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와 있다는 생각을 가끔씩 해본다. 2002년 한일월드컵 경기를 위해 서울 마포 상암동에 월드컵경기장이 생겼다. 근처의 난지도 쓰레기매립장은 환경재생 사업을 통해 월드컵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이 공원은 2002년 5월 1일 개장했다. 이곳과 가까운 성산동 거주 주민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공원 개장을 기념할 수 있는 운동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 무렵 인라인스케이트가 붐을 이루던 때라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마음이 끌렸다. 개장일 새벽,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혼자 공원으로 나갔다. 초보자였으므로 누
“그럴 리 없어요. 내가 왜 죽어야 하나요? 나 지금까지 착하게 살았어요. 의사가 실수했을 겁니다. 한 번 더 검사해보세요. 아니 이 병원 검사 결과 못 믿겠어요. 다른 병원 갈래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죽음 앞에 가까이 가 있음을 처음 알았을 때 큰 충격을 받는다. 현실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진단 결과를 인정하며 분노 단계에 들어간다. 죽음에 대한 공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심리를 충격,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5단계로 설명했다. 인간은 죽음을 만나면 공통적으로 두
한파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한겨울이니 추운 게 당연하지만 꼼짝하기 싫은 게 문제다. 내가 어렸을 땐 겨울이라 해도 삼한사온으로 사흘 동안 춥고 나흘 동안 따뜻했다. 또 계절이 바뀔 때마다 추울 땐 춥고 더울 땐 더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움직이기 싫었지만 오늘은 국립극장의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를 보러 가기로 한 날이어서 외출 준비를 했다. 젊었을 땐 우리 소리를 듣지 않았다. 서양문화를 받아들이는 게 더 멋지다는 치기 어린 생각 때문이었는데 몇 해 전부터 우리 소리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지난해 봤던 심청과 흥부를 소재로
50년이나 이어온 동네 친구 4명의 우정이 깨졌다. 일단 나 먼저 단톡방에서 탈퇴하고 개인적으로 절교 선언을 했다. 문제의 발단은 A와 B의 아내들끼리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오래 된 사이인데 오랜만에 만나 스트레스도 풀 겸 하고 싶은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던 중 A의 아내가 월세 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것이다. 늘 말쑥한 외모에 승용차도 타고 다녀서 전혀 그런 눈치를 못 챘다. 거슬러 생각해보니 차를 두고 전철로 출퇴근하니 좋더라, 해외여행은 돈이 너무 든다 하며 브레이크를 걸던 일들이 있었다. 형편이 어려워서 그랬
금강산 1만2000봉을 그린 걸까? 산봉우리마다 흑백의 조화, 여백의 미(美)가 담겨 있다. 붓에 먹물을 묻힌 화가가 하얀 화선지 위에 힘 있는 필체로 그린 수묵화 한 폭이 연상된다. 일산 신도시 대로변에 설치된 자전거 보관대 위에 비를 막기 위해 비스듬하게 올려놓은 투명 플라스틱 덮개에 생긴 형상이다. 흙먼지가 비바람에 밀리고 깎이며 만들어진 자국이다. 화가 그렸다 해도 저리 정교할 수 있을까? 근처를 지나던 바람[風]이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붓을 들고 숱한 나날 한 획 한 획 그리다 이제야 완성했지 싶다. 자주 지나던 길이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봤다. 이 작품은 2007년 4월부터 약 6개월 포털에 연재된 강풀 작가의 웹툰이 원작이다. 2008년 연극으로 만들어져 대학로 굿시어터에서 무대에 올려졌고, 2011년에는 영화로, 2012년에는 SBS 드라마로 방영돼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여운을 준 바 있다. 영화에서 김만석 역을 맡아 열연한 이순재가 연극에서 박인환과 함께 더블캐스팅됐다. 상대역 송이뿐 할머니는 손숙과 정영숙이 교대로 호흡을 맞췄다. 나는 박인환과 정영숙이 무대에 선 공연을 봤다. 연극은 인생 황혼기에 접어든 네 사람의 우정과 사랑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하면 요양 시설을 이용하는 시대다. 고령 인구가 750만 명에 이르고 부모와 자식의 동거 비율이 줄어들어 요양 시설에 대한 의식도 개선돼 선호하는 인구가 점차 느는 추세다. 전국에 21,775개의 요양 시설이 들어선 것을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요양 시설이 생기기는 하지만 자세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안전한 시설을 고르는 것이 만만치 않다. 이런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전국 요양 시설과 요양사의 전문성, 서비스, 평가 등급을 비교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케어닥’이 지난달 말 출시됐다. 케어닥을 스
외계인(?)을 만났다. 신기하여 조심조심 다가가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LCD 화면에 담긴 형상이 영화 ‘E.T’ 속의 외계인 모습을 닮았다. 아침 산책길에서 만난 일상의 작은 소재에서 한 컷의 사진을 만들어냈다. 사실은 마을 주변을 흐르는 농수로 얼음 위에 쓰러진 갈대 줄기가 얼음에 갇혀 만들어진 모습이다. 으스러진 갈대의 줄기 한둘이 흐르는 물결에 흔들리다 간밤 추위에 꽁꽁 얼어붙어 새로운 형상을 만들었다. 신기한 모습 부분만을 집중하여 화면에 담았다. 자세를 낮추어도 보고 위치를 좌우로 옮기면서 구도를 잡았다. 뒤집어 촬영도
아침 식사로 남편에겐 질냄비에 끓인 스트로가노프와 구운 생선 그리고 고기 감자조림에 나무 수저를 준다. ‘감자’라는 말만 들어도 속이 더부룩해지는 아내는 바삭하게 구운 빵에 직접 만든 블루베리 잼을 발라서 먹는다. 그리고 후식으로 뜰에서 딴 과일을 먹는다. 서로의 소소한 차이를 존중하며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노부부의 일상이 화면 가득 잔잔하다. 우리가 일과 삶을 일치시키며 살기란 그저 마음뿐이기 십상이다. 결혼한 지 65년이 된 건축가 츠바타 슈이치와 아내 츠바타 히데코는 각각 90세와 87세. 이 둘의 나이를 합치면 무려 17
깊은 겨울 셋째 토요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로 아주 재미있다는 코미디 연극을 보러 갔다. 원래 나는 약속이 있거나 공연을 보러 갈 땐 여유 있게 출발해 미리 도착해서 공연장의 포스터도 돌아보고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는데 이날은 시간 체크를 잘 못 해서 3시 공연인데 광화문역에 도착하니 15분 전이었다. 준비성이 없으면 이렇게 조마조마하다는 걸 느끼며 마구 뛰었다. 평소 공연 보던 극장으로 갔더니 ‘M씨어터’는 옆쪽 건물이라고 해서 또 뛰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대작을 많이 보았는데 대공연장과 소극장이 따로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입버릇처럼 ‘세월이 빠르다’라는 말을 자주 되뇌다 보니 2018년 무술년(戊戌年)도 역사 속으로 휭하니 사라져버리고 황금돼지해인 기해년(己亥年)을 맞았다. 이쯤해서 동년기자로서 1년여의 시간을 정리해 보려한다. 우선 재작년 동년기자 송년모임에서 나는 ‘독자가 뽑아준 감동상’을 수상했다. 더 좋은 글을 쓰라는 뜻으로 마음속에 새기고 2018년도에는 한 해를 시작했으나 좋은 글이 잘 써지지가 않았다. 열심히 쓴답시고 장고(長考)를 거듭 하다보면 하품이 나오다 목까지 올라오는 게으름 탓에 손을 놓아버리곤 했다. 더구나 작년 여름은 전례
누구나 젊은 날 짝사랑의 기억을 하나쯤은 지니고 있을 것이다. 여학교 시절 바람같이 나타나 어린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던 교생 선생님으로부터 함께 성탄 연극을 준비하던 교회 오빠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대부분 예방주사 자국처럼 기억의 한 구석에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낡아버린 기억은 이젠 나뭇잎 끼워진 책갈피처럼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때론 ‘날카로운 키스’처럼 다가와 운명을 바꿔버리는 짝사랑도 있다. ‘사랑과 운명’을 다룬 작품 중 고전으로 불리는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가 그렇다.
인생이란 참 알 수가 없다. 무척이나 복잡한 것이 사람의 일생인 것 같지만, 때로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나 행동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가 있다. 아주 어렸을 때 일이다. 당시엔 TV도 없었고, 좀 산다는 집이라야 고작 라디오 한 대가 있는 정도였다. 요즘처럼 책도 흔한 시절도 아니었다. 모두가 가난하고 어려웠지만, 시골은 문화적으로 더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시골 동네에 방학이 되면, 서울에 산다는 아이가 이웃집에 놀러 오곤 했다. 얼굴이 뽀얀 그 아이는 햇빛에 타 거무죽죽한 우리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았다.
2018년도 서서히 저물어가는 12월의 끝자락에서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 이라는 연극을 관람하게 되었다. ‘브라보마이라이프’가 동년기자들을 위해 주선해준 연극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허둥지둥 보내온 한 해를 뒤돌아보고 잠시 쉬어갈 좋은 기회에 한 해 동안 함께 활동했던 동년기자님들과 함께여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저녁 8시 공연시작 시각에 맞추어 조금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음악인들이 거리공연(Busking)을 펼치고 있었다. 어디서 그 많은 옷을 소품으로 준비했는지 무대 위에
“신이시여 저를 죽음이 바로 옆에 있는 이곳에서 무사히 작업을 끝내고 내려가게 해주십시오. 저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식구들이 나의 슬픈 소식을 전하여 듣고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젊은 시절 전기에 관련된 일을 했던 사람이다. 직접 고압송전탑에 올라가 보지는 않았으나 말만 들어도 작업환경의 상황이 생생히 느껴졌다. ‘윙 ~’ 하고 소리를 내는 전선의 진동음을 들으며 교체해야 할 전선과 애자, 용접기, 압착기, 전동 공구 등 무거운 짐을 싸 들고 송전탑으로 올라가는 작업자들. 절연 장갑과 부츠, 안전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