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1

[선진국의 역설①] ‘부유한 나라, 가난한 노인’ 집은 있는데 쓸 돈이 없다

입력 2026-08-21 10:17 수정 2026-08-21 10:19

66세 이상 빈곤율 40%…출생세대별 비교 분석으로 드러난 ‘성장의 세대차’

(이미지=AI 생성)
(이미지=AI 생성)

한국은 중진국 함정을 벗어난 대표적인 성장 성공국이다. 그런데 경제적 번영이 사람들의 삶도 그만큼 풍요롭게 만들었을까. 한국·일본·싱가포르를 분석한 연구는 경제적 성공이 관계와 삶의 주도권, 환경의 성공까지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한다. ‘선진국의 역설’은 이 질문을 한국의 노년에 대입한다. 첫 번째는 돈이다. 나라가 부유해진 만큼 노후도 부유해졌을까.

대한민국의 압축성장기를 온몸으로 통과하며 나라의 부를 키운 세대가 이제 고령층이 됐다. 한국은 부유한 나라가 됐지만, 노인빈곤율은 여전히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OECD가 2026년 펴낸 한국 웰빙 보고서를 보면 2022년 66세 이상 한국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0%였다. OECD 평균 16%의 두 배가 넘는다. 76세 이상에서는 54%까지 올라간다. OECD 평균은 19%다. 상대적 빈곤은 가처분소득이 한 나라 중위소득의 절반에 못 미치는 상태를 뜻한다.

‘노인빈곤율 40%’보다 눈여겨볼 숫자가 있다. KDI는 현재 고령층에 진입했거나 진입을 앞둔 1935~59년생을 5년 단위 출생세대로 나눠 2016~2021년 빈곤율을 추적했다. 2021년 기준 이들은 약 62~86세에 해당한다.

조사에서 가장 오래된 1935~39년생의 빈곤율은 56.3%였다. 1940~44년생 51.3%, 1945~49년생 44.5%, 1950~54년생 27.8%, 1955~59년생 18.7%로 출생연도가 늦을수록 크게 낮아졌다. 가장 오래된 세대와 가장 젊은 세대의 격차는 37.6%포인트였다. KDI 역시 특히 1950년 이전 출생세대에서 빈곤율이 높은 점에 주목했다.

(이미지=AI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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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시기에 따라 달라진 빈곤-2021년 출생세대별 빈곤율]

1935~39년생 56.3%

1940~44년생 51.3%

1945~49년생 44.5%

1950~54년생 27.8%

1955~59년생 18.7%

→ 1930년대 후반생과 1950년대 후반생 격차 37.6%p ※ KDI가 1935~59년생을 5개 출생코호트로 나눠 분석. 2021년 기준 약 62~86세에 해당됨.

자료: KDI·한국은행 공동 심포지엄, 이승희 KDI 연구위원

이 차이는 단순히 ‘나이가 많을수록 가난하다’는 설명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KDI가 주목한 것은 한국의 압축성장이다. 한국은 짧은 기간에 가난한 나라에서 고소득 국가로 올라섰다. 그만큼 어느 시기에 태어나 경제활동을 시작했느냐에 따라 누릴 수 있었던 소득과 교육, 사회보장의 조건도 크게 달랐다. KDI는 과거의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고령층 내부의 출생세대 간 빈곤 격차가 크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한국을 가난에서 탈출시킨 성장의 혜택이 모든 세대에게 같은 시기에 도착한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국민연금이 대표적이다. 국민연금이 전 국민으로 확대된 것은 1998년이다. 이미 중·장년기에 접어든 세대에게는 연금을 충분히 쌓을 시간이 없었다. 2024년 국민연금 수급률은 1930년대 후반생 26.3%, 1950년대 후반생 61.1%였다. 월평균 수급액도 24만 원과 60만 원으로 2.5배 차이가 났다. 연구 역시 이전 세대일수록 가입기간이 짧아 수급액이 적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지금의 노인빈곤율 40%를 앞으로 모든 세대가 맞게 될 미래로 그대로 옮겨놓을 수는 없다. 실제로 KDI 분석에서 소득과 자산이 모두 낮은 경제적 취약계층의 비율도 출생세대에 따라 크게 갈렸다. 2021년 기준 1930년대 후반생은 45.9%, 1950년대 후반생은 13.2%였다. 소득뿐 아니라 자산을 함께 보더라도 현재의 후기고령층에 취약성이 훨씬 강하게 집중돼 있었다.

그렇다고 새로운 고령세대의 노후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의 모양이 달라지고 있다. 이번에는 ‘얼마를 갖고 있는가’와 ‘얼마를 쓸 수 있는가’ 사이에 틈이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1·2인 고령가구 자산 적정성 분석에서 2021년 평균 총자산은 4억 2926만 원, 중앙값은 2억 250만 원이었다. 숫자만 보면 모두 빈곤하다고 부르기 어려운 규모다.

하지만 자산을 뜯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분석 표본의 자산을 합산했을 때 64%가 현재 사는 집이나 전월세보증금 같은 ‘주거자산’이었다. 금융자산은 약 10%였다.

3억 원짜리 집에 산다고 매달 3억 원을 꺼내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집은 재산이지만 팔거나 담보로 활용하지 않는 한 식비와 관리비, 병원비가 되지 않는다. 자산 규모와 노후의 생활비가 따로 움직일 수 있는 이유다.

실제 분석에서도 이 차이가 뚜렷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가구의 소득·자산·연령 등 특성을 반영한 소비지출함수로 고령가구의 ‘적정소비’를 추정해 실제 소비와 비교했다.

65~69세에서는 29%가 적정소비를 경상소득으로 충당하기 어려웠다. 70~74세 45%, 75~79세 54%, 80~84세 61%, 85세 이상에서는 65%까지 높아졌다.

더 눈여겨볼 결과는 자산과 소득을 따로 비교했을 때 나온다. 75~79세 가운데 자산은 많지만 소득이 부족한 가구의 소비 감소율 중앙값은 21%였다. 80~84세는 24%, 85세 이상은 33%였다. 반대로 소득은 충분하지만 자산이 적은 가구에서는 같은 연령대의 소비 감소율이 각각 14%, 15%, 9%였다.

집과 자산을 많이 갖고 있는 것보다 매달 들어오는 돈이 실제 생활에는 더 중요했다. 연구진도 자산 규모보다 노후의 현금흐름이 소비 수준을 좌우하는 데 더 중요한 요인이라고 해석했다. 여기서 말하는 ‘적정소비’도 넉넉한 노후생활비를 뜻하지 않는다. 2021년 중앙값 기준 연구가 추정한 적정소비는 연 1567만 원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고령가구가 스스로 답한 최소생활비 1800만 원보다 오히려 낮았다. 연구진도 이 적정소비 추정치를 비교적 보수적인 수준으로 봤다.

더 흥미로운 결과는 자산을 생활비로 바꿔봤을 때 나온다. 2021년 금융자산만 연금처럼 나눠 쓴다고 가정하면, 앞으로 필요한 적정소비를 충당하기 어려운 비율은 1인 가구 76%, 2인 가구 78%였다. 반면 거주 주택을 포함한 순자산을 모두 연금화한다고 가정하면 적정소비를 충당하기 어려운 가구는 약 30%까지 줄었다.

여기서 ‘연금화’는 실제로 집을 팔거나 주택연금에 가입했다는 뜻이 아니다. 보유자산을 남은 생애 동안 연금처럼 나눠 쓸 수 있다고 가정한 계산이다. 상속 의향이나 비상시에 대비한 저축, 실제 연금화 비용도 반영하지 않아 연구진은 이 값을 일종의 상한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살고 있는 집까지 모두 연금화한다고 가정하면 그 비율은 약 30%로 크게 떨어졌다. 한국 노후의 자산 문제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숫자다. 돈이 아예 없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돈이 집의 형태로 묶여 있어 꺼내 쓰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자본시장연구원은 고령가구가 적정소비를 남은 생애 동안 유지하려면 주거자산, 특히 현재 거주하는 부동산의 연금화가 중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부유한 나라, 가난한 노인’이라는 말도 조금 더 정확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의 높은 노인빈곤은 특히 압축성장의 혜택과 국민연금의 보호가 늦게 도착한 세대에 집중돼 있다. 앞으로 더 젊은 고령세대가 들어오면 그 모습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집값이 올랐다고 노후생활비도 그만큼 늘어나는가. 자산이 많아졌다고 매달 쓸 수 있는 돈도 많아지는가. 답은 같지 않다. 한국의 성장 과정은 나라의 부를 크게 늘렸다. 그러나 그 부가 어떤 세대에게 언제 도착했는지, 그리고 노년에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돈으로 바뀌었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노년의 경제력을 볼 때 이제 ‘얼마를 가지고 있는가’만 물어서는 부족하다. 더 날카로운 질문은 이것이다. ‘앞으로 살아갈 동안, 나는 매달 얼마를 쓸 수 있는가.’

그 돈이 부족하면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다음 방법은 다시 일하는 것이다. ‘선진국의 역설’ 두 번째 편에서는 한국의 또 다른 숫자를 살펴본다. 주된 직장에서는 일찍 밀려나는데, 노동시장에서는 OECD 국가들보다 훨씬 늦게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기사에 활용한 주요 자료]

Dennis J. Snower·David Ortega, 「The Dark Side of Escaping the Middle-Income Trap: The Case of Korea, Japan and Singapore」, INET Oxford Working Paper 2024-09

→ 경제적 성장과 사회적 연대·삶의 주도권·환경적 번영이 반드시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을 제시.

OECD, Inclusive and Sustainable Well-being in Korea: 30 Years of OECD Membership and Future Policy Opportunities, 2026

→ 한국의 장기 경제성장과 노인빈곤 등 삶의 질 변화를 OECD 국가와 비교 분석.

이승희 KDI 연구위원, 「노인빈곤의 현황, 전망과 대응」, KDI·한국은행 공동 심포지엄

→ 출생세대별 빈곤 격차와 압축성장, 국민연금 가입기간 차이가 현재 노인빈곤에 미친 구조를 분석.

김민기·정희철·김재칠, 「고령화와 가계 자산 및 소비(Ⅱ): 고령가구의 소비와 자산 적정성」, 자본시장연구원 연구보고서 25-03

→ 고령가구의 소득·소비·자산 구성과 주거자산을 실제 노후소득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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