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30

보라, 산골 농사꾼의 ‘사과나무에게 말 걸기’ 수법을!

입력 2026-10-30 06:00

[박원식이 만난 귀촌 생활] 충북 충주시 산골에 사는 김기환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세상에서 가장 곱살한 빛깔은? 이제 막 발그레 물들어가는 초가을 사과색이다. 귀농인 김기환(68, ‘개울너머들꽃꿀벌농원’ 대표)의 사과 농장에 살포시 홍조를 머금은 사과가 지천이다. 농장이 통째 환하다. 그는 요즘 기쁘다. 올 한 해 사과 농사도 풍작을 거둘 게 분명해 흐뭇하다. 그렇다고 폭염이나 폭우 같은 강적들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야무진 결실을 거둔 자신의 기량에 우쭐해하는 기미는 없다. 대신 사과나무들을 추켜올린다. 사과나무 앞에서 찬사를 읊는다.

“야들아! 너희들 너무너무 고생했어. 이거 알아? 니들이 내 말을 잘 들어준 덕분에 풍성한 수확이 가능해진 것 말이야. 햐! 진심으로 고마워!”

김기환은 흔치 않은 재간꾼이다. 사과나무 들으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넘어 대화까지 가능한 경지에 이른 기묘한 재능으로 농사의 생산성을 높이는 게 아닌가. 그는 사과나무를 단순한 식물로 보지 않는다. 인격체나 동반자로 인식한다. 이러한 의인화를 통해 유대감과 애착을 강화한다. 나무에게 보내는 그의 목소리는 어쩌면 이 농장 최고의 비료. ‘농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지만, 김기환은 목소리까지 수시로 발신해 사과나무의 미끈한 성장을 유도한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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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 후미진 끄트머리이자 과거엔 화전민들이 살았던 산골짝에 있는 그의 농장엔 방문객이 많다. 사과 농사를 잘 짓는 농부로 이름나면서 견학차 찾아오는 이들이 점진적으로 늘었다. 사과 농사 12년 경력을 지닌 그는 자신의 기법을 아낌없이 나눈다. 다만 ‘사과나무에게 말 걸기’만은 공유하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해 딱히 내세우진 않는 눈치다. 알려줘 봐야 실없는 얘기로 생각해 귓전으로 흘려버릴 게 뻔하기 때문일 테지. 사과나무 곁에서 주저리주저리 혼자 떠들어대는 일상의 습관을 공개했다가 ‘어라! 저 사람 엄청 외로운가 봐!’란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약간 성하지 않은 사람 취급을 당할 가능성도 있다. 그나저나 그는 어떤 연유로 산골에 들어왔을까.

“이곳은 나의 고향이다. 어릴 적 기억이 박힌 곳이다. 척박한 산골에서 부모님은 고달픈 농사로 간신히 가난을 극복했다. 부모의 의무를 다했다. 따라서 이곳은 마음의 고향이자 부모님의 땀과 숨결이 서린 땅이다. 그렇다고 고향 땅에서 농사지으며 살 생각은 없었다. 농사 자체에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농을 한 건 동생이 바람을 넣은 덕분이었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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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바람을?

“우리 집안 사람들은 유난히 가족애가 두텁다. 고향 땅에서 형제들과 함께 살고 싶었던 동생은 이곳에 사과밭부터 조성했다. 그러곤 나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었다. ‘형님이 먼저 사과 농사로 자리 잡은 뒤 우리 함께 모여 삽시다!’ 동생의 직장이 도시에 있는 관계로 농사에 전념하기 어려워, 때마침 대전에서 해오던 인테리어 자재 사업을 접은 나에게 바통을 넘겨준 거다.”


농사 초보자는 흔히 우왕좌왕하다 초기를 덧없이 흘려보내는데, 첫해 농사 실적은 어땠나?

“난 뭐든 시작하면 전력투구한다. 첫 농사가 쉽진 않았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 만큼 알차게 영근 사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래 호기롭게 주변 친지들에게 사과 한 박스씩 선물했다. 칭찬이 돌아올 걸 예상하면서. 그러나 기대는 보기 좋게 깨졌다. 맛을 본 사람마다 난감한 평을 했으니까. 맛없고, 딱딱하고, 질기다고. 물기가 부족해 퍼석하다고. 아이고!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를 자랑 삼아 돌리다니.(웃음) 한동안 쥐구멍에 숨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혀 지냈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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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가 환하게 웃는 이유

사과 농사 문외한이었던 김기환의 첫해 농사는 헛수고에 그쳤지만, 이듬해엔 달랐다. 획기적으로 품질을 향상했다. 농사를 망친 뒤 그는 오이 농사를 짓는 집안 형님에게 달려가 ‘날 좀 살려줘요’라며 대책을 상의했다. 그 후 가르쳐준 대로 오이 농사에 쓰이는 미량원소를 사과밭에 듬뿍 묻어줬는데 그게 주효했다. 벼락치기로 열공한 사과 농사법으로 뒤늦게 확보한 기술력, 그리고 적극적인 관수 역시 사과 품질 개선 요인이었다. 이후 귀농 4년 차엔 고품질 사과 생산 농가로 자리매김했다. 농가에서 공판장에 사과를 출하하면 보통 30% 정도 물량을 A급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김기환이 낸 물량의 A급 평가율은 70%에 달했다. 즉 사과 농사 4년여 만에 비로소 자신감과 안정감을 갖게 됐다.


농부들 말에 따르면 세상에서 농사보다 난해한 직업이 없다더라. 그만큼 돈 벌기 어렵다는 이야긴데 소득엔 만족하나?

“초기 한동안은 적자 연속이었다. 4년 차에 접어들며 흑자로 전환됐다. 3967㎡(약 1200평) 규모의 사과밭에서 나오는 연평균 순수익은 약 2500만 원이다. 사과보다 한참 늦게 시작한 양봉을 통해서도 비슷한 수준의 수입이 나온다. 이쯤이면 안정 궤도에 올라선 거라고 본다. 부부 둘이 먹고살기에 충분하니까.”


여느 사과 농가와 차별화된 점은?

“사과나무에 지주를 세우지 않는 대신 분재 형태로 길러 효율성을 높인다는 점이다. 과수 농사에서 가장 공들여야 할 부분은 전지다. 난 과학적인 전지 방법을 습득해 분재 스타일의 사과나무를 유지하고 있다. 나무의 체격을 최대한 줄여 태풍에 쓰러지지 않을 밸런스를 잡아주고, 원활한 통풍과 채광 조건을 부여한다. 그런데 전지를 할 때면 마음이 엄청 아프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왜지?

“한 생명의 생살을 마구 잘라내다니. 이건 내 적성에 맞지 않다. 그래 사과나무에게 사과부터 하고 전지를 시작한다. 매번 그렇다. 오래된 습관이다. ‘야야. 미안해! 네가 미워서 가위질을 하겠어? 뭐든 고통이 따라야 성숙하는 거 아니겠어? 대신 내가 영양제 듬뿍 줄게. 완벽하게 보살펴줄게. 알겠지, 응?’ 이런 식으로 떠드는 거다. 남들이 보면 웃긴다고 하겠지.(웃음) 그러나 난 진심으로 사과나무에게 말을 건다.”


그토록 깍듯한 매너라니.(웃음) 근데 사과나무가 무슨 반응을 보이긴 하나?

“처음엔 혼자 떠드는 게 다였다. 내가 원한 건 나무와의 긴밀한 ‘소통’이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다. 반응이 느껴지지 않았던 거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을 걸었더니 어느 날 드디어 반응이 느껴졌다.”


아하! 어떤 반응이었나?

“한번은 왠지 화난 듯 보이는 사과나무에게 언성을 높여 따졌다. ‘아니, 넌 왜 오늘따라 뾰로통한 거야? 네가 나에게 이럴 수 있어? 말 좀 해봐, 엉?’ 그러자 나무가 ‘나 목말라요!’라고 호소하듯 물기 없는 이파리들을 흔들어대는 게 아닌가. 그제야 물 공급이 필요하단 걸 깨닫고 부리나케 관수를 해줬다. 그러자 나무가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더라고. ‘고마워요, 아저씨 덕분에 이제 편해졌어요.’(웃음) 뭐 나무가 말을 할 리 있겠나. 그러나 나무의 목소리를 들은 듯한 기분을 느낀 것이다. 이런 경험을 자주 하기 시작했으며, 그럴 땐 상상 이상으로 즐겁다. 매우 유쾌해진다. 스트레스가 찰나에 사라진다. 혼자 일할지라도 정말 혼자는 아니란 느낌을 받는다. 그러니 하루 종일 나무에게 말 거는 일을 어찌 멈출 수 있겠나.”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김기환은 사막의 거만한 장미에게 말을 걸어 소통에 이른 ‘어린왕자’의 사촌쯤 되는 재주꾼이다. 집요할 만큼 끈질기게 사과나무에게 말을 걸어 드디어 대화가 되는 경지에 이르다니. 동화적 판타지나 낮술 한잔에 알딸딸하게 취한 상태가 아닌, 그저 맨정신으로 거둔 성과니 이런 걸 지혜라 할 테다.

김기환이 나무에게 말을 걸어 거두는 효과는 한둘에 그치지 않는다. 농장엔 적막감이 가득하다. 이따금 농사를 거들어주는 아내가 곁에 있지 않는 한 고립감에 빠질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러나 그는 사과나무를 청자로 삼은 대화를 시도해 고독을 물리친다. 한편 나무와의 유대감을 극대화해 온전히 농사에 몰입하고 책임감을 강화한다. 나무와의 대화는 ‘예찰 시스템’이기도 하다. 대화를 시도하려면 사과나무의 동향 관찰이 필요한데, 이를 통해 그는 나무의 생육 상태를 좀 더 면밀하게 진단한다. 사과나무에게 말 걸기는 농작물은 거짓말하는 법이 없다는 믿음과 소망의 표출이기도 하다. 따라서 농부의 심리적 안정감과 진정성을 비약적으로 심화시킨다. 이 모든 장점이 궁극적으론 농장의 생산성을 높인다. 진취적이고 신박한 솔루션이다. 정책적으로 브랜드화해 농가에 보급할 만한 ‘교감 농법’이다.


“난 지금 진심으로 살고 있나?”

김기환은 꿀 농사도 한다. 아버지도 수십 년간 양봉을 했다. 그는 세상 어느 위인보다 아버지를 존경한다. 그래서 한층 분발해 벌을 키운다. 집안의 전통을 잇는다는 소명감을 지닌 듯 말이다.

“양봉은 사과 농사보다 훨씬 난도가 높다. ‘변수’와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 하지만 비교적 단기간에 기술력을 확보해 극복했다. 벌들의 날갯짓과 소리만으로 그들의 요구와 불만을 미리 알아챈다. 사과나무처럼 벌들에게도 늘 말을 건네 재미와 성과를 함께 누린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사과 농사에 양봉까지, 작업 총량이 과중한 건 아닌지?

“온 힘을 농사에 집중적으로 쏟아붓는다. 척추질환이 심해 장애인 판정을 받았지만 통증을 불사하고 일을 할 정도다. 산야의 꽃들 한 번 제대로 들여다볼 겨를조차 없다. 휴식을 하더라도 잔일을 하며 쉰다. 때로 야간작업도 하고, 날마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허리통증이 싹 사라지기도 한다.”


여가는 언제 즐기나? 무슨 수로 인생의 행복을 쥐려 하나?

“오해는 마라.(웃음) 이래 봬도 난 마냥 즐겁게 산다. 일이 바로 행복의 원천이다. 농사를 진심으로 즐긴다.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뛰는 것도 아니다. 애초 농사로 부를 일구긴 불가능하다고 보고 돈 벌 생각은 버린 채 농사를 시작했다. 그런데도 돈이 들어오고 있으니 묘한 대목이다. 여가 활동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변변찮지만 시를 몇 편 써 문예잡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농사의 즐거움과 보람에 비할 정도는 못 된다. 농사일 또는 사과나무에게 말 걸기를 능가하는 행복 하나를 말해볼까? 아내와 단둘이 커피잔을 손에 들고 농장 한 바퀴 천천히 도는 일이다.”

김기환은 일벌레에 가깝다. 일로써 인생의 순수한 열매를 딴다. 표정에 만연한 생기, 밝음, 쾌활함, 순박성이 그 징표다. 좌우명 비슷한 자가 검문 문안도 옹골차다. ‘난 지금 진심으로 사나? 주변의 아픈 생명들을 보살피고 있나?’


김기환이 주는 귀농 Tip

•농사에 뜻을 두고도 귀농을 주저하는 사람이 많지만 의지가 굳다면 과감하게 도전하자. 난 귀농을 무조건 찬성하는 편이다. 도시에서보다 좋은 삶을 이룰 수 있다는 경험과 실감을 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농사는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체력, 노동력, 기술력, 근면성, 성실성, 순발력 등 갖가지 실력이 필요하다. 심지어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한다. 그럴 만한 자질 점검을 선행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근거가 부실한 자신감이나 낭만적인 충동에 이끌린 귀농은 절대 금물.

•농사도 즐거운 놀이일 수 있다. 관행 농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각과 기법을 발굴하는 재미가 매우 크다. 몸은 고달파도 마음 관리는 한결 용이할 수 있다. 포인트는 부단한 연구와 실험에 달려 있다. 연구의 양이 많으면 반드시 길이 열린다. 자신을 감동시킬 수 있을 정도로 정진하고 나면 그때부터 농사가 놀이로 바뀐다.

•빚까지 얻어 초기부터 거창한 투자를 하는 귀농인도 드물지 않지만 바보짓에 가깝다. 초기 투자는 최소화하자. 살림집도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천천히 지어라. 내 경우엔 40만 원을 들여 직접 만든 소형 비닐하우스에서 지내며 농사를 시작했다.

•이웃 농부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자. 그들이 툭툭 내던지는 농사 이야기 중에 내가 몰랐던 노하우가 숨어 있을 수 있다. 특히 귀농 초기엔 남들의 농사 견해를 경청해 기본기를 다지는 데 활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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