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거울이다

기사입력 2017-09-14 19:13 기사수정 2017-09-14 19:13

[동년기자 페이지] 내 자식 혼사열전

작년 초, 딸아이의 남자 친구가 인사를 오겠다고 해서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2주 후 현대미술관 그릴에서 마주 앉았다. 어색하고 기분이 묘했다. 노트북을 펼쳐 몇 컷으로 정리한 자신의 풀 스토리를 전하는 예비사위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래도 비교적 차분하고 진솔하게 35년의 이야기를 전하는 표정이 진지했다.

만나서 심문하듯 묻고 답하는 자리보다는 온전하게 자신을 알리는 시간을 주는 게 좋겠다 싶어 필자가 주문한 것이 ‘나를 말한다’ 브리핑 PPT였다. 우리 아이와 결혼을 원한다면 예비 장인, 장모를 설득해보라는 일종의 작은 미션이었다고나 할까.

이후 까탈스러운 장모라는 주위의 비난이 있었다고 사위에게 전하니 나름 재미있었던 이벤트였다며 집안의 가풍으로 하잔다.

양가 부모 상견례가 걱정이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막막한 마음에 경험자들에게 물으니 형식적인 자리이니 인사 정도나 나누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러나 필자 생각은 달랐다. 그동안 아들을 어떤 심정으로 키웠는지, 어떤 아이로 자라기를 소원했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지 등등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자 모두들 극구 말렸다. 그러려면 너는 아예 상견례 자리에 나가지 말라는 충정 어린 겁박(?)까지 했다.

문득 ‘사돈끼리 그렇게 어려워해야 할 이유가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에게 귀한 자식이고 사돈끼리 사이가 좋으면 아이들도 편할 텐데 왜 형식적으로 만나라고 하는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상견례 자리에서는 남편이 주로 이야기하고 필자는 경청만 하기로 했다. 그러나 두 시간의 상견례 만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딸아이에게 “입을 꼭 다물고 싸늘하게 앉아 계시니 시베리아가 따로 없었다. 겨울 왕국 지으시느라 애쓰셨다”는 원망 섞인 비난을 들어야 했다.

상견례를 마치고 나니 혼례가 실감이 났다. 남편도 딸아이가 시집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한동안 잠을 뒤척였다. 장인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 이해하겠다는 고백을 시작으로 35년 전 우리의 결혼식을 떠올리며 새벽까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결혼이 통과의례나 속물적인 거래가 되지 않으려면 정직하고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 자신이 납득할 만한! 결혼 당사자는 내게 결혼은 무엇인지, 왜 그 사람이어야 하는지, 나는 상대에게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둘이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등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부모 역시 새 식구를 받아들이는 기준이 무엇인지, 자녀가 어떤 가정을 꾸리기를 원하는지,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인지, 그럼에도 결정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욕심을 내려놓고 다양한 경우들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어느덧 딸아이의 결혼 1주년이 지났다. 여전히 재미있고 좋단다. 살아가면서 몇 가지 잘한 일 중 하나가 딸아이를 결혼시킨 것이다. 새 식구도 얻었지만 남편과도 변화가 생겼다. 부모이자 인생 선배로서 바람직한 부부의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기 시작한 거다. 조금은 성숙하고 의젓한 장인, 장모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다. 딸아이의 결혼으로 우리 부부를 비춰주는 거울이 생긴 것 같다. 사위가 아직도 낯설지만 결혼시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딸아이가 원하는 사람을 흔쾌히 맞아들인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욕심 부리지 않고 어른다웠다고 스스로를 격려한다. 설레는 가슴으로 함께 꿈꿔나가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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