蓮, 한여름 밤의 꿈처럼 덧없다

기사입력 2020-07-27 09:55 기사수정 2020-07-27 09:55

[공감 에세이]

연밭에 들어서기만 해도 연못의 수온이 후끈하게 다가오는 여름이다. 더위가 시작되면 넓은 연밭 가득 피어나기 시작하는 연꽃들은 제각각의 색상으로 품위를 내뿜기 시작한다. 한여름 땡볕에도 그 미모를 발화한다.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대부분의 연못은 여러 군데로 구획되어 있다. 열대 수련이 모여서 피어나는 데가 있고 잔잔한 모습으로 노랑어리연이 고개를 들고 있는 못도 있다. 그밖에 여러 가지 희귀 연들이 물 위를 덮고 있다. 진흙 속에서도 청결함이 돋보이는 백련과 홍련이 탐스럽다. 부처님의 진리가 스민 연꽃이 힘든 세파 속에서도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는다.

차츰 연꽃이 지고 나면 이어서 볼 수 있는 희귀한 꽃이 있다. 밤에만 꽃을 피우는 것으로 유명한 빅토리아연꽃. 우리가 흔히 보던 연과는 다르다. 연꽃 중에서 가장 큰 잎으로 쟁반처럼 물 위에 떠 있다. 잎의 지름은 1~2m가량. 어린아이가 앉아도 될 만큼 탄탄하다. 잎 표면은 짙은 녹색으로 반질거린다. 뒷면은 붉은색이다. 가시 같은 털이 붙어 있고 톱니바퀴 모양을 하고 있어 큰가시연꽃으로도 불린다. 꽃의 크기도 지름이 20~40cm나 되고 4개의 꽃받침에 꽃잎 수는 150장 정도 된다.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빅토리아연꽃은 남미 아마존 강 유역에서 자라는 열대성 수련과 식물이다. 7~9월경에 피는 꽃으로 영국의 식물학자가 처음 발견했다. 빅토리아 여왕을 기념하기 위해 학명을 ‘Victoria regia’로 명명했다고 한다. 빅토리아연꽃은 3일간 밤에만 핀다. 좀처럼 보기 힘든 도도한 꽃이다.

첫날은 절반만 피고 이틀째에 활짝 피어나 아름다운 향기를 낸다. 그리고 3일째에는 연밥과 꽃술만 남기고 안타까이 꽃잎을 하나씩 떨어뜨린다. 떠날 때를 아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다는 시구처럼 연꽃은 아름다움의 절정일 때 떠난다.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여름철 저녁이 되면 빅토리아연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연못가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리고 마치 출산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숨죽이며 어둠 속에서 조용히 기다린다. 예민해져 있는 빅토리아연꽃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불빛도 줄이고 말소리도 낮춘다. 빅토리아연꽃은 순백색과 붉은 계열이 있다. 붉은 연은 처음에는 흰색이었다가 점점 붉은색으로 짙어진다. 차츰 벌어지다가 오므라들며 왕관 모양으로 변한다.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귀족처럼 우아하게 피어난 빅토리아연꽃은 달빛을 받아 고고하다. 그리고 그 밤이 지나면 물속으로 잠기며 장렬하게 사라진다. 단 이틀간의 고고한 자태로 화려한 대관식을 하고 절정의 순간에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세상의 부귀영화도 이토록 덧없다. 찰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떠나는 빅토리아연꽃의 신비한 생애가 한여름 밤의 꿈처럼 스쳐가는 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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