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연습’을 시작할 때

기사입력 2019-04-19 16:46 기사수정 2019-04-19 16:46

30년 지속돼온 대학 친구들 모임에서 최근 한 친구가 탈퇴하겠다고 했다. 뚜렷한 이유도 없었다. 부부동반으로 한 해에 두 번 정기적으로 만나고 가끔 애경사에 봤다. 그러니 크게 부담 가는 모임도 아니었다. 탈퇴 이유가 궁금했고 친구들의 충격도 작지 않았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졌다. 그러나 오랫동안 신뢰를 쌓아 친해지면서 깊은 관계를 맺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는 얼마나 있을까? 그러니 그의 탈퇴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생텍쥐페리의 저서 어린왕자에 나오는 여우와 어린 왕자의 대화 한 토막. 별나라에서 외로움을 느낀 어린 왕자가 여우를 보고 말했다. “나하고 놀자. 난 아주 슬퍼.......” 여우가 말했다. “난 너하고 놀 수가 없어. 난 길들여지지 않았단 말이야.” “그런데 ‘길들인다’는 게 무슨 의미지?” 어린 왕자가 묻고 여우가 말했다.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야.”

사랑하는 법도 우정을 쌓는 법도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법도 이 길들여지고 맺어지는 관계

속에 있음을 말한다. 마치 김춘수 시인이 ‘꽃’이라는 시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연구실 책상 위의 난 화분. 겨울을 나면서도 싱싱하게 잘 자라 줄기도 여러 개 번식해서 분식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난 잎 하나가 누렇게 물들더니 이내 떡잎이 되어 말라 버렸다. 그 떡잎이 된 줄기를 뽑아버리면서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이별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한다. 자식들이 둥지를 떠나 결혼하고, 부모님.친지 등이 세상을 떠나고.. .

길들여진 이들과의 이별을 연습할 때가 왔다.

지금은 우선 그 친구와의 이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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