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초등학교 전학] (16) 아라비아 숫자 점수가 없다

기사입력 2016-10-04 11:22 기사수정 2016-10-10 15:44

아이들이 시험 치느라 공부를 할 필요가 없었다. 다음 학년으로 올라갈 때도 성적표가 없었다. 학교생활에 대해서 어떠하다는 평가가 선생님의 세심한 관찰로 아주 세세하게 적혀 있고, 국어 수학... 등의 과목 평가는 <양호하다, 보통이다, 조금 더 열심히> 라는 세 단계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을 뿐이다. 공부를 했으면 바로 기억해 둬야 하는 것은 쪽지시험을 봤고, 요점은 다시 기억하게 하는 정도로 끝냈다. 둘째가 전학해서 첫 사회시간에 버스의 여러 가지 명칭 외우기를 공부하고 바로 시험을 쳤는데 100점을 맞았더니 모두 눈이 휘둥글 놀랬다고 했다.

담임이 ‘어이 빠가야로’ 너희들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말을 술술 잘 하면서 왜 한국에서 어제 온 친구에게 뒤지는 거냐! 며 놀람과 신기함 반반으로 혼을 냈다고 했다. 우리 아이는 그냥 글자를 그림으로 외워서 기억했다는 말을 했다. 운전사, 좌석, 유리창, 요금 넣는 곳. 손잡이... 등을 써야 하는 시험이었다. 바로 칭찬을 해 주며 다른 아이들은 다시 시험을 치르게 했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아이들은 집에 가서 부모들에게 그 얘기를 다 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큰 애는 첫 시간에 그린 그림을 미술 선생님께서 보고 아주 놀라며 실력이 대단하다면서 그 그림을 바로 아이들을 이끌고 전교생이 드나드는 현관으로 가서,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곳에 걸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모든 것들 지켜주는 선생님들의 순수하고 깨끗한 정신에 감동을 받았었다. 우리에게 그런 일들이 자꾸 생기면서 일본 놈이라는 것과 일본을 그냥 이유 없이 무조건 미워했던 것들을 조금씩 수정해 나가는 계기가 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직접 보고 들어야 맘대로 말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었다. 일본에 대한 나쁜 감정들을 알게 모르게 수정해 갔다. 전연 우릴 무시하지 않는다는 걸 확실하게 깨달았던 것이다. 정말 평화롭게 학교생활을 즐길 수가 있었다. 시험을 절대 안치니 우리나라 아이들처럼 학원 다닐 필요도 없고 밤을 새워가며 시험공부를 하지도 않았다. 큰 애 반에서 학원 다니는 아이는 딱 한 명이었다. 몸이 약해서 운동도 못하고 아무 것도 잘하는 게 없어서 공부를 해서 시험을 쳐 가며 대학을 갈 거라는 목표가 세워진 아이였다.

그 한 명 외에는 맘대로 뛰어 놀고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는 야구나 축구, 수영 등을 건강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배우러 다녔다. 우리 애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동네 간판도 없이 엄마들의 입으로 소개받은 피아노 선생님 집에 다녔고, 전철을 타고 다니는 수영학교에 다녔었다. 다른 애들은 아예 안 다니는 게 보통이었다. 정말 시험을 보며 성적벌레(공부벌레)를 만들어 내는 곳이 학교가 아니었다. 일상생활을 잘 해나갈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것을 빠짐없이 목표를 세워 전인교육이란 것을 절대로 고수해 가며 가르쳐 주고 닦아주는 곳이 학교였다. 우리 작은 애의 5, 6학년을 맡은 담임은 그 우수한 동경대 출신이었는데 아이들을 자기 스스로 공부하고 깨우치도록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는 본인 맘대로 노트정리를 하도록 했다. 선생님은 노트를 다 걷어서 전부 체크하는데 빠져선 안 될 요점은 전부 빨강연필로 적어주고 영어로 ‘GOOD’ 또는 ‘BEST’ ‘MORE’등의 평가를 영어로 써 주었다. 난 처음에 그걸 보고 뭔가 했었다. 재미있는 발상으로 아이들에게 독자적인 학습파악과 정리법을 알게 모르게 습득하게 하는 데 놀랬다. 그렇게 절대 숫자, 아라비아로 된 점수가 없는 6년 과정이 일본 초등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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