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단체에서 ‘글쓰기 강연’ 요청을 해왔다. 시간과 장소만 알려주고 그 뒤로 연락이 없어, 강연 자료를 보내려 하니 이메일 주소를 알려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냥 USB에 담아 오라는 것이었다. USB는 오래전에는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한번은 USB만 믿고 강연에 나섰다가 강의실 컴퓨터에 연결이 안 되어 낭패를 본 일이 있다. 사정을 설명하고 이메일로 강의 PPT를 보냈다. 그러나 파일이 열리지 않는다며 다시 USB에 담아 오라고 했다. 다른 강사들은 다들 USB에 담아 오는데 왜 나만 안 되느냐는 투였다. 강
짝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잠깐 만나는 것도 아니고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를 찾는 일이니 여간 신중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결혼을 인생에서 가장 큰일이라 하여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 했다. 수십 번을 만나고 또 만나며 짝을 찾는 사람도 많다. 그러다 결국 찾지 못하고 혼자 사는 경우도 있다. 고르고 고르다 결국 선택한 사람이 먼저 봤던 사람만도 못할 때도 있다. 배우자를 찾는 일은 이토록 어렵다. 그런데 잘살고 못사는 일은 또 다르다. 온갖 조건을 다 재보고 결정한 결혼이 너무 쉽게 깨지는 경우도 허다
요즘 지방에 근무하면서 무궁화호 열차를 주로 이용한다. 무임승차하다가 적발되면 요금의 30배를 벌금으로 물린다고 하는데 매번 승차권 조사를 하지 않고 가끔씩 한다. 입석표를 갖고 타는 사람은 지정 좌석도 없는데 어떻게 무임승차를 가려내는지 궁금하다.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처럼 승무원 마음대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면, 승무원을 직무태만으로 나무라기도 어렵다. 어느 승무원이 자신에게 실익도 없는 승차권 조사를 적극 하려고 할까! 열차를 타고 여행을 가본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예전에는 줄을 서서 기차표를 샀다. 열차 도착 10분
농촌에서는 봄이 오면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풍년제를 지낸다. 어린 시절에는 친구들과 함께 풍악대를 쫓아다니며 온 동네를 구경했다. 그 친구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다. 함께 부르던 가고파 노래도 생각나고 불러보고 싶다. 손끝에 물들인 봉숭아 꽃물이 첫눈 내릴 때까지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던, 꽃 같은 미소를 지었던 예쁜이도 따라 다녔다. 붉은 댕기를 휘날리는 귀여운 모습을 보며, 함께 봉선화 노래를 부르며 놀았던 기억들이 아스라하다. 2월 4일은 입춘이었다. 봄이 곧 아지랑이를 타고 우리 곁에 오
요즘 휠체어를 타고 지낸다. 살면서 경험하지 않고 알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눈에 자주 보여도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면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3개월 전 아주 사소한 부주의로 넘어지며 주저앉았다. 몇 번 발목을 접질린 적이 있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아주 날카로운 통증이 이어지면서 발이 심하게 붓기 시작했다. 냉찜질로도 감당이 안 됐다. 다급하게 병원에 갔더니 뼈에 금이 갔다고 했다. X-RAY는 왼쪽 발목을 하얗게 관통하는 가로금을 보여줬다. 부기가 가라앉기를 며칠 기다려 깁스를 했다. 깁스한 발을 움직이기가 버거웠다.
마술은 손과 머리를 써야 하고 몸도 많이 움직여야 한다. 마술의 한 장면을 보여주려면 사전에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간단한 마술이라 해도 종이를 접고 가위로 오리고 풀로 붙이는 작업이 필요할 수도 있다. 또 머플러를 말거나 로프로 여러 개의 매듭을 만들기도 한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학예회를 위해 소품을 준비하는 것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실제 공연에서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연습도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 마술을 배우고 익힐 때는 집중을 하고 손을 사용하면서 뇌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이렇게 익힌 마술을 사람들 앞에서
인천 앞바다 관광 유람선에 올라 파도가 이는 바다를 바라보니 작고한 서영춘 코미디언이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떳어도 고뿌(컵) 없으면 못 마셔요!”라며 웃음을 주던 말이 떠오른다. 아무리 좋은 풍광도 카메라 없이는 남겨둘 수 없다. 유람선 실내는 신나는 음악과 함께 흥에 겨운 승객들이 춤사위로 요란스러웠다. 갑판 위에 올라 드넓은 바다를 바라본다. 웅장한 인천대교가 위용을 드러내고 유람선 꽁무니를 따라 날고 있는 갈매기 떼는 승객들이 갑판 위 난간에 기대어 던져주는 새우깡을 먹으려 달려든다. 순식간에 먹잇감을 포획해가는 갈매기 모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사람들은 왜 술을 즐겨 마시는 걸까? 알코올 성분이 있어 마시면 취하는 음료의 총칭이 술이다. 축배(祝杯)는 축하를 위한 술잔이다. 모두가 잔을 들고 ‘건배!’, ‘브라보!’, ‘위하여!’ 등 구호를 외친다. 특히 연말연시 모임에 참석하면 축배의 노래와 별별 외침이 가득하다. 술 하면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예이츠의 시 ‘술의 노래’가 떠오른다.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오네 그것은 우리가 늙어서 죽기 전에 알게 될 진실은 그것뿐. 잔 들어 입에 가져가며 그대 보고 한숨짓네. 정철 송강의 장진주사(將
아들딸과 식사를 했다. 식사 도중 국민연금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나는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국민연금에 가입한 것이라 했다. 1988년 국민연금제도가 처음 도입됐을 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강제로 가입해야 했다. 재직 시에는 회사가 절반의 금액을 내줬으므로 큰 부담이 안 되었다. 그러나 퇴직 후에도 연금보험료는 계속 내야 했다. 나도 힘들었지만 계속 부었다. 그렇게 냈던 보험료가 이제 매달 연금으로 나오니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연금 때문에 자녀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다. 월 100여 만 원이
이 책은 요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는 내 삶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서 다시 일어본 책이다. 여류 작가 정희재 씨가 쓴 책인데 내가 얼마 전 다녀온 안나푸르나 트레킹 얘기도 나온다. 책 제목에는 ‘피곤한 세상에서 벗어나 잠시 쉬어갈 용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멈춰서도 괜찮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라는 부제도 있다. 평생을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온 우리에게 ‘잠시 멈춤’이란 단어는 생소하기만 하다. 멈추지 말고 앞만 보고 부지런히 가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말라야 트레킹에서는 달랐다. 고산
새해가 시작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이다. 1월 마지막 주 토요일, 추위가 좀 누그러진 것 같아 뮤지컬을 보러 대학로에 나갔다. 이곳에는 수많은 소극장이 있는데 자주 오다 보니 이제는 어디에 무슨 극장이 있는지 정도는 알게 됐다. 관람 작품은 ‘풍월주’. 신라시대의 스토리를 무대에 올린 픽션 창작극이다. 마로니에 공원길을 따라 유니플렉스 소극장을 찾았다. 몇 번 연극을 보러왔던 장소라 낯이 익다. 좌석 이름을 부이석이라 표현했는데 아마도 VIP석을 예스럽게 말한 듯 보였다. 1층 8열, 작품을 감상하기에 딱 좋은 자리였다. 연
시니어 활동을 하다보면 난다 긴다 하는 사람을 많이 만난다. 명함을 보면 이력들이 화려하다. 한 장의 명함에 이력을 다 써 넣기가 부족해 한 장처럼 접은 두 장짜리 명함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모임에 가보면 이런 사람이 많다. 한때 잘나갈 때 TV에서 본 사람도 있고 이런저런 행사 때 한가락씩 해서 얼굴이 많이 알려져 있는 사람도 있다. 이들 중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대우를 받는다. 그러나 행사 때 보면 내빈 소개가 끝나자마자 이들은 슬쩍 꼬리를 감춘다. 얼굴 도장 찍고 또 다른 행사장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 분야
전에 알지 못했기에 몇 년 전에 발표된 줄도 몰랐는데 요즘 내 마음 속으로 쏙 들어온 노래가 있다. 나는 음악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젊을 때는 트로트를 듣지 않았다. 아니, 듣지 않았을 뿐 아니라 트로트를 들으면 무식해 보일 것 같은 편견까지 있었다. 당시 어른들이 말했다. 나이 들면 음악 성향도 다 바뀐다고, 그러나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큰소리쳤다. 그런데 옛말 그른 것 하나 없다는 말처럼 나이가 드니 내게도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 그렇게 무시했던 가수 남진, 나훈아가 지금은 너무 섹시해 보
“이 나라 국적을 지닌 자는 누구나 70세가 되는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반드시 죽어야 한다.” 저출산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연금과 의료비 등으로 국가 재정이 파탄위기에 처하자 일본에서는 나이 많은 노인들을 제거함으로써 위기를 한 번에 해결하려는 법안이 가결된다. ‘70세사망법안’이라는 황당한 법안이 통과되어 2022년부터 실행된다는 선언으로 일본 사회는 대혼란에 빠져든다. 물론 소설 속 이야기다.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노인을, 국가 재정을 파탄 내는 주범으로 설정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공양과 존경의 대상이 되기는커
우리의 삶에서 친구는 중요한 존재다. 노후에는 더욱 그렇다. 늘그막까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건강한 친구가 있다면 금상첨화다. 건강을 잃고 일찍 저세상으로 간 녀석과 병마에 시달리는 친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늘 함께할 수 있는 건강한 친구는 큰 자산이다. 건강을 위해 보약 한 재를 지어줘도 아깝지 않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한때 인기를 누렸던 어느 개그맨은 “친구가 중요합니다. 오래도록 함께 가야 하니까 그 친구의 건강을 위해 보약 한 재 지어주세요~”라고 말해 사람들에게 웃음을 줬다. 우스갯소리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