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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넘어 4개 언어 공부해 번역가 데뷔, "비결은 가랑비"
- ‘공부가 취미’라는 심혜경 번역가. 그가 정의하는 공부는 밤낮으로 정진하고, 빠르게 연소시켜야 할 젊은이들의 것과는 다르다. 나이가 몇 살이든 괜찮다. 직업과 관련되지 않아도 무방하다. 결과 역시 중요하지 않다. 은퇴 후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오래 해보고 싶다면 그를 통해 영감을 얻어보자. 심혜경 번역가는 27년 동안 정독도서관과 남산도서관 등 서울시 공공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했다. 오십이 넘어갈 즈음 자신이 여전히 건강하고 활력 넘친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남은 긴 삶을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친구들과 그저 수다 떨거나, 아이들이 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싶지는 않았다. 직장과 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함께 다니며 영어영문학, 중어중문학, 일본학, 프랑스언어문화학을 공부했다. 뜨개질, 수채화, 태극권, 클래식 기타 등도 배웠다. 어느덧 14년 차 번역가가 된 그는 은퇴 후 더욱 본격적으로 ‘다양한 분야를 맛보는 삶’을 실현하고 있다. “사실은 배우다 그만둔 종목이 더 많아요. 피아노는 ‘어린이 바이엘’ 상권 중간쯤에 그만뒀어요. 클래식 기타는 ‘로망스’의 첫 번째 테마를 연주할 수 있게 되고 하산했죠. 물처럼 부드럽고 느릿느릿한 움직임에 반해 시작한 태극권은 나무토막 같은 몸으론 너무 어려웠어요. 그래도 바이올린 수업은 삐걱대는 소리를 내면서도 매회 빠지지 않았어요. 저는 ‘학구파’가 아니라 ‘학교파’거든요. 공부보다 수업을 들으러 다니는 걸 더 즐긴다는 의미예요. 그래서 속도는 좀 더뎠지만, 수업 넉 달째에는 바이올린 현 네 줄 중에서 세 줄을 정복했습니다.” ‘지속 가능한’ 외국어 공부 그에게 ‘공부’는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에 따르는 모든 행위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쉬엄쉬엄 하더라도 끝을 볼 때까지 계속한다. 지속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일로 오래 성취감을 얻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다. 외국어 공부를 시작한 것도 좋아하는 책을 읽고 싶어서였다. 평소 독서를 워낙 좋아하는 터라 읽을거리가 없으면 정신이 혼미해지는데, 한국어 책이 없으면 영어 서적이라도 읽어야 한단다. 읽고 싶은 외국 작가의 책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접해도 번역서가 나오려면 적어도 몇 달은 기다려야 하는데, 그럴 땐 결국 원서를 주문해서 읽는다. “영어 실력이 출중하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중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공부하고 시험 기간에 복습한 게 전부니까요. 하지만 원서를 끝까지 읽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성격이 급해서 후루룩 읽는 데다, 관심이 가지 않거나 흥미 없는 부분은 듬성듬성 건너뛰며 읽거든요.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사전을 찾지 않아요. 흐름이 끊겨 독서에 집중하기 힘들기 때문이죠. 더 다양하게, 잘 읽고 싶어 한겨레문화센터 번역가 과정을 수강했고, 우연히 에이전시 직원을 만나 번역 일을 시작했어요.” 가랑비에 옷 적시는 기분으로 그에게 ‘친구들과의 협업’은 공부를 오래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마음 맞는 사람과 근황을 이야기하며 배우는 곳에 가거나, 편한 장소에서 약속을 잡고 함께 책을 읽는다.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듯 말이다. 어느새 친구들끼리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을 모두 ‘윤독 모임’으로 치환했다. 두께가 목침 같거나 무게는 가벼워도 내용이 버거운 원서를 여럿이 돌려가며 낭독하는 방식이다. 윤독할 때는 사전을 찾지 않는다. 꾹 참고 읽다 보면 앞뒤 맥락에 맞춰 이야기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즐거운 강제성이랄까요. 놀이 삼아 친구와 함께 배우기 시작한 일은 꾸준히 하게 됐어요. 요즘은 영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로 된 책 읽는 모임을 10개 가까이 하고 있어요. 영어는 어떻게든 읽을 수는 있지만 일본어는 한자 단어의 독음을, 중국어는 모르는 단어의 성조와 병음을 미리 찾아 표시해두고 모임에 나가요. 현지에서 오래 살았던 친구, 한국어가 유창한 외국인 친구 등에게 발음하는 방법을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그는 막연히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거나, 여유가 있지만 그냥 놀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에게 취미로 외국어 공부를 권한다. 외국어 공부는 다른 일과 병행이 가능하고, 본인에게 맞춰 충분히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 무엇보다 누구 눈치 볼 필요가 없다. 인생 중·후반기에 들어 공부한다고 하면 “그 나이에 그런 걸 배워서 어디다 쓰려고 그래?”라는 말을 듣기 일쑤인데, 외국어는 오랜 시간을 투자해도 계획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지 않는다. 아마추어 단계에 머물러도 덜 부끄럽다는 뜻이다. 엉성한 실력일지라도 해외여행을 떠나 새로 배운 언어를 사용해보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당장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좌절하기엔 이르다. 외국어 공부는 인공위성이 궤도에 안착하는 과정과 같다. 꾸준한 시도와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마음을 급히 먹으면 체하는 법. 오늘 못 배우면 다음 주에 또 배우면 된다는 느긋한 마음으로 임하는 게 좋다. 싫증 내지 않고 마음 붙일 분야를 찾았다면, 행운으로 생각하고 꾸준히 해보는 거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일주일에 한 방울씩 가랑비를 맞다 보면 시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가고, 실력은 저 먼발치에 차곡차곡 쌓이기 마련이다. 이래서 무슨 공부가 되겠냐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성의 없어 보이게 공부해도 마냥 지지부진한 결과만 나오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단다. 공부는 필요할 때, 하고 싶을 때 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배우다 말다, 배운 것도 아니고 안 배운 것도 아닌 듯한 시간을 지나왔을 누군가에게는 ‘당신만 그런 게 아니에요’라는 응원을 보내고 싶어요. 한편으로는 공부를 이렇게 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세상엔 탐구할 분야가 너무 많은데, 매 순간 깊이 파고들면 지쳐버리잖아요. 공부의 목적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둔다면, 바친 시간과 노력은 빛이 바래지 않을 거예요. 그 기억과 경험이 언젠가는 도움이 되죠. 서두르거나 무리해서 달리지 않아도 됩니다. 해내고 있다면 언젠간 이룰 수 있으니까요. 순간의 작은 성취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을 온전히 누려보는 건 어떤가요?”
- 2023-06-1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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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미로 아름다워지는 노후, 시니어 놀이터에 초대합니다"
- 서울시 동대문구에 위치한 더오페라는 300평 규모의 홀을 겸비한 시니어 복합문화공간이다. 홀에서는 댄스스포츠, 모델워킹, 난타, 뮤지컬 등 시니어 대상 아카테미뿐만 아니라 파티, 라틴바 등 이색적인 행사도 펼쳐진다. 홀 바닥은 특수 쿠션이 처리된 마루로, 댄스, 워킹 등 육체 활동에도 무릎에 무리가 덜 가도록 설계하는 등, 중장년들을 위한 배려가 돋보인다. 이토록 시니어 취미에 진심이라는 국영서(61) 더오페라 대표를 만나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중장년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게 되신 계기가 궁금한데요. 일찍이 노후 여가 및 취미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A. 지금은 백세시대라고 하는데, 자칫하면 150세까지 살 수도 있다고 봐요. 그러면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을 목적으로 삼기보다는, 여생을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게 사느냐가 관건인 거죠. 우리 세대가 다들 그랬듯, 저도 30대까지는 사회 구조에 맞춰 살기 바빴어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나를 돌아볼 진중한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50대를 지나면서 어떤 인생2막을 보내야 가치 있을까 싶더군요. 동시에 자녀세대에게 존경 받는 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노후를 보내야 할까라는 고민도 생겨났습니다. 그러면서 주변에 은퇴하신 분들을 봤는데, 아직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하기엔 너무나 젊고 건강한 분들이 많은 거예요. 결국 외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부분도 테라피가 필요하다고 느꼈죠. 오래 전부터 댄스스포츠를 취미로 하고 있었는데, 그게 제격이다 싶었어요. 음악이 지니는 치유 효과와 더불어 춤을 통해 전신 운동이 가능하니 너무 좋잖아요. 제가 느꼈던 그 매력과 즐거움을 전파하고 싶은 마음에 지금의 더 오페라를 꾸리게 됐습니다. Q. 대표님께서 체감하는 댄스스포츠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A. 남편과 함께 댄스스포츠를 한 지도 20년이 넘었네요. 일반적인 취미가 아닐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이것만큼 좋은 운동이 없더라고요. 단순히 땀을 흘리면서 육체만 쓰는 게 아니라, 음악과 함께 아름답고 우아하고 멋진 동작을 만들어내니까요. 또, 나이 들수록 사람들과 어우러지고 소통할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한데요. 먹고 마시고 하는 것만 매일 할 수는 없잖아요. 이런 취미를 함께 공유하고 함께 동작을 연구하며 즐기는 과정이 저는 참 의미 있고 소중하더라고요. 무엇보다 댄스스포츠는 자연스러운 스킨십이 이뤄지기 때문에, 이러한 교감이 노후에 긍정적 에너지를 줄 수 있다고 봐요. 또, 춤은 국경을 넘나드는 몸의 언어와 마찬가지인데요. 저희 부부는 해외여행 가서도 꼭 마지막 날엔 클럽에 가서 춤을 춘답니다. 춤을 배운다면, 언젠가 그런 낭만을 경험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Q. 단순히 취미로 즐길 때와 사업체를 운영할 때는 좀 다를 텐데요.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계신가요? A. 일단 시작할 때 시니어 대상이기 때문에, 제 눈높이에서 그 시장을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보니 취미로만 계속 즐기기보다는 결국 취미를 통해 다양한 직업이 개발되고, 수익창출로 연계돼야 성장 가능성이 있겠더라고요. 이곳에 오시는 분들이 충분히 본인의 취미 생활을 즐기면서도 직업적인 소양을 갖춰나가실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발굴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가령 난타 수업도, 저희는 ‘K시니어난타’라는 걸 개발했는데, 어느 정도 숙달되고 나면 프로팀을 꾸려 각종 국내외 행사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게 되죠. 그렇게 일부 소득이 창출되면 그게 곧 직업이 되기도 하는 거예요. 뮤지컬이나 연극을 하는 액터테이너반도 있고, 끼가 출중한 분들은 광고모델 양성과정도 있고, 쇼호스트나 라이브커머스 크리에이터가 교육을 하는 미디어테이너반도 있고요. 그런 교육적인 부분과 더불어 개인의 건강과 아름다움까지 토털로 가꿔갈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보고자 해요. Q. 더오페라를 찾는 중장년들을 보며 가장 보람을 느끼실 때는 언제인가요? A. 중장년들이 성취감을 느끼고 성장해나가시는 모습을 볼 때예요. 그러면서 더 건강하고 아름다워지실 때죠. 어떻게 보면 과거에는 아이 잘 키우고, 회사 생활 잘하는 거로 성취감을 느꼈는데, 나이 들수록 성취감을 느낄 구실이 많이 없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동작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으로, 교육 프로그램 듣고 수익창출까지 해나가시는 과정으로 계속해서 성취감을 올리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요. 제가 한때 뷰티 사업을 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외적인 아름다움에 집중했었는데 요즘에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더 들여다보게 됐어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자존감과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겠더라고요. 중장년 스스로 ‘내가 잘 하고 있구나’, ‘20대 때 못했던 것들을 50이 넘어서도 할 수 있구나’ 이런 긍정적인 동기가 일어나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내면에 있는 잠재의식을 끌어내는 일, 그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우리 시대 중장년들이 더 아름답고 건강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Q. 지금까지 나름의 성과를 달성해오셨는데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A. 더오페라는 평일에는 전문 학원의 기능을 하지만, 주말에는 주로 파티의 장이 열리는데요. 댄스스포츠 전문 파티를 비롯해 다양한 세미나와 이벤트, 공연이 펼쳐집니다. 지난해 연말에도 다양한 파티와 쇼를 진행했었는데, 참여하신 시니어들이 다 끼가 넘치시더라고요. 마음은 정말 청춘이구나라는 걸 다시 실감했습니다. 다만 체력적인 부분은 보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요가나 필라테스 같은 수업을 병행하며 건강까지 가꿔가실 수 있도록 마련해보려 해요. 댄스 종목도 더 늘려갈 계획입니다. 또, 이번에 저희가 코리아문화예술협회를 만들었는데요, 이런 활동들을 통해 지자체와 협력해 더 많은 분들에게 기회를 제공해드리고 싶어요. 지역 내 독거노인이나 경력단절 여성, 은퇴자 등 다양한 분들이 댄스스포츠를 비롯한 취미를 통해 스스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시도록 재능 나눔을 펼쳐가려 합니다. 결국 댄스스포츠를 계기로 이 곳을 만들었지만, 결국 노후를 이루는 다른 요소들도 다 한 울타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봐요. 여기에 오시는 분들도 취미로 시작했지만 그걸 개인의 수입이나 브랜드로 발전시키시며 자신의 노후 울타리를 다져나가시면 좋겠어요. 그런 우리 중장년의 문화가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문화로 거듭나는, ‘K 시니어 컬처’로 증진시키고 싶다는 큰 꿈도 꿔봅니다. Q. 아직 취미를 찾지 못했거나, 방문을 망설이는 분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A. 예전에는 춤 배우러 간다고 하면 캬바레 같은 공감을 떠올리시고 좀 좋지 않게 보시기도 했는데, 요즘은 건전한 취미 문화로 자라 잡아가고 있어요. 어떤 분들은 몸치, 박치라며 주저하시는데요. 그런 분들도 배워가면서 하시다보면 곧잘 하세요. 어릴 때 걸음마를 배우고 숟가락질을 배우듯, 새롭게 익혀나가신다고 여기시면 좋겠어요. 노후가 긴만큼 장기전으로 바라보시고, 10번이고 20번이고 마음에 여유를 갖고 해나가다 보면 어느새 능숙한 실력을 뽐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도전의 문턱을 넘기 어려워하는 분들을 위해 원데이 클레스도 진행하고 있으니, 와보셔서 한번 감을 잡아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저는 더오페라를 ‘시니어놀이터’라고도 하는데요. 다들 많이 놀러 오시고, 즐거운 인생2막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 2023-06-0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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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오모 성당, 그리고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는 최대 규모인 밀라노 두오모 성당은 지하철 출구에서 나오면 바로 보이는 위치에 있다. 교통이 좋아야 하는 건 현대인의 주거 선택 시 중요 요소인데 여행지를 향한 여행자들에게도 해당된다. 때로 먼 길 찾아가 고요히 만나는 여행지의 맛도 남다를 수 있지만 짧은 시간을 만들어 찾아온 사람들에겐 이럴 땐 반갑다. 지하철에서 올라오니 두오모 성당이 기다린 듯 보이는 건 쾌재를 부르게 한다. 두오모(Duomo)는 이탈리아어로 대성당을 뜻한다. 이탈리아는 가는 곳마다 대성당이 있는데 그중에 피렌체와 밀라노의 두오모 대성당이 유명하다. 특히 오래전에 가 보았던 피렌체의 두오모는 그 독특함이 지금도 떠오른다. 어쩜 이다지도 문양이 정교하고 오묘한지 감탄스러웠다. 웅장하고 장대한 건물 곳곳 시선이 닿는 곳마다 섬세함에 놀랐다. 피렌체 두오모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가 먼저 떠오르는 성당이다. “홀로 멀리 여행을 떠나라. 그곳에서 그리운 사람이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 명대사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본 사람들에게 강렬하게 남아있다. 영원을 약속하는 연인들의 성지로 준세이와 아오이가 서른 살의 생일에 만나기로 했던 곳. 그러나 서른 살이 되기 전에 헤어진 두 사람이 재회하게 되는 스틸컷의 효과가 크다. 만나지 못한 채 그렇게 시간이 흘렀어도 피렌체에서 다시 그들은 서로 연결되었고 마음을 주고받았다. 여행자들도 두오모 성당 앞에서 영화처럼 나름대로의 무언가를 하는 것, 하다못해 혼자 배회를 하거나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BGM이라도 듣는다. 우리들에게 그곳은 매체의 영향이 있는 곳이 되었다. 그 영화음악을 듣다 보면 잔잔한 피아노 선율에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만 두 연인의 풍경을 배경으로 애잔하게 울려 퍼지는 첼로 연주곡이 듣는 이의 감정을 뒤흔드는 걸 느낀다. 낮으면서도 풍부한 첼로음의 분위기가 수분을 머금은 듯한 피렌체의 분위기와 어울려서 좋다. 준세이와 아오이가 어느 공원에서 첼로 연주 공연을 보면서 키스하던 장면도 함께 오버랩 된다. 그리고 느닷없는 일이지만 아오이 역의 진혜림이 다른 영화에서 조용한 반주로 이쁘게 불렀던 A lover's Concerto 도 연달아 떠오른다. 과거밖에 없는 인생도 있다. 잊을 수 없는 시간만을 소중히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 서글픈 일이라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뒤쫓는 인생이라고 쓸데없는 인생은 아니다. 다들 미래만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나는 과거를 그냥 물처럼 흘려보낼 수 없다. -냉정과 열정 사이, 아오이 아주 오래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갔을 때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는 나오기 전이었다. 그래서 영화와는 무관하게 대성당에만 열중할 수 있었던 게 다행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기억 속의 피렌체 두오모 성당은 화려한 외관과 내부 그림의 장엄함에 압도되어 시종일관 경이로움의 여행이었다. 지금과는 달랐을 그때의 촉촉하던 정서가 문득 그립다. 갑자기 피렌체의 풍경에 잠겨 그 도시를 걸어보고 싶어 안달이 난다. 밀라노의 두오모를 이야기하려고 시작했는데 슬그머니 피렌체의 두오모와 영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삼천포로 빠졌다. 언젠가는 지금보다 시간이 더 흐른 후엔 이번에 본 밀라노 두오모의 첨탑을 올려다보는 자신의 모습을 또다시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그저 웃으며 그땐 밀라노의 두오모에서 피렌체의 두오모를 떠올렸고 영화 생각만 했었다 하면서 말이다. 두오모는 단순한 종교적 장소만이 아닌 지역민들에게 가장 중심적인 장소라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도시 건설할 때 두오모를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배치했다. 그래서 두오모를 바라보면서 밀라노와 피렌체를 동시에 떠올리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여행의 기억이 금방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니기에 때로 문득 이렇게 떠올려 보며 아릿해져 오는 걸 혼자 즐겨보는 것도 괜찮다. 연말의 두오모 광장은 이른 시간인데도 들뜬 사람들로 가득하다. 맞은편 노천카페의 노란 테이블엔 부부나 연인들이 이미 다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침 햇살은 두오모 성당을 여유롭게 바라보고 앉아있는 그들을 비춘다. 때로 어딘가 지나치다가 우연히 만나던 안개 속 풍경에 멈춰 서기도 한다. 안개가 내게 스미는 촉촉함과 그 속에 파묻혀 더 머물고 싶기도 할 때가 있다. 엄청난 포스의 두오모 대성당의 광장과 따사로운 노천카페의 풍경이 아름다워 한참 동안 그 풍경 속의 풍경이 되어 보기도 한다. 성당 광장의 비둘기 떼들과 노니는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을 바라본다. 일상을 떠나 있다는 묘한 일탈감과 생경한 도시의 인상이 절묘하게 배합되는 순간이다. 바로 그 옆으로 대형 아케이드가 있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상가가 아니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비토리오 에마뉴엘리 2세 갈레리아 아케이드라는 이름이다. 웅장한 건물의 통로로 들어서면서부터 중앙을 십자로 가르며 사방의 건물의 연결하는 길이 이어지고 천정의 창 구조물이 예술 작품이다. 모르고 들어선다면 처음엔 백화점이나 일반적인 상가인 줄 알 수 있다. 그러나 들어서면서부터 고풍스러운 이곳엔 우리가 흔히 명품이라고 하는 프라다, 베르사체, 루이뷔통 등의 명품 샵이 우아한 무게감으로 쭉 입점해 있다. 고색창연함과 고급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한켠으론 피자와 젤라토를 한 입 먹느라 줄 서 있고, 기둥도 천정도 예술이구나 하며 바라보느라 정신없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두리번거리며 산책하듯 지나가려 해도 쉽지 않은 인파다. 골목도 자칫 길을 잃을 만큼 복잡하게 이리저리 길이 나 있다. 아케이드를 벗어나면 베르디의 푸치니를 초연했다는 스칼라 극장이 있지만 생각만큼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는다. 역사적 사실이 의미 있겠지만 그냥 쓰윽 보고 지나친다. 미술관이나 동상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칠 정도로 볼거리가 널려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수백 년 된 건물들이면서도 정갈하고 도시적이다. 오래된 연말의 찬 기운과 함께 오전의 햇볕이 그 건물을 지나는 길에 그림자를 만들고 배회하던 그곳에 발걸음 소리를 남긴다. 지하철 입구나 거리 곳곳에 빨간색의 선명한 M자 폰트가 밀라노를 더욱 기억하게 할 것 같다.
- 2023-06-05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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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속 가능한 취미, 여생을 함께할 최후의 보루
- “다들 은퇴 후 일상이 즐거운가요? 노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요즘은 너무 재미가 없네요. 하루가 한 달, 일 년처럼 길게만 느껴져요.” 한 온라인 은퇴자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회원들은 “이젠 해외여행도 감흥이 없다”, “3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지겹다”며 동조하는 댓글을 남겼다. 막연히 긴 자유 시간이 역으로 족쇄처럼 느껴진 것이다. 이에 여가를 채울 여생의 자원, 취미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도움말 박승숙 다시배움 대표, 임효연 세종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은퇴 후에는 수면, 식사 등 생리적 필수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이 자유다. 이 기나긴 시간을 얼마나 유익하고 성취감 있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좌우된다. 직장 생활과 육아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살던 때는 퇴직 후 여유를 갈망했을 것이다. 그러다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놓여나면 당장은 친구들도 만나고 여행도 다니며 미뤄왔던 자유를 만끽한다. 그러나 앞서 글을 남긴 은퇴자처럼 이 또한 지루하고 허무하게 느껴지는 날이 찾아올 수 있다. 중장년을 위한 취미 공동체 및 교육기관을 운영하는 박승숙 다시배움 대표는 “퇴직 후 지나치게 남아도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장년에겐 큰 도전일 수 있다. 처음 몇 년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며 신이 나지만, 이내 막막해지는 시점이 오기 때문”이라며 “직업과 일을 대신할 만한, 자기 정체성을 다시 잡아줄 지속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걸 느끼는 것이다. 그 즈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이제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남은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하게 된다. 바로 이 시기가 취미가 중요해지는 때”라고 말했다. 취미의 긍정적 효과, 즐기지 못한 이유는? 취미는 중·노년기의 다양한 영역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먼저 휴식, 운동 등의 활동을 통해 심리적 불안과 스트레스를 줄이고, 체력과 활력을 증진할 수 있다. 아울러 여러 사람과 어울리고 교류함으로써 사회적 관계 형성 기능을 얻고, 나아가 의미 있고 성취감 높은 활동으로 자아실현도 가능하다. 임효연 세종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은퇴 후 생산 시간 외 스스로 계획 가능한 시간이 확장된다. 이렇게 얻은 방대한 자유는 노후 삶의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크게 신체적·정신적·사회(관계)적·환경적 영역에 작용한다. 이 시기 취미는 일상에 긍정적인 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연결고리로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취미를 통해 긍정적 효과를 얻기도 하지만, 신체적·정서적·사회적·환경적 조건이 따라야만 취미 생활도 가능할 것이다. 반대로 취미나 여가 활동이 취약한 분들은 심신 건강이나 관계적 측면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즉 개인의 여건에 따라 즐길 수 있는 취미가 다르다는 얘기다. 임 교수는 논문(‘노인의 여가 활동 욕구와 심리사회적 노화 인식’, 2016)을 통해 한국 노인들의 소극적인 여가 및 취미 활동에 대해 언급했다. 같은 논문에는 노인들이 현재보다 더 유용하고 바람직한 여가 및 취미 활동 욕구를 지닌다는 내용도 나온다. 이들이 원한 것은 주로 스포츠 참여 등 건강 활동과 문화·예술 관람 활동 등이다. 대조적으로 ‘2020 노인실태조사’(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한국 노인의 여가 활동 절반은 산책, 바둑, 원예 등 휴식 및 교양 활동인 것으로 나타난다. 논문에서 노인들이 바란 영화 관람, 악기 연주, 운동 등 문화·예술·체육 활동은 10% 내외였다. 또 해당 조사에서는 노인들의 주된 활동 중 하나로 TV 시청을 꼽았는데, 대상자들은 1일 평균 4.2시간을 TV(또는 라디오) 앞에서 보냈다. 임 교수가 논문에서 지적했듯, 노년기 취미·여가 활동이 다소 소극적이고 단조롭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임 교수는 “가치의 문제로 본다. 현재 우리 중장년은 정말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왔다. 이들의 젊은 시절엔 노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만연했다. 즉 노는 것이 죄악시되는 사회였다”며 “때문에 막상 은퇴 후 자유가 찾아와도 ‘놀아도 되나’라는 고민을 하고, 잘 노는 법을 성취하지 못했기에 실천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또 여전히 경제 활동을 하거나 빈곤에 처한 이들도 적지 않은데, 이런 경우에도 취미 생활이 녹록지 않다”고 해석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박승숙 대표는 “중장년을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스스로 경제 활동에 그만 매달리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 그리고 경제 활동에 계속 매달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구분하는 부유함의 척도는 개인 인식과 선택의 문제다” 라며 “취미가 중요해지는 건 전자의 경우다. 후자는 언젠가 해볼 만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기회 정도로 필요성을 느낄 수 있지만 중요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텅 빈 시간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일이 멈춘 사람들(전자)에겐 필요성을 넘어 결코 미룰 수 없는 중요한 일이 된다”고 설명했다. 취미는 실존 문제, 노년기 정체성 부여해 취미가 중요한 만큼 어떤 취미를 갖느냐가 관건일 수 있다. 박 대표는 “취미는 의무도 아니고 트렌드도 아니다. 취미란 백세시대를 살아가는 중장년이 처한 실존 문제로, 결국 각자 자기에게 맞게 찾아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 그가 기준으로 삼는 취미의 조건은 있다. 바로 ‘몇 살까지 할 수 있는가’, 즉 취미의 지속 가능성이다. 현재 박 대표는 70~80대를 넘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아 재미를 붙이고 능숙하게 만드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단순히 시간 때우기 식으로 취미를 보기보다는 오랜 기간 자신에게 존재 의미를 주고 어떤 정체성을 부여할 취미를 갖는 것이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으론 그렇기 때문에 제2의 직업만큼이나 취미를 찾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누군가에겐 취미 생활을 제대로 즐기기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임효연 교수는 중장년기에 유익하고 바람직한 취미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사회적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젊어서 직업적 역할에 자신의 정체성을 몰두해 살아왔다면, 나이 들어 그 역할을 상실했을 때 삶의 균형이 무너지기 쉽다. 직업에만 자신의 자아를 부여하기보다는 그밖에 자유 시간을 잘 계획하고 활용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는 나이가 들어 갑자기 여유가 생겼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니다”며 “사회적으로도 흔히 말하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갈 수 있는 기업 문화, 사회의 가치를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근 중장년을 대상으로 한 취미·여가 시설 및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임 교수 또한 중장년의 취미 욕구를 어느 정도 해소할 만한 기반은 마련됐다고 보는 입장이다. 다만 현재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그는 “우려스러운 점은 중·노년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그들의 취미 또한 굉장히 다양해질 텐데, 그러한 변화에 충분히 대응하고 있느냐다. 나이대별로 과거에 경험하고 즐겼던 문화가 다른데, 이러한 욕구의 다양성을 얼마나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양적인 차원보다는 질적인 차원으로 접근해 중장년의 취미를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2023-06-01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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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운동의 역사, 스토리텔링으로 다크 투어리즘 변신
- 자타공인 한국 문화 지킴이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현장에 답이 있다’고 믿는다. 울림을 주는 홍보 영상, 잘 정리된 책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일을 어언 30년 가까이 해보니 깨달은 점이다. 기존의 방식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더 효과적인 방식을 찾았기 때문에, 그는 2019년부터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저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홍보학자입니다. 역사 왜곡을 막기 위해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자 노력해왔어요. 누군가 제게 가장 효과적인 홍보 수단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현장’이라고 답할 겁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자타공인 한국 문화 지킴이다. 주변국의 역사 왜곡 시도에 항의하고 잘못된 역사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홍보 영상을 만들거나 독립운동 유적지에 비치할 안내서를 발간하고 한국어 간판을 제작해 기부하는 등의 활동을 해왔다. 서 교수는 일 년 중 여섯 달은 해외에 있을 정도로 출장이 잦다. 그는 아무리 일정이 빡빡해도 여유 시간으로 반나절 정도는 꼭 마련해둔다고 한다. 관리를 전혀 받지 못해 방치돼 있거나, 이름은 알려져 있으나 안내 시설 등이 노화돼 찾기 힘든 유적지가 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서 교수는 다니면 다닐수록 관리가 부족한 지역이 많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했다. 하지만 유적지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려면 지속적인 관심과 방문이 필요하다. 관광객들의 방문이 이어지면 현지에서도 해당 장소를 관리하기 위해 신경을 쓰게 되고, 관리가 잘 된 유적지를 방문해 좋은 인상을 받은 관광객들은 입소문을 내며, 그로 인해 점차 방문객이 늘어나는 흐름이 만들어지기 때문. 이러한 선순환이 많은 유적지에서 동시에 일어난다면, 시민들의 전반적인 역사 인식도 향상되는 결과까지 기대해볼 수 있다. 그가 다크 투어 분야에 뛰어든 것은 2019년. 여태 해오던 일을 확장시켜 ‘이제는 내가 직접 나서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각지를 돌며 직접 보고 느낀 점을 다른 사람들과 나눠보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뜻이 맞는 여행사를 찾은 그는 직접 다녔던 루트 그대로 여행 코스를 짰고, 다달이 진행되는 모든 프로그램에 재능기부 차원에서 참여하며 정성을 들였다. 지금까지 서 교수와 함께하는 여행사 ‘자유여행기술연구소 투리스타’ 역시 실비만 받고 다크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홍보학자, 현장에 직접 나서다 첫해의 성공으로 시즌2를 계획하던 2020년 2월,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아쉬움을 삼키며 온라인으로만 활동해야 했던 서 교수는 지난 2월 말, 3년 만에 오프라인 다크 투어 프로그램 ‘항일운동 역사투어’를 진행했다. 삼일절을 기념하고자 기획한 프로그램이라 목적지는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도로 결정했다.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주민만 스무 명이 넘고, 그 후손들은 일 년 내내 태극기를 걸어둔 채 생활해 ‘항일의 섬’, ‘태극기의 섬’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곳이다. 함경도 북청군, 부산시 동래군과 더불어 국내 3대 항일운동 성지로 불리지만 인지도는 훨씬 낮다는 점이 아쉽던 차, 이번 기회에 소안도를 제대로 소개해보리라 마음먹은 것. “이번에는 45인승 차 한 대를 빌렸어요. 이 차만 다 채워도 성공이라고 생각했죠. 인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통해 일본 하시마 섬(군함도)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고, 배우 송혜교 씨의 후원으로 해외에 있는 독립운동 유적지를 소개하는 안내서를 온·오프라인으로 발간하는 등의 활동이 매체를 통해 많이 소개되면서 다크 투어에 관심 갖는 분위기가 고조되던 2019년과는 상황이 다르니까요. 그런데 웬걸, 막상 신청을 받아보니 사람들이 너무 몰려서 함께할 분들을 ‘선정’해야 했어요. 놀랄 수밖에 없었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소안도의 항일운동 유적지를 찾아온 것은 처음입니다.” 소안도에서 만난 지역 해설사의 한마디는 서 교수를 포함한 모두의 마음에 큰 울림을 남겼다. 그는 40여 명과 함께 소안도 외에도 국내 최대 강제노동 지역인 ‘옥매광산’, 안중근 의사 위패가 있는 ‘해동사’를 찾았다. 사람들은 설명을 들으며 함께 분노하고 슬퍼했다. 성공적인 다크 투어의 필요조건으로는 좋은 스토리텔링이 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를 방문해 그곳에 대한 단편적인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역사적 사건이 일어날 당시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은 어땠는지, 우리 조상들은 하필 이 지역에서 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잘 짜인 하나의 이야기처럼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 교수는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역사적 사건 발발 당시의 현장 사진을 큰 종이에 출력해오기도 하고, 지역 해설가를 섭외하기도 한다. 좋은 스토리텔링을 위한 사전 준비가 탄탄해야 관광객들이 현장에서 더욱 감명받고, 그렇게 느낀 교훈을 오래도록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적재적소에 더해지는 서경덕 교수의 너스레는 분위기가 과열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또 일정이 끝난 뒤 지역 대표 맛집에서 여행의 고단함을 해소하는 시간을 꼭 가졌다. 아무리 의미와 교훈이 중요한 여행이라도, 여행만의 잔재미를 느낄 구간 또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여행 전문가도 아니에요. 역사적 지식을 어떻게 해야 잘 홍보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이죠. 다크 투어를 통해서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깨닫고 교훈을 얻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핵심은 입소문이죠. 그래야 좋은 후기들이 퍼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유적지를 찾고, 그렇게 우리의 소중한 유적지를 지켜 후대에 물려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소안도를 함께 방문했던 분들도 ‘SNS 홍보단’이라고 부르면서 많이 공유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앞으로 3년이 적기인 이유 서경덕 교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국내 유적지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명소를 돌아보는 여행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홍보 방식으로 다크 투어를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떠올린 갈래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오히려 K-콘텐츠들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요즘입니다. 이제 해외여행도 자유로워졌으니 그 어느 때보다 우리나라에 관심을 갖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으리라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올해 외국인 관광객 3000만 명 시대가 열리지 않을까 예상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2025년까지의 행보가 중요해요. 그들이 관심 있어 하는 먹거리, 화려한 경복궁, 대도시 서울의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당신들이 관심을 가지는 우리나라에는 사실 이런 아픈 역사도 있습니다’ 하고 유적지도 방문하게끔 하는 거죠. 당장 올해는 정전 70주년이자 한인 이민 120주년이에요. 그러니 한국전쟁과 연관 있는 배우들을 초청해 기념행사를 진행하거나, 유해 발굴 현장을 외국인이 직접 방문하는 식의 프로그램을 기획해도 괜찮겠죠.” 공식적인 행사나 프로그램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아쉽겠지만, 그렇다고 귀중한 시기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이 진행한 다크 투어 코스를 SNS에 모두 공개하고 있다. 한국 문화 알림이로 유명세를 탄 서 교수의 개인 SNS 계정을 구경하던 누군가가 한 명이라도, 한 번이라도 더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다크 투어는 굉장히 효과적인 홍보 방식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꾸준히 참여하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3040 부부가 아이와 함께 가족 여행으로 다른 지역을 방문할 때 그 지역의 유적지를 짧게나마 다녀오는 일이 일상화됐으면 해요. 이런 문화가 자리 잡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저도 최선을 다해보려고 합니다.”
- 2023-05-1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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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과 항쟁의 역사, 국내의 다크 투어리즘 명소들
- 다크 투어리즘은 여러 유형으로 분류하는데, 전 세계적인 핵심 테마는 전쟁과 항쟁(식민지)이다. 한국의 경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들 수 있다. 아직 생소한 개념인 다크 투어리즘을 어떻게 계획하고 즐길지 모르겠다면, 위의 두 역사를 중심으로 명소를 찾는 것도 방법이다. PART1. 항쟁의 역사 : 일제강점기 [1] 남산 국치의 길 남산은 낭만적인 야경이 돋보이는 명소로 유명하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암흑기를 드러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강화도조약(1876) 이후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남산 자락에 조선 통치를 위한 시설들이 자리 잡았다. 당시의 상흔을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해 조성된 길이 바로 ‘남산 국치의 길’이다.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한국통감관저 터에는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기억의 터’가 마련돼 있다. 이곳에 도착하면 ‘거꾸로 세운 동상’이 눈에 띈다. 과거 일제는 을사늑약을 체결한 공을 인정해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을 통감관저 앞에 설치했다. 해방 후 당시의 치욕스러움을 기억하고자 사라진 동상의 잔해를 모아 거꾸로 세운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이어 리라초교와 숭의여대로 향해 노기신사와 경성신사 터를 둘러본 뒤에는 케이블카 탑승장 인근 한양공원을 찾는다. 1910년 일본인들이 조성한 곳으로, 당시 공원 입구에 세웠던 비석도 볼 수 있다. 계속해서 남산을 향해 걷다 보면 옛 조선신궁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일부가 나온다. 조선신궁은 조선총독부가 조성한 신사로, 해방 후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철거되며 현재 우리가 아는 남산공원으로 탈바꿈했다. 한때 연인과의 데이트나 가족 나들이로 남산을 찾았다면, 한 번쯤 이러한 역사를 한발 한발 따라가 보길 추천한다. [코스] 명동역 1번 출구 ▶ 한국통감관저 터·기억의 터(현 서울유스호스텔 아래) ▶ 한국통감부(서울애니메이션센터) ▶ 노기신사(리라초교 내 남산원) ▶ 경성신사(숭의여대) ▶ 한양공원 ▶ 조선신궁(한양도성 발굴지) *상당 구간이 언덕길이니 이 점 참고하자. 반대 방향으로 돌아봐도 괜찮다. [2]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하 서대문형무소)은 일제강점기 시절 4만여 명에 달하는 독립운동가가 수감됐던 곳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철거 논의도 이뤄졌으나, 교육의 현장으로 기능하기 위해 현재의 역사관 형태로 복원됐다. 서대문형무소 하면 붉은 벽돌로 이뤄진 외관이 상징적이다. 계절마다 바뀌는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에도 따스한 봄볕 아래 그림 동호회 회원들이 모여 풍경화를 그리고 있었다. 외관과 비교해 내부는 삭막하고 음울한 기운이 느껴진다. 독방과 고문실, 시구문 등을 복원해 당시의 참혹한 현실을 생생히 드러냈다. 당시의 수형기록표나 사진들을 보노라면, 독립투사들의 모진 세월이 전해져 절로 숙연한 마음이 든다. 서대문형무소는 올 한 해 ‘이달의 독립운동가 시민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온라인을 통해 예약하면 된다. 방문 당시에는 ‘한국 독립운동을 이끈 청년 독립운동가들의 외교’를 주제로 강의가 열렸다. 이날 소개된 독립운동가는 황기환, 이희경, 나용균이었다. 강의에 참여한 한 시민은 “김구나 윤봉길처럼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처음엔 생소했다. 세 분의 역사를 들으면서 나의 무지함을 깨달았고, 반성하는 마음도 들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강의를 준비한 김철현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학예사는 “과거 서대문형무소는 인왕산, 안산, 무악재 고개로 둘러싸여 있어 수감자들의 탈출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에 현저동에 자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산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 때문에 중장년 방문객들이 등산을 겸해 오시기도 한다. 아울러 실제 수감자들의 후손이나 가족들이 오기도 하고,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모임을 꾸려 자체적으로 투어를 즐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역사교훈여행(다크 투어리즘의 우리말)의 측면에서 볼 때, 많은 분들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추구했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신념을 느껴보셨으면 한다. 또한,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신 후에는 근처의 독립문,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 등도 찾아도 좋겠다”고 조언했다. [코스] 독립문역 5번 출구 ▶ 서대문독립공원 입구 ▶ 독립문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집(독립문 맞은편) *독립문을 기점으로 왕복하는 코스로, 역사적 사건 순으로 둘러볼 수 있다. PART2. 전쟁의 역사 : 한국전쟁 [1] 피란수도 부산 소막마을 지난해 ‘피란수도 부산 유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가 확정됐다. 현재 부산시는 2028년 등재를 목표로 지속 연구와 관리에 힘쓰고 있다. 부산에는 유독 가파른 언덕에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광경이 눈에 띄는데, 이 또한 피란기의 흔적이다. 한국전쟁 후 40만 명이던 부산 인구는 100만 명까지 늘어났다. 몰려든 피란민들은 생존과 생계를 위해 높은 언덕까지 판잣집을 지어 올렸던 것이다. 선별된 ‘피란수도 부산 유산’은 총 9곳으로, 그중 ‘우암동 소막 피란주거지’도 피란민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했다.(2018,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715호 지정) 소막마을은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으로 소를 수출하기 위한 검역소와 소막사가 있었던 곳이다. 1960년대 이후에는 공업화·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여러 형태의 집들로 변모해 현재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한국의 근대화 과정 등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산물인 셈이다. [코스] ‘피란수도 부산 유산’은 경무대(임시수도 대통령 관저), 임시중앙청(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 국립중앙관상대(옛 부산측후소), 미국대사관 겸 미국공보원(부산근대역사관), 부산항 제1부두, 하야리아 기지(부산시민공원), 유엔묘지, 우암동 소막 피란주거지 등 총 9곳이다. 하루에 몽땅 급하게 둘러보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피란민들의 삶을 음미하며 살펴보길 바란다. [2] DMZ 평화의 길 시간을 두고 여러 날에 걸쳐 다크 투어리즘을 계획한다면, ‘DMZ 평화의 길’을 추천한다. 도보 여행가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테마 코스 중 하나로 문화체육관광부, 환경부, 국방부, 행정안전부, 통일부 등 5개 부처가 합동으로 조성한 길이다. 2018년 4월 27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꼬박 1년 뒤인 2019년 4월 27일 강원도 고성 구간이 처음으로 개방됐다. 이로써 일반 시민들도 DMZ(비무장지대)를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철원, 파주, 양구 등 구간이 속속 개방되며 현재 총 11개 코스가 마련됐다. 전 구간 예약탐방제(두루누비 사이트 이용)로 운영되며, 올해는 대체로 4월 하순부터 예약을 시작해 11월 전후로 마감될 예정이다.(여름 혹서기 및 장마 기간 임시중단) [코스] 강화 코스, 김포 코스, 고양 코스, 파주 코스, 연천 코스, 철원 코스, 화천 코스, 양구 코스, 인제 코스, 고성 A코스, 고성 B코스 *현재 고성B코스는 탐방객의 안전을 고려해 한시적으로 중단됐다. [Interview]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 “어두운 역사의 흔적에서 오늘의 교훈을 얻길” 최근 유행인 ‘다크 투어리즘’을 오래 전부터 주목하해온 이가 있다. 2017년 출간 도서 ‘다크투어’의 저자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다. 서울대학교와 시카고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던 그는 책을 쓴다는 핑계로 곳곳을 여행하다 다크 투어리즘에 눈을 떴다. 현재 그는 역사문화 여행 모임 ‘컬처클럽’을 7년째 운영 중이다. 모임을 통해 국내외를 누비며 직접 도보여행 길도 발굴한다. 저서에 소개된 '대한 제국의 길', '서대문의 길', '용산의 길' 등도 직접 개발한 다크 투어리즘 루트다. 그런 김 대표를 통해 다크 투어리즘에 관한 궁금증을 해소해봤다. Q. 중장년들에게 다크 투어리즘을 권하는 이유가 있다면요? A. 사람은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역사가가 됩니다. 각자 역사의 증인이고, 역사평론가가 되며, 아마추어 역사가가 되지요. 어떤 의미에서든 나름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역사관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관광을 하면 화려한 곳, 훌륭한 곳, 멋진 곳을 가기 쉽습니다. 이런 것을 그랜드투어(grand tour)라고 하죠. 하지만 다소 불편하더라도 과거의 어두운 곳을 찾아 역사의 교훈을 얻는 다크 투어(dark tour)도 필요합니다. 이런 곳에서 피해자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자신이 현장에 없었다는 것에 안도감이 들기도 합니다. 또, 역사의 교훈을 얻어 앞으로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도 합니다. 실패에서 얻는 교훈, 재발방지 다짐을 하게 되는 거죠. Q. 다크 투어리즘 현장에서 유념해야 할 에티켓이 있을까요? A. 장소의 역사적 의미를 모르면 자신의 단견으로 이해해버리거나 현지에서 가볍게 말하기 쉽니다. 즉 공부가 필요하죠. 사건과 관련된 주민들도 만날 수 있는데 역사를 모르면 섣부른 행동으로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이념에 치우치기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현장에서 겸허하게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큰 목소리는 삼가는 게 좋습니다. Q. 해외와 비교해 국내 다크 투어리즘이 지니는 특징이 있나요? A. 예전에는 한국에서 다크 투어리즘 장소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현장에 가면 안내판이 없고, 유적, 유물이 제대로 보존돼 있지 않았지요. 근래에는 다크 투어리즘 관련 문화 유적을 많이 발굴하고, 기념관, 유적지, 친절한 안내판, 간단한 표지석 등을 두어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현재는 외국과 수준이 비슷해졌습니다. 다만 몇몇 장소는 지나치게 엄숙하고 어둡게 만들어져 있어 과도한 긴장감을 주기도 합니다. Q. 다크 투어리즘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A. 다크 투어를 할 때에는 진정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열 군데, 스무 군데 리스트를 만들어 많이 다녀왔다한들 큰 의미는 없습니다. 현장을 제대로 알려는 호기심, 진정성이 바탕이지요. 다크 투어리즘이 좋다고 너무 연달아 가는 것도 추천하지 않습니다. 너무 몰입하면 우울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밝은 여행지와 섞어서 다니길 권합니다. ※ 자료 제공 및 도움말 한국관광공사, 서울관광재단,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2023-05-0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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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광과 부작용 사이, 챗GPT 시대
- 2022년 11월 공개된 ‘ChatGPT’(챗GPT)는 출시 일주일 만에 사용자 100만 명을 넘으며 광풍을 일으켰다. 현재 글로벌 검색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구글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영국 언론 인디펜던트는 ‘Google is done’(구글은 끝났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챗GPT로 대표되는 대화형 인공지능이 구글을 대체할 수 있다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스마트폰의 등장처럼 챗GPT도 우리 일상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오픈 에이아이(OpenAI)가 개발한 GPT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문장과 글을 생성할 수 있게 만들어진 인공지능(AI)이다. 2018년 GPT-1 출시 이후 GPT-2, GPT-3로 꾸준히 버전을 높여왔다. 지난해 11월 GPT-3.5에 해당하는 챗GPT를 공개했으며, 이후 4개월 만에 성능을 개선한 GPT-4 버전의 차세대 모델까지 선보였다. 챗GPT는 로봇과 대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서비스다. 언어 능력에 특화돼 있어 사용자가 대화창에 질문을 입력하면 그에 맞춰 로봇이 다양한 답변을 내놓는다. 기존 대화형 AI는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문법과 맞춤법을 완벽하게 구사하거나 언어의 특성과 해석의 차이를 구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동문서답을 하거나 아예 답변을 도출하지 못해 활용 범위가 제한적이었던 반면, 챗GPT는 대화의 숨은 맥락을 이해하고 이전 대화를 기억하며 답변해 마치 사람과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졸업 논문, 회사 시말서, 제안서도 OK 챗GPT는 미국 대학 입학 자격시험인 SAT 읽기 및 쓰기와 수학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고, 의사·변호사 시험을 가뿐히 통과했다. 뛰어난 지능 덕인지 수행할 수 있는 업무도 다양하다. 기사, 논문, 법원의 판결문뿐 아니라 의회에 제출할 법안 초안도 작성한다. 국내에서는 챗GPT가 쓴 책들이 잇달아 출간됐다. 책 ‘삶의 목적을 찾는 45가지 방법’은 기획안과 목차를 제외한 모든 내용을 챗GPT가 직접 쓰고, 편집과 교열 작업까지 완료하는 데 단 30시간이 걸렸다. 챗GPT의 출시 이후 실생활에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챗GPT로 시말서를 작성했다는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자세한 내용을 보면 챗GPT는 “저는 이번 일로 인해 회사의 정책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라며 “무심코 생각 없이 행동을 하게 된 것이지만, 이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다”고 서술했다. 또 “이번 일을 계기로 회사 내부의 정책과 규정을 충분히 숙지하고 그에 맞게 행동할 것을 다짐한다”며 “앞으로 회사의 이익과 안전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경각심을 갖고 업무를 수행하겠다. 회사와 동료들에게 심려를 끼쳐 미안하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라고 마무리했다. 누리꾼들은 사람이 작성한 결과물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는 반응을 보였다. 챗GPT 똑똑하게 활용하자 챗GPT의 문장은 깔끔하고 정갈하지만 치명적인 결함이 존재한다. 이용자가 입력한 질문에 대해 학습된 데이터가 없을 경우, 그 내용 자체가 틀렸을지라도 해당 정보를 기반으로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기 때문이다. GPT-3.5 버전에서는 ‘신사임당이 이순신의 아내’라든가, ‘티타늄 전차가 조선 중기에 사용됐다’는 등의 황당한 이야기를 성의 있게 답변한다. “이순신 장군이 고종의 옷에 커피를 쏟은 사건에 대해 알려줘”라는 질문을 하면 “이순신 장군이 고종의 옷에 커피를 쏟은 사건은 유명한 역사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대한제국 말기인 1896년에 일어난 일로, 당시 고종은 이순신 장군을 모시고 국사조사를 하던 중 이순신 장군이 실수로 고종의 옷에 커피를 쏟았습니다. 이때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으며, 이후 둘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졌습니다”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결국 AI 답변의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건 사용자의 몫이다. 즉 챗GPT는 잘 아는 정보를 요약하거나 정리하는 용도에는 적합할 수 있지만,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한 사실을 묻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사용자가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에 따라 답변의 수준도 현저히 달라진다. 얻고자 하는 부분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요구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50대 배우자와 갈 만한, 물가가 비싸지 않고 골프장이 많은 여행지는 어디야?”와 같이 명확한 지시와 완결된 문장으로 정확히 설명해야 한다. 질문을 거듭해도 뾰족한 정보를 얻을 수 없을 때는 한글보다 영어로 지시하면 더 깔끔한 답변을 얻을 수 있다. 챗GPT는 영어에 조금 더 최적화돼 있다. 유명세에 따른 사칭 사이트 증가 챗GPT에 관심이 생긴다면 한 번쯤 사용해보는 것도 좋지만, 사칭하는 사이트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스마트폰으로 앱을 다운받기 위해 플레이 스토어에 들어가 ‘챗GPT’를 검색하면 유사한 명칭의 앱이 존재한다. 하지만 오픈 에이아이가 개발한 공식 앱은 아직 출시되지 않은 상태다. 실제로 챗GPT와 같은 해외 유명 사이트와 비슷한 이름의 사이트 혹은 앱으로 유도해 카드 정보를 요구하는 사례가 늘었다. 금융감독원은 카드 정보 유출 피해를 막기 위해 주민등록번호 전체 숫자, 카드 비밀번호 네 자리 등의 개인정보 입력을 요구하면 무조건 의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카드 정보 유출이 의심되면 불편하더라도 카드 사용을 정지하고, 재발급받아 부정 사용을 차단하는 것이 안전하다. 오픈 에이아이에서 개발한 챗GPT를 체험해보고 싶다면 ‘openai.com/blog/chatgpt’로 이동해야 한다. 우선 회원가입을 통해 계정을 등록하고, 화면 하단에 있는 입력 칸에 물어보고 싶은 질문을 입력하면 된다. 또는 ‘에지 브라우저’를 통해 검색 엔진 ‘www.bing.com’에 접속한 뒤 왼쪽 상단의 ‘채팅’ 버튼을 누른다. 계정을 생성하고 로그인하면 채팅을 시작할 수 있다. 검색창에 궁금한 점을 입력하면 해당 내용과 관련한 AI의 답변이 검색 페이지 오른쪽에 나타난다. 답변을 보고 온라인 출처를 자세히 검증하거나, 더 구체적인 자료를 얻을 수 있다.
- 2023-04-12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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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가오는 보릿고개, 절약의 도움 얻으려면?
- 한국은행 금융시장동향 조사에서 지난해 7월 은행에 유입된 정기예금액은 31조 7000억 원으로 20년 만에 최대치였다. 같은 시기 투자자 예탁금은 55조 3463억 원으로 6개월 만에 12조 원이 줄었고(금융투자협회), 일평균 거래 대금은 13조 3172억 원으로 1년 전 액수의 절반에 그쳤다(한국거래소). 경기 침체가 지속되며 부동산·투자 시장은 얼어붙었고, 기업들은 역성장하며 일자리를 줄여나갔다. 물가는 오르고 소득은 정체되는 악순환에 사람들은 ‘절약’을 최선의 재테크 방법으로 삼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작년 11월에 내놓은 전망치(1.7%)를 밑돌 것이라 밝혔다. 코로나19 거리두기 완화로 펜트업 효과(억눌렸던 수요가 급속히 살아나는 현상)를 기대했으나, 역으로 수요는 점차 둔화되고 있다. 여기에 올해 금리 상승 영향으로(기준금리 3.5%로 전년 대비 0.25%p 인상) 잠시 회복세를 보이던 민간 소비도 꺾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이 채용을 줄이거나 구조조정에 나서며 서민들의 경제고통지수(일정 기간 소비자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합하고 소득증가율을 뺀 수치)는 증가할 전망이다. 경제불황과 물가 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스태그플레이션까지 우려되는 상황. 가장 안전한 자산 관리 비법으로 ‘절약’이 주목받는 이유다. 스마트 시니어의 절약법 ‘비소비’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은 저서 ‘라이프 트렌드 2023’를 통해 “지금까지는 소비와 플렉스가 욕망의 대상이자 과시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경제위기와 인플레이션, 소비 양극화 등으로 관심도가 변화하고 있다. 이제 비소비와 무지출 트렌드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새로운 소비 취향이자 과시 수단”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플렉스’(Flex)란 돈이나 귀중품을 과시하는 행위를 이르는 신조어다. 책에서는 플렉스의 반대 개념인 ‘비소비’와 ‘무지출’을 주요 트렌드로 제시하며 절약의 한 해가 되리라 예측했다. 트렌드 도서 베스트셀러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도 알뜰하게 소비하는 전략적 소비자를 뜻하는 ‘체리슈머’(Cherry-sumers)를 핵심 키워드로 꼽았다. 책을 펴낸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자들의 대처라는 시각에서 보면 체리슈머의 등장을 일시적인 변화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추세에서 생겨난 현명한 소비 관리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경기가 좋아져도 계속 발전해나갈 추세적 변화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더 높다”며 절약 소비 유행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는 2023년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소비 디톡스의 시대’(Era of Consumption Detox)를 선정했다. 허리띠 졸라매기 식의 무조건적인 절약법보다는 플랫폼과 SNS, 앱 서비스 등을 활용한 스마트 소비가 대세가 되리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연구소 측은 이를 ‘신(新)자린고비’라 일컬으며 공동구매, 중고 거래처럼 타인과 자원 및 비용을 나누는 등 새로운 형태의 절약 생활을 예고했다. 스마트 소비의 확장은 젊은 세대보다 중장년층에서 더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2021년과 2022년(각 연도 1~9월 기준) 신한카드 이용 건수를 분석한 결과 ‘모바일 쿠폰 거래 플랫폼’ 이용이 183% 증가했는데, 연령별로 살펴보면 2030세대보다 4060세대에서 이용 건수 비중 변화가 더 크게 나타났다. 대표적인 모바일 쿠폰 거래 플랫폼은 ‘니콘내콘’, ‘기프티스타’, ‘기프티윈’ 등이 있다. 선물받은 모바일 쿠폰을 해당 플랫폼에서 현금으로 교환하거나, 타인이 올려놓은 쿠폰을 원가 대비 저렴하게 구매 가능하다. 이다혜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 과장은 “과거 대비 4060세대의 디지털 기기 및 채널에 대한 친숙도가 높아지며 플랫폼을 활용한 쇼핑과 거래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줄었다”며 “요즘 시니어들은 비대면 소비, 모바일 결제 등에 대한 이해가 높고 습득도 빠른 편이다. 이에 따라 새로운 절약 플랫폼 이용도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B급 상품의 반란, 중장년 소비자도 긍정적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 결제 데이터 분석 자료에서는 ‘유통기한 임박 상품’, ‘리퍼브 상품’ 등 이른바 ‘B급 상품’에 대한 상승세도 엿볼 수 있다. 유통기한 임박 식품몰의 이용 건수는 전년 대비 22% 올랐고, 이용 회원 수는 17% 늘었다. 전시됐거나 반품된 정상 상품이나 미세한 흠집이 있는 제품을 판매하는 리퍼브(리퍼비시) 전문 매장 이용도 증가했는데, 이 중 4060세대 이용률은 약 20% 상승했다(40대 22%, 50대·60대 19% 증가). 이다혜 과장은 “올해 연구소가 주목한 ‘소비 디톡스’는 절대적인 절약보다는 각종 서비스와 플랫폼을 활용해 같은 상품을 구매하더라도 최대한 저렴하게 구매하거나, 최선이 어렵다면 차선(B급 상품)을 찾는 형태”라며 “요즘 시니어의 경우 경제력도 높지만 문화·여가생활에 대한 욕구도 높기 때문에 소비를 줄일 영역에서는 각종 플랫폼, 디지털 채널을 활용해 소비 디톡스를 적극 실천하는 한편 본인의 가치 영역에서는 최대한 소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공동구매, 중고 및 리퍼브 소비 등의 절약 소비 방법이 중장년에게 긍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커머스 기업 ‘위메프’도 지난해 판매 데이터(1~11월)를 분석한 5가지 결산 키워드 중 하나로 ‘절약’을 꼽았다. 작년 대비 리퍼브 상품 판매는 두 배 이상(107%) 증가했고, 유통기한 임박 상품(127%) 수요도 급상승한 점에 주목한 것이다. 편의점 ‘이마트24’는 지난해 3월 마감 할인 서비스인 ‘라스트 오더’를 론칭했는데, 이용 건수가 매달 두 배씩 성장했을 정도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2022년 1~7월 동안 판매한 못난이 과일의 누적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80% 증가했다. 고물가 시대에 저렴한 B급 농산물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맛난이 과일’, ‘상생 과일’ 등으로 불리며 긍정적 이미지로 변화하는 중이다. 불황 속 궁여지책 ‘무지출 챌린지’ 노후에는? B급 상품에 대한 인식 변화는 절약에 대한 이미지 또한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시사한다. 짠내 나고 궁상맞게 돈을 아끼는 모습보다는 절약을 유행처럼 즐기고 과시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무지출 챌린지’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 등을 통해 일정 기간 무지출에 성공한 것을 사진이나 글을 통해 인증하는 방식이다. 주로 가계부나 카드 고지서, 통장 출금 내역 등 자신의 소비를 스스럼없이 공유한다. 새해에도 경제불황이 예고되면서 한 해 목표를 무지출 챌린지로 삼거나 사람을 모아 일종의 캠페인처럼 동참하는 이들도 생겼다.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하는 이들은 주로 MZ세대다. 고금리 상황 속 청년 고용 한파가 겹치며 목돈 마련이나 대출금 상환 부담이 커진 탓으로 읽힌다. 벌지 못하는 상황에서 쓰지 않는 것이 최선의 경제활동이 된 셈이다. 암울한 경제 상황 속 궁여지책 같지만 ‘챌린지’라는 성격 덕분인지 기발한 절약 아이디어들을 나누며 즐겁게 도전을 이어가는 분위기다. 절약 콘텐츠나 트렌드에 관심 있는 중장년이라면 ‘나도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해볼까’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김용섭 소장은 ‘라이프 트렌드 2023’에서 “무지출 챌린지는 소비 자체를 중단하는 것이다. 절약이 아닌 소비 단절”이라며 “절약은 일상적이지만, 무지출은 이벤트에 가깝다. 장기간 무지출만 하다가는 인간관계에 위기가 올 수 있다. 관계 중심인 기성세대로서는 어렵지만, 느슨한 연대로 관계하는 2030세대라면 무지출을 좀 더 길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동철 심리학 박사 또한 “무지출 챌린지는 노후의 관계 축소뿐 아니라 인지력 감소 및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소비 행위가 줄면 자연스레 활동성이 감소한다. 지출을 줄이려 반복적인 일상을 감행하다 보면 뇌 활성화가 덜 되고, 면역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령 매일 집에서 나물이나 김치 같은 반찬만 드시면 영양 불균형이 올 수도 있다. 가끔은 외식도 하고 고기도 구워 드시라 권한다. 대신 절약을 생각한다면 조금 저렴한 고깃집을 찾는 정도의 노력을 들이면 된다. 해외여행은 못 가도 국내 여행이라도 자주 다니시라는 얘기다. 즉 극단적으로 외식, 여행, 쇼핑 등 항목 자체를 없애지 않고, 각 항목의 예산을 줄여가는 방식이 노후에는 유익하다”고 조언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경기 침체가 이어지며 절약이 강조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중장년들도 연금, 부동산, 생활비 등 노후 자금이나 자신의 소비 방식을 돌아보고 점검할 필요는 있다. 다만 현재 유행하는 무지출 챌린지 같은 극단적 방식을 따르라 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중장년은 현재 유행하는 절약 생활에 누구보다 잘 적응할 세대다. 이미 IMF 등을 겪으며 허리띠를 졸라맨 경험이 있고, 물과 전기가 귀하던 시절을 살아 아끼는 생활이 몸에 밴 이들도 많다. 소비를 줄이면서도 자신만의 일상을 향유할 만한 노하우를 겸비했으리라 본다. 생계가 어렵지 않다면 극단적으로 지출을 줄이는 방식을 택하지 마라. 이미 터득한 절약 생활과 삶의 지혜로 현재의 불황도 잘 이겨낼 세대”라고 설명했다.
- 2023-02-0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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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 안 가는 MZ세대가 명절을 소비하는 방법
- 돌아온 대면 명절에도 2030세대는 귀향을 거부하고 돈을 벌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러 뿔뿔이 흩어진다. 선물 들고 지인을 찾아가기보다 ‘집콕’하며 미리 찜해둔 물건을 ‘셀프 선물’한다. 회사에서 받은 선물을 ‘당근’하기도 한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명절 문화의 새로운 인식을 들춰본다. 3년 만의 대면 설 연휴지만 젊은 세대는 각자의 이유를 대며 집을 찾지 않는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추석 연휴를 앞두고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 중 추석 연휴 동안 ‘집을 떠날 계획이 없다’고 답한 이가 60.0%에 달했다. 이제 누구도 강요하지 않지만 비대면은 하나의 트렌드로 남았다. 여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 이해를 돕기 위해 ‘요즘 것들’이 그리는 신(新)명절풍속도 네 가지를 준비했다. 시간 고향 방문보다 값진 ‘알바’ “굳이 고향을 가야 하나요? 그 시간에 알바를 하면 돈이 얼마인데!” 경기는 계속 악화되고, 물가는 끝을 모른 채 치솟는다. 경제적 부담을 느낀 젊은 세대는 연휴 기간 가족을 찾는 대신 조금이라도 더 돈을 벌기로 마음먹었다. 생활비에 보탬이 되고, 지역과 지역을 오가는 교통비나 선물 비용 등의 지출을 줄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지난해 추석 연휴를 기준, 서울에서 부산까지 비행기로 왕복하려면 20만 원은 족히 내야 한다. 비교적 저렴한 KTX 기차표를 구하려면 연휴 한 달 전부터 피 튀기는 예매 전쟁을 뚫어야 한다. 한 푼이 아쉬운 사회 초년생의 입장에서는 귀향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 자취하는 직장인 A(27) 씨는 “집에 가는 데 돈도 많이 들고 여러모로 부담이라 이번에도 명절 연휴를 피해 집에 미리 다녀오려 한다”고 말했다. 구인·구직 플랫폼 ‘알바천국’은 지난해 추석 연휴를 앞두고 성인 158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51.1%가 “추석 연휴에 알바 계획이 있다”며,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생활비(56.8%), 저축(42.2%)에 쓰겠다고 답했다. 명절 연휴 동안 반짝 모집하는 아르바이트는 직장이나 학교를 다니는 데 영향을 주지 않고도 용돈을 벌 수 있어 인기가 많다. 평소보다 시급을 높게 쳐주는 점도 선호도를 높인다. 지난해 12월 20일 기준 설맞이 단기 알바 시급은 현재 최저시급인 9180원보다 7~30%가량 높게 형성돼 있다. 명절 연휴를 앞두고 단기 아르바이트를 찾는 움직임이 많은 것은 여러 지표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이 운영하는 ‘당근알바’에서는 지난해 설 연휴 직전 2주 동안(2022년 1월 11~24일) 구인 게시글과 구직 지원자 수가 전달 같은 기간 대비 각각 13.9%, 19.9% 증가했다.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플랫폼은 이러한 흐름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알바몬’, ‘알바천국’ 등 대표적인 플랫폼은 명절마다 채용관을 따로 열고 연휴 시즌에 특화된 인기 업·직종 공고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명절 특수 아르바이트의 형태는 갈수록 다양해지는 모양새다. 일반적으로 꼽히는 명절 연휴 특화 업·직종은 백화점·마트, 도소매·전통시장, 매장 관리·판매, 포장·분류, 택배·배달 등이다. 최근에는 집을 비우는 동안 반려동물을 돌봐주는 펫시터, 전 대신 부치기 등 동네 소일거리에 가까운 알바를 구하는 이들도 많다. 지난 추석 연휴에는 맛집 ‘웨이팅 알바’(입장을 위해 대신 줄을 서주는 알바)를 구하는 사람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장소 다시 대면 명절, 고속도로만큼 붐비는 ‘명절 대피소’ “명절도 그저 연휴일 뿐, 쉬는 동안 토익 공부나 할래요”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개방형 한국어 지식 대사전 ‘우리말샘’에 등재된 명절 대피소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명절에 모인 친척들의 잔소리를 피하여 쉬거나 공부 따위를 할 만한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불편한 질문 공세에 시달리다 못해 스터디카페, 학원 등으로 피신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취업 준비생들이 대다수였으나 최근에는 미·비혼 직장인들도 합세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온라인 아르바이트 플랫폼 ‘알바천국’이 성인 1530명을 대상으로 명절에 고향 방문을 피하는 이유를 묻자 ‘취업 준비, 시험공부 등 자기계발에 집중’(24.1%, 복수 응답)하거나 ‘명절 잔소리,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22.6%) 등이 꼽혔다. 2019년 추석 연휴를 앞두고 온라인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가 성인 319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33.3%가 ‘결혼(자녀) 언제쯤?’을 가장 듣기 싫은 말로 꼽은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에 ‘명절 대목’을 맞아 명절 대피소를 운영하는 교육 업체가 등장하고 있다. 파고다어학원은 2015년부터 명절마다 전국 캠퍼스에서 피난처를 운영해왔다. 학원 내 스터디룸을 개방하고, 간식과 음료를 무료로 제공했다. 대면 모임이 어려울 때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통해 온라인 명절 대피소를 운영했다. 가볍게 어학 공부를 할 수 있는 퀴즈를 풀거나, ‘임인년맞이 호랑이 그리기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다른 교육 업체들 역시 명절 연휴에만 제공하는 한정 ‘프리패스’(자유이용권)를 통해 기간 내 무제한으로 인터넷 강의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한 업체는 스터디카페의 명절 정체 예상도를 발표했다. 스터디카페의 키오스크를 운영하는 전문 업체 ‘오래’가 지난 3년 설날과 추석 등 명절 연휴에 집계된 300만 건의 이용 건수를 분석한 결과로 만들어낸 것. 나흘의 연휴 기간에 전국 스터디카페를 대략 250만 명이 찾을 것이라는 예상치를 내놓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스터디카페 이용객의 연령대는 10대 30%, 20대 50%로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인다. 그러나 분석에 따르면 명절 연휴에는 20대 이용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명절 연휴 마지막 날 10대와 20대 이용객 비율이 20%와 60%로 가장 큰 차이를 보였는데, 오래 측은 도피를 위한 스터디카페행의 영향일 것으로 풀이했다. 재테크 자취촌에 꽃피는 명절 선물 재테크 “되팔고 교환하고, 나는 아니라도 누군가는 필요하겠죠” 나를 위해서라면 돈을 아끼지 않는 플렉스(FLEX)·욜로(YOLO) 문화에 반기를 드는 이들이 있다. 불필요한 지출 활동을 줄이고 온라인 쇼핑 플랫폼의 적립금을 모으거나 할인 혜택을 꼼꼼히 챙기는 ‘짠테크’ 역시 2030세대의 소비 성향을 설명하는 단어 중 하나다. 일을 해서 얻는 수입만 가지고는 돈을 모으기 어려우니 허리띠를 최대한 졸라매는 것이다. 애당초 제품을 되파는 ‘리셀 문화’는 고가 명품 브랜드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코로나19로 인해 틀어막힌 해외여행 수요가 명품 구매로 폭발한 것. 물건을 구하기 어려워 중고 거래까지 불사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중고 거래 플랫폼이 함께 성장했지만, 리셀 문화는 이제 생필품 영역까지 확장됐다. 실용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MZ세대는 ‘리셀’이라는 개념을 명품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내게 필요 없는 물건을 싼값에 되팔고, 필요한 물건 역시 저렴하게 사고 싶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실용성을 중시하는 성향에 고물가에 대한 부담이 맞물리면서 ‘명절 선물 재테크’ 현상이 나타났다고 분석한다. 이는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등이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 설명한 ‘체리슈머’에 부합하는 면모다. 체리슈머는 ‘한정된 자원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알뜰 소비 전략을 펼치는 소비자’를 뜻하는 신조어다. 선물을 되파는 건 성의를 무시하는 게 아니냐며 눈살 찌푸리는 사람들이 물론 있다. 그러나 향후 몇 년은 경기가 좋지 않고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를 것으로 점쳐지는 상황. 명절 전후로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햄, 참치, 홍삼, 샴푸·린스 등 흔한 명절 선물세트를 자주 접하게 될 전망이다. 선물 명절 선물, 대상은 좁되 돈은 많이 “내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데, 친한 사람만 챙길래요” 명절 선물 구매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2021년 이베이코리아가 오픈마켓 G마켓과 옥션의 설 선물 판매 데이터 2년치를 비교 분석한 결과, 2030세대는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고 4050세대는 선물 구매량이 많았다. 김태수 이베이코리아 영업본부장은 분석 결과에 대해 “미혼이 많은 2030세대는 부모님과 직계 가족에 집중하고, 4050세대는 주변 친척까지 두루 챙기는 경향이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흐름에는 젊은 세대의 ‘미코노미’(Meconomy) 성향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코노미란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소비 성향을 뜻한다. 그런데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비대면 명절이 익숙해지면서, 돈이나 시간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 남에게 쓸 돈을 줄여 나에게 집중하는 소비 행태는 데이터 분석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추석 연휴, 사람들은 지인에게 건강식품(18%)이나 커피·음료(15%), 생필품(14%)을 주로 선물했다. 반면 스스로를 위한 선물로는 생활·미용가전(14%), 골프용품(12%), 노트북/PC(9%) 등을 구매했다. 지난해와 2021년 추석 선물의 판매 데이터를 비교해보면 피부관리기(130%), 명품 잡화(85%), 노트북(29%) 등의 제품 판매량이 크게 증가했다. 주로 남에게 선물하기보다 스스로를 위해 구매하는 프리미엄 제품이다. 특히 2030세대 구매가 가장 크게 증가한 상품군은 노트북과 컴퓨터였다. 반면 4050세대는 일반적으로 구매하던 명절 선물 제품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선택을 했다. 건강식품이 17% 증가해 구매신장률이 가장 높았고, 생필품 11%, 커피·음료 10% 순서로 이어졌다.
- 2023-01-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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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신년사로 안전 운항 및 포스트 코로나 대비 당부
-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2023년을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항공산업이 다시 정상궤도에 들어서는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이에 대비해 경쟁력을 갖추는 한편, 아시아나항공 인수라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모든 임직원들이 힘을 모아줄 것을 당부했다. 조원태 회장은 1월 2일(월) 오전 사내 인트라넷에 등재한 신년사를 통해 “한산했던 공항이 여행 수요가 늘며 다시 북적이는 모습, 드문드문 자리를 비웠던 우리 동료들이 다시 제 자리를 채우는 반가움, 그 속에서 우리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면서도 “고객에게 안전한 항공사라는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신뢰가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며 회복하기도 정말 어렵다”며 안전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조원태 회장은 2023년 원가부담, 불안정한 글로벌 네트워크,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항공여행 방식 변화 등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조원태 회장은 “반세기 이상 차곡차곡 축적되어 온 경험은 우리만의 훌륭한 데이터베이스로, 많은 정보들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선별하고 체계화해야 한다”며 “데이터를 활용해 많은 변수들 속에서 효과적인 대응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며 난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도 함께 제시했다. 조원태 회장은 해외 여행 리오프닝과 동시에 벌어질 치열한 시장경쟁에 대비해 수요 선점을 위한 면밀한 검토도 주문했다. 조원태 회장은 “고객의 니즈(Needs) 분석을 통해 원하는 목적지, 항공여행 재개 시점, 선호하는 서비스 등을 미리 파악해야 한다”며 “이를 토대로 언제 어떤 노선에 공급을 늘릴지, 어떠한 서비스를 개발해 적용할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조금이라도 뒤처진다면 시장은 회복되는데 우리의 실적과 수익성은 오히려 저조해지는 이른바 ‘수요 회복의 역설’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와 함께 조원태 회장은 대한항공의 이름이 갖는 위상에 걸맞는 ESG 가치 실현도 강조했다. 조원태 회장은 “ESG 경영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함께 살아나가는 미래를 위한 필수”라며 “대한항공은 최근에도 연료 효율이 높은 신형 비행기 도입, 기내 용품 재활용,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ESG 위원회 운영 등 ESG 경영 관련 많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원태 회장은 2023년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라는 큰 과제를 완수하는 해가 될 것이라며, 모든 임직원들이 흔들림없이 소임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특히 조원태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의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이를 외면한다면 대한민국 항공업계 전체가 위축되고 우리의 활동 입지 또한 타격을 받는다”며 “대한민국 경제가 인체라면 항공업은 온 몸에 산소를 실어 보내는 동맥 역할을 하는 기간산업”이라고 대한항공 일원으로서의 자부심과 역할을 강조했다. 조원태 회장은 신년사를 마치면서 “우리 스스로 지혜를 발견하기 위한 길을 나서야 하며, 그 과정이 때로 힘에 부치더라도 동료들과 의지해 길을 찾다 보면 반드시 빛나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고객에게 안전하고 감동적인 여행을 선사하기 위해 하늘길에 비행기를 띄우는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들”이라고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 2023-01-05 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