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시는 전형적인 도농 복합 도시다. 인근의 조치원, 전동, 전의 지역까지 세종시에 편입되긴 했지만, 여전히 봄이면 복숭아꽃·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가을이면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농촌지역이다. 도농 복합 지역의 특성을 십분 살린 장터가 바로 로컬푸드 아니던가.
싱싱한 식품 든든한 판로
서울살이 때는 미처 몰랐지만 조치원에 살면서부터 로컬푸드의 찐팬이 됐다. 세종시 로컬푸드는 ‘싱싱장터’란 고유의 이름을 갖고 있는데, 누구 솜씨인지 작명 센스가 수준급이다. 세종시에 첫 번째로 문을 연 싱싱장터 도담점은 전국 로컬푸드 중 매출액 1, 2위를 다툰다고 한다. 매출액 일등 공신은 한우라고들 하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온갖 종류의 과일과 채소, 매일 맛이 바뀌는 김밥과 맛깔스런 반찬, 집에서 담근 것 같은 김치에 쫀득한 맛이 일품인 떡까지. 진열된 품목이 다채롭고 분위기 또한 활기 넘친다.
세종시 싱싱장터는 이름 그대로 싱싱한 농산물을 주민들에게 신속히 제공한다는 취지에 따라 채소는 만 하루, 과일은 만 이틀 지나면 팔고 남은 것을 빠짐없이 수거해야만 한다. 이 규칙을 따르지 않을 경우 싱싱장터에서 축출되는 위험이 따른다. 대형마트에 견주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로컬푸드의 생존을 위해 신선도 면에서 비교 불가의 경쟁력을 갖추고자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로컬푸드 매장 곳곳에는 ‘농부의 땀이 들어간 농산물 가격을 존중해주세요’란 글귀가 붙어 있다.
또 하나의 경쟁력 확보 수단은 2027년까지 싱싱장터에 출하하는 과일과 채소의 GAP 인증률 100%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똑똑한 소비자는 모두 알고 있을 텐데, GAP란 Good Agricultural Practice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농산물우수관리 인증을 뜻한다. 요즘 똑 소리 나는 젊은 엄마들은 인증 마크에 어찌나 민감한지, 싱싱장터에서 채소나 과일을 살 때면 인증 마크를 꼼꼼히 살펴보는 걸 종종 목격하곤 한다.

가장 신선할 때, 진짜 맛있을 때
규모가 아무리 작다 해도 일정한 양의 농산물을 수확하는 농가라면 판로 확보가 가장 큰 걱정거리일 것이다. 우리도 블루베리 열매가 익기 시작하면서부터 풍성한 수확 못지않게 내다 파는 일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됐다.
블루베리 묘목을 심고 이듬해엔 꽃눈을 모조리 따주었기에 실질적인 수확은 2013년부터 시작됐다. 한동안은 주인장과 내 인맥을 총동원해 지인들에게 알음알음 권유도 하고 가족과 친척에겐 강매(?)도 하면서 800㎏ 정도를 출하했다. 간절함이 통했는지 그럭저럭 매해 완판을 이어갔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수경재배용 유기농 비료를 추천받았는데, 그 비료가 신의 한 수였다. 이를 계기로 우리 블루베리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지인들로부터 ‘고퀄(고퀄리티, 고품질)’이란 평가를 받았다. 이후 자신감을 얻고 본격적인 판로를 찾던 중 우리도 소정의 절차를 거쳐 세종시 로컬푸드 싱싱장터에 출하할 수 있다는 알짜 정보를 얻었다.
싱싱장터에 출하하던 첫날 아침 500g 박스 20개를 매대에 진열하고 돌아왔는데, 그날 저녁 우리 상표를 단 블루베리가 19개 팔렸다는 문자를 받았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우리 블루베리를 샀다는 것이 나름 신기하기만 했고, 19개나 팔렸다는 사실이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그때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감동이다.

싱싱장터 출하 농가는 연 1회 필히 교육을 받아야 하고, 블루베리의 경우 출하 농가 간담회에도 참석해야 한다. 이 자리에서 꽤나 흥미진진하면서도 요긴한 정보들이 활발히 오가는 것은 물론이다.
간담회의 최대 안건은 블루베리 500g당 가격을 얼마로 할지 여부다. 모든 농가의 가장 뜨거운 관심사답게 설왕설래가 오랜 시간 이어지곤 한다. 잠정적으로 대형마트, 도매시장, 온라인 쇼핑몰 가격을 두루 참고해서 가격을 정하자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이는 것이 상례다. 덧붙여 “제발 제 살 깎아 먹기는 하지 맙시다. 옆집이 1만 5000원에 출하하면 눈치작전 해서 1만 4000원 라벨 붙이는 이런 짓 좀 하지 말자고요. 이렇게 1000원씩 내리다 보면 서로 덤핑치다 다 같이 망합니다.” 블루베리생산농가협의회 회장님이 묵직한 목소리로 한 말씀 보태지만, 소용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여름만 해도 날씨 탓에 작황도 예년만 못한 데다 모든 물가가 동시에 올라 간담회 자리에선 500g당 2만 원에 출하하자고 철석같이 약속했던 농가들이 하루 만에 가격을 3000원, 4000원씩 내리면서 회장님이 우려했던 상황이 재연되고야 말았다. 그 덕분에 세종시 싱싱장터를 찾는 주민들만 땡잡는 결과를 가져왔다.
로컬푸드의 진짜 매력은 가장 맛이 잘 들었을 때 딴 최상의 과일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블루베리를 예로 들면, 대형마트나 가락시장 경매장에 출하하는 경우는 소비자 손에 들어가기까지 일정 시간이 걸릴 것을 고려해 70% 익은 것을 딴다. 너무 익은 것을 출하할 경우 도중에 물러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로컬푸드용 블루베리는 포장이나 배송 부담이 없어 90% 정도로 잘 익은 것을 출하한다. 특히 블루베리 열매는 후숙하는 과일이 아니고 나무에 달려 있을 때만 익는 만큼, 가장 맛이 잘 든 블루베리는 로컬푸드 고객 차지임이 분명하다.
과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밭에서 갓 딴 가지, 오이, 호박, 상추, 고추 등은 냉장고에서도 오래도록 싱싱한 상태를 유지한다. 지난달 블루베리 주인장이 수술하게 돼 조치원 집을 2주간 비웠는데, 돌아와 보니 싱싱장터에서 산 상추가 냉장고에서 여전히 싱싱한 상태로 있었다.

치열한 눈치싸움, 매대 자리싸움도
로컬푸드 출하 농가의 또 다른 관심거리는 매대 자리 배치다. 블루베리는 싱싱장터 측의 배려로 계산대 앞 최고로 좋은 곳에 자리를 배정받는다. 문제는 제일 먼저 도착한 농가가 블루베리용 매대 절반쯤에 자신들이 수확한 블루베리를 좍 깔아놓고 간다는 점이다. 새벽 6시 출하가 시작되자마자 진열하는 블루베리는 그 전날 딴 것이 분명하다. 정직하게 그날 따서 출하하는 농가는 최소한 10시 넘어서야 귀퉁이 매대에 진열하는 것이 가능하기에 하는 소리다.
자리다툼이 가격경쟁만큼 치열하다 보니 농가들 사이에 몇 가지 규칙을 세우기도 한다. ①평일에는 500g 40팩, 주말(금·토·일요일)에는 70팩까지 출하 가능. ②한 농가당 두 줄 이상 차지하지 않기. ③당일 12시 이전까지 매대 진열을 마칠 것. ④자리를 잡지 못할 경우 다른 농가에서 출하한 블루베리 자리를 함부로 옮기지 말고 싱싱장터 직원에게 도움을 청할 것.

언젠가 간담회 자리에서 푸근한 인상에 몸집도 넉넉한 70대 아주머님(?)이 손을 번쩍 들며 하신 말씀. “어느 집인지 난 알지만 밝힐 수는 없고, 매대에 찰싹 붙어 서서 자기네 블루베리 집어 들고 ‘정말 맛있다’며 판촉하는 것 보았구만. 싱싱장터 측에서 이런 짓 못 하게 해야 합니다.” “옳소, 짝짝짝(박수 소리).” 회장님이 다시 한번 나서며 하신 말씀. “여기 블루베리 출하 농가를 보면 14집으로 나와 있지만 이 중 ○○○, ×××, ***은 시아버지·아들·며느리 관계니 실상은 한 집이여. 한 집에서 여러 사람 이름 올려 세 배씩 출하하는 편법을 쓰는 거지. 서류는 갖춰 냈겠지만 이런 꼼수 부리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겨. 이런 집도 문제지만 옆집·뒷집·건넛집에서 수확한 블루베리에 자기네 라벨 붙여 내놓는 경우도 보았지. 책상에 앉아만 있으면 이런 상황들 절대로 알 수가 없지. 직원들 바쁘시겠지만 부지런히 현장 다니면서 실태 파악해야 합니다. 양심에 맡기면 좋겄지만, 양심에 털 난 사람도 많은 세상 아닌가.” 고작 블루베리 한 품목 출하하는데도 사연들이 숨어 있는 걸 보자니 마음이 복잡해진다.

진짜배기 로컬푸드 나누는 이웃들
로컬푸드 덕분에 진짜 로컬푸드가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예전엔 작고 못생긴 푸성귀나 과일은 이웃끼리 서로 나눠 먹곤 했는데, 요즘은 로컬푸드 매장에 하나라도 더 내다 팔 요량에 아름답던 풍습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니 말이다. 하지만 그 소문은 오해였다.
섭골길로 이사 오기 전 도원로에 살았는데, 그곳엔 아파트 단지를 끼고 드문드문 주말농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한쪽에 상추·가지·풋고추·방울토마토 등이 수북이 담긴 둥그런 광주리가 놓여 있곤 했다. 처음엔 주민 누군가가 잠시 놓고 간 것이려니 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채소와 과일 틈새로 오밀조밀한 손 글씨로 “저희 밭에 다녀왔어요.” 그 옆엔 어리둥절해할 이웃 주민들을 위해 “안심하고 드실 만큼 가져가세요”란 친절한 메모를 붙여놓았다.
이후에도 가끔 엘리베이터 한쪽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낯익은 광주리를 보면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는데, 언젠가는 “나누는 기쁨이 크니 저희에게 감사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란 쪽지가 눈에 띄기도 했다. 아마도 이웃의 누군가가 고마움을 표하고자 작은 음료수 2병을 광주리에 담아 “누구신지 모르지만, 감사합니다”란 메모를 남겨둔 것에 대한 수줍은 응답이었던가 보다.
정들었던 도원로를 떠나기 전, 광주리 속엔 사과에 배추 고갱이에 무처럼 생긴 콜라비가 담겨 있었다. 사과는 군데군데 멍도 들고 흠집도 있는 못난이였지만, 이웃과 콩알 반쪽이라도 나누고자 하는 마음씨만큼이나 맛이 산뜻했고, 특별히 밭에서 갓 캐온 배추 고갱이의 고소함과 아삭함은 지금도 입가에 맴돌 만큼 근사했다.
훗날 광주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밝혀졌는데, 그날도 ‘올해 유난히 잘 떴다는 담뿍장’ 나누랴, ‘오징어 얹어 뜨끈뜨끈 부쳐낸 김치전’ 돌리랴 분주한 모습이었다. 삭막해져만 가는 세상살이 속에 이런저런 로컬푸드가 오래오래 살아남아 우리 마음을 따스하게 달래주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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