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저출산 고령화의 영향으로 매년 약 450개의 학교가 문을 닫는다. 일본 정부는 2010년부터 폐교를 활용해 지역 재생을 하는 '모두의 폐교'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문을 닫은 학교를 다른 시설로 재활용하는 프로젝트다.
문부과학성의 2022년 ‘폐교시설 등 활용 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폐교 전국 활용률은 80%에 이른다.
공립 폐교는 영어마을, 드론 조종사 양성 교습소, 스타트업 육성시설, 자동차 전시장, 양조장, 물류 센터, 고령자 주택, 숙박 시설, 글램핑장, 레스토랑, 목공실, 수족관, 체험형 농업 테마파크 등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도심에서는 사무실, 요양 시설, 대학 캠퍼스 등으로도 사용된다.
폐교가 새로운 시설로 활용될 수 있는 건 2010년부터 문부과학성이 ‘모두의 폐교’(みんなの廃校)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부과학성은 폐교 정보를 공유하면서 시설 활용을 원하는 희망자와 폐교를 소유한 지방 자체 단체를 연결해주고 있다. 지자체의 귀중한 재산으로서 폐교가 지역 특성에 맞게 재활용됨으로써 지역 활성화나 산업 진흥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각 지자체는 폐교가 잘 활용될 수 있도록 토지 용도 변경, 리모델링이나 증축에 필요한 서류 등 소통해야 하는 행정기관 창구를 일원화해 편의성을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0.8명으로 우리나라도 문을 닫는 학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폐교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참고할 수 있도록 문부과학성에서 공유한 대표 폐교 활용 사례를 소개한다.
1. 오와니 자연 마을 생햄 공방
(おおわに自然村 生ハム工房)
아오모리현 오와니초 오와니 제3초등학교는 생햄을 만드는 공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아오모리현에서 나는 원육을 생햄이나 비엔나 등으로 가공하는 공장이다. 이 학교는 목조 건물이어서 통기성이 좋아 생햄 제조에 적합했다고. 더불어 생햄을 만드는 과정 중 초기 작업을 체험하는 공방도 운영한다. 교무실은 냉장실로, 보건실은 작업실로, 각 교실은 햄 건조장으로, 현관은 훈연고로 리모델링 했다. 농업을 가공 산업 및 서비스업과 융합해 농촌에 새로운 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산업을 6차 산업이라고 하는데, 이 사례는 지역의 원육을 사용하고, 햄으로 가공하면서 지역에 고용 창출까지 할 수 있는 6차 산업 사례로 꼽힌다.
2. 나메가타 파머스 빌리지
(なめがたファーマーズヴィレッジ)
이바라키현 나메가타시 야마토 제3초등학교는 체험형 농업 테마파크 ‘나메가타 파머스 빌리지’로 변모했다. 나메가타시의 특산물은 고구마다. 폐교가 된 야마토 초등학교에 고구마를 주제로 식품 가공 공장, 뮤지엄, 레스토랑, 카페를 설치했다. 학교 주변에는 숙박시설, 클럽하우스, 고구마 농장, 고구마 저장고 등을 지어 학교를 중심으로 농업 테마파크를 만들었다. 학교의 현판을 그대로 두어 학교라는 흔적을 보존했고, 학교를 둘러보면서 고구마에 얽힌 역사와 지식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했다.
3. 드론 기술연구소
(サイトテック㈱本社・技術研究所)
야마나시현 미노부초 나카토미 중학교는 주식회사 사이트텍의 본사이자 기술연구소로 사용된다. 현재로써는 기술연구소로 드론의 시험비행 등으로 이용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드론 개발, 제조, 검사, 연수 등 다양한 업무에 활용할 예정이다. 바람의 영향이 있어 학교 체육관과 같이 드론을 비행하면서 시험할 수 있는 대형 공간이 필수적이라고. 다만 학교였던 곳을 사업장으로 이용하게 되면서 소방법 규제 등을 지자체가 조율해주며 폐교 활용에 도움을 줬다.
4. 나라현 카시하라 종합 청사
(奈良県橿原総合庁舎)
나라현 구이세이 고등학교는 나라현 카시하라의 종합 청사로 이용된다. 나라현 중부 지역의 행정 시설을 집약한 종합 청사다. 약 8개의 사무소가 모여있는 곳이다. 이를 통해 행정 서비스를 일원화할 수 있었으며, 행정시설 관리 경비 절감 등의 효과를 얻었다. 넓은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활용, 휴일이나 주말에는 민간에 개방해 야마토 미야마(大和三山) 산의 절경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5. 히카리 양식장
(ひかり養殖場)
시마네현 이즈모시 광중학교는 카와하기(カワハギ, 취치의 일종)를 기르는 육상 양식 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바다에서 양식하는 것이 아니라 육상에서 새로운 어종을 키우는 방식으로 쇼와 개발공업소와 JR서일본 이노베이션즈가 새롭게 제안한 비즈니스다. 쇼와 개발 공업의 아라키 카츠유키(荒木克之) 사장은 광중학교 졸업생으로 폐교가 된 곳을 어떻게든 다시 살리고 싶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키운 카와하기는 지역 음식점, 간토·간사이 지역으로 출하된다. 새로운 산업의 발전과 함께 고용창출, 민간사업자 등과의 교류를 기대하고 있다.
6. 글램핑장
(グランピング)
시즈오카현 시마다시 유니치초등학교는 글램핑장으로 거듭났다. 후지산 시즈오카 공항 등에서 이용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 5종류의 21개 텐트 등을 설치했다. 교내에는 교실과 교장실 등을 리모델링해 샤워룸, 대욕장을 만들었다. 기존 체육관에서는 각종 체육 활동을 할 수 있다. 글램핑장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시마다시의 지역 식재료 등을 이용하거나 주변 시설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교류인구 증가나 지역 이주로의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또한 학교 시설을 이용해 지역 주민 커뮤니티로 활용 등도 고려하고 있다.
●Exhibition
◇프리다 칼로 사진전 : 삶의 초상
일정 3월 26일까지 장소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멕시코의 국보’로 불리는 세계적인 화가 프리다 칼로의 오리지널 사진전이다. 프리다 칼로의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담은 20여 사진작가의 147점의 작품과 미디어아트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그동안 작품으로만 보았던 프리다 칼로의 삶 자체를 만날 수 있다.
대표 작품으로는 프리다의 아버지 기예르모 칼로가 1911년에 찍은 ‘4살의 프리다 칼로’와 니콜라스 머레이가 1939년에 찍은 붉은 레보소(Rebozo)를 걸친 ‘프리다 칼로’, 레오 마티즈가 1941년에 찍은 ‘태양 아래 프리다’ 시리즈가 있다.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 코요아칸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 기예르모 칼로는 독일계 사진작가였다. 6살 때 척추성 소아마비와 사춘기 시절에 전차 교통사고로 생긴 장애에도 불구하고 붓을 놓지 않았던 프리다 칼로. 강렬한 색채로 담아낸 자화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날, 혜화문에서는
일정 3월 12일까지 장소 한양도성박물관
한양도성박물관은 2017년부터 매년 도성의 여덟 성문을 주제로 기획전시를 열어왔다. 올해는 여섯 번째 전시로 혜화문의 역할과 변화상을 소개한다. 전시는 ‘혜화문을 열다’와 ‘그날, 혜화문’ 두 부분으로 구성됐다. ‘혜화문을 열다’에서는 홍화문으로 건설돼 혜화문으로 이름이 바뀐 이유와 도성 문으로서의 역할, 임진왜란 이후의 중건까지 조선시대 혜화문의 역사와 위상을 소개한다. 옛 혜화문의 모습을 묘사한 겸재 정선의 ‘동소문도’를 포함해 관련 유물도 볼 수 있다. ‘그날, 혜화문’에서는 18세기 기록에 등장하는 일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애니메이션 영상을 감상 가능하다.
●Stage
◇아마데우스
일정 2월 12일~4월 11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연출 이지나
출연 김재범, 김종구, 차지연, 문유강, 전성우, 이재균, 최우혁 등
연극 ‘아마데우스’가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다. 2018년 초연됐고, 2020년 재연 무대를 거쳤다. ‘아마데우스’는 18세기 비엔나를 배경으로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와 그를 질투한 살리에리의 고뇌와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1984년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져 큰 사랑을 받았다. 재연 당시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 김재범과 차지연이 다시 살리에리 역으로 무대에 오르며 김종구와 문유강이 새롭게 합류했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 역에는 전성우, 이재균, 최우혁이 캐스팅됐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 더 라스트
일정 3월 4일~5월 7일
장소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
연출 추정화
출연 김찬호, 오종혁, 백인태, 이창민, 서동진 등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며, 2016년 초연 후 스테디셀러 뮤지컬로 자리매김했다. 북한 특수공작원 3인방이 남한 달동네에 잠입해 동네 바보, 가수 지망생, 고등학생으로 신분을 위장해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북한 엘리트 요원 원류환 역에는 오종혁, 백인태, 김찬호가 출연하며, 북한 고위층 간부의 아들 리해랑 역으로 서동진과 2AM의 이창민이 무대에 오른다. 최연소 남파 요원 리해진 역에는 그룹 빅톤의 임세준, DKZ의 민규, 조용휘, 차이도가 출연한다.
◇루쓰
일정 3월 5일~4월 2일
장소 광림아트센터 BBCH홀
연출 김다현
출연 선예, 정지아, 김다현, 이지훈 등
원더걸스 출신 가수 선예의 첫 뮤지컬 도전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루쓰’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글로벌 진출을 목표로 야심차게 준비한 창작 뮤지컬로,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구약 성경 ‘룻기’를 원작으로 한다. 극은 사랑을 통해 삶의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는 이방인 여자 루쓰의 일생을 조명한다. 특히 성경 역사상 가장 유명한 커플이라고 할 수 있는 루쓰와 보아스의 사랑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이를 통해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힐링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그 무렵 일상이 심드렁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사상 최고의 폭염이라는 여름도 간신히 버텨냈고 슬슬 가을이 되고 있었다. 툭하면 머리가 지끈지끈거렸고 개운치 않은 컨디션은 때로 우울하게 했다. 누군가의 낯부끄러운 이기심을 보며 가까이한 것을 후회했고 어떤 이의 유치하고 얄팍한 이중성은 슬프거나 정 떨어졌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내야 하는 소심함이 힘겨웠다. 무엇이 기다릴지 몰라도 잠깐이라도 여길 벗어나야 한다는 조바심이 들끓던 중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파리를 제안해 왔다. 거기서 며칠 쉬다가 세비야와 마드리드를 거쳐서 돌아오자고 말하는 남편의 생각에 묻지도 따질 것도 없이 동의했다. 눈 빠지게 그의 휴가 승인을 기다리느라 하루하루가 지루했다.
파리를 거쳐 또 다른 유럽으로 가는 일정이다. 파리를 또 가게 될 줄은 몰랐다. 거쳐가는 도시로 파리가 좋았다. 잠깐이어도 괜찮다. 스치듯 지나쳐온 단 이틀간의 파리가 가라앉은 내 심장을 조금씩 살아나게 했으니까.
예측하지 못했던 일로 지치고 기운 다 빠졌던 드골공항에서 탄 RER 열차가 뤽상부르 역에 닿았다. 파리다. 파리라는 것만으로도 슬슬 기분전환이 되기 시작한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기차 안에서 살짝 어이없는 일이 있었지만 가라앉았던 기분은 집어치우자며 심기일전의 심호흡을 길게 했다.
숙소로 가는 길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며 날린다. 여기도 가을과 겨울 사이쯤이다. 마음껏 늦가을을 즐기는 파리지엔들 틈에서 내 기분도 조금씩 생생해졌다. 빵집 진열장의 알록달록한 마카롱 더미를 보면서 아하, 파리구나 했고 샹송에서나 듣던 어조를 지나가는 연인들의 말소리에서 들으며 나 떠나왔구나 실감했다.
떠나옴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 주변을 온통 둘러쌌다. 거리의 밤바람이 그랬다. 걸을 때마다 눈앞 여행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일상의 이야기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발 딛고 서 있는 낯선 풍경 속에서 심장의 동요가 느껴지는 것, 이미 두근거리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소르본 대학 주변의 숙소에서 내려다보는 거리는 대학가의 학구열보다는 어렴풋한 소설의 한 장면이 먼저 떠올랐다. 제목도 내용도 기억에 없지만 희미한 가로등 불빛 한 점 빛나던 소르본의 골목 풍경을 읽었던 듯했다. 어렴풋한 기억이 오히려 아련한 기분으로 감성을 부추긴다.
그리고 문득 시몬느 드 보부아르와 재클린이 생각났다. 소르본이라는 이름으로 얼핏 그 두 명이 떠올랐던 것이다. 고작 대중적 인지도만으로 떠올려지는 내 수준으로 연결되는 소르본 골목이지만 그것만으로도 한결 친근하다. 연상법의 흐름이란 참 편리하다. 그녀들이 이곳에서 공부하고 문학적 배경이 되고 그녀들의 빛났던 인생의 초석을 이루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며 두리번거렸다.
그러고 보니 또 하나 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여자가 소르본 대학 학생이었다. 비엔나행 열차에서 만난 남녀의 끊이지 않던 대화가 영화 한 편을 만들어낸 것으로 기억한다. 어딜 가든 영화 속의 풍경이나 ost가 순간순간 떠오르거나 책 속의 배경이나 여행지와 관련된 이야기가 시도 때도 없이 생뚱맞게 불쑥 오버랩되는 건 오랜 내 습관이다.
무엇보다도 어둔 밤거리가 활기차다. 구획이나 담장도 없고 대문도 없는 생미셸 거리의 대학가는 가을바람이 휙휙 불어대는 쌀쌀함 덕분인지 순식간에 상쾌하게 기분전환이 된다. 백 년 전에도 있었을 듯한 골목이다. 대학 건물 벽의 오래된 낙서가 이야기가 있는 벽화처럼 재미있는 볼거리다. 길 가다 손잡이를 열면 나를 압도할 그들의 견고한 학문이 맞아줄 것 같은 상상을 하며 그 담벼락 옆 소르본의 골목길을 느릿느릿 걸었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젖은 낙엽이 발에 밟히는 거리 주점에선 젊은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밤늦도록 들려왔다. 숙소 창문을 열고 그런 시간들이 켜켜이 쌓이고 스민 골목을 자정이 넘도록 내다보았다. 노천카페와 서점들로 이어지는 소르본 대학 주변을 산책하며 비로소 심폐 소생하듯 되살아나는 기분을 감지했다.
소르본 근처 호텔의 아침식사는 간단했다. 그런데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며 신기한 실내 구조를 보며 놀랐다. 마치 마리앙뜨와넷뜨나 루이 14세 시절에 죄수나 반역자들을 가두었던 지하 감옥이 떠올려진다. 언젠가 책에서 그 옛날 프랑스 어느 지하 감옥이 대학 주점으로 변모한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또한 떠올려졌다. 역사가 느껴지는 특별한 실내 분위기였다. 참 쓸데없는 상상력이란.
천정이나 벽이 울퉁불퉁하다. 실내가 네모거나 원형도 아닌 멋대로 삐뚜름한 내부 공간에 정갈한 식탁이 차려져 있었다. 요란하게 잘 차려진 아침이라기보다는, 갓 구운 빵 냄새가 솔솔 나는 누군가의 소박한 주방의 간편한 아침시간 같은~수수한 듯 참 인상적인 분위기여서 기억에 오래 남는다.
특히 뭐니 뭐니 해도 바게트 맛은 내가 맛본 중에서 가장 최고다. 쌉싸래한 커피와도 잘 어울린다. 통통한 빵의 굵기와 겉 부분의 크러스트가 단단하지만 씹을수록 고소하다. 그 안의 빵 결은 촉촉하고 쫄깃해서 물리지 않고 끝없이 먹게 된다. 그 맛에 배가 부른데도 마구 먹어댔다.
우리의 주식은 밥이기에 빵만으로는 오래 먹기 쉽지 않다. 우리는 밥심으로 산다고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빵심으로 산다는 걸 이해하겠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맛이다. 다음에 또 갈 일이 있을까만 만일 다시 간다면 맛있는 바게트를 찾아서 실컷 먹고 올 생각이다. 빵이 맛있던 소르본 어드메의 골목길이 유난히 떠오른다.
●Exhibition
◇게오르그 바젤리츠 : 가르니 호텔
일정 11월 27일까지 장소 타데우스 로팍 서울
게오르그 바젤리츠는 독일 신표현주의의 거장이며, 1960년대 이후 국제 미술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작가이다. 바젤리츠는 타데우스 로팍의 서울점 개관을 기념해 회화 12점과 드로잉 12점을 선보였다. 전시의 제목인 '가르니 호텔(hotel garni)'은 프랑스어로 저가 호텔을 의미한다. 이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에서 착안된 발상이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한 연상의 과정을 거쳐 고안된 제목이다.
바젤리츠는 독일 미술판의 한계를 느끼며 표현주의적이고 사실주의적인 작품을 통해 독일 신표현주의를 이끌었다. 특히 그는 1969년부터 '거꾸로 뒤집은 그림(인물화)'을 발표, 이는 바젤리츠의 아이덴티티가 됐다. 이번 전시 그림들 역시 모두 뒤집혀있다. 자화상을 비롯해 40년의 뮤즈 아내 앨케, 사슴, 말 등의 그림이 돋보인다. 그의 거꾸로 보는 세계관을 통해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꽃의 시간
일정 11월 30일까지 장소 국립한국자생식물원
'꽃의 시간'의 안진의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색채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30년 가까이 꽃을 모티브로 유려한 채색화를 선보여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꽃'을 소재로 한 희화와 판화 작품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작품에 착안된 다양한 오브제를 이용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보는 'Collage your Nature'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Book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강봉희·사이드웨이)
지난해 2월 대구 발 코로나19 확진으로 전국이 떠들썩한 가운데, 주목받은 이가 있다. 모두가 꺼려하고 있을 때 발 벗고 나서 시신들을 수습한 사람. 그의 이름은 강봉희로, 장례지도사로 산 지 벌써 20여 년 이다.
40대 중반, 방광암에 걸려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기도 했던 그는 그때부터 건축업을 그만두고 죽음을 돌보는 일을 시작했다. 2004년부터 700여 명의 고독사 사망자들과 기초수급자 고인들의 장례를 아무런 보상도 없이 도맡아왔다.
특히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수많은 무연고 고독사의 시신이다. 이와 함께 그는 누군가 고독하게 죽었다고 호들갑을 떨지 말라고 사회를 향해 일침을 가한다. 그 시간에 부모님이나 소외된 이웃에게 연락하고, 찾아가 보라고 조언한다.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은 과거에는 '염장이'라고 불렸고, 천대받는 직업이었다. 현재도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더불어 장례 시설은 혐오시설로 통하고, 잘못된 장례 문화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그는 죽음을 무서워하고 금기시하는 사회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에게도 죽음이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처럼 멀리 있지 않은 죽음, 그것을 인지하고 현재의 삶을 행복하게 사는 자세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의 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그의 생각을 읽어보며,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어떻게 더 행복하게 살아야할지 느껴보자.
◇하버드 건강 습관 (다카하시 사카에·이너북)
하버드 의대에서 연구한 경력이 있는 정신과 의사는 '마음'이 아닌 '몸'에 대해 얘기한다. 몸 상태가 개선되면 마음의 병은 뒤따라 나아진다는 것. 사소한 생활 습관만 바꿔도 비만, 음주, 중독(의존증), 발기부전, 불면, 스트레스 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니, 그의 비법을 배워보자.
◇기후 위기, 마지막 경고 (서형석·문예춘추사)
북극곰으로 대변되는 기후 위기. 꽤 오래 전부터 들어온 말이지만 기후 위기의 위기감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에 서형석 기후환경연구원 대표는 기후 위기의 실태를 알려주고, 인류 생존을 위한 대응법을 제시한다. 작은 실천이 지구를 살릴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나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기후 위기를 직면해야 할 때가 왔다.
◇너의 바다가 되어 (고상만·크루)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가족은 소중한 존재다. 인권운동가로 유명한 고상만 작가는 돌고래의 모성애 실화에서 감동을 받아, 가족애 소설을 집필했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마음의 위로를 전해준다.
●Stage
◇레베카
일정 11월 16일~2022년 2월 27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출연 민영기 김준현 에녹 이장우 신영숙 옥주현 임혜영 박지연 이지혜 최민철 등
다프네 듀 모리에의 동명소설과 이를 원작으로 한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를 뮤지컬로 옮긴 작품이다. 성장하는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감동적인 로맨스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서스펜스, 이와 함께 극의 긴장감을 높여주는 강렬한 선율과 화려한 세트로 매 시즌 관객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지난 2006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레이문드 극장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전 세계 12개국, 총 10개 언어로 번역돼 공연됐다. 국내에서는 2013년 초연 이후 2019년 다섯 번째 시즌까지 총 687회 공연에 총 관람객 83만 명, 평균 객석 점유율 98%를 기록했다. 특히 초연부터 '레베카'의 흥행 주역으로 통해온 배우 옥주현, 신영숙이 댄버스 부인 역으로 출연해 많은 관심을 이끌고 있다.
◇프랑켄슈타인
일정 11월 24일~2022년 2월 20일
장소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연출 왕용범 출연 민우혁, 전동석, 규현, 박은태, 카이, 레오, 해나, 이봄소리, 서지영, 김지우 등
매 시즌 최고의 화제작으로 통한 '프랑켄슈타인'이 3년 만에 네 번 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특히 배우 박은태가 이번에도 참여해 기대를 더한다. '프랑켄슈타인'은 1818년 출간된 메리 셸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19세기 유럽 나폴레옹 전쟁 당시 스위스 제네바 출신의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전쟁에서 죽지 않는 군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던 중 신체 접합술의 귀재 앙리 뒤프레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젠틀맨스가이드 : 사랑과 살인 편
일정 11월 13일~2022년 2월 20일
장소 광림아트센터 BBCH홀 연출 김동연
출연 유연석, 이석훈, 고은성, 이상이, 오만석, 정성화, 이규형, 정문성, 이정화, 유리아 등
화려한 스타 캐스팅으로 주목받고 있는 뮤지컬이다. 유연석과 이상이는 두 번째 출연이고, 이석훈과 고은성은 새롭게 합류해 기대를 모은다. 뮤지컬은 1900년대 초반,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하는 코미디극이다. 가난하게 살아온 몬티 나바로가 어느 날 자신이 고귀한 다이스퀴스 가문의 여덟 번째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다이스퀴스 가문의 백작이 되기 위해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후계자들을 한 명씩 제거하는 과정을 다룬다.
베이비부머에게 가장 어울리는 여행지는 어디일까. 한 온라인 숙박 예약사이트가 지난 15일 여행 플랫폼 이용자(한국인 1003명 포함 총 2만8042명)의 의향조사 데이터를 기반으로 세대별 추천 여행지를 집계했다. 이 중 1955년부터 1964년까지 시기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에게 어울리는 여행지로 오스트리아 비엔나가 선정됐다.
조사 결과 베이비붐 세대는 선호하는 여행지로 33%가 편안한 도시를 선택했다. 해당 사이트 사용자들이 ‘산책하기 좋은 도시’로 가장 많이 추천한 여행지 중 하나가 오스트리아 비엔나다.
비엔나는 음악과 건축의 도시다. 왕궁과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 한데 어우러지는 지역으로 모차르트와 베토벤, 슈베르트, 하이든, 말러 같은 위대한 작곡가들이 주로 활동한 곳이기도 하다. 비엔나 곳곳에는 이들이 살았던 집과 흔적이 남아 있다. 이들이 활동했던 무대나 결혼식, 장례식이 열렸던 성당도 직접 가볼 수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 600년 역사가 깃든 고풍스러운 궁전 정원을 산책하거나 위대한 작곡가들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은 시니어에게 매력적인 여행지다.
알베르티나 박물관
알베르티나 박물관은 원래 1805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왕궁으로 건축된 궁전이다. 왕궁과 미술관으로 활용되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이곳에서는 클로드 모네의 ‘수련연못’(The Water Lily Pond), 마르크 샤갈의 ‘연’(The Kite), 파블로 피카소의 ‘녹색 모자를 쓴 여인’(Woman in a green hat) 같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 작품부터 근세 미술, 100만 점의 그래픽 아트까지, 시기와 장르를 초월한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국립오페라하우스 뒤편에 있는 알베르티나는 멜로 영화 ‘비포 선라이즈’(1996)의 배경으로도 등장했다. 알베르티나를 거닐다 보면 비포 선라이즈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국립오페라하우스
비엔나의 국립오페라하우스는 파리 오페라하우스, 밀라노 오페라하우스와 함께 세계 3대 오페라하우스로 꼽힌다. 유럽 최대 규모로 객석 2200석, 객석보다 세 배 넓은 무대, 관람객이 악보를 볼 수 있게 한 천장 객석 등을 보유하고 있다.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이자 짤츠부르크 음악제의 중심인 빈 필하모닉이 이 극장 소속 오케스트라다. 클래식 애호가인 시니어라면 비엔나에서 빠지지 않고 들려야 하는 이유다.
오페라 시즌인 9월부터 다음해 6월 사이에 모차르트의 ‘마술 피리’ 같은 인기 공연이 여러 차례 열린다. 7~8월은 공연 대신 가이드 투어만 진행하므로 오페라의 진수를 즐기고 싶은 시니어라면 이 시기를 피하는 것이 좋다.
쇤부른 궁전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장인 쇤부른 궁전은 유럽에서 가장 잘 보존된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자 유산이다. 공간은 50만 평으로 방이 1411개나 있다. 쇤부른 궁전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궁전이자 한때 유럽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문화가 그대로 녹아 있다.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 왕궁에는 ‘파노라마반’이라고 부르는 꼬마기차가 다닌다. 방문객은 이 기차를 타고 넓고 화려한 궁전 정원을 구석구석 돌아볼 수 있다. 프로이센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만든 글로리에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인 쇤부른 동물원, 야자수 식물원과 마차 박물관 등 9개 정류장을 돌면 쇤부른 궁전을 힘들이지 않고 관람할 수 있다.
또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매년 6월마다 쇤부른 궁전 정원에서 밤의 음악제를 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위험이 사라져 다시 여행이 가능해진다면 6월을 노려 이른 여름 휴가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
강원도 목장 순례 끝에 만난 진짜 순수양떼목장
노을이 아름다운 곳. 아는 사람은 알음알음으로 찾아가는 명소다. 이곳 순수양떼목장에서는 목장 길을 산책하며 양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길이든 초지든 제 세상인 듯 자유롭게 다니는 양들의 천국이다. 이런 풍광이 다른 양떼 목장과는 확실한 차별성이다.
동화 속에서 그려져 있는 이미지처럼 투실투실하고 털빛은 하얗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양이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떠오르는 목가적인 풍경, 노을빛에 양털 색도 멋져 보이고 어느새 동심에 젖어든다.
순수양떼목장은 평창 라마다호텔 내에 위치한다. 양과 염소, 알파카를 지척에서 보면서 먹이를 주는 생생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아이들이 있는 가족에게는 최적의 여행지다. 알파카는 가까이 다가가서 먹이를 줄 때 한 마리의 알파카에게만 먹이를 주면 침을 뱉는 특이한 행동을 한다고 주의를 요하는 안내문구가 있다. 눈에 보이는 알파카 모두에게 골고루 먹이를 분배해서 주는 것이 좋겠다. 반려견 동반도 가능하지만 입장료를 내야 한다. 사람과 동물을 동등하게 대하는 곳이라는 느낌이다.
이곳의 동물들은 자유로운 분위기 탓인지 다른 목장들보다 사람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입장료에 포함된 먹이 봉지를 노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유 중인 어린 양에게는 먹이를 주면 안 된다.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빼면 자유롭게 산책하고, 양들과 포즈를 취하고, 그네를 타고, 아기 양들을 보고… 순수하게 목장을 즐길 수 있다.
평창의 순수양떼목장을 가볼 생각이라면 이왕이면 해 질 무렵에 맞춰 방문해보자. 목가적인 풍경과 어우러지는 저녁노을을 보면서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평창군 대관령면 오목길 152
033-335-1497
입장료: 성인 5000원 / 어린이․청소년 4000원 / 반려동물 3000원
관람시간: 4~10월 09:00~18:00 (매표 마감 17:00)
11~3월 09:00~17:00 (매표 마감 16:00)
키덜트 감성 자극은 기본,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비엔나인형박물관
어느 순간 인형과 피규어가 키덜트의 관심사 중 하나가 되었다. 2019년 개관한 비엔나인형박물관은 오스트리아 마을인 티롤빌리지 내에 위치한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애장한 작품을 기증해 키덜트들의 감성을 충족하고 있다. 종이학의 전영록, 그의 노래는 수없이 많지만 종이학 천 개를 접는 유행을 만들었던 노래가 기억에 자리 잡고 있다. 레이 조, 정미숙, 이동한, 이상진, 김선영 작가, 이스안 작가, 성남숙 디자이너 등 인형에 심취한 사람들이 수집하고 만들어낸 작품들이 박물관을 가득 채우고 있다.
▲평창군 대관령면 솔봉로 296 티롤빌리지
관람시간: 10:00~18:00 (매주 수요일 휴관)
입장료: 성인 1만 원 / 중고생 8000원 / 어린이 7000원
내일은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이다. 사상 초유의 전염병을 버텨낸 해의 마지막 계절이기도 하다. 올 한 해는 유난히 힘들고 지치는 일이 많았지만, 이번 겨울 만큼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포근하게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브라보 독자들의 얼어붙은 마음의 온도를 녹여줄 90년대 로맨스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들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Sleepless In Seattle, 1993)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건축가 ‘샘’(톰 행크스)은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들 ‘조나’(로스 맬링거)와 시애틀로 이사한다. 그러나 샘은 이사한 뒤에도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조나는 크리스마스이브 라디오 프로그램에 새엄마가 필요하다는 사연을 보낸다. 한편 미국 반대편에 사는 신문 기자 ‘애니’(맥 라이언)는 약혼자 ‘윌터’(빌 풀만)와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이 사연을 듣게 되고, 샘에게 강한 운명적 이끌림을 느낀다. 약혼자가 있지만 샘이 궁금해진 애니는 그를 만나기 위해 머나먼 시애틀로 향한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미국 서부 끝에 사는 남자와 동부 끝에 사는 여자가 크리스마스이브에 보낸 라디오 사연을 계기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셀린 디온과 클라이브 그리핀이 듀엣으로 부른 주제곡 ‘웬 아이 폴 인 러브’(When I Fall In Love) 등 달콤한 OST와 겨울 시애틀의 낭만 가득한 야경이 로맨틱한 분위기를 달군다.
2. 비포 선라이즈 (Before Sunrise, 1995)
비엔나에서 파리로 향하는 유럽횡단 기차 안, 파리로 돌아가는 ‘셀린’(줄리 델피)은 시끄러운 독일 부부를 피하기 위해 자리를 옮기다 미국 남자 ‘제시’(에단 호크)를 만난다. 짧은 인사로 말문을 튼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가 잘 맞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깊고 진지한 이야기까지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빠져든다. 이대로 셀린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 제시는 비엔나에서 함께 내리자는 돌발 제안을 하고, 두 사람은 늦은 오후부터 다음 날 아침 해가 뜨기 전까지 짧지만 뜨거운 사랑을 펼친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가 하루 동안 비엔나를 함께 여행하며 오랜 연인처럼 사랑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속편으로 ‘비포 선셋’(2004), ‘비포 미드나잇’(2013)이 있으며, 9년 간격으로 촬영해 풋풋한 20대 청춘 시절부터 중년이 된 셀린과 제시의 모습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비엔나, 파리, 그리스의 아름다운 풍광이 감동을 더한다.
3.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My Best Friend's Wedding, 1997)
대학 시절 연인이었다 친구 사이가 된 ‘줄리안’(줄리아 로버츠)과 ‘마이클’(더모트 멀로니)은 28세가 될 때까지 짝을 찾지 못하면 함께 결혼하자는 장난스러운 약속을 맺는다. 하지만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기 전 마이클 앞에 아름다운 ‘키미’(카메론 디아즈)가 나타나고, 마이클은 줄리안에게 결혼할 상대가 생겼음을 고백한다. 소식을 들은 줄리안은 그제야 자신이 그를 사랑하고 있었단 사실을 깨닫고, 마이클의 결혼식을 망치기 위해 엉뚱한 작전을 짜기 시작한다.
영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은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세 남녀의 엇갈리는 관계를 코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다룬다.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 줄리아 로버츠와 카메론 디아즈의 ‘리즈’ 시절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 빈에 간다면 아무리 바쁜 일정이라도 꼭 봐야 하는 그림이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작품 ‘키스’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명화이자 회화에 문외한 일지라도 알고 있는 그림. 빈에서 클림트의 다른 작품과 달리 ‘키스’는 해외 임대와 반출이 절대 금지하고 있어서 실제 작품은 오직 벨베데레 궁전에 가야만 볼 수 있다.
숙소를 벨베데레 궁전 근처로 잡았다. 새벽에 눈을 떠 궁전을 산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날 아침은 궁전 정원에 들어가는 데 실패다. 눈을 뜨자마자 부리나케 정문에 도착한 시간이 5시가 조금 넘었는데 문이 잠겨있다. 정원을 6시부터 개방하는 줄 몰랐던 나의 불찰이다. 둘째 날에야 새벽녘의 정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떠오르는 아침 빛을 뒤로 하고 조깅하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적막을 깬다. 스프링클러에서 물방울이 반짝거리며 쏟아져 내린다. 잠에서 깨어나 나른한 듯 기지개를 켜고 단장을 시작하는 귀부인의 자태가 이렇지 않을까. 8시 이후부터는 하나둘 관광객들이 들어오고 상궁 입장이 시작되는 9시 즈음에는 시끌벅적해진다.
‘아름다운 전망을 보이는’ 뜻의 이탈리아어인 벨베데레. 그 의미처럼 구름이 조각조각 흩어지는 하늘과 조형미 넘치는 정원 아래로 벨베데레 하궁과 빈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궁전은 사보이 왕가의 프린츠 오이겐(Prinz Eugen Von Savoy en 1663~1736)의 여름 궁전이었다. 정원과 건축물은 화려하고 장식적인 바로크식의 진수를 보여준다. 오이겐 공자는 자식을 남기지 않았기에 그의 사후 궁전은 이탈리아에 살던 조카딸에게 상속되었다가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에게 팔렸다. 이후 합스부르크가 황제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아침의 청명함이 가득한 궁전의 정원을 걷는다. 곧 만나게 될 것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복제품이라도 애장하려는‘키스’. 기대가 뭉근히 피어오른다. 클림트는 시대를 거스르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금세공사 에른스트 클림트의 7형제 중 둘째로 태어난 그의 작품 속 찬란한 금색은 아버지를 보고 자란 어린 시절을 투영한다. 학교에 다닐 수 없을 만큼 가난했던 집안, 후원을 받아 비엔나 장식 미술 학교를 어렵사리 졸업한 후 동생과 함께 미술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려고 힘썼다. 동생이자 개혁의 동반자였던 에른스트가 죽고 얼마 뒤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3년 동안 붓을 잡지 않을 정도로 심적 타격이 컸다. 기존 미술세력을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를 느낀 그에게는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때 피난하다시피 빠져든 세계가 강렬한 에로티시즘이다.
클림트는 자신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감추었다. “나에 대해 알려면 내 작품을 보라”고 할 뿐이었다. 그 말을 증명하듯 클림트 사후에 14명의 여인이 그의 아이를 낳았다며 나타났다. 빈의 카사노바였던 셈이다. 그가 탐닉한 여인들은 그림 작업 앞에서 자신의 매력을 한껏 뽐내었다. 자신의 육체를 한껏 드러내며 나만이 그대의 여인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의 작품 속 여인들은 성녀 아니면 요부였다.
클림트가 마지막까지 플라토닉한 사랑을 한 이는 죽은 동생, 에른스트의 부인의 여동생인 에밀리 플뢰게다. ‘키스’의 모델이라고 여겨지는 인물이다.
네모와 원의 대비, 꽃이 가득 핀 절벽 끝에 짙은 색 피부 남자의 힘 아래 무릎을 꿇고 있는 여인이 볼을 내 맡긴 체 눈을 감고 있다. 사방이 180cm인 그림 안에 담겨있는 몽환적인 분위기, 화려한 색채 앞에 시간이 멈춘다. 클림트의 곁을 떠났던 에밀리가 이 그림을 보고 난 후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왔을 마음이 그려진다.
키스가 전시된 상궁에는 클림트의 ‘프리차 리들러 부인의 초상화’, ‘유디트’ 등 그의 최대 컬렉션과 28세에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1918),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1886~1980) 등 세기말을 대표하는 작품들이 즐비하다. 빈에서 반드시 가봐야 할 곳으로 꼽힐 만하다.
너무나 많이 봐서 익숙하다 못해 찻잔, 액자, 우산 등 생활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그림 ‘키스’에 대한 감흥은 생각보다 짙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키스를 보기 위해 벨베데레 궁전에 간다. 벨베데레=키스라고 여겨질 정도로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정원의 기하학적 조경미와 키스의 몽환미 사이에 빈의 파란 하늘이 떠 있다. 벨베데레의 키스는 절대 유혹이다.
‘논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가. 빈둥빈둥하는 것도 노는 것이지만 바쁘게 노는 건 방향이 있고 의미가 있는 놀이일 것이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말처럼 인간은 먹고살기 위한 일 외에는 놀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놀이에서 예술 활동이나 스포츠 활동이 생겼다는 사실을 보면 논다는 게 단순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혼자서 놀아도 그 방식은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내 경우 직장이 없어 노는 게 맞지만 그렇다고 할 일이 없는 건 아니다. 아내를 도와 집안일을 하는 거야 누구나 할 테고 그런 일을 빼고 나면 취미생활이라는 말로 대체할 수 있는 삶의 영역을 노는 것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 본격적으로 나의 ‘집에서 혼자 놀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얼마 전 ‘힘들지만 즐거운 여름나기’라는 제목으로 전원생활의 빛과 어둠을 비교해 글을 썼다. 즐거운 것 중 하나로 매실주 담그는 얘기를 했는데 늦가을인 요즘, 애주가로서 그때 담근 매실주를 조금씩 마셔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열심히 골프를 치러 다녔다면 이런 맛을 즐기는 호사를 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 친구가 은퇴 후 10년이 된 나이인데도 테니스를 열심히 치러 다닌다 해서 좀 부러웠다. 나는 젊은 시절 치다 이마를 다친 후 손에서 놨다. 하지만 코트 위의 검투사처럼 사각 틀 속에서 온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테니스의 매력은 여전히 잊지 않고 있다. 친구는 체력은 문제없는데 같이 칠 파트너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서글픈 현상이지만 어찌할 것인가. 골프나 테니스에 대한 나의 희미한 갈망은 텔레비전 중계로 풀곤 한다.
재미 들린 작은 농사
스포츠도 에너지를 소모하는 운동이지만 꽃과 나무들을 돌보는 데도 에너지를 많이 쓴다. 꽃나무들은 사올 때처럼 예쁘게 가만 있지 않는다. 보기 흉하게 자라지 않도록 가꿔줘야 한다. 그냥 놔두면 야생의 숲처럼 돼버린다. 하루 작정하고 나가 일하면 겉옷 속옷 할 것 없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린다. 일을 끝내고 샤워 후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면 그 즐거움이 스포츠 활동과 진배없다. 무언가를 생산했다는 보람까지 느끼면 쾌감이 더 오래간다.
꽃나무뿐만 아니라 40~50그루 규모의 블루베리 농사도 짓고 있다. 열매를 1년 내내 생으로 또는 가공해서 먹을 수 있어 좋다. 블루베리는 면역력 향상은 물론 건강에 좋은 식품으로 소문이 나 있는데 눈을 좋게 해주는 효능도 크다. 실제로 연전에 돋보기를 맞춰 뭘 읽을 때마다 써보니 영 거추장스러워서 아예 빼닫이에 넣어놓고 있었는데 블루베리 농사를 짓고부터는 지금까지 돋보기 찾을 일이 없다. 한번은 쓰고 다니는 근시 안경이 맞지 않아 안경점엘 갔는데 시력이 더 좋아졌다고 한다. 믿기 어려운 현상 아닌가.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다.
7년 전 블루베리 2년생, 그 어린것을 심어놓고 밤낮으로 물 주며 돌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키가 2m를 넘는다. 커갈수록 일은 더 많다. 잡초 뽑고 오래된 가지 베어내고 더 이상 크지 않도록 긴 가지는 잘라주고, 누운 가지는 지지목을 대주기도 한다. 품종별로 익는 시기가 달라 열매 따기는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또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집어서 따야 한다. 수확 시기가 되면 우리 부부의 블루베리 열매 따기 걱정이 시작된다. 내가 “좀 덜 따고 놔두면 어때? 떨어져서 개미가 먹으면 안 될 일이 있나?”하며 늑장을 부리면, 아내는 “1년 내내 먹을 블루베리잼은 어떻게 만들죠? 그렇게 좋아하는 작은애한테는 뭘 보내주죠?” 한다. 블루베리 농사는 벌써 9년째에 접어들었다. 돈 생기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만둘 수 없는 일이다. 가족들과 나누고 지인들에게도 한 번씩 맛보게 하려면 고생스러워도 해야 한다. 사는 게 그런 것 아닌가. 작은 농사를 지어도 이렇게 배우는 게 많다.
스포츠와 농사를 비교한다는 건 좀 웃기는 일이다. 그렇지만 여럿이 하는 스포츠에 비해 농사는 혼자서도 할 수 있고 집중을 하다 보면 나름대로 지혜도 는다.
명품 매실주 담그기
매실주 담그는 재미에도 푹 빠졌다. 애주가로서 담금 매실주를 조금씩 마시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은 매실로 주로 우메보시를 만들어 먹는데, 우리처럼 청매를 쓰는 게 아니라 다 익은 황매를 이용한다. 익은 열매는 나무 밑에 보자기를 낮게 매달아놓고 가지를 털면 잘 떨어진다. 우리 부부는 그런 준비까지 할 여유가 없어서 그냥 긴 대나무 장대로 털어낸 뒤 주워서 모으는 방식으로 수확을 한다. 그렇게 두어 시간 몰입해 작업을 하고 나면 만족감이 든다. 큰 플라스틱 용기에 쌓이는 굵고 누런 매실이 얼마나 듬직해보이던지. 수확 후에는 세척하고 말리는 데 하루를 다 써야 한다. 다음 날에는 큰 유리 용기에 담금용 소주를 붓고 매실주를 담근다. 매실을 저울에 재서 일정량을 쏟아 넣고 거기에 맞춰 소주를 부으면 된다. 자그마치 큰 용기 두개, 작은 용기 한 개. 세 용기에 채워놓고 나면 뿌듯하다. 이런 상태로 5년은 숙성해야 마실 만한 명품 매실주가 된다. 좋다. 5년을 기다려보자 하면서 작업을 마쳤다. 흐뭇한 마음으로.
독서와 음악 감상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지내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항간의 말은 맞다. 알면서도 못하는 건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말 또한 맞다. 학교 다닐 때 취미를 기록해 써낼 때가 있었는데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들은 쉽게 피아노, 바이올린, 축구, 노래하기 등을 써넣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독서, 음악 감상 같은 걸 취미라고 기록했다. 커가면서도 마찬가지였다. 특별한 취미가 없으면 그때마다 독서 아니면 음악 감상이 등장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독서를 취미로 할 만큼 책을 즐겨 읽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음악을 즐기는 사람도 흔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음악을 좋아하는 걸 큰 다행으로 여긴다.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노래방을 찾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우리 생활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부분은 실로 엄청나다. 전국노래자랑, 복면가왕, 히든싱어,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 케이팝스타, 위대한 탄생, 미스트롯, 미트터트롯 등 텔레비전 프로그램만 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노래와 음악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요즘 프로그램만 꼽아봐서 그 정도이지 노래와 함께하는 것들을 다 열거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민족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클래식 듣기를 좋아해 지금도 집에 들어오면 일단 오디오나 텔레비전 음악 채널을 틀어놓는다. 이 글을 쓰면서도 음악을 듣고 있다. 고교 시절, 서울에 올라와 지내는데 어느 날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바이올린 선율을 듣게 됐고 푹 빠져버렸다. 그렇게 ‘대단한 경험’을 하고 나서부터 나는 클래식 음악만 들려오면 귀를 기울이곤 했다. 좋은 오디오와 LP 음반을 많이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어 종종 그 집에 가서 감상을 하거나 빌려와 들어보기도 하면서 음악 감상 취미를 길러왔다.
매혹적인 나만의 ‘소리’에 취하다
20여 년 전 비엔나에서 근무할 때 덴마크 산 뱅앤올룹슨(Bang&Olufsen, B&O)을 제법 비싸게 사서 듣고 다녔다. 그 후 여기저기 옮겨 다닐 때도 늘 잊지 않고 챙겼다. 지금도 제주 집에 놓고 수시로 음악을 듣는다. 나는 한 번씩 서울에 가면 교보문고에 들러 음악 시디를 아낌없이 사온다. 아내는 이 기기에 ‘남편 장난감 1호’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생일 때 선물로 받은 노트북, 소니 카메라는 2호쯤 될 것이다. 어쨌든 이 음향기기는 딱 한 번 고장이 나서 회로를 교체하는 등 수리를 한 적 있지만 아직까지 처음의 성능을 잃지 않고 있다. 무얼 더 바랄까.
내가 듣는 음악, 우리가 듣는 음악은 정말 다양하다. 나는 클래식은 말할 것도 없고 각국의 대중음악을 다 좋아한다. 샹송, 팝송, 칸초네, 칸시온, 컨트리, 탱고, 파두 등등. 라디오 방송 중 클래식 다음으로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KBS클래식FM의 ‘세상의 모든 음악’이다. 세상의 모든 음악 속에는 세상의 모든 삶이 녹아들어 있다. 감상하다 보면 그 사람들과 교류하는 느낌이다. 적어도 그런 감성으로 모든 음악을 듣고 즐기고 이해한다. 스페인 음악을 듣다 보면 ‘코라존(Corazon)’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데, 번역하면 Heart, 즉 마음, 사랑, 애인이다. 노래를 듣다가 이 가사가 나오면 시공을 초월해 사랑에 빠진 남녀가 상상된다.
클래식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니 이렇다 저렇다 하기는 좀 그렇지만 고전음악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삶의 기본을 생각하게 해주는 느낌이 든다. 대중음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의 감정을 고양된 형태로 표현해주는 데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많은 천재 작곡가들이 온 정열을 바쳐 만든 음악을, 최고의 기예를 뽐내는 천재 연주가들이 빚어내니, 그 소리는 바꿔 말하면 천상의 소리에 지상의 양식이요 품격인 것이다. 그러니 음악에 빠졌다는 건 엄청난 경험이자 행복이라 할 수 있다.
하우스 콘서트를 열다
아마추어일 뿐인 음악 애호가로서 크게 한 번 객기(客氣)를 부린 일이 있다. 부모님을 통해 알게 된 재영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아 황이 한국에 요양차 한두 달 머무르는 기회에 남산 언저리에 있는 우리 집에서 하우스 콘서트를 연 것이다. 런던에서 연주활동을 하는 그는 7세 때 영국으로 건너가 바이올린을 배웠고 9세 때 신동으로 등장한 젊은 음악가다. 고교 시절에는 공부를 너무 잘해 케임브리지대학교와 왕립음악원에서 입학 허가를 받고 전자를 선택했다. 1688년에 제작된 과르네리우스의 악기로 연주하는데 그 소리가 형용할 수 없이 좋았다. 그는 나흐트무지크(Nachtmusik)란 이름으로 그날 여섯 곡을 선사했다. 좁은 집이었지만 여남은 명이 참가해 나름 성황을 이뤘다. 처음 해본 하우스 콘서트치고 성공이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제주와 서울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어보고 싶다. 음악 애호가가 많을수록 세상이 평화로워진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치게 순진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클래식 음악의 본질이 그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주 가는 이태원에 루체(LUCE)라는 시니어 아마추어 성악가 모임이 있어 이따금 그들의 연주를 듣는다. 모두 행복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음악의 힘이다.
글 쓰면서 혼자 놀기
집에서 혼자 놀기 중 내 시간을 가장 많이 쓰는 건 글쓰기다. 이젠 취미가 됐다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 글을 써서 어디 기고를 하면 원고료도 나오니 돈 써가며 하는 취미가 아니라 시간도 잘 보내면서 돈도 생기는 취미다. 글 써서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은 일이라서 어떨 때는 지겹다고 한다. 나는 다르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 정기 필진으로 참가하고 있는데 한 달에 한두 번꼴로 글을 쓴다. 주제와 형식이 자유롭다. 단, 원고료는 없어 일종의 재능 봉사라 할 수 있겠다.
글이라는 건 아무 때나 써지지 않는다. 글 한 편 쓰기 위해 평소에 늘 글감을 생각하면서 지낸다. 이게 또한 재미다. 이번 행사에 참여하면 어떤 글이 나올까, 그 공연은 어떤 글감이 될까, 저 활동을 하면 어떤 글로 이어질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내니 심심치 않다. 글을 발표하면 주변 친구들과 지인, 동창, 각종 단체에도 보내는데 갖가지 독후감을 보고 듣는 재미도 있다.
글쓰기를 통해 나는 자유를 느낀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쓰지는 않는다. 잘 쓰고 싶은 욕심에 나름의 원칙을 갖고 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은 두 가지 기준을 충족한다. 첫째, 읽는 사람이 재미를 느껴야 한다. 둘째, 많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나는 일로서든 취미로서든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겠지만 이 두 가지 기준에 충실할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한순간 한순간이 좋은 글을 만들기 위한 생각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원 투 차차차 쓰리 포 차차차.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 익숙한 박자. 혹시 자신도 모르게 몸을 흔들고 있다면 당신은 잠재적 댄서? 문화에서 이제는 하나의 스포츠로 자리 잡은 댄스스포츠를 김종범(63), 박혜경(67) 동년기자가 배워봤다.
촬영 협조 뷰티풀댄스아카데미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127-8 4층)
생활스포츠로 자리 잡은 댄스스포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댄스스포츠는 15~16세기에 사교를 위한 목적으로 처음 시작됐다. 이후 18~19세기에 오락 요소를 더한 볼룸댄스(ballroom dance), 즉 사교댄스로 발전했고 1991년 올림픽 종목 승인을 얻기 위해 ‘댄스스포츠’라는 용어로 재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점은 우리나라의 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인해 한때 사교댄스 교습이 중단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댄스스튜디오, 문화센터, 대학의 교양강좌 등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인 생활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댄스스포츠는 빠른 리듬과 열정적인 퍼포먼스가 특징인 ‘라틴댄스(룸바, 삼바, 차차차, 파소도블레, 자이브)’와 우아함과 섬세함이 특징인 ‘모던댄스(왈츠, 퀵스텝, 탱고, 슬로우 폭스트롯, 비엔나 왈츠 포인트)’로 나뉜다. 댄스스포츠를 처음 시작한다면 자신의 취향을 고려해 종목을 선택할 것을 권한다.
김종범 동년기자
옛날엔 춤이라는 게 그냥 고고나 디스코, 블루스 정도가 다였다. 그러다 체계적으로 춤을 배우고 싶어 댄스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됐다. 또 요즘에는 문화센터, 복지관 등에서 저렴하게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많아졌기 때문에 새로운 취미생활로도 좋겠다.
박혜경 동년기자
MBC ‘댄싱 위드 더 스타’를 보면서 댄스스포츠의 매력에 푹 빠졌다. 젊을 때만 해도 춤추다 춤바람 난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멋있어 보이기만 했다. 화려한 조명 아래 파트너와 함께 추는 춤이라니. 너무 매력적이지 않은가.
댄스스포츠, 이것만은 꼭 지키자
향기가 나는 사람과 악취가 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누구와 함께 춤을 추겠는가? 백이면 백 좋은 냄새가 나는 사람과 춤추길 바랄 것이다. 이처럼 댄스스포츠는 한 쌍의 남녀가 함께 춤을 춰야 하기 때문에 파트너를 위해 예의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만 편한 자세를 취한다거나 파트너의 기량에 맞추지 않은 행동은 실례가 될 수 있다. 또 춤을 시작하기 전과 후엔 상대방에게 인사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댄스스포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화려한 의상이다. 파티에 초대되었다면 장소와 분위기에 맞는 복장을 준비해야 한다. 특별한 드레스코드가 없다면 남자는 단정한 정장, 여자는 원피스를 기본으로 한다. 물론 강습을 받는 상황이라면 간편한 트레이닝복으로 대체할 수 있다.
김종범 동년기자
혼자 추는 춤이라면 막 출 수 있지만, 댄스스포츠는 파트너와 추다 보니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은근히 많았다. 혹시 상대방의 발을 밟진 않을까 배우는 동안 조마조마했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바닥으로 향하고 여성분의 보폭에 맞춰 움직였다. 파트너와의 호흡이 왜 중요한 건지 알 수 있었다.
박혜경 동년기자
‘댄스스포츠’ 하면 가장 먼저 멋있는 의상이 떠오른다. 그래서 체험에 앞서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어떤 신발을 신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라틴댄스, 모던댄스에 따라 신발 모양이 달라지는데 라틴화는 모던화보다 굽이 높았다. 이런 구두를 신고도 춤을 출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반복적인 연습이 중요
처음 댄스스포츠를 시작하면 가슴을 쭉 펴고 허리를 곧게 세우는 과정부터 쉽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이때 거울을 보면서 자세를 다듬으면 큰 도움이 된다. 스텝을 배워도 몸 따로 마음 따로 움직이다 보니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황안나 뷰티풀댄스아카데미 강사는 “한 가지 종목을 익히려면 보통 주 1~2회를 기준으로 세 달 정도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댄스스포츠를 배우고 싶지만, 같이 배울 파트너가 없다는 이유로 시도를 못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그룹레슨을 찾는 대부분의 강습생이 혼자 오기 때문에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또 개인레슨의 경우 강사가 파트너가 되어 수업을 진행합니다.”
김종범 동년기자
처음엔 자신 있었는데 막상 시작하려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왼발이 나가야 할 때 오른발이 나가고, 오른발이 나가야 할 때 왼발이 나가는 등 실수 연발이었다. 스텝이 계속 꼬이는 와중에 박자까지 맞춰야 하니 마음처럼 쉽게 될 턱이 있나.(웃음) 그래도 몇 번만 더 연습하면 금방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앞, 옆, 제자리에서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파트너를 리드하면서 춤출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부부가 함께 배우면 더 좋겠다.
박혜경 동년기자
역시 난 몸치구나 하는 걸 느꼈다. 원래 처음부터 몸치는 아니었다. 한때는 춤 잘 춘다고 칭찬도 들었다. 이럴 때는 세월이 야속하다고 해야 하는 건가!(웃음) 다른 사람이 할 땐 정말 멋있어 보였는데 거울 속 내 모습은 왜 이렇게 엉성한 건지. 잘하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줘서 아쉬웠다. 그리고 생각보다 운동량이 많다. 몇 번 움직이니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