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쬐며’ 행복을 누리는 아침

기사입력 2019-03-29 10:05 기사수정 2019-03-29 10:05

[동년기자 페이지] 동년기자들의 아침맞이

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올빼미족’이었다. 내가 ‘아침형 인간’이 된 것은 가족들을 위해 일찍 일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이른 시간에 눈을 뜨는 습관을 들이고 나니, 이전에 잠자느라 놓쳐버린 시간들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었다.

‘올빼미족’이었을 때는 새벽까지 책도 읽고, 옷수선도 하고, 뜨개질이나 레이스뜨기도 하고, 음악도 들으면서 나만의 시간을 즐겼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서 시어머니, 시동생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아침 식사를 일찍 했고, 남편과 시동생은 출근이 일렀다. ‘맏며느리’라는 막중한 위치에 서게 된 나는 오전 6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그렇게 생활에 떠밀려 억지로 ‘아침형 인간’이 되어갔다. 시집살이 3년쯤은 오전 6시에 일어나도 9시까지 비몽사몽이었다. 눈이 ‘반짝’ 떠지지 않아 집중력도 떨어졌다. 올빼미족이 아침형 인간이 되려면 오랜 습관을 들여야 가능한 일임을 알았다.

나는 지금도 아침 식사 준비 때문에 오전 6시에 일어난다. 아들은 6시 30분에, 남편은 7시 30분에 아침을 먹는다. 출근시간이 달라서다. 식사가 모두 끝나고 설거지를 하고 나면 8시 30분이 된다. 내가 집을 나서는 시간이다. 당뇨를 앓고 있어 식사 시작 한 시간이 되는 시점에 걷기 운동을 해서 혈당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노원구에는 중랑천, 당현천, 경춘선 숲길, 수락산 둘레길, 불암산 둘레길 등이 있다. 이 길을 걸으며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요즘은 미세먼지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덜 받기 위해 나무가 많은 산으로 간다. 수락산 자락에는 산책길이 많다. 아주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비 올 때, 눈 올 때를 제외하고 일정이 없을 때는 그 길을 걷는다.

운동을 마치면 오전 10시쯤 된다. 이 시간에는 아파트 단지 앞 카페 앞에 도착한다. 대로변 코너에 위치한 통유리가 시원한 카페는 바깥 구경하기에 너무 좋다. 지하철역 앞이라 오가는 사람도 많다. 약속이 없는 날엔 거의 들른다. 이곳에서 파는 달달한 도너츠 한 개와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피곤한 다리를 쉰다. 그리고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며 ‘사람을 쬔다’. 사람을 쬔다는 말, 무슨 뜻일까?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시(詩) 중에 ‘사람을 쬐다’라는  작품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그 의미를 잘 드러내준다.


…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 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이다

… 다 늙은 할머니 한 사람 지팡이 내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 바라보고 있다 

깊고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 재미있다. 얼굴 표정, 그들이 입고 다니는 옷 구경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카페에서 ‘사람을 쬐며’ 누리는 이 시간이 나는 참으로 소중하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나만의 온전한 아침이기 때문이다.

오전 11시가 되면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잔잔한 행복을 가슴 가득 품은 채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집 안에 풀어놓는다. 이것으로 나의 아침은 끝을 맺는다. 나만의 시간을 향유하는 아침, 소박하지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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