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가 만난 사람] 목소리를 잃었던 테너

기사입력 2015-12-09 08:55 기사수정 2015-12-09 08:55

테너 배재철, 갑상선암을 넘어서

지난해 9월 개봉된 영화 <더 테너:리리코 스핀토>의 실제인물. 테너 배재철(裵宰徹·47). 목소리로 먹고사는 그가 목소리를 잃었던 이야기. 박수갈채와 그를 향해 치솟은 엄지손가락에 익숙했던 그가 갑상선암으로 좌절에 빠졌던 이야기. 그러나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산 한 테너의 이야기다.<편집자주>

▲영화 <더 테너:리리코 스핀토>의 실제 주인공 테너 배재철.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영화 <더 테너:리리코 스핀토>의 실제 주인공 테너 배재철.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동양인 테너에게서는 거의 나오기 힘들다는 ‘리리코 스핀토’. 서정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소리에 힘이 있는 테너에게만 주어지는 찬사다. 거기에 ‘아시아 오페라 사상 최고의 테너’, ‘아시아 오페라 역사상 100년에 한 번 나올 만한 목소리’, 이런 수식어들은 모두 대한민국의 테너 배재철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배재철의 인생은 화려한 막이 오르는 듯했다. 동아콩쿠르 1위, 시미오니토 2위(1위가 없는 2위. 음악계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다), 도밍고 오페아리타 특별상, 하오메 아라갈 1위, 프란체스카 화트르 1위 등을 휩쓸 때만 해도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 다가온 시련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최정상에서 목소리를 잃다

“우타에루? (노래할 수 있어?)”

성대성형복원술을 집도한 잇시키 노부히코(一色信彦) 박사가 수술대에 올랐던 배재철에게 이야기한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배재철은 조심스레 입을 열어 노래를 부른다. 갑상선암 수술 이후 영원히 잃어버릴 것 같았던 목소리를 찾는 순간 그의 입에서 나온 노래는 다름 아닌 찬송가였다. 삶에서 두 번째 태어난 목소리를 하느님께 먼저 들려드리고 사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였다. 수술에 성공해 목소리를 찾았음에도 뭔가 분위기는 구슬펐다. 목소리에서는 착잡함을 지울 수 없었다. 일반 사람이라면 만세를 부르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겠지만,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다는 생각은 배재철을 괴롭게 했다.

“독일에서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 목소리를 아예 내지 못했을 때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갑상선암 수술로 잃어버린 오른쪽 성대를 세울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죠. 마침 그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는데, 수술을 집도한 박사님이 노래를 불러보라 하더라고요. 그때는 정말 착잡했습니다.”

목에 이상이 있다고 느낀 것은 사실 갑상선암 선고를 받기 약 1년 전부터였다. 스웨덴에서 오페라를 하고 있는데 유난히 소리 내는 것이 힘들고 목소리 피치가 떨어졌던 것. 극장 주치의에게 진료를 받았지만, 그는 환절기와 피로 누적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나 심상치 않음을 배재철은 감지하고 있었다. 성대 신경이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1년 후, 그는 쓰러졌다. 청천벽력과 같은 갑상선암 판정이었다. 갑상선암은 암 중에서 완치율이 상당히 높은 암에 속하지만, 목을 쓰는 직업에 노래를 목숨처럼 생각했던 배재철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막막했다.

“앞이 깜깜하더라고요. 어떤 병인지 제대로 몰랐을 뿐더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거든요. 처음에는 ‘이 수술을 꼭 해야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당장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 하더군요. 보통은 사이즈가 작을 때 수술을 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암덩어리가 육안으로 확인이 될 정도로 컸거든요.”

갑상선암 수술로 성대만 자른 것이 아니었다. 노래를 위해 호흡을 할 때 가장 많이 쓰는 횡격막도 일부를 제거했다. 말 그대로 어떻게 손 쓸 겨를이 없었다.

“노래밖에 모르고 살아왔는데 수술을 받고 나니 앞으로 뭐 먹고살아야 하나 현실적인 것부터 걱정이 되더라고요. 다른 일은 상상도 안 해 봤거든요. 신앙적 버팀목이 없었다면 견디기가 더욱 힘들었을 거예요.”

▲1. 핀란드 사본린나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리골레토>를 공연 중인 배재철 테너 2. 배재철 테너(오른쪽)는 2003년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를 기획하던 와지마 토타로(왼쪽)의 제안으로 일본 무대에 데뷔한다.(배재철 제공)
▲1. 핀란드 사본린나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리골레토>를 공연 중인 배재철 테너 2. 배재철 테너(오른쪽)는 2003년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를 기획하던 와지마 토타로(왼쪽)의 제안으로 일본 무대에 데뷔한다.(배재철 제공)

◇친구, 와지마 토타로

“와지마! 난 이제 노래를 할 수가 없어.”

“아니야. 너는 끝까지 나와 함께하는 아티스트야. 넌 분명 다시 노래를 할 수 있고, 무대 위에 설 수 있어!”

배재철은 성대 성형복원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러나 목소리를 되찾았다는 안도감은 노래를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함과 좌절감에 압도됐다. 그런 착잡함을 안고 탄 비행기. 그것은 어쩌면 화려한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는 편도 티켓 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때 그의 옆을 굳건히 지켜준 이는 다름 아닌 매니저이자 음악 프로듀서인 일본인 친구 와지마 토타로( 輪嶋東太郞)였다.

“수술을 마치고 한국에 왔는데 와지마상이 한국에 따라왔더라고요. 계약서를 들고 말이죠. 수술을 하기 전으로 기량이 돌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도 처음에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확신을 심어주더라고요. 꼭 노래를 할 수 있고, 무대에 꼭 올라서 관객들에게 감동을 줄 것이라고요.”

주변 사람들은 이런 와지마 토타로를 ‘무모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분명 배재철의 인생 스토리를 바탕으로 비즈니스를 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배재철은 그의 진심을 알고 있었다. 굉장히 여리지만,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해 소신 있게 밀어붙이는 사람. 그게 바로 오랜 시간 인연을 맺으며 느낀 와지마였기 때문이다.

“저의 재기 스토리에서 이 친구를 빼놓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잇시키 노부히코 박사도 이 친구가 직접 찾아서 수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줬고, 일본 팬들과 돈을 모아 비싼 수술비도 마련해 주기도 했기 때문이죠.”

와지마가 배재철에게 준 신뢰는 갑상선암의 아픔을 좌절의 대상이 아닌, 극복의 대상으로 만들어줬다. 노래는 목숨과 같았기 때문에 노래를 못한다면 살아도 죽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래서 좌절보다 극복의 길을 택한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몰랐지만, 다시 무대에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노래만을 하고 배우면서 소리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아는데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거든요.”

▲노래를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보지 못할 뻔 했다.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노래를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보지 못할 뻔 했다.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자신의 이야기, 영화 <더 테너:리리코 스핀토>

“제 인생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정말인가?’라는 의구심과 함께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교차했어요. 극중 제 역할을 하는 유지태씨를 만난 것은 서로가 색다른 경험이었죠.”

지난해 9월 5일 개봉한 <더 테너:리리코 스핀토>는 일본과 대만, 홍콩을 거쳐 지난 11월 5일에는 이스라엘까지 뻗어나갔다. 평도 상당히 좋다. 한 인물의 좌절 극복기라는 어떻게 보면 뻔한 설정이지만, 그 주인공이 성악가라는 특별함이 있었다. 그것도 목소리를 잃었던 최고의 성악가 말이다. 아마 대중의 호평도 이것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리라.

배재철은 극중 자신을 연기했던 배우 유지태에 대해 상당한 노력파라고 이야기한다. 성악가를 연기한다는 것이 단기간에 배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몸을 써서 하는 연주에 감성을 녹여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테너 연기를 위해 1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하여 배재철에게 레슨을 받았다. 본인이 노래에 대한 흥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섬세한 연기, 감정의 몰입을 위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이 컸을 것이다.

“(유)지태씨가 배역에 상당한 욕심을 부리더라고요. 아마 쉽게 오지 않을 캐릭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노래와 성악에 욕심을 많이 부리셨어요.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그 역할을 소화해 낼지 함께 고민을 많이 했었죠.”

◇암 극복 후, 세상이 넓어지다

“이제는 인생을 보는 관점이 넓어진 것 같아요. 예전에 유럽 무대는 치열한 경쟁 사회였기 때문에 커리어와 노래만 생각하고 앞만 보고 달렸거든요. 부득이하게 암 때문에 2년 정도 쉬면서 지나온 일, 현재의 일, 미래의 일을 생각할 수 있게 됐어요. 옆을 보게 된 것이죠.”

많은 것을 앗아갔다. 전성기 때의 성량과 음역대는 반으로 줄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던 의사의 말을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은 오늘을 살고 있는 테너 배재철이다. 그는 노래를 한다는 것은 ‘나를 살아 있게 하는 피’와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그의 몸속의 피는 전성기 때처럼 아직 열정의 용광로다.

연주자의 삶, 지도자의 삶, 찬양하는 이로서의 삶. 아직도 해야 할 일은 무수히 많다. 그리고 잃어버린 것에 대한 부정보다는 긍정으로 더 나은 미래를 보는 그다.

“더딜 수는 있겠지만 충분히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말도 못했는데, 지금은 노래도 할 수 있잖아요. 미리 포기한다는 것은 참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해요. 목소리를 잘 관리하고 다듬어서 노래를 할 수 없을 때까지 무대에 서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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