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만사]영화배우 문숙 “안티에이징 그 자체가 스트레스죠”

기사입력 2015-11-04 10:31 기사수정 2015-11-04 10:51

남을 의식하며 살면 더 빨리 노화가 온다는 것

문숙(文淑·61)이 오랜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녀를 향한 놀라움은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젊은 세대들로부터 먼저 왔다. 그녀의 모습에는 분명 세월을 증명하는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나이가 예순에 달했다는 걸 그저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단순히 ‘동안’이라고 표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모종의 생명력이 넘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영화 ‘뷰티 인사이드’에 출연하며 무려 38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인간’ 문숙이 밝히는 남다른 젊음의 비결과 삶의 철학. 글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우리는 문숙을 흔히 ‘배우’라고 부른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배우 문숙’이라는 명칭에 손사래를 친다.

“영화배우요? 40년 동안 안 했는데, 갑자기 영화배우 노릇을 하려니까 힘들어 죽겠어요(웃음). 하긴 내가 한 게 배우밖에 없으니까 한국에 오면 배우라고 하는데, 배우 노릇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웃음) 갑자기 ‘선배님’, 이러면 내가 뭐 어색해서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웃음).”

인터뷰 내내 문숙과 같은 자유인을 만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언제든 훌훌 털고 자유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녀의 아름다움은 거기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저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이름 붙일 것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는 사람이에요. 지금 이 순간을 체험으로 사는 것밖에 없기에 잡을 만하고 걸릴 만한 게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강박 중의 강박은 바로 아름다움일 것이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하여, 혹은 더 아름답게 되기 위하여 ‘남들 하는 건 다 해봐야 한다’는 마인드 컨트롤을 매일 하며 살고 있다. 이에 관하여 문숙은 철저하게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라고 조언했다.

“사람들이 젊어 보이려고 애쓰는 데 문제가 있어요. 그걸 확 놔버리면, 그만큼 나이에 맞게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괜히 그 에너지를 젊어지려고 애쓰는 데 쓴다는 거죠. 그건 이길 수 없는 전쟁을 하는 거예요. 늙어 보이면 어때요. 주름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도 아니고. 주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주름은 내가 제일 많을 걸? 대한민국 여자들 중에서.(웃음) 나이가 들면 지혜가 생기는데, 시간이 나에게 마련해준 것에 대해 반항할 나이는 아니잖아요? 노송이 젊은 소나무에 비해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보는 눈이 없는 거죠.”

그녀가 말하는 ‘자연스러움에서 비롯되는 아름다움’은 문숙 본인이 가진 아름다움과도 일치한다. 혹시 그렇게 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아직 일반적인 삶의 입장에 서서 물어봤다.

“오히려 노력을 덜해야 할지 않을까요? 난 한국 여성들이 아름다움을 위해 노력을 어마어마하게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렇게 피부에 쏟는 노력을 다른 데로 돌리면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걸요. 그건 불필요한 에너지를 많이 낭비하고 있다는 거죠.”

문숙은 해외에 있으면서 우리나라 여성들이 정말 열심히 살고 있으며, 그만큼 아름답게 보였다고 말했다. 그 생명력 자체가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자신이 가진 아름다움에 비해 스스로에 대해 자신 없어 하는 게 안쓰럽다고 말했다.

“우리는 원래 우아해요. 왜냐하면 우주의 기운이 우아하고, 우리는 그 기운의 소산물이기 때문이에요. 스스로를 우아하지 않게 생각하게 되는 건, 디스커넥트(단절)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자기 자신과 분리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나의 본질을 찾아서 접속시켜야 해요. 그러면 우아해질 수밖에 없어요. 꽃도 새도 우아한데 하물며 인간이야, 우아하려고 노력할 필요 없이 그저 나이기만 하면 돼요.”

목적 없는 생활의 기쁨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아픔과 익숙한 사이가 된다. 오랜 기간 수행한 요가 수련자로서 문숙은 아픔을 독특하게 해석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요가는 자신과 함께 하는 수행이며 그동안 쌓여 있던 침체된 기운들을 정리해주는 작업이기도 했다.

“아프면 행운이에요. 왜 아픈지 그 원인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니까. 그래서 아픈 건 운이 좋은 거죠. 요가를 하면 스스로를 아프게 만들어서 아픔 속으로 들어가게 해 줘요. 그 전에는 안을 들여다보지 않고 모든 게 밖을 향했어요. 목적의식, 욕구 등등. 그러다보니 제 몸은 혼자 살아남아야 했죠. 몸은 여기 있는데, 나는 다른 데로 가 있으니까 몸이 혼자 움직여야 하니 아프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프면, 내가 아픔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아요.”

자신에게서 어긋난 것을 고치고 나다움을 찾는 것. 문숙의 철학은 그렇게 간명하면서도 강직했다. 그것은 우리가 소위 ‘성공을 위해 설정해야 하는 목적’이라는 개념을 바라보는 것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가 보기에 ‘목적’이란 진정한 자신의 것이 아닌 외부로부터 부여된 것이다.

“많은 이들이 목적을 갖고 사시잖아요? 그런데 목적을 갖고 살면 꼭 사고가 생겨요. 이루면 ‘이게 아니야, 허전해’ 하는 생각이 들어 또 찾게 되고. 그래서 저는 목적 자체를 버리고 체험 그 자체로만 살아요. 그렇다 보니 기대가 없기 때문에 실망할 일도 없죠. 그때그때 살기 때문에 현재에 더 충실할 수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커질 수 있어요. 오히려 순조롭게 살 수 있는 거죠. 사람들은 ‘편안하다’는 그림을 그려놓고 거기에 자신이 해당되지 않으면 괴로워해요.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거지 상황은 변하지 않아요.”

“기대하면 실망하게 되는데 왜 기대를 해요?”

문숙은 만약 다시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면 해보고 싶은 일이 있느냐는 물음에 단호하게 ‘없다’고 대답했다. 지금 다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삶 자체에 대해서, 체험자로선 적극적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적극적이진 않다는 그녀의 말을 충족시키는 확신이었다. 그토록 확신 있는 말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부러웠다. 그래서 그녀가 보는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졌다.

“불행도 우리가 만들어낸 거예요. 불행과 행복은 중요한 게 아녜요. 그건 그 사람들 자신이 만들어낸 거죠. 컵에 물이 반 컵 차 있을 때, 그걸 반 컵밖에 없다고 보느냐 반 컵이나 있다고 좋아하느냐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거죠. 행복에 너무 집중하면 불행도 커져요. 그래서 쉬이 행복하다고 떠드는 사람은 그만큼 그림자가 큰 거죠.”

행복도 애쓰면 불행이 된다. 그녀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자연 그대로의 나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할 때,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직시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보는 삶의 태도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문득 ‘기대하면 실망한다’는 답이 나와 있는데 왜 기대를 하느냐고 반문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저는 지금은 애써서 하는 일이 없어요. 그리고 애써서 하면 잘 안 돼요. 자신이 잘될 일은 애쓰지 않아야 나옵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반면 자신이 잘하는 일은 오히려 에너지가 생겨요.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그게 확연해져요.”

내가 행복해야 주변도 행복해져요

문숙은 이시형 박사의 힐리언스 선마을에서 요가와 요리에 관한 강연을 하고 있다. <문숙의 자연식>이라는 책도 낸 자연식 전문가로서의 그녀만큼 지금까지 접한 그녀와 어울리는 일도 없을 듯했다.

“안 먹고 살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내가 남의 생명을 섭취하고 살아야 하는 거예요. 시금치가 나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났겠어요? 그러니 먹어야 할 게 있고 안 먹어야 할 게 있는 거죠. 이만큼만 먹어야 할 게 있고 저만큼만 먹어야 할 게 있죠. 자연식이라고 좋다고 무조건 먹어야 한다고 하면 그게 또 스트레스가 돼요. 내가 진짜 필요한 게 뭔가가 중요해요. 우리는 오관(五官)의 노예가 되어 있잖아요. 아름다운 것, 좋은 것을 더 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나 그보다 더 크게 생각해야 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 기도하는 마음이 자연히 생겨요. 그리고 몸이 먼저 알게 돼요.”

문숙에게 가장 행복한 시기를 물어봤다. 그녀답다고나 할까, 어렸을 때와 지금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연애해야지, 남자 보면 두근거리지, 아이 낳아야지, 아이 먹여줘야지…. 복잡했어요. 인류 종족을 위한 역할을 하느라고 나도 모르게 아주 힘들었어요(웃음). 이젠 나만 행복하면 돼요. 내가 우울하면, 내 옆에서 우울해할 사람들이 너무 많거든요. 내가 행복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어요. 누군가를 행복하게끔 해주는 게 아니라. 이젠 그게 가능하잖아요?”

그녀는 그동안 남을 위해서 살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걸 남을 위해 살 필요가 없었던 어린 나이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복잡한 삶이 내 몸을 떠난 거예요. 그때 기억나시죠? 모든 게 아름다웠잖아요. 모든 게 가능했고.”

“난 지금 덤으로 사는 거예요.”

살아있으니 하루하루가 괜찮다고 말하는 문숙의 맑은 눈은 흡사 10대 소녀처럼 보였다. 삶의 막바지에 도달했음을 스스럼없이 얘기하는 사람의 눈이 저토록 맑고 생명력이 있을 수 있다니 정말 역설적인 느낌이었다.

“60살 넘었잖아. 난 덤으로 사는 거예요. 오행에서 육십이면 다 산 거니까.”

‘다 살았으니 덤으로 살고 있는 중’이라는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그녀의 에너지를 보면 던질 수밖에 없는 다소 짓궂은, 아직도 이만희 감독의 얼굴이 기억나냐는 질문이었다.

“이만희 감독님의 얼굴은 아직도 생생해요. 60평생 그 분 처럼 멋진 남자를 본 적이 없어요(웃음).”

SHE IS…

영화배우 문숙씨는 고교 재학 중 연기자로 데뷔해, 스무 살에 영화 ‘삼포 가는 길’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됐다. 대종상 신인상을 받은 그는 23세 연상인 고 이만희 감독과 결혼했다. 하지만 이 감독은 결혼 1년 만에 병으로 숨졌고, 그는 미국으로 갔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으나, 걷잡을 수 없는 두통에 시달렸고, 병원에서는 치료할 방법이 더 이상 없다고 했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으로 묵언명상 수련을 떠났다. 문명과 완전히 단절된 산속에서 매일 열네 시간씩 요가와 명상 수련을 했다. 수행을 하며 건강을 되찾은 그는 음식의 중요성을 깨닫고 뉴욕 맨해튼에 있는 자연치유식 요리연구원에서 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2015년 자연식 치유가로 검정색 고무신, 탐스러운 은회색 머리카락, 짙고 바른 눈썹, 자연 색깔의 쇼울을 걸치고 우리 곁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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