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한 밤에 TV에서 영화를 하는데 어디선가 들어본 제목 같았다. 처음엔 그 시간대에 열심히 재방되는 ‘애마부인’, ‘산딸기’, ‘뽕’ 같은 에로물 들 중 하나로 생각했었다. 옛날에 서갑숙이라는 탤런트가 동명의 에세이집을 내서 큰 화제가 되었었다. 그 제명을 차용한 것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때가 1999년이었고 서갑숙은 그 때문에 사실상 연예계 활동을 접어야 했다. 또 딸과의 갈등, 이혼의 아픔도 겪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 영화는 실제로 서갑숙의 동명 에세이집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에세이집을 영화로 만들다 보니 내용은 각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서갑숙씨는 그간 수차례 영화화 제의를 받았지만, 거부하다가 이번에 제의를 받아들여 드디어 2015년 말에 영화화 된 것이다. 책이 나온 지 16년만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 영화는 흥행을 노리고 만든 포르노성 영화는 아니다. 성애 장면이나 줄거리가 야하기로는 얼마전 세계적인 기대 속에 개봉되었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등 농도가 더 짙은 영화가 얼마든지 많다. 만약 문제가 된다면 성에 대한 기준이 외국영화는 되고 우리 영화는 안 된다는 이중 잣대가 문제인 것이다.
서갑숙의 동명 에세이가 그 당시 큰 논란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밀레니엄 시대를 코앞에 둔 1999년이었다. 우선 제목부터 자극적이었다. 출판사가 권했는지 본인이 원했는지는 모르지만, 제목이 자극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내용 중에도 ‘9시간 섹스’, ‘멀티 오르가즘’, ‘친구와의 혼음’ 등 당시로서는 겉으로 드러내기 힘든 단어들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조용한 논란 속에 책은 무려 140만부나 팔려나갔다고 한다. 사람들의 이중적 잣대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사람들에게 관음증은 누구나 있다지만, 140만 명이 이 책을 사 보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아니면 그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성담론이므로 책을 읽고도 무덤덤했을 것이다. 나도 이 책을 읽었지만, 별로 기억에 남을 만큼 자극적인 내용은 없었다. 혹자는 저자가 책을 많이 팔고 싶어서 쓴 책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저자가 겪은 그 후의 고통은 그 정도의 인세를 기대하고 썼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영화는 장성수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배우 한지은이 주인공 진희로 열연했다. 스토리는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아버지의 죽음, 이혼, 개인적인 슬럼프, 외로움에 빠진 상처받은 여주인공 진희가 한 남자를 만난 뒤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남녀의 사랑과 동반되는 스킨십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이다.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 파도에 쓰다듬고 가는 장면에 남자가 여자의 손등을, 그리고 여자가 남자의 손등을 어루만져 주는 환타지 효과를 보여준다.
서갑숙은 1961년생으로 50대 중반이니 시니어의 대열에 들어섰다고 얘기할 수 있겠다. 16년 전인 40대 초반인 1999년에 발표했으니 성담론에서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요즘은 각 방송국에서 이 정도 얘기는 별 것도 아닌 세상이 되었다. 서갑숙씨에 대해 용기 있었다는 격려가 필요하지 더 이상의 손가락질이나 백안시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시니어들이라면 동년배 의식이라도 동원해서 감싸 안아줘야 할 때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