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의 전당에 내밀어보는 명함

기사입력 2019-01-24 09:02 기사수정 2019-01-24 09:02

[커버스토리] PART 07 누구나 고수가 될 수 있다

1960년도 중반 아시안 바스켓볼 챔피언 경기가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되었다. 당시 신동파 선수는 박신자 선수와 함께 국내뿐 아니라 필리핀에서도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그들이 실력 발휘를 할 수 있었던 데는 농구화도 큰 작용을 했다. 그 농구화는 우리 공장에서 특수 제작한 제품이었다.


신발공장 아들

당시 국내에는 ‘비비(BB)’ 농구화와 ‘에이비시(ABC)’ 농구화가 많이 판매됐는데 ‘에이비시’가 우리 제품 브랜드였다. ABC 농구대회가 끝나자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주문이 밀렸다. 신발공장 아들답게 내가 처음 신발을 만든 것은 7세 때였다. 멀쩡한 원단을 자를 수는 없어 자투리를 연결해 만들었다. 모두들 잘 만들었다고 칭찬이 대단했다. 모차르트가 몇 살 때 피아노 연주를 했는지 생각해보면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니다. 그렇게 내 어린 시절은 신발과 함께 흘러갔다.


한몫했던 기술

학교가 끝나면 공장에서 작은 심부름을 하며 지냈다. 그러다 보니 제법 한몫하는 기술자가 되었다. 작업은 골(발 모양 닮은 틀)에 갑피를 씌워 중창을 붙이고 바닥을 붙이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신발 모양을 결정하는 기술자의 숙련도가 요구되는 공정이다. 재공(在工) 중의 신발은 무겁다. 그래서 섬세한 여공들의 솜씨도 필요하지만 힘센 남자들의 도움도 필요했다. 공장 안에서 내 인기는 만점이었다.


고난의 시간

잘나가던 공장에 뜻하지 않은 위기가 닥쳐왔다.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접착제를 많이 사용해 화재는 순식간에 번졌다.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딱 하나 공장에서 가장 고가품인 공업용 고속 미싱 한 대만 들고 나왔다. 그날 이후 잠자던 방이 공장이 되었다. 새벽 2시 이전에는 자본 적이 없었다. 졸면서 망치질하다가 손가락을 때린 게 몇 번인지 셀 수도 없었다. 나중에는 졸면서 망치질을 해도 손가락 안 때리고 작업하는 경지에 올랐다. 신발 제작은 우리 집 생계 수단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식구 전체가 달인 정도의 수준은 됐다. 3년을 고생해 공장 터를 마련, 원상복귀했다.


다른 길

그 후 신발 때문에 너무 고생을 해 신발이 싫어졌다. 신발과는 관련 없는 길을 택해 대학교 진학을 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보건전문대 치과 기공과 교수로 근무했다. 그런데 싫어하던 신발이 가끔 생각나는 건 무슨 이유일까? 아직도 1년에 한두 번씩은 신발 만드는 꿈을 꾼다, 그때 공장에서 같이 일하던 반가운 얼굴들도 본다. 이제 신발 만드는 일은 3D 업종으로 분류돼 공장이 외국으로 거의 다 나가고 장비도 기계화돼 수제화는 특수 주문용으로만 제작되고 대부분 사라진 것 같다. 당시 내가 사용하던, 너무 오래되어 녹이 슨 작은 도구들은 아직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고수

고수 아닌 사람이 고수란 호칭을 사용해 진짜 고수의 명예를 손상할까 조심스럽다. 그러나 옛날의 추억과 실력이 있어 자신 있게 고수의 전당에 내 명함을 내밀어본다. 내가 아직 고수인 이유는 만들어야 할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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