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과 강아지 이야기

기사입력 2016-09-02 13:52 기사수정 2016-09-12 10:08

칡은 시골 아이들의 주전부리였습니다. 동네 친구들 하고 삽과 괭이를 들고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 칡넝쿨 중 크고 실한 놈을 골라 괭이로 그 주위를 파들어 갑니다. 옆에서 친구들이  칡넝쿨을 잡아 당겨주면 파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낮은 산이어서 큰 칡은 없고 아이들 팔뚝 굵기 정도입니다. 톱으로 5~10cm정도씩 잘라서 입으로 겉껍질을 찢어서 뱉어 버리고 속에 하얀 칡 속살을 씹으면 약간 쓴맛과 단맛의 칡 물이 나옵니다. 껌 씹듯이 한참을 씹어 단물이 다 빠지면 버리고 또 뜯어서 씹고 뱉고를 연이어 합니다. 칡의 물은 시간이 지나면 까맣게 변색됩니다. 아이들 입 언저리가 칡 물이 배어 꺼멓게 됩니다.

    

그날도 열 살 또래의 서 너 명이 산에 올랐는데 나보다 두 살 많은 덩치 큰 형이 함께 갔습니다. 칡을 발견하고 괭이로 땅을 찍으면서 파내려 가는데 나의 실수인지 덩치 큰 형의 실수인지 잘 모르게 순간적으로 내가 형의 다리를 괭이로 찍어버렸습니다. 형이 아얏! 하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데 순간적으로 아차 큰일 났구나 하고 겁에 질렸습니다.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닌지 형이 다리를 주무르는 선에서 끝이 나고 걸음 걷는데도 절뚝거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호랑이엄마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형의 엄마가 아는 날에는 큰일 날거라는 두려움에 잔뜩 겁을 먹었습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우리 집 강아지를 형에게 주자’ 그때 우리 집에는 어미개가 귀여운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습니다. 형이 우리 집에 놀러오면 강아지를 탐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강아지를 주면 입막음도 되고 오늘 일은 없었던 일로 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당시 시골에서 개는 집도 지키고 돈이 궁할 때는 팔아서 가용 돈으로도 쓰고 노인이 있는 집은 잡아서 효도음식이 되는 가축의 역할도 했습니다. 족보 없는 똥개수준이지만 강아지 때는 귀엽고 아이들이 갖고 싶어 합니다. 장날이면 시장에 강아지를 팔려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가격은 기억에 없지만 대략 쌀 한말 값은 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형! 우리 집 강아지 한 마리 형 줄게’ 형이 다리가 안 아프다고 해야지 집에 가서 사실대로 말하면 나는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릅니다. 강아지 준다는 말에 형이 만면에 활짝 웃음꽃이 핍니다. 다리도 쌩쌩한 것 같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엄마에게 강아지를 동네 형한테 줘야하는 이유를 잘 설명해야 합니다. 그냥 준다고 하면 틀림없이 엄마가 의심을 할 것이므로 싸게 팔자고 엄마를 조르는 일입니다.

    

엄마에게 동네 형이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는데 돈이 없어서 좀 싸게 팔라고 한다. 내가 형네 집에 가서 밥도 자주 얻어먹고 하니 싸게 팔자라고 엄마를 꼬드겼습니다. 엄마가 나보고 알아서 하라고 일임합니다. 반값에 팔아도 나에게 반값의 돈이 있어야 하는데 땡전 한 푼 없습니다. 어떻게 돈을 마련해야 하나 온종일, 며칠을 그 생각뿐입니다.

    

며칠 뒤 강아지가 한 마리가 없어졌습니다. ‘엄마 강아지 한 마리 없어 졌어’ 하고 소리쳤습니다. 네가 준다고 한 동네 형의 엄마가 와서 가져갔다고 합니다. 이미 엄마는 나만의 비밀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동네 형이 자기 집에 가서 강아지를 공짜로 얻어오겠다고 큰소리친 것이 발단이 되고 동네 형이 실토를 하는 바람에 엄마들 끼리 내막을 서로 다 알아버렸습니다. ‘너 돈 구하려고 마음 고생했지’ 하는 말에 눈물이 왈칵 났습니다. 엄마 치맛자락을 잡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엄마는 왜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느냐는 말씀도 없으시고 그냥 웃으시며 나를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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