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본드는 왜 젓지 않고 흔들었을까

기사입력 2019-04-24 14:25 기사수정 2019-04-24 14:25

[영화 속 술 이야기] 영화 ‘007 카지노 로얄’과 마티니

007 시리즈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술이 있다. “Vodka martini, shaken, not stirred(보드카 마티니, 젓지 않고 흔들어서)”. 바로 ‘칵테일의 왕’이라고도 불리는 마티니(Martini)다.

▲영화 '007 카지노 로얄' 포스터
▲영화 '007 카지노 로얄' 포스터

007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 2006

장르 액션, 모험

감독 마틴 캠벨

출연 다니엘 크레이그, 에바 그린 등


제임스 본드가 너무 사랑한 나머지 한 번도 빠짐없이 007 시리즈에 출연(?)한 마티니. 그의 유명한 대사(“보드카 마티니, 젓지 않고 흔들어서”) 때문에 많은 사람이 마티니는 보드카를 베이스로 만든 칵테일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전통 마티니는 보드카가 아닌 진과 베르무트를 함께 ‘저어서’ 만든 칵테일이다. 그렇다면 본드는 왜 젓지 않고 흔들어서 만든 마티니를 선호했을까. 그 이유는 흔드는 과정에서 기포가 생기고, 얼음이 녹아 부드러운 맛을 내기 때문이다. 삼각형의 유리잔에 담긴 투명한 마티니가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진과 베르무트의 비율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데 있다. 이때 진의 비율이 높을수록 ‘드라이(dry)’하다고 표현하는데, 쉽게 말해 드라이 마티니는 진이 많이 들어가 쓴맛이 강한 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러한 마티니의 섬세한 맛에 빠진 사람은 제임스 본드뿐만이 아니다.


마티니를 사랑한 명사들

윈스턴 처칠 마티니에 베르무트를 얼마나 넣느냐는 질문에 “진만 따른 마티니를 마시며 베르무트는 병만 바라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대답한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줄리아 차일드 요리 연구가이자 요리사였던 줄리아 차일드는 진과 베르무트의 비율을 1:5로 섞어 마시길 좋아했다. 기존 비율과 정반대여서 리버스 마티니라고 부른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진과 베르무트의 비율을 15:1로 섞어 마셨다. 전력 차가 15배 이상 나지 않으면 전투를 하지 않았다는 몽고메리 장군의 이름을 따 몽고메리 마티니라고 부른다.

린든 존슨 잔을 베르무트로 가득 채운 뒤 버린다. 그렇게 베르무트로 적신 잔에 진을 채워 그만의 마티니를 완성시켰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직접 마티니를 만들어 장관들에게 대접할 정도로 마티니 애호가였다. 1933년 금주법 해제를 알리면서,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열린 테헤란 회담 때에도 두 정상들(처칠, 스탈린)과 마티니를 만들어 마셨다.


▲영화 '007 스펙터'에서 마티니를 마시고 있는 제임스 본드.
▲영화 '007 스펙터'에서 마티니를 마시고 있는 제임스 본드.

영화 ‘007 카지노 로얄’에서는 제임스 본드가 보드카 마티니가 아닌 새로운 마티니를 주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진과 보드카, 그리고 키나 릴레이를 얼음과 함께 흔든 뒤 얇은 레몬 한 조각을 올린 ‘베스퍼’ 마티니다. 베스퍼는 본드의 첫사랑이었던 여인의 이름인데, 베스퍼가 본드에게 자신의 이름을 붙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Because you’ve once tasted it, that’s all you want to drink.”

“한 번 맛보면 그것만 찾게 될 테니까.”

제임스 본드 덕분에 유명해진 ‘보드카 마티니’, ‘베스퍼 마티니’ 외에도 마티니의 종류는 매우 다양해 그 맛에 지루할 틈이 없다. 또 다른 대표적인 마티니로 진과 베르무트, 그리고 올리브주스를 넣어 짭짤하게 만든 ‘더티 마티니’가 있다.

조금은 낯선 술, 베르무트

그 명성만 듣고 마티니를 시켰다면 맛을 보고 흠칫 놀랄 수도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베르무트(vermouth)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화이트 와인에 브랜디와 각종 향료를 우려 만든 베르무트는 독특한 향을 자랑한다. 특히 베르무트는 한 번 개봉하면 와인처럼 맛이 변하기 때문에 관리하기가 힘들다. 코르크 마개를 딴 베르무트를 냉장실에 넣어두면 10주에서 15주 정도 더 보관할 수 있다. 만약 바에 갔을 때 개봉한 베르무트를 냉장고가 아닌 선반에 올려놨다면 그곳에선 마티니 주문을 하지 않는 게 좋다. 대표적인 베르무트 브랜드로는 이탈리아의 ‘마티니(Martini)’와 ‘친자노(Cinzano)’, 프랑스의 ‘뒤보네(Dubonnet)’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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