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처럼 아름답다는 5월의 어느 주말, 아들 결혼식을 뉴욕 변두리 스포츠클럽의 야외정원에서 하기로 했다. 사촌까지의 가까운 가족들과 신랑 신부 친구들만 초대되는 간소한 결혼식이었다. 혹시 날씨가 안 좋을 수도 있음을 예상해 우천 시에는 실내에서 식을 치를 수 있도록 1년 전부터 계획해놓았다.
그런데 아침에 화창했던 날씨가 정오가 지나면서 갑자기 흐려지더니 여우비처럼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흩날리기 시작했다. 결혼식이 거행될 오후 두시쯤 되자 작은 빗방울은 가는 선을 그리며 약 올리듯 내렸다. 하객들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간소한 결혼식이라 해도 하객들을 빗속에서 허둥대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실내에서 결혼식을 하자는 의견들이 나왔다. 결혼식 대행업체 측은 빨리 결정을 내려줘야 식장을 준비할 수 있다고 재촉했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잠시 어수선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때 가만히 있던 신부가 말했다
“오늘은 제 날이니까 제가 결정하겠어요. 결혼식은 예정대로 야외에서 하고 싶어요.”
신부의 말 한마디에 모두들 입을 다물었고 결혼식은 야외에서 진행됐다. 신부의 복 때문인지 날씨는 금세 말끔하게 개었다. 덕분에 비둘기 한 쌍이 신랑 신부 머리 위를 날며 축하해주는 아름다운 결혼식을 치를 수 있었다.
그 후 10년이 지났다. 미국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날’이 있다 그날은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직장으로 출근을 해서 부자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날이다. 아들은 필자의 손자인 아들을 데리고 출근을 했고 며느리와 필자는 오랜만에 와인을 즐기며 고부간의 다정한 시간을 가졌다. 며느리는 시간을 적당히 잘 선택해서 말하는 특기가 있다. 며느리는 궁금했던 제 남편, 즉 필자의 아들이 성장한 얘기며 시댁 가족들의 재미있고 특이한 것들에 대해 물었고 궁금한 것도 스스럼없이 질문했다. 당연히 며느리의 성장기도 들려줬다. 고부간의 이야기가 풍성해져갈 때 며느리가 불쑥 말했다.
“어머니는 제 결혼식 날에 행복해하지 않았어요.”
볼멘 목소리였다. 필자는 며느리를 빤히 쳐다보면서 ‘너는 여자이면서 나를 그렇게도 이해하지 못하겠니?’ 하는 표정을 지었다. 며느리는 첫 만남에서 아들이 시아버지 산소로 데려갔다고 무척 감격하고 행복해한 사람이다. 그뿐 아니라 아들 부부의 만남 첫 연결고리는 필자였다. 필자가 친구의 딸 결혼식에서 신부 들러리로 온 며느리를 보았고 친구와 나는 두 청춘 남녀에게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며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줬다. 아들 부부가 만나게 된 씨앗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매파 역할까지 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불만이 있었을까!
아들이 결혼하기 10년 전에 남편은 심장마비라는 복병에 저버렸다. 남편은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할 때부터 유난히 아들이 이룰 가정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필자는 아들이 사회로 나갔을 때 잘 적응할지 걱정했고, 남편은 며느리와 손자로 확장될 미래의 가족들을 자주 그려보곤 했다. 당장은 그렇게 말하는 며느리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의 꿈이었던 아들 결혼식 날에 남편이 없다는 사실이 필자는 힘들었던 것 같다.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 속 인물처럼 필자는 그 하루 영혼을 남편에게 팔아버린 거다. 수수께끼 같은 일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내 영혼의 부재를 신부인 며느리만 알아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