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칠곡군 가산수피아 정원은 학이 무리 지어 놀던 산이라는 유학산(游鶴山) 기슭에 있다. 터 한번 잘 잡았다. 산의 야생적 아우라가 흘러내려, 성형을 한 인공정원의 미끈한 얼굴에 생기를 더해준다. 정원 규모는 커 민간정원 가운데 최대 수준이다. 조경도 쌈박하다. 터진 실밥 없이 누비는 바느질처럼 뛰어난 솜씨로 싱싱한 맵시를 구현했다. 자연과 인위를 본때 있게 조율해 풍경의 미감과 권위를 끌어냈다. 조경의 문법에 어둔한 눈으로 보기에도 공력을 다해 잘 꾸민 정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 이곳엔 대형 양돈장이 있었다. 사업가인 정원주는 그걸 밀어내고 파크골프장을 건립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문득 아까운 생각이 들어 부지 13만 2231㎡(약 4만 평)를 떼어내 정원을 조성했다. 좋은 선택을 한 셈이다. 2019년 개장과 더불어 성장세를 타면서 입장객 많은 대구‧경북권의 ‘핫플’로 부상했다. 정원에 집어넣은 내용은 다채롭다. 천년솔숲, 이끼정원, 암석정원, 황톳길 등으로 이루어진 정원 구역 외에 미술관, 식당, 카페, 캠핑장, 카라반까지 갖추었다. 아이들이 반색하며 팔짝팔짝 뛰는 초대형 공룡 모형들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볼거리와 놀거리를 만들어 세대와 취향의 수용 폭을 넓혔다. 남녀노소 함께 정원과 문화와 레저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뭐니 뭐니 해도 기분 좋은 건 정원 구역을 걷는 일. 경사진 소로를 따라 푸른 정원으로 접어들자 나무들의 상큼한 향기가 콧등을 친다. 수령 50년에 이르는 좌우편 벚나무들의 거대한 우듬지를 비집고 들이치는 가을 햇살은 명주실처럼 부드럽다. 스프링을 밟는 듯 발길에 탄력이 붙는다. 더 가뿐한 건 눈길이다. 서서히 고조되는 풍경의 아름다움에 망막이 씻기는 느낌이다. 붕어들이 주둥이를 뻐끔거리는 수족관처럼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가을 정취 물씬한 정원을 걷는 쾌감이라니.

정원의 나무들은 수려하다. 엉성한 나무가 드물다. 속세의 계산법으로 보면 놀랄 만한 고가를 매길 수목이 흔하다. 그래 화려할 지경으로 풍경이 훤칠하다. 특히 천년솔숲 구역이 그렇다. 미모와 품격을 겸비한 소나무들이 즐비해 보석 진열장을 연상시킨다. 정원주가 재량권을 행사해 나무를 정선한 효과가 이렇게 각별하다. 나무들 일부는 원래 이곳에 있던 것들 중에서 뽑았다. 일부는 뒷산에 살다 발령장을 받고 이사했다. 탈락한 나무들은 서운했을까. 정반대이지 않을까. 태어난 제자리에서, 야생의 숲에서, 그냥 생긴 그대로 살게 된 길운을 자축했으리라. “엉성한 나무가 따로 있나? 나도 도도한 한 생명인걸!” 그렇게 읊조리며.
내 경우는 잘생긴 나무들 일색인 정원, 먼지 없이 깔끔하게 관리된 정원에 좀 아쉬움을 느끼는 축에 속한다. 나무들을 어느 정도 방목한 정원. 잘났거나 못났거나 식물들이 자연스레 어울려 사는 정원. 자연의 자유와 야성을 느낄 수 있는 정원. 그런 게 구미에 맞다. 그렇다고 가산수피아 정원이 서먹하게 느껴지는 건 아니다. 정교한 씨줄과 날줄로 탄탄하게 직조된 피륙과 같은 완성도를 추구한 정원에 무슨 결함이 있으랴. 식물을 대하는 진중한 내심도 엿보인다. 듬성한 소재 배치로 여백을 도모한 장면도 인상적이다. 과욕은 자제하고 지침으로 삼은 조경 기법의 잣대를 엄격하게 들이댄 자취가 여실하다.
천년솔숲의 주류는 노송이다. 인간과 달리 늙을수록 굳세고 청명한 기운을 뿜는 소나무들. 허세와 편견 없는 순수 언어를 발화하는 것 같은 노목들.

천년솔숲은 늙은 현자들이 모여 회합하는 원로원을 떠올리게 한다. 노송들의 외관은 정말 매혹적이다. 조물주의 창의처럼 완벽하다. 한 경지에 오른 예술로 다가온다. 일종의 전율을 야기하며, 지지부진한 인간사를 돌아보게 한다.
이 정원에선 돌도 주역이다. 암석정원이 따로 있지만 곳곳에서 돌과 돌담, 돌너덜과 바위를 볼 수 있다. 돌담길을 걷다 만난 큰 바위 하나, 선방에 앉은 수도승처럼 묵연하다. 꿰뚫어 바라보면 바위도 부처라던가? 바위 위엔 사람들이 올려놓은 자그만 돌과 돌탑이 많다. 바위에 기대고 싶은 마음의 흔적이다. 예부터 그랬다. 바위 신앙에서 나타나듯, 바위를 신의 현현으로 보기도 했다. 무뚝뚝한 물성(物性)의 내부에 비의가, 섭리가, 부처가 숨어 있다고 여겼다. 그래 석공들은 정으로 바위를 헤집고 부처를 꺼내 불상을 만들었다. 바위 위에 앙증맞은 돌탑을 얹은 사람들의 심리도 매한가지일 테다. 바위처럼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한 사람, 또는 세상의 관용과 화해가 그리운 것이리라.

가을철 정원 명소는 핑크뮬리 흐드러진 언덕이다. 정원 입장객의 절반쯤은 핑크뮬리를 보기 위해 달려온 사람들. 어감부터 몽환적인 핑크뮬리는 줄기가 가늘고 길며, 꽃은 솜털처럼 부스스해 존재감이 미미하다. 그러나 무리를 지을 경우엔 일대 장관이 펼쳐진다. 잔바람에도 설레어 일제히 몸을 흔든다. 그 모습이 몽롱한 안개의 대열을, 또는 지상에 착륙한 분홍 구름을 연상시킨다. 딴 세상을 피워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특히 새파란 청춘들이. “핑크뮬리 언덕의 낭만과 판타지를 찾아, 고고싱!”
정원 상부의 언덕배기엔 작은 연못이 있다. 수면 위로 바람이 지나가고, 새가 날아가며, 저문 낙엽이 흩날린다. 모든 움직이는 것들, 숨을 죽여 천지가 고즈넉하다. 쉴 만한 물가다. 적요 속에서 가을이 조용히 익어가는 걸 바라보며, 익어가는 것 없이 남루한 마음을 그저 내려놓을 만한 시간이다.
가을날의 정원은 쉬고 싶고, 멈추고 싶은 마음의 은신처다. 쓸쓸한 사색의 출항지다. 연못엔 늦게 핀 수련 한 송이 있어 시선이 꽂힌다. 조만간 연잎이 누렇게 마를 종점에 어쩌자고 막차를 타고 홀로 도착했을까. 지독하게 고독해 보이는 저 연꽃 가문의 마이너리티를 경배할 수밖에 없다. 가쁜 숨 몰아쉬며 내달려 간신히 꽃을 밀어 올렸을망정, 홀연히 찬연한 게 아닌가. 독존(獨尊)의 여왕인 양, 영혼으로 존재하는 꽃인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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