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계획만으로도 즐거워지는 게 여행이다. 한동안 집안에 우환이 있어 마음고생하는 엄마가 안쓰러웠는지 아들이 국외 가족여행을 제의했다. 한 달여 전부터 아들과 며느리는 열심히 여행지를 알아보고 예약하는 등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예쁜 손녀 손자와 함께여서 더욱 설레고 즐거운 기분이었다(그러나 젊은 시절과 달리 아기들 데리고 다니는 게 그리 쉽지는 않아서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아들이 어렸을 땐 한 손으로 번쩍 안고 다녀도 전혀 힘들지 않았는데 이제는 아기를 잠시 안고 있어도 힘에 부쳐 세월이 야속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필자에겐 국내, 국외여행을 함께하는 친구 삼총사가 있다. 필자와 달리 그 친구들은 평소 일어 공부도 열심히 해서 일본 정도는 자유여행을 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항상 여행사의 패키지를 선호했다. 여행사를 통한 여행과 다 알아서 해야 하는 자유여행은 각각 장단점이 있다. 가이드를 따라 하는 여행은 일단 여행비용이 적게 든다. 또한 그 나라의 어디를 보아야 할지 무엇을 먹을지 등을 전혀 고민할 필요 없이 지시에 따르기만 하면 되니 편하다. 그래서 패키지여행을 선택했는데 친절한 가이드 덕분에 여행한 나라의 볼 만한 곳과 역사 유적지를 돌아보고 새로운 지식도 얻을 수 있어 항상 즐겁고 보람이 있었다. 단점이라면 개인행동을 할 수 없다는 것과 하루 세 번 식사를 해결해주니 가보고 싶은 유명한 맛집을 따로 경험할 수 없어 아쉽다는 점이다.
자유여행은 어디라도 가고 싶은 대로 다니고 먹고 싶은 음식도 고를 수 있어 좋지만 항공권부터 숙소와 여행 장소까지 알아서 정해야 하니 번거롭고 언어도 잘 통하지 않을 것이어서 걱정스러운 점이 있다. 이번 가족여행을 패키지로 갈 것인지 물으니까 아기들이 어려서 패키지는 무리란다. 여행지는 일본이고 여러모로 알아보니 오키나와가 비행시간도 2시간 정도로 짧고 아이들 놀기에 적합한 휴양지라 한다. 벌써 저희끼리 3박 4일의 일정도 다 짜놓아서 따르기만 하면 되니 편했다. 필자와 나이가 비슷한 시니어들도 대부분 고만한 손자 손녀가 있을 것이므로 가족여행으로 일본을 선택할 경우 필자가 경험한 것들을 알려드리면 도움이 될까 해서 이 글을 쓴다.
며느리는 다섯 살 손녀와 17개월 된 손자 때문에 무엇보다 숙소가 편해야 한다며 오키나와 중부쯤에 있는 바닷가의 멋진 호텔 몬테레이를 선택했다. 1박에 40만원이었다. 비행기는 아시아나로 어른 셋에 아기 둘 포함 100만원이었다. 그리고 공항에 내리면 미리 예약한 렌터카를 여행 동안 이용하는 데 26만원, 반환하면서 기름을 가득 채워주면 된다고 한다. 우리는 300km 정도를 다녔고 3만원어치 주유를 해서 반납했으니 쇼핑과 식사를 제외한 여행 기본 비용은 250만원이었다.
호텔에서 아침은 뷔페나 일본 가정식을 골라먹을 수 있어 점심과 저녁만 사먹으면 된다. 미리 검색해간 유명 음식점을 빼놓지 않고 다녀볼 수 있어 좋았다. 이 모든 예약을 며느리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해결했다. 참 편리하기도 하고 스마트폰 기능을 잘 아는 며느리가 대견스럽고 한편 부럽기도 했다.
일본은 모두들 알다시피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필자도 한 번 운전해보고 싶었지만 국제면허가 없어 아쉬웠다. 평소 운전을 잘하는 시니어라면 국제면허를 꼭 따서 오른쪽 운전으로 차를 달려보는 이색적인 경험을 해보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10월의 막바지여서 한낮의 태양은 뜨거워도 아침저녁으론 좀 춥다고 느껴지는데 오키나와는 제주도보다 더 남쪽이어서 지금도 기온이 30도를 넘는 한여름이다. 이렇게 미리 계획한 대로 즐겁고 행복한 가족여행이 시작되었다.
여백서원(如白書院)의 주인장 전영애(全英愛·65) 서울대 교수에게 “정말 나이가 안 들어 보이신다”라고 말하자 “철이 안 들어서”라는 대답이 웃음과 함께 돌아온다. 어쩌면 이 각박하게만 보이는 세상에, 서원이라는 고풍스러운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철이 안 든 일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철이 안 든 게 아니라 자신이 올바른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에 실천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다. 서원에서 확인한 책과 책의 가치에 관한 문답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 사진 이신화 여행작가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걸은리의 여백서원(如白書院)은 말 그대로 책의 집이다. 전영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아버지의 호 여백(如白)을 빌려 와 ‘맑은 사람들’을 위해 만든 이 공간에는 전원의 한적함과 생명력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었다. 인터뷰는 늦은 매미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지고 있는 가운데 소장한 책이 몇 권이냐는 질문부터 이뤄졌다.
“우와, 책이 얼마나 되나요?”
“몰라요. 그런 거 알아 뭐해요.(웃음)”
서원을 통해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다
전 교수는 올해 모교인 서울대에서 20년 동안의 교수 생활을 마치고 은퇴했다. 2009년에 국내 최초로 괴테 시 전집을 번역하고 독일 바이마르 괴테학회로부터 괴테 금메달을 받는 등 독일문학 분야에서 학문적인 업적을 탄탄히 쌓은 그녀에게 아쉬운게 있는지 궁금했다.
“늘 그렇죠. 절대적인 낙원이 어디 있겠어요. 이곳도 사람들 보고 숨 좀 쉬라고 만들었지만, 언제나 위협이 있죠. 예를 들면 여기에 조경을 잘 해놓으니까 주변에서는 농사도 못 짓는 땅인데 비싸게 내놓고. 갑자기 수영장 딸린 별장을 짓는다는 등 뭐 그런 얘기들도 있고. 도리 없죠.”
못다 한 걸 물으니 개인이 아니라 서원을 먼저 생각한다. 서원의 완성을 떠올린다. 전 교수에게 여백서원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이 많이 오세요. 좋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더 바랄 게 없어요. 조경하시는 분도 오고, 을 읽으시고 암 치료 받는 분도 오시고. 그분들 중에 놀라운 분들이 많아요. 세상에 이상한 사람들이 난리 쳐도 귀한 분들이 숨어 있는 거예요. 그러니 처음 만난 사람들이 여기서 밤새도록 얘기하고 그래요.”
전 교수는 만난 사람들에 대해 연신 예쁘고 아름답다는 표현을 거듭했다. 마치 세상을 다시금 발견하게 된 사람처럼. 그녀는 자신이 운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어머니와 할머니가 참 좋은 분이어서 순전히 조상 덕에 잘 사는 게 아니냐며 웃음 짓기도 했다.
귀하게 여긴 책에서 느낀 힘
전 교수는 오래된 보자기에 싸 놓은 책들을 조심스레 꺼내 보였다.
먼저 어머니(김한섭)의 책. 1990년에 작고한 어머니는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다. 평생 고생만 한 그 어머니가 필사한 책이 있다. 배움에 대한 욕망이 컸던 어머니는 책이 귀했던 시절, 한지에 책을 베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보고 외웠다. 소설본, 조선시대 가사를 적은 두루마리들이 전 교수의 손에 남았다.
그리고 아버지(전우순)의 책.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사업을 했던 아버지는 60대 후반에 등산을 시작해 90세까지 매년 에베레스트를 올랐다. 그의 조부는 소수·도산서원장을 지낸 유학자인데, 250년 전 괴테의 글은 줄줄 읽는 딸이 증조부의 글을 못 읽는 게 안타까워 조부의 문집을 한글로 번역해 1000장의 종이에 붓으로 썼다. ‘91세 우순이 피로 번역하고 쓰다’라고 서명한 번역 작업을 2011년 6시간 반에 걸친 담도암 수술을 받은 뒤 마무리하고 6개월 만에 별세했다.
여백서원에는 괴테의 초간본(1819), 희귀본(1853)을 비롯한 200여 권의 독일문학 관련 서적이 있다. 바이마르 괴테학회 재정 감사였던 홀레씨는 별세하기 직전 다시 전 교수를 식사에 초대했고, 며칠 후 “당신이 갖고 있는 게 가장 좋겠다”면서 항공편으로 자신의 장서를 부쳐 왔다. 홀레씨가 임종을 앞두고 정리를 해서 보낸 것이다. 다들 훌륭한 사회인들인 당신 자녀들도 있는데 홀레씨는 가장 귀중한 책들을 전 교수한테 보냈던 것이다.
“그 책들을 누구에게 보내야 가장 귀하게 읽히고 잘 보관될 것인가를 많이 생각하신 것 같았어요. 11일 동안 그 집에 쌓인 수많은 편지를 보고 여러 일화를 들으면서 그의 생애가 얼마나 아름다워 보였던지요.”
여백서원에는 이 책들과 함께 전 교수가 시의 스승으로 모시는 동독 출신 시인 라이너 쿤체의 책, 학문의 스승으로 모시는 헨드릭 비루스 교수의 책, 자신이 쓰고 번역한 책, 교양수업 ‘독일 명작의 이해’를 수강한 제자들이 종강 때 각자 한 권씩 만든 책, 서원에 다녀간 사람들의 책까지 소중하게 간직돼 있다.
전 교수는 여백서원의 존재 이유로 이처럼 좋은 책의 보관과 함께 좋은 사람들의 보존을 든다. 책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 한국에 대해 알고 싶은 외국 시인 누구에게나 여백서원은 열려 있다. 책이 있는 집, 서원에서 삶의 여백을 찾도록 해주고 싶다고.
힘들면 책을 읽어요
전 교수는 몸이 힘들면 책을 읽고 책을 읽다 머리가 아프면 몸을 움직인다. 그녀는 글을 알면 세계가 열린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험을 보려고 배우거나 출세하려고 배우는 건 너무 불쌍하다고도 했다.
“차 한 잔을 마셔도 사람이 가까워지는데 누군가가 온 힘을 기울여 쓴 책을 읽는다는 건 상당히 많이 받는 거예요. 그러면서 남들을 이해하게 되고 그러는 거지. 그래서 나이 먹어서 책을 읽는 것은, 아무 거나 읽어도 좋은 거예요.”
그녀와 괴테의 인연은 남다르다. 어떻게 괴테를 접하게 됐는지 물어봤다.
“중학교 때 어디선가 시를 하나 봤어요. 그때는 괴테도 모르고 시 제목도 몰랐어요. 그런데 괴테가 쓴 이라는 만년의 시집이 굉장히 중요하고 정말 어렵거든요. 그 책 한 권을 다 읽으니 끝에 괴테가 그 시집에 넣지 않고 버린 것을 편집자가 넣은 시가 몇 편이 붙어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에 제가 중학교 때 봤던 시가 들어 있는 거예요. 하도 놀라서 중학교 때 읽은 그 시가 어떻게 아직까지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남아 있었을까, 그 이유가 뭘까 고민하며 그 시를 분석하는 게 제가 독일의 출판사에서 낸 괴테 연구의 첫 페이지입니다.”
4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괴테의 시
중학교 때 본 시를 다시 보게 되기까지 어언 40여 년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남아 있는 괴테 시의 힘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괴테 본인이 많은 힘을 거기에 쏟은 거예요. 그게 읽는 사람에게 다가온 거죠. 놀라운 체험이었어요. 괴테는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건 하나도 안 썼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평생 연시를 썼어요. 그렇다면 평생 연애 경험이 있다는 건데, 그게 뭘 저지른 게 아니고 아름다운 글을 남김으로써 그 단계를 넘어선 거예요.”
전 교수는 자연스럽게 예술의 인간적인 한계를 넘어선 숭고한 단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런 괴테가 전 교수에게 어떤 롤모델로 작용한 부분이 있을지 궁금했다.
“괴테에게서 탐나는 점이라면 자만이 아닌 자긍심이었어요. 예를 들어 저는 계단을 꼭 뛰어다녀요. 그런 제 모습을 보면 어떤 사람은 스포티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바쁘다고 해요. 그런데 제가 계단을 뛰어다니는 건 계단을 걷는 게 힘들어서예요. 물론 괴테가 계단을 뛰어다니고 그러진 않았어요. 그런데 그 사람의 생활 태도가 그랬어요. 힘든 게 있을 때 그렇게 극복하더군요. 그게 자긍심이죠. 눌리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극복하는 것. 세상을 대하는 훨씬 더 적극적인 태도죠.”
우리 의젓하게 살자
그녀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말이 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모두가 다 힘드니까, 힘든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말이었다.
“자기 분야에서 잘하시는 분에게는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박수를 치고 싶어요. 힘 안 드는 일이 어디 있어요. 하지만 의젓하게 살아야 해요. 옆도 좀 돌아보고. 애들이에요? 울기만 하면 돼요?”
최근에 흔히 쓰이는 헬조선이라는 말에 대해서, 그녀는 매섭게 비판했다.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 치고, 우리를 누가 여기에 넣은 건가요? 우리가 만든 건데. 금수저, 흙수저… 뭐 어쩌라고요. 형편이 어려운 건 다 알지만 누구나 어려워요. 그런데 승복이라는 게 없고 ‘넌 운이 좋아서 그런 거고 난 재수 없어서 이러고 있어서 너 미워’, 이거 아니에요? 나보다 힘들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을 돌아보면 나도 힘을 얻고 그러는 건데 애들처럼 찡찡거려서 되겠어요? 부딪혀서 아프면 자기가 부딪힌 거지 그게 기둥이 때렸어요, 땅바닥이 때렸어요? 자꾸 남 탓하고 여건 탓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정서가 그렇게 가는 것 같아서…. 남 탓하는 건 어마어마하게 잘 하고 자기를 돌아보는 건 못 하는 것 같아서 걱정돼요. 우리 좀 의젓하게 살자고요.”
책이 즐거우면 계속 하고 싶어진다
서원 본관을 둘러보니 그녀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이 만든 책들이 보였다. 한 학기 교양 수업을 듣고 만든 책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책들이었다. 그녀의 수업은 교재가 없고 시험이 없는 대신, 각자 학기말에 교재를 만들어 내게 한다. 그녀가 갖고 있는 공부 철학이다.
“공부는 자기가 스스로 해야죠.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것 정도로 제가 잘 가르칠 자신이 없어요. 내 자식들에게도 마찬가지였고. 요즘 부모님들은 어떻게 그렇게 자신이 넘치는지 모르겠어요.”
가끔씩 독자들이 물어보는 말, 손주가 책을 안 읽는데 어떻게 읽게 하느냐는 고민에 대해 전 교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
“세상에! 아이가 책을 읽지 않으려 하면 읽지 말아야죠. 왜 읽어라 마라 해요. 아이는 책 읽는 시간이 즐거우면 나중에도 즐겁게 책을 읽게 돼요. 전 아무리 바빠도 잘 때가 되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줬어요. 아이들도 그 시간이 너무 즐겁기 때문에 책에 익숙해졌어요. 아이들에게 피아노 배우라고 들들 볶으면 아이들은 피아노를 배우는 게 아니라 들들 볶는 걸 배우게 돼서 대대로 들볶게 돼요. 그러나 엄마가 즐겁게 피아노를 치면 애들도 피아노를 치죠. 그걸 왜 억지로 시켜요? 책을 같이 재미있게 읽으세요. 즐거우면 즐거운 시간의 기억을 되풀이하고 싶어지죠. 그런데 즐거운 시간이 안 만들어지니 책과 멀어지는 거죠.”
고서의 향기를 품고
즐거움과 보람은 전 교수가 지향하는 공부법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행해졌다.
“사람들이 운동이 중요하다는 거 다 알잖아요? 그런데 돈을 내고도 안 하기도 하고. 하지만 운동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노동이에요. 노동을 하면 보람이 있으니까. 그래서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는 게 제 주장입니다. 일을 안 시키면 약해져요. 제 아이들이 걷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시킨 일은 현관에서 냉장고까지 우유를 배달하는 거였어요. 자기가 우유 배달을 안 하면 온 식구가 우유를 못 먹게 되죠. 얼마나 보람 있어요?”
전 교수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을 ‘말도 아닌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녀는 대신 ‘올바른 목적이 있는 길은 그 어느 구간에서도 바르다’는 말을 믿고 있었다. 그러한 마음이 그녀의 삶의 태도를 결정하고 지금 여백서원의 주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어가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도 그녀다웠다.
“나이 들면 얼마나 좋은데요. 저는 젊었을 때도 나이 들기를 소망했어요. 언제나 지금이 좋은 때여서, 두려움 등의 온갖 생각이 하나도 없어요.”
고서(古書)의 기품이 나는 전 교수 같은 분들이 세상에 온전히 남아 있으면 그게 바로 세상이 나아지는 길이 아닐는지. 여주에서 올라오는 차 안에서 내내 ‘말이 서야 나라가 선다’던 함석헌 선생의 문구가 맴돌았다.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
서울대를 졸업하고, 1996년부터 모교인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지내다 올해 은퇴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고등연구원 수석연구원, 뮌헨 대학과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의 초빙교원을 겸임했다. 2011년 바이마르에서 ‘괴테금메달’을 수상했다. , , (공저), , , , , , 등 6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엄마, 우리 홍콩에서 만나자”
벤쿠버에 워홀 갔던 딸 아이가 돌아올 즈음 내게 재미난 제안을 하나 해왔다. 홍콩 경유 티켓을 끊었으니 홍콩에서 만나 3박 4일 여행을 함께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 전날까지 외롭다, 우울하다, 힘들다를 반복하며 눈물을 짜내더니 하루 아침에 태도가 돌변했다. 엄마를 만나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다고 생각 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 모양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콜~”
을 외쳤다.
“엄마 티켓은 엄마가 해결 해”
전화 뒷꼭지에 대고 외치는 딸 목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그래, 나도 고등교육 받은 사람이다’
혼자서 해외에 가본 적 없고 영어를 못해서 어찌지 하는 두려움은 전화를 끊고 나서 한꺼번에 몰려왔다.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중3 짜리 아들을 설득해 함께 가자고 했다. 엄마가 영어 못해서 싫다는 아이에게 신발도 사주고 용돈도 주면서 여러날 회유했다. 무심한 아들은
“여행 가서 잔소리 안한다고 약속 해”
라며 선심을 쓰듯 수락 하였다.
제주항공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면서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호텔을 검색하니 가격도 비싼데다 정원이 두 명씩으로 표시돼 있었다. 호텔에 트리플 룸이란 게 있는지 조차 몰랐던 나는 그냥 한인민박에 덜컥 예약을 해버렸다. 모든 준비가 다 되고 출발 날만 기다리고 있을 즈음,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나는 엄마 보다 하루 늦게 도착할 것 같아”
“왜?”
“시차 계산을 잘못 했어”
“뭐라고?”
한 손엔 나보다 큰,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한 손은 빼곡히 적힌 메모지를 들고 불안한 눈으로 넓디넓은 첵랍콕 공항을 둘러보았다. 버스 타는 곳은 어디인지, 옥토퍼스 카드는 어디서 사야하는지 두리번 거렸다. 무거운 발걸음을 한 걸음씩 떼면서 ‘과연 우리가 무사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영어 한마디 안하고도 공항버스 타는데 까지 무사히 찾아갔고, 버스를 타고 어디서 내려야 할지 번호로 다 알려주는 시스템 덕에 내려할 할 곳에 정확히 내릴 수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세븐일레븐이 보이면 그 옆 골목으로 들어가~’ 이런 식으로 꼼꼼하게 적어온 지도 덕분에 숙소도 단 번에 찾을 수 있었다. 서울에서 아침에 출발해 초저녁 홍콩의 숙소에 도착할 때 까지 졸아 붙은 가슴을 어지 할 바 몰랐지만 아무 탈 없이 숙소에 도착했다.
캐리어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침대에 누웠다. 잠시 쉬었다가 맛있는 딤섬 먹으러 나가자고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은 피식 웃기만 했다. 몸은 천근만근 무거운데 나도 피식 웃음이 났다. ‘한 번 해보니 이렇게 쉬운 일인 걸 경험이 없어서 많이 떨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여행길에서 오르면 새로운 걸 하나씩 경험하며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 시켰다. 경험의 지평을 넓혀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즐겁고 행복했다.
낮잠. 어린이집에 간 손자, 손녀만 청하는 것이 아니다. 어른도 낮잠 자는 시대다.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이 잠시라도 편히 쉴 곳, 잘 곳을 찾아 나서고 있는 세상. 노곤하고 피곤한 삶을 보듬고 치유하고자 낮 시간 잠시라도 누울 자리를 찾고 또 내어주는 곳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낮잠이 관심의 중심에 있다.
글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수면시간은 적고 스트레스는 높고 “낮잠을 팝니다.”
‘낮잠 카페’ 혹은 ‘힐링카페’가 도시 곳곳에서 성업 중이다. 체인점화된 업체에서부터 크고 작은 사업장까지, ‘잠’, ‘피로’, ‘힐링’이 산업의 아이콘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을 일. 책상에 누워 잠깐 쉬면 될 것이 사업이 됐다. 낮잠 카페 등 소위 ‘힐링 사업’이 늘어난 것은 한국인의 잠 부족과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와 관계가 깊다고 말한다.
2014년 OECD 18개국의 평균 수면시간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7시간 49분으로 꼴찌. 1위 프랑스와 1시간 차이가 났다.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2016 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에서 한국 노동자의 은퇴 시기는 2014년 기준 남성 72.9세, 여성 70.6세다. OECD 국가의 평균 노동자 은퇴 나이가 남성 64.6세, 여성 63.2세인 것에 비해 7~8년은 더 오래 일하는 셈.
이렇게 잠 덜자고 일은 많이 하니 자연스레 낮잠, 피로 회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 아닐까. OECD의 ‘2016 고용동향’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한국인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연간 2113시간으로 34개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2246시간)에 이어 2위다. 이OECD 34개 회원국 평균 1766시간보다 347시간이나 많았다.
낮잠 이색 공간 ‘여의도 CGV 씨에스타’
현재는 여의도CGV에서만 운영하는데 이용객 추이를 살펴 점차 다른 지점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낮잠 장소로 이용되는 곳은 바로 프리미엄관. 대체로 직장인의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오전 11시30분부터 1시까지 운영한다. 잠들기 좋은 어두운 조명에 아로마 향과 뉴에이지풍 음악을 방안 가득 채운다. 좌석마다 촛불형태의 수면등으로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편안한 숙면을 위한 허브티에 담요 등을 놓아 정말 낮잠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했다.
특히 CGV 프리미엄관 중 가장 최근에 생긴 곳이기에 그 어떤 관보다 안락한 좌석에서 편안한 낮잠을 즐길 수 있다. 왼쪽 팔걸이 안쪽의 버튼을 누르면 의자가 쫙 펴지면서 편안하게 누울 수 있다. 좌석은 좌우로 남성, 여성석, 중간 좌석은 커플석으로 배치했다. 이용자 양옆으로는 티켓을 판매하지 않아 보다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힐링 카페처럼 안마의자는 아니지만 부드럽고 안락한 의자에서 최대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씨에스타에는 이용객을 살피는 ‘미소지기’가 상주해 잠을 깨워주는 등 필요한 것들을 제공한다. 여의도 유일한 낮잠 공간을 꼭 한 번 이용해 보시길.
이용 요금 1만원(음료, 담요, 안대, 실내화 등 제공)
낮잠 카페 ‘미스터힐링’과 ‘퍼스트클래스’
낮잠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힐링 카페 두 곳을 찾아갔다. 고른 연령대가 이용한다는 체인형 힐링 카페인 ‘미스터힐링’과 ‘퍼스트클래스’ 명동점을 찾았다. 두 곳 모두 기본은 전신 마사지기를 이용한 서비스로 개인 부스와 커플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덧신과 손 세정제를 제공하는 것과 서비스 후 음료를 제공하는 것도 같은 점이다. 하지만 엄연히 다른 콘셉트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 취향에 맞게 골라 이용해야 한다.
미스터힐링 (명동 인터내셔널점)의 장점은 음료를 마시는 공간(1,2층)과 휴식 공간(지하1층)이 분리돼 있다는 점이다. 전신 마사지기 위에서 쉬는 동안 외부 소음이 적어 쉽게 숙면할 수 있었다. 실내 전체에서 느껴지는 아로마 향과 낮은 조명, 음악, 부스마다 설치된 그림들이 휴식에 도움을 준다.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심신의 안정에 중점을 두어 구성한 것이 이용객에게 사랑받는 비결이다. 이용 요금은 30분 코스 9000원(20회/15만원)이고 50분 코스는 1만3000원(10회이용권/9만원)이다.
‘퍼스트클래스’ 는 공항을 연상하게 하는 인테리어 때문일까? 여행가방 하나쯤 들고 티켓 부스 앞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 피로를 푸는 방 또한 항공기 1등석처럼 꾸며 놓아 재미를 더했다. 퍼스트클래스는 음료 카페와 마사지 부스가 같은 층에 있다. 대신 마사지를 하면서 눈 안마기를 동시에 사용하기 때문에 조도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다. 퍼스트클래스 마사지 코스는 총 6개로 활력, 쾌적, 수면, 목과 어깨, 허리와 엉덩이, 공기 마사지로 구성돼 이 중 원하는 두 종류를 고르면 된다. 객실마다 개별 이어폰과 스마트폰이 있다는 점도 편리하다. 이용 요금은 7000원에서 1만 3000원가지 다양하며 소셜커머스에서 더욱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서울혁신파크의 '공간 휴'
‘공간 휴’를 말하기에 앞서 서울혁신파크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듯싶다. 서울혁신파크가 있는 곳은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 옛 질병관리본부가 있던 자리다. 오래전부터 아름드리 벚꽃나무로 유명했던 곳. 지금은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공원 중심에 있는 미래청 건물 안에 바로 ‘공간 휴’가 있다. 창문 카페와 서고 사이, 천장 낮은 곳으로 사람들이 신발을 벗고 들어가 쉬는 곳이 바로 ‘공간 휴’다. 공원에서 책도 보고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 좀 자고 싶으면 누구든지 누워 잘 수 있다. 많지는 않지만 베개와 이불도 준비돼 있다. 전기보일러가 설치돼 겨울에는 따뜻하게 이용할 수 있다. 조명이 있어 뒹굴면서 만화책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엄연히 잠을 자고 쉬기 위한 곳. 10분이고 1시간이고 잘 수 있다. 시민들에게 열린 공간이기에 이용료가 없는 대신 자기가 쓴 물건만 잘 정리하면 된다. 멋지고 화려한 것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쉼’이라는 단어가 기억에 남는 공간이다.
30대의 나이인 친척 조카가 초등학생인 자녀를 필리핀으로 유학 시키면서 조카며느리도 함께 보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가 똑똑해 아마 더 큰 글로벌 인재로 키우고 싶었나 보다.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필자는 걱정이 앞섰다. 젊은 나이에 부부가 떨어져 있게 되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고 혼자 남아 기러기 아빠가 될 조카가 걱정스러웠다.
들리는 이야기같이 돈 버는 기계처럼 될까봐 안쓰러워서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한마디 해주었다.
그저 지지고 볶아도 아이들 교육 때문이라든가 어떤 일에라도 남편과는 떨어져 살지 않을 거라고 말한 우리 며느리가 대견하고 고맙기만 하다.
12년째 기러기 아빠로 산다는 어떤 아버지의 이야기를 읽었다. 과거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유학을 하지 못했기에 아들에게는 일부러 권해서 조기유학을 보냈다고 한다. 유학 초기 혼자 떠난 어린 아들이 힘들어하자 아내가 따라가고, 아빠는 혼자 남아 버는 돈의 85%를 송금하며 혼자 살기 시작했단다. 필자는 생각이 고루해서일까, 절대 기러기 가족을 좋게 생각할 수가 없고 가족은 모여 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수한 인재들이 세계 곳곳으로 나가 공부하고 역량을 펼쳐 우리 대한민국의 위상을 떨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 헤어지고 더구나 아빠만 혼자 남아 외로움을 느끼고 우울증 증세까지 보이면서 뒷바라지를 한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 아버지는 12년 동안 아들을 딱 일주일만 볼 수 있었다 한다. 얼마나 보고 싶었을지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다. 형편이 좋다면 자주 왕래하며 가족의 의미를 새길 수 있겠지만, 대다수 많은 가정이 그러지 못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유학 도중 고국에 갔다 오면 후유증으로 한동안 힘들어해서 나오게 할 수도 없고 아빠가 가자니 항공경비, 체류비, 여행비 등이 유학하는 아이와 아내의 한 달 생활비가 될 수 있어 차라리 돈을 보내게 되더라는 것이다. 공황장애 증세로 병원까지 찾았다는 아버지가 너무 힘겨워 보이고 슬프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그래서 아들이 성공하면 그것으로 만족인 걸까, 아버지는 회사에서 정년을 고려해 편한 곳으로 발령을 내주려 했지만 정신없이 일해야 외로움을 덜 느낀다며 현장을 고집했다니 그것 또한 가슴이 아픈 이야기다. 아이의 공부가 끝나고 아내가 돌아왔단다. 필자 마음이 다 훈훈하다. 아들은 그곳에서 좋은 직장에 취업이 되었는데 어느 날, 1년만 외국에서 근무하고 한국지사로 오겠다고 했다고 한다. 공부가 끝나고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혼자 떨어져 살아 보니 그동안 아버지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알 것 같다며 "아빠 미안해요," 라고 했다는 대목에서 필자는 필자와 아무 상관없는 가족의 이야기인데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흘렀다.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린 그 아들이 기특하고, 기러기 아빠로 외로운 삶을 살았지만, 이 아버지는 성공한 삶인 것 같다. 이 가족은 성공했지만 필자는 아직도 기러기 가정이 옳다는 생각은 안 든다. 이 가족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란다.
그나저나 우리 조카도 먼 훗날 성공적인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지 제발 그렇게 되기를 기도한다.
한국인들에게 마케도니아에 대해 물어봤을 때 가장 먼저 연상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알렉산더 대왕의 고향? 아니면 마더 테레사가 태어난 곳? 하지만 이 답변은 소수의 마니아급들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말일 게다. 많이 낯설어서 설레는 나라, 바로 마케도니아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흐리드 호수
마케도니아(Macedonia)의 여러 여행지 중에서도 유럽인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이 오흐리드(Ohrid) 호수 마을이다. 오흐리드는 세계역사문화유산(1979년)과 세계자연문화유산(1980년)으로 지정된 도시다. 오흐리드는 호수를 사이에 두고 알바니아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필자는 알바니아 국경에서 택시를 타고 30km를 달려 오흐리드에 도착해 동상이 많은 선착장 광장 근처부터 여행을 시작한다. 올드 타운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계속 만나게 되는 비잔틴 방식의 정교회 건물에 깜짝 놀라게 된다.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오흐리드에는 한때 365개나 되는 교회가 있었고 현재도 ‘마케도니아의 예루살렘’으로 불린다. 엇비슷한 형태의 작은 교회 몇 개를 지나치자 웅장한 성소피아(St. Sophia) 교회를 만난다. 오흐리드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고 빼어난 중세 건축물로 손꼽힌다. 이 교회는 음향 설계가 잘 되어 있어 매년 오흐리드 여름 축제를 주최한다.
교회와 골목을 벗어나 절벽 호수 길을 따라 걷는다. 벼랑 밑으로 펼쳐지는 호수 풍경은 마치 바다와 같다. 그도그럴 것이 500만 년 전, 바다 밑이 솟구쳐 올라 만들어진 호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유럽에서는 가장 깊고(290m) 1년 내내 얼지 않는다.
*오흐리드 호수를 정원 삼은 교회와 수도원
호수 길, 벼랑 끝에 카네오 성 요한 교회(Saint John at Kaneo Church)가 그림처럼 걸쳐 있다. 13세기에 요한복음의 저자, 성 요한을 기리기 위해 세운 이 교회에서는 14세기의 프레스코화(1964년 복원)와 20세기의 나무 성화 등을 볼 수 있다. 그것보다 이 교회는 오흐리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치를 보여준다. 확 트인 언덕받이에 저 홀로 호수를 정원 삼고 있는 비잔틴 양식의 교회. 교회 밑, 호수 위로 기선과 유람선이 호수의 물살을 가르며 유유히 교차하며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영화 은 이 아름다운 교회를 배경으로 촬영했다.
교회를 비껴 언덕으로 올라서면 9세기 말(893년), 오흐리드의 수호성인인 성 클레멘트(St. Clement)가 세운 성 판텔레이몬(Saint Panteleimon) 수도원이 있다. 이 수도원 자리는 슬라브족 최초의 대학이었다. 수도원을 예배당으로, 그리고 제자들에게 ‘글라골 문자’(Glagolitic alphabet)를 가르치는 학교로 사용했다. 글라골 문자란 마케도니아의 토어를 기초로 해 만든 최초의 슬라브 문자. 당시 슬라브족은 언어는 있었지만 문자가 없어 라틴문자를 차용해 사용했다. 그리스 테살로니키 출신의 키릴로스(Kyrillos, 826∼869)가 그의 형 메토디오스(Methodios, 815∼885)와 함께 알파벳을 토대로 슬라브 언어를 만든 것이다.
*제 1차 불가리아 제국시절의 유적, 사무엘 요새
오흐리드의 가장 높은 곳에 사무엘 요새(Samuil's Fortress, 2003년 복원)가 있다. 성내에는 부서진 유적들이 흩어져 있고 아직도 발굴 중이다. 성곽을 따라 걸으면서 오흐리드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사무일 요새는 1차 불가리아 제국 시절 사무엘(958~1014 재위 980~1025) 왕에 의해 만들어졌다. 사무일은 인근 프릴레프의 귀족집 아들로 태어나 우여곡절을 겪은 후 불가리아의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980년, 소피아 근처에서 비잔틴 황제 바실리우스 2세(Basilius II, 958~1025, 재위 976~1025)를 격파한 후 불가리아의 ‘차르(왕)’로 정식 즉위한다. 마케도니아를 통치하다가 독립국 세르비아를 정복하고 나아가 불가리아 북부, 알바니아, 그리스 북부까지 세력을 확장시키고 ‘오흐리다’(오흐리드)에 수도를 정한다. 그러나 비잔틴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1014년, 결국 벨라시차 전투에서 바실리우스에게 완패하고 말았다. 사무일은 고향 프릴레프까지 도망을 갔고 바실리우스는 불가리아인 포로들(1만5000명에 달했다고 함)을 장님으로 만들어 돌려 보냈다. 사무엘은 그 충격으로 죽었다는 설이 전해온다. 이 사건으로 바실리오스 2세는 ‘불가록토누스(Bulgaroktonos, 불가르족의 학살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불가리아 제국은 비잔틴에 병합되면서 1차 불가리아 제국은 사라진다.
*발길에 채이고 채이는 문화유적지의 보고
사무엘 요새에서 멀지 않은 곳에 BC 200년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원형극장(Ancient Theatre)이 있다. 마케도니아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그리스 시대의 극장으로 현재는 아랫부분만 남아 있다. 이곳에서는 오흐리드 여름 축제 등 여러 행사와 공연이 열린다.
원형극장에서 다시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성 보고로디차 페리블렙타(St. Bogorodica Perivlepta) 교회와 이콘 갤러리가 있다. 1295년, 성모 마리아를 위해 세워진 이 교회는 성 클레멘트의 유해를 안치하고 있어, 성 클레멘트 교회라고 불리기도 한다.
묵은 향 가득한 골목길마다 오랜 역사의 사연이 풍겨나는 곳. 발길에 채이고 채이는 문화유적지의 보고인 호반의 도시 오흐리드. 꼭 가봐야 할 여행지다.
*Travel Data
항공편오흐리드 사도 성 요한 국제공항이 있다.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 알리탈리아, 아드리아, 코렌던더치, 세르비아 항공 등 총 8개 항공사가 취항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위스 취리히와 바젤, 벨기에 브뤼셀, 영국 런던은 직항이다.
교통편마케도니아의 수도인 스코페에서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마케도니아는 기차보다 버스 여행이 편하다.
음식 정보올드타운 입구에 있는 안티코(Antiko) 레스토랑은 상호처럼 옛 건물을 그대로 이용해 만들었다. 인테리어도 돋보이고 음식 맛도 좋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식으로는 게미스타(Gemista)가 있다. 그리스식 음식으로 피망, 토마토 속에 밥과 고기를 넣고 찐 음식이다.
특산품오흐리드 호수의 물고기 비닐로 윤기를 낸 진주 제품이 있다.
주변 볼거리오흐리드에서 멀지 않은 도시가 스트루가(Struga, 8km)다. 알바니아(20km)와 국경인 이 소도시엔 치미 드림(Crni Drim)강이 흐르고 토요일이면 대형 시장이 선다. 또 해마다 8월 말이면 국제 시 축제(SPE, Struga Poetry Evenings)를 위해 이곳으로 시인들이 몰려온다.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은 제53회(2014년) 스트루가 시 축제에서 최고의상인 '황금화관상'을 수상했다.
>> 이신화 여행작가
이립(而立)에 여행작가로 시작해 어언 지천명(知天命)에 다다랐다.
그동안 ‘걸어서 상쾌한 사계절 트레킹’, ‘대한민국 100배 즐기기’, ‘on the camino’ 등
여행서 총 14권을 출간했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2014년 홀로 197일간 30개국의 유럽 배낭 여행을 했다. ‘살아 있을 때 떠나자’가 삶의 모토다.
"또 언제 여행 가?" 요즘 필자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라 잠시 망설이게 된다. 필자도 언제, 어디로 떠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소소하게 돌아다니면서 제일 처음 알게 된 게 팸투어였다. 팸투어란 지자체 등이 바이럴 마케팅을 위해 블로거들을 모아 여행을 시켜주는 일종의 사전답사여행인데, 팸투어 카페에 가입하자마자 여행을 떠나게 됐다.울긋불긋 가을에 백두대간 협곡열차를 타고 태백여행을 했다. 정선 오일장에서 장도 보고 원주에 있는 박경리 문학관까지, 돈 한푼 안들이고 대절 버스에 올라 이곳저곳 구경하는 것이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혼자가 편하고 좋은 내 성향 때문이었을까, 다른 여행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다 블로그 이웃의 소개로 여행사 이벤트를 알게 됐다. 참가비 10만원만 내면 2박 3일 일본 여행을 할 수 있단다. 게다가 동반 1인도 가능한 자유여행이라 눈이 번쩍 뜨였다. 이 이벤트로 동생과 요나고에, 엄마와 미야자키에 다녀왔다. 도쿄나 오사카 등 대도시 위주의 여행만 하다가 작은 소도시를 돌아보니 색다르고 좋았다. 요나고 가이케온천과 미사사온천, 미야자키의 쉐라톤온천은 지금도 생각난다.여행을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더 많은 곳을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된 게 항공프로모션이었다. 저비용항공사들은 주기적으로 싼 값에 비행기티켓을 풀곤 한다. 빈 좌석으로 운행하는 것보다는 아주 싼 가격에라도 팔아 좌석 점유률을 높이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여행카페나 블로그 이웃들이 주는 정보를 기억했다가 티켓을 샀다. 평일 출발 표는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했다.최근 제주항공 프로모션 일본 항공권은 5~6만원 대 믿기 어려운 가격도 포함돼 있었다. 이런 항공권을 구입하려면 순발력과 약간의 팁이 필요하다. 필자는 하롱베이에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들자 프로모션을 통해 하노이행 티켓을 끊어 놓았다.
여행을 즐기려고 마음 먹자 공짜나 다름없는 돈으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여행을 다녔지만 가장 즐겁고 보람있는 일은 기자단 활동이다. 대한민국정책기자단으로 활동 하면서 관광이나 문화관련 기사를 위해 여기저기 여행할 기회를 많이 얻었다. 외암마을을 취재하고 혼자 농촌에서 휴가를 즐겼다. 인문열차를 따라 영주, 봉화, 안동 일원의 양반 동네를 구경하고 400년 된 고택에 묵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또, 박찬일 쉐프와 함께 영동 와인여행을 하면서 도리뱅뱅에 어죽을 맛본 경험은 참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게다가 기사를 쓰면서 원고료까지 받게 되니 만족감이 높아졌다.
팸투어, 여행사이벤트, 항공프로모션 그리고 기자단 활동이 내 주된 여행원이다. 대부분 무료이거나 아주 작은 값만 지불하면 된다. 그래서 나는 공짜로 여행 다닌다 그렇게 말하곤 했고, 내 이웃들도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팸투어를 다녀오면 주최 측에서 원하는 숫자 만큼 블로그 포스팅을 해야한다. 어떤 경우에는 날짜가 정해져 있어 여행을 다녀오면 여러 날 동안 블로그 포스팅을 위해 일해야 할 때도 있다. 여행사 이벤트도마찬가지다.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에 여행을 다녀올 수 있지만 여행지나 교통편에 대해 블로그 포스팅을 요구하기도 한다.항공프로모션은 더하다. 티켓이 열리는 시간에 알람을 맞춰놓고 광클릭으로 티켓을 잡아야한다. 인기가 많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몰려 로딩 시간이 길어지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여행을 떠나기 위해 내가 기울인 노력과 열정이 값으로 매겨진다면 결코 싼 값일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나를 보고 공짜나 다름없는 여행 다니는 사람이라 부러워 하는 것이 참 좋다.
여행을 좋아하는 필자는 해외 그 어느 곳보다도 제주를 좋아해서 여유가 생기면 무조건 제주행 항공권을 끊곤 한다. 혼자 아무 계획 없이 내려가서 주어진 시간만큼 걷거나 특별한 목적 없이 머물다 오기도 한다. 가족 또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휴가지 선정 에서도 항상 0순위 후보 지역 아름다운 섬 제주이다. 이런 나의 제주사랑으로 보아 침대 위에 커다란 제주도의 지도를 붙여 놓고 ‘아이 러브 제주’를 읊조리며 제주도에서의 노후생활을 꿈꾸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항상 반신반의 하게 되는 것은 여행객으로 잠시 머물며 바라 봤을 때 꼭 여기서 살고 싶다 는 마음이 갖게 했던 제주도가 이주 실현 후 생활터전으로 서도 여전히 나에게 똑같이 매혹적인 땅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 이다.
사람들이 흔히 꼽는 문화시설과 병원, 백화점 등의 편의시설 부족 등의 불편함에 대한 문제는 이미 내려간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되어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사실 여행 하면서 본 제주도는 그런 것들이 크게 부족해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30분에 한대 이상 뜨는 육지 행 비행기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육지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지만 우리나라 최남단에 뚝 떨어져 있는 제주도라는 섬에 살면서 심리적인 고립감과 외로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사소하지만 필자에게는 심각한 문제인 습한 섬 특유의 벌레, 특히 지네가 그리 많이 출현한다는데 그 들과의 동거를 잘 받아들이며 살 수 있을지가 필자에겐 오히려 큰 고민이 된다.
제주로 이주를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두려움과 고민을 가지고 나름의 스타일로 제주의 생활을 설계할 것이다.
잠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터전을 옮기는 이주라는 중요한 문제를 ‘일단 가서 살아 보자’ 할 수 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돌다리만 두드리면서 남의 경험만 주워 모으며 고민 만 할 수도 없다.
이런 복잡한 제주 이전에 대한 고민의 대안이 바로 ‘제주도 한 달 살아보기’ 이다.
제주 생활로 익히 알려진 방송인 허수경 씨도 방송에서 제주 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있지만 제주도에 정착하기까지 매우 힘들었음을 고백하면서 임시로 살아 본 후에 이주하기를 조언하고 있다.
요즈음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 보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어 검색창에 ‘제주도 한 달 살기’ 라고만 쳐도 굉장히 많은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제주도에서 한 달 살아본 경험을 담은 블로그와 제주도 한 달 살아 보기에 대한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는 카페도 속속 개설되고 있다.
제주 이주의 꿈이 각자 다 다르고, 불편함을 느끼고 기꺼이 견딜 수 있는 정도가 각기 다 다르니 다른 사람의 정보 만 가지고 결정 할 수는 없다.
제주 이전에 대한 여러 정보를 가지고 충분히 마음 속 시뮬레이션 한 후 그 모델을 가지고 최종적으로 한 달 또는 두세 달 직접 살아 보고 자신의 적응력을 테스트 해 본 후에 이주를 결정하는 것이 제주 이주의 오류를 최소화 하는 방법일 것이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의할 때마다 제주에서 살고 싶은 사람을 조사해 본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제주에서 살고 싶다고 선뜻 대답하는 사람이 뜻밖에 적은데 놀란다. 그때마다 왜 제주에 가서 살기를 꺼리는지 그 이유를 물어본다.
맛난 음식도 매일 먹으면 물리는 것처럼 제주도 그곳에 살면 감동이 반감할 거라는 논리가 그 하나다. 그래서 가끔 여행하는 건 좋지만 가서 살기는 싫다는 것인데 충분히 이유가 되는 것 같다. 또 다른 사람들은 제주의 기후를 들었다. 겨울에 육지보다 따뜻한 건 좋은데 비와 바람이 많고 태풍이 올라오는 길목이라서 특히 서쪽과 남쪽은 살기 좋지 않다는 것이다.
제주가 중국 사람들의 세상으로 변해 가는 것 같고 외국인들의 범죄도 잦아 무서워서 가기 싫다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제주는 오래전부터 중국인들의 투자지로 주목받고 있다. 그들만의 거대한 게스트 하우스가 곳곳에 건설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최근 뉴스를 보니 지난해 제주에 무비자로 입국한 외국인이 60만 명을 넘었고 불법 체류자도 4,000명을 넘었다고 한다. 그 부작용으로 외국인들의 범죄도 상당히 잦다고 하니 이런 이유도 수긍이 간다. 그 외에 육지로 왕래하기 불편하다든가 의료시설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를 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조금 다른 이유로 제주에서 사는 것을 꺼린다. 우선 그동안 서울에 살면서 형성해 놓은 인간관계를 오프라인으로 계속 유지하고 싶다. SNS가 일반화되었다고 하나 서로 대면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 대학교와 고등학교 동창들과의 모임은 예외로 하더라도 몇 군데 활동하는 포럼의 정기모임, 걷기 행사, 당구 모임, 저자 강연 등에서 만나는 시니어들과 막걸리 나누면서 사는 이야기 하는 것이 좋다. 갑자기 모이는 번개팅도 무료한 일상에서 특별한 활력을 준다. 지하철이 편리한 교대 앞 곱창집이나 사당동 보쌈집이 번개팅 장소로 좋다.
강의 요청을 받을 때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설렘으로 기다려진다. 강의 후에 몇몇 분들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교류한다. 때로는 그들로부터 새로운 강의 요청을 받기도 한다.
그림이 보고 싶으면 지하철 타고 인사동으로 간다. 갤러리를 돌고 나서 북촌에서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서 소주 한잔한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영화를 골라 볼 수 있고, 공연티켓을 가끔 선물 받을 때는 정장을 입고 아내와 예술의전당을 찾는다.
봄에는 어린이대공원 벚꽃 비를 맞는다. 여름에는 도봉산 계곡에 앉아 작은 물고기들을 보면서 새소리, 바람소리를 듣는다. 가을에는 낙엽이 흩날리는 창덕궁을 걷는다.
서울에서 이런 일상의 재미를 누리고 살다가 성산포의 일출과 외돌개 쪽빛 파도에 반사되던 보석 같은 햇살, 용눈이 오름을 뒤덮은 억새와 바람, 곶자왈의 검은 바위와 원시림의 습한 향기, 김대건순례길에서의 묵상 등이 지독히 그리운 어느 날 제주행 항공기에 몸을 싣고 싶다. 그 가슴 벅찬 설렘을 위해 제주는 마음 속에 남겨두고 싶다.
방송이나 잡지들이 꿈의 도시 제주에 자리 잡은 일반인과 연예인을 앞다투어 취재하고 있다. 제주 올레길을 수시로 걷는 사람, 특수과일농사로 일하면서 비용 창출하는 사람, 제주에 놀러 온 지인과 맛있는 제주특산물로 식사하며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도 든다. 특히 제주의 예쁜 바다 색깔을 보면 마음이 상당히 흔들릴 때도 있다. 사는 도시에서 뻔질나게 쏘다니던 입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반면 서울은 배울 곳도,일거리도 많고, 즐길 거리, 볼거리가 매우 많다. 나이 든 사람은 이미 알고 있던 가족이나 지인들이 근처에 있는 것에 편안함과 기존에 하는 활동을 이어가면서 느끼는 안정감을 무시할 수가 없다.
장수 예상 나이의 규정하는 것 중에는 화장기없는 얼굴로 슬리퍼 끌고 나오라 하면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얼마나 있냐는 내용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큰 제주이주는 꿈도 못 꿀 내용이라고 여긴다.
죽기보다 싫은 출근을 여행 다녀와서 바로 해야 하는 사람들은 지난번 날씨 때문에 제주국제공항이 마비된 사건 이후로는 제주지하터널을 뚫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만큼 제주는 기후가 나쁜 곳이다. 여행도 이렇게 쉽지 않은데 거기 산다? 주저하는 사람 투성이일 것이다.
교통비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제주 사람이 서울에서 모임 있을 때 와서 몇만원 짜리 저녁 식사하면서 15만원 짜리 밥이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저가항공을 주 중에 노리면 비행기 항공료가 저렴하다고 하나 제주 사람이라고 항상 주 중에만 다닐 수 없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