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마주하는 일은 거울을 보는 일과 같다. 자연이 거대하고 단순할수록 내 안의 껍데기는 사라지고 알맹이만 투명하게 드러난다. 그곳에서 느끼는 나는 아주 작고 또한 아주 크며 힘없고 미약한 존재다. 동시에 우주를 포함한 자연이다. 그것을 느끼는 순간의 강렬함을 잊을 수 없다. 여행이란 교실에서 배운 지식들을 현장에서 직접 느끼고 체험하는 시간이 아닐까. 많은 이의 버킷리스트인 우유니(Uyuni). 잘 알려진 소금사막과 바람이 만들어낸 놀라운 기암괴석,
붉은 빛깔의 호수, 안데스의 희귀동물 라마까지 신비함이 가득한 곳이다. 새롭고 아름다운 그 세계로 떠나보자.
해발 3660m,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시 ‘라파스’
볼리비아는 남미의 가장 가난한 나라이지만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불가사의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모험심 많은 전 세계의 사람들이 살아 있는 동안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하는 꿈의 여행지이기도 하다. 우유니 사막에 가려면 먼저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로 들어가야 한다. 볼리비아의 헌법상 수도는 수크레이지만 실질적인 행정수도는 라파스로 ‘평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멀리서 해발 3660m에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을 보면 오색 성냥갑으로 만든 산처럼 보인다. 대표적인 사가르나가 거리 골목에는 안데스 특유의 패브릭과 장신구들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재래시장은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안데스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모자를 사서 쓰고 나니 금방이라도 빗자루를 타고 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부풀린 치마에 중절모를 쓰고 등짐을 진 컬러풀한 의상의 인디오 여성들 모습에서는 이국적인 향기가 느껴진다. 높은 지대라서 모든 길이 언덕처럼 되어 있어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지만 거리마다 가득한 상점들과 사람들 보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모른다.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신비한 ‘마녀시장’
사가르나가에서도 가장 유명한 골목은 ‘마녀시장(Witch Market)’이다. 이곳엔 말린 라마의 태아와 향료들이 기묘한 냄새를 풍기며 진열되어 있다. 온갖 색상의 돌과 장식품을 작은 병에 담아 행운의 상징으로 팔기도 한다. 남미 대부분의 나라가 그러하듯 이곳 또한 스페인이 전파한 천주교가 안데스의 전통적 제의와 만나 독특한 형태로 발전되었다. 하지만 토속신앙도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천주교도인 인디오들은 하나님께 중요한 소원을 빌 때 살아 있는 라마를 잡아 바치는데, 이때 말린 라마 태아를 올리기도 한다. 온갖 허브와 목각, 희귀한 진열품을 보고 있자니 금방이라도 빗자루를 탄 마녀가 나타나 마법을 부릴 것 같다. 이곳 골목은 뭔가 음험하면서도 삶의 비밀을 들킬 것 같은 으스스함이 함께 느껴져 색다른 감흥이 일어난다. 1549년에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 산 프란시스코 성당과 레스토랑, 전통 공예품을 파는 상점들, 여행사들이 즐비한 좁은 골목들은 여행자들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해준다. 라파스에 머무는 동안 시간이 허락된다면 달의 계곡(Valle de la luna) 투어를 떠나보자. 달 모양과 흡사하다고 해서 달의 계곡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마치 화성에 온 듯한 느낌을 갖게 해줄 것이다.
푸른 하늘과 맞닿은 소금사막 ‘우유니’
볼리비아 남서쪽, 해발 약 3600m에 자리 잡은 우유니 사막(Salar de Uyuni)은 남미를 대표하는 매혹적인 여행지다. 원래 바다의 땅이었던 우유니는 대륙붕의 충돌로 바다 아래의 땅이 하늘 가까이 솟구쳐 오르면서 만들어졌다. 고지대의 공기가 건조해 시간이 흐르면서 바닷물이 증발되었고 이로 인해 생겨난 소금평원 우유니는 언제 가도 아름답지만 특히 12~2월의 우기 때 가면 비가 고인 물에 푸른 하늘이 반사되어 마치 천국에 온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나기도 한다. 서울과 경기도를 합친 것보다 넓은 면적의 거대한 소금사막을 사륜구동차를 타고 가로질러가다가 다른 행성에 착륙이라도 한 듯 소금사막 한가운데 발을 내딛었다.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사막의 풍경 앞에서 모두들 카메라 셔터를 눌러가며 인생샷 한 장이라도 건져보기 위해 바쁘다. 소금사막의 광활한 풍경 앞에 서면 삶의 가장 소중한 것들이 떠오른다.
2박 3일의 우유니 사막 투어가 가장 인기
우유니 사막 투어는 초입의 작은 광산마을 포토시에서 시작한다. 이곳에서 사람을 모아 1일 투어, 2박 3일 투어 등 다양한 투어를 한다. 시내에는 많은 여행사가 있다. 경쟁이 심한 만큼 몇 곳을 비교해서 선택하는 것이 좋다. 길이 험해 사륜구동차를 이용해야 하며 투어 비용은 한 대를 기준으로 책정되므로 함께 투어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비용은 낮아진다. 우유니 사막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끼려면 2박 3일 투어가 좋다. ‘우유니’ 하면 대부분 하얀 소금사막만 생각하는데, 기암괴석으로 가득한 사막 지대와 플랑크톤 작용으로 인해 붉은 빛을 띠는 신비로운 호수, 눈 덮인 산, 수많은 플라밍고를 볼 수 있는 호수까지 희귀한 풍경이 가득하다. 또 소금호텔을 둘러본 후 눈부신 사막 한가운데 앉아서 맛보는 라마 스테이크의 맛은 잊을 수 없다. 조금 전 귀엽다고 쓰다듬어주었던 라마가 입속으로 들어가는 상황은 조금 께름칙하지만 그토록 부드러운 고기는 태어나 처음 맛보는 진미였다.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온천욕
덜컹거리는 지프를 타고 뜨거운 태양 아래를 달리는 동안 바라보는 창밖 풍경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바람이 깎은 예술조각들이 가득한 협곡과 붉은 빛깔의 신비로운 호수를 지나 무리지어 날아오르는 플라밍고를 만날 때까지….
이토록 짧은 기간에 신비로운 풍광을 흠뻑 경험할 수 있는 곳도 드물다. 변화무쌍하고 이국적인 향기를 열린 마음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준 건 함께 차를 타고 2박 3일 동고동락한, 칠레와 독일에서 온 친구들이다.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할 때는 국경이나 언어 장벽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칠레에서 온 친구는 어디선가 커다란 타조 알을 주워와 우리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여행 마지막 날, 칠레 국경을 넘기 전에 만난 노천 온천은 축복이었다.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물도 잘 나오지 않는 곳에서 씻지도 못한 채 다니다가 대자연 속에 거짓말처럼 준비되어 있던 따스한 온천을 만나자 모두들 앞뒤 재지 않고 옷을 벗어던지며 뛰어들었다.
볼리비아의 자연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곳곳에 반짝이는 풍경이 많다. 팀 케일은 ‘나를 유혹한 낭만적인 곳들’이라는 책에서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먼 곳까지 가는 색다른 모험을 꿈꾸었다. 이런 꿈은 가슴 설레게 하는 꿈 아니었는가?” 하고 묻는다. 그의 말처럼 그 시절처럼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고 있다면 지금 당장 떠나야 한다. 안 그러면 영원히 떠나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이루지 못한 꿈을 아쉬워하며 자신에게 큰 죄를 저질렀다며 안타까워할지도 모르니까.
travel tip
항공>> 한국에서 볼리비아 라파스로 가는 항공편은 미국과 페루를 경유한다. 라파스에서 우유니는 국내선 항공이나 버스를 이용한다. 우유니 마을에 있는 여행사를 통해 다양한 사막투어에 참여할 수 있다. 당일치기로 소금사막을 즐기는 1일투어와 우유니를 출발해 칠레 북쪽의 사막도시 산페드로데 아타카마로 가는 2박3일의 투어가 인기가 좋다.
비자>>
볼리비아는 여행시 비자가 필요한 나라다. 여행비자의 경우 30일 단수비자가 발급된다. 한국에서 볼리비아 영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아 출국할 수도 잇지만 비용이 비싼 편이다. 라파스 국제공항으로 입국시 한국에서 준비하는 것보다 저렴하고 간편하게 비자를 받을 수 있다. 남미의 다른 나라를 거쳐서 볼리비아로 들어간다면 페루 쿠스코영사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영사관, 브라질 상파울루 영사관, 칠레 산태아고 영사관 등에서 무료로 발급이 가능하다.
고산병>>
해발3600미터에 위치하고 있어 간혹 고산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지만 라파즈에서부터 오는동안 어느정도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우유니에서 고산증을 호소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산병은 낮은 지대에서 해발 2000-3000미터 이상의 고지대로 이동했을 때 산소가 희박해지면서 생기는 신체반응으로 피로, 두통, 호흡곤란, 체온저하 등이 있다. 대처방법은 낮은 지대로 이동하는 가장 좋으며, 물을 충분히 마시고, 천천히 걷는 것도 도움이 된다.
여행에 대한 정의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이 세상에 살면서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여행 아닐까. 이왕이면 평소 사는 곳과 다른 곳일수록,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일수록 완벽한 여행지가 되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있지. 하지만 누군가는 별을 보고 있다네”라고 했던가. 살면서 꼭 한 번은 밤하늘에 펼쳐지는 신비로운 빛을 만나보고 싶다. 그 황홀한 광경을 보고 나면 우주는 더욱 위대해 보일 것이고 우리네 삶도 조금은 숭고하게 느껴질 것 같다.
최고의 오로라 관측소, 옐로나이프!
전 세계적으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같은 북구의 나라와 미국 알래스카, 캐나다 화이트호스 등을 꼽을 수 있다. 그중 옐로나이프는 나사(NASA)가 지정한 오로라 관측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이다. 여름에도 오로라를 볼 수 있지만 11월에서 4월 사이 밤이 긴 겨울이 가장 좋다.
북극광(northern light) 혹은 극광이라고도 불리는 오로라는 라틴어로 ‘새벽’을 뜻한다. 태양에서 방출된 플라스마 입자가 자석 성질을 가진 지구의 극지방 주변을 둘러싸면서 붉은색이나 녹색, 파랑, 노랑, 분홍 등 다양한 색의 자기 에너지 띠로 나타나는 것이다.
엘로나이프로 향하는 프로펠러 비행기 안. 일본인들과 중국인들, 영국 등지에서 온 유럽인들, 그리고 캐나다인처럼 보이는 가족들도 보인다. 일본은 오로라 여행이 대중화되어 일반인과 신혼여행객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오로라가 뜰 때 아기를 가지면 그 아기가 천재가 될 확률이 높다는 믿음 때문이라지만, 혹한과 어둠을 뚫고 세상에서 가장 보기 어려운 신비로운 빛을 함께 경험하는 일은 두 사람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을 선사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비행기 안에서 엷은 환호가 터져 나온다. “저기… 저기… 오로라다.” 반대편에 앉은 승객이 창 쪽을 가리키며 소리를 지르자 기내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창밖으로 향한다. 나도 벌떡 일어나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깜깜한 하늘에 두 줄기 오로라가 어른댄다.
“아~ 저것이 말로만 듣던 오로라구나.”
순간 가슴이 콩닥콩닥 두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오로라, 그것은 마치 바닷속의 돌고래를 보는 것과 같다. “고래다!” 하고 소리치는 순간 사라져버리는 신기루 같은 존재 말이다.
오로라 빌리지를 통하면 모든 예약이 하나로
오로라를 보러 옐로나이프를 간다면 오로라 빌리지(Aurora Village)를 통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한국에서 비싸기로 유명한 캐나다 구스는 영하 50도까지 내려간다는 이곳 옐로나이프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평소엔 입을 일이 없기에 오로라 빌리지에서 대여해준다. 방한 점퍼와 바지, 마스크, 두터운 신발과 장갑까지 착용하고 나면 마치 우주복을 입은 듯한 기분이 든다. 이제 저 하늘을 둥둥 떠다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옐로나이프 오로라 사진마다 등장하는 아름다운 원주민 텐트 ‘티피(teepee)’ 안엔 따뜻한 화로가 있고 간단한 수프와 빵, 차와 커피, 코코아 등이 준비되어 있어 장시간 오로라 사진을 찍거나 관측하다 꽁꽁 언 몸을 녹일 수 있다.
캄캄한 어둠속을 달려 오로라 빌리지에 도착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밖에서 “스고이”, “스고이”라는 일본말과 외국인들의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뛰어나가 사람들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과연 지상에서 보는 오로라는 어떤 모습일까? 정말 사진에서처럼 그렇게 환상적일까? 깜깜한 밤하늘에서 처음엔 희미한 듯하더니 점점 더 강렬하게 하얀 빛줄기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20초. 마침내 신의 영혼인 듯, 천상의 빛인 듯, 신비롭고 영험한 기운이 내게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잊지 못할 오로라 여행이 시작되었다.
낮 동안의 신나는 북극 체험
전날 밤 오로라를 보고 숙소에 돌아온 시각은 새벽 3시. 이곳에서의 일정은 밤에 오로라를 보기 위한 기다림으로 채워진다. 바쁠 것 없는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내다보는 창밖 풍경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영화 속 엘사가 살던 ‘겨울 왕국’ 그 자체였다.
밤엔 매일 오로라를 관측하고, 낮엔 다양한 북극 체험을 했다. 얼어붙은 그레이트슬레이브 호수를 걸어보는 아이스로드(ice road) 체험, 시베리안 허스키를 타고 하얀 숲을 달리는 개썰매 체험, 이누이트 원주민들이 신던 스키를 신고 산속을 트레킹하는 스노슈잉(snow shoeing) 체험이 대표적이다. 이런 액티비티한 경험은 어디서도 해볼 수 없는 이색 체험들로 반드시 해보기를 권한다. 노스웨스트 의회 청사나 박물관에 들러 이곳의 역사를 알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노슨이미지(Nothern Image)에서는 원주민이 직접 그리거나 만든 예술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 밤, 오로라를 보며 신에게 감사를
드디어 떠나기 전 날 마지막으로 오로라를 보러 가는 길, 호텔 로비의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밤 9시의 기온은 영하 33도, 체감온도는 영하 40도!!!!! 실제로 체험해보기 전엔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 기온이다. 그러나 언제나 상상이 더 무서운 법. 막상 가보면 별것 아니다. 오로라 빌리지에 도착하니 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오로라도 별이나 달처럼 날이 맑을수록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티피 안에서 코코아를 마시고 있을 때 밖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4박 6일의 여행기간 중 가장 눈부시고 화려한 오로라가 나타나줬다. 영하 40도의 혹한과 어둠을 뚫고 마지막 날 가장 아름다운 신의 영혼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의 마음이 북받쳐 올라왔다. 좀체 보기 힘들다는 핑크오로라도 볼 수 있었다. 마시초 갓(Mahsi-cho, god)! 원주민어로 “신이시여, 감사합니다”라는 의미다. 사진 속에서만 보던 ‘오로라의 아우라’를 실제로 체험하고 나니 오랫동안 꿈꿔왔던 소원 하나를 이룬 느낌이다. 모든 여행은 눈을 뜨고 꾸는 꿈이라 했는데,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꿈을 꾼 듯했다. 지구별이 아닌 다른 행성으로 다녀온 꿈 말이다.
travel tips>>
항공편>>인천-밴쿠버-캘거리-옐로나이프로 연결된다. 밴쿠버에서 옐로나이프로 바로 가는게 없고, 캘거리를 거쳐야 하므로 비행기를 최소한 세 번을 바꿔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가는데만 하루가 소요되는 힘든 길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오로라 빌리지 예약 시스템>> 옐로나이프 여행의 핵심은 오로라빌리지이다. 모든 여행 시스템은 오로라빌리지를 중심으로 매우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개별여행자는 오로라 빌리지를 통하면 방한복 대여 및 오로라관측에 대한 일체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Aurora village (www.auroravillage.com)4720 Northwest Territories Ltd. Yellowknife, NT, CANADA /Tel 867-669-0006
추천숙소>>
옐로나이프엔 혹한과 어두음을 피해 안락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숙소가 다양하다. 필자의 경우, 더운 나라에 갈때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 등을 이용하는 편이지만 이곳은 혹한의 환경이라 가장 좋은 익스플로러 호텔을 선택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텔급에서부터 inn, B&B, 게스트하우스, 로지, 콘도스타일까지 다양하므로 취향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숙소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시내 중심의 관광 인포메이션을 제공하는 비즈니스 센터에서 얻을 수 있다.
Explorer Hotel 익스플로러 호텔 엘리자베스 여왕도 묵고 갔다고 해서 로비에 사진도 걸려있는 가장 럭셔리한 호텔이다. 그날그날의 일기예보는 물론 친절하고 품격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며 다운 타운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이 용이하다. 로비와 방에서 무료인터넷도 가능하다. (www.explorerhotel.ca) P.O.Box 7000, Yellowknife, NT, CANADA Tel 867-873-3531
추천레스토랑>>
극지방에 왔으니 다른 곳에서 먹어볼 수 없는 특이한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된다. 익스플로러 호텔 1층에 있는 트레이더스 그릴(Trader's Grill) 레스토랑은 극지방에서 잡아올린 신선한 해산물과 원주민 전통요리인 순록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늑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Address 4823-49th Avenue, Yellowknife, NT, CANADA
Tel 867-873-3531
추천 준비물>>
오로라 사진은 핸드폰으로는 잘 찍히지 않는다. 일정시간 이상 노출을 해야 하므로 오로라 사진을 찍고 싶다면 트라이포드(삼각대)와 수동설정이 가능한 카메라와 광각렌즈(18mm이상)를 준비해가는 것이 좋다.
★여행경비400만원 내외
58개띠들이 하면 유행이 된다. 폭발적인 우리 사회 인구증가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58년생들은 사회 변화와 유행을 주도한, 지금으로 치면 ‘완판남’·‘완판녀’로 부를 수 있는 세대다. 그들의 문화적 파괴력은 굉장했다. 여러 분야 중 특히 여행과 관련한 58개띠들의 문화주도도 눈여겨볼 만하다. 빈궁에서 벗어나 경제성장의 혜택을 보기 시작한 이들은 다양한 여행을 경험해나갔다.
1978년. 58개띠들이 만 스무 살이 되던 해. 당시 8월 17일자 경향신문에는 재미있는 기사가 하나 실린다. ‘바캉스 파장 … ‘고요’ 되찾는 산하, 연인원 5천만 기록’이라는 제하의 기사는 당시 여름휴가를 위해 산과 계곡, 바다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렸는지를 증언한다. 재미있는 내용 중 하나는 작년 대비 피서객이 40% 늘었다는 대목이다. 예년보다 높은 기온이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성인이 된 58개띠들이 피서객 증가에 한몫하지 않았을까.
당시에도 제주도는 관광지로 인기가 좋았다. 평소 600석 내외로 운영되던 서울-제주 간 항공편은 피서기간에는 1000석 이상으로 증편돼 관광객을 실어 날랐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탓인지 다음 해인 1979년, 철도청은 고급여행을 원하는 관광객을 위해 새마을호 객차 확충을 서둘러 진행했다.
물론 58개띠들이 여행 보따리를 맘껏 싸기 시작한 원인에 경제성장의 수혜도 빼놓을 수 없다. 1977년은 우리 경제의 상징적인 시기였다. 1인당 GDP가 처음으로 1000달러를 돌파해 1034달러를 기록했고, 수출 역시 최초로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배고픔은 점차 잊히고 있었다.
가장 원하는 신혼여행지는 ‘제주도’
그렇다면 58개띠들의 신혼여행은 어땠을까. 통계청이 2011년 발표한 ‘최근 30년간 초혼자료 분석’에 따르면, 1981년의 남성 초혼 연령은 26.4세, 여성은 23세로 나타났다. 이를 바탕으로 유추해보면 58개띠들의 결혼이 이뤄진 시기는 이들이 23세에서 26세를 지낸 1981년에서 1984년 사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1982년 5월 27일자 동아일보에는 당시 젊은이들의 신혼여행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사가 등장한다. 한국갤럽이 18세 이상의 남녀 121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가장 많이 다녀온 신혼여행지는 부산(21.6%), 경주(12.6%) 순이었다. 아무래도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제주도는 3위(12.2%)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재미있는 것은 순위에 자리 잡고 있는 ‘서울’의 존재다. 당시 지방 거주민들에게 서울은 충분히 매력 있는 여행지였다. 신혼여행으로 서울을 선택한 이들은 5.4%나 됐다.
가고 싶은 신혼여행지로는 역시 제주도(46.5%)가 가장 많이 꼽혔고, 당시 왕래가 여의치 않았던 외국을 꼽은 이들도 13.1%나 됐다. 3위는 설악산(11.8%)이 꼽혔는데, 다녀온 여행지에서 7위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높은 수치다. 설악산이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말. 1978년 진갑을 맞은 박정희 대통령이 선택한 관광지도 개발이 막 시작된 설악산이었다.
해외여행 자유화로 ‘천지개벽’
58개띠가 해외 땅을 밟은 것은 ‘여행’보다 ‘일’이었다. 물론 해외 출장이라고 쉬운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 고위직 공무원이나 주요 기업의 임원이 해외 출장이라도 나가면 모두 기삿거리가 됐다. 그만큼 해외 방문은 쉽지 않았다. 출장이 목적이어도 회사의 매출 규모가 낮은 기업은 여권을 받기도 어려웠던 시절.
중동에서 일어난 건설 붐은 58개띠들의 해외 구경의 좋은 구실이 됐다. 굳이 따지자면 58년생은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말까지 일었던 중동 붐의 막차를 탄 세대다.
1985년 해외로 나간 한국인은 약 48만 명이었다. 일본과 미국을 방문한 이가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많았다.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결과다.
서울올림픽 개최 다음 해인 1989년이 되면서 전 국민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뤄졌다. 1983년만 하더라도 50세 이상인 사람이 관광예치금을 200만 원 이상 맡겨야 관광여권을 받을 수 있었지만 매년 대상 연령이 낮아지다가 1989년에 완전 자유화가 이뤄졌다.
해외여행 자유화는 우리 사회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1990년부터 신문 지면에는 ‘배낭여행족’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고, 즐겨 찾는 신혼여행지는 제주도에서 태국이나 필리핀으로 바뀌었다.
세운상가 외제장사 아시나요?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 해외 출장 근로자들의 부업 중 하나는 바로 소니와 산요로 대표되는 일본 가전제품을 내다 파는 일이었다. 이들이 면세점 등에서 구매해 들여온 카메라, 오디오, 전기밥솥 등은 세운상가 상인들에게 늘 환영받았다.
그러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뤄지면서 소비자들이 해외에서 직접 물건을 사갖고 들여오는 문화가 확산됐다. 이런 문화의 아이콘으로 ‘코끼리 밥통’이 있다. 일본 조지루시 전기밥솥은 밥맛이 좋다고 입소문을 타면서 고소득층 사이에서 필수품 대접을 받았고, 점차 대중화되어갔다.
매일경제신문은 1992년 광복절 ‘일제선호 불치병인가’란 기사를 통해 당시 상황을 소개했다. 일본 버블경제의 거품이 꺼져가면서 가전제품 상점가가 몰려 있는 아키하바라역 인근 가게들은 불황을 겪고 있지만, 한국 관광객들이 너도나도 밥통 등 가전제품을 사주는 덕에 상권이 유지되고 있다고 기사는 전하고 있다. 최근 중국 관광객 유커들이 백화점에서 한국산 밥통을 사재기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당시 58개띠들의 나이는 34세였다. 김포공항 입국 수속 행렬에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지 않았을까.
당시 신문에 게재된 해외여행 광고를 보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도 일본, 미국, 동남아로 지금과 차이가 나지 않았고, 도쿄 4일 여행상품이 70만 원 선, 필리핀 4일 여행 상품이 48만 원 선으로 가격도 비슷하다. 다만 다른 부분이 있다면 중국 관광의 유무다. 58개띠들이 중국 관광지를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1994년 중국여행 전면자유화 이후부터다.
[추억 한토막] 대전역 가락국수 맞먹는 앵커리지공항 우동의 추억
경부선과 호남선이 지났던 대전역. 선로가 붐비고, 대기시간이 길었던 탓에 대전역 승강장의 가락국숫집은 승객들이 꼭 들러야 하는 명소가 됐다. 비행기 여행과 관련해서도 대전역 가락국수와 비슷한 추억의 공항이 있다. 다소 엉뚱하게도 미국 알라스카 앵커리지공항이 그곳이다.
대한항공이 1975년 서울-파리 여객노선을 개설한 것을 시작으로 미국과 유럽 노선이 늘기 시작하면서 앵커리지 공항은 상당수 여객기가 들러야 할 경유지였다. 당시 여객기들의 비행거리가 짧았고, 냉전으로 인해 소련 영공을 지날 수 없었기 때문에 필연적인 절차였다. 이런 사정은 일본도 마찬가지. 버블시대 해외 여행객이 폭발적으로 늘었던 일본의 항공사들도 이곳을 들러야 했다.
환승보다는 급유의 목적이 컸기 때문에 앵커리지에서 머무는 시간은 짧지 않았다. 때문에 당시 해외 출장이 잦았던 상사맨들이나 항공사 관계자들은 당시 앵커리지의 추억을 기억한다. 항공사 승무원으로 근무했던 안영희 동년기자는 “한 시간은 있어야 했는데 승객들이 딱히 할 만한 것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면세점들이 장사가 잘됐죠”라고 설명한다.
이 공항에서 인기가 가장 높았던 매장은 바로 ‘우동’. 해외 왕래가 잦았던 한국과 일본의 ‘밀리언 마일러’ 사이에선 반드시 거쳐야 할 일종의 성지였다. 일본의 몇몇 사이트에 남아 있는 기록의 편린을 맞춰보면, 앵커리지 우동은 주인이 두 번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첫 번째 주인은 미국계 일본인으로 육수 제작과 제면을 직접 하는 정통파여서, 본토 일본인들도 인정할 정도였다고. 가격은 10달러 내외로 비싼 편이었다. 지금도 일본에선 ‘앵커리지 우동’이란 단어는 여행지에서 만나는 수준 높은 우동집을 칭하는 대명사처럼 통용되고 있다.
장사가 잘되자 한 항공사 자회사가 주인을 밀어낸다. 일종의 젠트리피케이션. 물론 우동은 인스턴트로 바뀌었다. 냉전의 종말과 항공기 성능의 향상으로 앵커리지 경유 노선이 줄자 이 우동집은 한국인 사업가에게 넘어간다. 맛도 한국식으로 변했고, 단무지는 별매여서 원성을 사기도 했다.
대한항공에서 정년퇴직한 정용진 기장은 “당시 조종사들 사이에서 앵커리지공항의 우동은 자주 언급될 정도로 유명했어요. 우동과 함께 팔았던 연어 고기도 한국에선 구하기 힘든 물건이어서 인기가 많았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2018년 개띠의 해가 열렸다. 올해도 어김없이 지구는 돌고 역사는 기록될 것이고 개개인의 삶은 흘러갈 것이다. 올 새해맞이는 따뜻한 휴양지 코타키나발루에서 ‘지치지 않는’ 여행을 하면서 쉬는 것. 낮에는 바닷가에 나가 물놀이를 하고 배가 고프면 슬렁슬렁 시장통에 나가 애플망고를 실컷 먹고 저녁에는 밤하늘을 보면서 수영을 즐기는 일. 한 해의 초문을 여는 방법으로 이보다 행복한 여정은 없다.
툰구 압둘 라만 해양공원에서 놀고 액티비티 투어도 하고
코타키나발루는 사바 주의 주도(州都)다. 사바 주는 우리 귀에 아주 익숙한 보르네오 섬의 북쪽에 위치한 항구도시다. 여행은 서두를 이유가 없다. 낮에는 툰구 압둘 라만(Tunku Abdul Rahman) 해양공원의 5개 섬을 골라 다니면서 놀면 된다. 가야(Gaya), 마누칸(Manukan), 사피(Sapi), 술룩(Sulug), 마무틱(Mamutik) 섬이다. 툰구 압둘 라만 해양공원의 이름은 말레이시아 초대 총리인 툰쿠 압둘 라만(1903~1990)의 이름에서 따왔다. 물빛이 아주 맑은 수트라 항구(Sutera Harbour)에서 배를 타고 빠르게 달려 5분도 안 돼 마무틱 섬에 이른다. 5개 섬 중에서 규모가 가장 작고 산호초로 둘러싸여 있어 일명 ‘산호섬’으로 불린다. 섬에서 노는 게 지겨운 날에는 시내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키나발루 국립공원(Kinabalu National Park)으로 가서 트레킹을 하면 된다. 골프를 하고 싶다면 탄중아루(Tanjung Aru) 리조트 내의 골프 코스를 찾으면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제셀턴 포인트(Jesselton Point)에서 배를 타고 반딧불 투어, 밀림 투어 등을 해도 좋다. 제셀턴 포인트는 주변 섬으로 갈 수 있는 페리 탑승장이다. 이 도시와 인근 섬들을 연결하는 여객선이 드나든다. 수많은 현지 여행사가 있어 각종 투어와 액티비티 투어 등을 예약할 수 있다. 참고로 제셀턴은 과거 영국의 식민통치 시대에 말레이시아의 물자를 실어 나르던 항구로 1945년 오스트레일리아 군인이 내려 거주하던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 끝 무렵 일본군으로부터 코타키나발루(당시 이름 제셀턴)를 탈환하기 위해 진입한 오스트레일리아 군이 야영했던 곳이라서 붙여진 지명. 기념 동판 하나만이 남아 그날을 일러준다.
필리핀 마켓 야시장에서 애플망고 실컷 사 먹기
코타키나발루 여행의 백미는 야시장 구경이다. 이 도시로 이주한 필리피노들이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하나둘씩 내다 팔면서 자연스레 형성된 시장. 오후 4시경 문을 여는 노천 야시장엔 활력이 넘친다. 상인들 거의가 무슬림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도 어렵지 않다.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에 ‘히잡’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시장에는 망고가 지천이다. 한국에서는 비싸서 사 먹을 엄두를 낼 수 없는 애플망고를 보고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새우튀김도 사고 닭 날개(사테, Satay)도 사 먹는다. 한국인이 많이 오는지, 구운 닭 날개 소스에 대해 능숙하게 말한다. ‘매운 맛’이나 ‘맛있어요’라는 말은 아주 잘한다. 바나나튀김도 맛있고 작은 팬케이크는 보는 재미가 있다. 또 첸돌(Chendol)도 재미있다. 간 얼음 위에 꼬물꼬물한 연두색 첸돌과 코코넛밀크, 흑설탕을 넣어 만든 빙수다. 이와 비슷한 아이스카장(Ice Kajang)도 있다. 잘게 간 얼음 위에 야탑 열매와 옥수수, 팥, 젤리 등과 여러 가지 시럽을 넣은 빙수다. 시장 구경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해가 질 시간. 시장통을 비껴 워터 프런트 쪽으로 걸어가면 바다 너머로 해가 진다. 지는 해의 열기는 생각보다 뜨겁다. 숙소로 피신하는 게 답. 달빛과 별을 보며 수영하면서 맛있는 애플망고와 새우튀김을 안주 삼아 지역 맥주 한잔 곁들이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행자가 된다.
전통 부족민 볼 수 있는 ‘카다잔-두슨 원주민 민속촌’
사바 지역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싶어 전통가옥을 재현해놓은 사바 카다잔-두슨 문화협회(Kadazans-Dusuns Cultural Association Sabah)를 찾는다. 사바 주의 용맹한 ‘카다잔’ 원주민 전사와 몬소피아드 사냥꾼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민속촌이다. 카다잔족, 두슨족, 룬구스족, 바자우족, 무루트족(Murut) 등은 이 나라 대표적인 전통 부족들. 카다잔족과 두슨족은 사바 주에서 가장 큰 민족 집단으로 전체 인구의 30%나 된다. ‘키나발루’라는 이름도 카다잔족의 언어로 ‘죽은 자들의 안식처’를 뜻하는 ‘이키나발루’에서 유래되었다.
두 부족은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했다. 다른 점이라면 카다잔족은 분지에서 쌀농사를 짓고 두슨족은 구릉성 산지에서 산다는 것. 카다잔-두슨 민속촌에 이들이 살던 집과 풍습 등을 엿볼 수 있는 것들이 마련되어 있다. 또 매년 5월 30~31일에는 추수 축제가 열린다. 벼를 수확한 후 한 달 정도 풍성한 축제가 벌어질 때 훨씬 볼 만하다.
도시 전망은 시그널 힐에서, 낙조 감상은 탄중아루에서
시그널 힐(Signal Hill) 전망대도 오른다. 걸어서 가기에는 가파른 길이다. 낙조를 감상하기 제일 좋은 곳이지만 낮에는 도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뷰포인트’의 역할을 한다. 전망대에서는 코타키나발루 시내 전경과 페낭 해변을 둘러볼 수 있다. 근처 시계탑은 랜드마크로 원래 등대 역할을 담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연합군의 융단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유일하게 피해를 입지 않은 건축물이다.
마침 일요일이라서 근처의 선데이 마켓으로 간다. 잘란 가야(Jalan Gaya)에서 열리는 선데이 마켓은 300개 이상의 노점이 생활용품, 식재료, 약초, 의류 등 다양한 품목을 판매한다. 원래는 현지인들을 위한 작은 로컬 마켓이었지만,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판매 품목도 다양해졌다. 필리핀 마켓과 달리 수제품이나 공산품이 많다. 보기 드문 제비집도 있다. 마켓은 생각보다 일찍 파장한다. 다시 가장 번화한 원보르네오(One Borneo)와 와리산 스퀘어(Warisan Square)로 이동해 마사지를 받고 천천히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낙조를 볼 수 있는 탄중아루로 간다. 탄중아루는 석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 이 도시의 낙조는 그리스 산토리니, 남태평양 피지와 함께 세계 3대 해넘이로 꼽힌다. 아쉽게도 바닷가에는 비가 내린다. 낙조를 보지 못하면 어떠리. 맘껏 휴식했으니 이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Travel Data
항공편 인천에서 코타키나발루까지 직항편은 대한항공이 주 2회, 아시아나와 이스타항공이 주 4회 운항하고 있다. 말레이시아항공 직항편도 있다. 매주 금요일 출발.
기후 1년 내내 덥고 습한 기후다. 평균 기온은 영상 30℃. 계절에 따른 기후변화가 없어서 여행 성수기와 비성수기가 나뉘지 않는다. 날씨는 대체로 맑은 편이지만 하루 한 번 열대지방의 소나기인 스콜이 내린다. 코타키나발루의 1월은 우리나라의 한여름 날씨와 비슷하다. 통풍이 잘되는 얇은 옷 위주로 챙기고, 한 달 평균 일주일 이상 비가 내리기 때문에 우산은 필수다. 고산인 키나발루 산과 쿤다상(Kundasang) 지역은 기온이 서늘한 편이다.
언어 공식 언어는 말레이어다. 하지만 호텔 및 관광지에서는 영어가 널리 사용된다.
통화 정보 자국 통화인 말레이시아 링깃(Ringgit)이 통용된다. 1링깃은 260원대다. 인천 공항에서 환전해서 가면 된다.
사용 전압 200~240V, 50Hz다. 우리나라와 콘센트 모양이 다르니 꼭 어댑터를 준비하자.
음식 정보 해산물이 풍부하다. 그 외 볶음밥인 나시고렝(Nasigoreng)이나 국수 등 메뉴가 다양하다. 한국인이 일부러 찾는 집으로는 ‘웰컴씨푸드’가 있다. 주문하면 수족관에 있는 해산물로 즉석요리를 해준다.
숙박 정보 휴양도시라서 고급 호텔, 리조트, 콘도, 레지던스, 아파트 등 묵을 곳이 많다. 골프를 원한다면 리조트를 선택하는 게 좋다. 한 달 정도 머물 예정이면 아파트를 추천한다. 거실 하나에 방 두 개다. 아파트 객실은 에어컨, 평면 TV를 갖추고 있으며, 일부 객실에는 냉장고 등이 완비된 간이 주방도 마련되어 있다. 1일 7만~10만 원 선이다. 수트라 항구 근처의 이마고(Imago) 쇼핑몰·콘도는 장기투숙자가 많이 이용한다. 또 KK 베케이션 아파트먼트 @ 마리나 코트 리조트 콘도미니엄을 비롯해 여럿 있다.
기타 볼거리 북보르네오 증기기차 투어나 새로 지은 시청사, 석호(潟湖, lagoon) 위에 세워진 시티 모스크, 사바 주 모스크(Sabah State Mosque)가 있다. 건물 돔은 온통 황금으로 뒤덮여 있다.
코타키나발루 여행정보 www.mtpb.co.kr
시니어 한 달 여행 포인트 코타키나발루는 관광지를 찾아다니느라 애쓸 필요 없는 곳이다. 많은 곳을 다니기 싫어하는 시니어에게 좋은 여행지다. 대부분의 숙소에는 수영장, 피트니스 센터, 마사지 숍 등이 갖춰져 있다.
해외여행에 익숙지 않은 초보 배낭 여행객들에게 홍콩은 매우 적격한 나라다. 중국 광둥성 남쪽 해안지대에 있는 홍콩은 1997년 영국령에서 반환되어 국적은 중국이지만 특별행정구다. 다른 자본주의 체제가 적용되는 ‘딴 나라’다.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라는 오래된 유행가를 흥얼거리면서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병 고쳐 달라 기원하면 낫게 해줄까? 웡타이신 사원
홍콩의 주룽반도(九龍半島)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도교 사원이 웡타이신(黃大仙)이다. 원래는 중국 광저우(廣州)의 황사에 있었는데 1912년 현재의 장소로 이전해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은 1956년부터다. ‘웡타이신’은 우리말로 황대선이라는 인물을 뜻한다. 그는 원래 저장성의 한 지방에서 살던 양치기 소년. 15세 때, 정제된 황화수은을 질병 치료 약으로 만들어 인술에 많은 공적을 쌓았다. 그래서 이 사원은 병 치료에 도움을 주는 신앙처로 알려지게 된다. 모습은 여느 사원과 비슷하다. 각자의 소원과 병 치료를 기원하는 제수를 놓고 향초를 피우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사원 안은 눈이 매울 정도로 향내가 진동한다. 특히 사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나무 산통을 이용해 행운의 점(산통점)을 친다. 일을 그르칠 때 쓰는 ‘산통 깨다’라는 표현은 바로 이 ‘산통점’과 관련해서 생겨났다. ‘산통(算筒)’에 대나무를 잘게 잘라 100개 정도를 넣고 산통의 막대가 나올 때까지 흔들고 막대가 나오면, 막대와 같은 번호의 종이와 바꾼다. 점쟁이는 그 내용을 설명해준다. 하지만 점괘가 나와도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니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또 이 사원에 들러 꼭 찾아야 할 곳은 뒤쪽의 정원. 황대선이라는 이름이 선명한 정원은 연못과 함께 꾸며져 있어 주변 고층 아파트의 삭막함을 무색케 할 정도로 아름답고 정적이다.
홍콩 영화 속 주인공처럼 침사추이 거리 헤매보기
주룽 지구의 침사추이(尖沙咀)는 홍콩 최대 번화가다. 고층빌딩 숲, 옛 향기가 가득 배인 칙칙하고 좁은 골목들. 오래된 재래시장과 파도처럼 일렁대는 사람들의 왁자한 소리의 물결.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영화 같은 매력이 폴폴 넘쳐나는 곳. 홍콩 누아르 영화 속에서 이미 친근해진 풍경이 반갑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 영화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할리우드 스타의 거리를 모티브로 만든 ‘스타의 거리’다. 2003년에 시작해 1년 뒤인 2004년부터 공개되었다. 너비 4~5m, 길이 440m로, 9개의 붉은 기둥에 홍콩 영화 100년사가 기록되어 있다. 또 영화를 찍고 있는 감독의 조형물, 이소령 동상 등이 눈요기를 시켜주고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길바닥에 새겨진 영화인 명판들. 이연걸, 홍금보, 임청하, 양조위, 오우삼, 서극, 매염방 등 국제적으로 친숙한 홍콩 스타들의 손도장과 사인들이 거리를 장식했다. 이름만 새겨진 배우는 스타 거리가 조성되기 이전에 죽은 사람들이다. 이곳이 유난히 좋은 이유는 주변 바다 풍치가 덧대어져 있기 때문이다. 유람선과 고깃배가 떠다니고 바다 너머로 홍콩섬 금융가의 건물들이 뾰족하게 올라가 있는 주변 풍광이 매력적이다. 이외에도 미술관, 우주박물관, 시계탑, 문화센터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특히 주룽반도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시계탑(높이 44m)은 1910~1978년 중국과 유럽을 오가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출발역이었던 주룽역 앞에 서 있던 것. 조화롭지 않은 듯 조화를 이루고 있는 침사추이가 매력적이다.
홍콩의 부자 동네, 리펄스 베이
침사추이에서 리펄스 베이(Repulse Bay)로 가려면 일단 홍콩섬으로 들어가야 한다. 페리호와 해저터널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홍콩섬은 홍콩 개항 이후, 상업 및 정치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홍콩섬에서 가장 높은 산, 빅토리아 피크(554m) 고갯길을 넘어서면 차창 밖 모습이 조금씩 달라진다. 빽빽한 건물 대신 초록색 산과 바다가 어우러지고, 띄엄띄엄 고층 아파트가 그림처럼 들어앉아 있다.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건축 형태가 자연과 잘 어울리고 있다. 이곳이 바로 리펄스 베이다. 성룡 등 홍콩의 유명 인사들이 주로 사는 부촌이다. 길 끝나는 바닷가 끝에 틴하우(天后) 사원이 있다. 사원 앞에 틴하우 여신이 해탈의 미소를 건네고 있다. 산정이 아니라 바다와 눈높이가 같다. 1865년에 세워진 도교 사원은 독특한 중국 건축 양식을 전하는 지붕의 곡선이나 조각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사원엔 바다의 수호신인 ‘쿤암(Kwun Yum)’과 틴하우를 모시고 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틴하우 여신은 뱃사람들이 복을 빌면 소원을 들어주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을 구해준다고 믿었다. 또 건너가면 젊어진다는 장수교와 손으로 문지르면 재물복을 준다는 정재신(正財神) 석상, 만지면 3일 안에 인연을 만들어준다는 인연신이 있다. 특히 인연신 앞에서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떨어질 줄 모른다.
유럽 거리 걷는 건가? 스탠리 마켓과 머레이 하우스
리펄스 베이 해변을 벗어나 찾아갈 곳은 스탠리 마켓(Stanley Market)이다. 스탠리 메인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150여 개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장 거리다. 마치 서울의 이태원동과 같은 분위기다. 마켓 거리는 고급 제품을 파는 곳이 아니다. 반면 스탠리 베이 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확연히 모습을 달리한다. 아기자기한 유럽식 바와 식당, 숍들이 해변을 따라 이어진다. 세계 음식점들이 즐비하고 외국인도 많이 눈에 띄어 이국적인 풍치가 연출된다. 아기자기한 바와 레스토랑에서는 커피 한 잔, 파스타, 피자 한 조각으로 여행객들을 유혹한다. ‘만(灣)’ 형태의 넓지 않은 바다를 따라가면 머레이 하우스(Murray House)를 만난다. 옛 센트럴에 위치한 1844년대 식민지시대 건축물을 1991년 그대로 옮겨다 놓았다. 40만 개의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을 분해해서 옮긴 후 재조립했다고 한다. 아직도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건물은 딱히 멋은 없지만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식민지시대 건물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현재는 레스토랑과 홍콩해양박물관으로 이용된다. 머레이 하우스 앞 바닷가 쪽의 정자와 옹기종기 매여 있는 조각배의 풍치에 반한 여행객은 그 순간 긴장을 스리슬쩍 내려놓는다.
홍콩 야경 보고 레이저 쇼 보니 기분 최고, 맥주 한잔 어때?
홍콩 여행에서 야경을 빼놓을 수 없다. 야경을 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가 여러 곳 있다. 그중 홍콩섬의 빅토리아 피크는 야경 보는 인기 뷰포인트. 홍콩의 가장 높은 전망대로 서울의 남산타워, 63빌딩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산정에서 바라보는 야경도 훌륭하지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서야 완벽하게 멋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이곳의 명물로 꼽히는 것은 피크 트램. 1888년부터 긴 세월 동안 가파른(373m) 산등성이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어느 순간 건물이 거꾸로 서 있는 듯 몽롱해진다. 특히 피크 타워 바로 옆, 사자 정자는 환상적인 야경을 볼 수 있는 명소다. 또 승강기를 타고 타워 꼭대기 층인 스카이 테라스로 올라가면 더 넓게 조망할 수 있다.
야경을 보는 데에도 피크 타임이 있다. 오후 8시부터 약 20분간 심포니 오브 라이트(Symphony of Lights) 레이저 쇼가 펼쳐진다. 좀 더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영화 거리와 이어지는 시계탑 근처, 연인의 거리에 마련된 2층 뷰포인트가 명당자리. 바다 건너 홍콩섬의 금융가 건물에서 뿜어대는 광선에 취하는 홍콩의 밤이다. 이런 날, 침사추이 밤거리로 들어가 몽콕 야시장에서 야식을 사먹는 재미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Travel Data
교통편 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 캐세이패시픽, 타이항공 등에서 매일 인천~홍콩 간 직항편을 운행한다. 2014년부터 제주항공, 진에어와 같은 저가 항공사도 직항편을 운항 중이다. 3시간 30분~3시간 50분 소요.
현지 교통 정보 홍콩 공항에 도착하면 공항고속전철을 타고 20~30분 만에 중심가인 주룽반도와 홍콩섬에 갈 수 있다. 시내를 여행할 때는 배(스타 페리)와 2층 버스, 전차(트램)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된다. 옥토퍼스 카드라고 불리는 교통카드를 이용하면 지하철, 배, 전차, 버스 등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화폐 단위 홍콩 달러(HKD)를 이용해야 한다. 마카오에서는 홍콩 달러를 사용할 수 있으나 거스름돈은 현지 화폐인 파타카(Pataca)로 받을 수 있다. 화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음식과 숙박 정보 홍콩 음식은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완탕이 유명하고 시장통에만 가도 먹을 게 지천이다. 유명 호텔 숙박은 몇십만원대이지만 5만~8만원 선에 이용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주룽반도 쪽이 가격이 저렴하다. 특히 1928년 문을 연 페닌술라 호텔(香港半島酒店)은 세계 10대 호텔 중 하나로 꼽힌다. 또 40여 년의 전통을 지닌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mandarin oriental Hong Kong)은 미슐랭 스타(Michelin Star)를 받은 호텔로 10개의 레스토랑, 스파 및 피트니스 센터를 갖추고 있다. 가격은 70만~80만원대다.
물가 정보 홍콩은 면세가 되는 품목들이 대부분이다. 의류, 가방, 시계 등은 한국보다 다소 저렴하다. 그러나 주류, 담배 등의 품목 몇 가지는 한국보다 가격이 더 높고 세금을 부과한다. 전체를 합치면 홍콩 물가는 서울과 비슷하다.
날씨와 옷차림 정보 홍콩의 12월은 평균 최저기온이 15.9℃, 평균 최고기온이 20.2℃로 우리나라 가을과 비슷하다. 일교차가 작아 낮이나 밤이나 서늘하고 쾌적하다. 가을 옷 위주로 챙기고 머플러 등을 준비하면 된다.
시니어 한 달 여행 포인트 홍콩과 마카오(澳門)는 빼놓을 수 없는 밀접한 여행지다. 홍콩 항에서 뱃길로 40여 분(약 60㎞) 달려가면 마카오다. 또 홍콩과 인접한 도시가 심천이다. 홍콩의 지하철(MTR)이 주룽의 홍함에서 중국 국경인 광둥까지 국철(KCR)로 연장되지만 통과하려면 비자가 필수다. 심천은 경제특구 지역으로 새로 생긴 신흥도시. 건물들도 깨끗하고 홍콩보다 물가도 싸다. 매우 좁은 도시여서 여유롭게 여행을 즐기면 된다.
드디어 2018년 1월 18일 인천공항 제2청사가 공식적으로 개통된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제1터미널과 비슷한 규모로 만들어진 제2터미널은 평창 동계 올림픽을 3주가량 앞둔 시점에 공식 개장하는데 동계올림픽 선수촌 오픈 1월 30일과 현지 적응을 위해 조기 입국하는 선수 및 대회 관계자에게 더욱 쾌적한 서비스 제공을 할 수 있도록 평창 동계올림픽 전에 개장하게 되었다.
공항이라는 단어는 왠지 모르게 애틋한 이별과 반가운 만남을 동시에 떠오르게 해 준다.
특별히 내가 공항에서 슬픈 이별을 해 본 적이 없는데도 그런 느낌인 건 아마 사랑하는 어린 조카가 유학길에 오를 때 배웅 나가서 무사히 공부 마치기를 바라며 보낸 그 날이 생각나기 때문인 것 같다.
애틋한 이별만이 아니라 따뜻한 만남도 생각나는데 미국에 사는 시누이가 귀국했을 때나 지인의 한국방문에 마중 나가서 기뻤던 마음이다.
또한, 가족이나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할 때 공항에 가면 즐거운 기대는 한껏 부풀어 오른다. 그래서 공항은 우리에게 축제처럼 들뜬 기분 좋은 설렘을 주는 곳이다.
필자는 지난달 아직 마무리 공사 중인 제2터미널에 미리 가보았다.
동북아의 허브로 우리나라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은 꾸준히 성장해 12년 연속 세계 공항 평가에서 1위를 할 만큼 크게 성장했다.
많은 승객을 수용하고 주변 공항과의 허브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천공항은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해 내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 맞추어 2009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제2터미널이 개장하게 된 것이다.
제2청사가 개장되면 연간 1800만 명을 추가로 수용할 수 있고 9만 명의 고용창출이 될 것이라 한다.
제2청사의 주제는 Green과 Eco로 자연과 건축물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자연채광과 지열 시스템, 태양광발전, 자연 환기 시스템 등을 이용하여 친환경 공항을 모토로 하고 있어 이를 통해 저에너지공항, 탄소 저감, 신재생에너지 확대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먼저 인천공항 3단계 건설 상황실의 홍보전시실을 방문했다.
90년대 초반 인천공항을 건설하면서 트럭 100만대 분량의 흙을 퍼부어 물막이 공사를 했다는 홍보사진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고 이제 제2청사까지 개장하게 되니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한 우리나라 국제공항이 자랑스러워 가슴이 절로 펴지는 듯했다.
이번에 완공되는 제2 여객터미널은 인천공항 3단계 건설 사업으로 진행되었다.
1, 2단계 사업으로 완공된 제1 여객터미널과 탑승동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터미널이고, 이번 3단계 사업으로 제2터미널이 완공된다. 곧이어 4단계 사업도 시작될 예정인데 그렇게 되면 인천공항은 연간 1억 명 이상이 이용하는 대형공항이 될 것이라 한다.제2 터미널에는 4개 항공사가 이용하게 된다는데 대한항공과 에어프랑스, 델타항공, KLM 항공사 등 스카이팀 항공사이다.
제1터미널은 아시아나와 저가항공사가 운항한다.
이제 우리는 해외여행을 떠날 때 어떤 항공기를 탈지에 따라 제1터미널, 제2터미널로 가야 한다.
제2터미널은 버스와 지하철, 철도 등의 대중교통을 한곳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편리하게 해 놓아서 교통 센터 지하 1층에 버스와 철도대합실이 한곳에 있고 터미널이 실내에 있어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도 쾌적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또한, 제2터미널은 한국적인 디자인이라는 특징이 있다. 기존의 제1터미널은 외국회사가 디자인한 것을 바탕으로 했지만, 제2터미널은 우리나라 기술로 디자인했다는 점이 뿌듯하고 감동적이다.
아직 마무리가 안 된 전망대를 둘러보았는데 유리창 너머 광활한 활주로에 앞으로는 우리 국적기인 대한항공을 비롯해 여러 SKY팀 항공사의 비행기가 가득 찰 것이다.
대한민국의 관문 인천공항이 명실상부 동북아의 허브공항으로 자리매김하고 세계적인 대표 공항으로 도약하려 한다.
제2터미널 개장으로 전 세계인 누구나 만족하고 좋아하는 자랑스러운 인천 국제공항이 되기를 바란다.
아이디어 닥터, 트렌드 몬스터, 강연여행가, 브랜드 전문가…. 이장우 브랜드 마케팅 그룹 회장(62)의 여러 별칭이다.
이 별칭들엔 이장우 회장의 개인 브랜드 혁신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현재 전통제조업에서 IT 스타트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업종의 기업 7곳에서 고정·비고정의 급여를 받는다. 1년에 최소한 5~6회는 미래 유망 트렌드를 찾아보고자 해외 아이디어 탐방 여행을 가 브랜드의 촉과 감을 갈고 온다. 삶 자체가 ‘살아 있는 브랜드’로 부단한 자기 혁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을 햇빛이 투명한 어느 멋진 날,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그를 만났다. 화려한 컬러의 통 좁은 바지에 선글라스, 중절모는 물론 반지와 팔찌 등 액세서리 일습을 갖춘 그는 말 그대로 꽃중년 그 자체였다.
인터뷰 다음 날, 그는 인도로 3주간 홀로 명상연수를 떠날 예정이라며 한껏 부풀어 있었다.
보통 사람은 한 곳에서 월급을 받는 것도 좌불안석입니다. 무려 일곱 군데에서 급여를 받으신다니 부럽습니다(웃음). 퇴직 후 급여가 오히려 더 많아졌겠습니다.
“돈의 재미를 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세상이 날 필요로 한다는 의미이니까요. 현재 다섯 군데가 고정급여이고 두 군데는 비고정급여인데 늘었다가 줄었다가 합니다(웃음). 솔직히 퇴직을 앞두고 걱정을 많이 했어요. 최고경영자들이 퇴직 즈음해선 쪼잔한 상념이 많아지거든요. 부러진 날개 신세에서 영웅담을 생각한다는 것은 뻥이에요. 하다못해 국민연금, 4대보험 문제는 어떻게 하나, 별 게 다 걱정이 됐어요.”
퇴직 후 바로 이장우 브랜드 컨설팅 그룹을 만드셨지요. 직원 한 명을 둔 미니 지식기업을 창직(創職)하셨습니다. 퇴직 후, 현직 때 마지막 연봉의 두세 배를 번다고 들었습니다. 성공 비결이 무엇입니까.
“우리나라 실정과 저의 현실을 냉정하게 본 것입니다. 조직 브랜드와 개인 브랜드를 헷갈리지 않은 것이지요. 퇴직 후 회사를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조직을 키우기보다 개인으로서 나, 이장우를 키우는 게 효과적이란 생각을 했어요. 규모의 경제에서 제가 대기업, 다국적 컨설팅 그룹과 경쟁하려 한다면 백전백패입니다. 그런 기업들의 CEO와 경쟁한다면 승부수를 던질 만하지요. 개인 브랜드로 승부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퇴직 후 공황을 겪는 것은 조직 브랜드와 개인 브랜드를 헷갈려서입니다.”
퇴직 CEO들이 과거의 성공 스토리에 머물러 인생 2막 설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더군요.
“강의, 컨설팅 모두 부단한 콘텐츠 개발 싸움입니다. 대중의 열광, 과거의 영광 모두 거품이고 잠깐이에요. 길어야 1~2년 가기도 힘들고 곧 고갈되지요. 강의는 말이 아니라 콘텐츠로 하는 것입니다. 말 못해도 콘텐츠 있으면 오래 갈 수 있어요. 콘텐츠 없이 말만 잘하면 금방 바닥이 나게 돼 있지요. 멀리 보고 깊이 보려면 끊임없는 공부를 해야지요. 저는 책 공부보다 여행 공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 차원에선 스몰데이터, 감(感)이 브랜드 차별성이에요. ○○에서 들었다, 읽었다는 개인의 스몰데이터가 기업의 빅데이터를 이기기 힘들어요. ‘내가 직접 해봤다, 가봤다, 느껴봤다’를 이야기해야 먹히지요. 경쟁력은 기능이 아니라 나만의 느낌에서 옵니다.”
브랜드 전문가, 아이디어 닥터, 그리고 강연여행가로 별칭이 계속 진화하고 다각화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
“브랜드 연구는 제 평생의 업으로 한 일입니다. 여행은 콘텐츠 개발을 위해 하다 보니 어쩌다 본업이 돼버렸습니다. 사람들이 여행인문학 강의를 좋아하더라고요. 트렌드의 발상지, 원산지를 직접 방문해보자는 데서 출발했는데요. 요즘은 여행인문학으로 관심이 확장됐어요. 저는 관심의 촉, 미래의 촉이 느껴지면 배울 만한 곳이 어디에 있나 찾아봐 세계 어디든 직접 가보려고 합니다. 가령 2009년 도쿄 책방을 갔을 때의 일인데요. 트위터에 관한 책이 한 코너를 다 차지하고 있더군요. SNS가 뜨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미국 뉴저지 스테이트대학으로 공부하러 갔어요. 동양의 중년 남자가 그 먼 곳으로 한겨울에 SNS 공부를 하러 왔다니 학교에서 놀라더군요(웃음). 공부는 선(先)투자이자 선(善)투자예요. 공부하면서 계발하고, 계발하면서 공부해야지요.”
일반인이 ‘트위터’의 ‘트’란 말에도 익숙하지 않을 때 조기유학(?)을 한 덕분에 그는 SNS 브랜딩 홍보 분야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또한 현재 페이스북 팔로워 6만 명. 카카오스토리 5만 명, 인스타그램 1만 명의 팬을 확보하는 기틀이 되었다.
그의 ‘본산지, 원산지 찾아 아이디어 탐방 삼만리’는 SNS에서 그치지 않았다. 프랑스 치즈학교, 미국 포틀랜드 커피 바리스타스쿨, 영국 수제맥주 학교, 이탈리아 전통 베네치아 파스타 학교 등 관심 분야도, 아이디어 탐방 지역도 무궁무진하다. 전국 방방곡곡, 아니 세계 도처를 누비며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맛보고, 손으로 익혔다. 말 그대로 ‘왔노라 보았노라 배웠노라’였다. 그곳에서 벌어지고 부딪치는 소소한 사고와 우연한 사건들. 그것이 경험이 되고 이야기가 되고, 느낌이 되어 그만의 브랜드로 승화된다.
제가 소심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비용이 먼저 걱정되는걸요. 항공비, 체재비, 게다가 연수비용까지 만만찮을 것 같습니다.
“저는 버는 것의 20%는 자기계발에 투자한다는 주의입니다. 되도록 스폰서를 잡지 않고 제 돈으로 가는 게 원칙입니다. 후원을 받으면 여행 순서를 깨뜨리고 구속이 되거든요. 미국과 이탈리아에서 커피를 공부하는 데 2000만~3000만원 정도 들었어요. 결과적으로 강연, 컨설팅 요청이 들어와 투자한 것의 10배 정도는 뽑게 되더군요.”
그는 처음인 일을 나만의 것으로 차별화하면 브랜드가 된다고 말했다. 가령 커피 바리스타 강의를 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대중을 상대로 커피와 맥주를 전문적으로 강의하는 브랜드 전문가는 흔치 않다.
흔히 “관광이 아닌 현지 체험, 풍경이 아닌 사람을 만나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이 회장님처럼 여행을 즐기면서 아이디어 탐방 기회로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여행은 필연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연을 만나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일단 떠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보세요. 너무 목적, 목적 하며 따지지 마세요.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틀에 갇히기 쉽습니다. 기회는 인과관계 밖에서 터져 나옵니다. 많이 가야 합니다. 삶은 가고 싶은 목적지를 갖는 것입니다. 여행은 꿈입니다. 꿈을 가져야 여행을 가게 되고, 여행을 가야 자꾸 꿈을 키울 수 있지요.”
이장우 회장은 “여행은 꿈이고 도전”이라며 “목적을 갖고 가지만, 가서 새로운 목적과 도전을 얻는 우연, 세렌디피티가 더 크다”고 말했다. 그는 “목적지를 정하면 온갖 정보를 검색, 6개월 전부터 치밀한 계획을 짜지만, 막상 가서는 널널하게 현지에서 자유여행을 즐긴다”고. 사전 계획 때는 채우고, 막상 가서는 비운다. 말하자면 서양식 사고의 과학적 플래닝과 동양적 사고의 인문학적 여백의 결합형이다. 이번에 가는 인도행은 이름하여 소울 트립(soul trip). 트렌드의 촉을 읽으면 정통 원산지를 찾아 도전하고, 스토리를 만들고,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다듬어 전달하고 퍼뜨린다. 그것이 바로 브랜딩 아니겠는가.
외국어가 가능하다는 점도 세계 도처 어디든 도전하시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를 포함해 6개 국어를 하시지요. 최근에는 힌두어, 라틴어까지 공부하신다고요.
“새로운 언어를 하나 더 배운다는 것은 머리가 하나 더 생기는 일입니다. 언어를 한다는 것은 사고를 한다는 것이거든요. 여행한 곳을 더하면 새로운 마음의 눈이 하나 더 생기고요. 외국어 공부는 자기를 다른 세상으로 집어넣는 일종의 유체이탈 행위입니다. 리얼하지요. 비유하자면 번역이 사진 속 풍경이라면, 원어는 풍경 그 자체라고나 할까요. 아무리 인공지능 즉시 통번역 시대가 온다 하더라도, 외국어 공부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리얼한 것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니까요. 그것은 단지 속도가 아니라 느낌의 문제예요. 앞으로 세상은 지식이 아니라 필(feel)의 경쟁시대가 될 거예요. 지식과 상식은 보편화돼 검색하면 나오니까요. 느낌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아요. 새로운 아이디어 탐방을 멈추지 않는 이유입니다.”
요즘 문제되는 것은 세대 간 소통입니다. 기업 자문을 하실 때 신세대 직원들과 같이 일을 하셔야 할 텐데요. 그들이 어려워해 소통이 어렵진 않던가요.
“제가 얼마나 신세대랑 잘 노는데요(웃음). 저는 나이듦을 장점으로 활용해요. 바깥바람 막아주지, 아이디어 아낌없이 공유하지, 성과 올려주지, 이들의 입장에선 ‘성과와 실력은 향상시켜주면서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일은 쉽게 풀어가면서 어려운 책임은 상대가 가져가고’ 당연히 좋을 수밖에요. 신세대가 저처럼 나이 든 멘토와 일하는 장점이지요.”
그는 세대 간 불통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매력 자원이라는 무기의 문제라고 진단하면서 “신세대가 기성세대와 소통을 안 하는 것은 어렵거나 겁먹어서가 아니다. 기성세대를 무시해서다. 기성세대에게 배울 게, 물어볼 게, 아쉬울 게, 부러울 게 없다고 생각해서다. 기성세대가 신세대와 소통하려면 호통이나 비위 맞추기는 불필요하다. 그보다 실력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인은 재미와 의미를 갖고 일하지 않으면서 ‘나처럼 돼보라, 해보라’고 하면 누가 따르겠냐는 반문이다.
평생 재미와 의미로 점철된 흥미진진한 삶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에서의 ‘그늘’이 궁금합니다.
“웬걸요. 제가 콤플렉스 투성이인걸요. 콤플렉스가 힘이 되니, 인생은 알 수 없어요. 단점이 강점이 되고, 엎치락뒤치락이에요. 집은 가난했고, 머리는 나빠 구구단도 못 외울 정도였어요. 다행인 것은 지식이 들어가기 힘든 대신 나가기도 힘들더군요. 외우는 데 오래 걸렸지만, 한 번 외우면 잘 안 잊어버렸어요. 그게 외국어 공부의 동력이 되었지요. 또 집이 가난해 구멍가게를 했고, 상고에 진학해야 했지요. 어렸을 때부터 물건 팔고 장사를 하다 보니 세일즈에 일찍 눈을 뜨게 됐어요. 머리 좋은 사람이 끝까지 하는 사람을 못 이겨요. 제 삶의 모토가 ‘긴 호흡으로 살자’입니다.”
이장우 회장과의 인터뷰를 떠올리며 원고를 한 자 한 자 치고 있었다. 마침 그의 블로그에 인도에서 쓴 따끈따끈한 새 포스트가 올라왔다. 아쉬탕가 요가의 요람인 인도 마이소르의 한 수도원에서 올린 사진과 글이었다. 검은색 뿔테 안경에 주황색 승려복을 걸친 모습이 얼핏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를 연상시켰다.
“요가와 명상을 배운다는 사실이
설레었고, 그 느낌은 참 편안하고 좋았다.
영혼이 춤추는 세상을 찾아가는 새로운
배움의 여정임에 틀림없다.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현대인들에게
명상과 요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by 이장우
어느 날 문득 그가 명상과 요가 브랜드 전도사로 새롭게 나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연여행가 뒤에 붙을 그의 새로운 브랜드 네임이 문득 궁금해진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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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이베리아 반도의 서쪽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포르투갈.
영토는 한반도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서유럽에서는 최고로 가난하다. 그런데 포르투갈 여행을 하다 보면 왠지 친밀하다. 일찍이 해양 진출을 통해 동양 마카오를 식민지화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작고 가난하지만, 그래서 더욱 정겹고 사랑스러운 나라. 그라피티가 난무하는 좁은 골목길, 가파른 계단이 있는 빈민촌 같은 골목에서 은근슬쩍 비춰주던 강변의 아름다운 전경. 지는 햇살에 한껏 색깔을 내주던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소도시 포르투 여행은 그냥 행복하다.
도우루 강변의 항구도시, 2000년 역사지구
도우루(Douro) 강변 도시 포르투(porto) 시내에 들어서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예상 밖으로 앤티크한 웅장한 건물들이 온 도심을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상벤투 역, 빌라 노바 드 가이아(Vila Nova de Gaia) 지역이 포함된 도우루 강 어귀의 포르투 역사지구(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는 2000년 전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신고전주의,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다양한 시대별 건축물들이 있다.
포르투의 중심지인 자유(리베르다지, liberdade) 광장 위쪽, 포르투 시청사 주변에는 상벤투 역, 포르투 대성당, 76m 높이의 바로크 양식의 클레리구스(Clerigos) 성당과 종탑, 카르무(Carmo) 성당, 19세기에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볼사궁전 등 유서 깊은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건축물 중에는 파란 타일을 이어 그림을 그려놓은 아줄레주(Azulejo, 주석 유약으로 그림을 그려 구운 포르투갈 특유의 푸른 빛 타일)가 특징적이다. 또 포르투는 를 쓴 조앤 롤링(Joan Rowling, 1965~)과도 연관 깊은 도시다. 조앤은 1991년 11월부터 이곳 인카운터 영어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게 된다. 1992년 10월에는 현지 방송사 기자인 3세 연하의 조르즈 아란테스(Jorge Arantes)와 결혼해 1993년 7월에 딸을 낳았지만 그해 이혼하고 고향 영국으로 돌아와 명작을 남겼다. 그녀가 이 도시에 머물면서 자주 갔던 렐루 서점(Livraria Lello), 마제스틱 카페(Majestic Cafe, 1921년 오픈)는 이제 명소가 되었다.
포르투를 여행하는 재미는 따로 있다. 이런 역사적인 건축물도 좋지만 좁은 골목을 따라 걷는 여행이 특별하다. 강변의 가파른 언덕을 따라 다닥다닥 붙여 지은 가난한 건축물들과 그라피티가 난무한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도우루 강변과 유유히 떠다니는 유람선이 해맑게 미소를 짓는다. 좁은 골목에서 만나는 작은 박물관, 오래된 개인 저택, 공원 등도 흥미롭고 현지인들의 친절도 정겹다.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부탁하지 않아도 먼저 다가와 “도와줄까?”를 묻는 사람이 많은 도시가 포르투다.
도우루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와이너리
포르투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도우루 강변을 잇는 카이스 다 히베이라(Cais da Ribeira, 강변의 부두라는 뜻) 거리다. 도우루 강변 옆으로 깎아지른 듯한 도심의 집들이 이어지고 동(쪽) 루이스 1세 다리까지 와인 판매장, 노천 바들이 이어진다. 도우루 강변을 걸치고 있는 172m의 길이에 아치형의 루이스 1세 다리는 포르투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한다. 이 다리는 에펠탑으로 유명한 건축가 구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의 제자 테오필 세이리그(Teophile Seyrig)가 설계해 1886년에 완공했다.
1층에는 자동차가, 2층에는 트램이 다닌다. 1, 2층 모두 보행자 도로가 있어서 걸어 다니며 강변 풍치를 감상할 수 있다. 다리와 강이 어우러진 경치가 아름답다.
강을 건너, 빌라 노바 드 가이아 지역의 강변길에는 샌드맨(Sandman), 테일러(Taylor), 그라함(Graham), 카렘(Calem), 오플리(Offley), 크로프트(Croft), 도우(Dow), 라모스 핀토(Ramos Pinto) 등 유명 와이너리가 줄지어 있다. 입장료만 내면 와이너리의 역사, 특징, 재배 및 제조과정, 저장 중인 와인 종류와 특징 등을 알아보는 투어를 할 수 있다. 또 강변을 따라 ‘도우루 아줄(Douro Azul)’ 유람선 여행을 즐길 수 있다. 강변에서 바라보는 풍치는 훨씬 입체적이다. 도우루 강변에 있는 6개 다리(동 루이스 1세, 마리아 피아, 인판테, 상주앙, 프레이소, 아라비다)도 볼 수 있다.
포트와인 이야기
포르투 와인을 ‘포트와인(Port Wine)’이라 부른다. 이곳이 포도 산지로 유명해진 시기는 17세기. 100년 전쟁으로 오랜 견원지간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다시 냉전에 들어갔다. 단단히 토라진 프랑스는 영국에 와인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와인의 공급지를 새로 구해야 했던 영국 상인들은 빌라 노바 드 가이아로 이주해 자국으로 수출할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포르투갈에서 영국까지의 항해는 한 달이 걸렸고, 그 사이 와인은 식초가 되었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와인에 브랜디를 넣어 숙성시킨 포르투 와인이었다. 알코올 도수는 더 높아지고, 당분 발효가 중단되어 더 달콤한 맛을 냈는데, 이것이 큰 인기의 비결이었다.
그 후 포르투갈은 발달된 항해술로 일찍이 신대륙과 아시아에 진출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처음으로 접한 서양 와인도 바로 ‘포트(Port)’다. 아직도 와인은 달고 은근히 취하는 술이라 여기고, 오래될수록 좋은 와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이 ‘포트’ 때문이다. 포르투는 미국으로 수출되는 모든 와인에 포트와인이라는 상표를 붙인다. 포트와인은 알코올 함량(18~20%)이 높아 취하기 십상이다. 잘 구운 닭 요리에 도수 높은 포도주 알코올에 취하는 포르투는 영원히 마음속 깊이 간직된다.
Travel Data
항공편 한국에서 포르투갈로 가는 직항은 없다. 먼저 마드리드, 파리, 런던 등 유럽의 주요 도시로 가서 포르투갈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면 한국에서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가는 직항을 이용하면 된다. 마드리드에서 저가 항공을 이용하거나 차마르틴 역에서 야간열차를 이용해 리스본 산타 아폴로니아 역(10시간 30분 소요)까지 가면 된다. 마드리드-리스본행도 운행되고 있다.
현지 교통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는 포르투까지 버스로 약 3시간 30분, 기차로 2시간 30분이 걸린다. 리스본 공항역에서 출발하는 메트로(지하철)를 타고 오리엔테 역(약 10분 소요)으로 가면 기차나 버스(Renex)를 이용할 수 있다. 기차는 포르투 캄파냐 역에서 환승해 지하철로 포르투의 중심지인 상 벤투 역에 하차하면 된다. 버스는 환승이 필요 없다.
맛집 정보 포르투갈은 먹거리가 풍부하고 맛있다. 전통 음식으로는 프란세지냐(Francesinha)가 있다. 양이 어마어마해 ‘내장파괴버거’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또 그릴에 구워주는 닭고기 요리가 맛있다. 청과물 시장에서 파는 과일들도 맛이 좋다.
숙박 정보 포르투의 베스트 호텔은 도우루 강을 전망할 수 있는 곳에 있는 이트맨(Yeatman) 호텔이다. 야외에서 레드와인 목욕을 즐기거나 와인 투어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또 18세기 중반, 이탈리아 출신 건축가 니콜라우 나소니(Nicolau Nasoni)가 설계한 페스타나 팔라시오 도 프레익소(Pestana Pala′cio do Freixo)는 바로크 시대에 지어진, 포르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건축물이다. 호텔의 프랑스풍 정원 앞으로 푸른 도우루 강이 펼쳐진다. 이 외 18세기 궁전을 개조해 만든 최고급 호텔인 인터컨티넨탈 포르투(Intercontinental Porto)와 2개의 실내 수영장, 터키식 목욕탕, 사우나, 스쿼시 코트 등을 갖춘 포르투 팔라시오 콩그레스 호텔 앤 스파(Porto Pala′cio Congress Hotel & Spa) 등 꽤 많다. 고급 숙소는 100만원이 넘지만 4~5만 정도로도 2인용 객실을 이용할 수 있다.
물가 정보 포르투갈의 통화는 ‘유로화’다. 유럽에서는 물가가 낮은 편이어서 큰 부담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날씨와 옷차림 유럽의 11월(가을)은 비가 자주 내리는 시기다. 평균 최저기온은 영상 11.2℃, 평균 최고기온은 영상 17.8℃로 선선한 가을 날씨를 생각하면 된다. 한 달에 2주 정도 비가 내리는데 적지 않은 양이기 때문에 우산을 지참해야 한다. 또 낮에는 선선하지만 밤에는 쌀쌀하니 긴소매 옷들과 두께가 있는 외투와 점퍼를 함께 준비하면 좋다.
시니어 한 달 여행 포인트 포르투는 기대 이상으로 매력이 넘치는 도시다. 세계 베스트 관광지에서 항상 최고 순위를 차지하는 곳이지만 물가가 그다지 비싸지 않고 음식도 한국인 입맛에 잘 맞다. 강변에서 여유롭게 낚시도 즐길 수 있다. 가을이면 포도 수확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와인 투어는 필수다. 나라가 크지 않으니 수도 리스본과 주변의 소도시 여행을 연계하면 된다.
“거기 선배님들, 저 배고픈데 밥 좀 사주세요!”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64학번 구대열과 이인재가 뒤를 돌아봤다. 두 사람은 학교 정문을 나와 미라보다리를 막 벗어나려던 차였다. “늦게 일어났는데 하숙집 아줌마가 반찬이고 뭐고 치워버려서 밥도 못 먹고 나왔어요. 네?” 처음 만난 여자가 후배 행세를 한다. 난감한 두 남자. 그런데 대답을 듣기도 전에 행동에 들어가는 여자.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팔짱을 꽉 끼고는 목적 달성(?)을 위해 앞으로 전진한다. 이래도 되는 걸까? 에라 모르겠다. 가자, 진아춘(進雅春)으로!
학림에서 만나자더니 진아춘으로 직행하다
혜화동(서울시 종로구)에서 낭만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64학번 동기인 구대열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이인재 동보항공 회장과 함께 길을 나섰다. 혜화동 일대는 1946년부터 1975년까지 마로니에공원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의 본관과 문리대, 법대 등이 있었던 대학 캠퍼스였다. 이후 서울대학교가 관악 캠퍼스로 옮겨가면서 서울대 혜화동 캠퍼스 시대는 막을 내렸다. 사라진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문리대학이다. 우리 시대에는 찾아볼 수 없는 전설 속의 서울대학교 문리대 출신들과의 데이트라서 그런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첫 번째 만남 장소였던 학림다방 의자에 엉덩이가 닿기도 전에 “옛날 우리 식대로 하자”며 중화요리집인 진아춘으로 향한다. 진아춘에 들어서 앉자마자 시키는 것은 군만두와 배갈. 추억의 음식이라며 그때 느낌을 재연하는 것이란다.
구대열 옛날에 학생이 중국집에 들어온다는 것은 좀 과한 거였어. 겨울에 차가운 도시락 들고 진아춘에 가서 100원인가 주면 뜨끈한 국물을 줬잖아. 거기에 밥 말아 먹고 했지.
성북동 근처에서 하숙을 했던 이인재 회장은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던 구 교수는 그나마 형편이 나은 학생이었다고 입을 열었다.
이인재 그때 1인당 GDP가 100달러 안팎이었거든. 도시락 가지고 와서 데워 먹은 사람은 형편이 나은 사람이었어요. 나는 하숙집으로 밥 먹으러 다녔다고. 주문을 하면 딱 배갈이랑 군만두였지.
옛 진아춘은 지금보다 많이 작았다. 방과 방 사이에 작은 구멍을 만들어놓고 하나의 전구로 빛을 나눠 쓰며 전기를 아끼던 시절이었다. 개구진 친구 한 녀석은 남자와 여자가 한 방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구경을 해보겠다며 틈 사이로 고개를 들어올리기도 했다. 메뉴판도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오로지 군만두 아니면 자장면을 시켜 먹던 시절 메뉴판에서 그나마 특별한 요리는 탕수육이었다.
이인재 우리 마누라하고 연애할 때 어쩌다 와서 하나 시키는 게 탕수육이었어요. 술은 한 10병은 더 마실 수 있었지만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진아춘은 당시 서울대생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중식당이다. 송형국 사장은 춥고 배고픈 학생들에게 매번 아량을 베푸는 것이 일이었다. 외상도 많았다. 돈 없는 학생들이 뭘 좀 먹겠다며 신분증이며 시계며 열심히 맡겼다. 1996년, 결국 주인을 찾지 못한 시계를 모아 서울대학교 기록관에 기증했다. 지금까지 서울대와의 인연 때문일까. 군만두를 먹고 지불한 돈은 서울대학병원 암센터로 기부된다.
그 시절 시위는 학점 없는 교양과목
당시 서울대학 문리대는 거의 모든 시위의 발원지였다. 64학번과 뗄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은 바로 한일협정 반대 시위였다.
구대열 우리가 입학하고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초년병에다가 시골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서울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잘 몰랐어요.
이인재 그 당시의 ‘시위’는 교양과목 같은 것이었어요. 서울대나 고려대, 연세대도 마찬가지고. 다들 거리로 나갔어요. 근데 학점은 없었죠. 출발할 때는 3, 4학년들이 맨 앞에 서서 갔는데 어쩌다 보니 내가 제일 앞장서서 걷더라고요. 다들 어디 가고 없었어요(웃음). 경찰서로 끌려가 곤봉으로 얻어맞기도 했어요. 척추가 원래부터 안 좋았는데 그 후 시위를 위해 길거리 나가는 것을 자제했습니다.
서울법대 학장 출신이던 유기천 총장 퇴진운동도 문리대학에서 크게 있었다.
구대열 그때는 정치 문제로 시위를 한 게 아니고 그 ‘쌍권총 총장’이라고 유기천 총장 있잖아. 군 정부에서 올려놓은 사람 물러나라고 그땐 그랬지. 1, 2학년 때는 한일협정 반대했고 그다음엔 총장….
자유와 낭만의 이름으로 남다
사라진 지 꽤 오래된 그 이름,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세상 많은 학교의 학부와 학과가 생겨나고 사라졌지만 서울대학교의 문리대학만큼만은 아련한 향수 속에 회자된다. 이유는 무엇일까?
구대열 문리대학에는 각 과마다 학생이 10명에서 20명이었어요. 이곳이 좋았던 게 학과 개념이 거의 없었어요. 듣고 싶은 과목은 다 들었어요. 내가 2학년인데 4학년 강의를 들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고 다른 과 수업도 마찬가지였고 문리대학 자체가 전인교육장이었던 거죠. 인격체를 만드는 것이란 자부심이 강했어요. 대신 학점이 형편없었어(웃음).
이인재 머리는 좋은데 가난한 학생들이 모인 곳이 문리대였어요. 먼 길을 돌아서 우리처럼 부산에서 광주에서 많이들 몰려들어 왔어요. 전국에서 별놈들이 다 왔는데 이과와 문과가 갈리지 않아서 그런지 문리대 학생들이 특별한 면이 있었어요.
구대열 학교 정문 미라보다리 앞에서 들어오는 친구들한테 100원만 달라고 해서 300원, 400원 모이면 밥 먹으러 가는 친구도 있었다니까.
몬테네그로의 아드리아 해안 도시인 페트로바츠(Petrovac)는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구석은 없다. 올리브나무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바닷가 마을. 신선한 공기, 푸르고 맑은 물빛, 모래와 조약돌이 어우러진 해변, 16세기에 만들어진 요새, 바다 앞쪽의 작은 섬 두 개가 전부인 해안 마을이지만 동유럽의 부유층들에게 사랑받는 휴양도시다. 영화, 뮤직비디오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 도시는 긴 여행에 지친 여행객의 마음을 매우 편하게 해준다. 낚싯대와 책 한 권이 꼭 필요한 곳이다.
푸른 아드리아 해안을 정원 삼은 해안 도시들
발칸 남동부 지역에 위치한 몬테네그로는 한국인에게는 낯설다. 크로아티아처럼 아름다운 아드리아 해안선을 끼고, 해안으로부터 디나르알프스(Dinar Alps) 산맥이 가파르게 솟아올라 풍경의 장관을 보여주는 나라다. 풍치는 빼어나고 음식은 이탈리아 버금갈 정도로 맛있고 물가도 싼 나라인데도 크로아티아 뒷전인 것은 순전히 매스컴 영향 탓이다. 무분별하게 보여주는 영상매체를 스스로 걸러낼 수 있어야 수준 있는 사람이다. 몬테네그로는 우리나라 강원도 정도 크기로 유럽 내에서도 매우 작은 국가다. 좁은 땅에 로브첸(1749m), 오르엔(1894m), 두르미토르(2522m) 등의 고산이 90%나 차지하고 있어 매우 척박하다. 현지민들은 살기가 힘들겠지만 관광객에게는 최상의 여행지다. 고산을 지붕 삼고 푸른 아드리아 해안을 정원 삼은 해안 도시들은 참으로 아름답다. 영국 시인 바이런(1788~1824)은 몬테네그로를 ‘육지와 바다의 가장 아름다운 조우’라고 표현했다. 몬테네그로의 수도 포드고리차(Podgorica)는 전쟁으로 온 도시가 폭격을 당했지만 아드리아 해안선은 완전히 다르다. 코토르 만을 따라 이어지는 293.5km 해안선은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중 하나로 손꼽힌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Dubrovnik)와 경계에 있는 헤르체그노비(Herceg Novi)를 시작으로 페라스트(Perast), 티바트(Tivat), 리산(Risan), 코토르(Kotor)까지 그림 같은 해안 도시가 이어진다.
부드바와 바르 중간쯤에 있는 작은 해안 마을
그러나 아름다운 곳에는 늘 사람들이 몰리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해안 도시의 풍치에 탄성을 내지르는 것도 잠시. 때때로 지나친 상흔을 보여주는 곳이 번잡한 관광지다. 긴 휴식을 취하고 싶었을 때 찾았던 곳이 페트로바츠다. 페트로바츠는 수도 포드고리차의 식당 직원에게 추천받은 곳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Hercegovina)에서 몬테네그로로 입성해 터미널 근처의 식당을 찾았다. 음식은 기대 이상으로 맛있어서 메인 요리를 두 개나 시켜 먹고 나서 영어를 잘하는 스태프에게 질문을 했다. “네가 좋아하는 도시를 추천해줄래?”라고 묻자 그는 메모지에 페트로바츠라는 지명을 써주었다. 지역 사람들만 가는 곳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코토르를 도망치듯 떠나 ‘부드바(Budva)’에 점을 찍고 버스에 올라탔으나 목적지에서 내리지 못하고 ‘바르(Bar)’까지 가버렸다. 버스의 남자 안내원이 인파에 밀려 동양인 여자가 목적지를 꼭 알려 달라 했던 지명을 잊어버린 것이다. 바르에 도착한 버스의 여자 운전자는 말 안 해준 안내원보다 더 안달이 났다. 그녀는 페트로바츠까지 되돌아갈 수 있는 버스 편을 가르쳐주기만 했지 공짜표는 주지 않았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고. 너네 잘못이니 표 값 돌려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생각일 뿐이었다.
로마 때 별장을 지으면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도시
페트로바츠는 부드바(17km)와 바르(21km) 중간 즈음에 있는 작은 해안 마을이다. 관광객들로 온통 북적대던 인근 해안 도시에 비해 조용하고 정적이다. 이 도시는 몬테네그로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 기록서인 듀클랴(Duklja) 공국의 성직자 연대기(年代記, 연대순으로 역사적인 사상을 열거한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4세기, 로마시대 때 한 부부가 이곳의 크라스 메딘스키(Krsˇ Medinski)에 별장을 지으면서 사람이 정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을 증명해주는 유적들이 발굴되었다. 로마시대의 모자이크 바닥을 욕조로 한 모자이크 조각이 세인트 일리야(Prophet Elijah) 교회 뒤에서 발견되었다. 원래의 지명은 라스트바(Lastva)였다가 20세기, 세르비아의 페타르 카라조르제비치(Petar Karađorđevic´, 1844~1921) 왕조 때부터 페트로바츠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마을 앞으로 나서면 600m 해안선을 가진 루치차 해변이 있다. 작아서 한눈에도 해안 주변은 다 보인다. 해안선 북쪽 오른쪽 끝에는 오래된 듯한 작은 요새가 있다. 반대편 해안에는 자그마한 소나무 산이 있고 바닷가 쪽으로는 가옥 몇 채가 있을 뿐, 해안 길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바다 앞쪽으로는 작은 섬 두 개가 있고 바위 섬 위에는 마치 ‘인형 집’ 같은 작은 교회가 있다.
영화 등 촬영지로 인기
우선 눈에 익은 듯한 북쪽 해안 끝 카스텔(Castel)로 다가선다. 작은 이 요새는 16세기 베네치아 통치 시절에 해적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선원들의 작은 등대 역할을 했다. 요새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시스트와 싸우고 죽은 사람들을 기념하기 하기 위한 작은 오벨리스크가 기둥처럼 솟아 있다. 요새 옆의 거대한 아트갤러리(Red Commune)는 베네치아 통치 시절에 만들어진 창고 겸 검역소다. 와인 등의 제품들을 보관했고 전염병이 돌면 환자의 숙박시설, 검역장소로 사용되었다. 이 지역의 유명한 건축가인 마르코 그레고비치(Marko Gregovic)가 19세기 후반 개조해 오늘에 이른다. 이 건물에는 1만5000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는 도서관이 있고 연중 많은 연극, 예술, 음악 이벤트가 펼쳐진다.
특히 이곳 풍경이 낯익은 것은 영화 (레이첼 와이즈, 애드리언 브로디, 마크 버팔로 주연)이라는 영화 때문이다. 사기꾼 형제 중 동생(애드리언 브로디 분)이 지친 몸을 이끌고 도망쳐온 곳이 바로 이곳. 레이첼 와이즈와의 사랑을 이루는 엔딩 장면도 이 요새와 레드 코뮌을 뒷배경으로 보여준다.
바닷가 앞에 있는 두 개의 작은 섬은 카티치와 스베타 네제리아(Katicˇ and Sveta Neđelja)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앙증맞은 이 섬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 정보부가 유고슬로비아 게릴라와 연락 교신하기 위해 주둔했다. 난파선 선원의 귀환을 기원하는 성 일요일이라는 작은 교회가 남아 있다. 교회의 종을 울리면 행운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전설이 흐르고 있지만 유람선을 타지 않으면 접근하기 어렵다. 이 도시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구)유고슬라비아의 부유한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가 되었다. 현재도 외부 관광객보다는 현지민들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카지노가 있는 멋진 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원 없이 휴양을 즐기면 좋을 곳. 아침 햇살을 맞으며 요새 근처의 바에 앉아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책을 읽고 싶은 곳. 낚시를 즐긴다면 낚싯대를 드리우고 고기가 잡힌다면 한국식으로 회를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Travel Data
항공편 직항은 없다. 동유럽, 서유럽, 터키 등지에서 항공편으로 몬테네그로로 진입한다. 포드고리차 티바트 공항은 도심과 50km 거리에 있다. 육로로는 주로 크로아티아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그리스, 마케도니아, 코소보 등에서 접근할 수 있다.
현지 교통 기차보다는 버스가 편하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버스로 이용할 경우, 헤르체그노비를 거쳐 3시간 만에 코토르에 도착한다. 코토르에서 페트로바츠까지 버스가 수시로 운행된다. 해상 편은 굉장히 불편하다. 인근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코소보 등 형제 국가에서의 진입에도 엄격한 여권 검사 등 국경 통과 절차를 밟아야 한다.
화폐 공식 화폐는 ‘유로화’다.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저렴해 부담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언어문제 몬테네그로어와 라틴 문자, 키릴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도 관광지 대부분은 영어로 소통하는 데 문제없다.
먹거리 도시 안쪽이나 바닷가 쪽에 레스토랑, 바, 카페가 있다. 음식은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다. 바닷가 근처라서 해산물이 많다. 또 몬테네그로산 프로슈토 햄도 유명하다.
숙박정보 카지노가 있는 호텔 외에 가정집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가 꽤 있다. 카지노 호텔은 30만원선이고 게스트하우스나 아파트는 5~6만원선에 이용 가능하다. 저렴한 호스텔은 없다.
날씨정보와 옷차림 몬테네그로는 해양성 기후로 여름이 길다. 9월은 물론 10월 낮에도 바닷가 수영을 즐길 수 있다. 습기가 없고 건조해서 여행하기 좋으나 낮에는 햇살이 따갑다. 10월의 평균온도는 20도 정도이니 가을 옷을 준비하면 된다. 겨울에는 9도 정도로 온도가 급강하한다.
치안정보 몬테네그로는 관광객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치안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대부분 안전한 편이나 관광지에서는 바가지 상술을 겪을 수 있으니 유의하길 바란다.
페트로바츠 관광 사이트 www.petrovac.org
시니어 한 달 여행 포인트 한국인들은 매스컴 등의 영향으로 크로아티아 여행을 선호하지만 바로 인접해 있는 몬테네그로의 풍경은 크로아티아 버금간다. 크로아티아 여행과 함께 몬테네그로 여행 계획도 세워보자. 그리고 페트로바츠에만 머물지 말고 시간 배정을 잘해서 몬테네그로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브해보자. 크로아티아부터 시작해 아드리아 해안선을 따라 울치니(Ulcinj)를 벗어나 알바니아, 그리스까지 여행을 한다면 최고의 여행이 될 것이다. 렌트(www.montenegro-car-rent.com)를 하거나 유람선을 이용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