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익는 마을마다 / 타는 저녁놀 /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뜬금없이 고등학교 시절 국어 시간에 배운 시(詩), 박목월의 ‘나그네’ 속 구절이 떠오른다. 시의 배경은 ‘강나루 건너 밀밭 길’이 펼쳐지는 늦봄이라지만, 손에 잡힐 듯 저녁노을 타고 술 익는 향기가 퍼지는 이미지는 이맘때 가을 녘 농촌 풍경과도 잘 어울린다.

블루베리 농사 초창기의 일이다. 하루는 주인장의 중학교 동창이 전화를 걸어왔다. “이를 어쩌니? 그 비싼 블루베리로 술을 담갔는데 술병을 베란다로 옮기려다 와장창 깨버렸어. 어찌나 아깝던지 눈물이 다 나더라.” 곁에서 그 이야기를 함께 듣던 나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고 보니 “술도 좋은 열매로 담가야 술맛이 제대로 드는 것 알지? 기왕이면 알도 굵고 풍미도 좋은 블루베리로 보내줘”라며 주문할 때 건넸던 말이 떠올랐다.
남은 열매에도 제 몫의 맛이 있다
농사짓다 보면 상품성이 떨어져 출하하긴 곤란하고 그렇다고 그냥 버리기엔 아까운 파치들이 제법 많이 나온다. 농사 초기엔 블루베리 가지치기 솜씨도 어설펐고 꽃눈도 제대로 솎아주지 못한 탓에, 블루베리 주스나 잼 만드는 용도에 적합한 작은 알들이 대량으로 나오곤 했다. 처음엔 ‘100% 블루베리 잼’을 만들어 아들딸네 나눠주기도 하고 가까운 친지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그러다 주스를 만들어보라는 주변의 권유를 받아 ‘100% 블루베리 주스’에 도전하기로 했다. 주스를 만들기로 한 첫해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당산마을 최 씨 아주머님이 “전통시장에 가면 온갖 즙을 맛나게 짜주는 곳이 있지” 하셔서 추천해준 곳을 찾아 맡겼다. 며칠 지나 잔뜩 부푼 기대를 안고 100g 단위로 포장한 주스 박스를 들고 집에 돌아와 컵에 따라 마셔보니, 블루베리에 한약 냄새가 배어 씁쓸하면서도 참으로 묘한 맛이 났다. 그 집은 착즙기에 온갖 재료를 넣었던 탓에 맛이 강한 한약재가 그대로 남아 우리 블루베리 주스 맛을 망쳐놓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 재미 삼아 원가 계산을 해보았는데 주스 한 팩당 최소 5000원은 들었던 것 같다. 이듬해엔 과일즙만 전문으로 짜는 곳에 맡겨 100% 블루베리 주스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한동안 아침 공복에 1봉씩 털어 넣기도 했고, 음식 만들 때 조금씩 사용하면서 블루베리 고유의 매력적인 맛을 음미했던 기억도 난다.
잼과 주스에 이어 블루베리 술 만들기에도 도전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대성공이었다. 전통시장에 가서 술 담글 통을 서너 개 사고 마트에서는 25도 과실주용 소주를 샀다. 블루베리를 잘 닦은 다음 물기를 충분히 뺀 후 블루베리 2, 설탕 1의 비율로 살살 버무렸다. 버무린 블루베리를 술통에 차곡차곡 넣은 후 소주를 찰랑찰랑하게 부었다.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봉한 후 뚜껑을 닫고 그 위에 날짜를 적었다.
3년쯤 지난 후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블루베리주를 선보였다. 순간 박수와 함께 탄성이 터져 나왔음은 물론이다. 맛도 맛이지만 은은한 연보랏빛이 더할 나위 없이 멋졌다. 게다가 세계가 인정한 슈퍼푸드로 영양까지 책임질 테니 엄지척 아닐는지. 물론 원재료인 블루베리 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는 치명적 단점을 빼곤 말이다.

감을 묵힌 시간, 향이 됐다
당산마을 모퉁이 감나무 집 할머니 댁은 늘 감 농사가 풍년이었다. 할머니의 치매가 발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파리를 모두 떨군 채 주홍빛 감을 보기 좋게 달고 있는 풍경은 겨울 길목의 스산함을 달래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말수가 유독 적었던 할머니, 두 해 전부터 치매가 발병해 종종 병원 신세를 지다가 지금은 치매 환자를 전문으로 돌보는 ‘학교’에 다니신다.
감나무 할머니네 바로 옆에는 중풍으로 쓰러진 아내를 10년 넘게 간병하던 할아버지 내외분과 결혼 안 한 딸이 함께 살고 있었다. 딸은 조치원 읍내에서 미용실을 한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다. 몸이 가늘가늘한 할아버지, 밥은 안 먹어도 별 문제 없는데 술은 없으면 못 산다며 늘 소주병을 품에 안고 다니셨다.
5년 전인가 오랜 고생 끝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할아버지가 얼마나 슬퍼하시던지 당산마을 어른들 모두 눈물을 훔치시곤 했다. “여편네가 몸은 못 움직였지만 매일 저녁 눈인사로 ‘왔어?’ 하던 것이 생각난다” 하시던 할아버지. “예전 몸 성할 때는 술 좋아하는 나를 위해 옥수수·보리·매실·복숭아 가리지 않고 술을 빚어 밥상에 올려놓았쥬” 하며 또 눈물을 흘리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먼저 떠나보내고 석 달쯤 지나 할머니 곁으로 따라가셨다. 곡기를 끊고 술로 연명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홀로 남은 딸은 집을 팔고 읍내로 나갔다는데, 지금은 그 집에 누가 사는지 도통 기척이 없다.
우리도 소나무 묘목을 심던 해에 감나무 묘목을 함께 심었다. 나무 키우는 건 당장의 소출이 없어 재미가 덜할 테니, 열매 따 먹는 재미 정도는 있어야 한다며 묘목상 점원이 감나무 묘목을 다섯 그루나 덤으로 준 덕분이다. 겨울이면 유박비료 반 포대씩 얹어주고 가끔 하늘로 벋은 도장지 잘라주고 나면 일 년 내내 방치(?)하는데도, 제법 많은 열매가 달리는 감나무를 보면 신기하기만 했다. 일머리 모르는 데다 게으르기까지 해서 제때 약 한 번 쳐준 적 없는 우리 집 감이야말로 ‘완전’ 무농약 친환경 인증 대상임이 분명하다.
혹시 가지에 달린 채로 알맞게 익은 홍시를 맛보신 적 있는지? 거짓말 안 보태고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그 맛이 환상적이다. 언젠가 나무에서 떨어져 터져버린 홍시를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며 맛나게 먹는 모습도 보았다. 농장 주인장은 당뇨 판정을 받은 지 올해로 30년째인데, 앉은 자리에서 홍시를 예닐곱 개씩 먹어도 이튿날 혈당 수치가 거의 그대로 유지돼 안심하고 즐긴다. 사람마다 체질 차이가 클 테지만, 달달한 맛이 일품인 홍시를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고마운 일이다. 최근엔 홍시에 칼륨 성분이 많아 노인들은 자제하라는 유튜버의 말을 듣곤 인내심을 발휘하는 중이다.
감도 해거리를 하는지라 수확이 아주 적었던 해를 지나고 나면 다섯 그루에서 골고루 많은 양의 감이 달린다. 일부는 서늘한 곳에서 말랑말랑 노글노글해지도록 두었다가 먹고, 나머지는 감식초를 담갔다. 감식초가 혈액순환에도 좋고, 고혈압도 잡아주고, 당뇨에도 그만이라며 권유하시는 쌍둥이 할머니 말에 귀가 솔깃해져서 난생처음 담가보았다.
감을 깨끗이 닦아 잘 말려서 커다란 통 속에 차곡차곡 넣은 후, 알코올 발효를 위해 막걸리를 한 병 부었다. 설탕도 조금 넣었고. 담고 보니 커다란 통 2개, 작은 통 1개가 꽉 채워졌다. 밀봉한 다음 뚜껑 위에 날짜를 적고 2년을 기다렸다가 감식초 걸러내는 작업을 했다. 병뚜껑을 열고 두껍게 낀 곱을 걷어내니 말간 감식초가 우러나와 있었다. 거실 창문을 활짝 열어놓았음에도 주인장은 초산 발효 냄새에 취해 그만 넋이 나갔다.
감식초를 1.8ℓ들이 생수병에 담고 보니 제법 여러 병이 나왔다. 이웃에도 몇 병 돌리고, 연말연시 가족 모임이 있을 때 양가 형제자매들과 아들딸들에게 선물로 안겨주었다. 감식초의 진가를 익히 알고 있던 주인장의 제부가 감식초 선물을 가장 반가워했던 것 같다.

작물로 건네는 마음 한 병
나보다 먼저 농사를 시작한 절친은 자신의 밭에선 난 오이·당근·방울토마토·비트·양파 등으로 피클을 만들곤 했다. 가을바람이 선선한 이맘때쯤 동창 모임이 있을 때면 자신이 직접 재배해 손수 담근 모둠 피클을 예쁜 병에 담아 선물로 나누어주곤 했다. 오랜 시간과 진심 어린 정성이 가득 담긴 선물을 받아 들 때마다 친구들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던 기억도 새롭다.
작년에는 우리 소나무밭에 추수감사절 사진에서나 보던 커다란 호박 여러 개가 넝쿨째 굴러들어 왔다. 벚나무를 키우는 옆집에서 씨를 뿌린 모양인데, 엉뚱하게 우리 밭으로 뻗어와 열매를 떨군 모양이었다. 동네 분들에게 여쭈니 호박은 소화도 잘 되고 부기 빼는 데는 일등이라며, 호박즙을 짜서 두고두고 먹으라고 하셨다. 마침 지나가던 동네 분들께도 호박 한 덩어리씩 안겨드리니 입가에 연신 미소가 번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시간의 흐름이 참으로 주관적이요 변화무쌍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시간제 농부에서 전일제 농부로 변신한 이후 그 의미를 더욱 생생히 체감하고 있다. 학생들 가르치던 시절엔 시간이 봄 학기와 가을 학기로 나뉘고, 여름과 겨울은 적당히 빈둥빈둥하며 방학 있는 삶을 살았던 듯하다. 돌아보니 늘 봄 학기보다는 가을 학기가 훨씬 빠르게 지나간다는 인상을 받곤 했다.
한데 학교를 떠나 오롯이 농사에 전념하고 보니, 계절 감각은 예민해진 대신 요일 감각은 완전히 무뎌졌다. 이제 토요일·일요일·공휴일은 사라졌고, 비 오시는 날이 마음 편히 쉬는 날이 됐다. 닷새 만에 한 번씩 서는 장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하니 신기한 일이다.
그뿐이랴, 농사를 지어보니 과일이나 채소를 대하는 마음가짐도 예전 같지 않다. 블루베리로 술도 담가보고 감으로 식초도 우려내면서, 과일이든 채소든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저장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게 됐으니 말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묵혀야 제대로 맛이 우러나오는 음식처럼, 우리네 삶 속에서도 오랜 시간 함께 해온 관계의 가치를 새록새록 음미하며 살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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