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60세가 법제화된 지 어언 10여 년. 국민연금 수급 연령과 연계한 법정 정년 연장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그전에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몇 살부터 노인일까? 왜 그 나이가 노인일까? 과연 나이로 차별해도 될까?
‘몇 살’부터 노인일까? 노인을 정의하는 일반적인 연령 기준은 65세다. 우리나라에서는 1981년 노인복지법을 제정하며 경로우대 기준을 65세 이상으로 정했다. 세계도 노인을 정하는 나이에 대해선 이견이 크지 않다. 국제연합(UN)은 고령화사회, 고령사회, 초고령사회를 구분하는 연령 기준을 65세로 하고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로 분류하고,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까지 치솟으면 초고령사회라 한다. ‘몇 살부터 노인일까?’라는 질문은 이제 크게 어렵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질문을 조금 바꿔보면 난이도가 꽤 올라간다. 그럼 ‘왜’ 65세부터 노인일까?
연령주의와 연령 차별
“혹시 연령주의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최성재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가 취재 취지를 들은 뒤 맨 처음 한 말이다. 정년 연장 논의에 앞서 노인을 정의하는 기준 나이부터 짚고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인=65세’의 기원은 프로이센 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철의 재상’이라 불리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1889년 세계 최초로 공적 연금제도를 시행하며 사회보장제도의 기틀을 마련했다. 자본주의 확산으로 사회주의 역풍이 불고 노동운동이 득세하자, 그 투쟁 의지를 꺾기 위해 연금보험을 도입한 것이다. “일정 연령까지 일한 뒤 퇴직하면 연금으로 생활하도록 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스마르크는 본인 나이를 토대로 70세 이상이면 수급할 수 있도록 법안을 만들었어요. 문제는 비스마르크가 굉장히 건강한 사람이었다는 거죠. 그때까지 산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당시 70세면 굉장한 장수예요.”
현실적인 문제에 부닥친 프로이센은 1916년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65세로 낮춘다. 이후 공적 연금을 도입한 나라들이 프로이센을 따라 사회 은퇴와 연금 수급 연령을 65세로 정했다. “지금도 선진국에선 노인을 정하는 일반적인 연령이 65세입니다. 그런데 왜 65세인지에 대해서는 그 근거가 별로 없습니다. 애초에 비스마르크 나이를 기준으로 했고, 그게 너무 많아서 낮춘 것뿐이니까요.”
우리나라는 노인을 65세로, 정년을 60세로 본다. 2013년 4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고령자고용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정년 60세가 법제화됐다. 그전까지 정년은 개별 기업이 자율로 결정쪾운영했다. 정관에 따라 40~50대에 퇴직해야 했고, 심지어 결혼하면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정년의 최저기준을 마련하고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했다.
여기까지 꽤 논리적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 머리도 굳고 몸도 노쇠해진다고 생각한다. 최성재 교수는 이를 연령주의(연령에 따라 고정관념을 갖거나 차별하는 사상의 표현이나 과정)라고 지적한다. “사람은 개인 차이가 굉장히 심합니다. 정년 제도는 개인차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나이로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판단하는 거죠. 근본적으로는 나이가 많아지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인데, 그 근거는 찾을 수 없습니다. 65세를 노인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생산성은 보상이나 업무 분위기 등 다른 요인에 의해 훨씬 더 많은 차이가 납니다. 오히려 그런 연구 결과는 아주 많아요. 나이 가지고 일률적으로 생산성을 논하는 것은 과학적인 근거가 상당히 희박합니다.”
고령자고용법의 역설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변호사 역시 취재 취지를 듣고 기본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정년 연장을 논하기 전에 근로계약 기본 원칙을 설명한 이유다. “근로관계에서 기본 원칙은 ‘기간제로 맺는 계약을 제외하고 사용자는 근로자를 기간에 정함 없이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정년 문제에 해당하는 이들은 전부 기간에 정함 없이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입니다. 그런 근로자에 대해서 나중에 정년으로 제한한다는 것은, 즉 기간을 제한한다는 의미입니다.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념에 비춰볼 때 기본적으로 정년 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나이에 따른 생산성 저하는 법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영역에 있다. 근로계약상 노무를 정상적으로 제공할 수 없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61세 1일째부터 정상적으로 일할 수 없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59세에도 정상적으로 일했고 60세에도 정상적으로 일한 사람의 능력이 61세가 됐다고 갑자기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점이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정년 60세 의무화를 정한 법의 목적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고용자고용법 제1조(목적)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 법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하는 고용 차별을 금지하고, 고령자가 그 능력에 맞는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촉진함으로써, 고령자의 고용안정과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입법 취지는 제한이 아니라 보장이다.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정년
학계가 비논리성을 지적하고 법조계가 법리적 부당함을 꼬집어도 여전히 우리네 인식 속 ‘나이’에 의한 판단은 상당히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 한국은 나이에 유독 민감한 나라다. 연령주의와 연령 차별이 머릿속 깊은 곳까지 뿌리내리고 있다. 그래서 나이를 이유로 취직이 안 돼도, 해고를 당해도 대부분 당연하게 받아들이곤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분위기다. 팍팍한 현실이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유례없이 빠른 고령화를 보이고 있다.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가는 데 독일은 30년 이상, 일본은 15년이 걸렸다. 2018년 고령사회로 들어선 한국은 7년 만인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시니어 보릿고개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40.4%로 나타났다. 노인 자살률도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이 와중에 기대수명은 2022년 기준 남자 79.9세, 여자 85.6세, 평균 82.7세로 집계됐다.은퇴 후 20년 넘는 노후가 기다려지기보다 두려워지는 것이다.
최근 정년 연장을 외치는 이들은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연계한 법제화를 요구한다. 법정 정년과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맞지 않아 연금을 받을 때까지 3~5년 동안 소득이 없는 ‘연금 크레바스’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최소한의 생계를 보전할 수 있도록 소득 공백기를 없애달라고 호소한다.
논쟁은 제쳐둔 채, 그 요구가 받아들여진다 해도 근본적인 의문은 남는다. 65세여야 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나이라는 획일적인 기준으로 차별해도 되는가? 김기덕 변호사는 이렇게 반문한다. “국민연금을 61세부터 받을 수 있다고 하면, 60세에 퇴직하는 것이 합당한가요? 그 논쟁으로 돌아가도 문제는 풀리지 않고 계속 존재합니다. 나이를 65세로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정년 문제의 본질은 이것 하나입니다. ‘연령에 따라 차별해선 안 된다.’”
도움말 최성재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변호사
70대 중반 여성이 딸과 함께 진료실로 들어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지럼증과 피로, 불면, 식욕부진을 호소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다고 딸이 대신 말을 했다. 환자인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다. 의자에 앉아 넋이 나간 듯 멀거니 진료실 바닥만 내려다보신다. 그에 비해 딸은 약간 격앙돼 있다. 이런 어머니의 상태에 걱정이 큰 것 같다. 나의 첫 질문은 언제부터 이런 증상이 있었냐는 것이었다. 딸은 올해 초 그러니 거의 9개월이 다 되어 가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인즉슨 이미 다른 병원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질문으로 어떤 병원을 방문했고, 또 어떤 검사들을 받았냐고 물었다. 역시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고 딸이 대신 답을 한다. 어지럼증 때문에 머리 MRI(자기공명영상) 촬영도 했고, 혹시 암일까 걱정돼 위내시경에 복부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도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특성상 병이 진단됐건, 그렇지 않건 병원을 방문해 불편감을 호소하는 분에게는 무조건 약 처방이 나간다. 그러니 자연스레 그 다음 질문은 어떤 약들을 먹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역시나 동네 신경정신과 의원에서 불면증과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고 했다.
이제 어머니는 왜 1년여 전부터 이런 우울감과 더불어 온몸의 기운이 모두 빠져나가 버린 병을 겪게 되신 건지 천천히 파헤쳐야 한다. 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어머니는 현재 그럼 누구랑 함께 지내고 있느냐는 것이다. 내내 높은 목소리로 답을 하던 딸이 잠시 침묵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혼자 지내신다고 했다. 작년 11월 남편과 사별한 후부터 쭉 혼자 지내오고 계신다고 말했다. 환자는 거의 20여 년간 뇌졸중으로 누워지내는 남편을 돌봐왔다. 작년 말 남편이 세상을 떠남과 동시에 이 세상에서 그의 역할 역시 사라져버렸다. 마치 20년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한 느낌이랄까. 아마도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심각한 것은 이제 자신의 숨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텅 빈 집이었다. 이제 환자의 목소리를 들을 차례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슨 일을 하시나요?”
환자는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혼자 지내면서 언제부턴가 식사를 차리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심지어 잠을 자는 것도 살기 위한 모든 것이 무의미해져 버린 것이다. 조심스레 따님에게 어머니를 모시고 살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딸은 당황해했다. 형제는 3남매지만 누구 하나 형편이 여의치 않아 홀로 남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 어렵다고 했다. 급기야 딸이 말했다.
“그냥 입원시켜 주시면 안 돼요?”
입원해서 MRI든 CT든 다시 모든 검사를 다 받더라도 반드시 원인을 찾고 싶다고 했다. 나는 구태여 불과 몇 달 전에 한 그 검사들을 다시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아마도 어머니의 가장 큰 고통은 외로움인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아마 딸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 수 개월간 여러 병원을 함께 다니면서 나와 같은 얘길 한 의사가 있었을 테니 말이다. 나는 다시 환자에게 시선을 돌려 질문을 했다.
“그래서 식사는 어떻게 드시나요? 목 안으로 넘어가는 음식은 있으신가요?”
“혼자 있는데 뭘 차려 먹습니까. (딸을 가리키며) 가끔 이 애가 와서 같이 먹을 때나 밥술이 넘어가지...”
자녀들이 다 독립해서 집을 떠나고 단 둘만 남은 노부부 중 먼저 한 명이 떠나면 나머지 한 명의 삶은 참 고독할 것이다. 그렇다고 자녀들이 와서 다시 돌보기도 쉽지 않다. 딸도 알고 있다. 선택지는 결국 노인요양시설이라는 것을. 그러나 차마 그러고 싶지 않아서 대학병원 진료실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왔을 것이다. 누굴 비난할 수도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맞아야 할 미래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거의 20여 년째 우리와 경제 수준이 비슷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자살률 특히, 노인 자살률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 노인 빈곤율 또한 독보적인 1위다.
우리는 젊은 날 자식들의 사교육과 재테크를 위한 주식, 부동산에 온통 시간을 보내면서 결국 우리가 늙었을 때 어떻게 지낼 지에 대해서는 어떤 관심과 공부 그리고 계획도 세우지 않는다. 다들 막연히 은퇴 후에는 여행이나 다녀야지 하는 뻔한 말뿐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노년은 참으로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것은 낮은 출산율만큼이나 노년기의 우울과 사회적 고립에 대한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을 병으로 치부하고 병원으로 달려오게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고독(孤獨)과 고립(孤立). 한 글자 차이지만 뉘앙스는 다르다. ‘고독을 씹는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간헐적 단절 상태를 자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립은 대체로 장기간 뜻하지 않게 사회와 차단된 처지다. 그런 점에서 ‘고독 위험’은 어색하지만, ‘고립 위험’은 말이 되는 듯하다. 때문에 우리가 흔히 쓰는 ‘고독사’라는 단어도 실상은 ‘고립사’에 가깝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고립은 사회적 고립과 감정적(정서적) 고립으로 나뉜다. 사회적 고립은 사회연결망 결여로 대인관계나 사회활동 참여가 단절된 상태를 말한다. 감정적 고립은 사회연결망이 구축됐고 일원으로 속했음에도 감정적으로 동떨어진, 주관적 고립 상태다. 최근에는 가족·이웃 간 유대 약화, 1인 가구 증가, 코로나 등으로 인해 사회적·감정적 고립을 경험하는 이가 늘고 있다. 특히 중장년은 은퇴와 동시에 사회연결망이 사라지고, 자녀의 독립, 배우자와의 사별 등으로 인해 뜻하지 않은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러한 고립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면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해칠뿐더러 자칫 고독사 위험에 놓이게 된다.
고독과 고립, 뭐가 다를까?
누구나 살면서 고독과 외로움은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감정이 찾아왔을 때 잘 다루고 이겨내면 괜찮지만, 아닐 경우 고립의 늪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독과 고립은 어떻게 구분할까? 임선진 국립정신건강센터 노인정신과 과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도움을 청할 대상이 있느냐 없느냐로 가늠한다”며 “중장년기에 퇴직, 사별 등으로 일시적인 우울, 소외, 고독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이 생겼을 때 터놓고 이야기하거나 의지할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고립’ 상태로 본다”고 설명했다.
통계청 통계개발원이 발표한 ‘한국의 안전보고서 2022’에 따르면 ‘사회적 고립도’는 위기 상황에 도움받을 곳이 없는 사람의 비율로 정의한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아플 때 집안일을 부탁할 사람이 있느냐, 힘들 때 이야기할 상대가 있느냐 등을 물었을 때 ‘없다’고 응답한 수치를 환산했다. 그 결과 사회적 고립도는 2019년 27.7%에서 2021년 34.1%로 6.4%p 증가했다. 연령별로 보면 나이가 많아질수록 사회적 고립도가 높아졌다.
보고서의 원자료가 된 2021년 통계청 ‘사회조사’를 보면 연령 대비 교류하는 사람 수는 반비례했다. 특히 ‘가족 또는 친척 이외 교류하는 사람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20~30대 13~19%, 40~60대 20~27%, 70대에는 38%까지 늘어나다가 80대에는 51%로 절반을 웃돈다. 같은 조사에서 ‘사회적 관계망’을 묻는 항목을 살펴보면(낙심하거나 우울할 때 이야기할 상대가 있는가) 이 또한 나이가 들수록 도움을 청할 사람 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또 한국행정연구원이 실시한 ‘사회통합실태조사’(2022)에서는 평일 하루 접촉하는 사람 수와 접촉 방식에 대해 파악했는데, 해당 조사에서도 고령자일수록 ‘하루에 접촉하는 사람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아졌다. 수치로는 40대(1.6%) 대비 65세 이상(4.7%)이 3배가량 높게 나타났다. 특히 65세 이상의 과반수가 가족 또는 친척 대상에서도 하루 접촉하는 사람 수가 1~2명 정도라 답했는데, 그중 대면 접촉은 3분의 1 미만이었다. 대체로 전화 통화로 접촉하는 상황이었고, SNS나 문자를 이용하기도 했으나 극소수였다.
가족과 함께 살면서도 고립?
사회적 고립을 말할 때 1인 가구 문제가 빠지지 않는다. 해마다 이뤄지는 통계청 인구총조사를 보면 2015년 이래 1인 노인 가구 비율은 지속 증가하고 있다. 최근 조사인 2021년 조사에서 65세 이상 1인 가구는 36.4%였다. 여성가족부 가족실태조사에서도 1인 가구의 어려움울 묻는 항목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있어 외롭다’는 응답 비율은 연령대와 비례했다. 물리적으로 혼자 지내기 때문에 외로움·고립감이 더 크다는 건 자연히 수긍이 된다. 그렇다면 함께 사는 가족(또는 동거인)이 있으면 고립을 피할 수 있을까? 임선진 과장은 “가족이 곁에 있다면 사회적 고립은 아니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이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감정적 고립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나이가 들어 일을 그만두고 자녀가 출가하면 가장 가까운 가족이자 주변인은 배우자가 된다. 그럼에도 배우자와 걱정거리를 편하게 이야기하는 중장년은 일부인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가족실태조사에서도 배우자와의 사별 가능성이 적은 40~60대 중장년의 경우 배우자와 고민을 나누는 비율은 10% 미만이었다. 하루 중 대화 시간 또한 1시간 미만인 부부가 과반수였다. 임 과장은 “감정적 고립을 호소하는 분들에겐 가능하면 가족 교육을 진행한다. 가족 구성원들에게 고립 대상자가 얼마나 감정적으로 힘든지, 왜 그런지, 가족이 어떤 역할을 해야 고립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 등을 설명해드린다”며 “자녀 세대와의 감정적 거리도 멀다. 특히 요즘 세대가 쓰는 약어나 은어 등을 이해하지 못해 대화가 단절되는 경향이 적지 않다. 초반에는 소외감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심해지고 마음의 벽이 생기면서 고립을 초래한다”고 덧붙였다.
마음의 문 열고, 관심사 확장하기
고립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대상이 꼭 가족이나 친구일 필요는 없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회복지사나 기관 상담사 등도 해당된다. 가령 종교가 있다면 교회나 절 등에 다니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도움을 얻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지 않다면 기관이나 제도의 지원을 받는 것도 괜찮다. 최근에는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는 지자체 프로그램도 활성화된 편이다. 이러한 지원책에 대해 잘 모르거나 서비스가 빈약한 지역에 산다면 고립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족이 함께하고 지역사회 서비스도 마련됐는데, 스스로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없다면 예후가 좋지 않다. 감정적 고립이 심한 상태로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다른 질환이나 증상을 동반할(또는 동반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임 과장은 “젊은 시절부터 사회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못 해본 중장년이라면 주변인이나 사회관계망 서비스 등에 경계하는 양상을 보인다. 또는 성격적으로 의심이 많거나, 알코올 중독증이나 우울증, 조현병을 앓는 경우도 타인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부지만 새터민이나 다문화가정 외국인 등도 지역사회나 이웃에 대한 신뢰를 갖기 어려워 고립되기도 한다”며 “내원하시는 분들에겐 필요하면 약물치료나 상담치료를 진행하기도 하고, 지역 사회복지사 등 전문 인력과 의논해 지속적으로 마음의 문을 열게끔 시도한다”고 말했다.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타인도 나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야 고립 탈출의 첫발을 뗄 수 있다는 게 임 과장의 설명이다. 그는 “중장년이 고립되는 사례를 보면 이러하다. 퇴직 후 의기소침해져 친구들을 멀리한다거나, 경제적으로 빈곤해져 약속이 부담스럽거나, 자녀가 취업·결혼 등을 못 했다는 이유로 주변과의 만남을 피하거나, 부부동반 모임이었는데 사별 후 소외를 느껴 나가지 않는 등 다양하다. 그런데 가만 보면 그 원인이 자신에서 비롯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때문에 나이 들수록 본인의 정체성에 집중해서 살아야 한다”며 “뭐든 자신을 중심으로 관심을 확대해나가면 좋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걸 잘할 수 있을지. 내가 갖고 있는 질환은 무엇이고,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만약 스스로 고립에 처했다고 느낀다면 이 상황을 벗어나게 도와줄 사람은 누구인지, 기관은 어디인지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길 바란다. 그렇게 사회와 연결되고 활동 반경을 넓혀나가는 노력을 통해 고립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노후에 얼마가 있으면 될까요?” 자산관리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하지만 100세 시대에는 이 질문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현금흐름 세계에서 가장 불확실한 건 ‘내가 몇 살까지 살지 모른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평균 은퇴 나이 50세, 국민연금 수령 나이 약 65세, 은퇴 후 1년 내 정규직 재취업률 9%, 기대수명 83세, 노인 빈곤율 OECD 1위. 노후를 두렵게 하는 숫자들이다. 부모 부양에, 나의 노후 대비에, 자녀 부양까지 어깨가 무거운 중장년에게 100세 시대란 불안에 가깝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숫자를 무서워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물론 노후를 위한 현금흐름 만드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다.
우물과 곳간, 무엇이 우선인가
노후에 돈 걱정 없이 살기 위해서는 ‘OO억 원’이라는 곳간 자산을 마련해 평생을 꺼내 쓰는 게 유리한지, 죽을 때까지 퍼 올릴 현금 우물을 만드는 게 유리한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좋은 건 곳간과 우물 자산을 둘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둘의 균형이 맞으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정해진 예산 안에서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 정말 우리가 100세까지 살아야 한다면, 은퇴 후 50년의 생을 한 바퀴 더 돌아야 한다. 그렇다면 죽을 때까지 마르지 않는 우물이 꼭 있어야 한다.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는 우물형 자산이 노후 준비에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우물 자산은 국민연금, 주택연금, 연금보험 등으로 종신 형태의 연금 자산이다. 김 상무는 “곳간 자산은 ‘곳간이 먼저 비느냐, 내가 먼저 죽느냐’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면서 “자산관리에서는 불확실성을 줄여나가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연금 자산은 처분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형태다. 또 자산을 다 쓰기 전에 내가 먼저 죽으면 어떡하나 걱정한다. 김 상무는 부동산에 돈이 묶이는 건 괜찮지만 우물에 자산이 묶이는 것을 걱정하는 건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부동산을 깔고 앉은 노후는 자린고비 같은 삶일 수 있다.
다만 우물을 어떻게 만들지는 계획과 설계가 필요하다. 김동엽 상무는 “지속적인 현금흐름을 가진 자산이라는 건 부득이한 경우에도 계속 돈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우물을 얼마나 깊게 팔지, 폭은 어떻게 할지는 본인의 상황에 맞게 계획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우물을 너무 깊게 파면 현재 자금이 너무 많이 묶이고, 너무 얕게 파면 노후에 자금이 먼저 고갈될 수 있다. 이 우물의 자산을 평생 죽을 때까지 쓸 것인지, 기간을 정해두고 쓸 것인지도 중요한 전략이다. 김 상무는 “자산을 적립하고 쌓아가는 과정에서는 덩어리 자산, 즉 곳간을 채우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라면서도 “은퇴 후 곳간의 자산을 얼마나, 어떻게 우물 자산으로 전환할 것인지는 추후에 고민해봐야 하는 지점”이라고 짚었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우리는 생각보다 더 오래 산다’는 것이다.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는 “노후 설계를 할 때 평균 수명이 아니라 20% 생존확률 연령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존확률 연령에 따르면 1980년생 기준 다섯 명 중 한 명은 평균 101세까지 산다. 강 대표는 “52세에 은퇴해 평균 수명인 83세까지 산다고 해도 31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자산의 90%가 현금 유동성이 없는 부동산이고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도 65세 이상 인구에서 절반뿐”이라면서 “수입이 있는 일이든, 취미든, 사회공헌이든 평생 현역으로 살아갈 마음을 가지고 노후를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현금흐름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노후에 어떤 삶을 살 것이며 적정 생활비는 얼마일까?’에서 시작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전문가에게 묻지만 답은 자신에게 있다. 전문가들은 다가올 노후를 겁낼 필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부터 포기하지 않고 하나씩 만들어가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된다는 조언이다.
금융업에 몸담은 지 50년. 투자자들에게 장기투자와 분산투자의 원칙을 전하고 노후 설계의 필요성을 전파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76세인 지금도 현장에서 1년에 170번 이상의 강연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산관리 방법을 전하는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의 이야기다.
강창희 대표는 한국거래소에서 시작해 대우증권을 거쳐 현대투신운용사와 굿모닝투신운용사 대표직을 역임했다. 이후 미래에셋증권 그룹 부회장 겸 은퇴연구소장으로 9년을 일했다. 지금은 9년째 사회공헌 조직인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금융업에 첫발을 들일 때만 하더라도 자신이 은퇴 교육이나 노후 설계 교육을 하고 있으리라 상상도 못 했다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노후자산 관리에 대해 물었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연금
노후 대비 자산관리는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세 가지 자산을 잘 운용하는 것을 말한다. 세 가지 자산은 실물자산, 금융자산, 인적 자산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산관리라고 하면 “몇 억이 있으면 노후가 충분하냐” 묻지만, 강창희 대표는 100세 시대에 이 질문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한다.
“자산관리라고 하면 돈을 버는 것만 생각하는데, 주어진 상황에 맞춰 사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자산관리에 포함됩니다. 절약도 자산관리라는 의미지요. 매달 받는 연금이 있는지,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균형을 잘 맞춰가고 있는지, 인적 자원 관리를 잘해서 내 몸값을 높이고 있는지, 내 수준에 맞춰 생활하고 있는지 등이 중요합니다.”
노후에 얼마가 필요할지는 개인마다 천차만별이다. 시골에서 사는가 도시에서 사는가, 1인 가구인가 4인 가구인가, 어떤 취미를 즐기는가, 여행을 1년에 몇 번 갈 것인가 등 노후에 어떤 삶을 보낼 것인가에 따라 필요한 생활비 수준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강창희 대표는 ‘몇 억이 있어야 노후가 준비됐다’는 고정관념을 조금씩 바꿔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얼마를 준비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생활수준을 어디에 맞출 건지가 중요합니다. 주어진 상황에 맞춰 사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데 이것을 ‘경제적 자립’이라고 합니다. 노후 생활비가 모자란다고 해서 실망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다면 노후 대비 자산관리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묻자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연금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퇴직연금을 굴리면서 자산관리의 기본 지식을 쌓아가야 한다.
“1980년대 우리나라 노인의 72%가 자녀의 도움으로 수입을 충당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14%가 자녀의 도움을 받습니다. 연금을 준비해서 30년 동안 매달 300만 원씩 받으면 12억 원 정도의 예산이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걸 돈이라고 생각 안 해요. 20~30대 직장생활 시작과 동시에 3층 연금이라고 하는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을 준비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3층 연금을 준비했다면 농지연금, 주택연금 등 공적·사적 연금으로 최소 생활비를 확보하는 것이 노후 대비 자산관리의 시작입니다. 대부분의 국민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최소 생활비를 공적·사적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 준비를 하는 나라가 선진국이에요.”
부동산·금융자산 균형 찾아야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산은 대부분 실물자산, 그중에서도 부동산에 치우쳐 있다. 65세 이상의 부동산 자산 비중은 80~90%에 이른다. 강창희 대표는 주택연금 등을 꼭 활용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는 노인 대국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에는 빈집이 넘쳐난다. 자식들은 부모의 집을 상속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히려 웃돈을 얹어 집을 팔아야 할 처지까지 왔다. ‘아사히신문’은 지금의 부동산(不動産)은 부(負)동산이 됐다고 진단했다.
“마이너스 동산 시대가 왔다는 거죠. 과거 수명이 짧았을 때는 자식에게 집을 물려줘도 됐지만, 부모가 90세가 되면 자식도 60대입니다. 노인이 노인에게 집을 물려주는 셈이죠. 일본 경제가 한동안 침체된 이유 중 하나가 노노(老老) 상속입니다. 경제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젊은이들에게 자산이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70이 넘어 집을 상속하는 것보다 주택연금으로 생활비를 받아 손주 학비에 보태주는 게 더 나을 수 있어요. 10억 원 가치의 집에 살아도 현금이 없으면 빈곤한 노인입니다.”
자식에게 부양을 기대할 수 없고, 자식을 부양할 수도 없는 시대다. 강 대표는 오히려 나이 들수록 고층 아파트에 살지 말라고 조언한다. 고독사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이유에서다. 비싸고 평수 넓은 아파트보다 걸어서 장을 볼 수 있고, 문화시설이 가깝고, 병원이 가까운 작은 평수의 집으로 다운사이징하고, 차액은 노후자금으로 활용하는 게 낫다는 것. 이제는 집을 자산의 관점으로 봐야 할 때가 왔다.
더불어 위험관리도 시작해야 한다. 노후 파산의 원인으로 꼽히는 다섯 가지 리스크는 은퇴 창업 리스크, 금융사기 리스크, 자녀 리스크, 건강 리스크, 황혼이혼 리스크다. 40대라면 건강관리가 우선이다. 중대 질병보험 등으로 의료비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자녀 리스크 관리도 이때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교육비, 자녀 결혼 비용을 어떻게 준비하고 쓸지 계획하고 자녀의 경제적 자립심도 키워줘야 한다. 강 대표는 자녀의 경제적 자립을 도울 수 없다면 증여를 서두르는 게 답은 아닐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평생 일할 각오를 하라
50대가 넘어서면 앞서 말한 부동산 자산의 비중을 점차 금융자산으로 이동해야 한다. 부동산을 안고 있는 상태에서 집값이 떨어지고 부채가 많다면 ‘하우스푸어’(House Poor)가 될 수 있다.
“부채를 줄이고 어떻게든 부동산과 금융자산이 반반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가계자산의 구조조정을 시작하는 것이죠. 다음으로 할 일은 퇴직하고도 할 수 있는 일을 준비하는 거예요.”
최소 연금이 준비되었다면 인적 자본에 투자해야 한다. 몸값을 올리라는 이야기다. 강창희 대표는 세 가지 자산 중 인적 자산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가장 확실한 노후 대비는 평생 현역”이라고 강조했다. 옥스퍼드대학교의 마틴스쿨은 2033년까지 현재 존재하는 직업의 47%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직업이 사라지는 시대를 다른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일이 생기는 시대이기도 하다.
“창직의 시대가 오는 겁니다. 기왕이면 청년 세대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청년 세대가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일을 할 수밖에 없어요. 요즘은 퇴직하고도 2~3개의 직업을 가지게 되죠. 지금부터 퇴직 후에 할 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얼마를 버느냐도 중요하겠지만,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핵심입니다.”
미국에는 약 200만 개의 NPO(제3영역의 비영리단체)가 있다. NPO는 정부나 기업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 노후가 준비된 미국 은퇴자들은 현역 시절 받았을 수입의 3분의 1만 받고 NPO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강 대표는 노후 준비가 다 되어 있어서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어도 일은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76세의 나이에도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후에는 3대 불안이 있습니다. 돈, 건강, 외로움이에요. 우리는 은퇴 후의 삶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확실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저는 은퇴 후 살아갈 시간을 ‘퇴직 후 12만 시간’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엄청나게 긴 후반 인생을 무얼 하며 살아야 할지 준비해야 하는 거예요.”
강창희 대표는 “준비되지 않은 노후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일할 능력이 있고 의향이 있다면 충분하다는 것.
“지금 노후자금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해서 큰일 나는 게 아니고, 평생 현역으로 살아갈 마음가짐으로 하나씩 준비해나가면 행복한 노후를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은퇴 후가 걱정되긴 하는데, 노후자산 관리를 해야 한다고 듣긴 들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잘 왔다. 막막한 마음에 자료를 찾아봤지만 도통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어서 덮어버린 경험이 있다면, 역시 번지수 잘 찾았다. 당신을 노후자산 관리로 연착륙시켜줄 ‘가장 쉬운’ 가이드를 시작한다.
“재수 없으면 오래 산다는 말이 있죠? 아니요. 이젠 그냥 오래 삽니다. 장수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예요.”
지난 7월 ‘Age, Age, Age 나이, 세대, 시대’ 강연자로 나선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의 말에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다들 표정이 좋지 않으시네요? 으하하하.” 눈치 빠른 김 교수의 넉살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지만 강연장 내 수백 명의 표정은 금세 심란해졌다.
뒤숭숭한 마음을 달랠 자료를 찾기 쉽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21년 기준 남자 80.6세, 여자 86.6세, 평균 83.6세로 집계됐다. 사망 빈도가 가장 높은 연령을 나타내는 지표인 최빈 사망 연령은 여자 기준 90세를 넘긴 지 이미 3년이 지났다. 여기에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세계 1위라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낮은 탄식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와, 큰일 났다!”
이때 ‘큰일’이란 요컨대 먹고살 걱정이다. 고도성장의 이면에는 ‘시니어 보릿고개’가 있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40.4%로 나타났다. 노인 자살률도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수년째 평균을 크게 웃돌고 있는 실정이다.
50대 이상 퇴직자는 대체로 노후자금 관리를 못 한 채 은퇴를 맞고 있다. 지난 7월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가 퇴직한 50세 이상 남녀 400명을 대상으로 ‘퇴직 전 미리 준비하지 못해 가장 후회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응답자 가운데 37.5%가 재정 관리라고 답했다.
고령화와 저성장, 저금리라는 세 바퀴가 착착 맞물려 돌아가는 불확실성의 시대. ‘스피드와 효율의 민족’ 한국인에게 노후자산 관리란 우선순위에 밀린 그 어딘가에 내팽개쳐져 있다. 그리고 은근한 불안을 안기고 있다.
-STEP 1-
노후자산 점검하기
행동주의 학습이론의 선구자로 불리는 심리학자 스키너는 노년을 ‘낯선 타국’이라 했다. “노년이 슬금슬금 찾아와 무방비 상태인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사실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노년이 찾아오는 것을 외면하기 때문일 경우도 많다”고 말이다. 여기서 ‘노년’을 ‘노후자산 관리’로 치환해도 큰 무리는 없다. 이상건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장은 “본인의 노후자산 현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김진웅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도 구체적인 방법론의 결여를 현장에서 수없이 목격한 인물이다. “보통 노후가 가시적으로 보여야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이론적으로는 많이 알고 있는데 구체적인 방법은 잘 모르고 사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은퇴 전문가들은 막막할수록 점검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본 중에 기본은 ‘3층 연금’(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확인이다. 예상 수령액을 눈으로 보는 것부터(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서 ‘내 연금 조회’를 해보면 예상 수령액을 알 수 있다) 자산관리는 시작된다. 그다음은 보험이다. 80세 만기 상품에 가입해 있지는 않은지 보장 내역을 살펴야 한다. 십수 년을 납입하고도 보장 못 받는 불상사가 실제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늦기 전에 체크해보고 만기 구조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 부채 상환 계획도 고민해봐야 한다. 부동산 담보대출이 클수록 더더욱 사전 점검은 필수다. 부채 규모, 대출 금리, 상환 기간 등을 살피고 은퇴 전까지 어떻게 갚아나갈 것인지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해야 한다.
노후자산 준비 현황을 전체적으로 살필 수도 있다.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이나 금융회사에서 제공하는 노후 진단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손쉽게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
김진웅 소장은 주기적으로 이 과정을 반복하라고 조언한다. 건강관리하듯 자산도 계속해서 들여다봐야 나아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대부분 노후자산을 점검하지 않고 사는데, 평소에 신경 써야 합니다. 문제가 없는지, 더 나아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자산구조가 좋아지죠. 연구소에서 조사해보면 실제 그렇습니다. 동일 소득 구간, 동일 연령대에서도 자산을 관리한 사람과 관리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무척 큽니다.”
-STEP 2-
현금흐름으로 노후 설계하기
이쯤 되면 나오는 단골 멘트가 있다. “그래서 얼마면 돼?” 이어질 상황을 유추하기도 어렵지 않다. “7억? 10억? 그런 돈이 어딨어? 당장 먹고살기 바빠 죽겠는데… 아휴, 모르겠다.”
은퇴 전문가들은 ‘노후를 위해 얼마를 모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이런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상건 센터장은 핵심을 놓치고 있다고 했다. “노후자산을 규모로 설계하는 방법이 있고 현금흐름으로 설계하는 방법이 있는데, 지금은 현금흐름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게 정설입니다. 핵심은 재산이 얼마 있느냐가 아니거든요. 죽을 때까지 돈이 안 떨어지는 게 핵심이죠.”
100세시대연구소의 ‘THE100 REPORT’에서도 노후자산 관리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4대 노후자산 관리 전략 중 첫 번째가 바로 ‘노후자산의 패러다임을 목돈 중심에서 소득(현금흐름) 중심으로 바꾸자’다.
노후소득의 기본은 연금이다. 노후 생활비의 상당 부분을 연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면 은퇴 기간에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김진웅 소장의 예시는 이렇다. “은퇴하려면 10억 원이 필요하다고들 합니다. 그 10억 원 중 상당 부분은 연금으로 커버됩니다. 국민연금을 예로 들겠습니다. 20년 이상 가입한 사람은 평균 수령 금액이 현재 100만 원 조금 안 되는 수준입니다. 계산의 편의를 위해 100만 원으로 어림잡고, 그걸 25년 받는다고 가정하면 3억 원입니다. 10억 원 중에 3억 원은 국민연금으로 커버되는 거예요.”
남은 금액은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그리고 배당, 채권, 리츠(부동산투자신탁) 등 인컴형 자산으로 추가 소득을 올려 보완해나가면 된다. 기존 자산을 재조정하는 방법도 있다. 주택연금이나 농지연금을 활용할 수도 있고, 소일거리를 찾을 수도 있다. 이상건 센터장은 생각해보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고 이야기한다. “적정 은퇴 생활비라는 게 추상적입니다. 그런데 이건 확실합니다. 한번 생각해보는 사람이 훨씬 낫습니다.”
그리고 여기, 은퇴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놓치는 맹점 하나가 있다. 바로 은퇴 후 지출 감소다. 전문가들은 은퇴 후 소비가 시간이 흐를수록 눈에 띄게 감소한다고 했다. 10년 단위로 끊어서 보면 50~60%씩 크게 감소하는 수준이다. 이를 감안하면 설령 10억 원을 목표로 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7억~8억 원으로도 충분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때 3억 원을 국민연금이 해결해주면 3억~4억 원으로 버젓이 살 수 있다. 이만하면 두 번째 단골 멘트가 나올 타이밍이다. “그러니까, 그게 없다고….”
전문가들은 이를 ‘불편한 진실’이라 한다. 실제 우리나라 예비 은퇴자가 확보한 금융자산 수준이 그에 훨씬 못 미치기 때문이다. 김진웅 소장의 말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가구별 금융자산 확보 수준이 1억 1000만~1억 2000만 원밖에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돈이 그래도 3억~4억 원 있으면 걱정을 안 해도 된다고 계산이 나오는데, 실질적으로는 현저히 부족하다는 거죠.”
김 소장은 비교적 젊을 때부터 자산관리를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응책이라고 말한다. “결국 자산관리는 혜택을 현재 누릴 것이냐, 미래에 누릴 것이냐 하는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노후자산 관리의 필요성을 느꼈다면 그때부터는 현재의 나를 위한 축 하나, 노후를 위한 축 하나. 두 축을 가져가야 합니다.”
이상건 센터장은 ‘돈의 크기’에 집중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노후자산 관리에서 방점을 자산이 아닌 노후에 찍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가 금융과 재테크 분야 전문가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은근한 울림이 있다. “은퇴 후를 설계하면서 하는 가장 큰 실수는 노후자금을 다다익선으로 보는 겁니다. 돈 버는 게 어디 쉽나요? 쉽지 않습니다. 큰돈이 없더라도 자기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삶의 정체성이나 라이프스타일을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소비하고 구입함으로써 자신을 표현하는 시대입니다. 그럴수록 자기 삶의 방식에 대한 심사숙고가 필요합니다. 돈 없는 노후는 비참합니다. 그걸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연금으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해야죠. 하지만 무턱대고 돈을 좇으면 위험합니다. 돈만으로 노후가 준비된다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다들 은퇴 후 일상이 즐거운가요? 노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요즘은 너무 재미가 없네요. 하루가 한 달, 일 년처럼 길게만 느껴져요.” 한 온라인 은퇴자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회원들은 “이젠 해외여행도 감흥이 없다”, “3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지겹다”며 동조하는 댓글을 남겼다. 막연히 긴 자유 시간이 역으로 족쇄처럼 느껴진 것이다. 이에 여가를 채울 여생의 자원, 취미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도움말 박승숙 다시배움 대표, 임효연 세종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은퇴 후에는 수면, 식사 등 생리적 필수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이 자유다. 이 기나긴 시간을 얼마나 유익하고 성취감 있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좌우된다. 직장 생활과 육아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살던 때는 퇴직 후 여유를 갈망했을 것이다. 그러다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놓여나면 당장은 친구들도 만나고 여행도 다니며 미뤄왔던 자유를 만끽한다. 그러나 앞서 글을 남긴 은퇴자처럼 이 또한 지루하고 허무하게 느껴지는 날이 찾아올 수 있다.
중장년을 위한 취미 공동체 및 교육기관을 운영하는 박승숙 다시배움 대표는 “퇴직 후 지나치게 남아도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장년에겐 큰 도전일 수 있다. 처음 몇 년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며 신이 나지만, 이내 막막해지는 시점이 오기 때문”이라며 “직업과 일을 대신할 만한, 자기 정체성을 다시 잡아줄 지속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걸 느끼는 것이다. 그 즈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이제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남은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하게 된다. 바로 이 시기가 취미가 중요해지는 때”라고 말했다.
취미의 긍정적 효과, 즐기지 못한 이유는?
취미는 중·노년기의 다양한 영역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먼저 휴식, 운동 등의 활동을 통해 심리적 불안과 스트레스를 줄이고, 체력과 활력을 증진할 수 있다. 아울러 여러 사람과 어울리고 교류함으로써 사회적 관계 형성 기능을 얻고, 나아가 의미 있고 성취감 높은 활동으로 자아실현도 가능하다.
임효연 세종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은퇴 후 생산 시간 외 스스로 계획 가능한 시간이 확장된다. 이렇게 얻은 방대한 자유는 노후 삶의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크게 신체적·정신적·사회(관계)적·환경적 영역에 작용한다. 이 시기 취미는 일상에 긍정적인 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연결고리로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취미를 통해 긍정적 효과를 얻기도 하지만, 신체적·정서적·사회적·환경적 조건이 따라야만 취미 생활도 가능할 것이다. 반대로 취미나 여가 활동이 취약한 분들은 심신 건강이나 관계적 측면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즉 개인의 여건에 따라 즐길 수 있는 취미가 다르다는 얘기다. 임 교수는 논문(‘노인의 여가 활동 욕구와 심리사회적 노화 인식’, 2016)을 통해 한국 노인들의 소극적인 여가 및 취미 활동에 대해 언급했다. 같은 논문에는 노인들이 현재보다 더 유용하고 바람직한 여가 및 취미 활동 욕구를 지닌다는 내용도 나온다. 이들이 원한 것은 주로 스포츠 참여 등 건강 활동과 문화·예술 관람 활동 등이다. 대조적으로 ‘2020 노인실태조사’(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한국 노인의 여가 활동 절반은 산책, 바둑, 원예 등 휴식 및 교양 활동인 것으로 나타난다. 논문에서 노인들이 바란 영화 관람, 악기 연주, 운동 등 문화·예술·체육 활동은 10% 내외였다. 또 해당 조사에서는 노인들의 주된 활동 중 하나로 TV 시청을 꼽았는데, 대상자들은 1일 평균 4.2시간을 TV(또는 라디오) 앞에서 보냈다. 임 교수가 논문에서 지적했듯, 노년기 취미·여가 활동이 다소 소극적이고 단조롭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임 교수는 “가치의 문제로 본다. 현재 우리 중장년은 정말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왔다. 이들의 젊은 시절엔 노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만연했다. 즉 노는 것이 죄악시되는 사회였다”며 “때문에 막상 은퇴 후 자유가 찾아와도 ‘놀아도 되나’라는 고민을 하고, 잘 노는 법을 성취하지 못했기에 실천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또 여전히 경제 활동을 하거나 빈곤에 처한 이들도 적지 않은데, 이런 경우에도 취미 생활이 녹록지 않다”고 해석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박승숙 대표는 “중장년을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스스로 경제 활동에 그만 매달리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 그리고 경제 활동에 계속 매달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구분하는 부유함의 척도는 개인 인식과 선택의 문제다” 라며 “취미가 중요해지는 건 전자의 경우다. 후자는 언젠가 해볼 만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기회 정도로 필요성을 느낄 수 있지만 중요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텅 빈 시간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일이 멈춘 사람들(전자)에겐 필요성을 넘어 결코 미룰 수 없는 중요한 일이 된다”고 설명했다.
취미는 실존 문제, 노년기 정체성 부여해
취미가 중요한 만큼 어떤 취미를 갖느냐가 관건일 수 있다. 박 대표는 “취미는 의무도 아니고 트렌드도 아니다. 취미란 백세시대를 살아가는 중장년이 처한 실존 문제로, 결국 각자 자기에게 맞게 찾아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 그가 기준으로 삼는 취미의 조건은 있다. 바로 ‘몇 살까지 할 수 있는가’, 즉 취미의 지속 가능성이다. 현재 박 대표는 70~80대를 넘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아 재미를 붙이고 능숙하게 만드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단순히 시간 때우기 식으로 취미를 보기보다는 오랜 기간 자신에게 존재 의미를 주고 어떤 정체성을 부여할 취미를 갖는 것이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으론 그렇기 때문에 제2의 직업만큼이나 취미를 찾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누군가에겐 취미 생활을 제대로 즐기기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임효연 교수는 중장년기에 유익하고 바람직한 취미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사회적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젊어서 직업적 역할에 자신의 정체성을 몰두해 살아왔다면, 나이 들어 그 역할을 상실했을 때 삶의 균형이 무너지기 쉽다. 직업에만 자신의 자아를 부여하기보다는 그밖에 자유 시간을 잘 계획하고 활용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는 나이가 들어 갑자기 여유가 생겼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니다”며 “사회적으로도 흔히 말하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갈 수 있는 기업 문화, 사회의 가치를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근 중장년을 대상으로 한 취미·여가 시설 및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임 교수 또한 중장년의 취미 욕구를 어느 정도 해소할 만한 기반은 마련됐다고 보는 입장이다. 다만 현재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그는 “우려스러운 점은 중·노년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그들의 취미 또한 굉장히 다양해질 텐데, 그러한 변화에 충분히 대응하고 있느냐다. 나이대별로 과거에 경험하고 즐겼던 문화가 다른데, 이러한 욕구의 다양성을 얼마나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양적인 차원보다는 질적인 차원으로 접근해 중장년의 취미를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은 한국보다 2년 앞선 2015년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타 선진국과 비교하면 30~40년 가량 뒤늦게 도달한 셈이다. 고령사회 후발주자인 만큼 고령자를 위한 다양한 정책적 시도를 해나가는 가운데 오랜 기간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제도가 있다. 지역사회 기여형 시니어 교육 프로그램, 일명 SCSEP(Senior Community Service Employment Program)이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재취업 지원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SCSEP은 1965년 미국 노인법(Older Americans Act, OAA)에 따라 시행됐다. 미국노동부(U.S. Department of Labor)에서 자금을 지원하는 연방 인력개발 프로그램으로, 현재 미국의 거의 모든 카운티에서 해당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상자는 미국 55세 이상 저소득 실업자로, 가족 소득이 연방 빈곤 수준의 125%를 넘지 않아야 한다.
SCSEP는 중장년이 일자리를 찾고 실업 이후에도 삶의 질을 유지하게끔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학교, 병원, 탁아소 및 노인 센터를 포함한 비영리 및 공공시설에서 다양한 지역 사회 봉사 활동과 업무 경험을 제공해 구직 활동에 대한 준비와 더불어 취업에 대한 자신감을 고취시킨다. 아울러 참여자들은 프로그램을 통해 주당 평균 20시간 일을 하면서 그에 따른 임금을 받게 된다. 프로그램 운영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미시시피주를 기준으로 살펴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시시피주 주관 SCSEP 서비스 프로그램
1) 개인 맞춤 계획 수립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중장년의 미래 설계를 위한 계획 수립을 돕는다. 노동시간, 임금, 직업 유형으로 크게 나누어 참가자 설문을 통해 개인 맞춤형 목표를 설계한다. 프로그램 운영위원회가 참가자 모니터를 위한 체크리스트를 관리하며 개인 맞춤형 시간표를 제공하여 역량개발을 돕는다. 개인별 맞춤 계획 후에는 파트너 기관 소개, 지역행사 및 취업박람회 참여, 소셜미디어 관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2) 지역사회 봉사를 통한 역량 함양
개인의 역량 향상과 현장 경험을 위해 지역사회 봉사 기회를 제공한다. 지역사회 봉사과제는 상대적으로 저숙련 작업이기 때문에 서류 정리, 데이터 입력, 접수, 전화 응대 등의 업무수행이 일반적이다. 직업 경험이 없는 참가자에게는 청소 업무, 고객 서비스 업무 기회를 제공한다. 컴퓨터 활용 능력 향상을 위해 교사 보좌관, 도서관 보조원 등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3) 튜터링 서비스 제공
프로그램 내에서 튜터링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지역사회의 공공서비스를 이용한다. 기본 기술교육을 비롯해 자가 진도 검정고시·ESL 교육, 동반 돌봄교육, 컴퓨터 활용교육, 지게차 작업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공인 산업별 교육이 있다. 과정상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해당 분야 경험들로 구성된 멘토 튜터링 서비스도 제공한다. 이외에도 SCSEP는 참가자에게 최소 6개의 프로젝트에서 하나 이상의 구직 관련 워크숍을 제공한다. 워크숍은 인터뷰 기술, 임금·급여 협상, 적절한 복장, 자기 홍보, 이력서 개발, 면접 기술 연마 등을 포함한다.
4) 일자리 연계 및 사후 관리
프로그램과 파트너십을 맺은 기업 혹은 단체와 연계하여 참가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참가자는 연계된 기업 혹은 단체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 프로그램 운영진은 직접 현장을 둘러보고 프로그램 졸업자가 지속적으로 고용됐는지 확인한다. 취업 후에도 현장이 요구하는 부족한 개인 역량을 향상하도록 지속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발췌 서울시50플러스재단 ‘50+정책동향리포트’
서울시50플러스재단 이하은 미국통신원은 ‘50+정책동향리포트’를 통해 “SCSEP 프로그램은 적극적이고 세심한 취업역량강화 교육과 멘토링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 노동부는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SCSEP 프로그램을 계속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 취업 장벽에 직면한 중장년들이 노동시장에서 살아남아 사회의 일원으로서 개인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돕는 개념으로 프로그램을 정의한다. 취업뿐 아니라 더 넓은 관점에서 신체적, 정신적, 재정적 복지에 초점을 맞춘 개선 연구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한국의 중장년 정책에 계속적인 참고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실제 참여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관할 부서인 미국 노동부 측은 2018년 SCSEP 성과 자료를 통해 “SCSEP는 중장년층의 경제적 자립을 포함해 그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설계됐다. 실제 참가자 고객 만족도 설문조사 데이터에서 SCSEP 프로그램이 참가자의 신체적, 정서적, 재정적 삶의 질을 효과적으로 개선했으며, 일정 목표를 달성하지 않은 경우에도 해당 프로그램에 만족한다는 의견이 일관적으로 나왔다”고 발표한 바 있다.
SCSEP의 지원을 돕는 미국은퇴자협회재단(AARP Foundation)은 성공적인 성과를 거둔 사례자들의 이야기를 보도하며,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재단이 공개한 인터뷰에 따르면, 60세에 노숙자가 되어 희망을 잃고 지냈던 한 참여자는 SCSEP 프로그램이 인생의 큰 기회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 침체로 직장을 잃고, 가족까지 잃었다. 한없이 추락하던 그때 우연히 SCSEP 전단지를 발견했다. 이를 통해 지역 사회 서비스를 통해 직업 기술을 습득했고, 그에 따른 생활 소득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일에 대한 자존감과 자신감이 생겼다. 특히 코로나19로 난항을 겪었을 때에도 SCSEP의 지원으로 포기하지 않고, 정규직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60세가 넘더라도 일을 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을 다시 얻었다”며 과거 자신과 같은 처지의 중장년들이 SCSEP를 통해 일자리에 희망을 얻길 바랐다.
저출산·고령화가 급격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만 65세 이상인 노인 연령 기준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100세 시대에 노인의 기대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국민연금 재정 고갈 등의 문제가 불거져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1981년 노인복지법 제정 이후 40여 년 만에 노인 연령 기준이 바뀌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부, 노인 연령 기준·정년 재검토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이하 ‘저출산고령위’)는 지난 3월 28일 회의를 갖고 ‘윤석열 정부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과제 및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이번 회의는 7년 만에 대통령이 직접 주재했다.
정부는 “고령화 심화를 고려하지 않고 인구 팽창기에 도입된 제도를 지속 운영해 재정건전성·지속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발생했다”며 “노인의 사회 참여 욕구, 건강·소득 수준 변화 등을 고려해 사회보장제도 전반의 연령 기준을 재점검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노인 연령 기준이 만 65세가 된 지도 40년이 넘었다. 19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에서 경로 우대 기준이 65세 이상으로 정해지면서다. 그러나 그간 의학 기술의 발달 등으로 노인의 건강 상태가 좋아졌고 노인의 기대수명이 늘어나 노인 연령 기준 상향 목소리가 높다. 노인법지법 제정 당시에는 기대수명이 66.7세였다. 2020년의 기대 수명은 83.5세까지 늘어났고, 2070년에는 기대수명이 91세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만 65세 이상의 노인 스스로도 자신을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 2월 서울시가 발표한 '2022년 서울시 노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 노인이 생각하는 노인 연령 기준은 평균 72.6세로 나타났다. 법적 기준인 만 65세보다 7.6세나 많다. 조사는 서울에 거주하는 1957년 이전 출생자 3010명을 대상으로 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빠른 고령화와 반대로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데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올해 950만 명에서 2030년 1306만 명, 2040년엔 1725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15~64세 생산연령인구는 올해 3637만 명에서 2030년 3381만 명, 2040년 2852만 명으로 줄어든다.
이에 따라 생산연령인구 100명당 부양할 고령인구를 의미하는 ‘노년부양비’는 올해 26.1에서 2030년 38.6으로 높아진다. 2040년에는 현재의 두 배가 넘는 60.5를 기록할 전망이다. 현재와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2070년에는 노년부양비가 100.6까지 치솟을 것으로 통계청은 내다보고 있다. 생산연령인구 1명이 고령인구 1명을 부양하게 되는 것으로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처럼 젊은 세대의 부양 부담을 줄이고, 100세 시대인 만큼 일에 대한 욕구가 강한 고령층이 많은 까닭에 정부는 정년 연장도 논의한다. 현재 법적 정년은 만 60세다. 정부는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과 연계한 재고용·정년 연장 등 ‘계속고용제도’를 2분기부터 본격적으로 논의한다. 사회 공헌의 욕구가 크고 직무 전문성을 갖춘 베이비붐 세대의 수요까지 고려해 사회서비스형·민간형 일자리 비중도 확대할 예정이다.
노인 연령, 70대까지 오를까?
노인 연령 기준이 중요한 이유는 주요 노인 복지 제도가 만 65세 이상을 기준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 49개 주요 복지 제도 중 49%인 24개 사업이 65세 이상의 연령을 기준으로 했다. 대표적인 노인 복지 제도는 기초연금,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중교통 무임승차 등 경로우대제, 공공형 노인 일자리, 독감·폐렴구균 무료 예방접종, 이동통신비 감면, 행복주택 공급 등이다.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노인 복지 제도는 지하철 무임승차다. 사회가 고령화 되면서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는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노인이 많아짐에 따라 지하철 무임승차 인원이 증가해 지자체는 적자난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2021년 적자 9644억 원에서 무임수송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29%인 2784억 원에 이른다. 이에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는 노인 연령 상향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대구시에서는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을 만 65세에서 70세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인 연령 기준 상향이 수면 위로 올라왔는데 가장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국민 연금 수급 시기이다. 정년이 연장되고 노인 연령 기준이 상향되면,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도 늦어진다. 국민연금은 제5차 재정 추계 시산 결과 2055년 기금이 고갈되는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 국민연급 수급 개시 연령을 늦추면 연금 확충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재 국민연금은 만 59세까지 의무 가입해 만 63세에 수급받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고령화에 맞춰 수급 개시 연령은 오는 2028년 64세, 2033년 65세로 5년마다 1세씩 늦춰지도록 사회적 합의를 봤다. 그러나 이마저도 부족하다며 지난 1월 국회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에서는 수급 개시 연령을 67세까지로 더 늦추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국민연금 수급 연령을 70세까지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 바 있다. 김원식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지난해 ‘국민연금 수급 연령의 상향과 노인 노동 시장의 활성화’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주장을 펼쳤다. 김 교수는 2025년부터 1년씩 연금 수급 연령을 70세로 상향하면, 5년 후인 2030년에는 연간 4분의 1 이상의 급여 지출을 줄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더불어 김원식 교수는 수급 연령 상향과 함께 현재의 정년 기준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건강수명이 70세 이상으로 높아지고 있는 만큼 경제활동을 통한 경제적 독립을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60세로 돼있는 법정 정년은 상향보다는 폐지가 필요하다고 봤다. 정년이 상향되면 강성 노조의 근로자들에게만 혜택이 주어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지난해 9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노인 연령 기준을 2025년부터 10년 단위로 1세씩 올리는 단계적 방식을 제안했다. 이를 도입할 경우 2100년에는 노인 연령 기준이 73세가 되고, 노인부양률은 60%가 된다. 이는 65세 기준 노인부양률보다 36% 포인트 낮은 수치다. 다만 이태석 KDI 인구구조대응연구팀장은 “노동 시장과 교육 시장 등 전반적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정리하면 이렇다. 노인 연령 기준 상향은 단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정년 연장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양질의 노인 일자리 확보 없이 노인 기준 연령을 늦추면 노인 빈곤율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40.4%로 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다.
해외 주요국의 사례를 통해 답을 찾을 수도 있다. 일본은 국민연금·후생연금의 수급 개시 연령이 65세이며, 정년은 기업이 정년 폐지, 정년 연장(65세까지), 계속고용제도(65세까지 계약직으로 재고용) 중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은 노령·유족·장애인연금(OASDI)의 수급 개시 연령을 66세 이상으로 규정했으며, 정년이라는 개념 자체를 없앴다. 독일은 법정연금보험 등의 공적연금(GRV)의 수급 개시 연령을 2029년까지 65세에서 67세로 상향하고 정년 역시 2029년까지 65세에서 67세로 연장할 방침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1년 ‘노인 연령 기준의 현황과 쟁점’ 보고서에서 이같이 해외 주요국의 사례를 언급하며, “노인 연령 기준 상향은 단지 복지 재정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한 노인들의 행복한 삶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전 세대가 참여해 합의를 도출하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100호 기념] 젊어진 중년들, 후기청년을 말하다 '4059 라이프스타일 및 나이 관련 인식 조사'
수명 120세 시대가 예측되는 가운데 60세는 중년과 마찬가지다. 그런 흐름으로 본다면 4050세대는 청년에 가까운 나이다. 중년도 청년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 존재하는 세대를 말할 맞춤한 표현과 분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본지는 지령 100호를 맞아 이들 세대를 '후기청년'으로 정의하고 '4059 라이프스타일 및 나이 관련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후기청년이란 시기상으로는 청년기의 후반을 뜻하는 동시에 '완성되고', '완숙한'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마크로밀 엠브레인에 의뢰한 본 조사는 2023년 3월 3일부터 6일까지 전국 40~59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해당 결과를 통해 후기청년 세대의 삶과 인식을 재조명해본다.
정년 전까지 필요 노후 자산의 상당 부분을 마련해둬야 안정적인 노후가 보장된다 할 수 있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에 따르면 부부 기준 은퇴 후 30년간 필요한 노후 자산 약 7억 800만 원이다. 응답자들이 원하는 노후 자산 수준도 유사한 편(7억 내외 34.6%). 설문조사에 참여한 4050세대에게 노후 자산 준비 정도를 묻자 30% 이하라는 응답이 과반수(63.2%)이며, 4명 중 1명은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자산 준비 방법으로는 저축(44%)을 가장 선호했다.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부동산(15.2%), 주식(10.4%) 등 적극적인 투자를 펼치는 경우는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동철 심리학 박사는 “경제적 여유는 삶의 질을 좌우한다. 자산 마련이 덜 됐거나, 추후에도 확보가 어렵다면 미래는 암울할 것이다.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다. 노후 빈곤 문제도 이에 상당부분 기인했다고 본다. 최근 경제 침체로 구조조정 등이 시행되며 생업에서 물러난 중장년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라면 길어진 노후가 공포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