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오춘실은 파랑새”

입력 2025-10-08 07:00

[북인북] 김효선 작가의 엄마의 사계절 에세이

북인북은 브라보 독자들께 영감이 될 만한 도서를 매달 한 권씩 선별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해당 작가가 추천하는 책들도 함께 즐겨보세요.

엄마와 나는 물에서 새롭게 만났다. 일하는 여자라는 공통점으로 말문을 텄다. 165개월을 근속한 직장을 그만두고 이제 엄마는 43개월째 헤엄치고 있다. 엄마가 물을 잡았다 놓으며 이야기처럼 졸졸 흘러가면 나는 그 말을 좇아 엄마를 따라갔다.

“사는 거 힘들었어?”

“힘들어도 할 수 없지 뭐.”

- ‘오춘실의 사계절’, 17p

엄마와 딸의 관계는 친밀하면서도 어쩐지 서먹하다. 하지만 ‘오춘실의 사계절’ 속 모녀는 일주일에 세 번 손을 맞잡고 수영장을 오가며, 물속에서 함께 시간을 쌓아간다. 딸이 기록한 엄마의 삶은 세상의 모든 ‘오춘실’에게 따뜻한 찬사를 보낸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저자의 엄마 오춘실 씨는 평생을 일하며 살아왔다. 열네 살에 염전에서 노동을 시작해 과수원, 식당, 공장, 병원, 목욕탕, 아파트, 학교까지 닥치는 대로 40년을 버텼다. 마지막 직장은 고등학교. 정년퇴직을 두 달 앞둔 2020년 12월 허리 골절로 일을 내려놨고, 코로나19로 조촐한 퇴임식을 치렀다. 딸은 생각했다. “엄마의 대단한 인생에는 더 거창한 인사가 필요하다.” 그래서 탄생한 책이 바로 ‘오춘실의 사계절’이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16년 차 온라인 서점 MD로 일하는 저자는 가난한 집안 환경을 숨겨왔다. 엄마를 좋아했지만, 사람들 앞에 자랑하진 못했다. 초졸 학력, 고된 노동, ‘오춘실(吳春實)’이라는 촌스러운 이름 때문이었다. 그러나 “직장이 괴로울수록 평생을 일한 엄마에 대한 존경심이 커졌다”는 고백처럼, 사회생활을 하며 뒤늦게 깨달았다. 엄마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을. 특히 엄마는 몸이 힘든 일은 견뎌냈지만 무시당하거나 억울한 일은 참지 않았다. 가난했지만 자존심은 높았고, 그 삶은 딸에게 귀감이 됐다.

은퇴 후 처음 맞이한 여유 속에서 딸은 엄마에게 수영을 배우자고 했다. 작고, 자주 다치고, 몸이 성치 않은 엄마는 남들보다 더디게 배웠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요즘은 수영하는 게 제일 즐거워”라며 환히 웃는 엄마를 위해 딸은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파수꾼을 자처했다.

함께 물속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며 모녀는 새로운 계절을 연다. 바람은 단순하다. 지금처럼 나란히 수영하고, 웃고, 살아가는 것. 앞으로의 사계절도 그렇게 물속에서 손을 맞잡은 채 맞이할 것이다.

▲김효선 작가의 저서와 사인(브라보 마이 라이프)
▲김효선 작가의 저서와 사인(브라보 마이 라이프)

첫 책으로 어머니 이야기를 쓰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에게 가장 익숙한 매체가 책이었어요. 살다 보면 누구나 ‘내 인생을 책으로 쓰면 한 권이 나온다’는 말을 하잖아요. 언젠가 엄마 얘기를 듣다가 그 말이 떠올랐습니다. 재밌는 구석도 많았고, 언젠가 엄마가 하늘나라로 떠나더라도 그 흔적이 세상에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엄마의 이야기를 사계절로 담은 이유가 있을까요?

엄마 이름이 ‘춘실’, 봄의 열매예요. 봄에 태어난 첫딸이라 할아버지가 지어주셨죠. 이름 때문일까요, 엄마는 예전부터 계절과 날씨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또 수영에서 ‘사이클’은 일정 간격으로 반복되는 동작인데 계절의 흐름과 비슷하더라고요. 그래서 엄마의 인생과 우리가 함께한 수영의 시간을 사계절로 나눠 담으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계절 중 엄마 인생은 겨울쯤에 와 있고, 40대인 저는 가을 초입에 있죠.

가족사를 솔직하게 드러내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어릴 때는 가난한 환경을 숨기며 살았어요. 처음엔 아버지 이야기를 빼고 쓰려 했지만, 그러니 엄마의 삶이 왜 힘들었는지 설명되지 않더군요. 결국 다 털어놓기로 했습니다. 수영을 하면서 제 성격이 많이 달라졌어요. 화장이나 겉치장 없이 ‘그냥 나’로 있을 수 있었기에 숨기던 이야기도 자연스레 꺼낼 수 있었죠. 털어놓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졌습니다. 수영은 제게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씻어내는 시간이에요. 세상에서 ‘하면 무조건 기분이 좋아지는 일’을 찾기 어렵잖아요. 저에겐 수영이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이날 인터뷰에 동석한 어머니 오춘실 씨. “책을 읽고 감동을 많이 받았다. 딸은 귀하고 소중한 존재다. 제 이름을 세상에 남겨줘 고맙다”고 전했다.(주민욱 프리랜서)
▲이날 인터뷰에 동석한 어머니 오춘실 씨. “책을 읽고 감동을 많이 받았다. 딸은 귀하고 소중한 존재다. 제 이름을 세상에 남겨줘 고맙다”고 전했다.(주민욱 프리랜서)

함께 수영을 하면서 모녀 관계가 어떻게 달라졌나요?

26세에 취업하며 독립했다가, 엄마가 은퇴하시면서 서울에서 10년 만에 함께 살게 됐어요. 더우나 추우나 꼭 붙어 다니는 모녀를 보고 주변에서 신기해합니다. 일주일에 세 번 수영을 가니 싸움이 오래가지 않고 금세 화해하게 되더라고요. 수영을 함께하면서 엄마가 잘 웃는 사람이고, 사람들과 장난칠 때 드러나는 밝은 모습까지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엄마 키가 예전보다 더 작게 느껴져 아기 같고, 때로는 소녀같이 느껴져요. 지금은 모녀를 넘어 사람 대 사람으로 다시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엄마와 친해지고 싶은 분들에게 조언해주신다면요?

책을 읽고 엄마와 대화를 시도했다가 상처를 받았다는 분들이 있어요. 저는 부모와 자녀 사이가 꼭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놓아야 할 관계는 놓는 것도 필요하죠. 다만 엄마를 조금 더 이해하고 싶다면, 그분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들여다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저 역시 엄마가 소녀로 살아본 적 없이 곧장 어른이 되어야 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사람의 사정을 이해하면 그 사람이 새롭게 보입니다. 서로의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관계가 조금은 너그러워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책을 읽은 수영장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저희가 신문에 나온 걸 보고 수영장에서 엄마를 알아보신 분이 계셨어요. 엄마가 뿌듯해하셔서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잠원 한강공원 수영장에서 출간 기념 파티도 열었는데, 수영장 친구들과 지인들이 ‘뭉클하다’, ‘엄마가 한 명 더 생긴 것 같다’고 후기를 전했어요. 그날 엄마는 11명의 딸이 생기셨죠.(웃음) 다만 아빠는 책을 보지 못하셨어요. 힘들었던 시절 이야기가 담겨 있어 엄마가 걱정하며 숨기셨거든요. 엄마 속이 참 깊습니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나는 일하다 병들었고 일하며 기뻤다. 책 파는 일은 내게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일이었다. 엄마도 청소 일을 할 때 힘들고 억울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그 일을 좋아했고,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싹 청소하고 끝난 자리 보면 기분이 좋았어. 상쾌했어.”

“돈 버는 거랑 기분 좋은 거랑 뭐가 더 좋았어?”

“돈이 삼, 상쾌한 게 칠이여.”

- ‘오춘실의 사계절’, 216~217p

집필 과정에서 가장 마음을 울린 순간은 언제였나요?

겨울 챕터 ‘2024년 종로’ 편에 엄마가 인지증(치매) 초기 진단을 받은 이야기가 나와요. 그 당시에, 그리고 그 부분을 쓰면서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엄마의 검사지 결과가 특히 저를 울렸죠. 엄마는 ‘기억력이 떨어졌다’고 답하면서도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 ‘살아 있는 것이 즐겁다’고 답하셨거든요. 엄마는 기억력이 나빠졌다는 것 말고는 불편함이 없는 거예요. 다행히 지금 엄마는 오히려 저보다 더 잘 기억하시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뇌는 한번 손상되면 회복이 어렵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지금 이 상태로 오래 건강하게 지내셨으면 합니다.

엄마는 나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저에게 엄마는 집에 있는 파랑새 같은 존재예요. 행복을 찾아 세계 곳곳을 떠돌았지만, 결국 저를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은 엄마였더라고요. 평생 잔소리를 한 적 없으시고, 결혼 여부도 제 선택이라고 존중해주셨죠. 무엇보다 회복 탄력성이 뛰어나 금세 다시 일어나는 것이 엄마의 장점이고 늘 배웁니다. 저에겐 정말 훌륭한 사람이에요.

세상의 모든 ‘오춘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요?

정년퇴직한 엄마는 스스로 여기까지 완주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세요. 저는 60년을 살았다면 이제 여섯 살처럼 살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희생하며 살아오셨으니 이제는 웃으며 지내셨으면 합니다. 조금은 철없어도, 아기처럼 즐겁게요. 저희 엄마 오춘실 여사처럼요!

(브라보 마이 라이프)
(브라보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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