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의 여파로 7월 장마도 이젠 옛말이 되고 있다. 장대비가 아닌 보슬보슬 예쁘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블루베리 주인장과 함께 ‘화려한 외출’에 나서곤 한다.

농부가 되고 보니 토요일·일요일이 쉬는 날이란 생각은 사라진 대신, ‘비 오는 날=농장에 출근(?)하지 않는 날’이 곧 휴일이 됐다. 물론 비도 비 나름이다. 기다리던 단비가 내리면 반가운 마음이 앞서고 기분도 흐뭇해진다. 하지만 몇 날 며칠 쉬지 않고 장대비가 내리는 날에는 행여 배수구가 막히면 어쩌나, 강한 비에 블루베리 열매가 터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비 온 뒤엔 잡초가 장사진을 칠 텐데 어쩌나, 이래저래 심란해진다.

모처럼 휴일엔 우중산사(雨中山寺)로
비 오시는 날, 우리가 자주 찾는 곳은 당산마을 농장에서 멀지 않은 공주 동학사와 갑사, 때론 마곡사를 향해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종교적 이유와 무관하게 우리네 전통과 문화가 담긴 곳을 찾아가는 길은 일상의 관성을 벗어나 삶의 의미를 새겨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 아니던가. 당산마을 어르신들은 날도 궂은데 웬 청승이냐고 눈을 흘기시기도 하지만, 서울 촌(村)사람 입장에선 사람들로 북적대고 번잡하기 이를 데 없는 관광지 분위기보다는, 모처럼 호젓한 여유로움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여간 귀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동학사 대웅전 앞뜰을 향해 가는 길. 아름드리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숲 터널을 지나는 동안 나뭇잎 위로 떨어지는 청량한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고, 계곡물 흘러가는 소리에 정신 팔린 채 송사리·미꾸라지·붕어가 살살 헤엄치는 모습을 보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계룡산을 사이에 두고 동학사 건너편에 있다는 갑사는 분위기가 또 다르다. 두루 소박한 느낌을 주면서도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운치 있는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 그래서 그런가, 왠지 구구절절한 사연을 품고 있을 것 같은 곳이기도 하다. 30대 후반 교수로 임용된 지 5년도 안 돼 자궁암으로 투병하다 어린 자식만 두고 떠난 친구 얼굴도 떠오르고, 평생을 수발들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마자 치매에 걸린 친정어머니로 인해 가슴에 멍이 든 친구 생각도 나고, 엄마의 반대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곤 못내 사랑 없는 결혼을 견딜 수 없어 이혼을 감행했던 친구의 안부도 궁금하다. 갑사를 이리저리 거닐다 보면 나도 모르게 뜻밖의 위로와 위안을 얻기에, 가끔은 살포시 비 오는 날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빗소리 따라 속살거리며
조치원 인근에서 손꼽히는 관광지로 고복자연공원이 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이면 대전과 청주에서 차량이 몰려와 몸살을 앓는 곳이지만, 비 오는 날 인적 드문 이곳을 찾아 우산 쓰고 천천히 둘레길을 걷는 재미도 여간 쏠쏠한 것이 아니다.
“작년엔 블루베리에 물을 너무 자주 줘서 과습이 된 것 같으니, 올해는 물을 조금 줄여보면 어떨까요? 식물은 알아서 땅속 물을 찾아 먹는다고 하니 말이에요.” “수경재배용 유기농 비료는 효과가 좋긴 한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드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까 봐요.” “유박이나 퇴비를 얹어주면 흙이 비옥해져 좋긴 한데, 이번에 굼벵이가 생긴 건 아무래도 퇴비 탓 같아요. 굼벵이 방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농협 담당자 찾아가 상담해볼게요.” 여전히 초보를 벗어나지 못한 농사꾼끼리 두런두런 이야기가 이어진다.
저마다 자기 앞가림하느라 바쁜 아들딸에 일곱이나 되는 손주들 이야기도 우리 대화의 단골 메뉴다. 아이들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부모 입장에선 물가에 내놓은 자식 같으니 소소한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사업은 잘 되는지, 부부 사이는 좋은지, 갱년기라는데…. 별 게 다 마음이 쓰인다. 전역 후 복학한 큰손주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재수하기로 마음먹은 둘째 손주는 궁둥이 붙이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지도 은근히 걱정이다.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블루베리 주인장의 막내아들은 45세에 결혼해서 작년 9월에 셋째를 낳았다. 엄마에게 딸 자랑하러 한국에 온다는데, 이란전쟁의 여파로 비행기표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으니 또 걱정이 앞선다.

뜨끈한 국물에 마음도 풀어져
고복자연공원 둘레길 끝자락엔 민물메기 매운탕을 전문으로 하는 유명한 맛집이 있다. 어머니가 작은 초가에서 시작했다는데, 지금은 아들과 며느리가 이어받아 3층짜리 건물까지 올리고 제법 성업 중이다. 그곳 문을 열고 들어가면 15년 전 처음 찾았을 때 만났던 도우미 아주머님들이 여전히 우리를 반겨준다.
아무래도 비 오는 날 찾는 맛집엔 얼큰한 국물 맛이 일품이란 공통점이 있는 듯하다. 전동에 있는 추어탕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우거지 듬뿍 넣은 칼칼한 국물 맛에 주인이 직접 담근 겉절이 맛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곳이다. 이곳 조치원에선 한두 번만 찾아가도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 단골이 돼, 때론 속내를 슬쩍 털어놓기도 한다.
추어탕집 둘째 아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축구선수를 꿈꾸었는데, 그만 대학 2학년 무렵에 오른발 인대를 크게 다친 후 회복이 안 돼 꿈을 접고야 말았단다. “우리나라에선 체육을 포기하고 나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게 현실이에요. 학교는 몸만 다니고 교실엔 안 들어갔으니 말이에요.” 추어탕집 여주인장의 하소연이 이어진다. 한동안 마음 못 잡고 방황하던 아들이 이제야 마음잡고 부모님 뒤를 이어 추어탕집을 지키겠노라 했단다. 최근엔 결혼도 해서 아들까지 낳았으니 이만하면 해피엔딩이다.
아우내 장터의 병천순댓집도 비 오는 날의 외출지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우리 집에서 산 하나를 넘어 멜론으로 유명해진 수산을 지나 10분쯤 더 달려가면, 유관순 열사가 태극기 들고 독립 만세를 외쳤던 아우내 장터가 나온다. 이곳에는 저마다 원조 간판을 내세운 순댓집이 즐비한데, 그중 유독 맛집으로 이름난 곳이 있다. 주변 순댓집 앞 주차장엔 빈자리가 그득하건만,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손님들은 굳이 그 집만 찾는다. 덕분에 그 맛집 앞엔 시도 때도 없이 긴 줄이 늘어서고, 기다리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큰 가위를 딸깍거리며 전통 엿을 파는 상인도 등장했다.

언젠가 이맘때도 점심시간을 조금 넘겨 도착했는데, 이미 우산 쓴 채 삼삼오오 기다리는 행렬이 제법 길었다. 이 집을 찾는 손님은 대부분 나이 지긋한 분들로 가족이나 친지들과 어울려 오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기다리는 동안 손님들끼리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도 이곳 특유의 매력인 듯싶다. 우리 바로 뒤로는 70대 중반의 멋쟁이 노신사들이 서 계셨는데, 고등학교 동창들로 용인에서 왔다고 했다. 이 집을 단골로 삼은 지 어언 10년이 다 돼가는데, 그동안 한결같은 맛을 유지하고 있다는 칭찬 또한 아끼지 않으셨다.
순댓집 출입문에는 “고객을 위해 더 넓은 장소로 옮겨 손님들 기다리는 불편도 해소하고 더 많은 손님에게 충분한 양의 병천순대를 맛보게 해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해달라”는 내용의 사과문이 붙어 있다. 고객들 성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좁은 장소에서 하루에 제한된 양만 판매하는 이유인즉, “저희는 선대(先代)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적 방식으로 순대를 만들고 있기에 대량생산이 불가능한데, 고유한 맛을 지키겠다는 초심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의 불편함을 계속 감수하겠노라”는 것이다.
눈앞에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길이 훤히 보임에도 굳이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겠노라는 주인의 의지가 새삼 남다르게 다가온다. ‘순댓국 한 그릇에도 초심을 잃지 않겠다’ 다짐하는 그 마음을, 우리네 주변에서 발견하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일 게다.
농촌이 자연인의 무릉도원이려면
블루베리 농사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정 여동생에게 들은 이야기다. 언니가 시골에서 농사짓는다고 하니 누군가 “너희 언니 형편이 어려운가보다. 시골 생활은 재미없잖아. 문화생활도 즐기지 못하고 삶의 질이 떨어질 텐데 너희 언니 정말 안됐다”고 하더란다. 농촌 생활에 대한 고정관념과 오해가 쉽게 가시지 않고 있음을 실감했다.
하지만 서울 같은 대도시에 산다고 누구나 문화생활을 즐기는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비 오는 날, 화려한 외출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마음 가득 충만함이 밀려오는 걸 보면 삶의 질이 떨어지기는커녕, 이런 순간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한국 남성의 로망 중 하나가 MBN의 장수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살고 싶다는 것이라던데, 은퇴 후 농촌이나 어촌으로 귀향하길 꿈꾸는 남편들의 소망은 부인들 반대 앞에서 맥을 못 춘다는 말도 들려온다. 하기야 연고도 없고 친구도 없고, 호미 한 번 잡아본 적 없고, 그물 한 번 쳐본 적 없는 아내들의 이유 있는 저항 앞에서 마음 약해지지 않을 남편이 몇이나 될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산파 손에 태어나 50년 동안 서울을 한 번도 떠나본 적 없는 내가 블루베리 농사를 지으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 사람은 누구든 새로운 환경을 만나면 적응하게 마련이라는 사실, 이 대신 잇몸으로도 별 탈 없이 살 수 있다는 사실, 정붙이고 살면 어디나 고향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 고향엔 우리 마음을 채워주는 의미 있는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 형부가 다녀가며 남긴 말이 지금도 귀에 맴돈다. “함혜진(80대 초반의 해방둥이 형부는 지금도 나를 어린 시절의 이름으로 부른다)이는 무릉도원에서 사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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