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제대로 되겠어?” 하는 의심부터 한다. 그것도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흙 한 번 밟기 힘든 서울 한복판에서 농사 얘기를 꺼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실제로 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밥상에서 곁들일 채소 몇 가지 정도 심는 그런 텃밭이 아니다. 제대로 수익도 올리고 양봉까지 한다. 행촌마을 사람들 이야기다. 서울시 종로구 행촌권 성곽마을 도시농업 마을공동체 김동수(金東秀·66) 주민 대표를 만나 도시농사꾼들 얘기를 들어봤다.
아차 싶었다. 날짜를 잘못 잡았다. 하필 과음한 다음 날 성곽마을에 올 약속을 하다니. ‘산성’ 주변의 마을이라는 것을 잊었던 모양이다. 완연한 봄의 기운이 가득한 날, 땀인지 술인지 모를 것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다리가 풀릴까 걱정될 지경이다.
등산에 가까운 성곽마을까지의 여정은 다소 기묘했다. 산성이 위치한 인왕산 자락은 높은 아파트에 가려져 보이질 않았다. 높은 층수를 자랑하는 대단지의 경계를 따라 난 굽은 길을 거슬러 올라가자 성곽마을이 나타난다. 화려한 장식에 가려진 무대 뒤 같은 모습이다. 마을 어귀에 올라 시내를 바라보니 다시 아파트가 벽이 되어 시선을 가로막는다. 낭만적인 전망은 사치이겠구나 싶다. 예전엔 같은 동네였을 텐데, 과거에 머물러 있는 집에서 높아져가는 아파트를 어떤 기분으로 바라봤을까?
도시화와 재개발 사업에서 비껴간 마을
“불만이 왜 없었겠어요.”
김동수 대표의 말에는 억울함이나 분노보다는 일종의 초연함이 묻어 있었다. 행촌동 성곽마을 일대는 도시화와 재개발의 열풍 속에서 그 위치 때문에 빠르게 일어나는 변화를 바라만 봐야 했다. 서울시의 재개발 구역에서도 돈의문 뉴타운 계획에서도 성곽마을은 빠져 있었다.
“군사보호시설구역과 같은 이런저런 이유들로 개발 제한을 받아왔죠. 주변에 높은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비싼 값에 거래되는 것을 바라만 봐야 했어요. 재산상의 불이익을 감수했던 것이죠. 그래도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진행되면서 집수리 비용의 절반을 되돌려주는 등 예산지원이 조금씩 이루어지면서 불편하지 않게 고쳐가며 살고 있죠. 상대적인 박탈감이나 스트레스가 많지만 워낙에 행촌동 사람들이 양반들이라 과격한 의사표현 같은 것은 하지 않아요. 대부분 오래 사신 어른들이라 동네에 대한 애정도 많고. 실제로 종로구 내 17개 동 중에서 어르신이 제일 많이 살고 계셔요. 그래서 그대로 살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으신 것 같아요.”
김동수 대표 역시 행촌동 토박이 중 한 명이다. 여덟 살에 수원에서 이사와 58년을 행촌동에서 살았다. 김 대표는 1960년대의 동네 모습도 상세하게 기억했다.
“당시 이 동네는 판자촌뿐이었어요. 한국전쟁 이후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난민들이 몰려와 살았던 동네 중 한 곳이에요.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달동네였죠.”
김 대표는 의약품, 식품, 음료 유통 회사에 다니다 맥주 대리점을 내면서 독립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슈퍼마켓을 차려 30년을 ‘슈퍼 아저씨’로 살았다. 지금은 세월의 변화에 맞춰 슈퍼마켓이 있던 자리를 편의점에게 내줬다.
“이 집 저 집 배달을 다녔으니 동네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죠. 언덕길을 수만 번은 왕복했을 거예요. 그러다 판잣집에 살던 사람들은 성남 등 시 외곽으로 단체로 이주하면서 동네가 많이 달라졌어요.”
2014년 서울시에서 발간한 자료 <저소득층 주거지 변천사 연구>를 살펴보면 1971년 서울인구의 10%에 가까운 규모의 신도시인 ‘광주대단지’ 계획이 수립돼 실제로 1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이주했다. 이외에도 토지구획정리사업이나 도시정화사업 등의 이름으로 판자촌 철거민들은 계속 외곽으로 밀려났다.
참여 주민 대부분이 ‘초보농부’
난개발됐던 지역이 정비되면서 아파트에 둘러싸이게 된 과정이 대충 이해가 된다. 그런데 그런 동네에서 도시농업이라니 의아한 일이다. 왜 농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까.
사실 이 지역의 도시농업 도입은 지역 주민의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거대 재개발 과정에서 소외된 이 지역의 주민 공동체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서울시에서 내놓은 기획에서 출발했다. 서울시는 2014년 7월, 어떤 관리 계획에도 속해 있지 않던 이 지역을 ‘성곽마을 재생계획’ 수립 과정에 포함시키고 주민 의견을 수렴하기 시작했다. 행촌동뿐만 아니라 한양도성 9개 권역 22개 성곽마을을 대상으로 계획이 수립됐다.
행촌권 사업은 크게 지역 주민을 위한 마을회관 격인 ‘행촌共터’ 세 곳을 조성하고, 옥상경작소와 텃밭 등 도시농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후 육묘장이나 양봉장 설립을 통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도시농업 사업을 발굴한 뒤,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도시농업 공동체의 전문성을 강화해나간다는 것이 이 사업의 요지다.
“통장연합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자의 반 타의 반 성곽마을 추진위원장 자리를 맡게 됐죠. 무작정 농사부터 지은 건 아니에요. 서울시 도시재생센터에서 하는 도시재생대학을 통해 도시농업에 대한 지식을 익혔죠. 이 동네에서 오래 사신 직능단체장을 중심으로 15명이 참여했어요. 그리고 지난해 2월 도시농업공동체를 발족하고 이어 육묘장을 만들면서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했어요.”
지역 주민들의 성과는 조금씩 나타났다. 육묘장을 통해 성장한 모종 중 2만 봉이 종로구청에 납품됐고 옥상과 노지, 텃밭용으로 4만 봉이 공급됐다.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였다. 6kg이 넘는 커다란 수박도 초보농부에게는 값진 수확이었다. 가지와 토마토, 참외도 얻었다. 양봉도 시작했다. 전문가를 초청해 별도의 양봉 강의를 받았고, 전문 멘토 네 명이 달라붙어 이들을 도왔다. 그 결과 첫해 수확으로는 큰 꿀 800L를 얻었다.
“그래도 계속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에요. 지난겨울에는 관리를 잘못해 일부 벌들이 죽어버렸어요. 벌에 쏘여 응급실로 달려간 적도 여러 번이고요. 꿀이 한창 채집되던 무렵에는 여왕벌 하나가 분봉해 인근 아파트 벽에 난 구멍에 벌집을 차려 난리가 났었죠. 어쩔 수 없이 양봉 위치를 옮겨야 했어요. 올해에는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농사의 ‘ㄴ자’도 모르던 사람들이 많이 달라졌어요.”
“나 행촌 살아” 자부심 높아진 주민들
이런 변화를 지역 주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되레 일말의 재개발 가능성마저 없애는 일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주민들 입장에선 확 바뀌는 것이 아니니까 몇몇은 마뜩찮아 했던 것이 사실일 거예요. 괜히 세금만 들이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할 수 있고. 큰 시설을 세우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많지 않은 사업이니까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도시농업 사업은 주민들의 삶을 많이 바꿔놓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농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시간제 일자리를 제공할 수도 있고, 만들어진 농산물을 좋은 일에 쓸 수도 있고 말이죠.”
실제로 이들은 지난해 텃밭에서 수확한 배추 700포기로 김장을 담가 지역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래도 마을의 달라지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주목받으면서 주민들의 자부심이 높아졌다는 것을 느껴요. 전국에 도시재생, 도시농업의 성공사례로 알려지면서 방방곡곡에서 저희에게 배우기 위해 찾아와요.”
이들의 노력 덕분에 종로구는 도시농업 우수자치구로 선정됐고, 서울농업기술센터에서 주관하는 ‘도시농업 최고 텃밭상’도 탔다. 2016 전국 공동체 한마당에선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김 대표는 향후에 각종 도시농업사업이 자리를 잡아가면 협동조합을 설립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찾을 계획이라고 했다. 단순히 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수확한 농산물을 가공해 2차, 3차 산업 형태로 확대해나간다는 것이다. 채취된 꿀은 차나 가공식품 형태로 부가가치를 높이고, 허브나 약초도 음료 형태의 제품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마을 주민 중 일부는 바리스타 교육을 정식으로 받았고, 1호 행촌共터에는 커피추출기도 갖춰졌다. 또 푸드뱅크를 설립해 지역 저소득 노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올해는 스마트폰을 활용해 하우스의 습도와 온도, 수분 공급 등을 자동으로 조절할 수 있는 ‘스마트 팜’도 도입할 계획에 있다. 도시농업의 특성상 작은 면적에서 높은 효율의 수확을 얻어내기 위해서다. 부가가치가 높은 더덕, 감초, 어성초 등을 심은 약초밭도 만들었다.
주민 행복에 보탬이 된 도시 농사
물론 지역의 변화만큼이나 김 대표 개인에게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이런 변화가 싫지 않다고 했다.
“제가 살아온 인생에서 최근 2년의 삶이 가장 행복해요. 이제 2년 된 초보농부이지만 길가의 작목만 봐도 다듬고 만져줄 정도로 달라졌어요. 산성을 따라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는 텃밭들을 가꾸느라 체중은 5kg 넘게 줄었죠. 새벽같이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밭으로 달려가는 거예요. 지금은 안 쓰던 일기까지 쓰고 있어요. 매일매일 농사에 대한 기록을 하는 것이죠. 파종과 같은 육묘장 운용이나 농사일에 관한 일정을 기록해서 다음 해에 늦어 고생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있어요.”
그의 아내는 김 대표의 이런 모습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큰돈을 만질 수 있는 일도 아닌데 집에서 도통 남편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비가 좀 온다 싶으면 작물 걱정으로 뒤척이는 통에 덩달아 잠을 청하기 어려웠다. 걱정되면 나가보라며 새벽에 남편을 내보낸 일도 적지 않았다.
김 대표의 아내가 남편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더운 어느 여름날이었다. 산책 삼아 텃밭에 함께 나왔던 아내는 땀을 뻘뻘 흘리며 작물을 다듬는 남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한참 지켜보던 아내는 생각이 바뀌었는지 그날부터 잔소리를 줄였다.
서울시가 성곽마을 재생을 위한 마중물로 행촌동에 투자한 것처럼, 그는 자신의 노력이 행촌동 지역 주민을 위한 도시농업이 자리 잡는 마중물로 쓰이길 희망했다.
“개인적인 욕심이 있을 리 없죠. 자식 셋도 모두 결혼했고 바랄 것이 더 있겠어요. 척박한 이 마을에서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잘살고, 행복해지길 바랄 뿐이에요. 지역 주민들이 도시농업으로 좀 더 즐거움과 여유를 찾았으면 해요. 저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오래 이 일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