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엿보고, 서로 참견하는 시대가 됐다. 이른바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TV 프로그램과 소셜미디어(SNS)의 영향이 크다.
교양을 제외한 각종 오락 프로그램에 ‘예능’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00년대에 들어와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을 대신해 유명인들을 등장시켜 시끌벅적하게 연출하는 프로들이 나타난 게 이 새로운 포맷의 출발이다. 이 예능 프로그램은 급기야 ‘나 혼자 산다’나 ‘미운 우리 새끼’ 같은 관찰예능으로 진화하고 있다. 연출된 것이기는 하지만 특정인의 사생활을 엿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더니 어느새 유명인 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엿보기 시작했다. “당신의 인생에 참견해 드립니다.”란 슬로건으로 시작한 ‘전지적 참견 시점’은 이름 없던 음지의 연예인 매니저들을 국민적 스타로 만들었다. 한동안 방송사마다 경쟁적으로 일반인을 동원한 맞선 보기 프로그램을 내보내더니 이제는 보통 사람들의 사소한 연애에까지 끼어들어 참견한다.
예능 프로그램의 진화가 시청자들의 잠재적 욕구를 반영한 것이라면, 우리 사회가 남의 삶을 엿보거나 남의 일에 참견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는 게 분명할 것이다. 실제로 친구들 간의 수다는 대부분 남에 관한 이야기다. 입방아에 오른 그들이 우리에게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길 위임한 것이 아닌데도 우리는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열정적으로 그들의 인생을 컨설팅해준다.
이러한 ‘참견 문화’는 예능 프로그램과 함께 소셜미디어(SNS) 시대를 만나 활짝 만개했다. 그러지 않아도 입이 근질근질한데 익명의 사이버공간이 열리니 얼마나 신이 났겠는가. 우리는 모두가 모두에게 간섭할 정당성을 부여받은 양 불특정 다수를 향해 참견하고 있다. 어른들은 쓴소리로, 네티즌은 ‘알 권리’로 타인의 지극한 사적인 영역에 대해 제멋대로의 판단을 하고 애정 없는 참견을 마구 날린다.
문제는 이런 참견에 많은 이들이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간섭받지 않을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데도, 모두가 타인의 삶에 간섭하는 왜곡된 모순에 사로잡힌 모양새다. 그 재미있던 엿보기와 간섭이 어느새 한국민들을 재미없게, 행복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중이다. 남에 대한 간섭은 불안한 나의 내면을 감추려는 공격성의 한 표현일지도 모른다.