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려 비번을 잊었다! 내 예금 어떡하지?

기사입력 2025-06-12 16:23 기사수정 2025-06-12 16:23

금융 도슨트의 은퇴 금융 이야기 ②

고령화가 가속화되며 치매나 파킨슨병(퇴행성 뇌 질환) 같은 노년기 질환은 더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은퇴 전후 부모님이 인지 질환을 겪기 시작하면 가족들은 예금 인출 같은 현실적인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한 동료는 아버지가 돈이 없어질까 걱정돼 금고에 넣었다가 노인성 치매 증상으로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곤란했던 일을 털어놓았다. 언제든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현실이다.

본인이 직접 오면 인출은 가능

우리나라 은행 시스템의 핵심 원칙은 ‘본인 확인’이다. 은행 영업점에서는 신분증을 지참한 본인이 인출을 요청하면 진행해 준다. 본인이 아닌 가족이 영업점을 찾아가 치매 상태를 설명하며 대신 돈을 인출해 달라고 요청하면 은행은 들어주지 않는다.

ATM 인출, 문제없을까?

현금카드가 있고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면 은행의 현금 자동 입출금기(ATM)를 통해 돈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본인 인출이 원칙이다. 특정 가족이 반복적으로 인출할 경우 향후 상속 분쟁 시 법적 소명 등이 요구될 수 있다.

미리 준비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치매 진단 전, 본인의 의사 결정이 가능한 상태에서 사전 준비하는 것이다. 다음은 대표적인 방법들이다.

◆금융 자산부터 점검

정기적으로 자산을 점검해 어떻게 쓰고 싶은지 계획을 미리 세워두는 게 필요하다. 어카운트 인포(계좌통합관리 서비스)라는 금융기관 공동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면 누구나 자신의 계좌ㆍ카드ㆍ보험 등 숨은 금융자산을 한 번에 조회할 수 있다. 또 거동이 불편할 상황을 대비해 은행에 가서 인터넷 뱅킹 가입 후 사용법을 미리 익히는 게 좋다.

◆유언대용 신탁 등 금융신탁 이용

최근 주목 받는 상품이다. 본인(위탁자)이 생전에 금융사(수탁자)와 신탁 계약을 체결해 자산을 맡기고, 수익자(상속인)를 지정한다. 예금ㆍ부동산ㆍ보험 등 주요 자산을 생전과 사후에 원하는 방식으로 분배할 수 있다. 다만 신탁 계약 조건과 상속법(유류분 등)과 충돌할 수 있어 전문가와의 상담을 권한다.

◆보험금 대리청구인 지정

치매 보험의 경우 중증 치매가 진행되면 직접 보험금 청구가 어려우므로, 가족 등을 대리 청구인으로 사전 지정할 수 있다. 보험사별, 보험 종류에 따라 가능 여부가 다르므로 가입 시 미리 확인해야 한다.

이미 치매가 진행되었다면?

부모님이 치매로 판단 능력을 상실한 상태라면, 법적 절차가 필요하다.

◆성년후견인 제도

가족이 부모님 거주지 관할 가정법원에 성년후견을 청구해 재산 관리 권한을 취할 수 있다. 다만 신청부터 판결까지 수개월이 소요되며, 절차가 복잡하다. 그러나 중증 치매 상태에서는 유일한 합법적 대안이다.

제도는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금융회사는 사고 발생을 피하고자 철저히 본인 확인 원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

성년후견인 제도 외의 방법들은 대부분 권고나 상품에 지나지 않아, 법적 강제력이 약하다. 또 거래은행에 따라 해석과 대응이 달라, 복잡한 절차와 요구 서류를 자세히 확인해야 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거동 불가 예금주의 치료비 목적 예금 인출’에 한해서는 은행이 직접 해당 병원으로 이체해 줄 수 있다. 가족이 의사 소견서, 병원비 청구서와 가족관계 확인 서류 등을 제출하면 되는 데 은행 재량에 따라 제한적으로 시행 중이다.

☝️쓸모 있는 TIP

제도가 존재한다고 해서, 당사자에게 실질적으로 유용한 것은 아니다. 현실에 맞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가족과 충분한 논의 후 사전 대비가 필요하다. 치매 초기라도 의사소통 및 서명을 할 수 있다면 가족과 함께 은행 방문 후 여러 통장을 한 계좌로 모으거나, 입출금 알림 서비스를 가족이 받도록 설정한다. 1인 가구 또는 상속 분쟁 우려가 있다면 신탁 상품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신탁을 통해 생전에는 노후 자금으로 사용하고, 치매 진단 시 요양비로 자동 전환되도록 설정하면 가족 간 갈등도 막고 자산도 목적에 맞게 쓰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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