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5

‘비엔나에서의 공연, 꿈을 이루다’ 손주와 함께 ‘합창’ 도전기

입력 2026-08-25 06:00

“나이는 숫자일 뿐” 음악이라는 언어로 국경과 세대 허문 ‘비바브라보 손주사랑합창단’

▲14일 성 페터 성당에서 공연하는 비바브라보와 코리아 킨더코어 합창단의 모습.(홍명신 에이징커뮤니케이션 대표)
▲14일 성 페터 성당에서 공연하는 비바브라보와 코리아 킨더코어 합창단의 모습.(홍명신 에이징커뮤니케이션 대표)

음악의 수도 오스트리아 비엔나. 한여름의 열기가 한창이던 8월, 1877년 문을 연 역사적인 공연장 에어바르 잘(Ehrbar Saal)의 무대에 특별한 사람들이 올랐다.장난기 가득한 9세 어린이부터 우아한 80세 시니어까지. 한국과 미국, 오스트리아 등 3개국에서 모인 한인 음악인들이 만들어낸 웅장하면서도 따뜻한 화음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유럽 전역을 덮친 30도를 웃도는 이상 고온도 음악을 향한 열정을 막지 못했다. 사흘 간 이어진 공연 내내 관객들은 곡이 끝날 때마다 환호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 중심에는 한국에서 날아온 ‘비바브라보 손주사랑합창단(이하 비바브라보 합창단)’이 있었다. 비바브라보 합창단은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비엔나에서 창단 공연을 펼쳤다. 12일 에어바르 잘을 시작으로 13일 카를 성당(Karlskirche), 14일 성 페터 성당(Peterskirche)으로 무대를 이어갔다.

공연에는 비바브라보 함창단과 함께 어린이 합창단 ‘코리아 킨더코어’를 비롯해 오스트리아 현지의 비엔나 한인 여성 합창단, 테너·소프라노 등 전문 연주자들이 참여했다. 한국, 미국, 오스트리아 3개국에서 모인 9세부터 80세 까지의 한인 음악인들이 한 무대에 올랐다.

세대와 대륙을 잇다: 줌(Zoom)으로 확장된 도전

▲8월 1일 서울예고 강당에서 리허설을 마친 비바브라보 합창단원들.(홍명신 에이징커뮤니케이션 대표)
▲8월 1일 서울예고 강당에서 리허설을 마친 비바브라보 합창단원들.(홍명신 에이징커뮤니케이션 대표)

공연 준비 과정은 그 자체로 국경을 넘나드는 프로젝트였다. 공연 계획이 알려지자 미국 시애틀에서 성악가 김은선 전도사가 뜻을 보탰고, 오스트리아 현지에서는 비엔나 한인 여성 합창단 황병진 회장이 한국 연습실을 직접 찾아와 협연을 제안했다. 서울과 시애틀, 비엔나를 연결한 것은 매주 이어진 ‘줌(Zoom)’ 화면이었다. 한국에서 연습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유하며 연습을 이어갔다.

비바브라보 합창단은 지난해 12월 창단식을 갖고 올해 1월 8일부터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했다. 단원들은 매주 목요일 서울 강남의 연습실에 모여 비엔나 무대를 준비했다. 공연을 앞두고는 서울예고 강당에서 코리아 킨더코어 합창단과 만나 최종 호흡을 맞췄다. 서로 다른 세대가 같은 악보를 보고, 같은 호흡으로 노래하며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 갔다.

거장들의 숨결이 남은 무대에서 울려 퍼진 울림

▲12일 에어바르 잘에서 리허설 하고 있는 비바브라보와 코리아 킨더코어 합창단의 모습.(홍명신 에이징커뮤니케이션 대표)
▲12일 에어바르 잘에서 리허설 하고 있는 비바브라보와 코리아 킨더코어 합창단의 모습.(홍명신 에이징커뮤니케이션 대표)

첫 공연이 열린 에어바르 잘은 요하네스 브람스, 구스타프 말러, 아르놀트 쇤베르크 등 클래식 거장들이 거쳐 간 역사적인 공연장이다. 공연 일정은 오스트리아의 클래식 공연 정보 사이트와 현지 행사 플랫폼에도 공연 일정이 게재돼 현지 관객들에게 알려졌다.

12일 오후 7시, 비바브라보 합창단과 코리아 킨더코어는 ‘안티포널 호산나’, ‘우리의 기쁨이 되시는 예수’, ‘무지카 데이’를 함께 부르며 첫 무대를 열었다. 특히 학생들이 먼저 노래하면 시니어들이 화답하는 교창 형식의 첫 곡은 세대 화합이라는 공연의 의미를 음악으로 보여줬다.

학생 단원들의 듀엣과 독창에 이어 코리아 킨더코어(상임지휘 이시욱)는 가브리엘 포레의 ‘작은 미사’를 맑고 은은하게 표현해 깊은 울림을 줬다. 소프라노 안희은, 테너 김래주, 소프라노 유승희, 피아니스트 이민지의 수준 높은 연주가 이어졌다.

다시 무대에 오른 비바브라보 합창단은 ‘로렐라이’와 ‘들장미’를 선보였다. 이어 비엔나 한인 여성 합창단이 합류해 ‘에델바이스’, ‘아리랑과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함께 부르며 국경을 넘은 하모니를 완성했다.

오스트리아 군종교구 교회음악감독이자 비엔나 한인 여성 합창단 지휘자인 머타이어 리 씨는 “전반적인 음악성과 프로그램이 좋았다. 지루할 틈이 없는 훌륭한 콘서트였다”고 평가했다. 공연장을 찾은 한 오스트리아 관객 역시 “환상적인 공연이었다. 모두가 디바였다. 다양한 세대가 한 무대에 올라 하모니를 이루는 모습이 아름다웠다”며 감동을 전했다.

에어바르 잘은 공식 홈페이지에 공연의 날짜와 공연 명만 간단히 공지한 것이 아니라 ‘세대를 잇는 하모니(Harmony Across Generations)’라는 제목으로 지휘자, 반주자, 단원 전체의 이름과 연주곡까지 상세하게 공지했다. 한국의 아마추어 시니어 합창단이 세계적인 거장들의 발자취가 담긴 무대에 섰다는 사실이 의미 있게 기록된 것이다.

카를 성당과 성 페터 성당으로 이어진 노래

▲13일 카를 성당에서 공연하고 있는 비바브라보와 코리아 킨더코어 합창단원들. (홍명신 에이징커뮤니케이션 대표)
▲13일 카를 성당에서 공연하고 있는 비바브라보와 코리아 킨더코어 합창단원들. (홍명신 에이징커뮤니케이션 대표)

둘째 날인 13일 오후 7시에는 거대한 연못을 품은 카를 성당으로 무대를 옮겼다. 카를 성당은 1713년 비엔나를 휩쓴 흑사병이 종식되기를 기원하며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6세가 건립한 곳이다.

바로크 양식의 웅장한 성당 아치 아래서 유승범 군과 정소윤 양이 가브리엘 포레의 ‘은총의 어머니 마리아’와 ‘신 아리랑’으로 무대를 열었다. 박하연 양은 곧고 신비로운 목소리로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의 오페라 ‘줄리오 체사레’의 아리아 ‘내 운명에 울리라’를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이어 비바브라보 합창단과 코리아 킨더코어가 함께 부른 ‘안티포널 호산나’, ‘성체 찬미가’, ‘우리의 기쁨이 되시는 예수’, ‘아리랑과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장엄한 울림으로 성당을 가득 채웠다.

마지막 공연은 14일 오후 3시 비엔나 중심부에 위치한 성 페터 성당에서 열렸다. 진예원 양과 박유빈 양이 알렉산드로 스트라델라의 ‘교회의 성가’를 맑은 목소리로 부르며 무대를 열었다. 이어 진예원 양과 이수홍 군이 헨리 스마트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를 노래했다. 두 합창단이 ‘평화의 기도’를 부르자 성당을 찾은 관객들은 보조 좌석까지 찾아 앉아 공연에 몰입했다. 피날레 곡 ‘우리의 기쁨이 되시는 예수’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오랫동안 박수가 이어졌다.

비바브라보 합창단 상임지휘자인 이종기 서울로얄심포니오케스트라 총감독은 “코리아 킨더코어는 천상의 목소리로, 비바브라보 합창단은 따뜻한 목소리로 할아버지, 할머니, 손주가 세대를 넘어선 화합의 합창을 들려줬다”고 평가했다.

공연을 관람한 한 국제기구 직원은 “놀라운 공연이다. 음악의 도시 비엔나에 정말 어울리는 콘서트다. 음악을 듣는 내내 행복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아이들은 ‘특별한 경험’, 시니어들은 ‘새로운 용기’

▲12일 에어바르 잘에서 협연하는  비바브라보, 비엔나 한인 여성, 코리아 킨더코어 합창단의 모습. (홍명신 에이징커뮤니케이션 대표)
▲12일 에어바르 잘에서 협연하는 비바브라보, 비엔나 한인 여성, 코리아 킨더코어 합창단의 모습. (홍명신 에이징커뮤니케이션 대표)

이번 프로젝트의 출발점에는 코리아 킨더코어가 있다. 이 합창단은 2019년 창단된 빈소년합창단 음악원의 전통을 잇고 있으며, 2022년 이후 오스트리아 공연 투어와 빈소년합창단 음악캠프, 유엔 비엔나 본부 로툰다홀 평화 콘서트 등 다양한 국제무대에 참여했다. 학생들은 시니어 합창단과 무대에서 화음을 맞춘 것이 ‘특별하고 좋은 경험’이었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세대공감’이라는 프로젝트의 취지를 몸소 경험한 것이다.

비바브라보 합창단 단원들의 연령은 57세부터 80세까지로, 평균 연령은 70세다. 성악 전공자와 성가대원뿐만 아니라 전·현직 기업인, 의사, 약사, 변호사, 조종사 등 평생 각자의 일터에서 최선을 다해온 이들이 ‘합창’이라는 하나의 공통분모로 모였다. 손주 세대와 함께 노래한다는 의미에서 ‘손주사랑합창단’이라는 정겨운 이름도 붙었다.

시니어 단원들에게 이번 공연은 단순한 해외 무대 이상의 의미였다. 공연을 앞두고 최고령 단원인 윤기옥 씨는 다리를 다쳤지만 비엔나행을 포기하지 않았다. 딸인 피아니스트 이정은 씨가 직접 로드 매니저를 자처해 어머니의 도전을 곁에서 지켰다. 윤 단원은 공연을 마친 뒤 “오랜 시간 건강하지 못했던 탓인지 언제부터인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어려웠는데,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용기를 얻게 된 가슴 두근거리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김명희(78) 단원은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축복의 순간들이었다”라며 감회에 젖었다. 합창이 단순한 음악 활동을 넘어 자존감을 높이고 사람과 사람을 다시 연결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음악으로 남은 새로운 도전

(AI 생성 이미지)
(AI 생성 이미지)

공연 기간 중 비바브라보 합창단원들은 비엔나 오페라하우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동상,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동상 등 비엔나의 음악 명소를 찾았다. 이후 체코 프라하로 이동해 비셰흐라드 국립묘지의 음악가 구역에서 참배하고, 안토닌 드보르자크 박물관과 베드르지히 스메타나 박물관 등을 방문한 뒤 지난 18일 귀국했다.

합창을 통한 세대 간 통합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고 비엔나 공연을 총괄 기획한 유승희 예술감독(사단법인 헤만 이사장)은 “시니어 합창단을 통해 세대를 넘어 화합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함께 노래하는 기쁨을 통해 사람을 하나로 모으고, 음악이라는 보편적인 언어로 세상을 조금 더 밝게 만들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비바브라보 합창단은 오는 10월 국내 오케스트라와의 협연과 11월 제1회 정기연주회를 준비하고 있다. 9세 어린이와 80세 시니어가 만들어낸 2026년 비엔나의 작은 기적은 우리에게 나지막이 전한다. 노래에는 나이도 국경도 없고, 함께 부르는 순간 세대의 경계도 사라진다는 것을.

▲비엔나 공연 포스터.(비바브라보 손주사랑합창단)
▲비엔나 공연 포스터.(비바브라보 손주사랑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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