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생텍쥐페리에게 영감을 준 것은 저택에 있던 할아버지의 서재였다. 생텍쥐페리는 친할아버지 페르낭 백작의 집에서도 생활하게 된다. 할아버지의 저택에는 수많은 장서가 있었다. 어린 생텍쥐페리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천문학에 관한 책들이었다. 생텍쥐페리는 할아버지 서재의 영향으로 훗날 할아버지 페르낭 백작을 ‘어린왕자’에서 여섯 번째 행성에 살며 아주 커다란 책을 쓰고 있는 지리학자로 등장시킨다.
어머니 마리 드 퐁소콜롱브는 음악가 집안 출신이었는데 음악과 미술, 시적 재능이 뛰어났다. 그녀가 그린 파스텔 그림은 지금도 리옹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예술적 재능이 풍부한 어머니는 직접 생업에 종사하며 2남3녀의 자녀를 지극한 사랑으로 키웠다. 어머니는 밤이면 아이들에게 안데르센 동화를 읽어주었는데 아이들은 즉흥 연출을 하며 놀기도 했다. 시를 좋아한 생텍쥐페리는 어머니가 준 보들레르의 시집을 읽고 그 느낌을 편지로 보내기도 했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처럼 생텍쥐페리의 어머니는 큰아들인 그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했는데, 그 결과 생텍쥐페리는 아주 제멋대로인 소년으로 성장했다. 호기심이 왕성한 소년이었지만 응석받이로 키웠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몇 번이나 전학을 다녔다. 성채에서 왕자처럼 자라 남과 어울리는 법을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혼자 책을 읽고 상상의 세계에 빠지면서 아이를 고독하게 만들었다. 학교 기숙사 심지어 군대에 있을 때도 툭하면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 돈을 부쳐 달라고 요구했다. 어머니는 평생 생텍쥐페리의 뒤치다꺼리를 했다.
“길을 들인다는 것이 뭐야?” 어린 왕자가 묻자 여우가 대답한다. “서로에게 관계가 생긴다는 거지.” 그런데 ‘어린왕자’를 통해 전 세계 수많은 독자를 길들여온 생텍쥐페리는 정작 자신이 사랑했던 아내만은 길들이지 못했다. 이 부부는 서로를 길들이지 못했다. 비행을 간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부인 콘슈엘로(재혼)와는 평생 불화를 겪었고 아이도 갖지 못했다. 아이를 좋아했던 생텍쥐페리는 “나는 임신한 여인을 좋아하고 젖 먹이는 여인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다. 천년 넘게 이어온 유서 깊은 가문은 불행한 그의 결혼생활로 아쉽게도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