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수섬

기사입력 2017-06-12 13:45 기사수정 2017-06-12 13:45

▲수섬(이현숙 동년기자)
▲수섬(이현숙 동년기자)
수억 년 전 바다였다가 다시 육지로 변했다가 이젠 또 그 무엇으로 변할 것이라는 곳.

바다 위의 작은 섬으로 오롯하던 수섬이 시화방조제로 인해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되면서 넓디넓은 짭짤한 땅에 뿌리를 내린 삘기가 해마다 가득가득 피어나는 곳이다. 군데군데 불긋불긋한 함초들은 들판의 풍경이 되었다. 줄기 하나 뜯어 맛을 본다. 짭짤한 맛이 입안에서 감칠맛을 느끼게 해준다.

초여름이 시작될 무렵부터 절정인 삘기꽃의 장관을 보러 사람들이 모여든다. 드넓은 들판에 쏟아지는 초여름 무더위가 한창이다. 가끔 불어주는 바람에도 땀은 쉬지 않고 흐른다. 1년 전에도 2년 전에도 찾았던 이 수섬이 개발로 인해 곧 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풍경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연일 찾아들고 있다. 이전 같았으면 방목된 소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정경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한국의 세렝게티라 불렸던 것도 소떼들 덕분이었다. 반짝이는 삘기들의 일렁임에 바람도 노을도 머물다 가고 별빛도 달빛도 숨 막히게 아름다웠던 곳이다.

▲수섬(이현숙 동년기자)
▲수섬(이현숙 동년기자)

이 멋진 풍경을 무참히 없애기로 결정해버리는 무자비한 행정가들이 답답하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섬이 또다시 인간의 손으로 뭉개질 처지다. 도시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운 자연이 사라진다. 필자가 찾아갔을 때는 이미 주차장이 폐쇄된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철조망이 쳐진 커다란 구멍으로 삘기밭으로 들어섰다. 멀리 철탑이 보이고 형도가 뿌연 안개에 반쯤 가리어진 채로 마주 보인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을 준다. 이국적인 풍경에 모델들까지 대동한 촬영 팀들도 군데군데 보인다. 그 일행들이 삘기꽃의 숲에 가려 보이지 않다가 나타나곤 한다.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듯한 풍경이다.

해가 지면서 노을빛에 더욱 반짝이는 삘기의 아름다움에 경탄한다. 점점 노을이 깊어간다. 이때쯤 저 멀리에서 사자 한 마리 어슬렁거리며 걸어온다면 저절로 아웃오브아프리카(Out Of Africa)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아낼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곳곳에 카메라를 세팅해놓고 기다리던 사람들 앞에서 노을이 온 대지를 물들이면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끊이지 않고 셔터 소리가 경쾌하게 터진다. 가슴 뿌듯하게 행복한 시간이다.

한낮엔 수섬의 바람과 한판 놀고, 저녁엔 황금빛 삘기의 반짝거림에 가슴 뛰던 하루. 그동안 멋진 자연 속에 있게 해준 수섬이 고맙다. 그러나 이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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