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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보면 후회할 갤러리展, ‘빔 델보예’부터 ‘마르셀 뒤샹’까지…
- 바야흐로 봄이다. 산으로 들로 봄꽃 나들이도 좋지만, 풍성하게 마련된 전시도 즐길 겸 갤러리 나들이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올 한 해 눈여겨봐야 할 5가지 미술전시와 더불어 연간 일정을 함께 정리해봤다. ◇ 빔 델보예 개인전 장소 갤러리현대 일정 2월 27일~4월 8일 신개념주의(neo-conceptual) 예술작품들로 주목받는 벨기에 작가 빔 델보예의 국내 첫 전시다. 돼지 몸에 문신을 새긴 작품들을 선보이며 ‘돼지 문신’ 작가로도 불리는 그는 드로잉, 조각, 사진 등 폭넓은 장르를 아우르며 독특한 소재로 구현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다양한 문양의 미학적 요소를 사물에 응용한 작품들과 일반적인 형태와 개념의 맥락을 비트는 작품 30여 점을 보여준다. 고딕 양식으로 레이저 커팅한 스틸, 손으로 조각한 타이어, 살라미 햄으로 구성한 대리석 문양의 바닥 사진 등 작가만의 유머러스한 작품세계와 전통적 요소가 맞물리는 기이한 경험을 선사한다. >>빔 델보예 (Wim Delvoye, 1965~) 박제된 돼지의 몸에 명품 브랜드의 로고를 그려 넣으며 경악과 흥미로움의 영역을 넘나드는 작품세계로 유명해진 빔 델보예는 스위스 팅겔리 미술관(2017),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 무담(2016),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2016), 파리 루브르 박물관(2012), 로댕 박물관(2012), 베니스 구겐하임 컬렉션(2009), 리옹 현대 미술관(2003), 파리 퐁피두 센터(2000)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베니스비엔날레, 시드니비엔날레, 상해비엔날레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엔날레에 참여하며 독창적인 예술관을 펼치고 있다. ◇ 정강자: 마지막 여행은 달에 가고 싶다 장소 천안 아라리오갤러리 일정 5월 6일까지 한국 아방가르드 작가계의 선두주자이자 1970년대 대표 여성 작가인 정강자의 회고전이다. 정 작가는 개인전을 위해 1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쳤지만, 지난해 7월 위암으로 갑작스럽게 타계하며 이번 전시는 그의 유고전이자 최초의 회고전이 됐다. 올해 1월 31일 아라리오갤러리 서울(2월 25일까지)과 천안(5월 6일까지)에서 동시에 개최한 이번 전시는 작가의 생을 기리고 그의 50여 년 화업을 미술사적, 사회적으로 균형 있게 재조명하는 데 주력한다. 작가의 최근작과 더불어 아카이브 자료를 배치해 자신의 삶을 여성상과 자연물, 기하학적 형태에 투영한 작품들을 아울러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정강자 (鄭江子, 1942~2017) 홍익대학교 서양학과 졸업 후 ‘키스미’(1967)처럼 파격적인 조형작업을 비롯해 ‘투명풍선과 누드’·‘한강변의 타살’(1968), ‘기성 문화예술의 장례식’(1970)과 같은 퍼포먼스에도 참여했다. 1960~70년대 당시 젊은 예술인들의 도전이 응집된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 그룹 ‘신전(新展)’의 일원으로 한국 미술계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와 같은 행위를 통해 여러 경계와 틀로부터 해방되고자 했으나 여성의 신체를 드러내는 작업에 대한 선정적인 시선을 감내해야만 했다. ◇ 니키 드 생팔 개인전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일정 6월 30일~9월 25일 프랑스 여류 작가 니키 드 생팔의 작품 120여 점을 소개하는 대규모 특별 전시다. 프랑스 파리 스트라빈스키 분수의 공공미술로 잘 알려진 그의 대담성과 순수함을 드러내는 입체조형물 및 회화, 판화 등으로 구성된다. 화려한 컬러와 독특한 구조가 돋보이는 그의 후기 입체작품들을 폭넓게 전시할 계획이다. >>니키 드 생팔 (Niki de Saint Phalle, 1930~2002) 여성지 ‘보그’와 ‘엘르’, 사진 주간지 ‘라이프’의 사진 모델로도 등장했을 만큼 매혹적인 외모를 지닌 니키 드 생팔은 유년 시절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며 겪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미술을 시작했다. 이 때문에 ‘슈팅 페인팅’(1961) 등 그의 작품은 페미니즘 성향이 두드러지며 여성을 주제로 한 조형물이 많은 편이다. 그가 만들어낸 뚱뚱한 여성 조각인 ‘니나’ 시리즈를 비롯해 여성의 몸을 과장해 표현한 작품에는 여성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한 분노와 고발 의식이 담겨 있다. ◇ 윤석남 개인전 장소 학고재갤러리 일정 9월 예정 2013년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 ‘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I’m Not a Pine Tree)’ 이후 5년 만에 열리는 윤석남의 개인전이다. 홍콩 아트바젤(세계적인 미술품 아트페어) VIP 책자 전면에 소개되는 등 국내외적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은 그의 독창적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큐레이터들의 극찬을 받은 설치미술 ‘핑크룸’(1998)이 갤러리 한 층을 가득 채울 예정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민화 기법을 통해 제작한 그의 신작 발표가 예고돼 기대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윤석남 (尹錫男, 1939~) 한국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세’(1919)의 극작가 겸 영화감독인 윤백남의 셋째 딸로 태어나 해방 이전까지 만주에서 살았다. 1954년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6남매를 홀로 키우며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그는 줄곧 ‘어머니’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로 불리고 있다. 40대에 늦깎이 화가로 데뷔했지만 ‘어머니의 이야기’(1995), ‘부엌’(1996), ‘허난설헌’(2005) 등 꾸준히 작품을 내놓으며 여든의 나이에도 여전히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 ◇ 마르셀 뒤샹 전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일정 2018년 12월~2019년 4월 예정 국내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리는 마르셀 뒤샹의 전시다.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작가의 주요 작품 및 아카이브는 물론, 마르셀 뒤샹을 소재로 한 사진, 드로잉, 미국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만 레이(Man Ray, 1890~1976)를 비롯한 당대 작가들의 관련 작품까지 총 110여 점을 소개한다. 특히 변기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뒤샹의 대표작 ‘샘’(1917)을 이번 국내 전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도쿄국립박물관을 시작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이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립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순회전이다.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 1887~1968) 프랑스 화가 자크 비용(Jacques Villon, 1875~1963)과 조각가 레이몽 뒤샹 비용(Raymond Duchamp-Villon, 1876~1918)의 동생으로 인상주의, 포비즘, 큐비즘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선보였다. 입체파의 균열된 형태, 사진과 영화의 스톱 모션 등 자연의 시공간에 관한 지배적 관념을 뒤엎는 아방가르드 회화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 2’(1912)는 당시 예술평론가들 사이에 논란을 일으켰을 만큼 독특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에도 여성으로 분장하고 찍은 사진 ‘로즈 세라비’(1921), ‘심지어,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1923) 등 파격적인 예술세계를 보였으며, 다다이즘의 대표 작가로 손꼽힌다. ◇ 2018 상반기 전시 일정 3월 '이정진: 에코-바람으로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3월 8일~7월 1일 '예술가 (없는) 초상'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미술관 3월 20일~5월 20일 김용익 개인전 ‘Endless Drawing’ 국제갤러리 3월 20일~4월 22일 '한국서예사특별전: 명재 윤증'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3월 29일~5월 20일 4월 이반 나바로 개인전 'THE MOON IN THE WATER’ 갤러리현대 4월 19일~5월 27일 5월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5월 3일~10월 14일 '강요배 개인전' 학고재갤러리 5~6월 예정 6월 육근병 개인전 ‘생존은 역사다’(가제) 아트선재센터 6월 15일~8월 5일 ◇ 2018 하반기 전시 일정 7월 '박이소: 기록과 기억'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7~12월 예정 '조선민화걸작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7월 5일~8월 26일 '이창수 개인전' 학고재갤러리 7월 예정 8월 '프란시스 알리스 개인전' 아트선재센터 8월 31일~11월 4일 9월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 2018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9월 6일~11월 18일 11월 아키 사사모토 ‘항복점(Yield Point)’ 아트선재센터 11월 23일~2019년 1월 13일 '제국의 황혼, 근대의 여명: 근대전환기 궁중회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11월~2019년 2월 예정 12월 '한국현대미술대가: 한묵'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12월 4일~2019년 3월 10일
- 2018-03-09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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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울린 ‘황혼의 사랑’
- “젊어서의 사랑은 자신의 행복을 원하는 것이고, 황혼의 사랑은 상대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미국 최초 여성 연방 대법관을 지낸 샌드라 데이 오코너의 남편 사랑입니다.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좋으니, 다른 여성을 사랑해도 당신만 행복하다면 나는 기쁩니다.” 오코너 대법관은 1981년부터 24년간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중도의 여왕’이라는 칭송을 받을 정도로 사심 없이 균형추 역할을 해낸 법관입니다.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어느 날 샤워를 끝내고 보니 가슴에 이상한 혹이 만져지더랍니다. 그래서 오전 재판을 마치고 병원에 갔다가 유방암 3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주위에서 힘든 투병이니 장기휴가를 내고 치료를 받으라는 권유를 했지만 뿌리쳤습니다. 오코너 대법관은 그렇게 유방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꿋꿋하게 법관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하지만 유명 변호사인 남편까지 알츠하이머병 초기라는 진단을 받자 2005년 명예로운 종신직인 대법관의 자리를 내려놓습니다. 법조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터여서 고민이 컸을 텐데 과감히 사표를 던졌습니다. 남편의 기억력이 점점 나빠져 결국 그녀도 몰라보게 되자 남편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은퇴한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요양원에서 다른 환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다른 여자 손을 잡고 산책을 하고 키스를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남편을 미워하거나 애인을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코너는 행복해하는 남편을 기쁘게 바라봤습니다. 그녀의 아들도 한 방송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마치 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년 같아요. 어머니는 아버지가 정서적 안정을 되찾게 됐다며 좋아하셔요”라고 말하며 자살 얘기만 하던 아버지가 사랑에 빠져 행복해하는 모습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오코너의 친구인 심리학자 메리 파이퍼는 남편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녀의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어서의 사랑은 자신의 행복을 원하는 것이고, 황혼의 사랑은 상대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순의 나이에 만난 오코너의 숭고하고도 위대한 사랑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과 함께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눈시울을 적셔가며 이 이야기를 소개해주곤 했다. 물론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더 특별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진 남편을 기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랑은 도대체 어느 만큼의 깊이를 가진 걸까? 얼마나 성숙해져야 그런 사랑이 가능할까!
- 2018-02-13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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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도 “사랑해요, 고마워요”라는 말을 듣고 싶다
- K는 기계 기술자이면서 시인이다. 기술자가 시를 쓴다는 것도 드문 일인데 그동안 시집도 두 권이나 펴냈다. 그는 젊어서부터 열사의 나라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지역 건설 현장을 두루 경험한 산업 전사였다. 능통한 영어 실력으로 큰소리를 치고 대우도 받으며 해외생활을 마쳤다. 그의 시집을 선물받아 읽어봤다. 이국의 색다른 풍경과 고국의 아내와 자식에 대한 그리움이 철철 넘치는 시가 많았다. K와 주말에 가벼운 등산을 하고 소주잔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술이 몇 순배 돌자 그는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꺼냈다. 아내와 황혼이혼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K의 부부금슬은 그가 쓴 시집에도 잘 나타나 있고, 평소 부부사이를 봤을 때도 전혀 이상함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K의 집은 서울 송파다. 청주 현장에서 근무할 때 그는 금요일 오후에 서울로 올라가 일요일 오후에 내려오는 주말부부 생활을 했다. 그의 아내는 끼니마다 먹을 국거리와 반찬을 손에 들려 보냈다. 주중 하루는 아내가 직접 청주로 내려와 청소도 해주고 올라갔다. K도 주위의 아름다운 꽃이나 나무들을 사진으로 찍고 거기에 감성을 살린 글을 몇 줄 적어 매일 아내에게 보내주곤 했다. 잉꼬부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혼을 결심한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주말이면 함께 골프를 치던 K의 아내의 어께가 고장이 났다.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상태가 점점 더 심해져갔다. 수술을 하지 않고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했다. 그러는 동안 결국 병을 더 키웠다.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니 상태가 심각해 수술밖에 방법이 없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K는 사표를 던지고 아내 뒷바라지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1년이 흘렀고 오늘 필자와 만났다. 아내가 한쪽 팔을 거의 못 쓰니 머리도 감겨줘야 하고 음식도 K가 다 해야 했다. K로서는 최선을 다해 살림도 하고 아내를 위해 시간을 보내는데도 아내의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아내의 잔소리는 늘어갔고 K가 견디다 못해 어느 날 한마디 했다고 한다. “당신은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을 보고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 하고 타박만 하느냐?” 그러자 아내도 지지 않고 볼멘소리를 하더란다. “나는 당신이 외국에 나가 있을 때 아이들 키우며 이보다 더한 고생을 수없이 했어요.” 결국 K는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나도 처자식 먹여 살리겠다고 그 뜨거운 모래바람, 햇볕 속에서 고생을 엄청 했다. 사람이 하루를 살아도 마음 편히 살아야 하는데 당신이 이렇게 나에 대해 불만이 많다면 우리 헤어집시다. 당신 팔은 내가 어떻게 하든 고쳐주리다. 그리고 내 재산 절반을 딱 잘라서 주겠소. 그 돈이면 충분히 잘 살 수 있을 것이오.” 그러자 아내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아내 모습을 보면 아내도 내심 황혼이혼을 꿈꾸고 있었던 모양이라며 이제 갈라서야겠다고 말한다. 그때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등산 간 사람이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자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K는 서둘러서 일어났다. 그렇다! 남자도 힘들 때는 위로를 받고 싶고 “고마워요, 감사해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보통의 사람이다.
- 2018-01-0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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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보는 가족도 환자로 만드는 가족병
- 1994년 11월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국민 앞에 모습을 보였다. 그러고는 “나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있습니다. 앞으로 나는 나의 친구, 내 가족을 몰라볼지도 모릅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는 “인생의 황혼(黃昏)으로 가는 여행을 떠난다”는 말과 함께 10여 년간 치매와 싸우다 2004년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옆을 지켰던 부인 낸시 레이건은 치매 환자 가족의 고통을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천천히 분해되어 무너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괴로움”이라고 표현했다. 병이 깊어졌을 때 레이건 대통령은 낸시 여사를 알아보지 못했고 자신이 미국 대통령이었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며칠 전 필자는 초등학교 가을 체육대회에 참석했다. 열두 살 꼬맹이였던 친구들은 60대 환갑이 넘은 초로의 모습이었다. 주름진 얼굴, 서릿발 내린 흰머리 등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는 없었다. 오랜만에 학창 시절을 추억하고 웃고 떠들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부모님 안부로 이어졌다. 우리 나이가 육십이 넘었으니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도 많고 살아 계신다 해도 90세 전후라서 어르신들 건강이 좋지 않다. 집에서 치매로 고생하시거나 요양원에 계신 분도 꽤 있다. 자연스러운 치매 얘기에 경험담이 하나둘 터져 나왔다. 치매 환자가 있으면 가족은 비상이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주방에 가스레인지를 켜놓는 등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치매 치료제는 없고 지연시키는 약만 있으나 그 효능은 그리 크지 않다고 한다. 최선책은 조기진단과 예방법 실천이다. 알려져 있는 예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햇볕을 많이 쬔다. 오메가-3 지방산과 비타민D 섭취량을 높인다. 둘째, 오메가-3가 풍부한 등 푸른 생선을 많이 먹는다. 셋째, 숫자나 퍼즐 게임, 낱말 맞히기, 산·강 이름 암기 등 두뇌를 쓰는 게임을 한다. 넷째, 당분 섭취를 줄인다. 다섯째, 잠을 7시간 이상 충분히 잔다. 여섯째, 항산화제가 풍부한 커피를 하루 3~5잔 마신다. 일곱째, 스트레스를 낮추고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는 명상을 생활화한다. 끝으로 취미, 모임 등에 자주 나가 사회활동을 한다. 이미 치매가 시작되었다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신청해 등급 판정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구체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지원 내용에는 방문 간호, 주간 보호, 단기 보호, 복지 용구 지원 등이 있다. 경증 환자를 위한 주간 보호 시설도 어린이집처럼 운영된다. 중증 환자는 24시간 방문 요양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요양원 입주가 가능하다. 현재 중증 환자의 경우 본인 부담금이 20%인데 ‘치매 국가 책임제’로 정책이 전환되면서 10%만 부담하면 된다. 필자의 장모님도 등급을 받아 주간 보호센터에 다니신다. 요양원이 싫은 사람은 간병인을 구하면 되지만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 요양원이라고 해서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각종 프로그램과 전문가들의 도움이 있어 집에서 갇혀 있거나 누워만 있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 치매는 본인뿐 아니라 돌보는 가족도 환자로 만드는 가족병이라 한다. 평소 예방법 등을 실천해 치매가 오지 않도록 하고, 주기적인 검진으로 치매 진행 속도를 늦추고, 치매 관련 제도를 활용해 경제적인 부담을 줄여야 한다. 또한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도 환자가 한 생애를 끝내고 황혼 여행을 잘 떠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돌봐야 한다.
- 2017-11-14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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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은 언제 찾아오는가
-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하는 취미는 무엇일까?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에 의하면 등산이다. 2015년 9월 25일 발표한 조사 결과인데 국민 100명 중 14명이 등산을 꼽았다. 그다음은 영화 및 음악감상(6%), 운동헬스(5%), 게임(5%)순이었다. 등산은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가장 선호하는 취미라고 한다. 나도 한때 주말이면 어김없이 산에 오르던 시절이 있었기에 전적으로 공감이 가는 결과다. 지금 살고 있는 파주로 이사 오기 전까지 서울 관악산 자락 아래 살면서 ‘동네 뒷산’을 오르는 일로 주말 아침을 열곤 했다. 아파트 뒷길로 해서 관악산으로 곧장 이어지는 왕복 3시간 코스의 산을 걷다 보면 지나간 일주일 동안의 스트레스, 관계의 고단함 등으로 꼬여 있던 마음의 매듭이 사르르 풀리면서 홀가분해지는 느낌을 받곤 했다. 혼자 하는 산행이 몰입과 명상에 가깝다면, 함께하는 산행은 관계의 충만함을 준다. 가파른 봉우리를 나란히 오르다 보면 어느새 동지애 비슷한 느낌이 생기면서 서로의 삶 속에 한 발 더 다가선 느낌이 든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모임이 봄가을 산에서 개최되는 것은 다 까닭이 있다. 한국인의 취미 1위로 꼽히는 등산은 이처럼 몰입과 관계성 모두를 충족시킨다. 몰입의 황홀함 교육학·심리학의 세계적인 권위자 칙센트미하이 박사는 그의 저서 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하는 순간 삶이 변화된다고 말했다. 어딘가에 빠져든다는 것, 몰입은 황홀한 경험이다. 몰입은 현재의 나와 단절이자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삶이 고단하고 그 무게로 인해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고통스런 현재와 잠시라도 단절할 수 있다면 고통은 견딜 만하다. 정신분석가이자 거리의 치유자로 불리는 정혜신 박사는 세월호로 자식을 잃은 유가족을 위해 치유공간 ‘이웃’을 마련했는데 세월호 유가족 엄마들의 그 고통스런 시간을 버티게 해준 것은 따뜻한 치유의 밥상과 뜨개질이라고 말했다. 뜨개질을 하는 동안만큼은 고통을 잊을 수 있어서 엄마들은 무서운 집중력과 속도로 뜨개질에 몰입했고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나는 요즘 달리기에 빠져 있다. 일주일에 평균 3회를 달린다. 퇴근 후 밤늦게 한 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어제 걸었던 길이 오늘은 다르게 느껴지는 등 매번 새롭다. 새로움은 신선한 자극이자 즐거움의 원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달리는 순간만큼은 내 몸의 변화에 몰입하게 되면서 어제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된다. 달리기 전엔 지쳐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다가도 막상 달리다 보면 몸이 살아남을 느낀다. 몰입이 주는 경이로움이다.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오십에 들어서는 나는 갱년기라는 인생의 피할 수 없는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오후만 되면 몸이 땅속으로 꺼질 듯한 피로감이 몰려오고 무력감으로 도통 의욕이 생기질 않는다. 3년 전 경기 북부 신도시로 이사해 출퇴근 시간이 길어진 탓에 집에 도착하면 떡실신이 되어 침대에 쓰러지기 일쑤다. 저녁이 있는 삶은 요원하고, 버티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었다. 우울감과 심리적인 변덕도 불쑥불쑥 찾아왔다. 이런 변화들을 보면서 스스로 갱년기라 진단내리고 시작한 것이 걷기와 달리기였다. 몰입과 명상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기, 현실의 얽힌 매듭을 내려놓음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는 데는 딱이었다. 달리다 보면 변하고 있는 나, 기존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기쁨도 찾아온다. 그래서일까. 출구가 아직은 한참 남았지만 갱년기, 더 나아가 노년기도 삶의 일부로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든다. 시니어에게 취미는 행복의 필수 조건 젊은 사람들에게 취미는 일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여가생활에 가깝다. 반면 생활전선에서 은퇴한 후 상대적으로 시간이 넉넉한 대다수 중장년층 또는 시니어들에게 취미는 생활을 활기 있게 구성하는 핵심 축이다. 젊은 사람들에게 취미가 일의 보완재라면 시니어들에게는 필수 항목에 가깝다. 취미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삶이 지루할 틈이 없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다양한 취미로 생활을 즐겁게 꾸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 시니어에게 넉넉한 시간은 견뎌야 하는 지루한 날들이 아니라 축복이다. 몇 달 전 일이다. 경의선 퇴근길에 라이딩 복장을 한 어르신 몇 분이 내 옆자리에 앉게 되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파주에 사는 자전거 동호회 회원인데, 지난봄 개통된 동해환상자전거길을 3박 4일 라이딩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함께 달리고, 먹방도 시도하는 즐거움 속에 삶이 매번 새로워진다며 즐거워했다. 실제로 행복한 시니어가 친구 관계를 즐긴다는 사실이 여러 지표에서 나타나고 있다. 돈이 있고 친구가 없는 것보다 돈이 없어도 친구가 많은 사람이 행복하다는 사실에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상식이다. 특히 여성일수록 취미, 교양, 스포츠, 친구가 많을수록 행복하다고 한다. 친구 또는 이웃과 함께할 때 더불어 행복의 기쁨을 알고 추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의 기쁨은 홀로 느끼는 행복감과는 비교할 수 없다. 사람은 늙어서 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놀지 못해서 늙는다는 말도 있다. 나이 듦을 핑계 삼아 삶을 무료하게 보내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고 잘 놀아야 멋지게 나이 들어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잘 노는 것은 취미생활을 잘 꾸린다는 것과 동의어다. 행복은 더불어 잘 놀 때 찾아오는 것 노년의 행복에 있어 소득과 건강의 역할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이 두 가지를 제쳐둔다면 행복한 노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 활용이라고 한다. 수많은 행복연구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바다. 특히 가족,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행복감은 고조된다고 한다. 한국 노인 사회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사회로부터의 고립’이다. 고립은 정서적 소외감으로 이어지면서 삶의 질, 행복을 저하시킨다. 고립되지 않도록 누군가와 연결되는 것, 즉 사회적 관계는 삶의 질 회복을 위한 버팀목이다. 물론 가족의 역할이 일차적으로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가족에만 의지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노년으로 갈수록 사회적 교류, 관계성 회복이 절실하다. 취미활동은 사회적 관계를 자연스럽게 활성화시키는 시간 활용 방법이다. 다양한 문화·레저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관계를 가질 때 행복감은 높아진다. 50플러스재단, 인생이모작센터 등을 중심으로 최근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노후 프로그램은 대체로 취미활동을 즐겁게, 이왕이면 경제적으로도 유익하게 꾸리도록 하는 데 있다. 많은 노인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TV 시청은 오히려 행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드라마에 푹 빠져 재미를 느끼는 것은 그 순간일 뿐 지속적인 즐거움이 없다. 무엇보다 함께 도모하고 나누는 ‘관계’에서 비롯된 기쁨이 없다. 행복은 더불어 함께할 때 온다. 가족이든, 친구이든, 이웃이든. 인생의 황혼이 깊어갈수록 절실하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 2017-11-1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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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를 더더욱 사랑하리라
- “여보, 이제부터라도 당신이 나에게 훨씬 더 잘해야겠어요.” “응?” “왜냐하면 내가 당신보다 다섯 살이 어리잖아요? 당신이 나보다 먼저 치매를 앓을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말이에요.” “내가 지금도 잘해주고 있지 않소!?” “그렇긴 하지만 당신이 내게 더 잘해주면 속 깊은 사랑과 추억이 켜켜이 쌓이게 되겠지요? 그러다가 만약 당신이 치매에 걸리면 내가 당신에 대한 사랑과 소중한 추억을 기억하면서 당신을 더 잘 돌볼 수 있지 않겠어요?” 아내가 어느 날 불쑥 건넨 말이다. 결혼 40주년이 다가오는 우리 부부에게 그동안 미운 정 고운 정이 그득할 터인데 아내는 고운 정은 잊어버리고 미운 정만 남아 있는 걸까? 아내의 마음속에 태산같이 버티고 있을 미운 정을 해소하고 고운 정만 쌓이도록 해줄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까? 치매 걸린 필자를 돌봐주는 데 필요한 질 좋은 추억들은 또 얼마나 되어야 하는 걸까? 아내의 말에 머릿속이 갑자기 복잡해졌다. 그동안 이 나이 되도록 치매는 남의 일로만 치부하고 살던 우리 부부 아닌가. 아내의 제안을 받은 순간 번쩍 정신이 들면서 ‘나도 예비 치매환자일 수 있다?’는 깨우침과 함께 마음이 아득해왔다. 우리 부부는 연애결혼을 해서 젊은 날은 제법 깊은 연정으로 살았다. 전쟁 치르듯 자식들을 키울 때는 여유 없이 살기도 했지만 거친 세월을 잘 이겨왔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새 노인이 되어 있다. 고교 시절 국어선생님은 “부부가 늙으면 습관과 연민으로 산다”고 하셨다. 오래 같이 산 부부는 습관이라는 관성으로 살면서 서로를 측은히 여기는 인간애, 자비심이 버팀목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습관과 연민의 무게만으로 치매 걸린 상대가 감당이 될까? 그보다 더 임팩트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내는 알고 있는 것이다. 언론보도 중 필자가 유난히 관심이 많은 분야는 ‘암’과 ‘치매’의 정복 소식이다. 암 정복 관련 기사가 열 개라면 치매 관련 기사는 한둘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미스터리한 질환인 것이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필자가 어느 날 치매에 덜컥 걸려 아내도 몰라보는 생소한 존재가 될지라도 그런 필자를 돌봐주겠다는 아내의 따스한 제안은 그 어떤 치매 정복 소식보다 반갑다. 치매의 40~50%는 유전과 상관이 있다는데 필자의 친가, 외가 모두 치매를 앓다 가신 분은 없다. 절반은 안심이지만 그렇다고 치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아내가 사랑과 좋은 추억들을 양분 삼아 필자를 돌볼 수 있도록 잘해주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아직 가늠이 되질 않는다. 하지만 정신이 온전할 때 이토록 착한 아내를 잘 대하고 나아가 더 잘 섬겨야겠다는 생각은 분명하다. 돌봄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치매 걸려도 돌봐주겠다는 착한 아내에게 감동을 주는 일상을 안겨주겠다는 것이다. 아내의 이런 마음을 알아차린 이상 필자도 아내가 치매에 걸린다면 잘 돌봐주리라. 무엇보다 어설픈 치매 예방을 하는 것보다 평소에 서로를 잘 섬겨, 일상에 감동을 심고 또 심는 착하고 건강한 아내와 남편이 되기만 한다면 일석이조, 황혼의 사랑도 깊어지고 치매도 극복하지 않겠는가!
- 2017-10-1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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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모르 파티(Amor Fati)
- 요즘 나이를 불문하고 유행하는 노래 중 하나이다. 중견가수 김연자가 부르는 폴카 풍의 노래로 신나는 곡이라 젊은 층이 주류를 이루는 클럽 등에서도 인기라는 것이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에서 '아모르(Amore)'는 '사랑'이라는 뜻이다. ‘파티’는 ‘파티(Party)'로 오해 할 수 있는데 파티는 ’Fate‘ 즉 운명을 말한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주장했다고 한다. 아모르 파티는 운명에 대한 사랑, 즉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즉, 운명이란 타고 난 것이므로 운명을 바꾸려고 애써 봐야 소용없으니 운명대로 살면서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건우, 신철이라는 사람이 작사했고 수많은 히트곡을 만든 윤일상씨 작곡으로 되어 있다. 가사를 보면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대중가요의 히트 요소를 고루 갖춘 노래인 것이다. 가사 중에 사람들이 좋아할 요소들을 살펴보면 ‘인생은 지금이야’, ‘가슴이 뛰는 대로 하면 돼’는 요즘 한창 화두인 ‘카르페 디엠’과도 맞닿는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에서 소개했듯이 ‘오늘을 즐겨라’는 뜻이다. ‘왔다 갈 한 번의 인생아’, ‘다가올 사랑은 두렵지 않아’ 가사는 요즘 역시 화두인 ‘YOLO(You Only Live Once)’ 즉, 한 번뿐인 인생이니 현재를 즐기며 살자는 의미가 있다. 카르페 디엠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 ‘자신에게 실망 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는 오늘의 청년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위로가 되는 말이다. ‘노오력’이 노력해봐야 안되더라는 자조적인 말로 쓰이는 것을 보면 운명에 대해 좌절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눈물은 이별의 거품일 뿐이야’, ‘다가올 사랑은 두렵지 않아‘는 요즘 젊은이들의 풍조를 그대로 나타낸 가사이다. 이러니 결혼 안하는 사람이 많고 저 출산으로 이어진다.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사는 시니어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요즘 취업은 안 되고 따라서 결혼도 못하고 있는데 나이만 먹어간다고 푸념하는 젊은이들도 공감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다 보니 몸은 늙었으나 마음만은 아직 청춘이라는 시니어들이 많다. 오승근 노래 ‘내 나이가 어때서’가 히트한 것도 같은 배경일 것이다.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라며 거울에 비친 늙은 모습에 눈물이 난다는 것이다. ‘인생’은 사랑, 이별과 함께 대중가요 3대 단골 주제이다. ‘인생’이라는 같은 제목만으로도 여러 가수가 부른 서로 다른 노래가 많다. 안치환의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 주지 않았다’처럼 ‘인생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노래 제목까지 확대해보면 인생 주제의 노래가 정말 많다. 인순이의 ‘인생’이라는 노래에서는 ‘인생이란 잠시 쉬어 가는 우리 여행 길’이라고 했다. 우리가 태어나서 한번뿐인 인생이라며 열심히 살았다. 이제 인순이의 ‘인생’ 가사에서 ‘황혼 빛에 물드는 노을처럼만 아름답게 살 수 있다면, 우리는 알 수 있는 거죠. 그게 바로 인생이란 걸’에서 이제 조용히 운명을 받아들이는 시기가 온 것 같다. 다시 아모르 파티 가사에서 ‘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소설 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에 지나간 추억을 아름답게 추억하며 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 2017-09-2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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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식 하루 전날 바꿔야 했던 주례
- 자녀 결혼식에 신경을 써야 할 일 중 하나가 주례이지 싶다. 주례를 모시기가 녹록지 않아서다. 그래서 필자는 결혼 주례 부탁을 받으면 특별한 일이 겹치지 않으면 들어주는 편이다. 40대 중반부터 주례를 해왔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점도 한몫을 한다. 보람 있는 일이고 베푸는 일이라 여긴다. 주례는 대체로 신랑의 은사나 혼주의 지인 중에서 덕망이 있는 분을 모시게 된다. 그런데 큰아들이 결혼할 때 은퇴 후 일거리로 주례하는 직업 주례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주례를 맡아주기로 했던 지인이 결혼식 전날 갑작스럽게 해외 출장을 가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져 본인의 의사와 달리 주례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당사자의 연락을 받고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난감했다. 다른 주례를 찾았으나 날짜가 촉박해 쉽지 않았다. 주례가 식장으로 오는 도중 변고가 생겨 하객이 대타로 나서는 경우를 보기도 했다. 주례 경험이 있는 필자가 직접 하라는 의견도 있었고 주례 없는 결혼식을 진행할 생각도 해보았으나 갑작스러운 일이어서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과 상의 끝에 직업 결혼 주례를 세우기로 했다. 당시 은퇴 후 용돈벌이를 겸해 소일거리로 주례로 나서는 분들이 결혼식장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필자도 주례를 구하기 힘든 젊은이를 위해 은퇴 후 봉사 차원으로 한 예식장에서 주례를 여러 번 선 경험이 있다. 예식장 담당자와 상담해 직업 주례를 선택해 진행했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주례의 필요성에 의문점을 많이 갖기도 하던 시대였고 주례가 없는 결혼식에 젊은이들이 관심을 두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마냥 늘어지는 주례사로 축하 분위기를 다소 감소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다. 그뿐만 아니라 귀한 주례 선생을 모셨을 경우 이에 따른 인사치레 등 번거로움이 있기도 했다. 필자는 1996년 부산광역시에서 손해보험사 본부장으로 근무할 때 직원 결혼 주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꽤 많이 했다. 모두 잘 살고 있어 보람도 느낀다. 신입사원 시절엔 직장 동료의 결혼식 사회를 도맡다시피 했고 주례를 처음으로 하는 분의 주례사를 대필하기도 했다. 뛰어난 재능은 갖지 못했으나 초등학교 때부터 해왔던 웅변이 뒷받침을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결혼 주례 부탁을 받아들이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새로운 부부 인연을 맺고 한 가정을 시작하는 신랑 신부에게 귀감이 되어야 하기에 자신의 결혼생활이 문제가 없어야 하고 결혼식 분위기를 잘 이끌어가는 말솜씨도 필요해서다. 필자 부부는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살기에 주례를 해도 부끄럽지 않은 마음이다. 애초에 주례를 맡기로 했던 그분은 출장 간 일이 잘되어 더 좋은 일을 맡게 되었다. 대타로 모신 직업 주례의 집전으로 결혼식을 치른 아들 내외도 큰 탈 없이 잘 살고 있다. 세월이 흘러 손자가 둘이나 태어났고 큰손자가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을 한다. 존경하고 덕망이 있는 그분을 아들 결혼 주례로 모시지 못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삶에는 나름으로 정해진 인연이 있듯 아들 녀석의 결혼 주례 인연은 아니었음을 세월 속에서 깨닫기도 했다. 황혼을 바라보는 그분과의 인연은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그때 주례를 하지 못한 일이 더 가까운 인연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세상일은 인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있음을 실감했다. 그동안 밝히지 않았던 아들 결혼에 얽힌 뒷이야기를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나이를 산다.
- 2017-09-2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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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화된 남녀 짝짓기 프로그램
- ‘삼포세대’, ‘비혼’, ‘1인 가구’ 등의 유행어는 전통적 가족 형태의 붕괴가 급속하게 진행됨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는 말조차 시대와 트렌드에 뒤처진 박제된 구호로 전락한 지 오래다. 취업난과 치솟는 집값 등으로 초래된 경제적 어려움이 고조되고 사람과의 관계 맺기를 꺼리는 ‘관태기(인간관계와 권태기의 합성어)’의 사람들이 늘면서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조차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요즘 TV 화면은 이 같은 현실과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남녀 만남을 전면에 내세운 다양한 포맷의 짝짓기 프로그램들이 쏟아지고 있다. 젊은 남녀의 만남을 내세운 채널A의 , Mnet의 , E채널의 부터 이혼이나 사별로 혼자된 중년의 짝 찾기를 다루는 KBS Drama의 까지 남녀 만남 프로그램이 시청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이전의 남녀 만남 프로그램보다 진화된 채널A의 은 폭넓은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9월 1일 막을 내린 . 남녀 각각 4명의 출연자가 한 달 동안 정해진 숙소에서 동거하며 자신에게 맞는 상대를 선택한다. 각자 자기 일을 하면서 퇴근 후나 휴일에 숙소에 머물며 관심이 가거나 호감을 느끼는 상대를 찾는다. 매일 상황과 감정 변화에 따라 전개되는 밀당과 탐색전으로 달라지는 남녀 만남의 판도가 매우 흥미롭다. 여기에 윤종신, 이상민 등 판정단은 연애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출연자의 감정 변화의 원인을 분석하며 성격, 취향, 심리, 직업, 외모 등 출연자의 상황에 따른 만남을 전망한다. Mnet의 역시 과 기본 포맷이 비슷하다. 서로 ‘남사친(남자사람 친구)’, ‘여사친(여자사람 친구)’이라고 생각하는 네 쌍의 남녀들이 일상을 공유하며 만남에 이르는 과정을 관찰 카메라로 보여준다. 또한 은 최양락, 김태원 등 4명의 연예인 딸들이 남자 친구를 소개받고 만나는 과정을 보며 아버지의 입장에서 코멘트하는 포맷의 남녀 만남 프로그램이다. 은 황혼 로맨스 심폐소생 프로젝트를 표방한 프로그램으로 사별, 이혼 등으로 혼자된 연예인 어머니에게 데이트 상대를 찾아주는 과정을 담았다. , 를 비롯한 요즘 남녀 짝짓기 프로그램은 취업난과 경제적 고통, 인간관계 맺기의 어려움, 가족 해체 등 사회경제적인 상황에 따른 남녀 만남 풍속도의 변화를 반영해 눈길을 끌고 있다. 결혼은 아득하고 연애조차도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서로 좋아하고 자주 연락하며 데이트는 하지만 정식으로 교제하지 않는 ‘썸’과 사랑이 아닌 우정 관계인 이성 친구를 의미하는 ‘남사친’, ‘여사친’처럼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남녀관계를 흥미롭게 드러내 인기가 높다. 같은 남녀 짝짓기 프로그램의 역사는 오래됐다. 남녀의 만남만큼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없기에 방송사들은 오래전부터 남녀 만남 프로그램을 제작해왔다. 이들 프로그램에서는 남녀 만남의 트렌드와 문화를 엿볼 수 있고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관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연애와 결혼에서 사랑, 외모, 성격, 성적 매력, 직업, 재산, 학력, 지위 등의 영향과 비중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무엇보다 사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남녀의 만남 과정과 행태를 공적 공간인 방송으로 드러내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주고 엿보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남녀 짝짓기 프로그램은 그 시대의 남녀 만남 풍속도나 트렌드를 반영하거나 선도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남녀 만남 프로그램을 방송하기 시작했을까. 남녀 만남 프로그램은 크게 일회성 이벤트로 보여주는 연예인 만남 프로그램과 일반인 남녀가 출연하는 일반인 만남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시청자와 대중의 관심을 이끈 것은 일반인 남녀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이다. 산업 성장기 초입에 돌입했지만, 여전히 가난한 서민이 많았고 가부장적 분위기가 엄존했고, 남녀의 공개적인 만남이 자유스럽지 않았던 1970년대에 남녀 만남 프로그램이 등장해 신선한 충격을 줬다. 바로 1977년에 방송된 MBC의 다. 코미디언 구봉서와 곽규석이 진행한 는 각각 3명의 남녀가 나와 대화를 나누며 데이트 상대를 찾는 TV 맞선 프로그램이었다. 공개적인 만남이 많지 않았던 시절의 는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며 큰 인기를 누렸다. 그 관심은 22 대 1이라는 출연자 경쟁률에서도 잘 드러났다. 고도성장과 가부장적 분위기가 감소하면서 남녀의 만남이 자유롭게 이뤄졌던 1980년대의 대표적인 남녀 짝짓기 프로그램은 1989년 MBC의 다. 1명의 여성과 4명의 남성이 출연해 만남 상대를 찾는 포맷이었다. 는 당시 사회문제로까지 떠오른 농촌 총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촌 총각과 도시 처녀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경제가 발전하고 가족 해체가 본격화하며 남녀의 만남이 매우 자유스러웠던 1990년대에는 남녀 만남을 주선하는 프로그램들이 쏟아졌다. KBS, MBC, SBS 등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사들은 한두 개의 남녀 만남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금까지 남녀 만남 프로그램의 대명사로 인식되는 MBC의 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방송되며 높은 인기를 얻은 는 남녀가 각각 4명씩 출연해 게임과 대화를 하며 마음에 드는 상대를 선택하는 일명 ‘사랑의 작대기’가 일치하는 남녀 커플이 데이트를 하는 포맷의 프로그램이었다. 1990년대 대학생들의 미팅 문화를 보여준 는 7년 동안 1432쌍이 출연했고 이 중 47쌍의 커플이 탄생해 화제가 됐다. 학벌, 재산, 직업, 외모에 의한 서열화가 본격화하면서 결혼이 재산, 외모, 학벌 등 외형적 조건의 교환시장 성격을 띠기 시작한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남녀 만남 프로그램도 물화된 조건이 중시되는 풍속도를 보여줬다. KBS2의 , Mnet의 , JTBC의 등 진화된 형태의 다양한 남녀 짝짓기 프로그램들이 시청자와 만났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방송된 SBS의 은 이전과 전혀 다른 포맷의 남녀 만남 프로그램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논란도 컸다. 남녀 9~16명이 ‘애정촌’이라는 공간에서 합숙 생활을 하며 짝을 찾는 과정을 리얼리티 쇼 방식으로 보여준 은 연애와 섹스에 대한 개방적 자세, 외모, 재산, 직업 등 외형적 조건 중시 등 2000년대 남녀 만남의 현실을 반영했다. 여기에 관찰 기법, 사회자의 이야기 등 사실성과 일상성을 높이는 다양한 장치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남녀 만남의 극단적 상품화라는 논란 속에서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은 한 여성 출연자가 촬영 도중 자살하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해 막을 내렸다. 이처럼 남녀 만남 프로그램은 시대와 현실, 그리고 남녀 만남의 풍속도를 반영하고 선도하며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남녀 짝짓기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에게 남녀 만남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트렌드를 제공하는 등 긍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들 프로그램은 남녀 만남을 외형적 조건의 교환시장으로 전락시키거나 극단적으로 상품화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 2017-09-2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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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밭길에서, 다시 꽃길에 서다
- 여기에 잘 웃는 부부가 있다. 남편의 인상은 얼핏 과묵해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빙그레 슬며시 웃는 얼굴이다. 아내의 얼굴은 통째로 웃음 그릇이다. 웃음도 보시(布施)라지? 부부가 앉는 자리마다 환하다. 원래 그랬던 건 아니다. 귀농을 통해 얼굴에 정착한 경관이라는 게 아닌가. 엎치락뒤치락, 파란과 요행이 교차하는 게 인생이라는 미스터리 극이다. 조물주는 낮잠을 주무시다 깨어 심심하면 인간을 공깃돌처럼 가지고 논다. 이랬다저랬다, 줬다 뺐었다, 횡포가 심하다. 그러나 인간은 뜻밖에도 견고한 작품이다. 벼락을 일곱 번이나 맞고도 멀쩡한 사람이 있다지 않은가. 지금 내 앞에 미소를 짓고 앉아 있는 곽성진(75)·이옥희(71)씨 부부 역시 일종의 날벼락을 맞은 바 있다. 그러나 끄떡없다. 쌩쌩하다. 도시라는 정글을 벗어나 참신한 시골생활을 누리고 있다. 산봉우리들이 덩실덩실 강강술래를 하는 소백산 자락, 옴팡진 산촌에 산다. 전남 여수에서 태어난 곽씨는 부산에서 대학을 나왔으며, 결혼을 했으며, 사업으로 오랫동안 승승장구했다. 선박부품업체를 경영했었다. 알아주는 눈들이 많은 사장이었다. 그러나 인간사가 흔히 그렇듯, 그가 구가했던 꽃길은 어느 사이 가시밭길로 바뀌었다. 졸지에 파산하면서 벼랑 끝으로 밀려났다. 길바닥에 나앉아야 할 지경이었다지. 곽씨의 얘기를 들어볼까. “완전한 추락이었어요. 그렇다고 주저앉아 굶을 수는 없는 일이라서 리어카를 장만해 포장마차를 차렸어요. 부끄럽습디다. 아내가 용기를 주더군요.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기꺼이 해야 한다고…. 아내는 안주를 만들고 저는 손님들 시중을 들었어요. 다행히 장사가 잘됐어요. 잘나가던 시절에 일식집을 수시로 드나들던 가락을 살려 일식집 스타일의 안주와 술을 내놓았는데, 그게 적중했어요. 단기간 내에 소문이 좋게 났죠. 제법 돈을 모을 수 있었어요. 그 자금으로 통닭가게를 인수해 운영했고, 그 역시 매우 번창했어요. 이후 아내는 일식집을 개업했고, 저는 건축업에 나섰어요. 그런데 이 건축업에서 다시 철저하게 무너졌어요. 두 번째 도산을 경험했던 겁니다.” 온탕과 냉탕을 거듭 넘나들었구나. 그 와중에 세월이라는 도적은 곽씨에게서 젊음을 앗아갔다. 쓸쓸하고 스산한 황혼의 동구에서, 그는 황급히 다시 살길을 찾아야만 했다. 초원을 뒤덮은 풀처럼 수북한 걱정과 불안이 주야간에 어깨를 짓눌렀을 것이다. 이때 그의 등을 툭툭 치며, 임이시여, 걱정 마소서, 까짓것 다시 시작하면 그만 아니겠소, 라는 투로 당차게 재기를 독려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아내 이옥희씨였다. 시골로 가자고, 농사를 짓자고, 소박한 낙원을 일구자고, 아내는 그리 주동했다. 곽씨는 선선히 응했다. 강인한 기질과 낙천적 근성을 겸비한 아내의 민첩한 상황 판단력을 믿어서였다. 부부는 즉시 귀농을 결행했다. 그게 10여 년 전의 일. 결과는 성공적. 비결은 근면 혹은 부부애. 옛일을 회고하는 곽씨의 언사는 수굿해 온순한 성정이 묻어난다. 군내에서 손꼽히는 강소농(强小農) “여기 예천군 은풍면 산촌은 원래 아내의 고향입니다. 아내에겐 유난한 향수가 있었어요. 늘그막엔 고향에 돌아가 살자는 얘기를 자주 했어요. 사업 파산이 결국 아내의 숙원을 이루게 한 셈이니 사람의 일이라는 게 참 묘하죠. 물론 부담이 없지는 않았어요.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가, 게다가 모든 걸 잃은 빈손으로, 과연 시골 정착이 가능할지 불안했어요. 하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거처를 마련하는 일, 농지를 구하는 일, 뭐 하나 만만한 게 없었겠죠?” “아내의 친지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은 덕분에 자립이 가능했어요. 특히 처남이 집과 배 과수원을 빌려주고 농사를 도와줘 비교적 순탄하게 자리를 잡아나갈 수 있었죠.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사기술을 부지런히 배우기도 했고. 주 작목은 배였어요. 생과 상태로 출하하기도 했지만, 배즙 가공이 그보다 세 배쯤 소득이 높다는 걸 알고 배즙 생산에 집중했죠. 요즘은 칡즙, 양파즙, 가시오가피즙, 헛개나무즙도 생산합니다.” “판로 확보는 어떤 방식으로 했죠?” “미국의 자동차 판매왕 조 지라드의 책에서 힌트를 얻은 게 주효했습니다. 그는 한 개인이 평균 250명 정도와 인맥을 형성한다고 봤습디다. 여기서 그의 성공철학인 1대 250 법칙이 만들어집니다. 한 사람에게 호감을 얻는 것은 그와 연결된 250명에게 호감을 사는 것과 같다는 논리죠. 공감이 됐어요. 그래서 제 주변의 친척, 친지, 친구 등 지인들과의 유대 형성에 공을 들였어요. 그게 판매망이 되었어요. 현재 제 핸드폰엔 2300명쯤의 고객명단이 입력돼 있습니다.” 곽씨는 이른바 6차 농업을 구현하고 있다. 1차 농업은 생산을, 2차는 가공을, 3차는 체험이나 관광 농업을 말한다. 이 셋을 통합한 게 6차 농업이다. 그의 농장 ‘소백산 웰빙농원’은 예천 군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소농이다. 두말하면 잔소리이지만, 이는 거저 얻어진 성취가 아니다. 지진을 겪은 사람은 지진이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지진이 우리의 발밑을 서성거리는 걸 안다. 심혈을 기울이고서야 재앙을 면제받을 수 있다는 걸 안다. 곽씨 내외는 온몸을 써 농사에 매달렸다. 내외가 농장에 쏟은 비지땀이 몇 드럼에 달할지는 뒷산 신령에게 물어보면 알 일이다. 땀뿐이랴. 부단한 열정, 상황을 물고 늘어지는 집요한 정신, 패잔병처럼 여기는 눈총을 감수하는 뱃심까지 가세했을 테지. 예순이 넘은 빈털터리 늦깎이로 농사에 입문, 마침내 기세를 돋운다는 건 아마도 거의 이변이다. 곽씨는 은연중에, 노년의 귀농도 매력적일 수 있다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대단한 소득을 올리는 건 아니지만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농장이 돌아가는 상황을 비유하자면, 작은 옹달샘 하나를 팠는데 거기에서 사시사철 샘물이 찰랑거린다 할까? 이 옹달샘은 계속 퍼 써도 마르질 않아요. 계속 샘물이 솟구치니까. 덕분에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어요. 큰 분의 뜻이리라. 제가 천주교인입니다.” “머리 좋고, 의식 있고, 신념 강한 젊은 사람들조차 고전하는 게 귀농생활이라고들 해요. 정착 과정에서 가장 힘든 건 어떤 점이었나요?” “초기엔 괜히 왔다는 생각도 잠시 했었어요. 농사에 문외한이었다는 것, 그게 가장 난처했어요. 눈앞이 캄캄하더라고. 그러나 일단은 생계 문제가 워낙 다급해서 잡념을 거두고 일에만 몰두했죠. 실로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만만한 게 하나 없었지만 다 헤쳐 나왔어요. 사실, 맨손으로 시작했지만 겁날 건 없었어요. 왜냐면, 형편이 더 나빠질 수는 없었으니까(웃음).” 자연과 교제하며 산촌을 노니는 부부 사람의 난제는 대체로 시간이 해결해준다. 슬픔도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 적응된다. 그러나 생계의 문제는 질이 다르다. 굴러떨어진 밑바닥 자체를 디딤돌로 삼아 기어이 뛰어올라야만 한다. 귀농은 그에게 비상 발령이었으며, 결과는 승전이었다. 도시에 버텨 재기를 꾀하기란 어려웠을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런 그에게 도시와 시골의 장단점을 묻자 돌아오는 답이 이렇다. “온갖 상품 시장과 문화가 구비된 도시의 편리성에 비하자면 시골은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은 게 사실이죠. 가령,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선 수십 리 먼 길을 달려 나가야만 하니까. 그러나 시골에선 자연과 동화하는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명백한 장점이 있죠. 반면에 도시는 주로 인간끼리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고 말이죠. 경쟁과 소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골에 비해, 물적 조건이 중시되는 도시에선 정서적 안정을 취하기 어렵다는 점이 중대한 단점이라 봐요. 경제상의 기회가 많다는 건 도시의 최대 장점이겠고.” “시골의 자연이 좋다지만, 날이면 날마다 이어지는 적막 속에 사는 일은 때로 고역이지 않을까요?” “단골 고객이라든가 도시의 지인들이 스스로 찾아와 식사와 대화를 즐기고 돌아갑니다. 그리운 벗들을 불러들여 회포를 푸는 일도 낙이에요. 고즈넉한 산촌에 살지만, 나름의 사교가 적절히 이뤄지는 것이죠. 갑갑증을 느끼진 못하고 살아요.” “마을 주민들과의 소통에 잡음은 없었나요?” “이곳이 아내의 고향이라서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에 용이했어요. 아내가 마을 부녀회장을 맡아 맹활약을 하기도 했죠. 농토에 질긴 애착을 갖고 평생을 살아온 원주민들에겐 특유의 자기 기준이라는 게 있습니다. 존중해야 할 대목이라 봐요. 과거의 시골 정서라는 게 붕괴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죠. 그러나 음식을 이웃과 나누길 즐기는 풍습은 여전합니다. 몸에 밴 나눔의 문화랄까. 이런 면은 꾸준히 지속되고 전승되면 좋겠어요. 그런데 남모를 고독을 느끼는 게 한 가지 있습니다. 호남 태생인 제가 영남에서 산 세월이 55년인데 아직도 호남사람이라며 은근히 무시한다는 거! 선거철엔 아예 입을 봉하고 살아요. 무시무시한 분위기라서(웃음).” 산등성이를 올라 사과 농장으로 들어선다. 사나운 8월의 폭염이 사과나무 잎사귀에 쏟아진다. 나무 아래론 푸른 그늘이 짙어 땀을 씻을 만하다. 재기를 목표로 삼아 귀농, 어언 70대 복판에 접어든 부부는 여전히 일벌레다. 그러나 사람이 일만 하면 무슨 재미? 여흥과 일락(逸樂)이 없다면 반쯤은 허사다. 부부는 자연과 교제하는 일로 산촌을 노닌다. 아침 햇살에 새벽안개가 어떻게 해산하는지를, 밤이면 별들이 모여 무슨 잔치를 벌이는지를 유심히 관람하겠지. 감관이 열리고, 촉수가 파랗게 서겠지. 그것으로 어쩌면 범람처럼 덮쳐오는 노년기의 우수를 능히 해치울 수도 있으렷다. “늘 그 자리에 있는 너럭바위, 사계 내내 짙푸른 솔숲에 번번이 눈이 가고 마음이 움직여요. 나 같은 노년에도 할 일이 있다는 것. 자연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것, 그게 귀농으로 얻은 가장 큰 기쁨의 원천이에요. 그럼에도 이즈음엔 다 부질없다는 허무감이 듭니다. 애초의 목표를 거의 달성했다는 만족감 뒤에 찾아오는 허탈과 허무. 무엇으로 그걸 극복할지, 요즘 자주 생각에 사로잡혀요. 제가 말이죠, 사후 묘비명을 정해두기도 했어요. ‘여기 아내를 몹시 사랑하다가 떠난 사람이 묻혀 있다.’ 이게 제법 근사해 보였어요. 그러나 그마저 부질없다 느껴지는, 이 허무감의 정체는 무엇일꼬.” 인생의 황혼에 귀농이라는 새벽길을 훤하게 열어젖힌 사람의 눈가에 그늘이 서린다. 허무의 심연을 무슨 수로 건너나. 그는 화두 하나를 집어든 셈이다. 파란하늘에 뜬 흰구름 몇 조각, 당싯당싯 산을 넘는다. 박원식 소설가 -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 , 등의 저서가 있다.
- 2017-08-30 1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