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절함을 노래한 시, 두 번째

기사입력 2017-03-20 16:52 기사수정 2017-03-20 16:52

[하태형의 한문 산책]

중국 절강성(浙江省) 소흥(紹興)에는 심원(沈園)이란 명소가 있다. 중국 남송시대 때 부자였던 심씨 소유의 아름답고도 거대한 정원인데, 이 정원 입구에는 계란 모양의 둥근 바위가 둘로 쪼개져 있는 조형물이 서 있다. 가서 살펴보면 ‘단운(斷雲)’이란 행서체 글자가 한 자씩 새겨져 있다.

이게 무슨 뜻일까? 바로 부부간의 정을 뜻하는 ‘운우지락(雲雨之樂)’을 끊어버린다는 뜻으로, 사랑하는 부부였지만 헤어지지 않을 수 없는 슬픈 사연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곳은 바로 중국 남송시대의 유명한 애국시인 육유(陸游, 1125~1210)의 애절한 사랑의 일화가 서려 있다. 육유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같이 성장한 당완(唐婉)이라는 이종사촌 동생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소꿉친구로 지내다가 미모와 재색을 겸비한 규수로 성장하자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육유의 나이 20세 때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육유가 과거시험에 자꾸 낙방하자 며느리 탓이라 여기게 된다. 자식도 못 낳고, 시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 이런 상황들이 모두 며느리를 잘못 들여 생긴 일이라고 생각한 시어머니는 급기야 둘을 강제로 떼놓는다. 모친의 성화에 시달리다 못한 육유는 이혼을 가장하고 인근에 당완을 숨기고는 몰래 만나는 행각을 이어가지만 곧 들통이 나고, 결국 모친이 정해준 왕씨 성의 여인과 재혼을 한다. 어쩔 수 없게 된 당완도 친정어머니의 권유로 조사정이라는 사람에게 개가(改嫁)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헤어진 두 사람이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데, 육유가 27세 되던 봄이었다. 육유는 심원에 놀러왔다가, 같은 날 봄나들이를 온 당완을 만나게 된다. 당완의 낯빛이 변하는 것을 본 남편 조사정은 사정을 물었고, 당완이 사실대로 말하자 조사정은 대인의 풍모를 보이며 술과 안주를 준비한 뒤 육유를 초대해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 그러나 서로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육유는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되는데, 그 비통한 마음을 담아 <차두봉(釵頭鳳, 봉황비녀)>이 라는 시를 벽에 써두고 떠난다. 이듬해 이 정원에 다시 놀러온 당완은 이 시를 보고 같은 제목의 시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그리고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컸는지 시름시름 앓다가 일 년 뒤 세상을 떠나고 만다. 당완의 죽음을 알게 된 육유는 큰 상처를 지닌 채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 심원을 찾아와 당완을 그리는 시를 지었는데, 그중 유명한 작품이 75세 되던 해 지은 <심원이수(沈園二首)>라는 시다.


城上斜陽畵角哀(성상사양화각애) 성곽에 노을이 지니 들리는 뿔피리소리 애절한데,

沈園非復舊池臺(심원비복구지대) 심원은 옛날의 연못과 누대로 돌아갈 수 없구나.

傷心橋下春波綠(상심교하춘파록) 서로 마음 아파했던 그 다리 아래 봄의 물결은 푸른데,

曾是驚鴻照影來(증시경홍조영래) 그때 놀란 기러기 같던 그녀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스치네.

夢斷香消四十年(몽단향소사십년) 꿈도 없어지고 향도 사라진 40년…

沈園柳老不吹綿(심원유로불취면) 심원의 버들도 늙어 버들 솜도 날리지 않는구나.

比身行作稽山土(차신행작계산토) 이 몸도 곧 죽어 회계산(會稽山) 흙이 되겠지만,

猶弔遺蹤一泫然(유조유종일현연) 그녀의 남은 옛 자취 찾으면서 한없이 눈물 흘리노라.


>>하태형(河泰亨) 전 현대경제연구원장

서울대 경영대 졸업, 뉴욕주립대 경제학박사. 수원대 금융공학대학원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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