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립 20주년을 맞은 사단법인 미래포럼은 ‘의제의 공론화’와 ‘실천의 연계’를 동시에 추구해 온 민간 시민사회 플랫폼이다. 그간 미래포럼은 어떻게 성장해 왔고, 앞으로의 20년은 무엇을 대비하고 있는지 묻기 위해 여성학 1세대이자 포럼의 수장인 장필화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베이비붐 세대를 수동적 수혜자가 아닌 체인지메이커로 위치 짓는 것이 초고령사회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미래포럼을 이해하려면 그간의 발자국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된다.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공론화에 앞장선 회원포럼과, 기업 내 여성의 활동 무대 확보를 위한 ‘30% 클럽’의 지속적인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또 연령주의를 넘어 돌봄의 가치를 경제의 언어로 복권하자는 ‘초고령사회 디자인 클럽’과 그 결과물인 ‘좋은어른 아카데미’도 최근 활발한 모습을 보여 준다. 포럼은 신자유주의 등의 확산으로 성장·경쟁 중심으로 기우는 사회를 경계하고 차별의 문제를 지적해 왔으며, 민간 주도 모델을 바탕으로 인식 개선을 위한 다양한 실험을 이어 왔다.
“의제는 쌓였고, 사람은 움직였다”
미래포럼은 여성·가족 친화적 기업인들이 모여 미래의 변화를 조망하고 준비하는 ‘회원포럼’으로 시작했다. 장 이사장은 “20년간의 활동 성과를 하나의 결과물로 단정하긴 어렵지만, 다수의 대통령 후보를 비롯해 수많은 명사와 기업이 포럼을 거치며 의제의 촉을 세우고 방향 감각을 키웠다”고 회고했다.
특히 ‘30% 클럽’은 10여 년 넘게 기업 의사결정 구조의 성별 다양성을 압박해 온 상징적 캠페인이다. 여성 사외이사 비중 확대를 넘어 ‘여성 임원 비율 30%’라는 명확한 목표를 제시해 기업 거버넌스의 상식을 흔들었다. 여전히 변화는 더디지만, 그는 “연구와 토론, 연대를 통해 기업과 정책의 공기를 바꾸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고 평가했다.
기술·에너지 전환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다뤄 온 회원포럼은 올해 ‘다섯 가지 담대한 희망’이라는 아젠다로 폭을 넓혔다. 민주주의, 지속가능성, 다양성, 기술, 그리고 ‘돌봄의 가치’가 한 축이다. 최근 회의에선 ‘돌봄의 가치, 헌신의 정치경제’를 놓고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장 이사장은 “돌봄은 시간 단가로 재단되는 시장의 논리만으로는 해법에 닿기 어렵다”며 “헌신과 관계성이라는 돌봄의 본질을 경제의 범주 안으로 복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폐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을 정책·지표에 반영하는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시장 논리에 젖어 있는 가치관만으로는 초고령사회가 던질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특히 돌봄 인력 부족과 관련해선 “외국인 돌봄 인력 등 저임금 외주화로 돌봄의 질과 지속가능성은 개선되지 않는다”며 “결국 베이비붐 세대가 주체가 되는 ‘노노(老老)케어’가 중심이 되는 해법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그는 “정부는 가이드라인과 안전망을 세우고, 실행은 민간이 다양하게 해야 한다”며 “노노케어와 영 케어러를 함께 지지하는 다층적 돌봄 인프라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단기 성과’의 관성을 넘어, 민간이 10년·15년을 보고 실패를 감수하며 실험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연령주의, 언어에서 행동으로
포럼은 2010년대 중반부터 ‘초고령사회 디자인 클럽’을 꾸려 기업 현장 교육, 세미나, 훈련 과정을 지속해 왔다. 여기서 진화한 것이 시민 주도 실천조직 ‘우디 클럽’이다. 이름 그대로 “우리가 디자인한다”는 베이비붐 세대의 선언이다.
대표 프로그램인 ‘좋은어른 아카데미’는 20~30명 소수 정예로 운영된다. 대형 강연을 지양하고, 응집력 있는 학습·실천 커뮤니티를 지향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이후 보람을 찾고 사회적 기여를 설계하도록 돕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이를 통해 윤현숙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나눔 밥상’처럼 생활권에서 바로 실행 가능한 프로젝트들이 자라난다. 작은 식탁에서 시작된 환대의 경험은 예술·복지·지역재생으로 번져 가고 있다.
장 이사장은 연령주의를 여성 인권 운동과 닮은 과제로 본다. “롤모델이 부족하고, 사회 전체가 관성적으로 차별을 내면화한다”는 점에서다. 그는 “연령주의는 고령화와 노인 관련 논의에서 중요한 분야 중 하나”라고 평가하고, “미디어에서는 성별과 연령이 겹쳐 연령주의가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데, 노년 여성을 가난하고 병약하거나 혹은 드세고 억센,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흔히 언론이 말하는 ‘고령화 위기’라는 표현의 프레임에 주목하며 “노인을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순간, 정책과 시장, 문화는 노인을 문제로만 본다”고 설명했다. 해결의 첫걸음은 언어의 개혁과 노인의 능력·역할에 대한 재교육이다. 노인이 ‘할 수 있는 것’을 사회가 재발견하도록 돕는 콘텐츠와 인식 개선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를 독점하고 있는 AI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장 이사장은 “AI는 정보와 데이터의 편향을 가속한다”고 짚었다. 젊고 중심부에 위치한 집단이 데이터의 다수를 공급하면 노인의 욕구와 맥락은 설계에서 누락되기 쉽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인이 데이터를 생산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시니어 계층의 인공지능 활용과 이를 위한 콘텐츠 이용·참여·기록·창작이 확대될수록 시니어 친화적 기술·서비스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미래포럼이 꿈꾸는 ‘좋은 어른’
마지막으로 미래포럼의 화두 중 하나인 ‘좋은 어른’에 대해 물었다. 장필화 이사장이 말하는 ‘좋은 어른’은 단순한 인격 찬사나 미덕의 나열이 아니다. ‘좋은 사람’의 범주를 넘어, 인간을 본질적으로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존재로 보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재산·학력·경력 등 소유와 위계가 대우를 가르는 오늘의 질서에 맞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 차이를 넘어서는 단계로 나아가는 일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넘어, 인간에 대한 예의와 책임을 스스로 부여하는 태도’다. 이것이 연령주의를 넘어 미래사회를 디자인하는 출발점이라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장 이사장은 “‘좋은 어른’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을 넘어, 관계를 통해 타인과 공동체에 기여하며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성숙한 인간상을 제시하는 개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