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발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끈 노래가 있다. 그 시절을 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었을 ‘그대 먼 곳에’가 바로 그 노래다. 당시 건국대학교를 다니던 임석범(58)과 김복희가 마음과 마음이라는 듀엣으로 부른 이 노래는 752개 팀 중에서 대상을 차지했을 정도로 부드러운 포크 발라드로서 완성도가 단단했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난 지금도 아내 채유정(57)과 함께 마음과 마음을 이끌며 음악과 라이브 카페, 유튜브에 이르는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가는 임석범을 만나 노래의 숨결, 그리고 삶에 대한 그의 굳은 의지를 들었다.
마음과 마음의 리더, 중학생 때부터 가수가 꿈이었던 임석범의 본격적인 음악 생활은 홍서범이 몸담았던 걸로 유명한 건국대 밴드 옥슨에서부터였다.
“그런데 단체 생활이 저는 도저히 안 맞더라고요. 그리고 ‘불놀이야’를 부르면 홍서범 스타일을 따라 해야 하는 것도 스트레스였죠. 저는 내 스타일로 부르고 싶어서 갈등이 많았어요. 그래서 나왔죠.”
그러나 옥슨을 나온 이후는 좌절의 연속이었다. 프로덕션에 가서 오디션을 보고 대학교 노래 좀 한다는 사람들은 다 참가하는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에도 도전했다. 그러나 모두 떨어졌다. 훗날 대표곡으로 자리매김하는 ‘그대 먼 곳에’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당시에는 ‘하다 하다 안 되니까 군대나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군대 가기 전에 김복희 씨와 강변가요제에 나갔는데 운 좋게 대상을 받은 거예요. 1985년 7월 말 남이섬에서의 일인데, 11월에 영장이 나와서 3일 만에 군대에 가야 했죠. 그때 아내가 강변가요제에 나간다니까 명동에서 써지오바렌테 청바지 사주고 그랬죠.(웃음)”
37년 동안 연인처럼 함께하다
평생을 같이하고 있는 임석범과 채유정의 첫 만남은 1984년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음악으로 인해 만난 게 아니었다. 물론 그들의 주요 데이트 코스는 당시 대표적인 포크 가수들이 모이는 라이브 카페로 유명했던 무교동의 코스모스 코러스였지만, 채유정 입장에서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 거였지 정작 본인이 가수가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군대를 제대한 후 솔로와 듀엣 사이에서 고민하던 임석범은 결국 ‘마음과 마음의 프리미엄을 살리기로 하고, 다른 여자랑 노래를 하는 것보다는 여자친구를 꼬여서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아내에게 가수 훈련을 시키느라 전지훈련도 갔었어요.(웃음) 얼떨결에 가수가 된 거예요. 1987년에 소집 해제되자마자 첫 음반을 서울음반에서 냈죠.”
‘노래를 연습한 날은 울면서 집에 갈 때도 있었다’고 말할 정도로 임석범의 혹독한 ‘훈련’을 받아 가수로 거듭난 채유정은 이후 CM 가수 활동도 하고 교육방송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프로그램도 진행하는 등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그 과정에서 잘 따르던 후배가 조갑경이었는데 지금은 학교 선배의 형수님이 됐으니 세상모를 일이다.
유독 좌절이 많았던 음악 활동
분량상 본 기사에 수록하지 못한 이야기들까지 듣다 보니 좌충우돌 즐거운 에피소드가 많은 부부였다. 그러나 음악 활동은 쉽지 않았다. 두 사람이 합작한 마음과 마음 1집은 활동 시기를 잘못 맞췄다. 하필 88올림픽이 열릴 때 나온 것이다. 아무리 히트곡이 있다지만 이제 막 1집을 완성한 신인이 낄 자리는 없었다. 2집은 1993년에 나왔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좌절은 끝나지 않았다. 하필 서태지와 아이들이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같은 시기에 데뷔한 것이다. 당시 가요계는 장르가 뭐든 간에 무조건 서태지로 마무리되던 시절. 그 때문에 ‘웃픈’ 일도 있었다.
“제작자 선배님이 가만 보니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팀을 하나 만들면 돈을 빨리 벌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6인조 팀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팀 이름을 잘못 지었어요. 이름이 ‘쇼크’였거든요.(웃음)”
지금이나 그때나 아이돌 그룹치고는 꽤 충격(Shock)적인 이름이긴 했다. 그리고 아이돌 그룹을 처음 만든 제작자에게 닥친 시련도 ‘쇼크’였다. 의상이며 먹는 거며 자동차, 춤 선생까지 그렇게 돈이 많이 들어갈 줄 몰랐던 것이다.
“매일 세 끼 식사만 해도 그게 얼마예요. 결국 회사가 부도났어요. 일이 그렇게 되니 누구 탓을 하기도 어려웠죠.”
시대를 앞선 스트리밍 사업을 하기도
가요계가 아이돌 그룹 위주로 체질이 변화하면서 포크는 침체되었다. 마음과 마음도 주 무대를 미사리로 옮겼다.
“제가 처음 미사리에서 노래할 때는 라이브하는 데가 두 군데 있었어요. 그러다 점점 늘어난 거죠. 한때는 라이브 카페가 70개였고 가수는 200명에 이를 정도였어요. 미사리에 당구장 하나 차리면 장사가 될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정도였죠. 그러나 미사리가 점점 호객이 되는 가수들 위주가 되고 싸움이 나다 보니까 잘 안 되게 되었죠.”
그는 인터넷 사업도 한 적이 있다. 그야말로 시대를 앞선 사업, 이제는 모두의 일상이 된 음악 스트리밍 사업이었다.
“‘앞으로 음악은 디지털화되어 파일로 노래를 살 것이다’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미사리나 공연장을 다니면서 가수들 동영상을 찍었어요. 그걸 데이터로 만들어 유니텔에 서비스했죠. 그런데 사실 돈이 될 거란 생각은 전혀 안 했어요. 5분짜리 노래를 다운받는 데 15분 걸리던 시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데이터가 쌓이다 보면 회사가 어떤 길로 갈 것인지 확실하게 방향을 잡을 수 있거든요. 너무 빨리 시작한 거예요.”
유튜브에서 부활한 마음과 마음
그 실패의 경험이 약이 된 것일까. 마음과 마음은 요즘 유튜브와 잘 맞는 편이다. 코로나19가 본격화되면서 가수들의 무대가 사라지자, 아내 채유정이 유튜브에 뛰어들 것을 적극적으로 ‘독촉’한 덕분이기도 하다. 그녀는 남편이 시대를 앞선 인터넷 사업 경험도 있는 만큼 ‘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아내에게 설득된 남편은 7명이 들어오든 8명이 들어오든 유튜브에 마음과 마음의 자리를 만들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만든 채널 ‘마음과마음7080TV’의 현재 구독자는 3600명 정도. 2시간 넘는 실시간 라이브 공연과 토크를 하고, 공연이 끝나면 영상을 올리고 있다.
마음과 마음은 그 외에도 ‘은혜로운찬송가’라는 찬송가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기독교인인 부부는 요즘 교회에서 그들이 어렸을 적 불렀던 찬송가 대신 매번 새로운 가스펠을 부르는 걸 보고 찬송가를 제대로 불러보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곡씩 올리기로 했다. 그런데 오로지 사명감으로 시작한 이 실험이 성공한 것이다.
“집에서 컴퓨터로 반주와 코러스를 다 만들어요. 그리고 영상도 만드는 거죠. 한 곡 만드는 데 이틀 정도 걸리더군요. 3월 3일에 구독자가 120명이었는데, 지금은 9200명이에요. 하루에 200명씩 늘어난 거죠. 구독자가 늘어나자 조회 수 30만 회 넘는 영상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이거였구나 싶었죠.”
여백의 음악을 추구하다
그는 현재 강남 도산공원 앞에 자리한 라이브 카페 마음과마음을 운영하고 있다. 벌써 11년째 운영 중인 라이브 카페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명소다. 라이브 카페 운영, 유튜브 채널 운영, 그리고 새롭게 발표할 계획인 싱글 곡까지, 요즘 임석범의 하루하루는 바쁠 수밖에 없다. 어찌되었든 그의 본분은 가수. 음악 얘기를 할 때 그는 가장 활기찬 목소리를 냈다. 그가 하고 싶은 음악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여백이 많은 음악’이다. 그가 말하는 여백의 음악이란 듣는 사람이 들어갈 자리가 있는 음악을 뜻한다.
“어떤 가수는 슬픈 노래를 부를 때 본인도 슬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듣는 사람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요. 여백이 많은 음악은 듣는 사람이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놓죠. 그래서 아주 슬픈 노래는 슬프지 않게 불러야 진짜 슬플 수 있는 거라고 봐요. 진짜 슬픈 노래는 마이너가 아니라 메이저 코드라는 거죠. 담담하게 여백을 주며 부르면 가사가 들리고, 그러면 듣는 사람이 자기 감정을 넣어 아픔을 간직할 수 있거든요.”
정말 좋은 노래를 만드는 사람 되고파
임석범의 음악적 롤모델은 언더그라운드 포크의 대부라고 불렸던 조동진과 정태춘이다. 조동진의 ‘작은 배’, ‘어떤 날’ 같은 노래는 임석범의 여전한 애창곡이다.
“부끄러운 기억이 있어요. 데뷔하기 전에 방송 활동을 많이 했거든요. MBC 라디오에 정태춘 선배와 함께 출연한 적이 있어요. 사회자가 한 곡을 쓰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고 질문하더군요. 저는 곡 쓰는 데 오래 걸리지 않고 한 방에 끝내는 타입이어서 하루면 다 만든다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정태춘 선배는 일 년 걸린대요. 써놓고 다시 보고 다시 보고 하다 보니 곡을 쓰는 게 너무 어렵다는 거예요. 저는 너무 쉬웠거든요. 그게 너무 창피했어요. 그렇게 노래 하나도 정성 들여서 만드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대중적인 인기가 없어도 동료 선후배 가수들이 ‘정말 좋은 노래를 만든다’고 말하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게 그가 지금도 뜨겁게 품고 있는 꿈이다. 그의 끈질긴 꿈이 어떤 결실을 맺게 될지, 새롭게 나올 노래들을 들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