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관 답사기] 영인문학관 '文人戀情, 문인을 향한 연정 쌓이다'

기사입력 2017-05-05 19:29 기사수정 2017-05-05 19:29

▲영인문학관 입구(사진 김민웅 cjsea618@gmail.com)
▲영인문학관 입구(사진 김민웅 cjsea618@gmail.com)

이런 사랑이 또 있을까 싶다. 편한 것이 좋고, 느린 것은 싫고. 오랜 것은 쉬이 버려버리는 요즘 세상, 옛 추억을 곱게 간직하고 진정한 사랑으로 그리워하는 문인들의 안식처가 있다.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이 바로 그곳. 문학관을 가득 메운 모든 공기와 기운은 이 세상 모든 문인에게 보내는 연정이다. 컴퓨터 모니터 앞, 최첨단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숨을 깊게 내쉬어보고 싶다면 바람 잔잔히 와 앉은 그곳에 가보시라.

(사진 김민웅 cjsea618@gmail.com)
(사진 김민웅 cjsea618@gmail.com)

세상 모든 문인을 기억하는 ‘영인문학관’

문학관이라고 하면 한 예술가의 작품세계와 삶, 역사를 풀어놓은 곳이라고 인식하겠지만 영인문학관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시와 소설 등을 쓰고, 찬란하건 아니건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모든 문인이 잊히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장치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건국대학교 국문학과 명예교수이자 문학평론가,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의 부인인 강인숙 관장은 문학을 향한 남다른 사랑으로 문학관을 건립했다. 그녀는 유실 위기에 처했던 문인들의 원고와 다양한 소품을 오래전부터 수집해왔다. 집 안에 점점 쌓여가는 원고, 한 시대를 살았던 문인의 손때 묻은 물건들이 버거울 때도 있었지만 강 관장의 퇴직금과 3년 치 급료 등으로 기금을 마련해 2001년 영인문학관을 개관했다.

▲영인문학관 강인숙 관장(사진 김민웅 cjsea618@gmail.com)
▲영인문학관 강인숙 관장(사진 김민웅 cjsea618@gmail.com)

다수의 작가를 두루 살피는 마음으로…

개관 이후 전시의 대부분이 기획전시로 이뤄지고 있다. 다른 문학관이나 개인 박물관이 상설전시로 이뤄지고 있는 반면 이곳은 기획전시로 시공간을 채운다. 전시때마다 작품이 바뀌는 것뿐만이 아니라 자리 배치, 전시 운용까지 새로 조직해야 하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인문학관이 한 명이 아닌 다수의 문인을 두루 살피는 문학관이기에 기획 전시의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해왔던 전시만 봐도 그렇다. 다양한 작가의 면모를 찾아볼 수 있게 해준 개관전시 <문인초상화 104인전>, <문인·화가 글 그림 전시전> 등이 그랬고 김상옥과 최인호 등 단독전도 영인문학관에서 기획했다. 취재 차 방문했던 날은 영인문학관 제38회 전시회인 <움직이는 벽에 쓴 시-문인병풍전>(5월 말까지 전시)이 열려 각계 인사들과 문인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제하 시인의 병풍(사진 김민웅 cjsea618@gmail.com)
▲이제하 시인의 병풍(사진 김민웅 cjsea618@gmail.com)

‘움직이는 벽에 쓴 시-문인병풍전’

이번 문인병풍전은 소설가 김동리, 박두진, 조병화 등 작고한 문인병풍을 비롯해 정진규, 이근배, 이제하 등 원로 문인의 필체와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전시회 행사에 앞서 만난 강인숙 관장은 새로 시작되는 전시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현대 병풍과 옛날 병풍을 모아서 전시를 하는 겁니다. 예전 것은 낙관이 병풍의 시작과 끝에만 있었는데 요즘 병풍에는 각 폭마다 낙관이 찍혀 있죠. 예전 병풍은 반듯하고 흐트러짐 없이 글을 써내려갔는데 요즘 병풍은 들쭉날쭉 흔들흔들한 것이 다 의도된 거죠. 병풍 예술이 바뀐 거예요.”

전시회를 위해 많은 작품을 대여했지만 조병화, 김동리, 박두진의 병풍은 강 관장 소유의 병풍이다. 그런데 전문 소장이 된 것처럼 병풍 상태가 아주 좋았다.

“내가 아주 보관을 잘해요. 예전에 부채를 보내주신 분이 20여 년 만에 와서 보더니 전문화랑보다 보관을 잘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또 하나 그려주시더라고.”

▲이어령 전 장관의 서재를 재현해 놓을 곳. (사진 김민웅 cjsea618@gmail.com)
▲이어령 전 장관의 서재를 재현해 놓을 곳. (사진 김민웅 cjsea618@gmail.com)

문인 사랑꾼(?)에 내려진 숙명 ‘사명감’

강인숙 관장은 새 기획전시를 여는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다음에 있을 전시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찼다. 오는 6월 15일에는 2007년 별세한 무용평론가이자 시인 김영태의 10주기를 맞아 ‘김영태 편지전’을 기획하고 있다.

“이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시인 마종기한테 보낸 편지를 100여 통 주고 가셨어요. 그 편지만 해도 전시실 안이 가득 찰 거예요.”

김영태 시인은 암 투병 3년 동안 무용 관련 자료는 무용계로, 사진들은 사진 자료가 필요한 곳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가 마종기 시인과 나눴던 편지는 강인숙 관장을 찾아갔다.

“내가 좀 신용이 있거든요(웃음). 김 시인도 수소문해서 저에게 보내준 겁니다. 잘 간직할 사람이라고 생각하셨나봐요. 내가 그렇게 받았으니 보답을 해야죠.”

편지 내용을 읽어보니 그냥 편지가 아니었다. 작품을 읽고 감상을 써 보낸 것이었다. 올해부터는 1년에 한 번씩 문인 관련 특별전을 하려고 한다.

“내가 안 할 수가 없어요. 내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해요. 문인들에게 제가 갚아야 해요.”

강 관장은 많은 문인에게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진정한 사랑꾼이었다. 문학을 향한 열정과 사랑을 흠뻑 담아낸 영인문학관은 그저 ‘감동’이었다.

▲전시회 개관 기념 강연을 위해 자리한 이어령 전 장관.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내 마지막 강연일지 모른다”고 말했지만 강연 시간이 더해갈수록 건강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되찾아갔다. 이 전 장관은 ‘한국의 병풍과 일본 병풍’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사진 김민웅 cjsea618@gmail.com)
▲전시회 개관 기념 강연을 위해 자리한 이어령 전 장관.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내 마지막 강연일지 모른다”고 말했지만 강연 시간이 더해갈수록 건강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되찾아갔다. 이 전 장관은 ‘한국의 병풍과 일본 병풍’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사진 김민웅 cjsea618@gmail.com)

<관람 정보>

개관시간 10:30 ~17:00

입장료 성인 5000원 학생 3000원

주소 서울 종로구 평창30길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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