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1

구순 앞두고 생애 첫 책 쓰다

입력 2026-09-21 06:00

누군가의 아내, 엄마, 할머니 이전에 ‘나는 88세 박옥자’

(스민스튜디오)
(스민스튜디오)

울산 언양과 장생포에서의 유년 시절, 부산에서 보낸 청소년기, 결혼과 자녀 양육, 남편과 갈등, 수십 년간 이어온 기도 생활까지. 박옥자 여사의 기억 속에서 가족사와 시대사가 포개졌다. 아내·엄마·할머니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한 여성이 구순을 앞두고 비로소 자기 이름을 책 표지에 새기려 한다.


“내 이야기가 뭐 그리 특별하겠노.”

자녀들이 글을 써보라고 할 때마다 박옥자 여사는 손사래부터 쳤다.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일을 겪었을 텐데, 자신의 삶을 굳이 책으로 남길 까닭이 있겠느냐는 생각이었다. 딸이 사준 만년필과 노트도 몇 년 동안 서랍 속에 머물렀다. 그러나 막상 펜을 들자 유치원 선생님의 얼굴과 다니던 성당, 집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이름까지 오래된 장면들이 줄줄이 되살아났다.


“엄마, 그 이야기를 글로 한번 써봐”

시작은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박 여사가 옛이야기를 꺼내면 자녀들이 굽이치는 사연에 관심을 보이면서부터다. 2년 전 둘째 딸은 어머니가 학창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곤 “책 써봐. 부담스러우면 일기처럼 기억나는 것을 적어봐”라며 노트와 만년필을 건넸다. 하지만 그는 “이 나이에 내가 무슨 글을 쓰냐”며 거절했다.

(스민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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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에게 내놓을 만한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도 부족했지만, 가족의 내밀한 사정을 쓰는 일이 부모와 조부모에게 누가 될까 염려됐다. 특히 할아버지가 작은 부인을 들인 이야기에 이르면 펜이 멈췄다.

“자식에게는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남에게 알리는 것은 어른들을 욕되게 하는 것 같았어요. 몇 번 쓰다가 다시 서랍에 넣고 안 쓰려고 했어요.”

멈춰 있던 글을 깨운 사람은 큰딸이었다. 그간 쓴 글을 읽은 딸이 “엄마, 이 글 참 좋다. 책이 되든 안 되든 계속 써봐”라고 등을 떠밀었다. 며느리들도 힘을 보탰다. “어머니, 제가 도와드릴 테니 써보세요”라고 지원군을 자처했고, 또 다른 며느리는 병원에 동행했다가 들은 친정 할아버지 이야기에 글감을 먼저 알아봤다.

“딸도, 며느리도 자꾸 써보라고 하니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다시 생기더라고요.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자식들, 손주들이 읽으면서 엄마, 할머니를 추억하고 즐겁게 봐주는 것도 좋겠구나 싶었지요.”

박 여사가 책을 쓰는 이유는 자신에게는 평범했던 하루가 후손에게는 다시 만날 수 없는 가족의 역사라는 사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원고는 작은 며느리와 함께 만든다. 박 여사가 생각나는 장면부터 노트에 적으면 며느리가 문서화한다.

“특별히 글 쓰는 법을 배운 적은 없어요. 그냥 기억나는 대로 적지요. 글을 쓰기 시작하니까 과거 일이 또렷하게 떠오르더라고요. 신기하죠.”


국문학도를 꿈꾸던 문학소녀

(스민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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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여사의 기억은 증조부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울산의 바닷가 마을에서 한의원을 운영했던 증조부는 비바람 치는 밤에도 다친 농부가 찾아오면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집에서 산소까지 조문객이 이어졌다는 이야기를 박 여사는 할머니에게 들었다.

“할머니가 저녁이면 옛날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아픈 사람이 병원에 오면 아무리 한밤중이고 비바람이 불어도 증조할아버지가 고쳐주셨대요. 인술을 베푸신 분이셨던 거죠. 돌아가셨을 때는 문상객이 워낙 많아 집에서 산소까지 주먹밥을 놓았다고 하더라고요.”

박 여사는 언양에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니다 장생포를 거쳐 부산으로 옮겼다. 부산여고에 진학한 그는 문학에 푹 빠졌다.

“어머니는 제가 약대에 진학하길 바라셨어요. 하지만 나는 국문학이 좋았어요. 글 쓰는 것도 꿈이었고요.”

그러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며 가세가 기울고, 집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아버지는 대학에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어린 동생들과 어려워진 형편을 두고 혼자 공부하러 갈 마음이 나지 않았다.

▲박옥자 여사 과거 사진.(스민스튜디오)
▲박옥자 여사 과거 사진.(스민스튜디오)

“아버지는 어떻게든 대학에 보내줄 거라며 진학을 권하셨어요. 동생이 넷이나 되고 집안 형편도 어려워지는데, 나 좋자고 가버리면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공부할 의욕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수십 년 뒤 펼친 노트는 끝내 가지 못한 길과 다시 이어진 셈이다. 원고에 등장하는 사람만 70명이 넘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 약방을 운영하면서도 정치에 뜻을 뒀던 아버지, 동생들, 집에서 함께 생활했던 이들까지 수많은 인연이 등장한다. 쓰기 불편한 집안일도 있지만, 여성의 일자리가 드물고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대의 풍경과 함께 기록하고 있다.


글을 쓰다 보니 다르게 보인 남편

박 여사가 노트를 채우며 “세상 떠난 남편에 대한 마음이 변했다”고 고백했다. 부부 사이에는 오래 쌓인 서운함이 있었다. 좋을 때도 당연히 있었지만 결혼 생활의 마지막 무렵에는 관계가 크게 나빠졌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좋지 않은 기억이 앞섰다. 그런데 자신의 생을 처음부터 되짚으며 시선이 달라졌다.

“서른 살 되던 무렵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당시에 남편이 친정 재산을 지키고, 어린 동생들이 자리 잡도록 힘을 보태는 등 아버지 역할을 대신했어요. 그때 정말 힘이 많이 됐는데… 결혼 생활이 너무 힘들고 상처가 커서 잊고 있었더라고요. 남편이 안쓰럽고 미안한 맘이 들었습니다. 시어른과 시댁 식구들에게도 내가 지혜롭게 처신했으면 어땠을까 싶고요.”

박 여사는 글을 쓰며 자신의 억울함과 함께 남편이 가족을 위해 감당했던 몫도 나란히 바라보게 됐다.

▲박옥자 여사와 둘째아들인 김지곤 한국전력 산업중소사업자협회 대표 부부.(스민스튜디오)
▲박옥자 여사와 둘째아들인 김지곤 한국전력 산업중소사업자협회 대표 부부.(스민스튜디오)

며느리에게도 원고 작업은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새로 맺는 시간이다. 그는 “20년 동안 한집에서 살았지만 그동안 본 사람은 ‘시어머니 박옥자’였다”며 “이야기를 듣고 글을 옮기면서 문학을 좋아한 소녀, 어머니를 잃은 맏딸, 동생들을 걱정해 진학을 포기한 청년, 결혼 생활에서 마음고생을 견딘 인간 ‘박옥자’를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가족이 박 여사를 새롭게 발견한 순간은 또 있었다. 교복 입은 학창 시절 사진을 본 손녀가 “할머니에게도 이런 때가 있었어?”라며 놀란 것. 이 이야기를 전하는 박 여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손녀에게는 처음부터 할머니였지만, 사진 속 박옥자는 문학을 좋아하고 미래를 꿈꾸던 소녀였던 것이다.


지난날을 적으며 어떻게 살았는지 바라보기

박 여사의 하루를 오랫동안 지탱해온 것은 기도다. 50대 무렵 지인의 권유로 합천 해인사 백련암을 찾아 3000배를 하기 시작했다. 그 뒤 기도는 삶의 중심이 됐다. 월 1회 새벽 4시 버스를 타고 해인사로 향했고, 집에서도 새벽 2시에 일어나 3000배를 이어가기도 했다.

“그때는 힘든 줄도 몰랐어요. 한 달에 1만 배도 하고, 100일 동안 매일 3000배 기도도 했지요. 새벽 2시에 일어나 기도를 해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그 기도 덕에 지금껏 무탈하게 살아온 듯합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서울 아들 집으로 온 후에도 배낭을 메고 경북 고령과 대구의 절을 오갔다. 2021년 고관절 수술을 받은 뒤에는 외부 활동이 줄었지만, 집에서 기도와 참선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부터는 아침 기도를 마치고 노트를 펴는 것이 새로운 일과가 됐다.

“지난날을 회상하면 감정이 올라오기도 해요. 그래도 하나씩 적다 보면 안 쓸 때보다 마음이 좋아져요. ‘내가 이렇게 살았구나’ 싶고, 자식들에게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줄 여유도 생기더라고요.”

가족이 체감한 변화도 있다. 정기적으로 인지 상태를 살피던 진료에서 최근 상태가 좋아졌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가족은 본격적으로 글을 쓴 시기와 맞물린 변화라는 설명도 들었다. 다만 한 번의 진료 경험만으로 글쓰기의 의학적 효과를 단정할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박 여사가 기억을 꺼내 문장으로 고르며 전보다 활기를 찾았고, 가족과 나눌 이야기가 늘었다는 사실이다.

자식들은 “어머니에게 ‘주인공의 날’을 만들어드리고 싶다”며 내년 봄 책의 탄생을 축하할 계획이다. 그는 많은 사람 앞에 서는 일이 부담스럽다면서도 책이 완성되면 가장 먼저 부처님 전에 올리고 싶다고 했다.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흔 살 가까이 살아보니 누구나 겪었을 흔한 이야기인데 책을 쓰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을 아직도 합니다. 그런데 자식들이 나를 추억하며 읽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그래서 씁니다.”

박옥자 여사가 쓰는 것은 한 시대를 건너온 평범한 여성의 기쁨과 후회, 그가 만난 사람들의 이름이다. 그 평범함은 가족에게 단 하나뿐인 역사다. 서랍 속 만년필을 꺼낸 순간 아내와 엄마, 할머니라는 이름 뒤에 있던 ‘박옥자’의 삶이 다시 현재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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