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엄마의 미국 이민 이야기] (9)백발의 미국 노인들

기사입력 2016-07-11 09:39 기사수정 2016-07-11 09:39

▲미국 노인 생각과 달리 친절하다. (양복희 동년기자)
▲미국 노인 생각과 달리 친절하다. (양복희 동년기자)
미국은 노인천국이다. 그러나 백인 노인들에게도 부족한 것이 있다면 외로움이 그 한 몫을 차지했다. 미국의 노인들은 대체로 검소하지만 부유하고 고독한 만큼 사랑도 넘쳤다. 미국인들이 인정머리 없고 이기적이라고 누가 그랬는가. 자본주의가 넘치는 미국에 살면서 얻을 것과 배울 것은 끝이 없었다.

하얀 은발머리가 햇빛에 반짝이며 곱게 단장한 백인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를 짚으며 뒤뚱뒤뚱 세탁소 안으로 들어왔다. 재빨리 소리를 질러 남편을 불렀고 남편은 얼른 뛰어나가 할머니를 두 팔로 부축했다. 필자는 아직 외국인 손님이 어색하기만 해서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는 얼굴에 소녀 같은 천진한 미소를 띠며 카운터 앞 의자에 앉았다. 처음 오는 손님이라고 했다. 언뜻 봐도 80은 넘어 보이는 단아한 모습의 예쁜 미국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두 부부의 모습을 번갈아 보시더니 이것저것 물어왔고, 남편은 상냥하고 친절하게 하나하나 답변을 했다.

그 연세에 운전을 직접 하고 세탁물을 하나 가득 차 트렁크에 담아오셨다. 남편은 밖으로 나가 트렁크를 열고 세탁물을 옮기기 시작했다. 비가 쏟아져 천장으로 세어난 빗물이 옷장으로 들어와 옷들이 망가졌다며 대충 50장은 가져온 것 같았다. 달러로 치면 대략 500달러는 될 것 같아 깜짝 놀랐다. 남편은 친절을 있는 대로 하더니 300달러만 받겠다고 했다. 필자는 조금은 못마땅했지만 참아야 했다. 남편은 신이 난 듯 가게를 돌아나가는 할머니 손님을 차에까지 부축하며 정중하게 모셨다. 필자도 그때는 함께 인사를 했고, 할머니는 고맙다며 몇 번이나 두 손을 잡아주었다.

일주일 후, 백인 할머니는 친구 두 명을 데리고 다시 왔다. 필자 부부가 너무 친절하고 상냥해서 모셔왔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소개를 해주겠다며 주름진 환한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 후로는 무슨 때마다 초콜릿과 손수 구운 비스킷뿐만 아니라 각종의 선물도 있는 대로 가져다주었다. 그 이후로도 5년 정도 단골이 되어 꾸준한 왕래를 했고 주위의 사람들로 매상은 늘어갔다.

어느 날부터 그 할머니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모습이 뚝 끊겨 필자 부부는 무슨 일인가 걱정을 했다. 얼마 후 보스턴에 사는 아들이 할머니 사망 소식을 전해왔다. 아들은 할머니에게 들었다며 그동안 친절에 대한 감사 인사와 함께 할머니 옷에 대한 거금을 지불하며 모두 찾아갔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그날은 필자 부부도 행복했던 마음에 그림자가 드리우며 몹시 슬픈 날이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건장하게 생긴 백인 할아버지가 세탁물 한 보따리를 품에 안고 들어왔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소개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치매 끼가 있는지 한쪽 손을 심하게 덜덜 떨었다. 남편은 반갑다며 여윈 두 손을 덥석 잡고 친절하게 인사를 했고, 할아버지는 사우스 코리안이냐고 몇 번을 물었다. 할아버지는 6.25한국 전쟁 참전 용사였다며 필자 부부 만난 것을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할아버지는 파킨슨병으로 혼자 노인 아파트에 사셨고 아들딸은 타 주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미국 노인들은 거의가 자식들과 멀리 떨어져 혼자 살고 있어 안타까웠다.

남편은 한국에 아버지 생각이 난다며 몇 배로 친절을 베풀었다. 어느 때는 직접 집에까지 배달을 했다. 할아버지는 올 때마다 고맙다며 고액의 팁을 용돈처럼 건네주었고 매주 월요일 첫 손님으로 기분 좋은 매상도 채워주었다. 와이셔츠 5장과 바지 2벌로 매주 똑같은 옷과 속옷 몇 벌이 전부였지만 금액은 만만치가 않았다. 반복되는 세탁으로 옷들은 너덜너덜해갔지만 할아버지는 편하고 좋아하는 옷이라며 변함이 없었다. 필자에게 할아버지 옷은 곧 익숙해졌고 그 할아버지 냄새가 배어있어 금방 알 수가 있었다. 미국인들은 자기가 맘에 드는 것이면 똑같은 옷이 몇 벌씩이나 되었다. 어쩌면 그들은 사치가 아닌 굉장히 검소하며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골 노인 손님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는 것 같았다. 노인들은 추수감사절 및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가장 먼저 각종의 선물을 가져왔다. 시시때때로 이것저것을 가져다주면서 마음의 정을 나누었다. 정이 그립고 외로운 이민자에게는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토박이인 그들도 외로움은 가득했지만 정이 넘치고 마음이 따뜻했다. 그들은 부가 넘치는 나라에 살았지만 고독을 몸에 품고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자식들은 있어도 성인이 되면 부모를 떠나야 했고 부모는 나이가 들면 외로움 친구도 품어야 하는것이 그들 전통적 문화의 일부였다.

미국에 노인들은 거의가 자식들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가 어느 날 병원으로 실려가 조용히 혼자 죽어간다. 땅덩어리가 크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혼자 또는 부부만이 사는 것에도 자연스레 익숙해져 갔다. 노인들은 정부에서 제공해 주는 아주 저렴한 노인 아파트에서 지내며 정부 보조금인 웰 페어(기본보장 연금)나 쇼셜 연금(사회보장 연금)으로 살고 있다. 메디칼(병원)은 물론이고 후드(음식) 스탬프까지 어쩌면 부자로 생활할 수가 있다. 어떤 이는 차곡차곡 저축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외로움의 단어는 인간이 풀지 못하는 커다란 공통과제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필자 부부가 조금 친절과 애정을 베푸니 대가는 그 열 배는 돌아왔다. 물론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다. 그들은 대단히 합리적으로 냉정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결코, 차고 이기적인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었고, 기본적인 질서의 바탕 위에 인간적인 따뜻한 사랑이 마음속 깊이 흐르고 있었다. 사람의 정서는 누구나 비슷했고 겉의 생김새와는 또 다른 것이었다. 진실로 대하니 진실로 통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의 육체적 고생은 참된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하는 참으로 진솔한 생활이었다.

필자 이민생활 초기에 선배 지인이 말했다. ‘미국은 살수록 매력이 있는 곳’이라고. 물론 전혀 다른 문화가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살면서 새로운 것에 적응한다는 것은 창조의 세계와도 같았고, 황무지의 낯선 땅에서 매력이라는 단어는 생소할 뿐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남의 나라 미국도 사람 냄새 풀풀 나는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아름다운 백인 노인들, 부디 건강하고 활기차게 오래오래 살아 주기만을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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