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막의 첫 번째 희망으로 자아실현 욕구가 다가선다. 후반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주제로 이야기하게 되면 대체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용어가 바로 자아실현이다. 먼저 살다간 많은 분도 그런 측면에서 후회하곤 했다. 일본의 호스피스 한 분이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죽음을 앞에 둔 환자 1,000명도 그랬다. 임종을 맞으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다양한 대답을 했다. 눈에 크게 띄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했던 일”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이었다. 앞서간 사람들의 후회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후반생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지혜이지 싶다.
그래서 인생이막은 나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에 무게가 실린다. 나를 위하여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삶일까? 이런 분이 실제 있었다. 인생일막을 정말 열심히 살아왔고 주변의 박수를 받으며 정년 퇴직하였다.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뒷전에 미뤄두었던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려고 별도의 오피스텔 하나를 얻어 집에서 나왔다. 이곳에서 숙식도 하며 혼자서 지냈다.
집에는 필요한 때에 간혹 들렸다. 서예도 배우고 색소폰도 불고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이것저것 마음껏 하였다. 집안일은 아예 신경을 끊었다. 집에 있는 안사람이 강력하게 항의하여도 들은 체 만체했다. 아내는 단단히 화가 났다. 두고 보자며 벼르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 동안 가족을 위해서 헌신했으니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이라며 버티고 있다. 과연 그것이 자기를 위해서 하는 일일까?
나 자신을 위하여 일한다는 것은 과연 나 혼자를 의미하는 것일까? 후반생에 있어서 “나”라는 의미 속에는 배우자가 포함되어 있다. 고리타분한 얘기가 될지 모르지만, 부부를 동심 일체라 한다. 나를 위한다는 의미에는 당연히 배우자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바른 생각이지 싶다. 나를 위하여 산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부부가 함께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인다. 함께한다는 것은 마음을 같이 한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전반생에 가족을 위하여 헌신해 왔지만, 따져 보면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은 사실 많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지 모른다. 지금처럼 친구 만나는 시간, 잠자는 시간, 텔레비전 보는 시간, 스마트폰 보는 시간을 제외하면 남편이나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인생이막에서 나 자신을 위하여 하는 일의 중심에는 끝까지 함께해야 할 배우자가 있음을 지나쳐선 아니 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