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지속돼온 대학 친구들 모임에서 최근 한 친구가 탈퇴하겠다고 했다. 뚜렷한 이유도 없었다. 부부동반으로 한 해에 두 번 정기적으로 만나고 가끔 애경사에 봤다. 그러니 크게 부담 가는 모임도 아니었다. 탈퇴 이유가 궁금했고 친구들의 충격도 작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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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졌다. 그러나 오랫동안 신뢰를 쌓아 친해지면서 깊은 관계를 맺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는 얼마나 있을까? 그러니 그의 탈퇴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생텍쥐페리의 저서 어린왕자에 나오는 여우와 어린 왕자의 대화 한 토막. 별나라에서 외로움을 느낀 어린 왕자가 여우를 보고 말했다. “나하고 놀자. 난 아주 슬퍼.......” 여우가 말했다. “난 너하고 놀 수가 없어. 난 길들여지지 않았단 말이야.” “그런데 ‘길들인다’는 게 무슨 의미지?” 어린 왕자가 묻고 여우가 말했다.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야.”
사랑하는 법도 우정을 쌓는 법도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법도 이 길들여지고 맺어지는 관계
속에 있음을 말한다. 마치 김춘수 시인이 ‘꽃’이라는 시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연구실 책상 위의 난 화분. 겨울을 나면서도 싱싱하게 잘 자라 줄기도 여러 개 번식해서 분식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난 잎 하나가 누렇게 물들더니 이내 떡잎이 되어 말라 버렸다. 그 떡잎이 된 줄기를 뽑아버리면서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이별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한다. 자식들이 둥지를 떠나 결혼하고, 부모님.친지 등이 세상을 떠나고.. .
길들여진 이들과의 이별을 연습할 때가 왔다.
지금은 우선 그 친구와의 이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