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인일자리를 여전히 ‘용돈벌이’ 정도로만 여기는 사회의 차가운 시선은 여전하다. 근로시간이 짧고 임금 수준이 낮다는 이유로, 과연 이를 직업으로서 가치 있는 노동이라 볼 수 있느냐는 의문이 뒤따른다.
그러나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발표한 ‘2025년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인일자리는 고령층의 삶에 이미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조사 결과 노인일자리 참여자의 전반적 만족도는 5점 만점에 4.10점이었고, 참여 후 삶의 변화 수준은 4.05점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줬다. 자존감과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보고서는 노인일자리가 참여 노인에게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니라 소득원이자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유지하는 중요한 안전망이라고 해석했다.
일자리의 형태도 달라지고 있다. 노인일자리 사업은 해를 거듭할수록 환경미화 같은 단순 업무에서 벗어나,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공공서비스의 빈틈을 메우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대표 사례가 인천의 ‘동네 고양이 모니터링 활동가’다. 이 사업은 길고양이 개체 증가로 인한 주민 민원을 줄이고 동물복지를 실천하기 위해 도입된 노인역량활용사업 시범모델이다. 참여자들은 길고양이 서식지와 개체 현황을 확인·기록하고, 급식소 위생 상태를 점검한다. 이렇게 축적된 현장 데이터는 지자체에 전달돼 중성화(TNR) 대상 선정과 관리 체계 수립에 활용된다.
“지역사회 일원이라는 소속감 커져”
현재 참여자로 활동 중인 정기상(68) 씨는 이 일을 하며 몸과 시선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설계사무실 기획실에서 일하다 지난해 말 퇴직한 뒤 올해 3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평일마다 하루 3시간씩 현장을 걷고, 출몰 시간과 장소, 사진, 중성화 여부를 기록해 올리는 일을 맡고 있다. 정 씨는 활동을 시작한 뒤 “매일 1만 보 이상 걸어 건강도 좋아졌고 동네 현황도 더 살피게 됐다”며, “예전에는 큰 관심이 없던 동네 고양이를 같이 살아가는 존재로 보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제주의 ‘시니어 항공안전 감시단’은 노인일자리의 직무 고도화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 사업은 공항 주변을 돌며 위험을 살피는 수준의 단순 순찰이 아니다. 제주국제공항 반경 9.3km 관제권 전역에서 드론 감시와 안전 관리를 수행하는 통합 점검 직무로 설계됐다. 올해 사업 규모는 100명으로, 지난해 16명에서 6배 이상 늘었고 활동 거점도 1곳에서 12곳으로 확대됐다. 참여자들은 드론탐지시스템(DDS)과 전용 앱 ‘하늘길 지키미’를 활용해 탐지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받고, 현장 출동과 계도 활동을 병행한다. 여기에 활주로 유입 가능성이 있는 폐비닐 등 비산물 수거, 야생동물·조류 유입 예찰, 비상상황 초동대응, 드론 비행 금지 홍보까지 맡는다. 활동 기록은 예찰 로그와 GPS 기반 위험 요소 데이터로 축적돼 불법 드론 취약지 분석과 정밀 순찰 노선 최적화에 활용된다.

시니어 항공안전 감시단으로 활동 중인 조상백(60) 씨는 “평생 일했던 전직의 경험을 살릴 수 있어 즐겁다”고 이야기한다. 경찰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한 그는 퇴직자 지원센터를 통해 감시단에 참여했고, 지난해 5월 시작된 이 사업을 올해도 이어가고 있다. 조 씨는 “매일 몇 시간이라도 사회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강릉에서는 국가 문화유산 보존이 노인일자리와 결합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강릉시가 체결한 ‘강릉시 국가 문화유산 돌봄 사업’은 어르신들이 국가유산 내외부 시설을 방호하고, 경관 저해 요소를 제거하며, 국가유산 방재정보 통합시스템을 활용한 재난 예방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강릉시는 강원특별자치도 내 최다 국가 문화유산 보유 지역으로, 개발원과 지자체는 이 지역 특성을 지역 맞춤형 일자리로 연결해 올해 약 70개의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문화유산·에너지·돌봄 분야와도 연계
삼척의 ‘에코(ECO)-에너지 안전지원센터’는 환경과 생활 안전을 결합한 사례다. 이 사업은 취약계층 가정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을 전문 장비로 세척해 발전 효율을 높이고, 전구 교체나 낙상 패드 설치 같은 간단한 안전 서비스도 제공한다. 가구별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연계하는 역할도 포함된다. 개발원은 지난해 7월부터 4개월간 시범 운영한 뒤 패널 세척 수혜 가구 20곳을 자체 조사한 결과, 세척 이후 평균 발전효율이 19.2% 향상됐다고 밝혔다.
돌봄 영역에서는 경도인지장애 노인을 위한 새 일자리도 눈길을 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한국에자이가 협약한 이 사업은 올해 5월부터 9월까지 5개월간 노인역량활용 선도모델로 시범 운영된다. 경도인지장애 노인과 일반 노인이 2인 1조를 이뤄 중증치매노인과 독거노인 가정을 방문해 근력강화 운동 안내와 인지활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다. 올해는 경도인지장애 노인 10명을 채용해 성과를 살핀 뒤 지속 여부를 검토한다.
최근에는 세대통합형 일자리 실험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5일 문을 연 베이커리 카페 ‘할로마켓’ 강동 2호점은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함께 추진하는 공동체사업단 기반 사업장이다. 참여 노인들은 음료 제조, 제과·제빵, 매장 관리를 맡고, 대학생 서포터즈는 홍보와 마케팅, 지역주민 대상 행사·교육 지원을 담당한다. 노인에게는 소득과 역량 활용의 기회를, 청년에게는 사회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세대통합형 상생 모델로 기획됐다.
노인일자리의 가치는 근로시간이나 임금만으로 재단하기 어렵다. 현장에선 이미 지역사회의 안전을 지키고 돌봄의 빈틈을 메우는 주체로 자리하고 있다. 노인일자리는 더 이상 ‘남는 시간을 보내는 일’이 아니라, 사회에 필요한 일을 맡고 있다는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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