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교 정문 왼편, 비탈진 산등성이를 따라 원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낮은 담벼락을 끼고 이어진 그 길은 생각보다 가파르고 곤혹스러웠다. 비가 오는 날이면 젖은 흙이 질척여 발이 미끄러지기 일쑤였고, 바람이 매서운 날에는 균형을 잡기 위해 상체를 잔뜩 숙인 채 간신히 기어올랐다. 나는 그 길을 오르내리며 자주 숨을 골랐다. 단순히 폐부로 들어오는 공기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여차하는 순간, 저 아래 낮은 도로까지 건물들이 모조리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위태로운 풍경이 나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언덕의 막다른 꼭대기에 다다르면 그중에서도 가장 낡은 원룸 하나가 나타난다. 누런 페인트가 허물처럼 벗겨진 외벽은 그 안의 남루함을 굳이 숨기려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곳은 늘 학생들로 붐볐다. 학교 주변에서 월세가 가장 저렴하다는 사실은 가난한 청춘들에게 그 어떤 인프라보다 강력한 유혹이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졸업할 즈음까지 내가 머물렀던 나의 요새이자 유배지이기도 했다. 여름에는 아스팔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열로 방 안이 뜨거운 알루미늄 냄비 같았고, 겨울에는 빙판이 얼어붙어 계절이 다 가도록 녹지 않았던 곳. 그 길은 내게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매일의 생존을 시험하는 아슬아슬한 경계선이었다.
그때의 내 방은 아주 좁고 습했다. 벽지 구석마다 곰팡이가 검은 꽃처럼 피어났고, 장마철이면 아귀가 맞지 않는 창틀 사이로 눈물 같은 빗물이 스며들었다. 어느 해 도시 전체를 흔들었던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리맡에 양동이를 두고 밤을 지새웠다. 외관이 살짝 뒤틀린 건물을 보며 불안에 떨었지만, 건물주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무책임한 어른의 뒷모습과 무너져가는 방 한 칸이 당시 내가 마주한 세상의 전부였다.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막막함이 나를 잠식했다. 졸업장만 손에 쥐면, 이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 장미꽃이 뿌려진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을 거라 믿고 싶었다. 지긋지긋한 가난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나는 늘 자신을 자책하며 낭떠러지로 몰아세웠다.
그 무렵 나는 만성 소화불량에 걸린 사람처럼 늘 속이 더부룩했다. 학자금 대출이자 고지서는 단 하루의 오차도 없이 우편함에 꽂혔고, 동생들의 학비와 생활비는 맹수처럼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가난은 설명할수록 진부해지는 신파 같아서 누구에게도 선뜻 꺼내놓지 못했다. 몇 번이나 휴학계를 썼다가 찢기를 반복했다. 대학이라는 공간이 내게는 허락되지 않은 사치이자 기만처럼 느껴져 괴로웠다.
‘나만 이렇게 사는 걸까?’
자조 섞인 질문이 입안을 맴돌았다. 누군가의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무너지지 않기 위한 비명이자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나보다 수천 배는 더 힘든 이들이 있을 거라며 나를 위로하기도 했고, 타인의 고통을 빌려 내 고통의 무게를 억지로 덜어내려고 애쓴 날도 많았다.
종강을 며칠 앞둔 초여름이었다. 과 친구인 수아가 내게 조심스레 사촌 언니를 소개했다. 우리보다 스무 살쯤 위라던 영선 언니를 처음 대면했을 때, 내 시선은 모진 풍파를 다 견뎌낸 듯한 그녀의 손 위에 멈췄다. 굳은살이 층층이 박인 퉁퉁 부은 손등, 고춧가루 물이 깊게 밴 거친 손톱. 언니는 약속 장소에 오기 직전까지도 식당 주방에서 치열하게 싸우다 온 듯, 빛바랜 빨간 앞치마를 그대로 두른 채였다.
언니는 너덜너덜해진 가방에서 중학교 검정고시 문제집 한 권을 꺼내놓았다. 마치 성물을 다루듯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이름 말고는 배운 게 없어요. 염치없지만 선생님이 좀 가르쳐주실 수 있을까요.”
낮고 단정한 목소리였다. 구걸하는 이의 비굴함 대신,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일궈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영선 언니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술로 세월을 보내는 아버지 대신 네 명의 동생을 뒷바라지해왔다고 했다. 언니의 청춘은 찬란한 교정 대신 식당 싱크대 앞의 자욱한 김 속에서 흘러가 버린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 방의 곰팡이나 빗물 소리는 하찮게 느껴졌다. 언니에게 배움이란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온 생을 다해 돌아와야 했던 눈물겨운 목적지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언니의 과외비는 수아가 아르바이트해서 마련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내 뺨은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내가 쉽게 내뱉던 ‘힘들다’라는 말이 얼마나 가벼운 투정이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책상 위에 놓인 낡은 문제집은 그날 이후 내게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수업은 늘 식당 일이 끝난 늦은 밤에 시작됐다. 낡은 선풍기 한 대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회전하는 단칸방에서 우리는 마주 앉았다. 언니는 고된 노동 끝에 밀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해 자꾸만 고개를 떨구었다. 그럴 때면 언니는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다시 펜을 잡았다. 삐뚤빼뚤한 글씨였지만, 언니의 펜촉은 한 번도 뒷걸음질하지 않았다.
어느 여름밤, 언니는 공부를 하던 중 뜬금없이 내 전공 서적 한 권을 가리켰다. 두꺼운 양장본에 금박이 박힌, 르네상스 영시 강독 교재였다. 언니는 거칠게 갈라진 손가락으로 그 화려한 금박의 문양을 가만히 덧그리더니 물었다.
“선생님, 여기 적힌 글자들은 다들 배불리 먹고사는 사람들이 쓴 거겠지요?”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그토록 지겨워하며 베개 대신 베고 자던 고전들이 누군가에게는 ‘포만감의 증명’처럼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이 뒤통수를 쳤다. 언니는 그날따라 단어의 뜻보다 그 단어가 종이 위에서 차지하는 ‘무게’에 집착했다.
언니는 ‘Light(빛)’라는 단어를 연습장에 쓰더니, 그 아래에 굳이 ‘가볍다’라는 뜻을 괄호 치고 적어 넣었다. 그러고는 자기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이상해요. 나한테 이 글자는 도저히 ‘가볍게’ 안 읽혀요. 식당에서 쌀 포대를 들 때마다, 내 무릎 위로 쏟아지던 햇빛은 늘 바윗덩어리처럼 무거웠거든요. 그래서 나는 세상에 가벼운 빛이 있다는 걸 믿기가 힘들어요.”
언니는 ‘Light’의 ‘L’을 쓸 때마다 펜촉을 부러뜨릴 듯 꾹꾹 눌러 썼다. 언니에게 언어는 휘발되는 소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물리적인 압력이었다. 내가 토익 점수를 위해, 혹은 학점을 위해 기계적으로 외우던 ‘Light’는 깃털처럼 가벼워 공중에 흩날렸지만, 언니가 종이 위에 박아 넣은 ‘Light’는 책상을 뚫고 내려갈 듯 무겁고 어두웠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배운 언어들이 얼마나 실체가 없는 껍데기였는지 깨달았다. 삶의 하중을 견뎌보지 못한 나의 문장들은 언니의 투박한 ‘L’자 한 획보다도 가벼웠다. 언니는 영어를 배우고 있었지만, 나는 언니의 손등에 박인 굳은살을 통해 언어의 ‘질량’을 다시 배우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언니가 돌아간 뒤, 나는 한동안 그 연습장을 덮지 못했다. 언니가 눌러 쓴 ‘Light’라는 글자가 너무 무거워, 방바닥이 그쪽으로 기우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무거운 침묵을 먼저 깨뜨린 건 역시 언니의 담백한 우스갯소리였다.
“선생님, 사과를 그렇게 많이 깎았는데 왜 ‘애플’은 이렇게 안 외워질까요.”
언니의 농담에 우리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웃음에는 고된 하루를 온몸으로 버텨낸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진한 피로와 깊은 공감이 섞여 있었다.
그렇게 웃음으로 하루의 고단함을 말갛게 헹궈내던 어느 밤이었다. 연습장 위로 ‘HOPE’라는 단어를 수십 번도 더 눌러 쓰던 언니가 돌연 펜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갓 피어난 꽃을 마주한 아이처럼 순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선생님, 참 이상하지요. 사과 하나를 깎아 팔아도 ‘희망’이라는 말은 수천 번 더 생각하며 살았는데, 영어로 적어놓고 가만히 보니 이 글자들이 꼭 나를 닮은 것 같기도 해요. 앞의 ‘H’는 고단한 몸을 잠시 기대어 쉬는 의자 같고, 뒤에 오는 ‘P’는 무거운 짐을 등에 진 채 앞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제 뒷모습 같거든요. 이렇게라도 말하면 외워질까요? 클클.”
언니는 그 철자들을 마치 귀한 보석이라도 발견한 듯 거친 지문으로 가만히 쓸어보았다. 식당 주방의 자욱한 김 속에서 타인의 허기를 채우느라 정작 자신의 생은 마를 대로 말라버렸던 시간이었다. 그 척박한 세월이 비로소 ‘낯선 언어’라는 형체를 얻어 눈부시게 산란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배움이란 지겨운 의무거나 세속의 훈장이었겠지만, 언니에게 그것은 온 생을 다해 당도해야 했던 눈물겨운 목적지였음을 나는 그 젖은 눈동자 속에서 읽어냈다.
그날 밤 나의 문장들도 고열을 앓듯 흔들렸다. 나의 글이 가난을 투정하거나 자기 연민하는 흔적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언니의 굳은살 박인 손마디처럼 정직하고 단단해지고 싶었다. 화려한 수식어로 치장된 가짜 위로보다는, 삶의 무게를 견뎌낸 사람만이 비로소 빚어낼 수 있는 ‘단어의 온도’를 나는 절실히 갖고 싶어졌다. 언니에게 글자를 가르치며, 역설적이지만 나는 문학이 가야 할 가장 낮고도 깊은 길을 배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밤,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던 언니가 빙판길에서 크게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가파른 원룸촌의 얼음길이 결국 사달을 낸 것이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간 병실에서 나는 언니의 다리에 감긴 두꺼운 깁스보다, 병실에서도 문제집을 놓지 않고 있는 언니의 눈빛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언니는 통증보다 공부할 시간을 놓치는 것을 더 아쉬워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이 비탈진 언덕길이,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올라야만 하는 희망의 고개였다는 것을.
나는 언니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병실을 지켰다. 영어를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언니의 투박한 삶에 알파벳을 입히고, 언니가 영어를 술술 읽을 수 있을 때까지 곁에서 돕는 일뿐이었다. 배움이라는 이름의 고귀한 순환은 그렇게 소리 없이 시작되었다. 언니는 나를 통해 모든 교과목을 익혔고, 나는 언니에게 혹독한 삶을 잘 견뎌내는 법을 배웠다.
퇴원 후 아직 발목이 완쾌되지 않은 언니의 팔짱을 끼고 다시 그 가파른 비탈길을 올랐다. 예전 같으면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바닥만 보고 걸었을 길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언니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걷다 보니, 보도블록 사이로 피어난 이름 모를 풀꽃들이 보였다.
“선생님, 여기 꽃 좀 봐요. 이 척박한 데서 참 예쁘게도 피었네.”
언니는 웃으며 말했다. 가파른 경사는 그대로였지만 함께 맞잡은 팔의 온기 덕분에 우리는 이제 더는 기울어진 각도에 패배하지 않기로 작정한 것처럼, 온전한 두 발로 세상을 딛고 설 수 있음에 목이 젖는다. 혼자일 때 그 길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었으나, 둘이 되자 서로를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나도 졸업했고, 나는 언니의 권유로 그토록 꿈에 그리던 투룸으로 거처를 옮겼다. 언니는 마침내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나는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언니가 내밀던 그 낡은 문제집은 이제 내 서재의 가장 소중한 곳에 꽂혀 있다. 내가 글을 쓰다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그 거친 종이 질감을 만져본다. 그러면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기곤 했다.
어느덧 영선 언니는 환갑을 넘겼고, 놀랍게도 현재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돋보기를 쓰고 새 학기 교재에 형광펜으로 단어를 표시하는 언니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배움이란 특정한 시기에만 누리는 특권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가장 고귀한 태도라는 것을. 그리고 가난은 부끄러운 흉터가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을 품기 위한 깊은 골짜기였음을.
사람들은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믿는다. 화려한 날개를 달고 고귀한 빛을 내뿜으며 강림할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내가 만난 천사는 달랐다. 울긋불긋한 양념이 묻은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손끝에 고춧가루 물이 든 채 말없이 곁에 앉아주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삶도 한없이 무겁고 고단할 터인데, 기꺼이 타인의 짐 밑으로 자신의 어깨를 밀어 넣는 사람이었다.
오늘도 나는 믿는다. 천사는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조용히 누군가의 하루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가파른 비탈길 위에서 숨을 몰아쉬는 청춘의 등을 가만히 밀어주며, 무너지지 않을 온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을. 나의 영원한 천사인 영선 언니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이제 나 또한 누군가의 절룩이는 생 밑으로 기꺼이 문장의 어깨를 밀어 넣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내가 만난 천사에게 진 고귀한 생의 부채를 갚아나가는, 작가로서의 가장 따뜻한 보답임을 조금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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