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서트장을 가득 채운 응원봉, 포토카드와 굿즈를 모으는 소비, 지하철과 버스 정류장에 걸리는 생일 광고, 팬클럽 이벤트 등은 아이돌만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팬덤의 풍경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10~20대 중심의 아이돌 팬덤 구조가 재편되는 가운데, 트로트를 축으로 한 50~70대 팬층이 새로운 주류로 부상하고 있다.
중장년 팬덤의 활동은 ‘좋아하는 가수 응원’에 그치지 않는다. 아이돌 팬들과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콘서트 관람과 앨범 구매는 기본이고, 팬클럽 조직을 통해 기부 활동을 하거나 직접 굿즈를 제작·판매하기도 한다. 가수의 생일이나 데뷔 기념일에 맞춰 광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단체 관람이나 응원 이벤트를 기획하는 등 활동의 폭도 넓어졌다. 이처럼 팬들이 소비자를 넘어 참여자로 움직이면서 팬덤은 하나의 문화이자 경제활동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른바 ‘팬코노미(Fan Economy)’ 현상 속에서 중장년층 팬클럽은 대중문화 소비의 새로운 주체이자, 공연과 콘텐츠 시장을 움직이는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트로트 열풍이 만든 새로운 팬덤 세대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2020년 전후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의 성공이 있다.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을 비롯한 ‘현역가왕’, ‘사랑의 콜센타’ 등을 계기로 트로트는 다시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떠올랐고 팬층 역시 빠르게 확대됐다. 실제로 ‘내일은 미스터트롯’ 결승전에서는 773만 건이 넘는 문자 투표가 몰리며 우승자 발표가 지연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청자가 직접 가수를 선택하고 성장과정에 참여하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팬덤 역시 빠르게 확대됐다. 방송을 통해 새로운 스타들이 등장하면서 트로트는 더 이상 특정 세대의 음악이 아니라 폭넓은 대중이 즐기는 장르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기존에는 중장년층이 방송을 시청하거나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팬클럽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팬덤 활동의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팬카페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공연 일정과 방송 정보를 공유하고, 단체 관람이나 응원 이벤트를 직접 기획하는 모습도 자연스러운 풍경이 됐다.
학계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주목하고 있다. 2025년 발표된 부산대학교 대학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석사논문 ‘문화 주체로서의 중년 팬덤에 관한 연구’는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이 중장년층의 감정과 취향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면서 이들이 팬덤 활동에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연구에 따르면 중년 팬들은 스타를 통해 자신의 관심과 열정을 발견하고, 팬클럽 활동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며, 문화 소비자를 넘어 ‘문화 생산자’로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2021년 발표된 경희대학교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석사논문에서는 트로트 팬덤이 확대된 배경으로 세 가지 요인을 제시했다. 트로트 소재 방송 프로그램 증가,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콘텐츠 노출 확대, 트로트에 대한 인식 변화다.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트로트는 특정 세대의 음악이 아니라 전 세대가 즐기는 대중음악 장르로 재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변화는 실제 문화소비 데이터에서도 확인된다. 2021년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보고서 ‘트로트 열풍으로 보는 오팔 세대의 부상과 팬덤 경제’에서 팬덤 문화가 10~20대 중심에서 50~60대 액티브 시니어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신한카드 분석에 따르면 50~60대의 음악·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 증가율은 101%로 20~40대 증가율(71%)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장년층이 공연장을 찾는 관객에 그치지 않고 온라인 콘텐츠 소비에서도 중요한 이용층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트로트 팬덤의 확대는 단순히 특정 장르의 인기가 높아진 현상을 넘어선다. 방송 프로그램과 온라인 플랫폼, 팬클럽 커뮤니티가 결합하면서 중장년층 역시 아이돌 팬덤과 유사한 방식으로 조직적인 팬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트로트 팬덤은 공연과 콘텐츠 시장을 움직이는 새로운 문화소비 집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덕질’에서 ‘참여’로 팬덤 문화의 변화
중장년 팬덤의 특징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참여자’라는 점이다. 팬클럽은 하나의 공동체처럼 운영된다. 지역별 모임을 만들고, 콘서트 단체 관람을 조직하며, 가수의 생일이나 데뷔일을 기념해 지하철 광고나 생일 카페 이벤트를 진행한다. 공연장 응원 역시 팬클럽 단위로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팬덤의 사회공헌 활동이다. 가수의 이름으로 기부를 진행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다. ‘미스트롯3 진 정서주’의 팬클럽 ‘동분서주’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통한 기부 활동을 진행했고, 선 배아현의 팬클럽 ‘아트’ 역시 장학금 전달 등 다양한 나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미 오유진의 팬클럽 ‘보디가드’ 역시 연탄 배달 봉사에 참여하는 등 팬들과 함께하는 사회공헌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트로트 가수 신유의 팬클럽 ‘신유사랑’ 역시 공연이나 팬미팅을 계기로 쌀 화환을 기부하거나 복지단체에 후원 물품을 전달하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쌀 화환 기부’는 트로트 팬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문화로, 축하와 나눔을 동시에 실천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가수 김수찬의 팬덤 ‘차니사랑’ 또한 공연이나 방송활동을 계기로 다양한 응원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팬들이 직접 응원 현수막을 제작하고 단체 관람을 조직하거나 팬카페를 중심으로 모금을 진행해 나눔 활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팬클럽 문화는 단순한 ‘스타 소비’와는 다른 특징을 갖는다. 가수를 응원하는 동시에 사회적 의미를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중장년 팬들이 “우리 가수 이름으로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팬덤이 개인의 취미를 넘어 공동체 활동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굿즈 시장에서도 나타난다. 과거에는 기획사가 제작한 공식 상품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팬들이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경우도 늘었다. 팬클럽을 중심으로 달력과 응원 스카프, 티셔츠, 머그컵 등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굿즈가 만들어지고 있다.
공동구매 방식도 흔하다. 팬들이 제작비를 함께 부담해 굿즈를 만들고, 이를 팬클럽 회원들과 나누거나 판매한다. 수익금은 다시 팬 활동이나 기부 프로젝트에 사용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팬들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상품 기획과 제작에 참여하는 ‘생산자’ 역할까지 맡는다.
광고 프로젝트 역시 팬덤 경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가수의 생일이나 데뷔 기념일에 맞춰 지하철 전광판이나 버스 정류장 광고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팬클럽이 모금 프로젝트를 통해 비용을 마련하고, 목표 금액이 모이면 광고를 집행한다.
이처럼 팬덤 활동은 공연 관람과 음반 구매를 넘어 굿즈 제작과 광고 프로젝트까지 확장되고 있다. 팬들의 참여가 새로운 소비와 시장을 만들어내며 팬덤 경제의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다.

중장년 팬들이 만드는 새로운 문화
팬덤의 확장은 중장년 세대의 문화소비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단순한 트렌드 이상의 의미가 있다.
팬클럽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회적 네트워크가 되고 있다. 같은 가수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하나로 전국의 팬들이 연결되고, 지역 모임을 통해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디지털 적응이다. 스마트폰과 SNS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중장년층도 온라인 팬덤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팬카페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온라인 투표나 영상 스트리밍에 참여하는 모습도 이제 낯설지 않다.
중장년 팬덤 연구에서도 팬덤 활동이 단순한 취미를 넘어 개인의 자아실현과 사회적 관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분석한다. 부산대 석사논문에서도 팬클럽 활동이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개인에게 심리적 만족감을 제공하는 문화적 실천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
한국 사회가 빠르게 고령화되는 상황에서 중장년 팬덤의 영향력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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