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을 살리는 건 거창한 개발 아니라 손에 남는 실속”

입력 2026-03-09 09:29 수정 2026-03-09 09:31

책 ‘연결의 진화’로 지역재생 해법 제시한 조희정 박사… “알짜가치 지역에 쌓여야”

▲조희정 박사(더가능 연구소 제공)
▲조희정 박사(더가능 연구소 제공)

지방을 말할 때 우리는 인구 감소와 소멸이란 단어부터 꺼낸다. 신생아 수는 줄고, 청년은 떠나고, 산업은 약해지고, 남은 곳은 늙어간다는 식의 진단은 이제 식상할 정도. 정작 그 지방에 사는 사람이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야 하는지, 그곳에서 살아가는 일이 개인의 삶에 어떤 실속으로 돌아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의외로 자주 비켜간다.

최근 신간 ‘연결의 진화: 부가가치를 만드는 지역의 실험’을 펴낸 조희정 박사(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이 책은 2021년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했다. 조희정 박사를 비롯해 이영재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지역재생연구팀 공동연구원, 김영완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함께 썼고, 더가능 연구소에서 출간했다.

아래로부터의 ‘분수효과’에 주목해야

조 박사는 지역의 위기를 거대한 정책의 실패로만 읽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생은 지방에서 하고 수입은 외부로 가는 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며 “자급자족까지는 못 하더라도 내가 고생해서 내가 벌어서 내가 쓴다는 기분이 축적되어야 공동체의식도 생기고 개인의 삶에 대한 만족감도 생기지 않겠느냐”고 이야기 했다. 이어 “알짜 부가가치는 어떤 일이든 진행하며 생기는 유형의 자본이나 무형의 만족감을 의미하며, 이렇게 유무형의 실속이 개인에게 남아야 그 다음 일을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책에서는 이러한 고민이 구체적으로 풀이된다. 저자들은 “지방에서도 부가가치는 중요하다”며 “지방이 제대로 살아남으려면 헛가치가 아닌 알짜가치가 지역에 차곡차곡 쌓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위에서 아래로 혜택이 떨어지는 낙수효과가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자치 중심의 자구책을 쌓아가는 ‘분수효과’를 제시한다. 대단한 성공은 아니더라도 ‘되는 꼴’을 자꾸 보아야 사람도 힘이 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단위부터 순차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분수효과를 강조한 이유에 대해 조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지방분권이나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모토로 많은 제도 개선이 진행되었지만, 계속 행정이나 큰 경제 중심으로 일이 진행되다 보니 결국 혜택은 자치단체장의 권력 강화나 권력 연장, 건설회사의 이윤 극대화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어요. 주민의 삶과 밀접한 변화는 주지 못했죠. 낙수효과처럼 위에서 계획을 짜서 주민들은 영문도 모르고 그 정책이나 사업을 해야 하는 것, 혹은 혜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분수효과 방식으로 밑에서부터 주민들이 실생활에서 필요한 것을 찾고 요구하고 그런 작은 변화를 축적시키는 연습이나 훈련이 더 의미 있는 변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마을’부터 시작해야

이 책이 ‘작은 마을’에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자들은 인구 규모가 작은 곳일수록 문제의 원인과 변화의 경로를 더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조 박사는 “반드시 1만 명이 아니어도 좋지만 조직이 작을수록 결정자, 행동가, 돈의 흐름, 권력의 흐름이 명확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10만 도시, 20만 도시만 되어도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기 어렵다”며 “연구한 사례들은 모두 일본의 5000명 내외 지역인데, 그런 지역에서는 누가 새로운 일을 도모할 때 관심받기도 쉽고, 그 새로운 일의 혜택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파악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물론 작은 마을이 모두 낭만적인 조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한계도 존재한다. 확장성, 인력, 재원, 지속성의 한계도 있을 수 있는데, 조 박사는 이에 대해 “그것을 기획하고 도모하는 과정이 자치력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작아서 못한다가 아니라 작아서 신속하고 더 개방적인 측면도 동시에 있는 것”이라며 “확장성이 물리적으로 제한되어 있다면 온라인 공간으로 도모해볼 수 있고, 신기술을 적용해볼 수도 있고, 고령자만 있어서 부족하다면 도시에서 주말에만 부업하러 오는 관계인구를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일을 한번 하고 말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구성원끼리 다짐하며 다방면의 유무형 지원을 찾을 수도 있다”며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작은 마을이 그냥 작아서 힘없이 하루하루 근근이 산다가 아니라, 작지만 연결의 힘으로 재미있고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이번 책의 제목이 ‘연결의 진화’인 것도 그래서다. 책은 사소한 자원을 유용하게 연결해 지역의 실익을 창출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목공과 출생 축하의 마음, 교육과 관계, 관계인구와 등록, 부업과 외지인, 지역화폐와 경험, 먹거리와 사회적 가치, 무인역과 분산형 숙박, 섬의 결핍과 미래, 디지털 기술과 공동체 운영까지 얼핏 서로 무관해 보이는 대상들이 실제 현장에서는 하나의 부가가치 구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이 책의 기본 시선이다. 맺음말에서 저자들은 “마음, 교육, 관계, 부업, 지역화폐, 먹거리, 무인역, 없음, 디지털”이라는 9개 아이템이 연결돼 작은 마을의 부가가치 구조를 만든다고 적었다.

▲신간 신간 ‘연결의 진화: 부가가치를 만드는 지역의 실험’의 표지(더가능 연구소 제공)
▲신간 신간 ‘연결의 진화: 부가가치를 만드는 지역의 실험’의 표지(더가능 연구소 제공)

효과적인 ‘연결’위한 지원조직의 구성 고민해야

책은 부업을 지역 일자리의 단순 보충 수단이 아니라, 외지인과 지역이 더 깊게 관계를 맺는 연결 방식으로 본다. 일본의 사례를 통해 외지인이 지역에서 한시적으로 일하며 수입도 얻고, 한달살이나 워케이션보다 더 밀도 있게 지역을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기업이 자신의 일을 제대로 설명하고, 대규모 모집보다 소규모의 집중적인 관계 형성을 추구해야 하며, 기업과 개인을 이어줄 매니저나 코디네이터 등 중간지원조직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조 박사 역시 중간지원조직의 중요성을 분명히 했다. 그는 “단순 위탁조직이 아니라 역동적인 연결매개자가 되어야 한다”며 “돈을 연결하든 사람을 연결하든 행정이나 주민에 휘둘리지 않고 활동하는 조직이 되어야 하는데, 그건 마을의 자치력 향상만큼 가장 어려운 문제 같다”고 말했다.

한국의 지방정책이 일본의 흐름을 일정 시차를두고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현장의 사정을 깊게 고민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베끼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고 조언했다. 일본이든 유럽이든 성공 사례를 가져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누구의 언어로 번역하고 어떤 조건에서 작동시킬지에 대한 고민 없이 들여오는 태도가 더 위험하다는 뜻이다.

최근 정부 주도로 추진되는 실버스테이, 은퇴자 마을 조성 같은 지역 고령인구 수용 정책에 대해서도 조 박사는 “이해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투명하게 반영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엇을 짓고 누구를 유치하느냐 보다는, 그 정책 과정에서 실제 지역 주민과 당사자의 목소리가 어떻게 수렴됐는지가 먼저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연결의 진화’가 말하는 연결은 거창한 네트워크의 확장이 아니다. 지역에 실제로 남는 가치, 주민의 선택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다. 그간 지역정책은 큰 청사진만 남긴 채 예산 낭비와 성과 부풀리기라는 후유증을 반복해 왔다. 저자들은 이럴수록 작은 사업이라도 주민이 함께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지역의 미래는 거대한 개발 계획보다 생활 속에서 체감되는 변화와 관계의 밀도에서 갈린다는 것이다. 결국 지방을 살린다는 것은 도시를 닮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이 자신의 삶이 이곳에 있다고 느끼게 하는 일이라고 ‘연결의 진화’는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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