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태(63) 화백에게 금화의 선두주자라는 말을 쓰니 바로 지적이 날아온다.
“금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세계에 없습니다.”
유일무이. 특유의 단호한 목소리 톤에서 자신의 업에 대한 자부심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김 화백이 예술가로서의 높은 긍지가 느껴지는 이 문답 너머에는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아시아인 최초로 영국 사치 갤러리에서 단독 전시를 하고 교황청 집무실에 그의 금화가 걸렸다. 또 아시아태평양브랜드재단의 100대 브랜드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력이 화려한 그의 작품 세계가 궁금했다. 그 내밀한 세계를 들여다봤다.
얼마 전 김일태 화백은 우리나라 개인 최초로 아시아태평양브랜드재단(APBF) 100대 브랜드에 선정됐다. 2015년 영국 런던에 있는 사치 갤러리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단독 전시회를 가진 이후 들려온 또 하나의 낭보다. 사치 갤러리는 현대미술 콜렉터 찰스 사치가 운영하는 갤러리로 영국 현대미술의 판도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그곳에서 단독으로 전시회를 가진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이번에는 하나의 고유한 브랜드로서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금화를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고자 연구했던 지난 40여 년간의 노력을 보상받는 느낌입니다. 예술도 인류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증거이기도 하니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죠.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독창적인 발상으로 세계적으로 알리게 돼 더 기쁩니다.”
김 화백은 구스타프 클림트 이후 화폭에 금을 조금 붙이는 기법은 있었으나 캔버스 전체를 금으로 된 물감으로만 완성하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추구하는 것은 황금의 미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과학의 영역에 닿아 있기도 하다. 금으로 된 물감이라는 기상천외한 소재를 만들기 위해 그가 추구했던 노력과 열정, 그리고 고통을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비싸고 좋은 금을 가지고 왜 저렇게 할까. 물질의 욕망에 사로잡힌 분들은 저를 거의 미친 사람 취급했죠. 그러나 저는 미술인이었기 때문에 독창적인 창의력만이 미래가 있다고 생각해서 재료가 비싸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금은 천 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소재
아무리 흉내 내기 힘든 금화라 해도 어째서 금이었을까? 얼핏 생각해봐도 회화의 재료로 쓰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물질이다.
“금이라는 소재는 인류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귀한 보석류에 속했기 때문에 드러내기보다는 감추기만 했죠. 그걸 감추기보다는 밖으로 드러나게 해서 문화로 발전시켜 다 같이 공유하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리고 왜 서양인이 만든 화학적인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에 대한 반감도 있었죠. 농사도 유기농이 좋듯 순금의 다양한 색을 이용해서 작품을 만들자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금으로 된 미학을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 이것은 다른 사람과 다른 예술적 방향성을 지향하고 싶다는 김 화백 본연의 미학이 적용된 결과이기도 했다. 또한 재료로서의 금은 천 년이 지나도 색이 변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었다. 자손 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기에 미술품으로서 불멸에 가까운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금의 매력은 보석이라서 있는 게 아니에요.”
김 화백이 금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 그것은 금 본연의 색이었다. 금이 가진 색은 햇빛에 비출 때, 비가 올 때, 바람이 불 때 등등 상황에 따라 나오는 색이 다 다르게 보인다고 한다. 김 화백의 설명에 따르면 그 색은 총 아홉 가지. 착시 현상이 아니라 조도에 의해 색이 변한다는 것이다.
“황금이 한 색깔이 아니다. 그걸 알아낸 순간 엄청난 매력을 느꼈죠. 그래서 금을 물감화하기로 했습니다.”
황금 물감을 만들기 위한 천연오일 개발
김 화백의 작업실에 들어가자 뭔가 독특한 향내가 났다. 허브 향과 비슷한 이 냄새는 금을 물감으로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금의 소재를 계속 탐구한 그의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금을 분말화해서 직접 개발한 천연오일에 섞어 칠을 합니다. 이 냄새는 천연오일의 향이죠. 천연오일을 쓰는 이유는 광물질은 기존 오일이 닿는 순간 새카맣게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콩과 식물 여섯 가지를 배합한 오일을 만들어내는 데 시행착오로 5~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야말로 기본적인 재료에서부터 차별화를 생각해 그림을 그린 셈이다. 그가 어째서 이런 생각을 품게 됐는지, 그 근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어머니가 37년간 미술교사로 교단에 있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미술 공부를 할 수 있었죠. 그러나 제가 대학에 들어간 1970년대 초에는 시대적으로 교사 돈으로는 자식의 대학 공부가 불가능했어요. 저는 많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했죠. 편안하게 그림을 그릴 여유가 없었던 시절이었어요.”
그렇게 10여 년을 그림과 상관없이 살았다. 그러다 운 좋게 돈을 벌게 됐고 그때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림을 그릴 것이냐, 아니면 물질의 욕망이나 추구하면서 편안하게 살 것이냐고.
“선택하는 데 5년 걸렸어요. 먹고살기 위해 장사를 할 것이냐, 하늘이 내게 준 재능으로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 내 인생을 던질 것이냐. 선택은 후자였죠.”
미술계의 이단아, 가족도 떠나다
김 화백이 생각하는 예술인의 조건은 간단명료했다. 예술인은 새로운 것에 도전해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으로 그림을 그리는 그의 시도는 미술계에서는 파격이었다. 당연히 인정받기 힘들었다.
“기존 미술계 사람들은 서양인이 만든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공부합니다. 그러면서 무슨 창작을 논하고 독창성을 말할 수 있어요? 애당초 비교를 거부한다는 게 제 첫마디였어요. 그리고 떠났어요. 산에서 10년 6개월 동안 오로지 금을 갖고 작품화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내는 데 몰두했죠. 40대에서 50대까지 그렇게 시간을 보냈어요.”
‘언젠가는 틀림없이 예술의 가치가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칠 때가 올 텐데, 왜 지금 모방만 하며 사는가’라는 기성 미술계에 대한 그의 비판에는 그간 겪었던 고통의 나날들이 묵직하게 담겨 있었다.
“엄청난 끈기와 상상을 초월하는 재료비의 압박에 맞설 두둑한 배포가 아니고서야 이룰 수 없는 결과이거든요.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죠. 나는 미치지도 않았고 단지 미래를 준비하고자 하는 것인데 미친놈, 이단아로 취급했을 때 정말 죽고 싶었어요. 말을 아프게 던지는 사람은 쉽게 던지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상처를 입게 되는 법입니다.”
그를 버린 것은 미술계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아내 또한 마찬가지였다.
“두 아이의 엄마인 제 아내마저도 이해를 못했죠. 금으로 그리다 보니 재료비가 비싸요. 그래서 작은 부동산을 처분해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하니 미친 사람 취급했어요. 결국 이혼했죠.”
주변도, 심지어 가족도 이해 못했다. 그는 고립된 데다 답이 안 나오는 모서리에 매달린 기분이었을 게다. 정말로 미쳐도 이상하지 않았을 그런 시간 속에서 그를 견디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차피 최고가 되려면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세상은 긍정과 부정으로 나뉘어서 보게 되는데, 나에게도 언젠가 긍정의 세상이 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죠.”
그의 확신은 10여 년의 오랜 시간을 거쳐 마침내 그 결실을 봤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에 드디어 데뷔하면서, 데뷔 첫해에 작품들을 완판했다. 그 후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신라호텔에서 단독 전시회를 가졌고, 역시 그곳에서도 36점의 작품을 완판했다. 그의 이름은 서서히 다른 나라에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해외 유수의 전시관에서 80여 차례 전시회를 가졌고, 그것들이 모여서 사치 갤러리에서의 단독 전시라는 쾌거를 이루게 됐다.
도자기와 금화의 결합 실험
김 화백의 그림은 다양한 사람이 봐도 공통적인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금이라는 소재가 주는 느낌의 보편성도 그렇거니와, 그의 작품관 자체가 추상보다는 해학적 상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독자에게 친근감 있게 다가갈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그것이야말로 독자들에게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만 아는 추상화를 그려놓고 네 맘대로 생각하라고 물음표를 던지는 건 예술인의 태도로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는 직관적인 그림을 그린다. 그래서 작업실에서 본 그의 그림은 호박과 돼지, 집안의 온기, 어머니의 사랑 등을 많이 다루고 있다. 이는 한국 사람이 특히 좋아하는 소재들이라고 한다.
최근 그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바로 도자기와 금화의 결합이다.
“1300℃의 도자 가마에서 구워내는 작품을 작업하고 있어요. 굉장히 어렵습니다.”
우선 가마에 들어갈 도자기를 100개 정도 만든다. 그리고 흙을 구워낸 후 그 위에 유약 처리를 한다. 다음으로 유약 위에 금을 넣어서 낮은 온도에 구워낸다. 이런 작업으로 지난 7년 동안 단 열 개의 작품밖에 안 나왔다. 지독하게 비효율적이다. 그도 “그 시간에 그림을 그렸으면 200점은 그렸을 텐데…”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작업실에 있는 황금 도자기 거북이를 가리키면서, 어렵고 힘들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그것이 그가 금화를 그리게 된 유일한 동기라고 했다.
서양에서 먼저 알아본 금화의 가치
그가 자신의 뚝심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결정적으로 인정받은 것이 한국이 아니라 서양화의 본고장이었다는 점에서도 기인한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외국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을 때, 세계적인 스타 데미 무어, 보이 조지가 제 작품 장미를 사갔죠. 너무 아름답다면서. 그게 참 기억에 남네요.”
지금 김 화백의 작품은 각계각층 저명인사들의 선택을 받는 작품군 대열에 올랐다. 자신의 힘들었던 시절을 기억하는 그는 소외된 계층을 위해 그림이 팔리면 10%씩 기부를 하고 있다. 또한 그는 기독교인이라 성화는 제작비를 안 받고 제작한다. 의뢰인이 재료비, 즉 금을 사오면 그걸로 그려주는 것이다. 이 또한 그가 자신의 성공에 대해 세상에 보답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에게 아직 한국 시장은 도전해야 할 영역이다. 아니, 사실 고국은 모든 미술인에게 도전의 대상이 아닐까. 당장 미국의 저명한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가진 작가여도 한국 대중에게는 ‘그런 사람이 있나’ 하는 정도의 반응밖에 못 받는 것이 우리네 미술인들의 현실이다. 김 화백의 말마따나 자신이 ‘배우라면 아카데미상을 열 번 받을 정도의 쾌거’를 이룬 셈이지만 대중에게 그의 이름은 아직 낯설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한 곡만 성공해도 전 국민이 다 알지만 미술인은 그렇지 않죠.”
그는 지금까지 편견과 부족한 예우, 척박한 환경을 버티며 작업을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현실이 원망스럽다가도 좀 더 분발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다짐하는 듯했다. 미술인으로서는 전 세계 어느 작가에게도 뒤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
“작가는 늘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작품을 독자에게 보여야 한다는 점에서 굉장한 중압감이 있죠. 미술은 온전히 캔버스와 나와의 싸움입니다.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단한 벽과 정면으로 부딪쳐야 하는 인생을 60여 년 산다는 것은 자존감으로 견디는 것과 같은 의미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일반인으로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것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지독하게 외롭고 고독한 길에서, 그림은 애인이고 자식 같은 것이 됐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여전히 거듭 다짐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술이 음악처럼 삶의 교훈과 지혜,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있는 현실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앞으로도 더욱 많이 그려서 독자에게 보답해야죠.”
아이, 어른 누구나 읽어도 흥미로운 그리스 로마 신화.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더불어 그들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문화·예술 작품까지 담아낸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그리스 로마 신화’를 책방에서 만나봤다.
참고 도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그리스 로마 신화’ 필립 마티작 저
자료 제공 뮤진트리
신화가 영향을 준 예술 작품들
흔히 그리스 로마 신화 도서들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된 것이 대부분. 반면 이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가 오늘날 문화 속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대해 다양한 예술 작품과 더불어 정리한 것이 특징이다. ‘후대 예술과 문명에 비친 OOO’이라는 콘셉트로 신화 속 인물이나 사건이 후대 예술 작품에 어떻게 살아 숨 쉬고 있는지 설명한다. 예를 들어 ‘후대의 예술과 문명에 비친 아프로디테의 탄생’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인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후대의 예술과 문명에 비친 레다’에서는 다빈치의 ‘레다’ 등에 대해 그림과 함께 이야기한다.
프로필로 보는 신화 속 인물들
신화 속 인물을 각각 상세하게 설명하기에 앞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프로필을 보여준다. 신이나 영웅들은 가족이나 연인 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는데 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부모, 배우자, 연인, 자녀를 비롯해 인물의 특징과 능력, 상징(물), 소재지 등을 정리했다. 특히, 트로이 전쟁에 관여한 인물들을 서열에 따라 보여준 점이 흥미롭다. 크게 그리스인과 트로이인으로 나누고 신, 왕, 영웅, 여인으로 분류해 서열 순서대로 인물들을 설명한다. 트로이 출신이지만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던 제우스를 비롯해 포세이돈, 아테나, 아프로디테 등 30명을 언급했다.
펜화와 명화를 함께 보는 재미
글로만 읽는다면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이야기에 90여 장에 이르는 삽화와 관련 명화, 조각 이미지 등을 넣어 보는 즐거움을 더했다. 책에 실린 모든 펜화는 19세기에 제작된 작품들이라 한다. 펜화를 포함한 모든 이미지는 흑백으로 실려 있지만, 신화 특유의 클래식한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다.
책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즐거움
#plus1
모든 것을 잊게 만드는 망각의 여신 레테. 그녀의 강한 이미지는 현대 시에서도 자주 인용된다. 책에는 ‘레테 칵테일’ 레시피가 나오는데 그 과정이 독특하다.
#plus2
책에서 트로이 전쟁에 관한 인물 소개를 읽고 난 뒤 영화 ‘트로이’(2004)를 본다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물론 반대로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것도 유익하겠다. 이 영화의 미술감독인 나이젤 펠프스는 작품 배경의 철저한 고증을 위해 제작 전부터 각종 서적과 사료를 탐독했다고 한다. BC 1200년경 미케네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조합한 배경과 당대 예술의 아름다움, 서사적 장대함을 동시에 표현해냈다. 특히 4만 496㎡의 트로이 성과 실제 건물 4층 높이로 제작된 약 12m의 트로이 목마의 웅대한 스케일이 압도적이다.
#plus3
벨기에 플랑드르의 화가이며 바로크 시대 미술의 권위자로 불린 페테르 루벤스(Peter Rubens, 1577~1640). 강렬한 색감과 관능미를 추구했던 그는 신화를 바탕으로 한 초상화, 역사화, 풍경화 등을 그렸다. ‘아레스로부터 에이레네를 보호하는 아테나’, ‘에우로페의 납치’, ‘메두사의 머리’, ‘바쿠스’, ‘비너스와 큐피드’ 등이 대표작이다.
가정의 달 5월, 이달에 읽기 좋은 신간들을 소개한다.
초상화, 그려진 선비정신 이성낙 저ㆍ눌와
피부과 전문의 이성낙 박사가 조선시대 초상화 속 인물들의 얼굴을 관찰하고, 그들의 피부질환에 대해 진단한다. 백반, 다모증을 비롯한 희귀 피부 질환과 얼굴의 흠결까지 가감 없이 그린 조선시대 초상화들을 면밀히 분석했다. 아울러 중국, 일본, 서양 초상화와의 비교를 통해 조선시대 초상화의 가치를 재조명한다. 저자는 피부 상태를 적나라하게 그려낸 조선시대 초상화에 대해 “선비정신 덕분”이라 언급하며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병은 조선을 이끈 이들의 정직함, 올곧음의 증거”라 설명한다. 519점의 초상화를 토대로 피부를 진단했는데, 전체 중 268점에서 20종에 달하는 다양한 피부병변을 발견했다. 검버섯 85점, 돌출 검버섯 37점, 천연두 흉터 73점, 흑색황달 9점 등 일반적인 피부병부터 희귀질환까지 다양하게 드러났다. 이 중 피부병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초상화 18폭을 심층적으로 다룬다. 이 책에 대해 유홍준 명지대학교 석좌교수는 “이성낙 박사의 조선시대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병에 대한 연구는 의학적 소견과 미술에 대한 높은 안목이 동시에 이뤄져야 가능한 것”이라며 “미술사와 의학이 만나는 학제 간 통섭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웅변한다”고 말했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 조정래, 조재면 저ㆍ해냄
70대 할아버지 조정래 작가와 고등학교 2학년인 손자 조재면 군이 1년여 동안 글로 써내려간 논술 대화를 모은 책이다. 할아버지의 글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격변기를 몸소 경험한 이의 생생한 관점이, 손자의 글에는 10대 눈높이에서 본 우리 사회의 모습이 담겨 있다.
엄마와 딸 사이 곽소현 저ㆍ소울메이트
엄마와 딸의 갈등 원인과 해결 방법을 담은 심리서. 심리치료 전문가로서 20여 년간 상담 현장에서 많은 딸을 만나온 저자는 20~30대 여성들이 호소하는 엄마와의 갈등과 불편 사례에 대해 언급하며, 이에 대한 솔루션을 영화, 시, 그림을 통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빌 게이츠의 화장실 이순희 저ㆍ빈빈책방
야외 배변으로 인해 고통받는 개발도상국의 사람들을 돕고자 나선 빌 게이츠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이야기. 야외 배변 문제의 심각성과 그 해결 방안을 짚고, 우리가 사용하는 쾌적한 수세식 화장실이 결코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최선책이 아니라는 점을 역설한다.
지금 나는 화창한 중년입니다 사카이 준코 저ㆍ살림
중년 이후 겪는 ‘첫’ 경험들로 가득한 일상의 기록. 모든 일에 능수능란하리라 생각하지만, 여전히 낯설고 서툰 나날 속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그렸다. 저자는 몇 살이든 생일을 맞는 나이는 “태어나 처음”이라 말하며 현재의 삶이 주는 새로움에 주목한다.
“5300억 원 규모의 록펠러 소장품… 세기의 경매 열린다.” 며칠 전 국내 한 일간지에 실린 헤드라인이다. 기사에는 파블로 피카소의 ‘꽃바구니를 든 소녀’(1905)라는 작품도 실려 있었다.[사진1] 순간 머리에 한 가지 장면이 전광석화처럼 지나갔다.
보름 전 ‘2018 아트바젤홍콩(Art Basel Hong Kong 2018)’이 개장되자마자 몇 작품이 팔렸는데, 그중 한 작품인 피카소의 동판화 ‘검소한 식사’(1904)를 홍콩에서 본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사진2]
이와 관련해 필자는 옥션(Auction)이라는 미술품 경매시장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파리, 뉴욕, 런던 같은 큰 도시에서는 아트페어(Art Fair)라는 이름의 미술품 시장이 열린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가을 개최하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Korea International Art Fair)도 그중 하나다. 행사에 참여하는 화랑에서 내놓는 작가의 작품을 미술 애호가들이 구입할 수 있는 ‘큰 장터’다. 그래서 아트 페어에서는 경쟁적으로 좋은 작품을 구입하는 개인 수집가도 있지만, 각국 미술관 구매 담당자들이 작품을 경쟁적으로 구입하기도 한다. 수집가들이 오랫동안 ‘개인적’으로 수장하며 ‘숨겨온’ 작품을 팔기 위해 대중에게 ‘공개’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트페어는 구매자들에겐 좋은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한편, 일반 애호가들에겐 그동안 ‘숨겨져 있던’ 귀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전시장은 항상 수많은 애호가로 북적인다.
앞의 신문기사에서 언급한 뉴욕 크리스티 옥션에서는 미국의 부호이자 소문난 미술 애호가인 록펠러 가문의 데이비드 록펠러 3세(1915~2017)의 소장품이 나온다니 전 세계 미술계의 눈들이 경매장으로 쏠리고 있다. 여기서 피카소의 ‘꽃바구니를 든 소녀’가 얼마에 낙찰될지도 관심사이지만, 그 ‘소녀’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수많은 애호가가 행복해하고 있다. 미술 시장의 두 가지 다른 순기능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세계 곳곳에 불고 있는 도시화(Urbanization, Citification) 바람은 꺾일 줄 모르고 진화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물론 대형 빌딩이 지닌 물리적 인구 흡입력과 첨단 IT 융합 현상이 도시화를 가속시키는 데 큰 몫을 하고 있지만, 도시 속 대형 빌딩들이 숲을 이루면서 나름대로 뿜어내는 예술성도 배제할 수 없는 원인일 것이다. 그것은 빌딩 건축물을 예술적 감각이 배어 있는 대형 조형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 각지에 널려 있는 건축예술품만을 찾아나서는 전문 관광객 그룹이 얼마나 많은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3년 전에 건축가 중심의 동호인 25명이 독일에서 서울을 찾아오더니, 금년에도 45명이 찾아오겠다는 전갈을 받았다. 서울에 산재한 도시 빌딩이 지닌 조형적 아름다움을 보기 위함이다. 당시 서울을 찾은 독일 건축가들은 한결같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보는 것만으로도 서울을 찾은 보람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하기야 ‘DDP’는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 1950~2016)’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지만, 세계 각 도시에 산재한 그녀의 작품 중에서도 최우수 작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2020년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가 메인스타디움 디자인 공모를 하면서, 건축설계자로 ‘자하 하디드’를 선정했다. 그러나 일본 내 강한 반대 여론에 봉착하고 말았다. 막대한 건축비를 반대한다는 이유를 내걸었지만, 일본 건축계가 자존심이 많이 상해서라는 게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명성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래서 우리는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생애 마지막 작품인, 대형 조각품 같은 건축물이 서울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아끼고 가꿔가야 할 새로운 개념의 문화재가 아닌가 싶어서다.
이성낙 현대미술관회 前 회장
독일 뮌헨의대 졸업(1966), 연세대학교 의대 피부과 교수, 아주대학교 의무부총장, 가천의과대학교 총장, 가천의과학대학교 명예총장(현), 한국의약평론가회 前 회장, 간송미술재단 이사.
‘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37년의 삶 동안 극한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며 끝내 자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879점의 그림을 남겼다. 그런 고흐의 영원한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는 궁핍하지만 숭고한 예술혼을 지닌 형에게 금전적,정신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고흐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 동생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수만 668통에 이른다. 그중 고흐의 예술적 고뇌와 작품의 비화를 엿볼 수 있는 편지 40여 통이 담긴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책방에서 만나봤다.
참고 도서 ‘반 고흐, 영혼의 편지’(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기고 엮음, 예담)
◇ 마스터피스에 얽힌 비화
고갱이 사랑했던 고흐의 ‘해바라기’
한 집에서 작업하던 고갱과 심하게 다툰 후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고 만다. 고갱은 집에 두고 온 자신의 습작 대신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 중 하나를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고흐는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기 습작을 주며 내 해바라기 그림을 요구하는 건 정말 우습다. 그는 내 해바라기 그림을 두 점이나 가지고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라고 해라”라고 쓴다. 이미 해바라기 그림 두 점이 있고, 심한 다툼 후에도 또 한 점을 달라고 한 것을 보면 고흐의 해바라기를 향한 고갱의 사랑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조카 ‘빈센트’를 위한 ‘꽃 피는 아몬드 나무’
테오는 고흐를 향한 존경의 뜻을 담아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빈센트 윌렘 반 고흐’라 짓는다. 이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 고흐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 “조카가 내 이름을 땄다고 하니 그 아이를 위해 침실에 걸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라며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 꽃이 만발한 커다란 나뭇가지 그림”이라고 묘사했다. 이 그림이 바로 고흐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꽃 피는 아몬드 나무’(1890)다.
◇ 고흐의 추천 도서
빈곤한 생활에도 독서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고흐는 “빵을 먹어야 살 수 있듯 책에 대해 열정을 갖고 끊임없이 정신을 고양하고 탐구할 필요를 느낀다”고 말했다. 당시 진지하게 독서에 몰두하며 성경을 비롯해 셰익스피어, 빅토르 위고, 디킨스 등의 작품에 심취해 있었다. 그는 1887년 여동생 윌에게 쓰는 편지에 에밀 졸라의 ‘삶의 환희’, ‘목로주점’, 볼테르의 ‘캉디드’, 모파상의 ‘좋은 친구’ 등에 대해 “그들은 우리가 공감하는 삶을 묘사하고 있어 진실을 듣고자 하는 사람의 욕구를 만족시킨다”라며 권유하기도 했다.
◇ 현대에 만나는 고흐의 삶
영화 ‘러빙 빈센트’는 전 세계 107명의 유화 작가들이 참여해 10여 년에 걸쳐 고흐의 작품 130여 점을 재현한 최초의 유화 애니메이션이다. 고흐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모티브로 시얼샤 로넌, 크리스 오다우드, 에이단 터너 등 할리우드 배우들이 고흐의 초상화 속 인물을 연기해 화제를 모았다. ‘우체부 조셉 룰랭의 초상’의 조셉 룰랭, ‘아르망 룰랭의 초상’의 아르망, ‘닥터 가셰의 초상’의 가셰 등을 생동감 넘치는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
‘그대, 나의 뮤즈 – 반 고흐 to 마티스’ 전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3월 11일까지 열린다. 반 고흐를 비롯한 르누아르, 카유보트, 클림트, 마티스 5인의 거장이 자신들의 뮤즈를 만났던 순간을 표현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이번 전시에서는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릴 당시 영감 받은 남프랑스의 노란 태양과 따뜻하게 쏟아지던 햇살을 간접 경험하고 ‘별이 빛나는 밤’, ‘자화상’ 등을 미디어아트로 감상할 수 있다.
바야흐로 봄이다. 산으로 들로 봄꽃 나들이도 좋지만, 풍성하게 마련된 전시도 즐길 겸 갤러리 나들이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올 한 해 눈여겨봐야 할 5가지 미술전시와 더불어 연간 일정을 함께 정리해봤다.
◇ 빔 델보예 개인전
장소 갤러리현대 일정 2월 27일~4월 8일
신개념주의(neo-conceptual) 예술작품들로 주목받는 벨기에 작가 빔 델보예의 국내 첫 전시다. 돼지 몸에 문신을 새긴 작품들을 선보이며 ‘돼지 문신’ 작가로도 불리는 그는 드로잉, 조각, 사진 등 폭넓은 장르를 아우르며 독특한 소재로 구현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다양한 문양의 미학적 요소를 사물에 응용한 작품들과 일반적인 형태와 개념의 맥락을 비트는 작품 30여 점을 보여준다. 고딕 양식으로 레이저 커팅한 스틸, 손으로 조각한 타이어, 살라미 햄으로 구성한 대리석 문양의 바닥 사진 등 작가만의 유머러스한 작품세계와 전통적 요소가 맞물리는 기이한 경험을 선사한다.
>>빔 델보예 (Wim Delvoye, 1965~)
박제된 돼지의 몸에 명품 브랜드의 로고를 그려 넣으며 경악과 흥미로움의 영역을 넘나드는 작품세계로 유명해진 빔 델보예는 스위스 팅겔리 미술관(2017),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 무담(2016),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2016), 파리 루브르 박물관(2012), 로댕 박물관(2012), 베니스 구겐하임 컬렉션(2009), 리옹 현대 미술관(2003), 파리 퐁피두 센터(2000)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베니스비엔날레, 시드니비엔날레, 상해비엔날레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엔날레에 참여하며 독창적인 예술관을 펼치고 있다.
◇ 정강자: 마지막 여행은 달에 가고 싶다
장소 천안 아라리오갤러리 일정 5월 6일까지
한국 아방가르드 작가계의 선두주자이자 1970년대 대표 여성 작가인 정강자의 회고전이다. 정 작가는 개인전을 위해 1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쳤지만, 지난해 7월 위암으로 갑작스럽게 타계하며 이번 전시는 그의 유고전이자 최초의 회고전이 됐다. 올해 1월 31일 아라리오갤러리 서울(2월 25일까지)과 천안(5월 6일까지)에서 동시에 개최한 이번 전시는 작가의 생을 기리고 그의 50여 년 화업을 미술사적, 사회적으로 균형 있게 재조명하는 데 주력한다. 작가의 최근작과 더불어 아카이브 자료를 배치해 자신의 삶을 여성상과 자연물, 기하학적 형태에 투영한 작품들을 아울러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정강자 (鄭江子, 1942~2017)
홍익대학교 서양학과 졸업 후 ‘키스미’(1967)처럼 파격적인 조형작업을 비롯해 ‘투명풍선과 누드’·‘한강변의 타살’(1968), ‘기성 문화예술의 장례식’(1970)과 같은 퍼포먼스에도 참여했다. 1960~70년대 당시 젊은 예술인들의 도전이 응집된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 그룹 ‘신전(新展)’의 일원으로 한국 미술계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와 같은 행위를 통해 여러 경계와 틀로부터 해방되고자 했으나 여성의 신체를 드러내는 작업에 대한 선정적인 시선을 감내해야만 했다.
◇ 니키 드 생팔 개인전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일정 6월 30일~9월 25일
프랑스 여류 작가 니키 드 생팔의 작품 120여 점을 소개하는 대규모 특별 전시다. 프랑스 파리 스트라빈스키 분수의 공공미술로 잘 알려진 그의 대담성과 순수함을 드러내는 입체조형물 및 회화, 판화 등으로 구성된다. 화려한 컬러와 독특한 구조가 돋보이는 그의 후기 입체작품들을 폭넓게 전시할 계획이다.
>>니키 드 생팔 (Niki de Saint Phalle, 1930~2002)
여성지 ‘보그’와 ‘엘르’, 사진 주간지 ‘라이프’의 사진 모델로도 등장했을 만큼 매혹적인 외모를 지닌 니키 드 생팔은 유년 시절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며 겪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미술을 시작했다. 이 때문에 ‘슈팅 페인팅’(1961) 등 그의 작품은 페미니즘 성향이 두드러지며 여성을 주제로 한 조형물이 많은 편이다. 그가 만들어낸 뚱뚱한 여성 조각인 ‘니나’ 시리즈를 비롯해 여성의 몸을 과장해 표현한 작품에는 여성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한 분노와 고발 의식이 담겨 있다.
◇ 윤석남 개인전
장소 학고재갤러리 일정 9월 예정
2013년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 ‘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I’m Not a Pine Tree)’ 이후 5년 만에 열리는 윤석남의 개인전이다. 홍콩 아트바젤(세계적인 미술품 아트페어) VIP 책자 전면에 소개되는 등 국내외적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은 그의 독창적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큐레이터들의 극찬을 받은 설치미술 ‘핑크룸’(1998)이 갤러리 한 층을 가득 채울 예정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민화 기법을 통해 제작한 그의 신작 발표가 예고돼 기대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윤석남 (尹錫男, 1939~)
한국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세’(1919)의 극작가 겸 영화감독인 윤백남의 셋째 딸로 태어나 해방 이전까지 만주에서 살았다. 1954년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6남매를 홀로 키우며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그는 줄곧 ‘어머니’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로 불리고 있다. 40대에 늦깎이 화가로 데뷔했지만 ‘어머니의 이야기’(1995), ‘부엌’(1996), ‘허난설헌’(2005) 등 꾸준히 작품을 내놓으며 여든의 나이에도 여전히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
◇ 마르셀 뒤샹 전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일정 2018년 12월~2019년 4월 예정
국내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리는 마르셀 뒤샹의 전시다.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작가의 주요 작품 및 아카이브는 물론, 마르셀 뒤샹을 소재로 한 사진, 드로잉, 미국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만 레이(Man Ray, 1890~1976)를 비롯한 당대 작가들의 관련 작품까지 총 110여 점을 소개한다. 특히 변기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뒤샹의 대표작 ‘샘’(1917)을 이번 국내 전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도쿄국립박물관을 시작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이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립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순회전이다.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 1887~1968)
프랑스 화가 자크 비용(Jacques Villon, 1875~1963)과 조각가 레이몽 뒤샹 비용(Raymond Duchamp-Villon, 1876~1918)의 동생으로 인상주의, 포비즘, 큐비즘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선보였다. 입체파의 균열된 형태, 사진과 영화의 스톱 모션 등 자연의 시공간에 관한 지배적 관념을 뒤엎는 아방가르드 회화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 2’(1912)는 당시 예술평론가들 사이에 논란을 일으켰을 만큼 독특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에도 여성으로 분장하고 찍은 사진 ‘로즈 세라비’(1921), ‘심지어,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1923) 등 파격적인 예술세계를 보였으며, 다다이즘의 대표 작가로 손꼽힌다.
◇ 2018 상반기 전시 일정
3월 '이정진: 에코-바람으로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3월 8일~7월 1일
'예술가 (없는) 초상'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미술관 3월 20일~5월 20일
김용익 개인전 ‘Endless Drawing’ 국제갤러리 3월 20일~4월 22일
'한국서예사특별전: 명재 윤증'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3월 29일~5월 20일
4월 이반 나바로 개인전 'THE MOON IN THE WATER’ 갤러리현대 4월 19일~5월 27일
5월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5월 3일~10월 14일
'강요배 개인전' 학고재갤러리 5~6월 예정
6월 육근병 개인전 ‘생존은 역사다’(가제) 아트선재센터 6월 15일~8월 5일
◇ 2018 하반기 전시 일정
7월 '박이소: 기록과 기억'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7~12월 예정
'조선민화걸작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7월 5일~8월 26일
'이창수 개인전' 학고재갤러리 7월 예정
8월 '프란시스 알리스 개인전' 아트선재센터 8월 31일~11월 4일
9월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 2018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9월 6일~11월 18일
11월 아키 사사모토 ‘항복점(Yield Point)’ 아트선재센터 11월 23일~2019년 1월 13일
'제국의 황혼, 근대의 여명: 근대전환기 궁중회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11월~2019년 2월 예정
12월 '한국현대미술대가: 한묵'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12월 4일~2019년 3월 10일
2011년의 일이다. 간송미술관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이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도 기나긴 ‘줄서기’를 마다하지 않고 차분하게 차례를 기다리던 모습이 생각난다. ‘풍속인물화대전’에서 공개하는 조선시대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와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1758~1813)을 중심으로 한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였는데 특히 ‘미인도’를 보기 위해 몰려온 것이다.
혜원의 풍속 화첩인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 국보 제135호)’은 일본에 유출된 것을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1906~1962) 선생이 여러 해에 걸쳐 공을 들여 1934년 되찾았다. 당시 선생은 이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직접 오사카까지 건너갔다. ‘문화독립운동가’ 간송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김동길 ‘이 나라에 이런 사람들이’, 2017).
돌아온 ‘미인도’를 보며 필자는 문득 ‘이 작품이 과연 조선시대 여인들의 아름다움을 대표할 만큼 상징적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균형을 잃은 가발(假髮), 즉 조선시대에 크게 유행해서 여자들이 머리에 얹었던 체발(髢髮, 트레머리)이 마음에 많이 걸렸다[사진].
동시대에 활동한 단원의 작품에서도 체발한 여인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머리 스타일이 조선시대의 풍속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필자는 ‘미인도’를 보며 왠지 거북함을 느꼈는데, 이는 체발이 당시 사회문제로까지 대두해 나라에서 금지령을 내릴 정도로 여인들 사이에서 걷잡을 수 없는 ‘유행병’으로 번졌다는 사실 때문이다.
문헌은 이렇게 말한다. “원래 트레머리는 원나라에서 들어온 풍속으로 왕비만이 할 수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그 풍속이 사대부와 평민, 기생들에게까지 퍼졌는데 그 값이 엄청나게 비싸서 사회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10월 3일에 임금은 대신들에게 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우의정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은 체발의 폐단이 심각함을 이렇게 말했다. ‘지극히 가난한 유생의 집이라도 60~70냥의 돈이 아니면 살 수 없고, 집을 팔아야 할 형편입니다. 체발을 마련하지 못해 시집온 지 6~7년이 넘도록 시부모 뵙는 예를 행하지 못해 인륜을 폐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채제공의 말을 들은 임금(정조)은 ‘우상의 말이 정확할 뿐 아니라, 그 뜻이 선대왕(영조)의 뜻을 밝히고 계승하는 데 있다’며 ‘사족의 처(妻)와 첩(妾), 여염의 부녀자들이 체발을 머리에 얹는 것과 밑머리를 땋아 머리에 얹는 것을 일체 금지’하기에 이르렀다”(한영우 ‘정조평전 성군의 길’, 2017). 이것이 바로 정조 12년(1788)의 여성체발금지령이다.
조선시대 초상 미술사에서 사시(斜視)를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피사체의 주인공이기도 한 번암 채제공이 자신의 눈에 비친 가발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접근했다는 사실이 필자의 기억을 새롭게 했다.
이성낙(李成洛) 현대미술관회 前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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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뮌헨의대 졸업(1966), 연세대 의대 피부과 교수, 아주대학교 의무부총장, 가천의과대학교 총장, 가천의과학대학교 명예총장(현), 한국의약평론가회 전 회장, 간송미술재단 이사.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는 신간들을 소개한다.
◇ 오늘이 가기 전에 해야 하는 말
아이라 바이오크 저ㆍ위즈덤하우스
40년간 응급의학과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종사해온 웰다잉 전문가 아이라 바이오크 교수의 에세이다. 책을 읽다 보면 마음을 온전히 치유하는 일은 ‘언제든’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령 오랜 독설, 외면, 실망으로 얼룩진 사이라 해도 죽음의 문턱을 넘기 전 소중한 네 마디 말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네 마디 말은 “사랑해”, “고마워”, “용서할게”, “용서해줘”이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했어야 하는 말을 하지 못해 뼈저리게 후회하는 수많은 사람을 경험하며 ‘오늘이 가기 전에 해야 할 말을 하자’라는 자세를 통해 소중한 사람들과 깊은 정을 나누길 희망한다.
아이라 바이오크는 꼭 죽음을 목전에 둔 이가 아닐지라도 평상시 다양한 상황에서 이 네 마디 말을 잘 활용해 건강한 인간관계와 정서적 안녕을 누릴 것을 조언한다. 누구든 예기치 못한 사고나 질병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소중한 사람들에게 용서, 감사, 사랑을 틈틈이 표현해야 한다는 것. 그는 책에서 네 마디 말을 서로에게 건넨 환자와 가족들의 감동적인 사연을 소개한다. 가족의 불화, 개인의 비극, 이혼 등 어긋난 관계를 치유하고 인생을 아름답게 하는 데 필요한 삶의 지혜는 단순하지만 귀중한 네 마디 말이었음을 되새긴다. 이해인 수녀는 “매일의 인생 여정에서 이 네 마디를 꾸준히 말한다면 우리가 꿈꾸는 행복이 바로 곁에 있음을 새롭게 깨우쳐준다”며 “당장 사랑을 시작하자고 우리를 재촉하는 이 책을 많은 이와 나누고 싶다”고 했다.
◇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 김형석 저ㆍ김영사
100세를 앞둔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의 저서 중에서 그의 삶의 철학 전반을 엿볼 수 있는 글을 추렸다. 1부 ‘잃어감에 관하여’, 2부 ‘살아간다는 것’, 3부 ‘영원을 꿈꾸는 자의 사색’, 4부 ‘조금, 오래된 이야기’ 등으로 나눠 삶의 의미에 대해 폭넓게 아우른다.
◇ 죽을 때 추억하는 것 코리 테일러 저ㆍ스토리유
소설가 코일 테일러가 뇌종양 4기 진단을 받고 투병하면서 쓴 회고록이다. 유년 시절과 가족에 대한 추억,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고찰 등을 문학적 사색을 담아 표현했다. 아울러 생의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추억하게 될지 물으며 삶의 방향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 죽음과 죽어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저ㆍ청미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로 잘 알려진 정신과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대표작이다. 부정과 고립,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의 ‘죽음의 5단계’를 정의하며 죽음에 대한 태도와 반응, 시한부 환자들과의 인터뷰 등을 소개하며 죽음과 죽어감의 의미를 이해하게 만든다.
◇ 인간가족 에드워드 스타이컨 저ㆍ알에이치코리아
1955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첫선을 보인 대규모 전시 ‘인간가족’ 전에 소개된 68개국 273명 사진작가의 흑백사진 작품 503점을 수록했다. 냉전시대에 지구촌 인간가족의 일상과 희로애락이 담긴 사진들 속에서 과거 6·25전쟁 당시 우리의 모습도 돌아볼 수 있다.
공자(BC551~BC479)는 ‘논어’ 양화편(陽貨篇) 26장에서 “마흔이 되어서도 남에게 미움을 산다면, 그 인생은 더 볼 것이 없다(年四十而見惡焉, 其終也已)”고 설파한다. 스스로 마흔을 불혹(不惑)이라 했으니 마흔 살을 인격이 형성되는 때로 본 것이다.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도 “태어날 때는 부모가 만든 얼굴이지만 그다음부터는 자신이 얼굴을 만드는 것이다. 나이 사십이 넘으면 모든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다시 ‘논어’ 옹야편(雍也篇)에서 공자는 “겉모습과 바탕이 잘 어울린 뒤에야 군자다운 것이다(文質彬彬 然後君子)”라고 쓰고 있다. 사람의 얼굴과 인성을 언급한 예는 얼마든지 더 많을 것이다.
예술가들은 ‘자화상’이나 ‘자소상(自塑像)’ 작업이 제일 힘들다고 말한다. 거울을 보고 스케치하자면, 극사실의 사진처럼 묘사할 수는 있겠으나, 얼굴 내면의 깊은 속내를 표출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그렇다. 성인이 되고 한 20여 년 지나오면서 가정적으로 일가를 이루고, 사회생활의 역경을 체험하며 얼굴도 그 과정을 따라 변할 수밖에 없을 터다.
박근자(朴槿子, 1932~) 화가는 영화감독 유현목(兪賢穆, 1925~2009)의 아내로 잘 알려진 여성이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화가로 입문하며 유 감독과 결혼. 그러나 자녀가 없어 마음의 빈 공간을 그림 그리기로 채워나갔다.
“현미경 사진을 보면 확대된 자연 속에 이미 추상화가 존재함을 볼 수 있어요. 그런데도 인간은 육안으로 볼 수 없다고 이해하려 들지 않고 있어요. 자연은 확대해 볼수록 정교하고 조화가 있지만, 인간이 만든 것은 거칠어지고 부조화가 나타나요.” 추상화의 변이다. 1973년 이래 1979년까지는 “내 자신에 내재 된 ‘속 얼굴’을 캔버스에 형상화하기 위해 고심하였다”고 ‘얼굴’ 전에 쓰고 있다. 얼굴만을 주제로 서너 차례 개인전도 열어 호평을 받았다.
박 화가는 1969~1970년에는 한 일간지의 임시 해외 특파원으로 글·그림 취재차 세계여행을 하며 유려한 문체와 수준 높은 드로잉으로 신문 지면의 격을 높였다. 1977년에는 에세이집 ‘얼굴’을 출간하기도 했다.
“50년대 초반 미술대학 시절부터 ‘얼굴’이란 소품은 하나의 습작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70년대 들어서면서 ‘얼굴’이라는 소품들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뜻을 지니고 계속 구현되고 있는 변치 않는 유일한 화제(畵題)이다.” 에세이집에 있는 박 화가의 글이다.
[그림1]은 1979년의 전시회 출품작 ‘푸른 눈의 소녀’ 이다. 박근자 화가의 그림은 너무 귀해서 실물을 접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10회 이상의 개인전을 열었으나 그 규모가 작고 작품들도 적어서 화랑가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미술품 수집가이면서도 학술적 연구의 궤적이 큰 분에게서 두 점의 드로잉을 입수했다. 마치 큰 보물을 얻은 듯 가슴에 꼭 안고 돌아오는 길이 행복했다.
종이에 수채와 크레용으로 단숨에 그린 ‘얼굴’의 반쪽은 파란 유리 빛에 물들어 있다. 두 눈은 연녹색으로 크기와 각도가 어긋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어 깊은 사색의 그늘을 읽을 수 있다. 슬며시 맑고 투명한 속내가 엿보인다.
신양섭(申養燮, 1942~)은 언필칭 발군의 화가다. 서라벌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1978~1981년 연 4회 국전 특선을 하고 1981년 대통령상을 차지했다. 국전 대통령상은 화가 지망생에게 최고의 영예이며 해외 견학의 기회까지 주어져 견문과 식견을 넓히는 디딤돌이 된다.
신 화가는 50여 년 미술활동을 하면서도 350여 점의 작품만 남겨 과작(寡作)의 작가로 유명하다. 또 다른 별호는 ‘흰색의 화가’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흰색 바탕에 흰색의 질료로 고향의 산천, 오두막, 소, 새와 들 등을 묘사하며 두터운 마티에르로 평면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고 있다.
1989년 ‘하얀 추억’이라는 타이틀의 전시에서 그가 출생해 유년을 보낸 충청도 시골의 소소하고 칙칙한 풍경들을 마음으로 정화해 흰색을 주조로 한 환원의 작품세계를 나타냈다면, 2010년 인사동 노화랑에서 8년 만에 연 초대전에서는 ‘내 안의 풍경’이라는 주제를 통해 흰색을 주조로 하되 캔버스에 면섬유나 종이부조 등을 붙이고 채색도 좀 더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
“작품세계를 성찰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선 시간과 수련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세상의 냉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잖아요.” 과작의 변이다.
“신양섭의 작품은 마치 흙벽의 푸근한 질감을 연상케 한 바 있으며 시골의 담 벽이나 부엌의 연기에 그을린 아궁이처럼 정감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마음의 풍경‘은 자기 속에 걸러진 것, 물고기와 사람, 나무와 새, 여인과 교회 등 아무런 맥락도 갖지 않는 사물들이 서로 비집고 자리함으로써 또 하나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범신(汎神)적 차원을 형성하는 것”이라 평론가는 정의했다.
[그림2]는 1989년 ‘하얀 추억’ 전에 출품되었던 작품이다. 유년의 부친 얼굴이거나, 사십 중반의 작가 자화상일 것이다. 흰 바탕에 두터운 물감을 덧바름으로써 질박한 얼굴을 표현했다. 머리며 이마, 눈, 코, 입 모두 범상치 않다. 입술의 연붉은 채색은 언어로 그 무엇인가를 소통하려는 메시지로 읽힌다. 내면에 관류하는 복잡한 사유가 뒤엉켜 흘러넘치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바람에 스쳐지나가는 구름을 그릴 수 없듯, 마음속 희로애락에 따라 겉으로 드러나는 얼굴 표정을 그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예로부터 많은 화가들은 그 마음결의 한 끝이라도 그리고자 애써왔다. 살아오면서 ‘더럽혀지기 이전의 순결한 마음’을 찾을 수 없게 황폐해진 현대인들의 얼굴에서도 한 자락 맑은 빛을 엿보려는 줄기찬 노력이, 그림을 바라보는 이들에게도 정화(淨化)의 경지를 느끼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