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갈매기 울음소리에 눈이 떠진다. 찬거리가 부족하다 싶으면 낚싯대를 들고 방파제로 나서면 그만이고, 수평선을 장식하는 저녁놀은 훌륭한 안줏거리가 된다.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만큼이나 누구나 꿈꾸는 노후생활 중 하나는 어촌에서의 삶이다. TV 속 예능 프로그램이 간간이 보여주는 바닷가 마을에서의 유유자적한 생활은 어촌생활에 대한 동경을 더욱 증폭시킨다. 현실에서도 그럴까? 전문가들은 무작정 어촌으로 떠난다고 해서 즐거운 인생이 보장되지는 않는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잘만 준비하면 평범한 귀농보다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는 귀어·귀촌이다.
우리가 귀어·귀촌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귀어·귀촌에 대한 명확한 정의다. 귀어 혹은 귀어업은 어업활동을 하기 위해 타지에서 어촌에 거주하는 것을 의미하고, 귀촌 혹은 귀어촌은 어업활동 여부와 관계없이 타지에서 이주하는 것을 말한다. 즉 어촌에서 ‘어업활동’을 하는가가 핵심이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은 관계부처에서 수산업·어촌 발전 기본법 등을 근거로 이주자들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다.
귀어·귀촌이 뜨는 이유
최근 사회적으로 귀어·귀촌이 관심을 받는 이유는 대략 3가지 정도다. 먼저 활발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다. 고령화로 몸살을 앓는 어촌 지역에 젊은 도시민을 유치해 활력을 불어넣고, 이를 통해 채집이나 양식 중심의 어업에서 가공이나 관광 등 2·3차 산업과의 접목을 꾀한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이를 위해 정부에서는 창업자금을 1인당 최대 3억원, 주택마련 지원자금을 최대 5000만원까지 연리 2%, 5년 거치 10년 분활상환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도 수산업 경영인 육성사업 등을 통해 별도의 사업자금 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으로 취업시장으로 몰려나오고 있는 조선업 퇴직자의 구제 방안 중 하나로 귀어·귀촌제도가 활용되고 있다.
증가하고 있는 어가 소득도 귀어·귀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 5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어가경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어가 평균소득은 가구당 4708만원으로 2015년(4389만원)에 비해 7% 증가했다. 이는 2013년 이후 4년 연속 증가한 수치다. 해양수산부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40대 이하 경영주 어가의 선전과 정부의 지속적 지원이 효과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수산물 소비도 늘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소비된 수산물 식자재는 1인당 58kg 정도로 일본(45kg)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공급에 비해 소비가 늘면서 단가와 수익도 자연스레 오르고 있는 모양새다.
무작정 바닷가 마을로 떠나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귀어·귀촌은 정서나 생활방식, 소득 마련 등 모든 면에서 도시에서의 삶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연고가 없는 사람이라면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해야 할지 더욱 막막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귀어·귀촌을 희망하지만 배경 지식이 없어 도움이 절실한 희망자들을 위해 운영되는 곳이 있다. 귀어귀촌종합센터다.
바다에서 무엇으로 먹고살까
귀어귀촌종합센터는 한국어촌어항협회가 설립하고 해양수산부가 지원하고 있는 기관으로, 귀어·귀촌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각종 지원제도 안내에서부터 업종 및 품목별 전문적인 기술상담, 창업계획서 작성 자문까지 돕는다.
귀어귀촌종합센터에서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담당하는 홍순택 전문위원은 다양한 지원책이 마련되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와 노력을 통한 사전준비라고 조언한다.
“보통 특정 지역에 연고가 있고, 집안에서 하던 어업 업종이 있으면 비교적 귀어·귀촌이 쉽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본인에게 맞는 정착 지역과 먹고살 업종부터 찾아야 합니다. 누군가가 대신 결정해주지는 않아요. 또 지원제도가 잘되어 있어서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현지인들 사이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어야 정착에 성공합니다.”
일반적으로 귀어·귀촌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경쟁력 차이가 크다고 전문위원은 설명했다.
“새 아이템으로 창업을 해보려는 20~30대와 은퇴 후 제2인생을 준비하려는 50~60대, 그리고 도시생활에서 도태돼 갈 곳을 찾는 40대로 나눌 수 있어요. 물론 정착을 가장 잘하는 부류는 자신만의 아이템으로 준비가 잘된 20~30대예요. 반면에 도피처를 찾는 40대들은 쉽게 정착하기 어렵습니다. 당장 뭘 해야 할지 구체적인 아이디어도 없는 상태이니까요.”
귀어·귀촌을 통해 할 수 있는 업종은 다양하다. 가장 많이 선택하는 것은 배를 사서 고기를 잡는 어선어업이다. 귀어업의 약 65% 정도가 배를 탄다. 이 중 3톤 미만의 작은 배를 사서 연안에서 조업하는 형태가 70%가 넘는다. 정부지원자금만으로도 창업이 가능하고 일을 배우기도 쉽다. 실패했을 때도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데다, 평균 노동시간은 하루 3~5시간, 조업 일수도 연간 동해안은 150일, 남·서해안은 200~250일 정도로 다른 직종에 비해 짧다. 금어기가 존재하고 기상에 따라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최근 각광받는 업종 중 하나는 양식어업이다. 사전 지식과 자금 확보가 필수이지만 부가가치가 높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 또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김, 굴, 전복 등의 해수면 양식 외에 육지에서 할 수 있는 내수면 양식도 있다. 뱀장어나 미꾸라지, 아열대성 민물새우인 큰징거미새우가 대표적이다.
이밖에 수산물 유통업, 가공업이나 소금산업 등도 선택되고, 최근에는 어촌관광이나 해양수산레저 사업을 포함한 어촌 비즈니스 사업에 대한 관심도 높다.
고령 은퇴자의 경우 해안가에서 조개나 낙지 등의 수산물을 채취하는 ‘맨손 어업’을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촌에 정착만 잘 하면 맨손 어업만으로도 기본적인 생활 유지는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성공적인 정착을 위한 필수 요소
전문가들은 귀어·귀촌을 위한 정보와 기초준비 단계로 귀어귀촌종합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후, 각 기관에서 마련하고 있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해볼 것을 권한다. 교육 프로그램은 해양수산인재개발원에서 진행하는 귀어가, 귀어촌 정착교육 과정과 귀어귀촌종합센터에서 개최하는 귀어귀촌아카데미와 코칭클래스가 대표적이다. 또 어선어업, 양식업, 해양레저 등 업종에 따른 전문 교육기관도 있다.
귀어·귀촌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귀어촌 홈스테이 지원사업도 있다. 귀어·귀촌 희망자가 어촌에서 미리 살아보고 정착 여부나 업종 선택 등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정부와 지자체 예산으로 숙박비와 컨설팅 비용의 80%까지 지원한다.
귀어·귀촌 지역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각 지자체의 도시민유치희망 정보를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다. 도시민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지자체의 경우 어촌계 가입비 면제, 어업권 매입 안내, 주거용 사택 실비 제공, 일자리 알선 등 여러 가지 지원을 하고 있다. 다만 지자체 여건상 이런 지원책들은 지속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귀어귀촌종합센터의 SNS를 팔로우해두면 편하다.
또 귀어·귀촌 경험자들은 원하는 지역에서 미리 살아보고 마을 주민들과 사전에 의사소통을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귀띔한다. 지역에 따라 어촌계 가입이 까다롭거나 불가능한 경우도 있고 배타적, 폐쇄적 성향을 띠는 마을도 있기 때문이다. 연안어업이 가능한 어장이나 양식을 위한 해수면, 해산물 채취가 가능한 해안 등 대부분의 지역 해양자원은 어촌계의 공동소유로 관리된다. 이는 어업권이자 자산의 개념이므로 어촌계의 일원이 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고 경우에 따라 큰 비용이 들기도 한다. 한 지역 어촌계장은 “도시민들은 어촌을 생활공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실제로는 생활공간이자 생업의 현장입니다. 따라서 마을의 예법이나 상호간의 약속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라고 조언했다.
지난해에는 나라가 온통 뒤숭숭하고 시끄럽더니 급기야 ‘장미대선’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나라를 발전시키고 국민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해달라는 온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국민이 정치권을 걱정하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로 인해 국민의 삶마저도 피폐해져버렸다.
그리고 장미대선에서 한 번의 패배를 경험했던 진보 성향의 후보가 오뚝이처럼 일어나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당선된 후에는 인천국제공항을 깜짝 방문해 후보 시절에 약속했던 비정규직 철폐 공약의 일환으로 공기업의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바꾸라는 서슬 퍼런 지시를 내렸다. 그동안 소 닭 보듯 무관심했던 기관장들은 허리를 깍듯이 굽혀 읍소하며 전원 정규직화하겠다는 답변까지 내놓았다. ‘비정규직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멋지다. 그동안 노골적으로 차별받아온 비정규직 직원들의 가슴을 뻥 뚫어준 그 약속은 가뭄 속 단비 같은 희망으로 다가왔다.
필자도 비정규직으로 근무한다. 정규 직원으로 40여 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을 한 후, 반백이 성성한 나이에 대기업 협력회사에 우연히 취직을 하게 되었다. 인천공항 물류단지 내에 있는 회사다. 사실 60대 초반의 나이에 정년퇴직을 쉰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보나 개인적으로 보나 아까운 일이다. 뚝배기 장맛처럼 깊은 맛을 낼 수 있는 질 좋은 노동력을 사장시켜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백세시대에 말이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가 그런 걸 어찌하랴. 최저임금에 주말은 물론 공휴일조차 보장되지 않는 협력회사의 사정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마저도 하기 싫으면 말라는 식의 분위기가 시니어들을 더 주눅 들게 만든다. 그렇다. 싫으면 사직서를 던지면 될 일이다.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기 빠듯했던 젊은 시절, 자녀들의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도록 고생만 해왔던 시니어들은 은퇴 준비도 제대로 못한 채 이렇듯 비정규직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이렇듯 차별받는 세상에서 신세가 처량하기만 하다.
지난겨울 출퇴근길에서 만난 건설 현장의 잡부들은 모두 머리가 희끗희끗한 비정규직 시니어들이었다. 그들은 이른 새벽부터 작업 현장에 도착해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떨어가며 작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폐드럼통에 폐목재로 장작불을 피워놓은 것이 이들이 몸을 녹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렇게 부지런을 떨고 성실하게 일해도 작업 현장에서 무시당하기 일쑤다. 급여는 최저임금. 휴일도 제대로 없는 열악한 환경이 이들의 살아가는 현실이며 현주소다.
진보 대통령의 등장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가 얼마나 개선될지는 아직 두고 볼 일이지만 노동자들은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붙잡고 있다. 인천공항공사에 직속해 있는 비정규직 직원들이야 기관장이 대통령과 약속을 했으니 정규직 전환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수많은 협력회사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아직 암담하기만 하다. 그러한 약속들이 아직 피부로 와 닿지 않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최저임금의 적정한 상승이다. 그것만이라도 해결되어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하루빨리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는 간절한 생각은 필자도 비정규직 노동자이기 때문일까?
무관심 속에 성장하는 퇴직연금
사회보장제도의 마지막 퍼즐이었던 퇴직연금이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다. 1988년에 국민연금이 도입되었고, 연금저축으로 일컬어지는 세제적격 개인연금이 도입된 것은 1994년이다. 퇴직연금은 이보다 11년이나 늦은 2005년 12월에야 도입되었다. 퇴직연금 도입까지 걸린 시간이 길어진 것은 퇴직연금 관련 이해관계자들의 이해 조정에 많은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이 각자의 이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여겼고, 그만큼 법안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였다.
제도 도입 초기의 치열한 관심과 달리 퇴직연금이라는 열차가 괘도를 달리기 시작하자 열의는 식기 시작했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전면 개정안이 통과되는 데 3년이나 걸렸고, 2차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된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통과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이해관계자들의 관심과 열의가 식지 않았다면 과연 개정안이 국회에서 그토록 오랜 낮잠을 즐길 수 있을까? 아직도 퇴직연금의 기본개념조차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식을 들으면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저출산 고령화의 큰 파고 앞에서 위기에 처해 있는 100세 시대의 노후생활을 생각하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노후준비가 국민적 스트레스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후준비 핵심 축의 하나인 퇴직연금이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은 아이러니를 넘어 배임행위라 여겨질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도 퇴직연금시장은 높은 성장세를 구현해왔다. 2016년 3분기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130조원으로 전년 동기(111조원) 대비 17.1% 증가했다. 전년 동기 대비 기준으로 2012~2015년의 성장률은 20%를 훌쩍 넘어선다([표1] 참조). 극심한 경기침체 상황을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성장률이 아닐 수 없다. ‘관심의 불황과 시장의 급성장!’ 불황형 흑자를 떠올리게 한다. [표1]에서 보는 것처럼 문제는 성장률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관심의 불황과 시장의 정체’라는 불황형 적자의 시대가 올까봐 걱정스럽다.
퇴직연금, 쉽고 효율적인 노후준비 방법!
기업·근로자·금융기관 등 퇴직연금 핵심 이해관계자들의 열의가 식는다고 해서 개인 및 사회에 대한 퇴직연금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제반 상황을 감안하면 퇴직연금의 영향력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퇴직연금 적립금이 늘어날수록 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와 늘어만 가는 후반 인생을 생각하면 근로자에 대한 퇴직연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마땅한 신수종 사업이 없는 상황에서 여전히 고도성장을 하고 있는 퇴직연금은 금융기관에게 아주 매력적인 시장이다.
무엇보다도 퇴직연금은 가장 쉽고 효율적인 노후준비 방법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근로자가 노후자금을 마련하려면 적잖은 부담을 감수해야만 한다. 별도의 자금을 염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퇴직연금은 다르다. 퇴직연금에 적립되는 부담금을 기업이 내기 때문이다. 근로자는 퇴직연금 적립금을 쌓기 위해 자신의 주머니에 손댈 필요가 없는 셈이다. 빠듯한 가계 상황을 걱정하지 않고도 노후를 준비할 수 있으니 얼마나 쉽고 좋은가! 또한 퇴직연금에 가입하면 적립금 운용수익에 대한 세금이 인출하는 시점까지 이연되는 등 많은 세제혜택을 누릴 수 있다. 세금으로 내야 하는 돈이 다음 해 원금에 추가되니 ‘이자에 이자가 붙는’ 복리효과가 극대화된다. “그까짓 이자가 얼마나 된다고?” 하며 얕보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 한두 해 일하고 그만둘 것은 아니지 않는가. 게다가 보험료를 내고도 운용 과정에 전혀 참여할 수 없는 국민연금과 달리 퇴직연금에 가입하면 각자의 상황에 맞는 운용 방법을 유연하게 선택하고 변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문가 집단의 도움을 거의 무료로 받을 수 있으니 노후자금을 불리는 방법으로 이만큼 효율적인 수단은 찾기 힘들다.
근로자들이 이런 장점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쇼윈도 안의 마네킹이 입고 있으면 별무소용이다.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을 벗겨 내 손에 넣어야 비로소 내 옷이 되는 법이다. 퇴직연금도 마찬가지다. 제도적으로 아무리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근로자들이 이를 활용하지 않으면 진열장에 전시된 제품에 불과하다. 아이쇼핑은 심리적 만족감을 주지만, 활용하지 않는 제도적 장점은 공약(空約)의 씁쓸함을 가져다줄 뿐이다. ‘톡!’ 건드리기만 하면 터져 씨앗을 사방으로 퍼트리는 잘 익은 봉숭아처럼 전국 방방곡곡 모든 계층의 근로자들이 혜택을 받아 노후준비를 제고할 수 있도록 퇴직연금에 대한 관심과 열의에 불을 지펴야 한다.
퇴직연금에 대한 근로자의 관심과 열의에 불을 지피기 위해서는 기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기본을 다지는 출발점은 퇴직연금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퇴직연금의 본질을 꿰뚫고 이를 이해하기 쉽게 전파한다면 식어버린 관심과 열의를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두 가지 측면에서 퇴직연금의 본질을 살펴보자.
퇴직연금은 제2의 임금
‘퇴직연금은 제2의 임금’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퇴직연금의 법적 성질과 관련한 학설로는 노후보장·공로보상설·임금후불설 등이 있다. 노후보장설은 퇴직연금을 사용자가 선의로 근로자의 노후보장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 보며, 공로보상설은 그동안 일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퇴직연금을 지급하는 것이라고 본다. 임금후불설은 매달 임금으로 지불해야 할 것의 일부를 나중에 퇴직할 때 지불하는 것이 퇴직연금이라고 보는 학설이다.
정설은 임금후불설이다. 퇴직연금의 법적 성질을 임금후불설로 보는 것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글로벌 퇴직연금시장에서 세계적 표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곳은 미국이다. 미국의 퇴직연금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에 비약적인 성장의 토대를 마련한다. 전시통제정책의 하나였던 임금통제정책 때문이다. 원활한 전시물자 보급을 위해 취한 임금통제정책으로 기업들은 근로자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상황에서 물건 만들 인력이 부족하니 얼마나 속이 타들어갔겠는가.
기업의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여성을 일터로 끌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가급여(fringe benefits)로서 퇴직연금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성인 여성들은 전업주부로서 주로 가사를 담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터로 나간 젊은 남성들을 대신해 여성들이 노동력 부족 사태를 해결하려 대거 사회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불러온 예상치 못한 사회 변화였다. 퇴직연금과 같은 부가급여는 전시임금통제정책의 대상이 아니었다. 임금을 올려줄 수 없는 상황에서 중장년 남성 인력은 물론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한 여성 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다른 대책이 필요했다. 지금 당장 임금을 올려줄 수 없으니 나중에 올려주겠다는 당근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바로 퇴직연금이었다. 즉 임금으로 줘야 할 것 중 일부를 퇴직연금이라는 형태로 해당 근로자가 퇴직할 때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 연금회계기준서에는 퇴직연금을 임금후불이라고 못을 박아놓았다.
이처럼 퇴직연금은 단순한 인센티브가 아니다. 당연히 받아야 할 임금을 어떤 배경으로 인해 지급을 뒤로 미룬 임금의 일부인 것이다. 퇴직연금을 제2의 임금이라 부르는 이유다. 모든 근로자들은 임금협상철만 되면 신경이 곤두선다. 과연 올해는 임금이 얼마나 오를까? 최소한 물가인상률만큼은 올라야 할 텐데… 임금이 오르면 가계의 재정상태도 좀 나아지겠지. 이런 기대를 하며 임금투쟁에 적극 나선다. 기대에 어긋나면 파업까지 불사한다.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 중 하나다.
그런데 제2의 임금이라는 퇴직연금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도입 당시 타오르던 관심이 금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당장 내 호주머니에 들어오지 않는 돈이라고 관심 영역 밖으로 밀려난 퇴직연금은 주인을 잘못 만난 화초처럼 생기를 잃고 시들어갔다. 내 퇴직연금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것은 애교에 가깝다. 내가 가입한 퇴직연금이 어떤 종류인지, 어느 퇴직연금사업자에 내 적립금 운용을 맡겼는지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내 퇴직연금이 안녕한지 그렇지 못한지 알고 있는 사람은 30%도 채 되지 않는다.
자신의 임금에 이처럼 무관심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음지에서 시들어가고 있는 퇴직연금을 양지로 끌어내야 한다. 퇴직연금의 본질은 3층 사회보장제도의 하나로서 노후준비의 한 수단이 아니라 제2의 임금이다.
노후준비 수단은 임금을 활용하는 한 형태일 따름이다. 최소한 1년에 한 번만이라도 퇴직연금에 관심을 기울이고 점검하자. 그 결과 변화가 필요하다면 사업자를 바꾸거나 상품을 바꾸거나 자산배분을 바꿔보자. 시들해진 퇴직연금이 되살아날 것이다.
퇴직연금 가입자는 잠재적 액티브 시니어
퇴직연금의 본질과 관련해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포인트의 하나는 퇴직연금 가입자에 대한 것이다. 바로 퇴직연금 가입 근로자는 모두 잠재적 액티브 시니어라는 점이다. 누구나 은퇴 후 활기차고 행복한 노후를 꿈꾼다. 이 점에서 퇴직연금 가입자는 특히 더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퇴직연금을 도입할 때 근로자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근로자가 퇴직연금 도입에 동의할 때 동의를 해달라니 마지못해 동의할까, 아니면 노후에 대한 희망을 안고 동의할까? 비록 지금은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도입 당시 각자 나름의 꿈과 희망을 퇴직연금에 담았을 것이다.
퇴직연금은 액티브 시니어가 되기 위한 중요한 물적 기반이다. 이전 호에서 살펴본 것처럼 ‘액티브 시니어란 육체적·정신적 건강함을 기반으로 일정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연장자’를 뜻한다.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육체적·정신적 건강함과 함께 재무적 탄탄함을 필요로 한다. ‘가난한 강남 부자’라는 말이 암시하듯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더라도 현금흐름이 말라버리면 사회적 활동은커녕 움직이기조차 힘들다. 퇴직연금은 재산이 적더라도 현금흐름이 풍부한 시민이 되기 위한 초석이다. 많은 근로자들은 이런 심정으로 퇴직연금 도입에 동의하고, 퇴직연금사업자를 선정하고, 적립금 운용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퇴직연금을 잘 가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행복한 노후를 꿈꿨을 것이다.
하지만 한바탕 바람이 일고 난 뒤 일상으로 돌아오면 꿈은 사라지고 일상의 권태와 피로에 지배당하고 만다. 이 권태와 피로를 잊게 하고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꿈임을 이성적으로는 알지만 그 이성을 일깨우는 데에는 게으르다. 안다고 할 수 없는 셈이다. 퇴직연금은 제2의 임금임을 회상하며 다시 꿈을 일깨우자. 근로자 입장에서 퇴직연금은 은퇴 이후에 받는 또 다른 임금이다.
임금 인상 여부에 일희일비하던 기억을 퇴직연금에 접목해보자. 그러면 꿈은 되살아나고 삶에 대한 구체적 그림이 보일 것이다. 그 구체적 그림 속에서 퇴직연금의 역할을 부여해보자. 그러면 현재 나의 퇴직연금은 안녕한지 불편한 상태인지 보일 것이다. 안녕한 상태라면 잘 유지하고, 불편한 상태라면 상품·사업자·자산배분 등을 조정해 더 나은 상태로 바꿀 필요가 있다.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 대표
인출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좋건 싫건 무수히 많은 선택을 한다. 그중에는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선택이 있는가 하면, 어떤 선택은 인생의 양념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지, 어떤 배우자를 선택할 것인지 등은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선택들이다. 반면 오늘 점심을 누구와 먹을 것인지, 이번 주말에는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인생의 양념에 해당한다 할 수 있겠다. 현재의 나는 이런 크고 작은 선택들이 만들어낸 결과일 수도 있다.
인생의 반환점을 돈 5070 세대는 자산관리 측면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이들 세대 중 많은 사람은 현역에서 물러나 여유로운 은퇴생활을 즐기거나 사회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떤 삶을 영위하든 원하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소득이 필요하다. 이미 은퇴한 사람들은 그동안 모아놓은 돈에서 소득을 만들어내야 하며, 여전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동안 모아놓은 자금과 근로 및 사업소득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안정적인 소득이 창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에 대한 조언은 이미 지난 호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인출(withdrawal)은 이런 소득을 안정적으로 창출하는 것, 즉 노후에 안정적인 소득흐름을 만드는 행위라 할 수 있다. 3040 시절에는 근로 및 사업소득 중 일부를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는 저축을 했다. 이를 적립(accumulation)이라고 한다. 인출은 3040 시절 목돈 형태로 적립해놓은 자금에서 매달 생활비를 안정적으로 빼내 쓸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 수단을 선택하는 행위인 셈이다.
매달 생활비가 들쑥날쑥하면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로 인해 힘든 노후를 보내야 한다. 노후생활 자금을 안정적인 방법으로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반면 적립 단계에서는 매달 새로운 자금, 즉 저축액이 적립액에 추가되므로 자산을 좀 더 공격적으로 운용해도 큰 문제가 없다. 얼마간의 손실을 보더라도 새로 유입되는 자금으로 손실을 만회할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출 전략을 잘 짜야 하는 이유
인출 전략을 잘 짜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노후에 다양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돈을 지출해야 하는 상황, 즉 갑작스런 사고나 중대 질병, 세금폭탄 등에 직면하면 노후생활 전반이 큰 충격에 빠지게 된다. 문제는 노후가 길어진 만큼 이런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를 무시하고 주먹구구식으로 계획을 수립하거나 생활비를 안전하게 조달한다는 이유로 모든 자금을 연금에 넣어두면 예상치 못한 위험에 대응하기 힘들어진다.
인생을 배우고 일하는 전반기와 은퇴생활을 하는 후반기로 구분했을 때 전반기 인생은 그대로이거나 소폭 줄어든 반면 후반기 인생은 아주 많이 늘어났다. 만일 후반기 인생의 재무 전략이라 할 인출 전략을 잘못 짜면 아직 삶은 구만리인데 돈의 씨가 마르는 은퇴 파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인생 말년에 이보다 더 큰 고통은 없을 것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 아침에 마을 어르신을 만나면 꼭 하는 인사말이 있었다.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또는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이 인사말은 ‘밤새 무탈해서 오늘도 건강하게 살아계시네요’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밤새 안녕!’ 하면 0.5일 정도 수명이 늘어나는 요즘은 어떨까. 똑같은 인사말이라도 그 의미는 다를 것이다. 아마도 ‘수명이 또 늘어났는데, 생활에 문제는 없으신지요?’라는 질문이 아닐까.
희소한 자원을 경제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것도 인출 전략을 잘 짜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경제활동기에 돈을 아껴 열심히 모아도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내기에는 부족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한마디로 말해 노후를 보낼 자원은 희소한데 이 자원을 사용할 기간이 늘어난 것이다. 희소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한 방법 중 하나는 공사연금을 통합적으로 고려해 인출 전략을 짜는 것이다.
공적연금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사적연금 단독의 인출 계획을 수립하면 더 많은 연금소득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우려가 있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의 경우 정상적인 수급 연령보다 최대 5년까지 앞당겨 받거나 늦춰 받을 수 있는데, 앞당겨 받으면 연금액이 1년마다 6%씩 줄어들고 늦춰 받으면 1년마다 7.2%씩 늘어난다. 5년을 앞당겨 받으면 연금액이 30%나 줄고, 5년 늦게 받으면 연금액이 36%나 증가하는 셈이다. 여러 상황을 감안해 국민연금을 5년 늦게 받는 게 유리하다면 은퇴 후 국민연금을 수급할 때까지는 다른 은퇴자금으로 생활비를 조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를 흔히 가교연금(bridge pension) 전략이라고 한다. 강을 건너기 위해 다리를 건설하듯이 은퇴 후 국민연금 수령 시점까지의 소득공백기를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는 연금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자신의 노후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시대적 상황도 인출 전략을 잘 짜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자녀 수가 많고 뒷방 늙은이 신세로 살아야 하는 기간이 짧았던 과거에는 노후를 자녀에게 의지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자녀 수가 적을 뿐 아니라 자녀들이 부모를 봉양할 만한 여유도 없다. 오죽하면 성인 자녀의 생활비를 보태주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절망의 노후가 아니라 희망의 노후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부진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다 쓰고 죽자!’는 말에 그 의미가 잘 녹아 있다. 이제는 부모 자식 간 재산 계정을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경계를 확실히 만들어둘 필요가 있다. 그것이 부모와 자식 둘 다 사는 방법이다.
이상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인출 방식의 하나는 연금 외 저축액을 70세까지 유지하는 전략이다. 남편은 85세, 아내는 90세에 사망한다고 가정했을 때 퇴직 후 70세까지의 생활비는 사적연금(개인연금+퇴직연금)과 근로·사업·자산소득 등으로 충당하고, 이후는 퇴직 전까지 모아놓은 연금 외 저축액과 국민연금(필요시 주택연금 포함)으로 생활비를 조달하는 방식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나라 은퇴자의 평균적인 자산 상황을 감안한 가장 단순한 모델일 뿐이다. 각자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전략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필자가 회장을 맡고 있는 모임에서 친목도 다지고 내년 모임의 방향을 잡는 행사를 열었다. 고문을 맡고 있는 H형이 소유하고 있는 가평 소재 별장 겸 연수원을 행사 장소로 추천했다. 잔디가 깔린 넓은 마당과 3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수시설이 있는 펜션 스타일의 집이었다. 그런데 입구 간판에 적힌 이름이 ‘삶의 쉼표’였다.
행사 일정이 마무리되고 저녁을 먹고 즐거운 환담의 시간이 이어졌다. H형에게 펜션 이름을 삶의 쉼표라고 지은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음악이나 글에는 쉼표가 있어요! 글에 마침표만 있고 쉼표가 없으면 너무 지루하지요. 또 문장이 길어지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요점을 파악하기가 힘듭니다. 노래를 부를 때 쉼표가 없으면 숨이 막히고 말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 소중한 인생을 살면서 쉼표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어요. 100세 시대에 더 멋진 인생, 더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려면 반드시 쉼표가 있어야 합니다!”
H형에게는 더 큰 꿈이 있었다.
“그저 달리기만 하는 직장인들은 중간에 퇴직을 하거나 정년을 맞으면 제2의 삶을 살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잃고 살아간다는 것이 안타깝지요. 저는 이곳이 퇴직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명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기 퇴직이나 은퇴를 ‘끝이나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은퇴를 ‘Re+tire’, 즉 ‘타이어를 바꿔 끼다’라는 의미의 Retire로 생각한다. 은퇴는 마침표가 아니라 쉼을 쉬고 다시 시작하라는 중요한 메시지이자 새로운 출발의 휘슬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회사에서 오래 쓴 PC가 고장이 나면 업무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수리를 한다. 그러나 직원들이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거나 고민이 있을 때는 PC처럼 수리를 할 수 없다. 그러다보면 스트레스는 우울증이나 과로사 같은 돌이키기 힘든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경제 10대 강국을 자처하면서도 행복하지 못한 국가가 됐고, 하루 40여 명이 자살하는 ‘자살 공화국’의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하다. 상상력과 창의력은 강제된 상황에서 나오지 않는다. 자유로운 상황에서의 몰입이 중요하다. 불안이 없고,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환경과 즐거운 웃음이 존재할 때 새로운 발상이 떠오른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지금 당장 산, 바다, 하늘이 모두 푸르러 청산(靑山)이라 이름 붙여진 작은 섬 청산도로 달려가보자. 2007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슬로시티, 그리고 세계슬로길 1호로 지정된 곳이다. 쉼표가 있는 음악처럼, 삶에도 쉼표가 필요하다.
‘정해진 둥지도 없어 아무 데나 누우면 하늘이 곧 지붕이다. 코끝에 스치는 바람, 흔들리는 풀잎 소리, 흐르는 도나우 강물이 그저 세월이리라. 우린 자전거 집시 연인이다.’ 최광철(崔光撤·62) 전 원주시 부시장이 유럽 자전거 횡단 중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자유로운 영혼의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그의 여정에는 빠질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아내 안춘희(安春姬·59)씨다. 자전거의 두 바퀴처럼 언제 어디서나 나란히 함께하는 두 사람의 유유자적 여행기를 들어봤다.
최광철 전 부시장이 50세가 되던 해의 어느 날, 부부는 여느 때처럼 한강변을 거닐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잠시 쉬는데, 한 청년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흙으로 범벅된 청년의 자전거를 본 남편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자전거가 흙투성이라 물어보니까 산악자전거라는 거예요. 어? 왜 위험하게 자전거를 산에서 타지? 이상하게 생각했죠. 조금 이따가 그 청년이 다시 자전거를 타고 터널로 달려가는데, 그 뒷모습이 참 터프하고 멋져 보였어요. 그러고 조금 지나니 뭔가 아쉽더라고요. 우리는 그런 것도 못 누렸는데 나이가 들어버렸잖아요. 근데 아내도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길로 아내랑 같이 가서 자전거 두 대를 질러버렸죠.”
인생 2막의 ‘도전’, 인생 1막으로부터의 ‘도피’
우연한 기회로 취미를 찾은 부부는 전국 방방곡곡을 달리며 부지런히 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10년 후, 남편은 은퇴를 앞두고 인생 2막에 대한 고민에 휩싸였다.
“은퇴를 하고 나면 어떨까? 나름 부시장이라는 직책으로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모든 환경이나 생활리듬이 바뀌면 적응할 수 있을까? 하릴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직장 동료라도 만나면 우울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이곳(원주)에서 그대로 지내는 게 영 가시방석처럼 불편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고민 끝에 그가 찾은 돌파구는 ‘자전거 세계일주’였다. 영혼의 동반자이자 자전거 파트너인 아내도 함께 가기로 했다. 은퇴 후 무력감에 빠지지 않도록 최대한 일찍 떠나고 싶었다. 퇴직일은 2016년 6월 30일, 그로부터 보름 후인 7월 16일을 디데이(D-day)로 잡았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발해 독일, 룩셈부르크, 프랑스, 영국을 가로지르는 3500km 횡단 종주를 목표로 하고, 여행 기간은 3개월로 정했다. 부부가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그들의 도전에 감탄하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도전’보다는 ‘도피’에 가까웠다고 말하는 남편이다.
“여행을 다녀와서 인터뷰도 많이 했지만 아직도 그 계기에 대해 스스로 되묻곤 해요. 남들은 은퇴하고 크루즈를 타고 지중해도 가고, 더 편하고 고상하게 여행을 즐기는데 난 왜 그 험난한 여정을 택했을까? 그동안은 누가 물어보면 도전이나 열정처럼 그럴싸한 이유를 댔는데, 사실 그보다는 현실도피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공무원 생활을 하며 평탄하게 지내왔는데, 뭔가 새로운 환경에 나를 던져보고 싶었어요. 그런 담금질의 기회를 얻고 나면 용기와 자신감이 생기고, 막연하게나마 새로운 희망이 보이리라 생각했죠.”
남편에게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아내에겐 ‘남편’ 그 자체가 이유가 됐다. 오랜 시간 자전거를 취미로 삼았지만, 유럽 횡단은 꿈도 안 꿨다는 아내다. 낯선 환경에 장기간 해외여행이라는 점도 우려스러웠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아내의 건강이었다. 떠나기 3개월 전, 허리에 통증이 와서 병원을 찾은 아내는 척추협착증 진단을 받았다. 자전거를 무리하게 타지 말라는 주의를 받은 터라 무작정 일정을 강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래도 어렵겠다는 판단을 내리려던 그때, 아내는 병원에서 두 달 치 진통제를 처방받아왔다. 체념 섞인 비장함으로 그렇게 무리수(?)를 던진 부부는 예정대로 여행을 떠났다.
부부가 함께 쓰는 명함
유럽 자전거 여행을 성공리에 마친 그들은 다음 해에 동북아 자전거 횡단 길에 올랐다. 첫 여행의 두려움과 낯선 자신감과 희망으로 채워졌다. 점점 탄력이 붙어 최근에는 ‘달려라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뉴질랜드를 누비고 왔다. 당시 기자와의 첫 통화에서 “뉴질랜드에서 아내와 자전거 타고 있어요!”라고 말하던 최 전 부시장의 건강한 음성이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 만난 부부의 건강한 미소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똑같은 헬멧에 똑같은 점퍼, 똑같은 아웃도어를 입은 부부는 똑같은 명함을 내놓았다. ‘수상한 여행, Bike Bohemian 최광철·안춘희’라고 쓰여 있는 부부명함이다.
“영화 를 보면 칠순 할머니가 우연히 청춘사진관에 들어갔다가 20대로 변하거든요. 다시 젊음을 만끽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우리 여행이랑 콘셉트가 맞더라고요. 그래서 ‘수상한 여행’이라고 지었어요. 직장이나 직함 대신 자전거 집시 ‘바이크 보헤미안(Bike Bohemian)’, 그리고 나와 아내의 이름을 넣었죠.”
‘소박하고 쾌활하게 유랑생활을 하면서 삶의 고통을 이해하고 아름다움의 근원을 찾아가는 자전거 여행 부부’라는 의미가 담긴 명함이라고. 새 명함으로 은퇴 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남편처럼, 아내 역시 명함이 생기면서 이전과는 다른 생동감을 느끼며 산다.
“잠깐 직장생활을 하긴 했지만, 30년 넘게 전업주부로 살다 보니 명함이 익숙하지는 않았어요. 필요성을 못 느끼기도 했죠. 남편 덕분에 명함이 생겨서 요즘엔 어디 가면 나도 내 명함이라고 주기도 하고 그래요. 그러다 보니 뭔가 더 의미부여도 되는 것 같고, 남편이랑 함께 쓰는 명함이라 그런지 더 좋더라고요.”
그런 아내의 모습에 가슴이 뿌듯해지는 남편이다. 최 전 부시장은 다른 이들에게도 자신들처럼 부부명함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얼핏 이런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한 건데, 막상 만들고 보니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들이 들으면 주책없다 할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동행할 사람인데 같은 명함 쓰면 좋잖아요. 직장생활 할 때도 상무든 대표든 그의 아내 누구 이렇게 써놓으면 어때요. 그게 뭐 나쁜가요? 부부는 일심동체인걸요.”
시간이 지배하던 일상을 벗어나다
명함에 적힌 ‘보헤미안’이라는 수식어처럼, 해외여행을 다니며 그야말로 집시의 삶을 살았다는 그들이다. 가고 싶은 곳으로 달리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쉬고 싶을 때 쉬고. 미션은 단 하나, 90일 안에 최종 목적지인 영국 서쪽 대서양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유유자적하고 낭만적인 모습에 부러움을 사는 그들이지만, 이러한 생활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고 한다. 특히 38년 공직생활에 몸담아온 남편에게 자유란 출퇴근보다도 낯선 존재였다.
“9시에 출근하고, 9시 반에 회의하고, 10시에 기관 협의하고…. 그렇게 30분, 1시간 단위로 하루를 살았어요. 내가 시간을 관리한 게 아니라 시간이 나를 관리했던 거죠. 특별한 게 없는데도 6시엔 호텔에 도착해야지, 8시엔 저녁을 먹어야지. 그런 시간의 강박관념 같은 게 있는 거예요. 6시에 호텔에 가면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나? 누가 나를 기다리나? 아직 배가 안 고픈데 저녁 좀 늦게 먹으면 어때?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조금씩 시간의 틀에서 벗어나 편안해지더라고요.”
그는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내 의지대로 사는 것이 바로 보헤미안의 삶’이라며 아직은 온전히 그 자유를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그 과정에 있으니, 점점 더 좋아지리라 희망한다. 일상에서의 탈피는 또 다른 변화를 불러왔다. 익숙했던 배우자의 새로운 면모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 새벽에 잠을 푹 자고 일어나서 아내 얼굴을 봤는데 ‘어? 이 사람이 누구지?’ 깜짝 놀랄 정도로 새롭고 낯설 때가 있어요. 여행을 하다 보면 ‘여기가 어디더라?’ 그런 생소함이 들기도 하고요. 내 환경이나 의식이 완전히 탈태됐다고 할까? 직장생활 할 때는 나는 나대로 일하느라 바쁘고, 아내는 아내대로 혼자 집에서 뭔가를 했잖아요. 우리는 텐트생활을 많이 했는데, 텐트는 혼자 개고 펴기가 쉽지 않아요. 서로 마주보고 양쪽 귀퉁이를 잡아야 접을 수 있고, 다시 펴는 것도 함께해야죠. 그렇게 함께하는 것들이 많아지니 전보다 더 가까워진 기분이에요.”
아내 역시 “때론 남편이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며 알콩달콩 장단을 맞췄다.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이국에서 남편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고, 낯선 레스토랑에서 즐기는 와인 한 잔은 연인들의 데이트처럼 로맨틱했다.
제발 그 말만은 하지 마오!
모든 순간이 그렇게 낭만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텐트에 비가 들어 눅눅한 채로 잠들어야 하는 날도 있었고, 밤늦게 길을 잃어 경찰이 출동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무더운 날씨에 오르막길을 오르며 체력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남편은 어쩐지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우격다짐해서 온 건데 아내가 후회하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드니까 오히려 ‘집에 가고 싶지 않냐, 힘들지 않냐’ 못 물어보겠더라고요. 나도 힘든데, 아내는 얼마나 더 힘들겠어요. 내가 그렇게 물어보면 대번에 돌아가자 할 것 같은 거예요. 그럼 내 마음도 약해지니까, 더 못 물어봤죠.”
애써 힘든 줄 알면서도 마음을 감춘 남편의 마음을 아내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남편이 나에게 ‘돌아갈까?’ 이렇게 묻지 말아 달라고 속으로 바랐어요. 그렇게 물어보면 정말 가고 싶어질 것 같으니까. 그이가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왔는지 잘 아는데, 나 때문에 포기하게 할 수 없었어요. 만약에 내가 집에 가자고 했으면 다 접고 왔을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힘들어도 절대 그런 나약한 소리는 하지 않았죠.”
부부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 했던가. 함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꾹꾹 감춰뒀던 속마음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졌다. 보헤미안 부부처럼 행복한 여행을 꿈꾸는 이들이 있을 터. 그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은퇴하고 배우자가 여행을 가자고 하면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40~50대부터 함께 취미생활도 하고 시간을 보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갑자기 여행을 떠나는 게 쉽지는 않을 거예요. 시간이 나면 배드민턴을 하든 탁구를 하든 작은 취미활동이라도 함께하길 권해요. 그리고 자유여행을 가게 된다면 너무 완벽한 계획을 세워서 가지 않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거기에 맞추느라 재미가 없거든요. 큰 흐름을 갖고 함께 겪어가면서 즐거운 흔적, 또 조금 힘든 흔적을 남겨가면서 추억을 만들다 보면 더 자유롭고 신선한 여행이 될 거예요.”
“시간과 돈의 여유가 허락된다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이 ‘여행’이라고 답한다. 여행은 일상과 다른 새로운 시간으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좋은 기회다. 평소와 다른 일을 준비하다 보면 사소하든 중요하든 놓치는 것들이 생기는데, 이런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 체크리스트다. 은퇴도 일종의 여행이다. 그것도 20년이 걸릴지 30년이 걸릴지 그 끝을 알기 힘든 긴 여행이다. 그만큼 은퇴 여행에서는 챙겨야 할 것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특히 돈과 관련해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 알아보자.
최문희 FLP컨설팅 대표
◇ 은퇴대비자산의 충분성
가장 기본적인 은퇴대비자산은 공적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이다. 이들 연금으로 은퇴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다면 다른 금융자산이나 부동산으로 은퇴생활비를 보충해야 한다. 소유 주택이 있다면 주택연금을 고려해볼 수 있다. 그 외의 부동산이 있다면 임대소득을 생각해볼 수 있다.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아 매각해야 한다면 매각시기와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매각을 서두르다 보면 손해를 볼 수 있다.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매도시기를 결정하려면 시기별로 필요한 은퇴생활비와 준비된 자금의 차액을 알고 있어야 한다. 금융감독원에서 운영하는 금융소비자정보포털(fine.fss.or.kr)인 ‘파인’에 접속하면 본인이 가입 중인 금융상품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파인’의 서비스 중 연금저축어드바이저(advisor.fss.or.kr)를 활용하면 희망하는 연금액과 현재 준비된 연금액의 차액을 직접 계산해볼 수 있다. 또한 부족한 연금액을 준비하는 데 활용할 만한 연금상품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연금저축어드바이저를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면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 정보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통합연금포털(100lifeplan.fss.or.kr)에 미리 회원으로 가입해두면 좋다. 통합연금포털은 ‘파인’을 통해 이용 가능하다.
◇ 향후 소득창출 능력
과거에는 공적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 등 3층 보장만 제대로 준비해도 큰 어려움 없이 노후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금리·고령화 사회의 본격화로 3층 보장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게 되었다. 준비한 자금이 필요 은퇴자금보다 적다면 추가로 소득을 창출할 필요가 있다. 은퇴 후에도 소득창출과 관련한 본인의 능력을 점검하고 실행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 소비습관
수입이 중단된 상태에서 소비는 가계경제의 우량도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다. 이성은 소비통제를 외치지만 습관에 젖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갑작스런 소비통제는 특히 배우자와의 갈등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내적·외적 혼란과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소비통제와 관련한 객관적 기준이 필요하다. ‘예산(budget)’을 활용하면 좋다. 예산을 세우고 주기적으로 체크하면 소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부채관리 능력
과도한 부채를 안고 은퇴를 하면 가계경제는 큰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신용대출은 은퇴 직후 대출이 중단되거나 대출금리가 높아진다. 부채청산은 은퇴 이전에 꼭 달성해야 할 것 중 하나다. 부동산 같은 투자자산의 구입으로 생긴 부채라도 가격상승에 대한 막연한 기대보다는 예상수익과 대출이자에 대한 분석을 통해 과감하게 매각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 현재 가입 중인 보험 점검
은퇴 후 생활비는 의료비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노후에는 의료비 부담이 매우 크다. 이에 대비해 별도의 자금을 준비해도 좋지만 보험을 활용하면 편리하다. 과거에 가입한 보험이 있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 가입한 보험의 보험기간이 만료되었거나 만기가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입 중인 보험들의 보장금액과 보장기간을 검토해보고 필요하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보강해야 한다. 금융소비자정보포털(fine.fss.or.kr)인 ‘파인’에 접속해 ‘내보험다보여’를 클릭하면 보험가입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단 2006년 이전에 가입한 보험상품 정보는 가입한 보험사의 콜센터를 통해 직접 확인해야 한다.
◇ 기타 체크해야 할 사항들
① 현금흐름의 갑작스런 중단에 대비한 비상예비자금(손해를 보지 않고 바로 찾아 쓸 수 있는 현금 및 현금등가물)
② 기부나 자선 등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들에 필요한 자금
③ 자산의 양도 및 임대, 기타 사업 등으로 인해 발생할 소득세나 자산의 증여 및 상속에 대비한 증여세와 상속세
④ 아직 은퇴 전이라면 은퇴대비저축이나 투자금액 등
필자가 일하는 건설현장 머리위에는 고가 크레인이 빙빙 돌아가고 발아래는 흉기 같은 철근이 널려 있다. 온통 지뢰밭을 걷는 것처럼 위험물 천지다. 근로자의 안전을 지켜주는 비계(건물을 지을 때 디디고 서도록 철 파이프나 나무 따위를 종횡으로 엮어 다리처럼 걸쳐 놓은 설치물)에 머리고 몸통이고 부닥치는 일들이 수시로 일어난다. 이런 곳에서 일을 하는 나이 먹은 필자를 대단하다고 추켜세우는 친구들도 있지만 과연 제대로 일을 할까하고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그보다 한평생을 손에 물 안 묻히는 화이트칼라로 살다가 온 몸을 연장삼아 일해야 하는 블루칼라 일을 한다는 것에 의심 반 부러움 반의 주위 시선들을 느낀다. 필자는 공과 대학을 나오고 기술사라는 최고의 국가 자격을 갖고 있다. 회사에서도 일찍 간부가 되어 현장일은 제대로 배우거나 하지도 못하고 부하직원을 통솔하는 일만 한평생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일을 입과 머리로만 했지 손과 발은 제대로 쓰지 못했다. 자동차공장에 다니면서 실제 자동차는 만들어보지 못한 꼴이었다. 머리는 많이 써서 유효기간을 지나 노후 되었지만 손발은 아직 신품에 가깝다고 자위하며 혼자 웃는다.
이런 마음가짐이 필자를 스스로 쇠뇌 시켜 현장 일을 해도 남들보다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다소 엉뚱하고 무모한 자신감은 예전부터 늘 갖고 있었다. 이런 생각 때문에 만약 퇴직하고 제2의 일을 한다면 머리만 쓰는 관리자 일보다는 두뇌로 계산하고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노동에 가까운 현장 일이 좋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 왔다. 수명100세 시대에 길게 현역에 남아있으려면 노동자의 다른 이름인 불루칼라가 딱! 이다. 노동자는 몸이 생명이므로 무엇보다 건강해야 한다. 노동자 출신이 회사에서 노동자 몫의 임원을 역임한 후 임기가 끝나자 다시 노동현장으로 복귀하는 모습에 잔잔한 감동을 받은 적도 있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불루칼라의 대부분 업종이 3D 업종이라 하여 열악한 직업이다. 힘들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스러운(dangerous) 일이다. 다른 쪽은 몰라도 필자가 잘 아는 건설현장에서 보면 우리나라 젊은 노동자들은 점점 줄어들고 해외 노동력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조선족이거나 동남아 인력이 없으면 현장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많이 변했고 점점 더 그렇게 변하고 있다. 취업난이라 하면서도 노동현장에 오지 않으려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무조건 탓할 수만 없는 것이 열악한 환경에 비해 보수가 턱없이 낮다는 현실에 있다. 소득 3만 불 시대에 대학을 나온 잘 교육된 젊은이들에게 미래가 불확실한 육체노동의 이런 일을 강요하기에는 솔직히 미안하다. 남들이 기피하는 일을 하면 당연히 돈이라도 많이 주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녀양육에서 해방되고 좀 경제적 여유가 있고 신체 건강한 시니어가 3D 업종에 종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많은 퇴직자들이 강사나 컨설턴트를 희망하고 잘 모르는 창업에 뛰어들어 그나마 갖고 있던 돈을 날린다. 노동은 건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선택된 자리다. 나이 들어 육체노동에 종사할 수 있다는 것이 또 다른 이름의 진짜 엑티브 시니어다.
하는 일의 중요도에 따라 급여가 달라져야 정의로운 사회지만 자녀를 먹이고 입히고 교육을 시켜야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그만한 보수를 줘야한다.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자리를 젊은이들에게 줘야 할 의무는 국가와 사회에 있음에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회사에 입사하여 연수가 늘고 숙련도에 따른 생산성 증가로 점차 급여가 늘어나는 것도 당연하지만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생산성과 역행하여 오히려 급여가 줄어드는 임금피크제라는 제도를 적용하는 것이 소득재분배 차원에서 공감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퇴직 후 제2의 직업에서는 수입이 적은 것이 당연시 돼야 한다.
요즘의 노동현장은 무조건 힘만 쓰는 동물의 세계가 아니다. 힘든 일은 잘 발달된 기계가 한다. 기계가 하기 어려운 틈새의 힘이 필요한 기술적인 일이 요즘의 노동현장이다. 찾아보면 자신의 체력에 맞는 그렇게 힘들지 않는 노동현장도 많이 있다. 노동현장에서 바짝 엎드려 일을 하다 보니 몸은 피곤해도 우선 마음은 편하다. 입사동기간에 서로 빨리 진급하려고 양 눈에 쌍심지 불을 켜고 경쟁하던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웃음 짓는다. 살아보니 그렇게 경쟁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과장되고 부장되는 진급의 싸움에서 한발 물러서 있으니 여유롭다. 건강은 머리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는 것이고 욕심을 줄인 자리에 만족을 끼워 넣으면 행복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 대표 ssdks@naver.com
A(65세)씨는 요즘 원치 않는 혼족 생활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 모임에 열심히 나갔으나 지금은 발길을 뚝 끊은 상태다. 한때 동기회 회장까지 맡았던 그는 몇 년 동안 일체 연락도 하지 않은 채 두문불출하고 있다. 친구들 모임에 나가면 즐겁지만 식사비와 가벼운 음주 비용마저 두렵기 때문이다. 지금 그에게 유일한 친구는 TV뿐이다. 그는 지금 강남의 10억 정도 하는 아파트에서 소파를 침대 삼아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TV를 보고 있다. 밖에 나간 아내가 빨리 들어오지 않아 분을 삭이면서.
대기업 부장으로 재직하다 55세에 퇴직한 A씨는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아내와 함께 고품격 해외여행은 물론 뮤지컬 관람 등 문화생활을 즐겼다.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로서 그동안 고생한 보람을 맘껏 누렸던 것이다. 그러나 고가의 아파트도 있으니 어찌 되겠지 하는 맘으로 5년을 즐기는 동안 어느새 저축해놓은 돈이 동나버리고 말았다. 그 허전함과 불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정했던 아내와의 사이는 벌어지기 시작했고 A씨는 집 안에 틀어박혀서, 아내는 밖으로 나도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A씨가 다시 액티브 시니어로서 활기찬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주택연금 가입하면 얼마나 받을 수 있나?
A씨가 가택연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주택을 활용하는 방법밖에 없다. 10년 동안 일을 쉰 65세의 은퇴자에게 재취업의 길은 멀기 때문이다. A씨는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처분해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있는 9억원 이하의 아파트로 이사하면 1억원 정도의 여유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A씨가 9억원짜리 아파트로 이사한 뒤 바로 주택연금 신청을 하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주택연금 월 수령액은 신청 당시의 연령과 주택가격, 지급방식, 보증료 크기 등에 따라 다르다. 만일 A씨가 매월 일정한 금액을 종신지급받는 조건으로 가입할 경우 월 227만4000원 정도를 받게 된다([표 1] 참조). 현재 A씨는 국민연금으로부터 매월 약 70만원을 받고 있으므로 국민연금과 주택연금을 합치면 300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생활비를 250만원 정도로 낮추면 7억짜리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고, 200만원까지 낮추면 5억짜리 아파트로 이사할 수도 있다. 월 생활비를 250만원으로 낮추면 3억 정도의 여유자금을 확보할 수 있고, 200만원으로 줄이면 5억원의 여유자금을 손에 쥘 수 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액티브 시니어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주택연금 신청자 얼마나 되나?
주택연금은 2007년 7월에 도입된 이후 가입자 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누적 가입자 수는 2012년 말 1만1393명에서 2016년 말에는 3만4444명으로 증가했다. 매년 주택연금에 가입하는 신규 가입자 수는 2012~2015년 5000~6000명 선에서 2016년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어서기에 이르렀다([그림 1] 참조). 2016년 신규 가입자 수(1만309명)는 2015년보다 58.9% 증가한 수치다. 이처럼 지난해 주택연금 신규 가입자 수가 크게 늘어난 것은 ‘내집연금’ 3종 세트 출시와 가입요건 완화 덕분이다. 주택연금이 고령층의 주요 노후준비 수단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한편 2007년 7월 주택연금 출시 이후 2016년까지 주택연금 가입자의 평균 연령은 71.9세, 평균 주택가격은 2억8300만원, 월 평균 수령액은 98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 유형은 아파트가 84.0%로 가장 많았고, 주택 규모는 85㎡(약 25.8평) 이하가 78.9%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집연금’ 3종 세트란?
‘내집연금’ 3종 세트는 2016년 4월 25일 출시된 상품으로 다음 3개의 주택연금을 묶었다. ① 일시인출 한도를 70%로 늘여 만 60세 이상 고령자의 주택담보대출을 상환하고 주택연금을 이용할 수 있게 한 ‘주택담보대출 상환용 주택연금’, ② 40~50대가 보금자리론을 이용하다가 향후 주택연금으로 전환할 때 최대 연 0.3%p의 전환장려금을 지급하는 ‘주택연금 사전예약 보금자리론’, ③ 1억5000만원 이하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60세 이상 고령자에게 월 지급금을 최대 15% 더 많이 주는 ‘우대형 주택연금’.
첫째, 주택담보대출 상환용 주택연금은 부부 중 한 명이 만 60세 이상이고 부부 기준 9억원 이하 1주택 소유자 또는 다주택 보유자의 경우는 보유주택 합산 가격이 9억원 이하이면 가입할 수 있다. 합산 가격이 9억원을 초과하는 2주택자는 3년 이내에 비거주 주택을 처분하는 조건으로 가입 가능하다. 주택연금에 가입할 때는 주택가격의 1.0%를 가입비 형태로 초기보증료를 납부해야 하며, 매년 연금지급 총액의 1.0%를 연보증료를 납부해야 한다. 보증료는 월 지급금 보장 및 미래손실 충당을 위한 재원으로 사용된다. 보증료는 연금지급 총액에서 자동 공제되므로 직접 납부할 필요는 없다.
연금지급 한도의 70%까지 일시에 인출해 주택담보대출 상환에 활용할 수 있다. 일시 인출한도 금액은 주택가격과 연령에 따라 다르므로 주택금융공사에 문의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만일 인출한도 전액을 사용했음에도 주택담보대출 전부를 상환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최대 1000만원 한도 내에서 서울보증보험의 내집연금연계신용대출을 이용할 수 있다. 부부 모두 사망하거나 주택소유권을 상실했을 경우, 그리고 1년 이상 거주하지 않을 경우에는 주택연금이 종료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종료 시점에 주택가격이 연금수령 총액보다 많을 경우에는 남는 부분이 자녀에게 상속되므로 주택연금 가입 후 주택가격이 오르면 손해 보는 것 아니냐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연금수령 총액이 주택가격보다 많으면 부족분에 대한 청구는 하지 않으므로 혹시라도 자녀에게 빚으로 떠넘기면 어떻게 하나 걱정할 필요도 없다.
둘째, 주택연금 사전예약 보금자리론은 40~50대 중·장년층이 주택연금 가입을 미리 약속할 경우 이자 혜택을 주는 연금상품을 말한다. 주택금융공사가 취급하는 장기 주택담보대출로 보금자리론을 빌려 집을 살 때 주택연금에 가입할 것을 약속하면 연금전환 시점까지는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다가 전환 시점이 되면 빚을 일시에 상환한 뒤 남는 돈을 연금으로 수령하는 방식이다. 부부 중 한 명이 만 40세 이상이고 무주택자 또는 부부 기준 9억원 이하 1주택 보유자일 경우 이용할 수 있으며, 주택 소유자 또는 배우자가 만 60세가 된 후 희망하는 시기에 주택연금으로 전환할 수 있다. 주택연금 전환가능 여부는 전환신청 당시의 주택연금 가입요건에 따라 결정된다. 만일 전환신청을 했는데 가입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에는 주택연금 가입이 거절될 수 있다. 초기보증료는 주택가격의 1.5%, 연보증료는 연금지급 총액의 0.75%다. 주택연금 종료 사유는 주택담보대출 상환용 주택연금과 동일하다.
이 주택연금은 금리를 0.15%p 우대해준다. 또 은행에서 만기 일시상환식 변동금리부 주택담보대출을 이미 받은 사람이 보금자리론으로 갈아타면서 주택연금 가입을 약정하면 추가로 0.15%p를 우대받아 총 0.3%p의 금리 인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우대이자는 60세 연금 전환 시점에 전환 장려금으로 일시에 받을 수 있다. 가령 만기 일시상환식 변동금리부 은행 대출을 가진 45세 B씨(3억원 주택 소유)가 보금자리론으로 갈아타고 주택연금 가입을 예약하면 주택연금으로 전환되는 60세에 296만원을 받는다. 사전예약 보금자리론에 가입한 뒤 주택연금으로 전환할 경우 조기상환 수수료는 면제된다. 단 주택연금 전환 이후 해지할 경우에는 면제된 조기상환 수수료를 납부해야 한다.
셋째, 우대형 주택연금은 부부 기준 1.5억원 이하의 1주택 보유 고령자의 노후생활비 지원을 위한 연금상품으로 일반 주택연금보다 월 지급금이 8~15% 정도 많다. 대출한도의 45% 이내에서 필요에 따라 수시인출을 할 수 있는 것도 이 상품의 장점 중 하나다. 기존 주택담보대출이 대출한도 45%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자기자금으로 초과하는 금액을 상환한 뒤 우대형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있다. 자기자금이 부족할 경우에는 주택담보대출 상환용 주택연금을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상품의 초기보증료는 주택가격의 1.5%, 연보증료는 연금지급 총액의 0.75%다. 주택연금 종료 사유는 앞의 두 상품과 동일하다.
주택연금 가입 방법
주택연금에 가입하려면 ‘상담→가입신청→주택연금 약정 및 실행’이라는 3단계를 거쳐야 한다. 상담은 콜센터(1688-8114)를 이용할 수 있고, 가까운 주택금융공사 지사나 은행 지점을 방문해 받을 수도 있다. 방문상담을 할 경우에는 예약상담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예약을 하지 않고 그냥 방문하면 오래 기다리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예약상담은 홈페이지(www.hf.go.kr)나 콜센터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가입신청 단계에서는 필요서류 제출 및 주택연금 보증신청이 진행된다. 필요 서류는 신분증, 주민등록등본 2부, 주민등록초본 1부, 전입세대열람표 1부, 가족관계증명서 1부, 인감증명서 2부 등이다. 가입신청을 하기 전에 거래할 은행을 정하고 대출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있는 은행에서 주택연금에 가입할 경우 조기상환 수수료가 면제된다. 주택연금 약정 및 실행 단계는 주택금융공사에서 은행으로 보증서를 발급한 뒤 고객이 거래은행을 방문해 주택연금 약정을 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연금이 통장으로 들어온다.
주택연금 이용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은?
주택연금은 노후준비가 부족한 고령자들이 노후 생활비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연금을 수령하다 중도에 해지하면 초기보증 수수료를 날리게 되므로 배우자와 자녀 등 주택의 이해관계자들과 충분한 의견을 나눈 뒤 신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07년 7월 주택연금 도입 이후부터 2016년 말까지 주택연금에 가입했다 중도에 해지한 사람은 총가입자(3만9429명)의 12.6%인 4985명이나 된다.
주택 소유자가 사망한 뒤 배우자가 계속 연금을 받으려면 배우자가 채무를 인수해야 한다. 배우자가 채무인수 및 소유권 이전 등기를 완료할 때까지 주택연금이 일시적으로 정지되기 때문이다. 주택연금에 가입할 때 사전에 채무를 넘겨받는다는 약정, 즉 사전채무인수약정을 맺으면 주택 소유자 사망시 추가 약정을 맺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다. 소유권 이전 등기는 소유자 사망 후 6개월 이내에 해야 한다.
주택연금 이용 중 이사를 할 경우에는 담보주택을 변경해야 주택연금을 계속 이용할 수 있다. 단, 이사하려는 주택가격(평가액)에 따라 월 지급금이 달라지거나 정산을 해야 할 수도 있으므로, 사전에 주택금융공사에 문의해보는 게 좋다.
>>손성동(孫盛東) 한국연금연구소 대표
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역임. 현재는 ‘한국연금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1인기업가를 꿈꾸고 있다. 공식블로그 ‘꿈꾸는 은퇴와 연금’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 동아대와 동서대에 출강하고 있다.
30년 이상 정든 직장을 퇴직하고 새로운 삶을 맞이하는 순간 1억원의 연봉을 받던 필자는 연봉 0원을 받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퇴직 후의 삶에 대해 나름 준비는 했지만 그동안 화려했던 현실은 사막과 동토의 땅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되고 단절되어 방향 감각도 점점 둔해져갔다. 그런데 마침 이때 인생이모작지원센터, 종로 3가에 있는 도심권50플러스센터 및 KDB 시니어브리지센터와 같은 교육 과정(인생설계 아카데미)이 있어 참여했다. 인생 2모작 준비를 위한, 액티브 시니어의 길로 가는 첫 발걸음이었다.
인생 2막의 나침반, 액티브 시니어연구원
필자는 위 센터의 교육 과정을 수료한 후 함께 수업을 들은 교육생들과 의기투합했다. 우리나라의 시니어들이 퇴직 후 방황하지 않고 새로운 삶으로 나갈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는 교육기관을 설립하기로 한 것이다. 바로 대기업, 금융기관, 교육기관 등 다양한 곳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이 참여해 만든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 연구원. 본 연구원은 참여자들이 축적한 경험과 지식을 사장시키지 않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사례 중심으로 강의할 수 있는 전문 강사로서의 길을 찾아주면서 한편으로는 퇴직 전후의 시니어들이 강사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연구원의 첫 사업은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에 액티브 시니어 과정을 개설하는 것이었다. 연 2회 과정으로 고려대 측과 무사히 협의를 마친 액티브 시니어 연구원은 강사진의 자질 향상을 위한 강의안 작성 및 시연 일정 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교육 과정에 필요한 재능기부 명강사 확보에도 주력했다.
마침 베이비부머들이 퇴직 후 쏟아져 나오는 시기이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시니어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신문 매체 홍보와 학교 측의 협조가 순조롭게 이뤄져 액티브 시니어 전문가 과정 정원 40명이 금세 채워졌다. 연구원들은 그동안 갈고닦은 강사로서의 자질을 발휘해 재능기부 강사로 참여했고 본 과정은 2014년 3월 6일 출범식을 가졌다.
액티브 시니어의 정신 : PRAVO
본 연구원 이사회는 교육 방침이자 모토로 ‘PRAVO’를 제정했다.
1. Pride : 자존감 중시
2. Relation : 소통, 관계 중시
3. Active : 적극적인 활동
4. Valuable : 가치 있는 삶 지향
5. Occupied : 평생 현역
이제 시니어들은 정년퇴직 이후 과거처럼 ‘뒷방 노인네’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와 함께 사회 및 경제 발전에 참여하고 상호 윈윈하는 상생의 파트너십을 발휘해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다.
교육 과정은 은퇴 설계 4분야, 즉 건강, 재무, 관계, 시간 관리에 대한 사례 중심 발표로 이뤄졌는데 현실감 있는 생생한 강의로 수강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성황리에 마무리된 이 과정은 수강생들이 재능기부와 봉사를 하는 등 다른 유사 강좌와 차이점을 보였다. 자문 및 진행 교수가 멘토로 참석해 교육이 끝날 때까지 함께한 것도 차별화된 프로그램이었다. 필자는 교육 과정을 진행하면서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한 주축을 담당했던 시니어들이 비록 은퇴는 했지만 여전히 대단한 능력과 건강을 유지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이들이 앞으로도 우리나라가 제2의 도약을 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기대했던 대로 일취월장 발전을 거듭해온 본 과정은 이번 3월이면 어느새 제7기생 교육 과정에 들어간다. 현재 액티브 시니어 연구원 및 고려대 액티브 시니어 전문가 과정 출신들은 사회 곳곳에 진출해 ‘PRAVO’ 정신을 구현해나가고 있다.
강의 수요 창출하고 콘텐츠 보급한다
고려대 액티브 시니어 전문가 과정 출신들은 현재 사회 각계각층에 진출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특히 제1기 한정수씨는 70세의 나이에 스타 강사가 됐고 김미정씨는 전업주부에서 감성하모니 코치로, 변용도씨는 인생 2막을 용도변경하는 전문 스타강사로서 열정 넘치는 인생 2막의 삶을 보내고 있다. 제2기 김점옥씨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사랑의 노래를 하며 봉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1기부터 6기까지 14인의 활동 상황은 롤모델화해 올해 상반기 라는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이외에도 ‘더평생진로정보연구소’,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 ‘한국생활건강연구원’, ‘앙코르브라보노’, ‘희망도레미’ 등에서 활동하는 본 연구원 출신들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 연구원의 꿈
본 연구원은 비영리 사단법인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새로운 도전을 해나갈 계획이다. 우선 전 지역에 액티브 시니어 연구원과 같은 지사를 설립해 서울 지역 활동에만 국한하지 않고 전국의 도·시·읍·면에 지부를 두고 고려대 평생교육원의 ‘액티브 시니어 전문가 과정’을 전국적으로 확대해나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니어 전문 강사만 최소 500명 이상이 확보돼야 하기 때문에 시니어 평생 현역의 꿈을 실천하는 전당으로 거듭 태어날 것이다.
액티브 시니어 연구원은 지금도 시연 활동을 매월 지속하고 있으며 특별강사를 초빙해 강의도 들으면서 연구 회원들의 능력 향상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많은 회원들이 자원봉사활동은 물론 공무원 연금공단 강사, 시니어 명강사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중 한 가지 사례를 대표적으로 소개하면 한국 시니어 블로거 협회다. 액티브 시니어 연구원의 김봉중 회원은 한국 시니어 블로거 협회 회장이 되어 활발한 PRAVO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 연구원은 동작50플러스센터 인큐베이팅룸(이솔터룸)에 입주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