역 귀향 사연을 말했다.
장래를 생각해 전원에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보고 철수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시니어는 이러한 함정에 빠져들지 않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도시에서 전원처럼 쾌적하게 생활할 방법을 찾자.
첫째,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는 ‘소유’보다 편리한 ‘이용’이 대안이다. 사실 시니어가 부동산에 장기 투자할 이유가 별로 없다. 투자비용, 관리비, 제세 공과금 등 ‘소유비용’이면, 마음에 드는 전원을 찾아 즐기거나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서해안 명승지에 전세 들어, 바다낚시와 조개잡이로 얼굴을 검게 그을리면서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는 친구가 있다. 2년 계약이 끝나면 다음에는 깊은 산골로 갈 예정이라고 자랑했다. 일부 명승지에서는 월 단위 임대사업도 최근에 유행하고 있다. 동호인끼리 한 주일씩 교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둘째, 멀리 다니기 어려우면 도시에서 전원생활을 즐기자. 관악에서 정들어 산 지 어언 30여 년이 넘었다.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사는 고향처럼 느껴지는 아담한 ‘전원마을‘ 이다. 집 앞과 뒤, 옆으로 초·중·고등학교가 연이어 있다. 아이들은 전학 한 번 안 하고 학교를 마쳤다.
울창한 숲 덕분에 여름철에는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시원하다. 계곡 물놀이장은 어른·아이들 천국이 된다. 서울·관악산 둘레길이 잘 꾸며져 누구나 산책하기도 좋다. 아침마다 경쾌한 음악소리에 맞춰 체육공원에서 열심히 운동할 수도 있다.
이보다 더 쾌적한 전원이 어디에 있겠는가? 매주 배낭 메고 친구들과 찾는 북한·도봉·청계산은 우리 차지다. 전원생활! 바로 내 앞에 있다.
조동성 안중근의사기념관장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로 무려 35년 반을 재직한 대한민국 경영학계의 대표 학자다. 디자인 경영 개념을 제시하여 경영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왔던 그는 2011년 남산에 위치한 안중근의사기념관 관장으로 취임했다. 교수로서의 성공적인 생활에 이어 새로운 삶에 도전하고 있는 조동성(趙東成·67) 관장의 목소리를 통해 ‘인생 본고사에’ 도전하는 의미를 짚어봤다.
조동성 안중근의사기념관장은 인터뷰 내내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아마도 입가에 가시지 않는 웃음기가 그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몇 년 전 서울대학교에 있는 그의 집무실에서 봤을 때와는 또 다른 젊음이 새삼 느껴졌다. 그는 안중근 의사를 ‘로맨티스트’라고 표현했다. 원칙에 살고 원칙에 죽었던 이였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도 안중근 의사에 대해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며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에 대한 의욕을 보였다.
아직 안중근 의사에 대해 모르는 점 많아
“대략 1년에 10만 명 정도 기념관을 찾고 있어요. 저는 경영학을 한 사람이다 보니 마케팅을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좌상이 아니라 보부상이 되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안중근 의사 기념관 홍보대사란 직함을 만들었습니다. 500여 명을 홍보대사로 양성 및 위임하여 전국의 각 초중고에 가서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카데미를 만들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요.”
안중근아카데미는 지난 5년 동안 1년에 두 기수씩 진행됐다. 50대, 60대로 학교 교사, 대학 교수로 은퇴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국민의 혈세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돈을 벌 수 있으면 자체 수입을 만들어서 정부 지원을 되도록 안 받는 쪽으로 가자는 생각이 있어요. 혈세는 받을 만큼만 받자는 거죠. 마침 여기가 위치가 좋아요. 서울역이나 남대문에서 5분 거리입니다. 직장인들도 많이 다니구요. 그래서 찻집을 하나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돈도 벌고 사람도 오게끔 하려는 생각이에요.”
조 관장은 그에 더해 ‘의류 사업’(?) 진출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캐릭터가 미키마우스입니다. 그 다음이 체 게바라라고 해요. 체 게바라는 티셔츠로 그렇게 유명해질 수 있었죠. 안중근 의사도 그렇게 해보고자 합니다. 돈을 버는 것과 함께 사회적 역할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찔레이자 장미다
조 관장은 2014년 2월 서울대학교에서의 35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마치게 됐다.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서울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덕분이었다.
“어머니에게 서울대에서 일을 시작한다고 알려드린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날 저에게 ‘무릎 꿇고 앉아라. 나하고 약속을 하자’라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어머니는 저에게 ‘정년 퇴임할 때까지 서울대를 떠날 생각을 하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가 1978년이었죠.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살게 됐어요. 사실 학교를 떠날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어머니의 말씀이 저를 붙잡았죠.”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이 모이는 곳에서 보낸,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렇게 한 우물을 팠을 때 얻는 것과 잃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한 우물을 파야 물이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성이 확실하게 있다고 생각이 들면 성공할 때까지 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조 관장의 저서 중에는 라는 공저가 있다. 그렇다면 그는 장미의 삶이었을까 아니면 찔레의 삶이었을까?
“장미는 축적하는 삶입니다. 반면 찔레는 처음부터 가진 걸 즐기는 삶이죠. 큰 조직의 일원으로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삶은 장미입니다. 군대나 대기업이 대표적인 장미의 삶이죠. 장미는 자기 삶이 없고 50, 60대가 되면 힘들어집니다. 그에 비하면 교수는 찔레의 삶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찔레도 한 길만 계속 파다 보면 장미처럼 돼요. 그러니까 제 삶은 장미와 찔레로 굳이 구분 짓는다기보다는 일정한 궤적으로서의 삶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서울대라는 조직은 조직 구성원이 갖고 있는 능력을 확장해줄 수 있는 곳이라는 특성이 있음을 잊지 않았다. 같은 말이라도 서울대 교수가 말한다고 하면 좀 더 믿음이 갈 수밖에 없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그는 그 현실에 혜택을 받으면 받았지 자신이 희생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교수 생활의 마지막 봉사
조 관장은 서울대 교수 생활의 마지막 해에 경영학 교수로서 사회에 어떤 봉사를 할까를 고민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서울대가 아닌 대학교 학생들에게 특강을 하는 게 자신이 할 수 있는 확실한 봉사라고 판단했다.
“제가 지도한 학생들이 전국 70여 개 대학에 교수로 있어요. 그들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두 시간 정도 특강 시간을 주면 내가 가서 특강을 진행하겠다, 향토음식을 사주면 맛있게 먹고 돌아오겠다라고(웃음).”
그렇게 15개 대학이 정해졌고 한 주에 한 번씩 특강을 나갔다. 2013년 9월부터 12월까지 2학기 내내 가졌던 강의 봉사 속에서 그는 많은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강의를 똑같이 하려다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받아서 그중에서 괜찮은 걸 골라 강의하자고 했어요. 질문들 중에 가장 많이 나온 게 두 개였어요. 첫 번째는 ‘좋아하는 걸 할까요, 잘하는 걸 할까요’였습니다.”
그는 그 문제에 대해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없었다고 술회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많이 나온 질문에 대해 답하다 보니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더란다.
“두 번째로 많이 나온 질문은 ‘꿈’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꿈에 대한 질문은 즉답을 하는 순간 질문의 함정에 걸리는 거예요. 묻는 이가 스스로 선택하여 말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그가 본 꿈을 대하는 학생들의 유형은 다음 네 가지였다.
1.확실하게 꿈이 있고 그 꿈이 절대 안 변하는 사람
2.확실하게 꿈이 있는데 확실하게 바뀌는 꿈
3.꿈을 가지고 있느냐고 하면 적당히 내 꿈을 말하지만. 자신이 없고 확신이 없는 것.
4.아예 깨끗하게 꿈이 없는 것. 내 꿈이 아니라 가문의 영광, 부모의 꿈 등등.
“1, 2는 그 사람의 꿈이 확실한 겁니다. 반면 3, 4는 꿈이 없거나 모르는 거죠. 되레 3, 4의 유형은 크게 부담이 없어요. 이들은 잘하는 걸 계속하면 됩니다. 그러나 1, 2는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좋아하는 걸 하라고 해야겠죠.”
자신의 첫 번째 스승, 아버지
조 관장은 자신의 삶이 평탄하기만 했던 것 같지는 않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가 안 나오거나 친구 관계가 틀어지거나 하는 소소하지만 심각한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것들에 대해서 연연하지 않는 품성이 그러한 갈등이 큰 상처가 되는 걸 막았다. 그의 그런 기질은 아버지로부터 배운 면이 있었다.
“선친께서는 교수를 하다가 정부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국회의원에도 출마하셨죠. 그러나 당선은 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가 제가 막 대학생이 됐을 때였죠. 낙선한 그날 아버지께 깎은 사과를 드리기 위해 방에 들어갔는데 아버지께서는 거기서 책을 쌓아놓고 글을 쓰고 계시더군요. 뭐하시냐고 여쭤봤어요. 책들은 러시아로 된 책들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나라가 남북 분단이 되어 있고 통일이 가장 큰 과제인데 소련의 도움 없이 통일될 것 같지가 않다. 옛날에 러시아에 대해 배운 걸 정리해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패배한 선거날에 말이죠. 그런 분이셨습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게 아버지의 철학이었습니다.”
미래를 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아버지 덕분이었다는 그는 그런 습관 덕분에 서울대 교수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쉬지 않고 일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제 비로소 인생 본고사를 시작한 셈
조 관장은 교수직 퇴임 이후의 가장 큰 변화로 중압감에서 벗어난 걸 들었다. 서울대학교라는 이름의 무게에서 그도 자유롭지는 못했던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 신경 쓰게 되더군요. 교수 사회에서도 최고여야 하고 표정, 행동, 매너 등등을 고민하게 돼요. 제 한마디가 서울대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면 더 그렇죠. 그런데 학교에서 월급 받을 때와 달리 지금은 명예교수니까. 명예교수는 한 푼도 안 받거든요(웃음).”
그는 인생 후반전이라는 말은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저는 제가 후반전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제가 고3일 때, 모의고사를 열 번 보고 본고사를 봤어요. 그래서 40대, 50대일 때는 모의고사를 7번 본 거 같았죠. 두세 번 더 보면 이제 진짜 인생의 본고사를 보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서 8번째, 9번째 모의고사를 봤고. 지금에 와선 모의고사는 다 봤고 이제야 본고사를 볼 시간이라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은퇴 후 인생이란 표현이 저에게는 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스승이 많으면 행복한 삶이라고 하던가. 그는 자신에게 인생의 가르침을 준 사람들을 하나하나 꼽았다.
“첫 번째, 두 번째가 아버지와 어머니입니다 세 번째 분이 중학교 때 교장 선생님이에요. 그분께서는 ‘올림픽 기록은 지키라고 있는 게 아니라 깨라고 있는 거다. 역사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깨기 위해서 하는 거다. 하루하루를 과거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를 깨고 새롭게 나아가기 위해 살아라’라고 말씀하셨죠. 그 말씀이 지금도 생각나요. 그리고 서강대 경제학과를 맡고 계셨던 김덕중 교수님입니다. 그분께서 1975년께 제가 하버드대학을 마치고 막 귀국했을 때 말씀하셨죠. ‘하버드를 나왔으니 기고만장할 때다. 사회에서도 인정해줄 거다. 그거 딱 5년 간다. 하버드라는 이름이 깨질 때를 위해 지금 준비하고 능력을 쌓아라’라고요. 정신이 번쩍 들었죠.”
누구라도 세상에 도움이 될 능력을 갖고 있다
조 관장이 접한 경험, 그리고 그가 만난 스승들은 그에게 미래를 놓지 않는 힘을 갖게 만들었다. 그는 그러한 힘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접근하지 못했던 분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는 최근 ‘사람의 능력을 발견하는 작업’에 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자폐증인 사람들의 능력을 발굴하는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군대 시절, 고문관인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친구였죠. 그런데 그 친구가 어느 날 풀피리를 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소리에 모든 사람이 감동을 받았고, 저 또한 마찬가지였죠. 이 세상에 불필요한 사람은 없다는 걸 느끼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군대 시절의 기억은 그에게 사람에 대한 관점을 바꾸게끔 만들었다. 그의 이 새로운 작업은 무엇보다도 그의 가족 중 한사람이 자폐증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요즘은 자폐증 부모들이 어떻게 자녀들의 능력을 찾아냈는가를 연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생각해보면 풀피리를 불었던 그 친구를 접한 경험에서 갖게 된 자세 같기도 해요. 누구에게라도 능력은 있다, 그러니 그걸 찾아내게 돕자는 겁니다.”
끊임없이 미래를 갈구하는 이가 이제 타인의 미래를 찾아주기 위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려 한다. 실로 아름다운 나비효과 아닌가. 이제 인생 본고사를 치르려 한다는 조 관장의 말이 실제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