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 혐오 시대,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할까?

입력 2025-07-18 08:00

[북인북] 최정화 작가의 호르몬 체인지

북인북은 브라보 독자들께 영감이 될 만한 도서를 매달 한 권씩 선별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해당 작가가 추천하는 책들도 함께 즐겨보세요.

우리는 왜 늙어서는 안 될까? 길거리에 늙은이들이 돌아다니도록 왜 그냥 놔두지 않는가?

피부가 늘어지는 게 흉하다면 아기에게 근육이 없는 것 또한 괴이해 보여야 마땅한 일이 아닐까?

전염되지도 않는 검버섯을 누구를 위해 제거해야 하느냔 말이다.

나는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래 봤자 미치광이 취급만 받을 뿐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 ‘호르몬 체인지’, 22p

사회와 인간 내면의 불안, 기후 위기 등에 천착해온 최정화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이 출간됐다. 전작 ‘흰 도시 이야기’에서 기억을 삭제하고 왜곡하는 전염병이 가져온 혼란을, ‘메모리 익스체인지’에서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이주한 소녀를 써 내려갔던 그. 신간 ‘호르몬 체인지’에서는 젊음을 살 수 있게 된 근미래를 묘파한다.

소설의 주된 배경 중 하나인 ‘호르몬 리버스’는 호르몬 수술 전문 병원이다. 입원해 있는 ‘바이어’들은 모두 자신의 생물학적 나이를 젊게 되돌려줄 ‘셀러’를 기다린다. 바이어의 신체에 딱 맞는 셀러를 찾기란 쉽지 않다. 바이러스 감염과 기타 질환, 알레르기 등을 일으킬 확률이 가장 낮은 셀러를 선별해야 해서다.

수많은 검사를 거쳐 대상자가 매칭되면 바이어는 마침내 수술을 받을 수 있다. 큰 비용이 들지만 그만큼 확실한 젊음을 보장한다. 이제 거리는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노인들은 타인의 시선을 견디지 못해 밤늦은 시간 어두운 골목만 찾아 걷는다. 청춘만 통용되는 화폐처럼 여기는 셈이다.

가상 상황이지만 실제 우리 사회도 퍽 다르지 않다. 젊음을 유지하는 일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시대다.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외모는 칭찬이 되고 주름은 감춰야 할 결점이 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사회 전체가 만들어낸 분위기이자 강박일지도 모른다.

최정화 작가는 다섯 해 만에 펴낸 ‘호르몬 체인지’로 노화를 혐오하는 사회를 날카롭게 비춘다. 다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외로움과 선택은 따뜻하게 바라본다. 욕망조차도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통찰 아래 다양한 인물을 담았다. 입체적인 사례를 통해 삶의 다층적인 의미를 되묻는 이 소설은 우리 모두가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만든다.

▲최정화 작가의 저서와 사인(브라보 마이 라이프)
▲최정화 작가의 저서와 사인(브라보 마이 라이프)

노화를 감추라는 사회

소설 속 중심 사건인 ‘호르몬 수술’은 최 작가가 일상에서 접한 ‘임상실험 광고’에서 출발했다. 실험 참여자 중 생계를 위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놓는 사례를 접하곤 그 구조를 소설 안에서 극대화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누군가는 젊음을 얻고, 또 누군가는 희생자가 되는 현실 말이다.

주인공 한나는 70세 노인이다. 처음엔 자연스럽게 나이 들겠다 다짐했지만 친구들 대부분이 수술을 받고 자신 곁을 떠나자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결국 수술을 결정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매칭된 상대는 스무 살의 셀러. 생각지도 못한 청춘을 다시 얻게 된 한나는 설렘과 동시에 낯선 혼란에 빠진다. 결국 젊음을 되돌리는 일조차 외로움과 소속감의 문제로 연결되는 셈이다.

젊어야만 일자리가 생기고, 사랑받을 수 있고, 혼자가 아니라는 환상 속에서 한나와 같은 바이어들은 자기 몸을 바꿔가며 안정을 얻으려 한다. 그러나 최 작가는 모든 인물에게 감정이입의 여지를 남긴다. 타인의 피를 받아 젊음을 유지하는 사람이든, 그 피를 제공하며 생존을 도모하는 사람이든,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고군분투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한나를 비판할 수 없었어요. 내면보다는 외면에 몰입하고, ‘잘 나이 드는 것’보다 ‘더 젊어지는 것’에 몰두한 사람들의 강박은 우리 삶에 매일 노출되는 미디어로부터 기인하고 키워진 거라고 봐요. 욕망의 실체를 따라가다 보면 그 이면에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있는 거죠. 인간이라면 자신이 속한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저도 예전엔 흰머리가 자라도 손대지 않았는데, 사람들의 시선과 첨언이 부담스러워 결국 염색하게 됐죠. 흰머리를 부자연스럽다, 지저분하다고 여기는 사회에서 우리는 정말 자유롭게 나이 들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자리를 양보받아서 좋은 게 아니라 미안해서 버스를 못 타겠다더니,

양보하고 원숭이 구경하듯 힐끗거리는 시선이 부담스럽다고 불만스러워하더니,

이젠 양보하고 구경하는 사람이 없어서 괜찮은 건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어이가 없어져서 헛웃음이 나왔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엄마도 젊어지고 싶었나?

호르몬 수술을 받는 친구들의 뒷담화를 내게 실컷 늘어놓을 때는 언제고?

그건 탐욕이고 자연을 거스르는 중죄라고 언성을 높여놓고는 이제 와서 대체 왜?

- ‘호르몬 체인지’, 43p


다음 세대를 위한 성숙한 준비

‘호르몬 체인지’ 속 인물들은 혐오, 불평등, 빈부격차, 기후위기의 일선에서 늙을 것인지, 젊어질 것인지, 생존할지, 양심을 지킬지 등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당한다. 어느 쪽에도 완전한 정답은 없지만 최 작가는 이 풍경을 통해 독자들이 삶의 방식에 대해 근본적으로 자각하길 바란다.

“하나의 주제를 대놓고 뾰족하게 다루면 관심 없는 독자들은 거부감을 느끼기도 해요. 그래서 모두가 공감할 만한 인간의 이야기로 접근했어요.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삶의 방식이 미래 세대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이러한 시도는 단지 이야기의 구성을 위한 전략이 아니다. 최 작가에게 문학은 사회가 지켜주지 못하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는 문학이야말로 가장 약한 존재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의 사연을 기록해줄 수 있는 자리라고 믿는다.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문학만이라도 배제된 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줘야 한다”는 그의 말은 작가가 작품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다시금 짚는다. 이런 철학은 책 안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최 작가는 한나를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에 입체적 사연을 부여함으로써, 단순한 비판이나 이상화로 환원되지 않는 복합적인 현실을 그리고자 했다. 셀러와 바이어, 가족을 위한 희생자와 욕망을 좇는 자 사이에는 윤리적 경계보다 존재적 고뇌가 선명하다.

최 작가는 문학이 세상을 바꾸기 위한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사소한 실천에서 시작된다고 여긴다. 후배 작가들과 함께 지속 가능한 창작 생태계를 고민하고,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며, 길고양이를 돌보는 일상 속에서도 그 신념을 이어간다.

“성숙한 삶을 지향해요. 물러남이나 포기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살아갈 자리를 마련해주는 태도죠. 언젠가 우리는 이 자리를 떠나야 하잖아요. 어려움을 견디며 나만의 속도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중요해요.”

‘젊음’을 둘러싼 이야기는 결국 ‘세대 간 책임’이라는 더 깊은 문제로 확장된다. 지금의 우리가 누리는 편안함이 다음 세대의 자원을 앞당겨 소모한 결과라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그 빚을 마주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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